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랑은 커피를 한 모금 넘겼다.
화창한 오후였다.
사실 해도 안 졌으니 뱀파이어가 활동하기에는 지나치게 이른 시간이었으나 직업 특성상 블랑은-거의 밤낮이 바뀌다시피 할 정도로-이런 시간에 일어나는 것이 익숙했다.
붉게 져가는 노을을 커튼 너머로 감상하며 해가 질 때까지 몇 시간이나 남았는지 가늠하는 중, 나직하게 진동이 울렸다.
오늘 편집자와 약속이 있었던가?
블랑은 화면을 보지도 않고 통화를 연결했-
[블랑씨이이이!!!!!!!]
[언니ㅠㅠㅠㅠㅠ!!!!!!]
[여기 완전 큰일났어요!!!!!!!!!!]
내가 스피커폰으로 해 뒀던가!?
블랑은 순식간에 터지는 음파에 직격당해 비틀거렸다.
아니, 애당초 스피커폰이 이렇게나 컸었나!
핸드폰 쪽 귀를 문지르며 블랑이 한숨을 쉬었다.
“요점만 말해.”
[메로스씨가 쓰러졌어요!!!!!!]
“...?”
귀를 문지르던 손이 멈췄다.
블랑은 자신의 스피커폰 설정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테이블에 폰을 내려놓았다.
“...미안한데 처음부터 다 말해줄래?”
감자 세 마리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했다.
엉엉 우는 아이들의 말을 잘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콜린이 소리 질러서 메로스 씨를 잡았어요!
“...아니 그게 무슨 말이야 대체!?”
[저희가 소리 질러서 그런 거예요!]
[기절 시켰어요!]
[콜린이 맨드레이크예요!]
“그러니까 그게 무슨 말이냐고?!”
[저희가!]
[소리로!]
[메로스씨 귀에서 피가!!!]
귀에서 피.
거기까지 들은 블랑은 자신의 귀 아래를 더듬었다.
기분탓이겠지만, 어쩐지 축축한 것 같았다.
메로스는 아이들 먹일 피자와 햄버거를 주문했다.
아직 일어날 시간이 아닌지라 자신은 입맛이 없지만, 자고로 아이들은 잘 먹여야 한다니까.
마실 것도 커다란 페트로 두 개, 피자는 네 판, 햄버거는 간식으로 먹으라고 네 세트 주문해서 식탁위에 올려둔 상태였다.
이제 아이들보고 밥 먹으라고 부르러 가는데, 방 안에서 기척 죽이는 소리가 났다.
‘눈 뜨면 안돼’
‘너네야말로 부수면 안돼!’
속닥거리는 걸 보니 무언가 놀고 있는 모양이지.
문을 살짝 열자 아이 세 명이 보였다.
하나는 수건으로 눈을 가리고.
무겁다싶더니 하나는 문에 매달려 있고.
그리고 하나는...
“...오...”
요즘 인간들은 우리보다 신체 능력이 좋은걸.
메로스는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쉬잇!’
심지어 눈이 마주치자 한 팔을 떼서 입 앞을 가리는 시늉까지 한다.
그런데 저걸 내가 말한다고 잡을 수나 있나? 대체 어떻게 올라간 거지?
...악마인가? 소환서는 지하에 넣어둔 줄 알았는데...
“잡았다!”
아까 소리를 냈던 탓인지 수건으로 눈을 가린 어린이가 메로스의 팔을 덥석 잡았다.
옛날 옛적의 아들 보는 기분에, 메로스는 답지 않게 장난기가 돌았다.
그래서 이를 드러내고, 자신의 팔을 잡은 손을 무는 시늉을 했다.
“내가 잡은 게 누구-”
메로스의 기억은 거기까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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