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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랑 연금술사가 나오는 이야기

2017. 6. 3. 00:36 | Posted by 호랑이!!!

A는 작은 판매대 뒤에서 감기약이 든 병을 찾아 아이에게 건네주었다. 아이는 동전 몇 개만 내려놓고는 후다닥 달려갔다. 아이가 나가고도 문이 닫히지 않는다 싶더라니, B가 서 있었다. 들어온 것도 아니고 나가 있는 것도 아닌 채, 안쪽을 흘긋거리다가 A와 눈이 마주치자 괜히 시선을 피한다.

 

오셨어요.”

 

“...안녕... 세요...”

 

B는 흔히들 용사라고 부른다. 마을을 괴롭히는 악덕 영주를 물리치고 괴물 멧돼지를 잡고 나쁜 용 따위를 토벌하며 음유시인들은 그의 무용담을 노래하는, 이 시대에서 용사라는 단어를 고유명사로 사용하는 용사. B를 주인공으로 하는 이야기는 수도 없이 많았지만 A가 본 B는 말수 적고 수줍음 많은 동네 청년 같았다. 검보다는 마른 풀과 갈퀴가 더 어울릴 것 같은.

 

워낙 말수가 적고 목소리가 작다보니 들었다기에는 좀 그렇고 이해했다에 가까운 것을 따져보면 B는 그냥 동네에서 검을 잘 쓰기로 이름난 정도의 청년이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용사라고 불리고 있었다는 것 같다. 겨우 정신을 차려보니, 라고 말하기에는 벌인 일의 스케일이 크기는 하지만.

 

A는 장부에 감기약을 기입하며 선반 뒤의 B를 넘겨다보았다. 20분 전에는 상처약을 보고 있었고 15분 전에는 자잘한 마물을 쫓는 약을 보고 있더니 지금은 그저 라벤더 향이 나는 화장수를 보고 있다. 그것도 10분 째. 병에 붙은 설명은 물론이고 성분까지 외울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A는 작게 키득 웃었다.

 

마법사분 드릴 선물을 고르시나요?”

 

“........”

 

아마도 긍정 같다.

 

AB와 함께 다니는 마법사를 떠올렸다. 머리가 길고, 안경을 낀 성격 좋은 사람. 머리카락이 기니까 관리를 도와주는 용품은 어떨까, 주문을 외워야 하니까 목에 좋은 약도 나쁘지 않겠지. A는 프리지아 한 송이를 장식한 비누를 꺼냈다.

 

이건 어때요?”

 

“..괜찮아......”

 

박하가 든 차는?”

 

.. .것도...”

 

B는 어물어물 대답했다. 원래 이런 사람이기는 했지만, 오늘은 뭔가 다른 데 정신을 더 팔고 있는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더니 B는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덥석 꺼내 내밀었다.

 

“...! ... 포크스 마을... 바실리스크 잡았을 때...!”

 

B가 내민 것은 커다란 송곳니였다.

 

“...구하기 어려운... 약재라고 들어서...”

 

저 주는 거예요?”

 

A는 송곳니를 받았다. 동시에 B의 얼굴이, 여전히 무표정이기는 했지만, 화악 밝아졌다.

 

귀엽다니까. 이 이를 갈아서 약이라도 만들어 주어야겠다.

 

그 때, 손 위에 무언가가 턱, 턱 얹혔다.

 

, 는 길에 꽃이 예쁘게 피었길래...!”

 

무슨 갑옷을 때렸더니 마석이...”

 

과일가게에서 하나 더 받았는데....”

 

이건 사탕가게에서... 신작...!”

 

...등등등.

 

A의 손이 무거워졌다. 물건이 너무 많았다. 이제 그만이라고 말하려는 찰나에 B가 무언가를 또, 라며 내려놓자 와르르 물건이 쏟아졌다. AB는 허둥지둥 주저앉아 물건을 주웠다.

 

이것은 꽃, 이것은 장난감, 저것은 사탕, 보석.

 

마침내 두 명의 손이 뱀의 송곳니에 닿자 B는 화들짝 놀랐다.

 

어울리지 않게 단단하게 굳은살이 배긴 손을 빼지 못하게 잡고, A는 새빨개진 B의 얼굴에 웃음을 터뜨렸다.

 

용사... 아니, B.”

 

약초를 말려둔 창가에서 향긋한 바람이 불어왔다.

 

좋은 차가 있는데, 한 잔 하고 가시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