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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아이들 #7

2018. 3. 29. 16:23 | Posted by 호랑이!!!

저보고 붉은 여왕님의 초대를 거절하라구요...? 제가요...?”

레이디 세이렌은 그들을 안으로 들였다.

까만색 나무와 하얀 천으로 만들어진 칸막이 뒤에는 하얀 천을 씌운 소파와 낮은 테이블이 있었고 안으로 들어오면서 흘긋 본 다른 칸막이 뒤에는 1인용 침대도 하나 있었다.

극장이 그녀의 대기실이 아니라 사는 집이라는 말은 정말인가, 세이렌은 다른 칸막이 뒤에서 차를 타오고 과자를 내 왔다.

어려운 이야기라는 건 아네.”

방금 전까지 얀에게 사랑스럽다는 시선을 보내며 재잘거리던 세이렌은 단호하게 찻잔을 내려놓았다.

헨리, 추수제에 제가 서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나요?”

삼백년이나 마물도 외적도 침입하지 않게 된 이 나라는 부유하고 풍요로워서 문화며 건축 등을 발달시켰다.

오로지 유흥을 위해서 극장이라는 건물을 짓고 난 후에는 무대 위에서 상연되는 것을 전제로 하는 오페라며 연극, 무용 등이 본격적으로 꽃피었고 거기에 귀족이 참가하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이제 와서는 악기나 노래나 무용을 뽐내는 사람 중에 귀족이 적지 않게 되었다.

덧붙여 농민이 중심이어야 할 추수제의 무대에서도 귀족이 아니면 서지 않게 되었고.

처음에는 수도 근처의 농지에서 가장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이 부르는 것이 원칙이었지만 여러 문제가 있기도 해서 현대에는 완전히 귀족이 무대에 선다.

“...그 자리를 다시 평민 신분인 저에게 주신 거예요. 붉은 여왕님은 이번 추수제를 빌어 평민과 귀족 간의 거리를 다시 좁히려고 하고 계세요.”

내가 알바는 아니지.”

얀이 투덜거리듯 내뱉자 세이렌은 쓴웃음을 지었다.

헨리, 당신에게 우리 외에 다른 것을 생각할 여유가 없다는 것은 알고 있어요. 하지만 제가 이런 일까지 양보할 수는 없답니다.”

여왕님의 명령을 거부하겠다는 건가?”

그러자 세이렌은 입을 다물었다. 긍정이라고도, 부정이라고도 하지 않은 채. 방은 조용해졌고 단의 과자 깨무는 소리만 들렸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세이렌이었다.

당신은 나빠요.”

결국에는 다 너희를 위한 일이야... 라고 하면 좀 위로가 될까?”

안돼요.”

세이렌은 삐죽 입술을 내밀었다가 좋은 것이 생각났다는 듯 손바닥을 맞대었다.

하지만 헨리가 제가 바라는 말을 해 준다면 위로가 안 될 것도 없어요.”

그건 안된다는 걸 알지 않나.”

다시 세이렌의 얼굴에는 미소가 돌아와서, 마치 갓 이슬을 맞은 꽃처럼 생기가 넘쳤다.

헨리, 우리 앞에는 지금 두 가지 길이 있어요. 하나는 쉬운 길이고, 하나는 어려운 길이예요. 길을 선택하는 것은 헨리랍니다.”

어려운 길, 어려운 길로 할거네.”

이거 안 먹히네, 라고 투정부리는 소리를 내면서도 세이렌은 웃었다.

그럼 그 어려운 길이 뭔데?”

플로라 공주님께 가 주세요.”

그 아가- ...플로라 공주님이 왜?”

습관적으로 아가씨, 라고 하려던 얀은 세이렌의 눈빛이 바뀌려고 하자 급히 말을 바꾸었다. 세이렌은 마치 네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다 알고 있다라고 하는 듯한 표정으로 웃었다.

공주님이 무서워하고 있으니까요.”

그 아가씨... 아니, 공주님은 항상 무엇이든 무서워하지 않나.”

헨리,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에요. 만약 공주님의 일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저도 당신의 부탁을 들어줄 수 없어요.”

세이렌은 찻주전자를 기울여 자신의 잔을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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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아이들 #6

2018. 3. 27. 05:01 | Posted by 호랑이!!!

헬렌 카투스는 여느 주말처럼 편지를 배달해왔다.

안녕 얀! 다니엘! 왜 둘 다 죽을 상이야?”

“...다니엘이 괴롭혔네.”

“...얀이 나빠.”

오늘의 간식은 연어알을 넣은 카나페였다.

편지가 가득 든 가방을 뒤집어 털어낸 헬렌은 여느 날과 달리 다니엘 폰 카이트(듀크 단)와 헨리 제임스 헤일로()가 축 처져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싸우기라도 했어?”

얀이 여왕님에게서 명령을 받았는데 지나치게 느긋합니다.”

... 헬렌은 단박에 이해했다.

저 뼛속까지 충성심 넘치는 미래의 기사 나리는 여왕님의 명령이 최우선이니 그것부터 하라고 했을 것이고 우리들의 관리자는 무슨 꿍꿍이에서든 이때껏 미뤘겠지.

뭐야, 무슨 일인데?”

“...무도회의 가수로 레이디 세이렌을 데려오라는데.”

뭐어? 그게 무슨 어려운 일이라고 질질 끌고 있어?”

하필이면 그 날이 추수제일세.”

그게 뭐 어때서?하는 친우를 보고 얀은 한숨을 쉬었다.

푸른 여왕님은 뭘 맡고 계시지?”

군권.”

추수제는 누가 주도하지?”

붉은 여왕님?”

끝이 왜 온점(.)이 아니라 물음표인데?

얀은 다시금 한숨을 쉬었다.

행사나 축제는 붉은 여왕님이 주도하시는 일일세, 레이디 세이렌은 지금 최고의 가수이고.”

당연히 붉은 여왕님이 초대하셨겠지.

그런데 지금 푸른 여왕님이 자신의 손님으로 초대해 달라고 하는 것일세.

다니엘 자네는 정치를 몰라도 너무 몰라.”

그 말에 단은 아, 하고 깨달았다.

붉은 여왕님이 하시는 일이면 붉은 여왕님이 하게 하면 되지, 왜 푸른 여왕님이 초대하시는 건가? 푸른 여왕님이 초대한다면 붉은 여왕님의 일을 뺏는 것처럼 보일 텐데.”

한 절반 정도.

자매끼리는 꽤나 다툴 거라 생각하네.”

그 말로 일축한 얀은 그대로 자리에 누워버렸다.

하하, 그래도 여왕님의 명령인데 따라야지.”

헬렌은 소파에 누워서 뒹굴거리는 그들의 관리자 주위를 맴돌았다.

“...정신 사납대도.”

신경쓰지 마.”

헬렌은 폴짝 뛰어 날아서 소파를 넘어가더니 바닥의 쟁반에 놓인 카나페를 가져다 입에 넣었다.

바작바작 톡톡 튀는 식감을 만끽하며 행복한 미소를 짓는데 단이 찡그리는 것이 보인다.

“...있지, ?”

“...”

듀크 단의 표정이 그닥 좋지가 않은데~”

공중에 둥둥 떠서는 귓가에 머리만 내밀어 속닥거리고 있지만 다 들린다.

단은 읽던 책마저 옆에다 내려놓고 얀을 노려보고 있었다.

헬렌, 자네까지 나한테 재촉하는 것인가.”

그렇다고 하지 말라고 할 수는 없잖아~?”

이 사람이나 저 사람이나, 귀찮아서 원.”

방금 그 말은 그래도 헬렌한테 너무한 게 아닌가 하여 단이 한 마디 하려는데, 헬렌은 화내는 대신 방긋 웃었다.

그러나 헬렌은 소파에 늘어진 얀의 양 다리를 잡더니, 그대로 날아서 열린 테라스 밖으로 던져 버렸다!

헬렌!!! 카투스!!!”

난 로즈랑 놀거니까, 썩 가시지!”

단은 화닥닥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겉옷인 망토만 손에 들고 얀을 따라 테라스 밖으로 뛰어내렸다.

, 무사하냐!”

잘 다녀와~”

 

하여간 우리 애들은 너무 난폭해.”

얀은 다행스럽게도 푹신한 잔디 위에 떨어졌는데 그럼에도 아프다며 단이 뛰어내리는 그 때까지도 누워 있었다.

아주 깔끔한 자세로 잔디에 착지한 단은 얀에게 손을 내밀었다.

일어나.”

일으켜 주게.”

잡고 일어나.”

나는 청순가련하고 연약하네.”

헛소리, 라는 단호한 눈빛으로 그를 내려다보았음에도 얀은 그대로였고 단은 결국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손수 등을 받쳐 일으켜 주었다.

고맙네.”

두 번은 없어.”

단은 너무 나한테만 차가워.”

얀은 망토 자락을 들고 눈가를 닦는 시늉을 했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닐 텐데.”

차갑게 말하고 돌아섰지만 얀이 쫓아나가면 단은 마차를 잡고 문을 열어둔 채 기다리고 있다.

얀은 그 마차에 냉큼 올라탔다.

 

골든 공연장까지 부탁하네.”

마차 바퀴가 굴렀다.

문을 닫고, 얀은 쿠션에 몸을 기댔다.

혹시나 해서 덧붙이는 거네만, 레이디 세이렌은 현재 최고의 가수라고 불리며 그녀의 노래를 들은 사람은 천국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고 하지.”

나도 레이디 세이렌이 누구인지는 알아. 몇 년 전에 아버지와 함께 공연을 본 적 있거든. 본 적은 그 때 한 번 뿐이지만 과연 아름답더라.”

얼굴이, 아니면 노래가?”

얀이 짓궂게 물었다.

가수가 여자라는 이유로 목소리 외의 것을 평가할 만큼 속물적이지 않아.”

단은 고개를 저었다.

자네 혹시 세이렌에 대해서는 알고 있나?”

가수?”

아니. 신화 속의 세이렌.”

모르는데.”

얀은 그럴 줄 알았다, 면서 설명했다.

세이렌은 용이 살아있을 때 멸종당한 유일한 마법 생물이네. 여자의 얼굴에 몸은 새고 바다의 돌섬에 사는데 목소리로 뱃사람을 유혹해서 배가 바위에 부딪혀 난파되도록 만들지.”

상체가 여자, 하체가 새라는 하르퓌아랑 비슷하네. 뱃사람들이 죽지 않기 위해 세이렌을 전부 죽여버린 건가?”

내가 직접 본 것은 아니지만, 귀족들이 호사한 취미를 누리기 위해 세이렌을 잡았다고 하더군. 목소리는 노래를 부르게 하고 날개의 깃털은 뽑아다 장식에 쓰고, 특별히 노랫소리가 아름다운 새가 낳은 알은 비싼 값에 매매되기도 했네.”

이게 역사든, 아니면 무슨 생물 수업이든 단에게 특별히 흥미진진한 수업은 아니었다.

사람이 멸종시켰나?”

그렇다고 해야 할까.”

얀은 잠시 말을 멈추어 단의 시선을 끌었다.

기록된 문서에 따르자면 어느 날 세이렌들이 특별한 노래를 불렀다고 하더군. 대개 노래를 부르는 것은 짝짓기를 하고 싶다, 식사를 하고 싶다, 밖으로 나가고 싶다는 등의 막연한 이미지를 담은 것이었는데 이 날은 전부 강렬한 이미지를 가지고 사람에게 다가갔다고 하네.”

어떤 이미지?”

고향에 가고 싶다.”

서서히 단의 눈에 흥미로움이 차는 것이 보였다.

같이 지낸지가 거진 십 년이다.

어떤 말을 어떻게 하면 궁금해 할 지 정도는 손바닥 보듯이 꿰고 있지.

얀은 소리 없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세이렌을 기르는 사람들도, 사람들의 하인들도, 전부 고향으로 가버렸다네. 고향에 닿자마자 왜 여기 있는지 깨닫고 서둘러 세이렌에게 돌아갔지만 그 때는 이미 세이렌들이 굶어죽은 뒤였지. 낭만주의자들은 이 일에 대고 스스로 멸종한 생물이라고 부르고 있다네.”

알이 남아있을 거 아니야?”

당시 사람들은 세이렌에 대해 공부하기도 전에 무작정 잡아들였네. 알은 모종의 이유로 깨어나지 않았고 결국 남은 것은 알 껍데기 뿐이었지.”

재미있네...”

마차가 멈추어 서고 마부가 창문을 가볍게 두드렸다.

도착했습니다!”

얀은 마차 문을 열고 훌쩍 뛰어내렸다.

폼만은 좋았으나 착지에서 비틀거린 그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마차 문을 열어 주었다.

내가 왜 오면서 세이렌 이야기를 했는지 알겠나?”

가수 세이렌을 만나러 가니까.”

자네가 세이렌에게 관심을 좀 더 가졌으면 해서네.”

얀은 옷매무새를 고치고 극장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 아가씨 역시 우리 중 하나거든.”

세이렌이 얀의... 뭐라고 할까, 얀의 관리인? 관리 받는? 관리당하는? 일컬어 푸른 아이들 중의 하나라는 이야기에 단은 로즈와 헬렌을 떠올렸다.

역시 그 실험인가 뭔가를 견뎌내고 계획적으로 길러진 아이들이라 그런지 어리건 여리건 당차고 강하고 그렇다.

그러면 세이렌도 그렇겠지?

세이렌은 멀리서 한 번 본 것이 전부였지만 몸에 주렁주렁 단 화려한 장신구며 그렇게 특색있는 오만한 목소리 하며.

개인적으로 만난 세이렌도 ‘~했냐?’같은 말투일지도 모른다.

바지를 입거나 푹신하다면 소파에라도 드러눕는 사람일지도 모르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단은 뭔가 빠뜨린 것 같다는 생각에 발을 멈추었다.

왜 그러나?”

뭔가 빠뜨린 것 같은... 느낌이... !”

단은 입구 쪽으로 서둘러 걸어가서는 바로 옆의 꽃집에서 커다란 꽃다발을 살폈다.

... 걸음이 빠른, 하아.. 빠르네, !”

헨리, 종종 하는 말이지만 너도 역시 운동을 좀 해야 해.”

칼 들고 뜀박질하고 그런 건 내 적성과 안 맞아. 후우... 그리고, 얀이라니까...”

얼마 안 되는 짧은 거리였음에도 얀은 헉헉거리며 숨을 골랐다.

뭘 사가나? 웬 꽃? 설마 세이렌에게 주려고?”

그래야지.”

? 세이렌은 그냥 가수일 뿐인데. 자네한테는 평민이기도 하고.”

네가 더 이해가 안 가는데. 레이디를 만나러 가는데 선물 없이 어떻게 만나?”

얀은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단을 쳐다보았다.

단은 튤립과 장미가 섞인 꽃다발을 집어서 주인에게 값을 치렀다.

지위가 남작이라 하더라도 교육을 받은 것도 아니고 푸른 여왕이 직속으로 그를 부리기 위해 명목상 부여한 것에 불과하니 예의가 어떻고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하는 것은 책을 통해 배운다고 그랬던가.

넌 세이렌이나 악마나 좀브 같은 건 잘 알면서 이런 걸 잘 모르더라.”

왜 모르는지 이젠 알지 않나. 그리고 그거 좀비네.”

얀은 단이 든 꽃다발을 빤히 쳐다보았다.

이제 여자를 만나러 갈 때는 꽃을 사서 들고 가는 것이라고 머릿속에 입력하는 중일 것이다.

극장 안, 붉은 벽지에 호화로운 그림이나 조각을 군데군데 두어 꾸민 복도를 따라 걸으니 이 앞이 대기실이라며 지키고 선 사람이 보였다.

얀이 손을 까딱하자 그 사람은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보냈고 단도 가볍게 인사를 보내고 서둘러 얀을 따라 걸었다.

복도를 따라 걷자 안에서부터 은은하게 노랫소리가 들렸다.

노래 좋다.”

몇 걸음 더 걷자 노랫소리가 더 커졌다.

어린 공주의 책임과 소녀로서의 마음을 노래한 것이 어딘가 찡하게 했다.

코 끝이 매워 오는 것을 손가락으로 문지르는데 얀이 눈물을 주르륵 흘리며 말했다.

가시밭길의 소녀로군.”

어찌나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와 표정이었는지, 눈물이 주륵 흘러내리는 것을 보면서도 믿지 못할 뻔 했다.

고전소설 어느 왕자에 대하여를 각색한 여왕의 길이라는 극의 아리아지.”

멋진 노래야... 조금 들었을 뿐인데도 울 것 같네.”

멋진 노래지. 부른 사람은 더 멋지고 말이네.”

노랫소리는 가장 안쪽 방에서 울리고 있었다.

얀과 단이 다가갈수록 노래는 조금씩 바뀌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아예 다른 곡을 불렀다.

밝고... 신나는 노래군. 뛰고 싶어지는데?”

이번에는 뱃사람들 노래군. 세이렌이 가장 즐겨 부르는 것일세.”

세이렌이 뱃노래를 안다고?”

아리아만 부를 것 같은 가수가 남자들이나 부르는 뱃노래를 부른다니, 하지만 마물 세이렌을 생각하면 알아도 이상하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기묘한 느낌에 고개를 갸웃하며 단은 앞장서 노크를 두어 번 했다.

세이렌 양, 계십니까?”

어머?”

나온 사람은 그야말로 놀라웠다.

길게 길러 진주장식 끈으로 정리한 하얀 머리카락은 끝으로 갈수록 점점 붉어져 머리카락에 색을 입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 그러면 대개 머릿결이 상함에도 어지간히 공을 들였는지 윤기나게 찰랑거렸다. 키는 가장 보기 좋다는 키에 몸은 늘씬하고 가벼운 레이스가 달린 실내복 한 장으로 감쌌을 뿐인데도 사랑스럽게 어여뻤다. 그리고 온순하게 아래로 끝이 내려간 눈은 속눈썹이 풍성하고...

이런 묘사를 구구절절 왜 하고 있느냐면.

세이렌의 목소리가 달콤했기 때문이다.

남녀상열지사를 다룬 책을 읽으며 모든 남자들이 상상했을 맑고 부드러운, 마치 꽃잎이 다가와 사뿐히 피부에 닿는 듯 가녀린 목소리가 목소리와 어울리는 그 입에서 흘러나왔다.

저는 헨리가 온 줄... 헨리! 어서와요! 아아, 날 만나러 올 줄 알았어!”

세이렌임이 분명한 그 아가씨는 단을 쳐다보았다가 얀으로 시선이 가 멎자 활짝 웃으며 얀의 품에 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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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아이들 #5

2018. 3. 26. 15:49 | Posted by 호랑이!!!

밤을 샌 탓인지 다니엘은 여느 때보다 일찍 잠이 들었다.

로즈는 자신의 방에서 자수를 놓거나 그림을 그리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서재에서 헨리는 아직도 가득하게 쌓인 편지를 읽고, 태우고, 버렸다.

어제 잠을 자지 못 했으니 평소보다 일찍 자도 괜찮겠지만 할 일이 아직 한참이나 남아 있어서.

이 지방 아이들은 공통적으로 요정 이야기를 많이 해. 단순히 요정 이야기가 유행하는 걸까? 요정이 깨어났다면... 요정은 종에 따라서는 거의 해를 끼치지 않는 생물이니까 나와도 괜찮겠지만. 만약 요정이 아니라 우리 중 하나가 만들어낸 것이라면?’

만들어내는 능력은 로즈 계통이지.

로즈를 필두로 한 서너명 더 있었던 것 같은데, 그 중에서 둘은 죽었고...

요정은 약한 생물이니 아직 용이 깨어나기까지는 여유가 있나.

그런 생각을 하는데 테라스로 통하는 문이 활짝 열렸다.

안녕, .”

얀과 비슷한 나잇대의 사람이 서 있었다.

오랜만이지?”

얀은 그를 보자마자 읽던 편지를 불 속에 던져넣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오랜만에 보는군.”

멋진 집이네. 우리가 살던 곳이랑은 완전히 다른 분위기야.”

그 사람은 안으로 훌쩍 뛰어들어와서는 우아하게 양각된 벽을 쓰다듬었다.

따뜻한 난롯불이 있고, 누구나 좋아할 디저트도 있고, 차도 있고, 책도 가득하군.”

그는 벽을 메운 책꽂이에서 하드커버 책 한 권을 뽑아들었다.

덕분에 아주 푹 잤어. 지겨울 정도로.”

페이지를 팔랑팔랑 넘기다가 탁, 덮으니 책은 검게 물들어갔다.

얀은 책을 잡은 그 손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벌써 일어나서, 뭘 하려고?”

검게 물든 책이 손 안에서 흐늘거렸다.

내가 할 일이 있을 거 아냐. 전쟁... 파괴... 누군가를 없애는 일이라던가.”

그 사람의 시선이 얀에서 책상에 가득하게 쌓인 천과 종이조각으로 가 멎었다.

저건가.”

아니네.”

그 사람은 천천히 걸어 얀의 앞에 와 섰다.

얀은 평소와는 달리 딱딱하게 굳어서, 느긋해 보이는 그와는 대조적이었다.

정말 아니라면, 그렇게 긴장하면 안 되지.”

그 사람이 잽싸게 손을 뻗어 편지를 잡아챈 동시에 얀은 그 사람의 어깨를 잡았다.

!”

얀은 아예 그를 꽉 끌어안았다.

끌어안긴 쪽은 얀을 밀어내려는 듯 버둥거렸으나 서서히 움직임에서 힘이 빠졌고, 결국에는 얀에게 기대 정신을 잃었다.

철퍽 소리를 내며 검게 물든 책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제서야 얀은 그를 안은 팔에서 힘을 빼었다.

조금만 더 자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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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싸웠던 어느 날

2018. 3. 22. 03:47 | Posted by 호랑이!!!

 

“....”

 

“....”

 

“...”

 

“......”

 

집사 바리톤은 주인인 페드에 대해 불만이 없었다. 여기저기에서 놀다가 아무거나 주워가더라도 화를 내지 않았고 무리하게 일을 맡기거나 장비도 그럭저럭 괜찮고 보기에도 좋은 것으로 맞춰주었으니까. 게다가 자신은 잘 모르지만 흑와단의 나름 높으신 분이라고 하는데다 비술서만 들면 어디 가서 죽어 오지도 않았고 과묵하니 보기 멋있는 사람이었다.

 

었다라고 말하느냐면, 커르다스산 게 두 마리가 든 양동이를 들고 하늘잔마루의 아파트 문을 여는 순간 페드가 보였기 때문이다.

 

커다란 이불 뭉치에 말을 거는 페드가.

 

“...주인님?”

 

그러나 페드는 자신의 말이 들리지도 않는다는 듯 대답은커녕 시선도 주지 않는다.

 

“..., 왜 화가 났습니까?”

 

너는 왜 이불에 말을 거는 건데?

 

사랑하면 눈에 콩깍지가 낀다지만 이불까지 언약자분으로 보이는 정도의 콩깍지는 어디서 끼어 오는 걸까.

 

왜 이러는 걸까.

 

주인님.”

 

무례하지만 어깨를 잡았는데 페드는 그제야 저를 한 번 보더니 저리 가라는 듯 손을 젓는다.

 

아니, !?

 

바리톤은 이불에 대고 말을 거는 주인을 쳐다보다 양동이를 방 한구석에 내려놓았다.

 

아무래도 오늘이 내가 은퇴하는 날인가보다.

 

바리톤은 두 사람 분 식사라고 하기에는 과하게 차려진 식탁 위의 음식을 보았다.

 

전채로는 완두콩 수프에 파리풀 샐러드, 에메랄드 수프가 있고 메인으로는 피피라 피라 찜, 코카트리스 미트볼, 미코테식 꼬지도 몇 개나 있는데다 디저트로는 마도사 모양 쿠키, 초콜릿, 바바루아, 마롱글라세, 사과가 들어간 플로냐르드에 마실 것으로는 차가운 과실주와 얼린 칵테일에 요리사가 본직이라는 주인님이 만들기 귀찮다고 딱 한 번 만들어보았다는 코코아까지 있다.

 

차갑게 식은 것을 보아하니 만들어진지 몇 시간은 된 것 같은데 손을 댄 흔적조차 없잖아? ?

 

방 안을 둘러다보던 바리톤은 더 심상찮은 것을 보았다.

 

먼지 앉는다고 뚜껑도 못 열게 하던 피아노는 뚜껑이 열려 있고 악보도 펼쳐져 있다!

 

잘 보니까 라님이 좋아하던 물건이랑 음식이 온 방안에 있잖아!? 게다가 꽃병의 꽃들도 신선하고 갓 채집한 것들로 새로 싹 바뀌어있고!?

 

“..., 뭐라고 말 좀 해 보십시오, ?”

 

바리톤은 대답 없는 이불뭉치에 대고 말을 거는 주인을 보다가 뼛속까지 서늘해지는 충격을 받았다.

 

틀림없다.

 

저 몹쓸 주인이 즐거운 던전이니 뭐니 하면서 꾀어내어서 최소 네 명이서 가야 하는 곳에 또 두 명이서 갔거나 둘이서 공격적인 마물을 잡았을 거다.

 

비술서만 들면 무적이라는 저 주인이야 아무 문제 없었겠지.

 

하지만 이제 겨우 갈론드제 옷을 모으기 시작하는 라님은... 라님은 아마.....

 

키 크고 험상궂게 생겼지만 마음만은 따뜻한 아우라, 바리톤은 왈칵 치밀어오르는 눈가를 닦을 생각도 않고 주저앉아 바닥을 내리쳤다.

 

라님!!!!”

 

깜짝이야! 뭔데요?”

 

라님!?”

 

치지 마십시오, 아랫집에서 올라옵니다.”

 

아니, 라님이 어째서 여기에?”

 

왜긴요, 난 원래 여기 있었는걸?”

 

라님이 어째서 여기에!?”

 

소리 지르면 옆집에서 항의가....”

 

난 계속 여기에...”

 

바리톤은 진정하려는 듯 숨을 크게 들이쉬고는.

 

함성을 내질렀다.

 

라님이 어째서 여기에!!!!!!!!”

 

 

 

 

 

 

페드는 옆집과 아랫집, 윗집 사람들이 몰려온 것 때문에 바깥으로 나가야 했다.

 

죄송합니다, 집사 소리였습니다, 집사가 전사냐고요? 아니오, 어부입니다, 그래요 놀랍지요, 타이탄 심핵을 뽑아올 때 알아봤어야 했는데 아마 그 쪽으로 재능이 있는가봅니다 등의 소리가 들리고 바리톤은 라가 건네는 차가운 과실주를 단숨에 들이켰다.

 

두 분 뭘 하고 계셨던 겁니까?”

 

퀴니가, 내가 싫대.”

 

그리고 페드는 다시 방 안에서 들려오는 함성에 대해 사람들에게 사과해야 했다.

 

다시 말씀해주십시오.”

 

내가 싫대.”

 

누가요?”

 

퀴니가.”

 

누구를?”

 

나를.”

 

바리톤은 일단 진정을 위해 접시를 찾아 식탁 위에 가득한 코카트리스 미트볼을 덜었다.

 

질긴 고기를 먹기 쉽도록 으깨서 한 입 크기로 동그랗고 솜씨 좋게 빚은 미트볼은 토마토소스와 놀랍도록 잘 어울렸고 맛도 좋다.

 

차가운 과실주나 이제는 녹은 칵테일을 번갈아 마시며 배를 채운 바리톤은 벽에 머리를 기댔다.

 

그리고 시무룩해 보이기도 하고 화가 나 보이기도 하는 주인의 언약자를 바라보았다.

 

모험하러 나왔지만 위험도 고난도 싫어하는 미코테를 위해 방 안에 양 깔개와 털실바구니를 놔주고 벽난로를 설치해주었는데? 음악이나 연주라면 쥐뿔만큼도 몰라서 다른 거 다 하는 동안 음유시인에는 손도 안 댄 아우라가 방 안에 하프시코드와 악보대를 놨는데? 마물 잡으러 가자는 말도 던전에 가자는 말도 다 무시하고 미코테 옆에 붙어있기도 하고? 둘이 만난 초까지만 해도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것은 시간 낭비라고 생각해서 풀을 캐거나 캔 풀로 천을 대량생산하던 아우라가 어느 순간부터 아무것도 안 하고 있어도 좋아라 하는데? 불면 날아갈까 쥐면 꺼질까 새벽에서 보내는 연락도 전부 차단해버리고 어디 간다 싶으면 쪼르르 따라가는 저 아우라가?

 

그게 싫어하는 거면 이 세상에 사랑은 없고 이 에오르제아의 발렌티온 이벤트도 분홍색 염료를 팔기 위한 상술이다.

 

그렇지만 어쨌든 나는 당사자가 아니지.

 

바리톤은 무슨 일이냐고 다시 라에게 물어보았다.

 

퀴니가.”

 

주인님이.

 

내가.”

 

라님이.

 

안 예쁘대.”

 

?”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장터게시판 앞에서 어느 옷을 입혀줄까 어느 염료가 예쁠까 하던 저 인간이?

 

설마 커플끼리 장난으로 못나니~하는 그걸 오해한 건 아니겠지.

 

페드가 들었다면 나는 장난으로도 그런 소리를 하지 않는다라고 했겠지만 아쉽게도 페드는 아직 사람들을 돌려보내는 중이었다.

 

어젯밤에 뭐 했는지 이야기하고 있는데 말이야-”

 

어젯밤이라면 어부 집사인 자신과 소환사 집사인 테너가 각기 먼 곳으로 집사수행을 떠났던 때다.

 

“....해서 퀴니가 라는 섹시하다기보단 귀엽죠라고 했어요!”

 

그게 왜...?”

 

내가 안 섹시하대! 안 예쁘대!”

 

아니 그게 그 얘기가 아닌데.

 

장난으로 커플끼리 아기멧돼지니 하는 별명을 붙이는 수준까지도 못 간다.

 

왠지 눈앞이 흐릿하다.

 

바리톤.”

 

, 주인님.”

 

이거 갖고 어디 수행이라도 다녀오십시오.”

 

페드는 집사 급료 두 닢을 내밀었고 바리톤은 마롱글라세 몇 개를 들고 후다닥 방에서 나갔다.

 

.”

 

“...”

 

라는 팩 다른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땅에 떨어졌던 이불도 얼굴까지 돌돌 감아서 보이는 것이라고는 이 쪽으로 쫑긋 세운 귀랑 살랑살랑 흔들리는 꼬리 정도.

 

저 보지 않을 겁니까?”

 

“...”

 

페드는 짧게 한숨을 쉬었다.

 

아 정말 이것까지는 되도록 안 꺼내려고 했는데.

 

“....”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귀는 더 쫑긋하게 서고 이불이 단박에 내려가서 반짝거리는 눈이 나타났다가 자신과 마주치고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가려고 한다.

 

안 돼, 안 돼, 못 올려요. 안 돼.”

 

싫어, 올릴래!”

 

안 돼와 돼만 반복되는 한차례의 다툼이 끝나고 라는 귀 끝까지 이불을 올려 덮었다.

 

페드는 의자를 끌어당기고, 손톱과 비늘에 마구 긁혀 아까보다 후줄근해진 이불에 대고 말을 했다.

 

아까 집사랑 이야기하는 거 다 들었습니다.

 

라가 세상에서 제일 예뻐요.”

 

이불이 조금 내려갔다.

 

제일 섹시하고.”

 

이불이 조금 더 내려갔다.

 

제일 실력 좋은 모험가! 제일가는 음유시인! 희망의 빛! 최고의 미코테!

 

한 마디씩 할 때마다 라를 휘감은 이불이 조금씩 내려갔다.

 

조금씩 내려가던 이불이 마침내 바닥에 떨어졌을 때 페드는 팔을 활짝 벌렸다.

 

이제는 저를 봐 줄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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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rn to B] 아란체 주변인물

2018. 3. 18. 05:21 | Posted by 호랑이!!!

산 중턱에 작은 절이 있었다.

 

겨울이면 산과 바위가 찬바람을 막아주고 여름이면 대숲이 바람을 식혀주는 절.

 

문간의 붉은 칠은 바람과 흙에 벗겨지고 나무로 만든 마루는 많았던 방문객이 밟아 반들반들해진 곳.

 

안개가 자욱해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던 어느 날의 아침에 그 고요함을 깨뜨린 것은 아이 울음소리였다.

 

처음에는 마당 쓸던 어린 스님 하나가, 그 다음에는 부엌에서 일하던 스님 하나가, 그 다음, 그 다음에는 다른 스님까지 우르르 문간으로 왔다.

 

마당에 있는 것은 예닐곱살 된 것 같은 어린아이 하나.

 

손에 든 것은 편지 한 통과 나무를 깎아 만든 팔찌 하나다.

 

무엇을 묻더라도 아이는 울기만 할 뿐 아무런 말도 못 하고 사람들은 아이 손에 들린 서신을 펼쳤다.

 

흥분한 듯 괴로운 듯 써갈긴 그 글씨는 읽기 힘들었지만 사람들은 머리를 맞대고 읽고 짜맞추어 내용을 알아냈다.

 

그 안에는 많은 이야기가 있었지만 요약하자면 이랬다.

 

이 아이는 마물의 아이로 태어난 지 고작 몇 달 만에 이만큼이나 자랐습니다.

 

서류상으로는 없는 아이이니 부디 마음대로 처분해 주십시오.

 

 

 

 

 

 

 

 

 

먼 이국, 밀라비는 누이에게서 받은 편지를 읽고 있었다.

 

「…부탁이야 밀라, 그 사람에게는 아무런 설명을 못 했어. 그 아이를 찾아서 자립할 때까지 보호해줘. 오십년만이라도 좋아, 아니면 삼십년. 십년이라도 좋으니 제발

-사랑하는 누나가

 

편지는 급하게 쓴 것인지 마구 휘갈겨져 있었고 주소도 간신히 알아볼 정도였다.

 

상대가 인간인 것은 둘째 치고 외국인과 결혼까지 하겠다고 그 난리를 치더니 자신이 누구인지 밝히지도 못하고 어린 핏덩이를 남겨둬? 그걸 또 저한테 맡아달라고?

 

하여간 이 누나는 예전하고 달라진 게 없다.

 

경계심이 없어 아무한테나 가는 것도 그렇고, 대책 없이 인간하고 사랑에 빠졌나 싶더니, 겁조차 많아서 정체도 밝히지 못하고, 꼼꼼하지도 못해서 아무데나 흔적을 남겨버리고, 그렇게 헌터한테 잡히고, 결혼한 그 인간놈을 물어 변환시키던가, 도망을 했어야지. 그리고 무엇보다!

 

“...거진 삼십년만에 한 편지가 겨우 이거야?”

 

헌터가 있다는 걸 알았을 때 자신에게 도움을 청했더라면.

 

일이 너무 늦기 전에 자신에게 도와달라고 딱 한 줄만 전했어도.

 

한 마디만 전보로 보냈어도.

 

그러기만 했다면.

 

밀라비는 커다란 가방을 꺼냈다.

 

누나가 전해준 주소는 비행기를 타고도 또 버스를 타고 차를 타고 걸어서 한참이나 걸리는 곳이었다.

 

그리고 밀라비가 아이를 찾아냈을 때, 아이는 이미 성인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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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들 2

2018. 3. 17. 14:51 | Posted by 호랑이!!!

"...그래서, 이 일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어? 안 놀라?"

 

"... 나 마법사 나오는 이야기 좋아하고. X 포터 같은 거 좋아했고..."

 

"좋아하는거랑은 다르지!"

 

예란이가 책상을 탕 쳤다.

 

만두는 깜짝 놀라 꼬리를 펑 부풀렸다.

 

"나도 안데르센 좋아하지만 그 사람이 내 앞에 나오면 놀랄 거라고!"

 

"나도! 난 세종대왕!"

 

"그 양반들은 옛날 사람이잖아... 만난다면 좀비겠지."

 

그런 소리를 듣다가 만두는 테이블 위에 두 발로 서서는 인간처럼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놀라게 해드려 죄송하옹, 초록씨. 이 소묘의 성은 만, 이름은 두울이라 하옹. 겉으로는 예란 아가씨의 애완 고양이이나 실상은 대대로 아가씨 가문을 모셔온 가문의 36대손이옹.”

 

...”

 

초록이는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편의점에서 가져온 고양이용 간식을 내밀었다.

 

만두는 철퍼덕 앉아서 양 앞발로 야무지게 간식을 잡아 뜯었다.

 

홍 줄리.”

 

인간이 뜯어주지 않아도 된다니 어쩜 똑똑한 고양이로다.

 

으응.”

 

줄리도 예란이처럼 동물 있어?”

 

아니이, 나는 테이머 쪽이랑은 인연이 없어서.”

 

줄리아나는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었다.

 

초록이는 둘을 보다 질문을 던졌다.

 

마녀야?”

 

요즘에는 그냥 다 마법사라고 불러.”

 

아니이, 마녀는 이제 안 쓰는 말이야.”

 

그렇구나. 마법사구나.

 

초록이는 이제 시선을 다시 만두에게 옮겼다.

 

그런데 만두는 왜 도망친거야?”

 

그것은 예란 아씨 때문이옹!”

 

뭐가 예란이 때문인데?라고 물어보려다 초록이는 보아 버렸다.

 

만두를 죽어라고 노려보는 예란이를.

 

하지만 아가씨, 이제는 숨기기엔 너무 늦어버렸다옹.”

 

그렇다고 구구절절 다 말해주자고? 안돼!”

 

초록씨는 아가씨의 동무 아니옹? 이제는 포기하고 말할 때라옹!”

 

그 꼴을 보던 초록이는 줄리 쪽을 보았고, 줄리아나는 손가락을 들어올렸다.

 

예란이 쪽으로.

 

쟤가 너 기억을 지웠어.”

 

!”

 

그런데 실수도 했어.”

 

뭐어!”

 

그래서 밖에 사람들이 없어졌어.”

 

뭐어어!”

 

창을 힘차게 열어 제낀 초록이도 예란이 쪽으로 손가락을 들었다.

 

네 짓이라고!”

 

만두는 흉흉한 초록이와 줄리아나를 번갈아보다가 앞발을 들었다.

 

예란이 쪽으로.

 

그렇다옹. 예란 아가씨가 초록씨 앞에서 마법을 써버렸고, 그래서 기억을 지우게 되었는데 실수로 이렇게 되었다옹! 그래서 이 만 두울은 맡은 바 소임을 다하고저 주인마님께 알려야 했는데 예란 아씨가 막으려고 했고, 그러다 바깥으로 내던져진 것이었옹!”

 

초록이는 예란이를 확 돌아보았다.

 

아니, 그게. 기억을, 지워야만, 했거든. 진짜로, 우리 쪽 법이 그렇거든.”

 

하지만 아가씨는 기억삭제 자격증 시험에 떨어졌잖옹.”

 

그래도 공부는 했으니까 어떻게 하는지는 알잖아!”

 

만두는 사람은커녕 쥐 한마리도 없는 바깥을 가리켰다.

 

초록이는 미간을 콱 찌푸렸다.

 

만두를 바깥에 던지면 안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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찻잔 속의 인어

2018. 3. 1. 01:12 | Posted by 호랑이!!!

이 곳에서는 언제나 따뜻한 나무의 향이 풍겼다.

 

A는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타오르는 벽난로 앞 안락의자에 몸을 파묻었다.

 

바랜 녹색으로 뒤덮인 이 의자에는 두툼하고 넓은 팔걸이가 둘 있었는데, 한 쪽에는 과일이 얹힌 크림 케이크 조각이, 한 쪽에는 진한 색 차가 가득한 찻잔이 올라가 있다.

 

일렁이는 촛불은 책의 페이지를 부드러운 색으로 물들였고 특별히 불그스름한 색이 페이지에 덧씌워질 때마다 책 속의 세계는 한 겹 더 감성적이고 온화하게 변했다.

 

한참이나 책에 빠져 있는데 벽난로에서 딱딱거리는 소리가 났다.

 

불이 꺼져가고 있었다.

 

A는 읽던 책을 덮고 커다란 장작을 꺼져가는 불 위에 얹었다.

 

그러면 얼마 안 가 다시 불은 환해졌고 배부른 불도마뱀은 비늘을 번들거리며 수북해진 재 속에 앞발을 담근다.

 

다시 책을 읽기 시작한 A는 화목한 가족이 커다란 푸딩을 먹는 대목에서 자기도 모르게 포크를 들었다가, 케이크 위를 장식한 체리를 호시탐탐 노리던 요정과 눈이 마주쳤다.

 

절인 체리를 받아든 요정은 신이 나서 화분 쪽으로 달려갔고 마침내 A의 독서가 끝났다.

 

따뜻하고 포근한 여운에 허우적거리다가 이제는 다 식었을 찻잔을 집자 말소리가 들려왔다.

 

, 마실 거니?”

 

밤바다와 같은 빛 비늘이 있는 인어가 찻물에 몸을 담그고 있었다.

 

너는 언제 여기 들어왔어?”

 

바다로 가는 길이었는데 여기서 잠깐 쉬고 있어. 이 차가 마음에 드니까 마시지 않으면 좋겠어.”

 

A는 찻잔을 책상 한구석에 두고 커다란 컵에 물을 부었다.

 

마시지 않을게. 난 물을 마시면 되니까.”

 

물을 마시고, A는 바깥으로 통하는 문을 열었다.

 

문 앞에는 언제나 소란스러운 길이 있다.

 

차가운 바람이 불고 차들은 스치기만 해도 다치게 할 것처럼 지나쳐가고, 사람들은 웃음은커녕 말마디 하나도 건네지 않고 종종걸음으로 지나쳐간다.

 

A는 그 안으로 발을 들였다.

 

붉은 색, 하얀 색 줄무늬 보도블럭이 지느러미처럼 나 있었고 걸음을 뗄 때마다 붉은 벽돌에서는 붉은 물고기가 튀어나와 하얀 모래 같은 보도블럭 위에서 퍼덕이다 다시 붉은 벽돌 속으로 되돌아갔다.

 

파닥, 파닥.

 

펄떡이는 소리.

 

그러다 붉은 빛에 고개를 들면 무채색으로 자란 고층 건물을 물들이며 해가 지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와아- 해가 진다.”

 

여기랑 저기랑 하늘 색이 달라.”

 

재잘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A는 뒤를 돌아보았다.

 

거기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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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나트는 새하얀 카운터 앞에 섰다.
 
"자 그럼 오늘의 요리를 시작해 볼까!"
 
"..."
 
블랑쉐는 연갈색 튼튼한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는데 앞치마가 어색한지 연신 끈을 잡아 당기고 아랫자락을 매만졌다.
 
"누드 에이프런이 좋았어?"
 
"부정하지는 않겠습니다."
 
귀엽긴.
 
크나트는 손을 펴서 블랑쉐의 엉덩이를 팡 치고는 커다란 식칼을 들었다.
 
"칼 들고 있다고 해서 제가 복수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은-"
 
"안 해. 안 해."
 
크나트는 허허 웃으면서 블랑쉐의 쪽으로 채소를 밀어주었다. 
 
"그것 좀 깍둑썰기 해줘."
 
"그게 뭔데요?"
 
깍둑썰기 몰라? 이렇게, 이렇게. 
 
...라면서 당근 하나를 깍둑깍둑 썰어버린 크나트를 보다 블랑쉐는 다시 크나트에게 감자를 내밀었다. 
 
"제 것도 부탁합니다."
 
"아니지, 아니야."
 
뭘 기대하는 겁니까? 라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어쩐지 표정에서부터 알 것 같다. 
 
"...그럼 계속해볼까? 나는 야채를 썰 테니까 블랑 달링은 계란을 깨서 그릇에다 풀어줄래?"
 
"몇 개나요?"
 
"세 개. 아니, 네 개."
 
뒤에서 들리는 달그락 소리를 들으며 크나트는 마저 야채를 썰었다. 
 
예쁘고 고르게 썰린 것들을 한쪽에다 밀어놓고 돌아보자 블랑쉐는 잠깐만 기다리십시오!를 외친다. 
 
잠깐이고 뭐고 무슨 일이냐고 봤더니 그 앞에 놓인 그릇이 네 개. 
 
그리고 각기 들어있는 삶은 달걀들. 
 
"그걸 깼어?"
 
"달걀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건 내 간식인데. 
 
크나트는 여기저기가 움푹 패이거나 손톱자국이 남았거나 계란 껍데기가 아직 묻어있는 계란을 보다가 냉장고에서 다른 계란을 꺼내왔다.
 
"날계란을 까줘."
 
삶은 달걀이라니 예상 외다. 
 
심지어 뭐가 잘못되었는지도 모르는 눈치야. 
 
블랑쉐가 깐 달걀을 물에 씻어서 한입에 넣고 블랑쉐의 입에도 하나 물려주자 계속 물고 있었는지 몇 초 안 있어서 툭 하고 뭔가가 떨어지는 소리와 더불어.
 
와장창
 
쨍그랑
 
철벅
 
뒤를 돌아보니 예상대로의 광경이 펼쳐져 있다. 
 
"뭘 봅니까."
 
"...내가 치울게. 가만 둬."
 
"청소기랑 걸레 어딨습니까."
 
"아니 저기."
 
"손으로 치워야 하나..."
 
"내가 치울게. 치운다니까? 치우게 해주십시오."
 
결국 블랑쉐는 식탁을 닦고 숟가락과 포크를 놓는 일을 했다.
 
그동안 크나트는 커다란 접시에 야채와 쌀을 볶아 동그랗게 얹고 계란을 부쳐 얹었다. 
 
마지막으로 작은 냄비에서 부글부글 끓은 소스를 식혔다가 짤주머니에 부어 내밀자 블랑쉐는 흘리지 않게 조심조심 들어올렸다.
 
"초콜릿 정도는 만들어 봤지? 여기 끝을 잘라서 이렇게- 글을 쓰는 거야."
 
해 본 적은 없지만 그림그리기 정도는 할 수 있지. 
 
블랑쉐는 하트 모양을 몇 개나 그린 크나트의 접시를 보다가 짤주머니의 끝을 덜걱 잘라서 슥슥 그림을 그렸다.
 
멋지게 하트 모양과 이름을 쓴 블랑쉐는 뿌듯하게 짤주머니를 내려놓았고 크나트는 박수를 치고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잘 했으니 상을 줘야지요."
 
"방금 머리 쓰다듬어 줬잖아?"
 
"어린애도 아니고, 그런 걸 상이라고 하는 겁니까."
 
크나트는 한 번 웃고는 한쪽 눈을 찡긋했다. 
 
"가슴 만질래?"
 
"누드 에이프런 차림으로요."
 
 

 

마법사들

2018. 2. 12. 06:43 | Posted by 호랑이!!!

만약에 당신이 사는 곳에 좀비가 나타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에 대한 이야기라면 자주 해 보았다.

 

우선은 마트에 가서 생수와 통조림을 잔뜩 가져온다, 과자를 가져온다 등등.

 

촛불과 성냥을 준비한다, 뭘 가져온다, 밧줄로 간이 발판을 만들어서 밖에 매달 수 있겠다.

 

그런 생각이 무색하도록, 이 도시에 생긴 이변은 Tv 등에서 흔히 보았던 것과는 달랐다.

 

- 춥다...”

 

이 도시에 사람이 없어진 지 오늘로 한 달째.

 

집으로 돌아오자 룸메이트인 예란이가 공책을 덮으며 맞아 주었다.

 

오늘은 어때?”

 

역시 없어.”

 

버스 정류장에 하루 종일 기다려 보았지만 오가는 버스는 한 대도 없다.

 

사람은커녕 동물이라면 길고양이 그림자도 보지 못 했고.

 

핸드폰이며 인터넷은 여전히 먹통이다.

 

영화 보고 싶어-”

 

컴퓨터에 있잖아.”

 

그런 거 말고! 새로 나온 거! ‘의사 뉘시게라던가 ‘LA의 악마라던가 초자연같은... 그리고 그리고.... SNS도 하고 인터넷으로 게임도 하고 전화도 하면서 나태한 하루를 보내고 싶어...”

 

초록이는 겉옷을 벗어던지고는 바닥에 깔아둔 이부자리에 파고들었다.

 

흐어으어 뜨십다...”

 

초록이 왔어?”

 

이어 현관문이 열리고 한 손에는 장미꽃을 든 홍 줄리아나가 들어왔다.

 

장미는 또 어디서 났어?”

 

꽃집에서 가져왔어.”

 

꽃집?”

 

그 왜, 학교 안에 있는 작은 거.”

 

꽃집!”

 

마악 이불에 머리끝까지 파고들었던 초록이는 고개를 홱 들었다.

 

그러고 보니 꽃집이 있었지, ? 용케도 안 시들었네.”

 

부엌과 방을 나눠둔 문을 닫으며 줄리아나가 들어왔다.

 

줄리아나의 손에는 작은 봉지가 들려 있었는데 나갈 때는 고양이 사료가 있던 봉지가 텅 비어 있었다.

 

밥 먹었어?!”

 

, 그릇 안에 있던 거 없어졌어.”

 

그제야 초록이는 아차하더니 일어나 앉아서는 예란이가 앉은 의자의 팔걸이 부분을 조심스럽게 두드렸다.

 

괜찮아, 만두 금방 찾을 수 있을 거야.”

 

그래, 그릇이 비었잖아. 근처에 있는 거야.”

 

바깥에서 바람이 세차게 부는 소리가 났다.

 

안 그래도 위태하게 보였던 나뭇가지에서 우둑우둑 소리가 나더니 이파리 없이 앙상한 나뭇가지가 바닥으로 떨어져 나뒹굴었다.

 

초록이는 베란다로 달려가 창문을 열고 바깥을 내다보았다.

 

으아, 바깥에 엄청 바람이 부나보다. 일찍 들어오길 잘 했어.”

 

만두, 바깥에서 많이 춥겠지... 진짜, 누나 속이나 썩이고!”

 

걔는 똑똑하니까 어디 잘 있을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

 

줄리아나가 예란이의 어깨에 가만히 손을 얹는데 초록이가 패딩을 들고 바깥으로 뛰어나갔다.

 

, 어디 가?”

 

나뭇가지 주우러!”

 

초록이가 홱 뛰어나가자 예란과 줄리아나는 서로를 마주보았다가 문 쪽을 쳐다보았다.

 

방금까지 춥다더니.”

 

나뭇가지 같은 건 왜 주우러 간 거지.”

 

이제 슬슬 해가 지고 있고, 배가 고팠지만 예란이와 줄리아나는 초록의 뒤를 따라갔다.

 

초록이는 나뭇가지와 상자를 줍고 있었다.

 

뭐 해?”

 

만두 잡게!”

 

밥그릇 근처에 상자를 세우고 이것저것을 세우더니 초록이는 예란이에게 손짓을 해서 만두의 물건을 가져오게 했다.

 

만두가 잘 쓰던 푹신한 담요를 상자 안에 넣고 바깥에 놓은 간이 밥그릇에 만두가 좋아하는 간식을 놓고 초록이는 손을 털었다.

 

끝이야.”

 

바깥에 만두 집 만든 것 같아.”

 

차라리 그럴 걸 그랬나.”

 

다시 바람이 훅 불자 초록이는 부르르 떨었다.

 

이제 밥이라도 가지러 갈래?”

 

줄리아나가 편의점을 가리키는데 예란이가 손을 저었다.

 

내가 아까 갖다놨어.”

 

인스턴트 밥 몇 개랑 컵라면 한두개랑 전자렌지에 데워먹는 미트볼 같은 거.

 

인스턴트 완전 만만세- 나 이제 슈퍼마켓 야채 코너는 보지도 않고 지나오잖아.”

 

넌 원래 야채 코너는 안 보잖아.”

 

야채 안 좋아하니까! 라고 줄리아나가 덧붙이자 초록이가 일부러 인상을 잔뜩 찡그렸다.

 

요즘은 아니거든!”

 

이렇다 저렇다 종알종알 떠들며 계단을 올라가는데 아까 놓은 덫 쪽에서 털썩 소리가 났다.

 

초록이는 냅다 복도를 달려 창문을 열어젖혔다.

 

담요를 덮고 돌을 쌓아 여간해서는 움직일 수 없게 한 커다란 상자가 덜그럭 덜그럭 움직이고 있다.

 

만두인가봐!”

 

미친, 효과 개 좋네.”

 

, 빨리 가 봐! 데려와야지!”

 

셋은 다시 온 곳과는 반대로 뛰었다.

 

뛸수록 상자는 덜그럭거리는 것이 커졌고, 안에서 들이받는지 퍽 소리도 났다.

 

뭐라고 예란이가 달래려는 찰나, 상자가 찢어졌다.

 

발톱에 걸려 찢어진 정도가 아니고.

 

터지다시피.

 

돌멩이는 바닥을 구르고 회색 담요 조각은 상자 조각과 함께 바닥을 굴렀다.

 

상자 조각을 밟고 선 것은 커다랗고 검은 형체였다.

 

땅거미가 내리는 어두운 길에 초록색 눈 두 개가 번뜩였다.

 

만두! !”

 

크르르르르르

 

만두라고?

 

자동차랑 비교해도 결코 작지 않은 그 검은 짐승이.

 

어제까지 사람 몸을 등반하려고 허우적거렸던 그 작은 아기고양이라고?

 

만두야, 초록이 앞에서 이렇게 변신하면 안 돼!”

 

줄리아나까지 외치고 있다.

 

초록이는 줄리아나, 예란이, 만두라고 불린 그 검은 짐승을 번갈아보다가 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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