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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갈리엔/데임] 음문

2023. 2. 8.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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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밤, 실내 수영장에서 일어난 일

2023. 1. 13. 22:56 | Posted by 호랑이!!!

A는 눈을 떴다.

 

희부연 유리창 너머로 밤하늘이 보였다.

 

어두운 하늘을 배경으로 검은 나뭇잎이 일렁였다.

 

물을 살균하는 것인지 멀리서 기계가 우는 소리가 들린다.

 

하얀 플라스틱 썬베드에서 일어나서 주위를 둘러보자 어두운 수영장에 물결만이 반짝였다.

 

여기도 관리인이 있을 텐데 왜 사람을 두고 간 거지?

 

A는 널찍한 수영장을 한 바퀴 돌았다.

 

온수풀은 중단되었고, 미끄럼틀에서 나오는 물도 멈췄고, 파도풀도 멈췄고, 저번에 보았던 마감 직전 모습이랑 똑같은데?

 

A는 여기에 아주 자주 왔었다.

 

눈 감고도 수영하라고 하면 할 수 있을 정도로, 아주 어린 아이 때부터 이제 성인이 된 지금까지 방학마다 주말마다 쉬는 날이면 날마다 여름이고 겨울이고 할 것 없이.

 

직원이 기계를 끄는 모습을 보는 것이나 수영반 선생님이 이제 나가야 한다고 하는 말을 듣는 것도 한 해에 두 번씩은 있었다.

 

그러고 보니 모처럼 사람도 없겠다 이런 수영장을 독차지하게 되다니?

 

바로 물로 뛰어들려던 그 때 수면 아래에서 무언가가 일렁였다.

 

A는 난데없는 위화감에 물 가까이로 갔다.

 

창 가까운 곳은 물결이 빛으로 부서졌으나 위화감이 드는 곳은 조금 더 먼 곳이다.

 

빛이 들지 않아 검은 물이 한없이 깊고 무거워 보였다.

 

별 감정이 다 드네.’

 

이 곳의 물은 자신의 가슴팍 조금 아래까지 찬다.

 

어릴 때에는 바닥에 발이 안 닿을 정도로 깊었으나 이제는 얕게 느껴질 정도였다.

 

게다가 이 곳은 눈 감고도 걸어다닐 만큼 익숙한 곳이고 좋아하는 곳이다.

 

자신이 밤새 수영하게 된다는 것을 알았다면 어릴 때 자신은 엄청나게 질투했겠지.

 

이런 곳에서 공포심을 느낀 것에 어이없어하며 A는 조금 더 몸을 기울여 그대로 물에 빠졌다.

 

익숙하게 미지근한 물이 몸을 감쌌다.

 

손이 움직일 때마다 물이 부드럽게 갈라지고 다리가 움직일 때마다 요란하게 물이 튄다.

 

눈을 감은 채 레일을 따라 수영했다가, 레일을 피하며 가로로 수영했다가, 대각선으로도 헤엄쳤다.

 

다시 첫 번째 레일로 돌아와 숨을 고르는데 멀찍이 튜브 거치대가 눈에 띄었다.

 

튜브가 있었지!

 

여기 물에 튜브를 띄워놓고 거기 기대있으면 기분 좋겠다!

 

사람이 있을 때는 하면 안 되는 일이지만 지금은 나 혼자니까!

 

A는 2인용 튜브를 몇 개 헤치고 커다란 1인용 튜브를 잡았다.

 

물 위로 휙 던져놓고 따라 걸어가는데 기대했던 탈팍 소리가 나지 않는다.

 

철벅, 하는 지나치게 큰 물소리가 났다.

 

작은 비명소리도 같이.

 

A는 후다닥 물로 뛰어갔다.

 

누구 있어요? 맞았어요? 죄송합니다!”

 

그러나 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튜브 거치대에서 물까지는 겨우 다섯 걸음 남짓이었다.

 

분명히 비명 소리를 들었다.

 

그런데 항의하는 소리도 없고 물에서 나오는 소리도 없고 자리를 피하는 소리조차 나지 않는다.

 

저기요?”

 

물 가까운 데까지 왔지만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다...”

 

다시 위화감이 있었다.

 

그늘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친 위화감이.

 

다시 물 앞에서 몸을 기울였다.

 

저 멀리에서 일렁임이 있었고, A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인영이 움찔 놀라는 것이 보였다.

 

, 너 누구야! 왜 숨어!”

 

아무리 수영을 잘한다고는 하나 A는 뭍에서 더 빨랐다.

 

A는 달렸고, 수영하느라 튄 물로 흠뻑 젖은 바닥에 쭐떡 미끄러져 버렸다.

 

땅까지 울릴 정도로 요란하게.

 

으으...”

 

A는 까끌까끌한 바닥에 쓸린 다리를 쓰다듬었다.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금속성 냄새가 나는 걸로 보아 피가 제법 나는 모양이다.

 

...”

 

옆에서 작게 낑낑거리는 소리가 났다.

 

아파라... 아니, 너 누구야?”

 

수면에서 스르륵 인영이 일어났다.

 

수영모 없이 긴 머리카락과 자그마한 체구에 묘한 짠내가 났다.

 

, 여기 머리도 안 묶고 들어오면 어떡해?”

 

그러자 저 쪽 인영의 입이 벌어지더니 놀랄 정도로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뭐 임마?! 언제 봤다고 야, ? 야는!”

 

그러자 A도 울컥해서 배에 힘을 주었다.

 

누구 있냐고 물어봤을 때는 왜 안 나왔는데! 너 뭐야!?”

 

뭠마! 내가 그런 것도 대답 다 해줘야 하냐!?”

 

안 할 이유가 뭔데! 이런 데 숨어가지고!”

 

숨어? 숨어어? 난 계속 여기 있었거든! 네가 몰래 살금살금 들어온 거겠지!”

 

몰래라고!!! 야 너 여기 나와봐라 가만안둬!”

 

저 멀리, 대각선 끝 즈음에서 험악하게 첨벙 소리가 났다.

 

“...뭐야, 또 누가 있어?”

 

“...”

 

가운데 라인에서 무언가가 부표를 스치는 소리가 났다.

 

“...뭐지? 어떻게 아까 수영하면서 하나도 모를 수가 있었지...?”

 

너 눈 감고 수영했잖아.”

 

그건 그렇긴 한데.

 

“...잠깐, 그건 어떻게 알았어?”

 

그 애는 라인 가장자리로 다가와 사다리를 꼭 쥐었다.

 

그리고 불쑥, 물 위로 두 번째 인영이 일어났다.

 

아니, 저건 인영이 아닌데.

 

거대하고 둥근 것이 솟아났다.

 

그 위쪽에는 반투명하고 너풀너풀한 것이 달려 둔탁하게 빛을 여과시켰다.

 

그 두 번째 그림자는 서서히 가운데부터 벌어지더니 물 속으로 스르르 사라졌다.

 

A는 입을 벌렸다.

 

너 인어야?”

 

뭐 그렇지.”

 

A가 입을 다물지도 못하고 너풀거리는 지느러미까지 물에 잠기는 것을 지켜보자 인어는 어딘가 우쭐한 듯 보였다.

 

우와아아!? 인어!? 거대 인어? 진짜로!? 쩔어! 엄청나다! 이거 꿈 아냐? ! ...아니구나, 아 진짜 근데 우와아아아아아... ! 아 진짜로 아니구나... 스으읍... 나 만져도 돼? 만져봐도 돼? 우와 얼마나 길어? 불 켜고 싶다! 불 아 핸드폰 플래시라도 으아 핸드폰 거기 탈의실에 있어...”

 

한참이나 퍼덕거리던 A는 불현듯 정신을 차렸다.

 

“...아까 튜브에 맞은 건 괜찮아?”

 

“...참내... 괜찮아.”

 

역광이라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어이없어 하는 게 보이는 인어는 뒷머리를 벅벅 긁었다.

 

, 너 다리 줘봐.”

 

어어...”

 

무언가가 따끔하더니 다리에서 느껴지던 통증이 가셨다.

 

이어 물이 몇 번 끼얹어지고, 여전히 어느 부위는 따끔거렸지만 이내 익숙해지고 A는 방금까지 상처가 있던 곳을 살짝 쓰다듬어 보았다.

 

“......”

 

놀라긴.”

 

그러나 그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우쭐함이 있었다.

 

어둠에 익숙해진 눈이 그 윤곽을 감지했다.

 

A는 그것을 보다가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 만져봐도 돼? 화상 입어?”

 

넌 겁도 없냐!”

 

그러고보니 왜 여기 있었어? 어떻게 있었어? 낮엔 사람들 많이 오는데! 너 뭍으로 나올 수 있어?”

 

하이고...”

 

인어는 A의 손을 잡았다.

 

내가 뜨라고 할 때까지 절대로 눈을 뜨면 안 돼.”

 

?”

 

좀 하라면 해.”

 

?’라고 하면 그게 뭐든간에 안 해주겠지.

 

A는 눈을 깜박이다가 천천히 감았다.

 

인어는 A가 숨을 들이쉬게 하고는 천천히 물 속으로 끌고 들어갔다.

 

물이 깊었다.

 

물이 차갑다.

 

바닥에 발이 닿지 않았다.

 

몸은 부유하려 하는데 잡힌 손이 아래로 아래로 끌고 내려간다.

 

지금 무언가 환상적인 현장일 텐데.

 

A는 작게 끙끙거리는 소리를 냈다.

 

숨 막혀? 조금만 더 가면 돼.”

 

비늘과 머리카락이 스치는 소리일까,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이따끔씩 들렸다.

 

조금만 눈을 뜨면 안 될까?

 

실눈이라던가?

 

어차피 인어만 갈 수 있는 길이라면 내가 조금 본다고 해도 따라서 갈 수는 없을텐데.

 

A는 마음 속 유혹을 들었다.

 

아주 조금만이라면.

 

아주 조금은 괜찮지 않을까?

 

A는 살짝 눈을 떴다.

 

 

 

-13일의 금요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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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릿한 인영이 흔들렸다.

 

그들은 생각보다도 가까웠다.

 

문득 A는 알아차렸다.

 

비늘이 물을 가르는 소리라고 생각했던 것은 그들의 웃음소리였다.

 

그들은 A가 언제 숨이 다할지, 인어의 손에서 빙빙 도는 것을 즐겁게 보고 있었다.

 

A가 작게 소리를 냈다.

 

조금만 더 가면 돼. 거의 다 왔어.”

 

고개는 들지 않았지만 A는 인어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즐거워하고 있었다.

 

A는 물갈퀴 돋은 손을 있는 힘껏 뿌리쳤고, 다음 순간에는, 발끝까지 젖은 채 하얀 썬베드 위에 내팽개쳐져 있었다.

 

 

 

 

 

-원래 계획했던 엔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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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았던 손이 사라졌다.

 

A를 끌고가던 힘 역시도.

 

빠른 속도로 A를 스쳐지나가던 물살은 부드러운 벽처럼 A를 붙들었다.

 

검고 광활했던 주위는 마치 벌레를 가두는 풀처럼 A를 향해 우그러들었다.

 

새파란 타일과 하얀 시멘트.

 

낯익은 수영장 바닥이었다.

 

수영장은 언제 손님이 둘이나 있었냐는 듯 고요했고, 수면 아래에서 비치던 위화감은 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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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갈리엔] 히에미스네에 놀러갔어요

2023. 1. 4. 01:27 | Posted by 호랑이!!!

안 돼요.”

 

“...어째서...?”

 

흰 머리 청년은 지독할 정도로 알콜 냄새가 나는 술병을 등 뒤로 감춘 뒤, 단호하게 창 밖을 가리켰다.

 

우리 줄여 보기로 했잖아요!”

 

그 때는 안 마신다는 얘기였지 줄인다는 얘기는...”

 

히스!”

 

그리고 창 밖의 사람들은 움찔하며 사사삭 벽 뒤로 숨었다가 다시 사사삭 창문에 붙어 안을 들여다보았다.

 

“...저게 뭐야...?”

 

지금 술 뺏긴 거야...?”

 

가족인가 봐.”

 

가뜩이나 큰 덩치에 털이 북슬북슬한 가죽옷을 입어 곰 만한 사람들이 옹기종기 둘러앉았다.

 

누군가는 가운데에 마른 장작 토막과 지푸라기를 넣어 급히 모닥불을 피우고 눈을 넣은 솥을 걸었다.

 

회색곰 털옷을 입은 사람이 입을 열었다.

 

내가 조카라는 애하고 말할 일이 있었는데, 그 애는 그렇게 격 없이 굴지 않았거든?”

 

눈 밑으로 굵은 흉터가 있는 사람이 턱을 매만졌다.

 

황궁에서 만난 사람이라고 그랬지? 이번 지원자.”

 

젊은 축인 사람이 진지하게 끼어들었다.

 

아들인가봐요.”

 

아들? 아들이면 저렇게 친할 수 있나?”

 

다시금 그들은 바삐 머리를 굴렸다.

 

그리고 한 가지 결론을 내놓았다.

 

손주인가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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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임은 빼앗은 술병을 들고 저벅저벅 걸어 나왔다.

 

이 시간쯤 오면 다른 부대원들과도 마주칠 것 같았는데 어째 보이지가 않았다.

 

, 그러니까 조금은 괜찮겠지.

 

병뚜껑을 자연스럽게 따고 한 모금, 두 모금 자연스럽게 마시고 캬 소리를 내며 입을 문지르는 것도 자연스럽다.

 

뚜껑을 닫으며 고개를 든 데임은 우르르 몰려 있는 부대원들과 눈이 마주치자 그대로 멈췄다가.

 

술병을 등 뒤로 감췄다.

 

“...저는 평소에 잘 안 마시니까 괜찮아요.”

 

[레갈리엔] 히에미스가 놀러왔어요

2022. 12. 27. 01:16 | Posted by 호랑이!!!

 

아니이, 이거 진짜 해요?”

 

그렇습니다, 덤비시지요.”

 

데임은 조금 울고 싶었다.

 

자신이 든 것은 봉이고 그가 든 것도 나무로 만든 봉이었지만 쥐는 자세부터가 다르지 않은가.

 

어릴 때야 무기를 배운다며 훈련하고 대련해본 적도 있지만 사람을 상대로 무기를 드는 것이 지나치게 오랜만이라 거부감까지 든다.

 

히에미스가 다치면 어떻게 해요?”

 

히에미스는 세상에 다시는 없을 소리를 들은 표정을 지었다.

 

“제가 당신에게는 무른 편이긴 합니다만 그것은 매우, 헛소립니다.

 

혹시... 그는... 전투광 같은... 걸까...?

 

데임은 봉을 꽉 쥐었다가 다시 그의 눈치를 보았다.

 

“...살려주시면 안될까요?”

 

“...그럴 거였으면 아까 좀 돕지 그랬습니까.”

 

히에미스는 너무 오래 한 자세로 있었던 나머지 굳어버린 손을 꽉 쥐었다.

 

분명히 털장갑을 꼈을 뿐인데, 까득 소리가 났다.

 

그치만 어린애들 때문에 엄청 곤란해하는 모습이 재미이으아아악!!!”

 

안 오면 먼저 갑니다!”

 

==

 

오늘은 히에미스가 지원 겸 놀러오기로 한 날이었다.

 

부대원에게는 황궁에서 알게 된 옆 부대의 대단한 사람이라고 하였으나 데임의 대단한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에 부대원들은 데임을 지나치게 귀여워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평소대로 늘어져 술을 마시거나 나무토막을 깎거나 잠을 잤고 심지어는 난로 앞에서 구멍 난 양말 째 발에 불을 쪼이다가 노크 소리가 나자 데임을 불렀다.

 

어이, 꼬마! 대단한 애기 왔다!”

 

그야말로 망나니들 같은 모습이었다.

 

이따가 정찰 때 이모랑 삼촌들이 같이 나갈 거니까 둘이는 먼저 밥 먹고 놀고 있어.”

 

친구 온대서 토시를 하나 준비했는데 맞을까 모르겠네. 여기가 좀 춥잖아.”

 

아니 북부가 춥지 그러면.”

 

친구는 남부 출신이라던데? 바다에도 들어가 봤대.”

 

뭐어? 나암부우? 아이고 얼어 죽겠네.”

 

문 가까이 있던 부대원 하나가 문을 열었다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나동그라졌다.

 

그는 발로 문을 차 다시 닫아버리려 했으나 그 문이 닫기지 않도록 불쑥, 하얀 머리통이 들어왔다.

 

제길, 치사하게 노크를 하다니!”

 

애들, 애들은 다 있어?”

 

문 닫아! 무기 꺼내!”

 

말하지 않아도 제각기 칼이며 도끼며 하는 것을 꺼내들고 그들은 언제 드러누워 있었냐는 듯 문을 노려보았다.

 

염병할 문짝! 닫기질 않어!”

 

들어온 것은 거대한 회색 늑대의 머리였다.

 

노란 눈은 흉흉하고 하얀 이가 드러나도록 벌어진 입에서는 피거품이 살벌하게 흘러나오는.

 

데임은 총총 다가가 그 머리를 이리저리 눌러보더니 반가운 얼굴을 했다.

 

잘 찾아오셨네요!”

 

잘 찾아오다니?

 

부대원들은 갑주는커녕 셔츠도 신지 않은 모습으로 제각기 무기를... 어라, 셔츠가 신는 거던가?

 

, 문 닫아!”

 

대단한 인간이 아니잖아!”

 

못 들어오게 해!”

 

“...저를 이르심입니까?”

 

그러나 회색 늑대에게서 들리는 것은 멀쩡한 인간의 목소리였다.

 

데임이 길을 비켜주자 회색 늑대가 툭 떨어지면서 늑대만큼이나 거칠고 커 보이는 인간이 들어왔다.

 

반갑습니다. 아주... 편히 쉬고 있으셨군.”

 

늑대의 노란 눈과 같은 호박색 눈이 좌중을 훑어보자 사람들은 자신들이 든 무기를 내려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헷갈리다가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그 호박색 눈과 회색 머리카락에 특징적인 흉터까지.

 

눈 사이를 떼지어 누비는 회색 늑대는 물론 무섭지만 단신으로 회색 늑대 한 마리를 잡아 온 저 사람은... 그들의 짐작이 맞다면, 악몽이지 않은가.

 

, 이거 멋지네요!”

 

오다... 잡았습니다.”

 

그럼 그걸 잡았겠지!

 

혼자서!?

 

왜 그렇게 오다가 덫 하나 수거해 온 양 말합니까!?

 

소리 없는 아우성을 듣지 못한 히에미스는 주춤주춤 무기를 내린 어느 부대원이 내준 푹신한 방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난로 바로 곁이라 일렁이는 불꽃이 그의 황금색 눈가를 훑었다.

 

저기, 혹시 히에미스...입니까?”

 

그러합니다.”

 

혹시 단신으로 독수리형 괴물을 잡았다는... ...?”

 

아무리 나라도 단신으로 잡기는 어려우니 과장된 면이 있군요.”

 

아 역시 그런가.

 

인간적인 모습에 사람들은 다소 안도했다.

 

그럼 같이 오신 분들은 어디 계신지? 나머지 늑대를 정리하고 있나요?”

 

혼자 왔습니다.”

 

다시 조용해졌다.

 

우리 이제 나가?”

 

데임은 늑대를 정리하러 가버렸고, 정적을 깬 것은 아이들이었다.

 

잿빛 귀며 짧은 꼬리가 자란 아이들이 올망졸망 모였는데 어른들은 죄다 정적처럼 굳어서 단신으로 늑대를 잡았다는 사람 곁에 다가가려는 아이들을 말릴 수 없었다.

 

아저씨가 히에미스예요?”

 

그렇습니다.”

 

갈색 머리인 아이가 곁에 털썩 앉자 히에미스는 움찔했다.

 

엄청 커. 왜 이렇게 커요?”

 

“...가족력인 것 같습니다.”

 

가종녁이 머예요?”

 

가족력은...”

 

채소 안 먹으면 우리 잡아 먹어요?”

 

일찍 안 자도 잡아먹어요?”

 

왜 그렇게 애들을 많이 먹어요?”

 

아이 하나가 그의 종아리를 베고 눕자 히에미스는 다시 움찔했다.

 

내 조카도 나를 무서워하는데, 요즘 애들은 다 이런가?

 

그가 굳어 움직이지 못하는 것을 두고 아이들은 자신들에게 위해를 끼칠 인물이 아니라고 판단했는지 더 가까이 다가왔고, 히에미스의 마음만은 그 두 배로 뒷걸음질했지만 늑대 가죽 정리를 마친 데임이 돌아왔을 때에는 가지런히 모아 내민 히에미스의 양손 위에 한쪽 팔과 머리를 얹고 잠들어버린 아이까지 있었다.

 

“......”

 

투박한 외모, 덩치는 크고, 일견 곰 같기도 한 모습에 표정은 오래 된 나뭇등걸처럼 거칠다.

 

그 위의 눈은 마치 한겨울 사시나무처럼 데임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 눈빛에 소리가 있다면 아마도 딸그락딸그락 하는 것이었겠지.

 

마치 지옥에 떨어진 거미줄을 보는 눈빛이 저러할까.

 

데임은 그 눈빛을 마주하다가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 급히 손을 내밀었다.

 

삼촌. 팔 토시 어딨어?”

 

데임?!”

 

내 방 서랍장 속에. 지금 가져오게?”

 

데임은 더욱 강렬하게 흔들리는 눈빛을 보았으나 역시는 역시.

 

.”

 

거미줄은 거미줄.

 

툭 끊어진 거미줄의 뒷모습을 배신감에 찬 히에미스가 황망한 눈으로 보았다.

 

 

[티엔+하랑+마틴/오메가버스] Mine 12

2022. 11. 20. 22:49 | Posted by 호랑이!!!

 

마틴은 보고를 마쳤다.

 

복도를 따라 난 유리창 너머로 온 하늘이 새빨갛게 물들어 있다.

 

온 복도도 물건도 모두 붉은 색으로 변한 안에서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거기에서 소리가 나지 않았더라면, 마틴은 그게 사람인 것도 몰랐을 것 같았다.

 

티엔 사부... 아니, 정 티엔 어디있어?”

 

마틴은 하랑에게 귀를 기울였다.

 

마치 여러 사람이 속삭이는 것 같은 소리가 하랑을 휘감고 몰아치고 있었다.

 

정 티엔-’

 

죽여!’

 

대화를 먼저

 

처음부터 수상했어

 

뭔가 오해가

 

하랑이 고개를 마틴 쪽으로 들었고 동시에 마틴은 누군가 밀친 것처럼 브루스의 방 문에 부딪쳤다.

 

듣지 마!’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천둥처럼 울렸고 마틴은 비틀거렸지만 고개를 들었다.

 

무슨 일입니까? 하랑, 지금 과하게 분노했어요. 냉정을 되찾으세요!”

 

나한테 그런 소리 하지 마!”

 

으레 티엔이 하던 소리라서인지 역효과가 났다.

 

하랑이 화를 잠재울 생각이 없다는 것을 알아채고 마틴은 다시 소리에 귀 기울였다.

 

누구인지, 인간인지도 모를 작게 속삭이는 소리를 지나면 개가 경계하여 짖는 소리, 뱀의 쉿쉿거림, 독이 오른 쥐가 긁는 소리, 그리고.

 

분노한 범.

 

개와 쥐가 경계하는 것은 이전에도 들었다.

 

뱀이 위협하는 소리는 적지만 간혹 있었고.

 

그러나 호랑이라니?

 

단 한 번도 소리를 내지 않았던 호랑이의 으르렁거림이라니.

 

하랑은 마틴에게 시선을 두다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짓누르는 것 같은 힘이 천천히 마틴에게서 떨어졌다.

 

순식간에 하랑의 몸은 계단 위를 뛰어오르고 마틴은 손을 뻗었다가, 조심스럽게 몸을 바로했다.

 

무슨 일인가.”

 

문이 열리더니 거대한 덩치가 복도를 메우듯이 열린 틈에서 빠져나왔다.

 

하랑입니다.”

 

무슨 일로?”

 

모릅니다.”

 

모른다고?”

 

자네가? 라고 묻는 듯한 눈에 마틴은 다시금 고개를 끄덕였다.

 

신뢰가 없는 것은 자기 책임이기는 하지만.

 

하지만.

 

마틴은 모자를 꾹 눌러 썼다.

 

하랑에게 가보겠습니다.”

 

자리를 떠도 좋다는 허락을 듣기도 전에 마틴은 발을 옮겼다.

 

빠르지 않은 종종걸음으로 계단을 오르면 티엔의 방이 가까워진다.

 

겨우 몇 초 늦게 출발했을 뿐인데 복도는 이미 여기저기 부서졌고 때마침 근처에 있었던 일부 능력자들도 부상을 입은 채 티엔의 방 안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예비용으로 둔 출장 가방이 사라진, 주인이 없는 그 빈 방을.

 

 

 

 

 

 

 

그 후로 일주일이 지났다.

 

아침이면 하랑은 일찍 일어나 수련을 시작했고, 영어나 다른 외국어도 틈틈이 배웠다.

 

역사서를 읽었고, 신문을 읽었고, 수많은 책을 읽었으며 브루스의 뒤에서 회의나 회담에도 참가했다.

 

이제 첫 히트도 지났고, 스스로를 어른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마틴은 브루스에게 하랑과 회의에 참가하라는 말을 들었다.

 

, 여기 자리 있어?”

 

한 일원으로 참가하기에는 너무 어리고, 비서진 사이에서 참가하는 것뿐인데다, 브루스 외에 자신 옆에서 일을 배우는 건 재단 일 치고도 꽤나 안전한 일이긴 하지만.

 

자리, 있냐니까, !”

 

그래도 혹시 모를 일이니 자신이 조금 더 철저하게 해야지, 그렇게 생각하며 마틴은 자료를 넘겼

 

마틴 형!!!!!!!”

 

으아아악!!! !!? !!! 앉아요 앉아, ...... ....?”

 

하랑은, 열일곱 되는 아이다.

 

어휴, 어디에 정신을 판 거야?”

 

깨끗하게 씻고 땋아 드리운 댕기머리.

 

그의 아버지가 구해다 주었다는 파란 셔츠와 조끼.

 

언제나 명랑하고 착하고 솔직한...

 

오늘은 나랑 형이랑 가는 거 알아? 내가 정신 바짝 차려야겠네, 정말.”

 

거기 꽤 멀던데, 그래도 1시쯤 나가면 시간이 충분할 거야.”

 

나 그 설탕 좀. 아까 저기서 오늘 건 설탕 듬뿍 넣으면 맛있을 거라고 하더라?”

 

그러나 건네어진 설탕그릇은 뚜껑을 달각거릴 뿐이었다.

 

평소처럼 하얀 산을 쌓는 것이 아니라.

 

그리고, 무엇보다도.

 

요 앞에 현관에 나와야 해.”

 

하랑의 소리가 들리지 않아.

 

마틴은 벌떡 일어나 먹는 둥 마는 둥 했던 음식을 쓰레기통에 부어버리고 재단 안을 달렸다.

 

계단을 뛰어오르고 복도를 달려나가고 유달리 사람이 많아 번거로운 곳에서.

 

욕설과 함께 공용 전화기 사용 신청서를 쓰는 손길은 거칠었고 담당하는 직원은 웬일로 험한 모습을 보이는 마틴에게 눈썹을 치켜올리며 서류를 받아들었다.

 

티엔 정은 아직 배 위일 테니 전보 쪽이 빠를 겁니다. 뭐라고 보내드릴까요?”

 

나중에 전해져도 상관없으니 전화 쪽으로 메시지를 남겨 주세요.”

 

자신이 자연스럽게 티엔 정을 떠올린 것.

 

그리고 그가 거의 오자마자 출장을 다시 나간 것.

 

마틴은 그 안에서 티엔의 부속물처럼 여겨지던 하랑이 요즈음 재단 일을 다양하게 하던 것과의 연관성을 읽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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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더건/율리안] 비슷한 사람

2022. 10. 30. 23:48 | Posted by 호랑이!!!

여어.”

 

율리안은 보조가방 가득 책을 담아서 걷다가 집주인과 마주쳤다. 바깥에서 마주쳐서 좋을 것 없는 인간이지만 인사를 받은 이상 무시할 배짱은 없었기에 가볍게 목례 했다.

 

어디 가시나요?”

 

마악 온 거야.”

 

무슨 뜬금없는 소리를 하는 거야. 하지만 이 사람은 그에 대한 설명을 해주는 대신 그대로 가 버렸다. 또 무언가 질척거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상하단 말이야. 율리안은 저 사람도 바쁜 일이 있겠거니 하며 일과를 보내고 밤에 다시 크나트와 마주쳤다.

 

일은 잘 끝났습니까?”

 

무슨 일?”

 

아까 바쁘게 갔잖습니까.”

 

“...?”

 

크나트는 드물게 멍청한 얼굴을 했다. 그는 고개를 기울이다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이 얼굴이 둘은 아닐 텐데. 헷갈릴 만한 얼굴도 아니고...”

 

“?”

 

오늘 우리는 계속 건물 안에서 대기였거든. 점심도 누가 사온 맛대가리 없는 도넛으로 때웠어.”

 

이상한 일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율리안은 크나트가 자발적으로 사 먹을 리 없는 음식을 역겨워하면서 즐겁게 먹는 것도 보았고 어제 샀던 넥타이를 같은 상점에서 사서 나오는 것도 보았다. 심지어 오늘은-

 

스호르 씨, 만난 김에 같이 저녁 먹으러 가자.”

 

스호르... ? 저 양반이 성으로 부르는 것만도 놀랄 일인데 라고?

 

어디 아픈 거 아닙니까?”

 

평소에 이렇게 안 불렀나.”

 

언제 그렇게 불렀습니까? 또 이런 것으로 저를 놀릴 셈이라면-”

 

평소에 뭐라고 불렀는데? 불러줘, 뭐 그런 식으로 놀릴 셈이었겠지. 이런 개방적인 장소가 뭐 어떠하냐면서. 율리안의 눈이 세모꼴로 날카로워지자 크나트는 아무래도 좋지 않냐며 어물쩍 손을 내밀었다.

 

드디어 당신이 바깥에서의 체면을 챙기기 시작하는 것 같아 다행입니다.”

 

그러자 뭐가 좋은지 또 웃어젖힌다.

 

이 쪽이 좋구나.”

 

당연합니다.”

 

설마 당신, 지금까지 계속 거부했는데도 바깥에서 달링이니 자기니 하고 불러댔던 건 제가 좋아한다고 생각해서- 하고 다시 입을 딱 다물자 그럴 리가 있냐며 손을 내젓는다.

 

아무튼 스호르씨는 내가 좋다는 거지? 그래 그래, 그럼 이제 밥이나 먹으러 가자.”

 

그게 또 왜 그렇게 연결된다는 말입니까! 하고 왈칵 성을 내면서도 율리안은 멋진 호텔 레스토랑으로 끌려갔다. 분위기 있는 음악이 흐르고 미리 예약해둔 듯한 음식이 차례로 나온다. 심지어 디저트까지 끝내고 나니 직원이 한아름이나 되는 꽃다발을 가져다주기까지 했다.

 

“...감사, 합니다...?”

 

이 사람이 이런 거 좋아하긴 하지만 공개적인 장소에서 이렇게 유치한 짓을 하지는 않았는데. 이제 당연한 수순으로 이 위에 딸린 호텔방을 예약했다는 말을 하겠지. 율리안은 품에 안은 책을 추슬렀다.

 

차 몰고 나왔지요? 트렁크에 책을 먼저 뒀으면 합니다.”

 

- ..., 오늘은 안 가지고 왔어.”

 

율리안은 새삼스럽다는 표정으로 크나트를 쳐다보았다.

 

뭐 괜찮습니다. 이 정도는 무겁지 않으니까요. 잠깐 드는 정도라면-”

 

그래? 튼튼하네. 그럼 이따 집에서 봐.”

 

?”

 

율리안은 크나트를 빤히 바라보았다. 평소랑 비슷한 웃는 얼굴인데... 뭔가 수상쩍게 다르다. 그러나 크나트는 율리안에게 손을 내밀지도 않았고, 다음 코스를 짜놨다던가, 방으로 가자던가, 사실 차를 가져왔다던가 하는 말을 하지 않았다. 이 사람이랑 호텔까지 와서 이렇게 돌아간다고? 사실 어디 아프다던가,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크나트와 눈이 마주치자 크나트는 싱긋 웃었지만 그 눈에는 언뜻언뜻 비틀린 그늘 같은 것이 비쳤다. 정확히 어떤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율리안에게조차 숨길 수 없이 강렬했다. 말해달라고 해서 말해줄 사람도 아니고. 망설이다가 꽃다발을 안은 팔에 힘을 주어 마음에 든다는 것을 어필해 보았다.

 

“...향이 좋습니다. 그럼 이따 뵙겠습니다.”

 

먼저 실례한다는 말을 하고 자리를 피했지만 뒤에서 자신을 잡거나 하지는 않았다. 진짜 무슨 일이 있는 거 아냐? 율리안은 어쩐지 걱정이 되어 얼른 집에도 들어가지 못했다. 어떻게 위로를 해야 하나, 어떻게 티나지 않게 물어보나 이래저래 생각하다보니 어느 정도 정리되었을 때에는 이미 어둑어둑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무거운 건 책 때문만은 아니겠지. 발만큼이나 무거운 손으로 문을 열었다.

 

달링! 왜 이렇게 늦은 거야, 모처럼 옥수수 넣고 감자도 으깼는데 다 식었겠어.”

 

야식...? 입니까?”

 

무슨 소리야. 저녁이지. 세상에 이 무거운 걸 들고 이때까지 돌아다닌 거야? 가서 손부터 씻고 와. 마실 건 뭘로 할래? 레드? 화이트? 샴페인? 아니면 핫 초콜릿?”

 

물이면 충분합니다. 그보다 아까 저녁은 먹었잖습니까.”

 

누구랑?”

 

뭔가 말이 안 통하는데. 크나트는 식탁에 앉아 감자 샐러드를 듬뿍 떠 접시에 얹었다.

 

그보다 지금은 기분이 좀 나아진 것 같아 다행입니다.”

 

뭐가...?”

 

어쩐지 말이 안 맞는다고 느낀 것은 저쪽도 마찬가지인지,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을 깬 것은 문을 가볍게 두드리는 소리였다. 이어 비밀번호를 누르고 열쇠를 꽂는 것까지도. 크나트는 조용히 식기를 내려놓고 손짓으로 집 안쪽을 가리켰다. 다른 손은 품속으로 조용히 들어갔는데 율리안은 그 안에 있을 권총을 어렵잖게 상상할 수 있었다.

 

여어.”

 

문이 열리고, 익숙한 목소리가 바깥쪽에서 흘러나왔다. 안으로 피신하려던 율리안은 그 목소리에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발을 멈추었고 문은 스르륵 열렸다.

 

또 만나네, 스호르 씨.”

 

크나트가 현관에 서 있었다. 집 안에 있던 크나트는 주저없이 소음기가 달린 총을 꺼내 두어 발 연달아 갈겼다. 현관의 크나트는 어디로 쏠지 알고 있었다는 듯 총알을 피했고 아슬아슬하게 스친 것이 정장을 그슬리고 사라졌다.

 

저런, 한 벌밖에 없는 건데.”

 

웬 놈이냐.”

 

현관의 크나트는 고개를 들었다. 실내의 불빛 아래 얼굴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얼굴이 아니었더라도 그 미묘한 습관이며 행동, 목소리, 체격, 자세, 그 외 무엇이라고 집어 말할 수 없는 것으로 그 둘이 동일인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다만 어딘가 인간 같지 않은 분위기가 옅게 덮였는데 마치 인간 아닌 것이 인간 흉내라도 내는 듯 했다. 집 안의 크나트는 한 걸음 옆으로 옮겨 율리안을 완전히 그의 시야에서 가렸고 현관의 크나트의 눈빛이 조금 더 짙어졌다.

 

크나트 L. 율리케.”

 

그는 집 안으로 한 걸음 더 들어왔다. 어둠 속에서는 기묘하고 오싹한 느낌이 있었는데 더 밝은 곳으로 나오자 그런 느낌이 적어졌다.

 

이젠 내가 크나트 율리케야.”

 

과연 그럴까?”

 

이 쪽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가자, 현관 쪽의 사람은 이를 드러냈다.

 

내 흉내를 내는 놈이 돌아다닌다는 얘기는 들었지. 마치 인간 흉내를 내는 게 처음이라는 듯이 다녔다고?”

 

“...내가 크나트 율리케야. 내가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어떤 환경에서 자라서 어떤 생각을 하는지, 네 행동 도식을 가지고 있어.”

 

비웃는 표정으로 크나트의 눈썹 한쪽이 올라갔다. 그러자 상대도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는지 잇새로 그르륵 소리를 냈다.

 

이제 널 없애면 내가 진짜가 되는 거야. 그리고 마지막 감각을 느껴보는 거지.”

 

그 마지막 감각이 무엇입니까?”

 

율리안이 툭 질문하자 두 쌍의 청록색 눈동자가 그를 향했다.

 

“..., . 있잖아. 둘이 맨날 하는...”

 

그거요?”

 

, 설마 이거?”

 

크나트가 난잡한 은유를 했다. 그러자 현관 쪽의 크나트가 쉭- 위협하는 소리를 내고는 율리안 쪽 크나트를 깔아뭉갰다가 옆으로 나가떨어졌다. 아래에 깔린 크나트는 너클을 낀 손으로 희미하게 붉은 기가 비치는 팔을 문질렀다. 그 잠깐 사이에 소매가 찢어져 안쪽 피부가 보였다.

 

잠깐! 잠깐만요.”

 

나가떨어져 놓고서도 다시 달려들려는 것을 가만 두고 볼 수 없었기 때문에 율리안은 큰 소리를 냈다.

 

, 감각이 목적이라면 굳이 사람을 죽일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그러자 누군가의 손톱이 서서히 줄어 평범한 수준으로 돌아갔다.

 

“...그럴지도 모르지.”

 

잠깐, 허니? 내가 설마 저 정체모를 이상한거랑 홀딱 벗긴 채로 단둘이 둘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러면 뭐 셋이서 하기라도 하려고 그러는 겁니까.”

 

무심코 말했던 율리안은 정말로 크나트의 침실로 끌려가자 끌려가지 않으려고 버티고 섰다. 뒤통수로 익숙한 가슴근육을 느끼며 앞으로도 같은 것이 보이자 반항은 숫제 발버둥이 되었다.

 

, 무립니다. 두개씩이나 들어가지 않아요!”

 

당연하지, 이걸 어떻게 둘이나 넣어?”

 

음란하긴.”

 

율리안은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옷이 벗겨지고 양 팔을 등 뒤 사람에게 잡힌 채 몸 위로 다른 쪽이 올라오는 것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가까이에서, 번갈아서 그 눈들을 보다보니 알 것 같았다.

 

자신을 볼 때마다 드러나는 기묘한 비틀림.

 

제 뒤의 사람을 볼 때면 분노라고 생각할 만큼 강한 것.

 

바다 같은 색 눈을 그늘지게 하는 감정.

 

질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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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_몰랐던_아름다운_계절

2022. 9. 12. 22:50 | Posted by 호랑이!!!

고개를 돌리고, 고개를 젓고, 눈을 감은 모든 계절들에게.

 

 

-겨울-

 

더보기

왜 세상은 이렇게 칙칙할까?”

 

그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을씨년스러운 길에는 앙상하게 말라비틀어진 나무가 늘어섰다.

 

그나마 색이 있다고 하면 어두운 색에 잎이 뾰족한 나무 뿐, 그나마도 몇 그루 보이지 않았다.

 

땅은 아무리 손을 써도 질척했다.

 

물은 딱딱하고 미끄러워서 멋모르는 누군가가 밟았다가 그대로 미끄러졌다.

 

공기는 차갑고 바람은 메말라서 사람들은 두꺼운 천으로 그들 몸을 가렸다.

 

좀 더 보드랍고, 따뜻하고, 색색이 아름다울 수 있을 텐데.”

 

남들은 새파랗다는 하늘조차 잿빛이다.

 

그는 도저히 이 계절을 사랑할 수 없었다.

 

이 세상을 사랑할 수 없었다.

 

노란색이고, 붉은 색이고, 그런 것들은 다 다른 이에게만 허용된 것 같아서.

 

저에게 주어진 것이란 말라비틀어진 것 뿐이라서.

 

좀 더 다정한 것을 가지고 싶어서.

 

겨울은 고개를 돌렸다.

 

길고 하얀 머리카락이 빛을 받을 때마다 별무리처럼 반짝였다.

 

아래에서 누군가는 나무에 붉고 노란 꼬마전구를 감았고 누군가는 크리스마스 노래를 부르며 걸어갔다.

 

누군가는 다른 사람들이 미끄러지지 않도록 얼음 위에 흙을 뿌렸고 누군가는 손수 뜬 모자를 기증했다.

 

겨울은 그것을 보지 못 했다.

 

 

 

-봄-

 

더보기

왜 세상은 이렇게 변덕스러울까?”

 

그는 산을 올려다보았다.

 

추위를 경계하는 식물들은 앙상했으며 따스함을 믿었던 식물들은 그들의 믿음에 배반당해 시들어 떨어졌다.

 

덜 녹은 얼음은 위험했고 다 녹은 얼음은 길을 질척하게 만들었다가 밤이 되면 다시 얼었다.

 

얇게 입은 사람들은 추워했고 두껍게 입은 사람들은 더워했다.

 

좀 더 일정하면 좋을 텐데.”

 

제비가 울었다.

 

진흙을 떠 둥우리를 지어야 하는데 밤을 지나며 얼어 있던 탓이다.

 

섞어 쌓을 짚도 짐승의 털도 구하기가 어렵다.

 

그는 도무지 이 계절을 사랑할 수 없었다.

 

이 세상을 사랑할 수 없었다.

 

더우면 더운 대로, 추우면 추운 대로 안정적인 것이 저 여린 생물들이 대비하기 쉬울 터였다.

 

햇볕 한 줌에 자라난 새싹은 다음 날 얼어 죽을 테다.

 

사람들은 병에 걸려 고통받을 터.

 

봄은 고개를 저었다.

 

짧은 고수머리가 잘랑잘랑 흔들려 그의 눈을 가렸다.

 

그리하여 그는 보지 못하였다.

 

그래도 작은 싹이 흙을 밀어내고 고개를 드는 것을.

 

갓 태어난 짐승이 어미에게 보채고 어미는 다정하게 어르는 것을.

 

어른이 아이에게 옷을 겹쳐 입는 것을, 단추 여미는 법을 가르치는 것을.

 

 

 

-여름-

더보기

와씨 타죽겠네.”

 

여름은 티셔츠 목께를 잡고 마구 흔들었다.

 

그 옆의 사람들 역시 길을 걸으며 선풍기를 사용하거나 부채를 사용하거나 손에 잡히는 거라면 뭐든 얼굴 앞에 대고 흔들어 댔다.

 

저들은 그나마 형편이 나았다.

 

차를 타든 건물에 들어가든 차가운 공기로 열을 식힐 것이고 물도 마실 테니까.

 

여름이 정말 염려하는 것은 어리거나 늙거나 여리고 힘 없는 것들이다.

 

그들은 겨우 나무그늘 밑에서 해를 피한다.

 

아스팔트조차 녹아내리는 이런 날에도.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한 거 아니냐.”

 

그는 도무지 자신을 사랑할 수 없었다.

 

때문에 이 세상을 사랑할 수 없었다.

 

더위는 끔찍하다.

 

때로는 마실 물조차 여의치 않다.

 

가장 약한 것들이 가장 먼저 나가떨어졌다.

 

해가 없는 밤조차도 열기는 식지 않고 사람들을 괴롭힌다.

 

여름은 눈을 감았다.

 

저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가게에 피서하러 오세요라는 종이를 붙이는데도.

 

저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길짐승을 위해 물을 따라놓는데도.

 

저 어딘가에서 사람들이 지구를 지키자고 하는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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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괏au

2022. 8. 10. 00:20 | Posted by 호랑이!!!

“오.”

후플푸프 학생은 사람들이 점점 모이길래 고개를 들었다가 그 학생들이 녹색이나 붉은 색 장식을 단 것을 확인하고 다시 고개를 내렸다.

저놈들 또 시작이네.

불구경 싸움 구경이 재미있다는 것도 어디 한 두 번 이어야 말이지.

잠깐 설명을 좀 하자면-

볼드모트의 몰락 이후 슬리데린은 대개 기가 죽어있었다.

살아남은 소년의 부모 양쪽이 그리핀도르라는 것 때문에 그리핀도르 앞에서는 더더욱 그랬다.

그리핀도르는 그리핀도르대로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가서 신입생까지도 ‘살아남은 소년’이 이미 그리핀도르에 들어오기라도 한 양, 이미 같은 기숙사생인 것처럼도 얘기하곤 했다. 마는.

이것은 무언가.

지금 슬리데린은 가을날 독 오른 독사처럼 빳빳하게 고개를 들고 있었다.

“아무리 그리핀도르라고 하더라도, 우리 좀 그만 괴롭히지 그래!”

“...하! 이름을 말할 수 없는 그 사람이 나온 기숙사 주제에!”

어라? 그렇게 외치는 그리핀도르의 기세는 오히려 어딘가 꺾여있지 않은가.

후플푸프는 그 그리핀도르 녀석들 가장 앞에 훤칠하니 눈에 띄는 퀴디치 선수를 발견했다.

사람 괴롭히는데 탁월한 재주가 있는 역대 최고의 몰이꾼을.

눈에 띄게 잘생긴 얼굴이라고는 할 수 없어도(저 못돼먹은 성격 때문에라도) 염문설이 끊이지 않았기에 후플푸프 학생은 대체 싸움박질하는 데 가장 앞장서기까지 하는 저 사람이 왜 인기가 있는지 의문이었다.

솔직히는, 졸업해서 뭐가 될까도 궁금했다.

그리고 반대로, 슬리데린 학생들이 그에게서 감추듯이 가장 뒤로 밀어낸 학생은 다소 신경질적인 표정이었지만 오히려 그 표정이 분위기를 이끌어내는 미남이었다.

그리핀도르 무리 중 가장 앞에 선 그 망나니가 가슴에 손을 얹었다.

“억울한데. 내가 뭘 했다고 그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이 뻔뻔한 자식아!”

“뭐 임마?”

너 다음 연습경기 때 두고보자고 하는 말에 어쩐지 슬리데린 선수의 기세가 꺾어졌다.

“아니, 졸업 학년이면 공부나 진로 고민을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이 양아치!”

“적어도 죽음을 먹는 자들 무리에는 가입하지 않을 테니까!”

“그게 돈을 주기는 하냐!”

“너희가 해줄 고민은 아니거든!”

왁왁거리며 쏟아내는 고함들을 기꺼이 누리며 크나트는 슬리데린들을 노골적으로 내려다보았다.

“칭찬 고오-맙다.”

마치 이래도 덤빌래? 라고 하듯.

무리를 거느리는 사자새끼같이.

“이봐, 거기 키티. 네 입으로 말해보지 그래. 내가 널 괴롭혔냐? 패기라도 했어?”

“그건...”

율리안은 망설였다.

저 얼굴만 멀끔한 선배가 따라다니기는 하지만, 손을 대기는 하지만, 가끔은 남이 있건 없건 아랑곳 않거나 목욕탕에도 따라들어오거나 하는데다 그 손이 자신을... 으음, 괴롭힌 적도 있기는 있었지만...

아무튼 때리거나 아프게 한 적은 없었다.

아마도.

“그건... 아닙니다만...”

슬리데린들은 머리를 감쌌다.

애당초 율리안에게 괴롭힘이라는 기준은 지나치게 높다고! 특히나 자신에게 가해지는 것이라면 더더욱!

아니이 근데 당사자가 저렇게 말해버리면 안되는 거 아냐! 특히나 이런 상황에선!

어물어물 부정해버리는 율리안을 한 번, 그리고 (저 자식이랑 율리안을 두고 가면 안 될 것 같은데)크나트를 한 번 쳐다보고, 슬리데린은 조용히 해산했다.

그러면 그리핀도르들은 어깨에 힘 한 번 주고 대장 사자의 어깨를 툭 툭 치고는 또 시끌벅적하게 가버리는 것이다.

“우리도 갈까?”

“가기는 어딜 간다는 말입니까, 우리라고 하지 마십시오.”

“그럼 이렇게 탁 트인 곳에서 하고 싶단 말이야? 저렇게 사람도 많은데?”

“이- 입! 입입입! 입!”

차마 손을 대지는 못하고 손가락으로 필사적으로 입 누르는 시늉을 하자 심술궂은 표정으로 히죽 웃는다.

“누누가 뭘 할 거라고 그런- 그런-”

“혀 씹은 거 아파 보이는데, 내가 낫게 해 줄까-?”

율리안은 그 비상한 머리로 저 말이 곧 학생에게 부적절한 소리로 이어질 것임을 깨달았다.

“그먀, 만! ...하십시오. 학생은 그런 소리 하면 안 됩니다.”

“왜 안 돼? 슬리데린 녀석들은 이런 소리 안 해? 아니던데?”

뭘?! 누가? 왜? 언제!?

아 왜는 왜야, 어차피 저 인간이 원인이고 범인이겠지!

“어차피 선배 때문일 거 아닙니까!!!”

원래부터 차가운 인상으로 노려보기까지 했더니 항복이라는 듯 양손을 든다.

“그래서 저를 부른 용건이 뭡니까?”

이 사람의 이미지가 있다 보니 부르기만 해도 슬리데린들이 지켜줄 거라고 우우 몰려들었기에, 겨우 이것을 묻는데만도 이만큼이나 시간이 걸린다.

“자, 이거.”

끝이 불그스름하게 물든 검은 장미가 불쑥 들이밀어졌다.

“웬... 꽃입니까?”

가시가 없는 줄기를 받아들었다.

이 삭막한 곳에서 꽃이라니.

식물이야 스프라우트 교수의 온실에서 가지각색 자라고 할로윈이면 호박등, 크리스마스면 사냥터지기가 거대한 전나무를 가져와주지만 이런 꽃은 보기가 어렵다.

율리안이 묘한 감동을 느끼는 사이 크나트도 그 비슷한 생각을 했다.

꽃 같은 게 꽃을 들고 있네.

다발로 가져올 걸.

“변신술 수업에서 만든 거야. 줄게.”

“원래는 뭐였는데요?”

“저저번 주에는 튤립이었다가 이번 주에는 민들레.”

아 그래서 가시도 없고 잎도 없구나.

“이제 졸업까지 얼마 안 남았으니까. 이번 주말에 같이 호그스미드 갈래?”

“...다 좋지만, 그거 저저번주에도 한 얘기 아닙니까?”

크나트가 웃었다.

율리안은 한숨을 쉬고 장미를 주머니에 넣었다.

지금 시간이면 기숙사가 비어 있겠지.

그에게 질질 끌려가면서 크나트가 생각했다.

이 애는 내가 졸업하면 아쉽겠다고 생각해주지는 않을까.

그러거나 말거나, 교수로 굳어진 자신의 진로를 말해 줄 생각은 없지만.

[심장에 피는 꽃+감자들]음공으로 뱀파이어 잡기

2022. 7. 10. 16:08 | Posted by 호랑이!!!

블랑은 커피를 한 모금 넘겼다.

 

화창한 오후였다.

 

사실 해도 안 졌으니 뱀파이어가 활동하기에는 지나치게 이른 시간이었으나 직업 특성상 블랑은-거의 밤낮이 바뀌다시피 할 정도로-이런 시간에 일어나는 것이 익숙했다.

 

붉게 져가는 노을을 커튼 너머로 감상하며 해가 질 때까지 몇 시간이나 남았는지 가늠하는 중, 나직하게 진동이 울렸다.

 

오늘 편집자와 약속이 있었던가?

 

블랑은 화면을 보지도 않고 통화를 연결했-

 

[블랑씨이이이!!!!!!!]

 

[언니ㅠㅠㅠㅠㅠ!!!!!!]

 

[여기 완전 큰일났어요!!!!!!!!!!]

 

내가 스피커폰으로 해 뒀던가!?

 

블랑은 순식간에 터지는 음파에 직격당해 비틀거렸다.

 

아니, 애당초 스피커폰이 이렇게나 컸었나!

 

핸드폰 쪽 귀를 문지르며 블랑이 한숨을 쉬었다.

 

요점만 말해.”

 

[메로스씨가 쓰러졌어요!!!!!!]

 

“...?”

 

귀를 문지르던 손이 멈췄다.

 

블랑은 자신의 스피커폰 설정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테이블에 폰을 내려놓았다.

 

“...미안한데 처음부터 다 말해줄래?”

 

감자 세 마리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했다.

 

엉엉 우는 아이들의 말을 잘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콜린이 소리 질러서 메로스 씨를 잡았어요!

 

“...아니 그게 무슨 말이야 대체!?”

 

[저희가 소리 질러서 그런 거예요!]

 

[기절 시켰어요!]

 

[콜린이 맨드레이크예요!]

 

그러니까 그게 무슨 말이냐고?!”

 

[저희가!]

 

[소리로!]

 

[메로스씨 귀에서 피가!!!]

 

귀에서 피.

 

거기까지 들은 블랑은 자신의 귀 아래를 더듬었다.

 

기분탓이겠지만, 어쩐지 축축한 것 같았다.

 

 

 

 

 

더보기

메로스는 아이들 먹일 피자와 햄버거를 주문했다.

 

아직 일어날 시간이 아닌지라 자신은 입맛이 없지만, 자고로 아이들은 잘 먹여야 한다니까.

 

마실 것도 커다란 페트로 두 개, 피자는 네 판, 햄버거는 간식으로 먹으라고 네 세트 주문해서 식탁위에 올려둔 상태였다.

 

이제 아이들보고 밥 먹으라고 부르러 가는데, 방 안에서 기척 죽이는 소리가 났다.

 

눈 뜨면 안돼

 

너네야말로 부수면 안돼!’

 

속닥거리는 걸 보니 무언가 놀고 있는 모양이지.

 

문을 살짝 열자 아이 세 명이 보였다.

 

하나는 수건으로 눈을 가리고.

 

무겁다싶더니 하나는 문에 매달려 있고.

 

그리고 하나는...

 

“......”

 

요즘 인간들은 우리보다 신체 능력이 좋은걸.

 

메로스는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쉬잇!’

 

심지어 눈이 마주치자 한 팔을 떼서 입 앞을 가리는 시늉까지 한다.

 

그런데 저걸 내가 말한다고 잡을 수나 있나? 대체 어떻게 올라간 거지?

 

...악마인가? 소환서는 지하에 넣어둔 줄 알았는데...

 

잡았다!”

 

아까 소리를 냈던 탓인지 수건으로 눈을 가린 어린이가 메로스의 팔을 덥석 잡았다.

 

옛날 옛적의 아들 보는 기분에, 메로스는 답지 않게 장난기가 돌았다.

 

그래서 이를 드러내고, 자신의 팔을 잡은 손을 무는 시늉을 했다.

 

내가 잡은 게 누구-”

 

메로스의 기억은 거기까지였다.

 

 

 

 

#아침장사 (글숨봇)

2022. 7. 4. 00:34 | Posted by 호랑이!!!

오늘 A의 아침은 정말 끝내줬다.

 

알람이 울리기 삼십분 전에 눈이 뜨였었는데 심지어 피곤하지도 않았다!

 

그대로 일어나 옷을 골라 입고 빵 두 쪽에 계란과 과일까지 멋지게 식사를 마쳤고 집을 나서자 신호등은 전부 초록색에 타야 하는 버스까지 자신의 앞에서 멈추지 뭔가.

 

아 세상에, 심지어 그 버스 안에는 B도 있었다.

 

B는 이 시간에 나오는구나. 가장 뒷자리에서 가장 앞자리를 훔쳐보며 A는 저릿한 감동을 맛보았다.

 

 

 

 

 

 

 

 

그날 밤, AC와 아침에 대해 한 시간은 더 이야기하고 싶었으나 일찍 일어난 탓에 찾아온 지독한 피곤함으로 일찍 잠들어버렸다.

 

불이 꺼지고 숨이 고르게 변하자 A의 머리맡으로 갓을 쓴 사람이 스르르 나타났다.

 

창백한 얼굴로 A의 베개 위를 귀엽다는 듯 쓰다듬은 그이는 창문을 열었다.

 

아침- 아침 팔아요-”

 

낭랑하게 들리는 소리에 그는 넓은 소매를 흔들었다.

 

아침 장수, 아침 파시오.”

 

아침장수가 14층 창문으로 다가왔다.

 

좋은 아침은 어땠습니까? 정말 좋았지요?”

 

꽤 효과가 좋기는 했네만, 큰 맘 먹고 아주아주 굉장히 좋은 아침을 샀는데도 아이가 말 한 마디도 못 붙여보지 않았나.”

 

에이 그거야 오늘 처음 산 거니까 그렇죠. 그래도 만나기까지 했으니 제법 괜찮지 않습니까? 말 정도야 몇 번 더 하면 될 겁니다.”

몇 번이라면, 얼마나?”

 

글쎄요... 이게 줄 수 있는 건 기회고, 물론 많이 만나다보면 잘 될 기회도 많기는 한데 사실 아이들 용기에 달린 일이라서요-”

 

시험삼아 일주일 정도 사면 어떻겠습니까? 네에?

 

아니, 우리 애가 오늘 친구랑 말하고 싶은 것도 못 하고 잠든 거 안 보여! 이걸 일주일씩이나 보란 말이야! 자네가 아직 애가 없어서 그래, 애가 하고 싶은 거 못 하고-

 

어르신 그럼 닷새, 닷새만요.

 

그거나 그거나 뭐가 달라! 우리 애가 친구랑 말도 못 하고 트위터도 못 하고 만화도 못 보고 노래도 못 듣고 게임도 못 하고 자는 짓을 닷새씩이나 하라고! 이 나이 때 그런 게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

 

아이고 어르신 그럼 딱 사흘, 사흘 어떻습니까.

 

떼잉 쯧, 즐거운 새벽이하로는 받지도 않으면서!

 

어차피 애들은 많이 자야 건강해지고 키도 크지 않습니까, 제가 눈 딱 감고! 즐거운 밤하나랑 즐거운 새벽하나만 받을게요.

 

아침 장수와 어르신이 한참이나 수군수군 말을 하더니 결국 어르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아주아주 굉장히 좋은 아침하나랑 조금 피곤하지만 꽤 괜찮은 아침하나, 이만하면 꽤 괜찮은 아침하나 구매하시는 거지요. 여기 있습니다.”

 

아침 장수는 아침 세 개를 꺼내고 어르신도 반짝거림이 각기 다른 밤과 새벽들을 내놓았다.

 

살펴 가게.”

 

평안하십시오-.”

 

아침 장수는 창문이 닫히는 걸 보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휴, 저 분은 정말 못 당한다니까.”

 

아침 장수, 개시 하였소?”

 

예 예, 어르신!”

 

아침 장수는 동네 몇 개를 가로질렀다.

 

다정한 인상의 어른이 B의 머리맡에 앉아 있었다.

 

오늘 우리 아이가 즐거워하는 걸 보았더니 기분이 좋소. 내일도 같은 것으로 주지 않겠소?”

물론입지요! 아예 사흘치를 한 번에 구매하시는 것은 어떠십니까? 한 번에 사신다면 좀 싸게 드리겠습니다.”

 

어디 얘기를 하여 보시오.”

 

억지로 눈을 뜨려고 하였으나 실패한 것인지, B의 휴대폰 화면이 천천히 어두워졌다.

 

그것을 귀엽게 보며 어르신은 모아둔 좋은 밤과 즐거운 새벽의 갯수를 헤아렸다.

 

 

호괏에유

2022. 6. 28. 00:15 | Posted by 호랑이!!!

주것나?’

 

올해 신입생인 퀸타페드는 호수 산책을 하다 며칠째 같은 자리, 같은 시간, 같은 책을 얼굴에 덮고 누운, 같은 사람을 보았다.

 

혹시 이 사람, 처음부터 여기 시체로 방치되었던 건 아닐까?

 

까만 교복망토 아래로 살랑거리는 꼬리를 보다 페드는 손수건을 깔고 그 옆 벤치에 앉았다.

 

과제를 위해 가지고 나온 버섯 백과만 팔랑팔랑 넘어갔다.

 

 

 

 

 

역시 주근거다

 

손수건을 깔고 앉아 버섯 백과를 폈다.

 

과제는 어제 다 끝냈지만 래번클로의 고질병인지 도무지 한 번 시작한 책을 놓을 수 없었다.

 

옆 벤치는 바람이 불면 툭 튀어나온 꼬리가 살랑살랑 흔들렸지만 그 외 미동도 기척도 없어 집중하기에는 아주 좋았다.

 

‘...그런데 호그와트에서 누가 죽을 수도 있나?’

 

수십년 전인가 한 명 죽었다고 선배들이 알음알음 말해주기는 했고, 기숙사 유령들도 다 죽은 사람이니까 호그와트에서도 누가 죽을 수 있기는 하겠지.

 

하지만 누가 죽었다더라 사고가 있었다더라 하고 듣는 것과, 화창한 날 나무그늘이 드리워진 벤치에서 몇 날 며칠 미동도 없는 사람이 존재하는 건 또 달랐다.

 

결국 퀸타페드는 래번클로의 정체성을 내려놓았다.

 

사람이 살아있다면 보이는 징후로는 호흡, 맥박, 심박... 그리고 또 기타등등.

 

아직 짤막한 꼬리가 망토를 들어올렸다.

 

얼굴을 덮은 책 위에서 한참을 허우적거리던 손은 바랜 밀짚 같은 머리를 뜯어놓았다가 결국 아무런 소득 없이 버섯 백과를 쥐고 원래 자리에 앉았다.

 

희멀겋고 때로는 모래같기도 한 자신의 비늘과는 달리 색이 아주 진한 꼬리가 바로 앞에서 흔들렸다.

 

퀸타페드는 그 꼬리가 흔들리는 모습을 한참이나 보았다.

 

손가락이 꼼지락거렸다.

 

하지만 역시, 그는 래번클로지 그리핀도르가 아니었다.

 

 

 

 

 

주것슬지도 몰라

 

어느 정도 확신이 들었다.

 

자신이 조용히 와서 책을 읽고 갈 때까지 안 일어나는 건 그럴 수도 있다.

 

바스락 바스락 걸어와서 책을 읽고 갈 때까지 안 일어나는 것도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어제는 머리맡에서 바스락 바스락 했고 벤치에 돌아와 앉았을 때 털썩도 했는데 안 일어나는 건 그럴 수 없다.

 

퀸타페드는 책갈피를 꽂고 책을 밀어놓았다.

 

오늘은 반드시 맥이라도 짚어 보리라.

 

이걸 위해서 어제 동양의 머글 의술에 관한 책도 빌려왔다고!

 

퀸타페드는 잘 보면 위아래로 흔들리는 것 같은 책을 비장하게 노려보았다.

 

이제는 책 제목도 외웠다.

 

애머릭 스위치의 입문자를 위한 변환 마법.

 

그렇다는 건 이 사람도 나랑 같은 신입생이라는 거겠지?

 

비록 거의 일 년 내내 어느 수업에서도 못 본 것 같지만 애당초 퀸타페드는 남의 얼굴을 기억할 필요성을 거의 못 느꼈다.

 

어찌되었든 동학년이면 의도하지 않아도 이름과 얼굴 정도는 외우게 될 터.

 

퀸타페드는 하얗고 말랑한 사람을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뭐 해?”

 

쉬잇.”

 

5학년 O.W.L. 책을 끌어안은 아우라가 입 앞에 손가락을 대었다.

 

덤불 뒤로 숨을 수 있는 키였기에 휴런인 친구를 잡아 억지로 바닥에 앉혔다.

 

저기, 래번클로 신입생이 우리 기숙사 애 자는 데에 매일매일 오더라고.”

 

자는 데에? 뭐하러?”

 

글쎄... 깨우고 싶은 모양인데?”

 

둘은 덤불 틈의 사이를 슬쩍 벌렸다.

 

파란 색 깃을 단 아우라가 교재를 얼굴에 덮은 미코테 주위를 서성이고 있었다.

 

손을 건드리고 싶은 듯 가까이 다가갔다가 멈추고, 책을 치우고 싶은 듯 손을 뻗었지만 거기에서 더 가까워지지는 못 했다.

 

제길, 가까이 가란 말이야.”

 

“...모두가 그리핀도르 같지는 않아.”

 

모래색 비늘이 돋은 꼬리가 불만스럽게 위아래로 흔들렸다.

 

저기에 뭔가 물건이 있었다면 탁탁 소리가 날 터였다.

 

한참이나 꼬리를 움직이던 아우라가 마음을 정했는지, 가까이 다가갔다.

 

목표는 늘어진 손()!

 

발이 쪼끔쪼끔씩 다가간다.

 

팔이 바들바들 떨리며 가까워진다!

 

좋아 이제 조금만 더 가면... 조금만 더 하면...... 조금... 조금만 더..........

 

-”

 

, 잠깐...!”

 

흐윗취이이이!!!!!”

 

그리핀도르 아우라는 급히 휴런 친구의 입을 막으려 들었지만 그게 그렇게 쉽게 되지는 않았다.

 

결국 후플푸프 휴런은 큰 소리로 재채기를 했고, 아우라는 그의 입을 막으려 들었지만 이미 늦었다.

 

덤불 너머에서 흔들리던 꼬리는 밤송이처럼 비늘이 뻗쳤기에!

 

그리핀도르 아우라와 후플푸프 휴런은 슬금슬금 일어나 그대로 도망쳐버렸다.

 

 

 

 

 

 

 

퀸타페드는 삐죽삐죽하게 비늘이 솟은 꼬리를 꽉 잡아 강제로 비늘을 눕혔다.

 

“...”

 

“...? 신입생?”

 

마악 잠에서 깼는데도 눈이 동그란 미코테의 귀가 삐죽 섰다.

 

... 쪽도, 신입생이 아닙니까?”

 

네가 냐 잘 때 잎 떼준거야?”

 

“...”

 

끄덕끄덕.

 

라레타는 어느 순간 안락해진 자신의 낮잠 장소를 돌아보았다.

 

얇은 담요가 생겼고 작은 베개도 있다.

 

나무 그늘은 적절하고 때로 옷 위에 떨어지던 잎은 흔적도 없다.

 

쾌적하다.

 

또 올 거냐고 물으려는 찰나에 아우라가 도망쳐버렸다.

 

라레타는 부를까 생각했다가 길게 하품을 했다.

 

아무래도 한잠 더 자야겠다.

 

그리하여 이 미코테는 솜사탕 같은 꼬리를 갈무리한 뒤, 1~2학년 공통교재 입문자를 위한 변환 마법서를 얼굴 위로 끌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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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립틱 파크] 카우보이가 스크래치를 이해할 때

2022. 6. 20. 22:49 | Posted by 호랑이!!!

스포일러 있음

선동과 날조

캐해 망함

기타 등등

 

 

 

 

 

 

 

더보기

모든 연기자들이 다 돌아간 후, 워린은 스크래치에게 커다란 양 다리를 던져주었다.

 

스크래치는 양 다리를 향해 달려가기는 했지만 예전처럼 신나 보이지는 않았다.

 

그야 스크래치는 요즈음 충분히 노는 중이었으니까.

 

낮 동안 스크래치가 노는 것은 이렇다.

 

1. 관람객들에게 신나게 달려가기.

 

2. 리아에게 적절한 때 제압당하기.

 

3. 리아가 음산한 목소리로 너무 가까이 가지 않는 게 좋을 걸... 하고 경고하는 것 듣기.

 

리아는 스크래치가 놀이라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했지만 요즈음 워린이 보기에 스크래치는 충분히 노는 중이었다.

 

하지만 저 2번은 뭐란 말인가?

 

제압당하는 게 대체 왜 좋은지 워린은 정말 이해할 수 없었다.

 

모양을 만들 때 하필 마스코트 인형 같은 걸 참고해서 그런가?

 

스크래치는 다른 야생의 것들과는 달리 남을 해치는 것을 썩 즐기지 않았다(물론 그렇다고 안 해친다는 소리는 아니다).

 

그래서 그런가?

 

그 외에는 답이 될 만한 게 떠오르지 않는다.

 

언젠가 모스를 앉혀놓고 물어보려 했지만 모스는 대략적인 얘기를 듣자마자 뭐 그딴 걸 생각하느냐는 눈빛을 보냈었다.

 

그래, 거의 경멸에 가까웠지.

 

워린은 부하직원에게 일 못한다고 눈치받은 상사처럼 한숨을 쉬었다.

 

 

 

 

 

 

현관문 앞에서 리아는 주머니를 뒤졌다.

 

집 열쇠가 없다.

 

아까 옷을 갈아입으면서 주머니에 있던 열쇠를 책상 위에 올려놨고...

 

제기랄, 그대로 까먹었구나.

 

가는 데도 시간이 제법 걸리니 이 근처 친구 집으로 가거나 이웃집으로 가도 되겠지만 요즈음은 한창 더워지고 있었고, 이 옷을 입은 채 땀을 잔뜩 흘렸었다.

 

외박했느냐는 시선을 받는 거야 별 것 아니지만 땀 흘린 이 옷을 또 입는다는 게 신경이 쓰여 어쩔 수 없이 다시 차에 올랐다.

 

어쩌겠어, 오늘 저녁에는 드라마 보면서 야식 못 먹는거지.

 

그 대신으로 먹을 레몬 사탕을 한 봉지 사서 한 개 포장을 벗겼다.

 

그리고 주차장에 차를 대는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네들을 다룰 연기자들도 없는 야간에 비연기자들이 있는 직장에 가라고?

 

...지금이라도 집에 돌아갈까?

 

딱딱한 사탕이 어금니에서 금이 가는 소리가 들렸다.

 

다섯개째 사탕이 작살나는 소리였다.

 

이게 부디 자신의 목에서 나는 소리가 되지 않기를 바라며, 리아는 남은 사탕을 한움큼 집어 주머니에 쑤셔넣었다.

 

얇고 부드러운 운동복 바지 주머니라 그 안의 사탕 봉지가 이따끔 허벅지를 찌르는 걸 애써 무시하며 걸음을 빨리했다.

 

어쩐지 이 직장에 온 후로는 빨리 걷거나 뛰는 일이 많은 것 같아.

 

게다가 음악소리며 사람 소리가 사라져 기괴할만큼 고요한 곳이라 그런지 자신의 발걸음 소리가 커다랗게...

 

어디 가?!!”

 

으아악 깜짝이야!”

 

내 발걸음이 아니었구나!

 

!!! 시간에!!!!!!”

 

흉폭한 마차에서 마차꾼이 커다랗게 소리를 질렀다.

 

!!! 무실!!!! 열쇠!!! 두고 와서!!!!!!”

 

여기 탈래!?!?!?!? 밧줄!!!!! 던져!!!!! 줄게!!!!”

 

리아는 양 팔로 머리 위로 커다랗게 동그라미를 그리며 펄쩍펄쩍 뛰고 마차가 오는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미친듯이 날뛰는 말 때문에 땅이 거칠게 떨렸다.

 

밧줄이 날아오자 리아는 그 끝을 가볍게 잡아챘고 육중한 몸체가 달리는 그 사나운 힘에 딸려갔다.

 

이거 제법 놀이기구 같은걸.

 

리아는 휘파람이라도 불고 싶었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무의식인지 온 몸의 근육이 굳지만 않았어도 그랬겠지.

 

덧붙여서 발이 땅에 닿아 있었다면.

 

밧줄이 당겨지고 네이선이 리아를 마부석으로 끌어올려주었다.

 

고마워요. 캔디 좀 먹을래요?”

 

떨어지지 않게 조심해.”

 

안전벨트 같은 게 있을 리 없었기에 리아는 마부석 등받이를 꽉 잡았다.

 

네이선은 레몬사탕을 받아 내려다보았다.

 

그가 단 것을 먹은지도 꽤 되었다고 했지.

 

어차피 제 것은 차에도 남았으니 주머니에서 잡히는대로 꺼내 내밀었다.

 

네이선은 가벼운 눈짓으로 감사를 표했는데, 그 순간 마차 바퀴가 덜컹 튀어올랐다.

 

작고 가벼운 레몬사탕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 흩어졌다.

 

어어!?”

 

네이선은 슬픈 표정으로 사탕이 떨어진 곳을 쳐다보았다.

 

“...난 괜찮아.”

 

그런 표정으로 말해봤자 설득력이 없는데요!?

 

정말이야. 내일 청소할 데일이나 불쌍하지.”

 

리아는 서둘러 주머니를 뒤졌으나 네이선이 그 손등을 눌렀다.

 

됐어, 이제 내려야지.”

 

이 괴물 마차가 언제 이렇게 온 건지.

 

리아는 뛰어내릴만한 푹신한 잔디를 눈여겨보고는 마차가 그 옆을 지나가는 틈을 타 몸을 던졌다.

 

고마워요!!!”

 

별 말씀을!!!”

 

내일 봐요오오오오오옷!!!!!!”

 

저 멀리서 네이선의 목소리가 들렸으나 말이 발을 굴러대는 소리 때문에 어떤 소리인지 알 수가 없어졌다.

 

문을 열자 긴 복도가 있었다.

 

아무래도 이 곳의 특성상 유난스러운 보안은 필요하지 않았기에 문은 그저 열렸다.

 

리아는 휴대폰 불빛만 켰다.

 

객관적으로는 물론 어리석은 생각이었으나 아무래도 그간 겪었던 일로 인해 제법 담력이 세진 터다.

 

안으로 들어서서 휴게실 겸 사무실 문을 열었다.

 

여기 어디 있을텐데.

 

이제 물건을 찾아야 하니까 아무래도 불을 켜야겠지?

 

벽을 더듬어 스위치를 올렸다.

 

동시에 하얗게 빛이 들어오며 사무실 내부가 또렷해졌다.

 

커튼을 걷고 간 덕분에 전면의 유리창은 새까매서 거기 비친 리아가 입은 셔츠 색까지 구분이 될 정도였다.

 

어우 사람 하나 더 있는 거 같네.

 

캐비닛 쪽으로 가며 리아가 중얼거렸다.

 

빨리빨리 열쇠를 찾아서 나가야지...를 생각하다가 의자에 발이 걸려 비틀거렸다가 희미하게 느껴지는 공포와 짜증과 기타등등에 의자를 발로 세게 밀어내자 요란한 소리가 났다.

 

아마 이걸 데일이 확인...할 지도 모르지만.

 

알 게 뭐야, 하라지!

 

발로 몇 번 의자를 밀어내자 제법 널찍하게 공간이 생긴다.

 

이제 발에 걸리거나 넘어지지는 않겠다.

 

의자가 밀리는 요란한 소리가 사라지자 이제 다시 완전한 정적이 찾아왔다.

 

어째 마차가 달리는 소리도 안 들리네.

 

빨리 열쇠를 찾아야지.

 

나갈 때도 네이선이 태워줄까? 거리야 얼마 안되지만 재미있-

 

주차장 근처에 몸을 던질만한 곳이 있던가?

 

어쨌거나 거기 타려면 네이선이 근처에 있을 때 나가야 할 텐데.

 

네이선은 핸드폰 없지? 없겠지.

 

비록 불필요하다지만 식사나 화장실로 마차에 내려오는 것도 통증을 동반한다고 했다.

 

그들이 핸드폰 충전이나 수리 등을 필요한 것으로 쳐줬을지는 의문이다.

 

핸드폰이라도 갖다줘야 하나.

 

물론 낮에는 못 하겠지만 보조배터리와 핸드폰이 있다면 밤이 제법 즐거워지지 않을까.

 

...여기 와이파이가 있던가?

 

별별 생각을 하며 캐비닛 숫자를 읽었다.

 

마악 몸을 돌리려는 순간, 뒤에서 손이 뻗어왔다.

 

학생 때 배워두었지만 제대로 익혀두지 않았던 호신술이 쥐어짠 천에서 흐른 마지막 물방울처럼 스며나와 뒤에서 덮친 인영을 몸 위로 넘겨 바닥에 메다꽂았다.

 

아주 운이 좋게 있는줄도 몰랐던 기술이 나왔다는 의미이다.

 

뭐냐! ...카우보이?”

 

동그랗게 뜬 눈이 리아를 올려다보았다.

 

검은 침이 새어나오는 갈라진 입술은 반쯤 벌어져 이 비연기자에게 일말의 인간성을 부여해주고 있었다.

 

다쳤어? 괜찮아?!”

 

강도도 도둑도 아닌 뜻밖의 인물에 리아도 잠시 상황을 파악하느라 굳어있었다가 이내 누구인지 확인하고는 후다닥 일어나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 세상에, 이런 곳에 어떤 멍청한 강도가 들어오겠어.

 

물론 대답이 돌아오지는 않았지만, 카우보이는 폴짝폴짝 뛰며 한 바퀴 돌아서 자신이 무사함을 알렸다.

 

하지만 여전히 표정은 어딘가 헤벌어져 있었다.

 

그야.

 

워린은 그 찰나의 표정이 뇌리에 박혀 사라지지 않았으니까.

 

눈을 뎅그렇게 뜨고 호기심어린 표정으로 딴에는 진지하게 여기저기 쑤석거리는 거야 많이 봐왔다.

 

웃거나 뛰거나 힘들다며 투덜거릴때의 표정도 많이 봐왔다.

 

그런데 자신을 뭘로 오인했는지는 몰라도- 잡아서 냅다 던져버릴 때의 얼굴이라니!

 

일순 리아가 자신이나 이 공원에 대해 낱낱이 파헤쳤나 헷갈리기까지 할 뻔했다!

 

아아 이러니까 스크래치놈이 리아와 있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지.

 

마스코트에서 원형을 따 왔지만, 나도 제법 닮았나본데.

 

안 다쳤어? 다행이다. 그게, 오늘 열쇠를 두고 가서 찾아보고 있었어.”

 

리아가 작은 열쇠고리가 붙은 것을 흔들었지만 워린은 도저히 거기 시선이 가지 않았다.

 

그가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걱정을 잔뜩 하고 괜찮냐고 두 번은 더 묻고, 거기에 사탕까지 손에 쥐어주고서야 리아는 이제 가봐야 한다며 카우보이와 함께 나갔고, 워린은 조용히 마차를 가까운 곳으로 불렀지만 도저히 정신이 돌아오질 않았다.

 

평소 스크래치와 같이 있을 때는 좀 더 장난스럽고 과장스러운... 그런... 느낌이었는데...

 

앗 하는 순간에 바닥에 처박힌 것이나.

 

그 바닥에서 리아를 올려다봐야 했던 것이나.

 

그 올려다본 얼굴이 엄청나게 엄했던 것이라던가...

 

리아는 마차를 타고 떠났고 올 때와는 달리 얌전해진 마차가 멈추기까지 하자 저 멀리서 시동 걸리는 소리가 났다.

 

워린의 입은 다시 흉폭해진 마차를 탄 네이선이 세 번째로 그 앞을 지나칠 때까지도 여전히 헤벌어져 있었다.

 

한 손에는 끈적끈적하게 녹아가는 레몬 사탕을 쥐고.

 

그걸 본 네이선이 혀를 찰 정도로.

 

[섹서필] 발레리안의 여름

2022. 5. 24. 00:41 | Posted by 호랑이!!!

진한 여름 냄새가 났다.

 

발레리안은 고개를 들었다.

 

모든 이에게 박한 계절이 지나고 있었다.

 

그 사실이 기꺼웠다.

 

차갑고 냉혹한 계절의 밤이 되고 달이 떠서 좁은 골목을 거닐 때면 이따끔 날 리 없는 피 냄새가 걸음마다 쫓아왔기 때문에.

 

절대 잊지 못할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결국 얼굴은 잊혔다.

 

목소리도 잊었다.

 

냄새조차도 희미하다.

 

그러나 한겨울 밤에, 조명이라고는 달빛밖에 없는 때에 거리를 순찰해야 할 때면-

 

발레리안은 불과 피 냄새를 맡았다.

 

그와 다니는 후배들은 겨울에 담배를 피우는 횟수가 늘었다.

 

이제는 제법 쌓인 연차를 되돌아보는데 들리는 소리에 귀가 쫑긋하게 섰다.

 

파이 아저씨!”

 

밤만큼이나 짙은 나무그늘 아래에서 아이 소리가 들렸다.

 

겨울밤에 내리는 눈만큼이나 하얗게 작열하는 햇빛과의 경계가 뚜렷했다.

 

발레리안이 돌아보자 허리만큼도 안 되는 아이들이 해 안으로 뛰어와 오늘은 과자가 없냐고 매달렸다.

 

그 너머에서는 아이의 보호자가 수줍게 손을 들어 흔든다.

 

꽃이 졌다가 다시 피어나는 계절이다.

 

여름에 피어나는 온갖 붉고 누른 꽃들과 겹겹이 드리워진 녹색 나뭇잎과 두터운 구름을 뚫고 내비치는 새파란 하늘까지 온갖 다채로운 것들이 세상을 메운다.

 

열기 품은 바람이 꽃과 땀과 아이들과 피크닉 바구니, 심지어는 담배 냄새까지도 온통 몰아 왔다.

 

목덜미에 매달리는 한기가 녹아내렸다.

 

여름이었다.

 

 

[심장에 피는 꽃] 메로스랑 블랑이랑

2022. 5. 11. 00:09 | Posted by 호랑이!!!

자네 여기서 뭐하나?”

 

으엉?”

 

블랑은 떠지지 않는 눈을 비비고 시계를 확인했다.

 

오후 네 시.

 

자신이야 일 관계상 이 시간에도 일어나긴 하는데, 대체 이 뱀파이어가 자신을 깨울 일이 뭐가 있단 말인가.

 

....

 

시상식은 모레인데...”

 

그러니까! 어떻게 아직도 이러고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뭐야, 뭔데.

 

어어하는 사이에 블랑은 납치되었다.

 

짙게 썬팅된 자동차 뒷자리에 실려버렸다!

 

아무리 짙게 썬팅되었다고 해도 아직 다 지지 않은 해가 비쳐 따끔거렸기에, 블랑은 눈을 질끈 감고 외쳤다.

 

, 몸값이라면 얼마든지 줄 테니까!”

 

필요없어!”

 

단호해.

 

얼마간 달리다 차가 멈추자, 블랑은 낡은 폐 창고 같은 것을 떠올렸다.

 

다 왔다며 문을 열어준 메로스는 잡으라는 듯 손을 내밀었다.

 

차 밖으로 나오자 스쳐가는 비릿한 냄새, 흐린 하늘, 수상쩍은 양복 입은 사람들과 총기와 밀수용 상자...

 

같은 것은 없었다.

 

스파?”

 

아슬아슬하게 도착해서 다행이야. 코스를 예약해뒀으니 들어가면 되네.”

 

스파?

 

코스?

 

설명을 요구하는 시선을 보냈지만 메로스는 여느 때와 같이 무뚝뚝한 표정으로 여자 종업원에게 블랑을 맡겨버렸다.

 

, 이게 뭐야? 날 어디로 데려가려는 거-”

 

어머나- 피부가 정말 하얗네요.”

 

크게 상한 곳도 없고, 관리를 잘 하시나 봐요~”

 

꾹꾹, 주물주물, 꾹꾹, 꾸욱.

 

으어어...”

 

장미를 베이스로 한 오일 향이 끝내줬다.

 

냉차 한 잔 드시겠어요? 복숭아랑 우롱을 넣어 끓인 거예요.”

 

꿀도 들어갔나봐, 끝내준다.

 

그리고 무엇보다 끝내주는 건, 숙련된 사람들의 마사지였다.

 

블랑은 마사지와 간식과 오일과 기타등등(그리고 다 못 깬 졸음까지)에 휩쓸려 순식간에 노곤노곤 녹아버렸다.

 

직원들은 블랑이 말랑말랑 녹아버린 틈을 타 온갖 팩과 마사지와 관리를 하고 머리 손질을 하고 엷게 화장까지 해주었다.

 

왔나? 어땠지?”

 

마찬가지로 얼굴이 반질반질한 메로스가 로비에서 반겨주었다.

 

“...진흙 목욕... 끝내줬어...”

 

그치 그거 끝내주지, 메로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땅 팠을 때 그런 진흙은 안 나왔었는데.”

 

나도 땅 좀 파봤는데 그런 진흙은 잘 안 나오더라고 메로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안 남은 우롱차가 어쩐지 아까워서 꿀꺽꿀꺽 마시고 빈 컵을 내려놓자 어느샌가 다가온 종업원이 조용히 치워주었다.

 

이거하러 온 거야? 시상식 대비해서? 완전 좋았어, 시상식 가면 원작가보다는 배우라고 생각할지도 몰라!”

 

딸기를 한입 가득 문 토끼처럼 금방이라도 우다다할 것 같은 블랑에게 메로스는 손을 내밀었다.

 

블랑은 아무런 주저 없이 그 손을 잡았고.

 

다시 검은 차에 실렸다!

 

어어? 집에 가는 거 아냐!?”

 

누가 순순히 집에 보내준다고 했지?”

 

, 뭐야! 날 놔줘, 이 악당!”

 

얌전히 있으면 험한 짓은 안... 시트 차지 말게, 그러다 진짜 사고 난- 사고난다니까!”

 

차를 멈춘 메로스는 식식거리면서 뒷문을 열어주었고 발자국이 남은 뒷좌석을 보고 뒷목을 잡았다.

 

나중에 저거 다 세차 시킬거야!”

 

!”

 

“...손님, 열쇠를 주시면 주차해놓겠습니다.”

 

직원에게 열쇠와 팁을 주고 메로스와 블랑은 왁왁거리며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여전히 삐뚤어진 표정으로 메로스는, 옷가게에서 그가 할 수 있는 복수를 했다.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다 입혀주게.”

 

 

1차 완성

2022. 4. 21. 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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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롷] 고대au

2022. 3. 29. 23:56 | Posted by 호랑이!!!

이 곳이 아발론이구려.”

 

신기한 듯, 즈라한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후후, 정확히는 아발론 기숙사예요. 학교는 저 쪽으로 나가면 있답니다.”

 

라이레이는 부채로 저 쪽 정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발론의 기숙사에는 출신이나 성적에 관계없이 다양한 학생을 받곤 했기 때문에 건물 밖임에도 시끌벅적함이 묻어났다.

 

이런 시끌벅적한 사람 소리는 얼마만에 듣는 것이던가.

 

즈라한은 어쩐지 감개무량한 표정으로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장난을 치는 사람들, 웃음 소리, 날아다니는 물건... 날아다니는 사람...

 

사람?

 

내가 먹은 게 아니다!”

 

투구에 붙은 부스러기나 떼고 말하시지, 이 악당!”

 

계단 위에서 사람이 날아왔다.

 

와장창, 까앙, 콰그작- 하는.

 

사람이 내는 것이라기에는 다소 의문을 남기는 소리와 함께.

 

어머, 샬롯.”

 

안녕! 나중에 또 봐!”

 

격조의 인사와 이별의 인사를 한 마디 안에 쑤셔넣다시피하며 샬롯은 계속 뛰어갔고, 틀림없이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던 사람도 벌떡 일어나더니 후다닥 도망갔다.

 

고철이 우그러지고 뒤틀린 기묘한 소리, 영혼에서 우러나오는 비명.

 

코 끝에는 혈액의 향이 감지되고 시각적으로는 이해하고 싶지 않은 일이 인식되었다.

 

“...라이레이...”

 

널찍한 소매를 꼬옥 쥐며 즈라한은 넋이 빠진 얼굴로 중얼거렸다.

 

나는 너무나도 무섭쏘...”

 

 

 

 

 

 

 

돌려받았어!”

 

즈라한은 강렬한 기억을 남긴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위풍당당한 표정으로, 샬롯은 타르트를 들어올렸다.

 

앞에서 기뻐하는 분홍색 머리카락의 사람과 은색 머리카락의 사람 때문에 차마 입 밖으로 낼 수는 없었지만, 즈라한은 묻고 싶었다.

 

어디에서!?

 

대체 어디에서 그걸 돌려받았다는 거지!? 뱃속? 역시 뱃속인가!?

 

바스락거리는 기름종이며 투명하게 반짝이는 포장지를 보면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았겠지만 이성이라는 것은 늘 본의 아니게 잃어버리는 법이다.

 

경악하는 중, 손이 팔에 닿자 즈라한은 깃털이 뒤집어질 정도로 놀라버렸다.

 

“...”

 

“....”

 

샬롯 앞에 있던 은색 머리카락의 사람이다.

 

즈라한은 부풀어오른 검은 깃털을 꾹꾹 눌러 가라앉히며 자세를 낮추었다.

 

처음뵙겠소이다. 즈라한이라 하오. 오늘부로 기숙사에 들어오게 되었소이다.”

 

 

[미드가르드 드레이크] 사마낙 일상로그

2022. 3. 15. 00:04 | Posted by 호랑이!!!

털이 길고 근육이 단단해서 날렵하다기보다는 육중하다는 수식이 어울리는 말.

 

고삐를 당기면 사납게 발을 치켜들고 투레질을 하다 분에 못 이기는 것처럼 발을 내려찍는다.

 

그 사나운 울림에 나뭇가지마다 맺힌 고드름이 후두둑 떨어지고 땅에서 자라난 서리는 짓이겨진다.

 

그 말 위에서 두껍고 커다란 망토를 두른 기사는.

 

사마낙은.

 

그 사나움이 못내 흡족한 듯 더운 기가 물씬 오르는 목덜미를 두드려주었다.

 

말을 멈춘 아슬아슬한 절벽 끝에서 시선을 아래로 두면 새카만 바다가 아우성친다.

 

무거운 망토조차 들썩일 정도로 날카롭게 부는 바람에 검은 파도는 검은 바위에 부딪쳐 하얗게 조각나 부서졌다.

 

하늘조차도 희끄무레하게 구름이 낀 곳.

 

비현실적으로 흑과 백 뿐인 경치.

 

녹색과 노란색과 붉은 빛들로 따사롭고 풍요로운 환경에 잠겨 있는 것도 좋았으나 때로 사마낙은 박할 정도로 인간에게 냉혹한 이런 곳이 그리웠다.

 

마치 숨겨두었던 본성을 풀어놓듯이 부러 거칠게 고삐를 당기자 아직 야생성을 잃지 못한 이 말은 등 위의 포식자를 위협하듯 앞발을 들었다가 뒷발질을 하며 날뛰었으나 결국 식식거리는 숨을 토해내며 분풀이를 하듯이 땅을 내달렸다.

 

거칠고 각박한 땅에 자갈돌과 나뭇가지가 우두둑 우두둑 부러지고 육중한 몸이 아무렇게나 던진 고무공처럼 이리저리 뛰었다.

 

그 날뛰는 위에서 겨우 다리 힘만으로 버티며 사마낙은 온 몸에 갈 데 없는 열이 솟는 것을 느꼈다.

 

열이 심장을 돌고 손가락 마디마디에 힘을 주고 등자를 당긴다.

 

마술처럼 가볍게 활을 잡고 낡은 과녁에다 화살을 쏘았다.

 

파공음을 내는 창은 한때 그가 가장 서툴게 다루던 것이었으나 이제 손 안에서 묘기에 가까울 정도로 능숙하게 돌아간다.

 

이제는 활이나 도끼 따위보다 석궁과 화승총을 쓰는 세상임에도 때로 사마낙은, 쇠 부딪치는 소리가 그리웠다.

 

때로 그와 합을 맞출 기사들이 그립기도 했다.

 

하지만 도시로 나가서 자신이 어릴 적 살던 곳을 살펴보면, 아이들은 추위에 떨지 않는다.

 

배를 곯지도 않고, 숨지도 않고, 제가 어릴 적이라면 상상도 못 했을 기름진 음식을 입에 넣는다.

 

그런 평화와 사치스러움을 떠올려보자면.

 

이 정도 그리움은 자신이 치를 것 중에서도 아주 소박한 댓가일 것이다.

 

 

크나트 리비오 율리케

2022. 3. 11. 10:05 | Posted by 호랑이!!!



[크나트 리비오 율리케/마피아/TM]


2017. 7. 10. 2:21 ・




" 이해해, 그렇지만 내 입장이라는 것도 있어서 어쩔 수 없구나 "






인장
  

(@qkfnqkfn95님 커미션입니다)

이름 : 크나트 리비오 율리케 (Knaut Livio Ulrike)
나이 : 47
키 / 체중 : 185cm/과체중



외관
피부는 여름의 이탈리아에 어울리게 잘 태운 연한 갈색이다. 단정하게 빗어 넘긴 머리는 짙은 갈색. 머리는 단정하게 보이도록 깎아 왁스 등으로 정리한다. 눈썹은 머리카락과 같은 색이고 짙은 편이라 정기적으로 보기 좋게 다듬는다. 속눈썹은 긴 편이고 속눈썹 아래 눈은 초록색과 파란색 사이의 밝은 색이며 다소 바랜 듯한 색의 녹색에 가깝다. 눈 자체는 큰 편이나 꼬리가 처져 있고 날이 밝을 동안은 반쯤 감고 있어서 졸려 보일 것이다. 턱은 다소 각져있고 왼편에 흉이 한 가닥 있는 입술은 얇은 편인데 웃는 상이다. 수염은 입 주위에서 귀 아래까지 연하게 나 있다. 몸은 얼핏 보았을 때는 그렇게까지 중량이 나갈 것 같지 않아 보이지만 옷을 벗으면, 혹은 몸을 만져보면, 제법 단단한 근육이 보일 것이다. 보기 좋은 역삼각형 몸매는 하얀색 셔츠, 연한 녹색(간혹 파란색) 손수건을 포함한 검은 쓰리피스 정장으로 감싸고 있고 옷은 전부 주문품이다. 어깨나 다른 부분에 맞춰 일반 셔츠를 입으면 가슴쪽 단추가 벌어지거나, 끼기 때문에. 구두 역시 검은색이고 양말은 회색, 벨트는 가죽 제품이라 비를 맞는 것을 싫어한다. 그 외 시계나 반지 같은 악세서리는 하지 않는다. 손은 제법 큰 편이고 화상 자국이 부분부분 남아있다.



성격
키워드1 : 다정
되도록 남에게 다정하게 해주려고 한다. 소설 대부에게 영향을 많이 받은 세대 중에 하나라 어린 여자아이가 꽃을 팔면 한 다발은 반드시 사주고 노인이 길을 걷고 있다면 반드시 함께 길을 건너 준다.

키워드2 : 깐깐함
그런 다정함도 만난 사람이 자신에게 중요하지 않을 때만이다. 어떤 관계로든 깊게 얽히게 되면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영향을 주고받을 것인지 하나하나 다 재어본다. 비단 이런 것은 사람에게만 통하는 것은 아니라 융통성이 없다고 할 정도로 적어도 조직 일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기준을 가지고 움직인다. 결벽증이라고 해도 좋겠지만 다른 사람에게까지 같은 기준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마음에 들어하지 않을 뿐.

키워드3 : 자부심과 충성심의 혼합물
어떤 일이 자신에게 맡겨진다면 끝까지 해낸다. 어쩌면 깐깐함이나 완벽주의 같은 단어가 더 어울릴 수 있으나 크나트에게 조직에 관한 것은, 조직에서 맡겨지는 일은 자부심을 준다. 덕분에 자신이 오명을 뒤집어쓰는 것도, 일을 깔끔하게 처리하지 못하는 것도, 모두 조직에 누를 끼치는 일이라며 싫어한다.

키워드4 : 냉정함
가장 원하는 것을 위해서라면 칼같이 다른 것을 버릴 수 있다. 현재 가장 원하는 것이 조직의 안녕일 뿐. 길 잃은 아이를 만나 한참이나 예뻐하다가도 조직에 관련되어 일이 생기거나, 그 아이가 조직 쪽으로 나쁘게 관련된 아이라면 그 자리에서 총을 꺼내 쏠 수 있다.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하고 그 결과에 따라 행동이 달라진다.



소속
마피아



기타
한때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식사 전, 취침 전에도 꼬박꼬박 기도를 올리고 십계와 말씀에 따라 선량하게 살아가려고 했던. 그러나 물건의 유통경로 중간에 성당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곧바로 성경을 쓰레기통에 던져 버리고 착실하게 조직에 충성을 바치게 되었다.
할아버지가 마피아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자경단 소속이었다. 할아버지 아래에서 총을 쏘는 법이라던가 암묵적인 규칙 등을 배웠으며 할아버지의 인맥을 통해 현재 조직에 몸담게 되었다.
술도 담배도 좋아하지 않는다. 약도 좋아하지 않는다. 총은 잘 쏘지만 사격도 안 좋아하고 좋아하는 거라고는 운동 뿐이라 주머니에는 여차할 때 사용할 주문제작한 너클이 있다. 너클에는 꽃 없이 잎사귀만 자란 가지가 양각으로 새겨져 있으며 맞으면 많이 아프다. 너클로 때리면 뼈 정도는 부러뜨리지만 너클 없이 맞아도 아프다. 되도록 총을 사용하자는 주의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은 너클을 가지고 있는지도 잘 모른다.
자라난 마을은 포도밭이 있는 바닷가 작은 마을. 어릴 때는 매일같이 수영했다.
가끔 놀라면 욕을 사용할지도 모른다.
주머니 안에 희석한 플레이용 미약이 있다.


선관: X



선관 동시 합격 여부
O / X



성향
TM


캐릭터 선호 / 기피 플레이
선호 : 약물, 착의 상태의 애무
기피 : 스캇 골든 더티플 고어 피어싱 롤플레이 스팽킹

오너 선호 / 기피 플레이
선호 : 약물 도구 본디지 요도플 산란
기피 : 스캇, 골든, 더티플, 고어, 피어싱, 스팽킹, 강간시키기 전에 합의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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