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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립틱 파크] 카우보이가 스크래치를 이해할 때

2022. 6. 20. 22:49 | Posted by 호랑이!!!

스포일러 있음

선동과 날조

캐해 망함

기타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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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연기자들이 다 돌아간 후, 워린은 스크래치에게 커다란 양 다리를 던져주었다.

 

스크래치는 양 다리를 향해 달려가기는 했지만 예전처럼 신나 보이지는 않았다.

 

그야 스크래치는 요즈음 충분히 노는 중이었으니까.

 

낮 동안 스크래치가 노는 것은 이렇다.

 

1. 관람객들에게 신나게 달려가기.

 

2. 리아에게 적절한 때 제압당하기.

 

3. 리아가 음산한 목소리로 너무 가까이 가지 않는 게 좋을 걸... 하고 경고하는 것 듣기.

 

리아는 스크래치가 놀이라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했지만 요즈음 워린이 보기에 스크래치는 충분히 노는 중이었다.

 

하지만 저 2번은 뭐란 말인가?

 

제압당하는 게 대체 왜 좋은지 워린은 정말 이해할 수 없었다.

 

모양을 만들 때 하필 마스코트 인형 같은 걸 참고해서 그런가?

 

스크래치는 다른 야생의 것들과는 달리 남을 해치는 것을 썩 즐기지 않았다(물론 그렇다고 안 해친다는 소리는 아니다).

 

그래서 그런가?

 

그 외에는 답이 될 만한 게 떠오르지 않는다.

 

언젠가 모스를 앉혀놓고 물어보려 했지만 모스는 대략적인 얘기를 듣자마자 뭐 그딴 걸 생각하느냐는 눈빛을 보냈었다.

 

그래, 거의 경멸에 가까웠지.

 

워린은 부하직원에게 일 못한다고 눈치받은 상사처럼 한숨을 쉬었다.

 

 

 

 

 

 

현관문 앞에서 리아는 주머니를 뒤졌다.

 

집 열쇠가 없다.

 

아까 옷을 갈아입으면서 주머니에 있던 열쇠를 책상 위에 올려놨고...

 

제기랄, 그대로 까먹었구나.

 

가는 데도 시간이 제법 걸리니 이 근처 친구 집으로 가거나 이웃집으로 가도 되겠지만 요즈음은 한창 더워지고 있었고, 이 옷을 입은 채 땀을 잔뜩 흘렸었다.

 

외박했느냐는 시선을 받는 거야 별 것 아니지만 땀 흘린 이 옷을 또 입는다는 게 신경이 쓰여 어쩔 수 없이 다시 차에 올랐다.

 

어쩌겠어, 오늘 저녁에는 드라마 보면서 야식 못 먹는거지.

 

그 대신으로 먹을 레몬 사탕을 한 봉지 사서 한 개 포장을 벗겼다.

 

그리고 주차장에 차를 대는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네들을 다룰 연기자들도 없는 야간에 비연기자들이 있는 직장에 가라고?

 

...지금이라도 집에 돌아갈까?

 

딱딱한 사탕이 어금니에서 금이 가는 소리가 들렸다.

 

다섯개째 사탕이 작살나는 소리였다.

 

이게 부디 자신의 목에서 나는 소리가 되지 않기를 바라며, 리아는 남은 사탕을 한움큼 집어 주머니에 쑤셔넣었다.

 

얇고 부드러운 운동복 바지 주머니라 그 안의 사탕 봉지가 이따끔 허벅지를 찌르는 걸 애써 무시하며 걸음을 빨리했다.

 

어쩐지 이 직장에 온 후로는 빨리 걷거나 뛰는 일이 많은 것 같아.

 

게다가 음악소리며 사람 소리가 사라져 기괴할만큼 고요한 곳이라 그런지 자신의 발걸음 소리가 커다랗게...

 

어디 가?!!”

 

으아악 깜짝이야!”

 

내 발걸음이 아니었구나!

 

!!! 시간에!!!!!!”

 

흉폭한 마차에서 마차꾼이 커다랗게 소리를 질렀다.

 

!!! 무실!!!! 열쇠!!! 두고 와서!!!!!!”

 

여기 탈래!?!?!?!? 밧줄!!!!! 던져!!!!! 줄게!!!!”

 

리아는 양 팔로 머리 위로 커다랗게 동그라미를 그리며 펄쩍펄쩍 뛰고 마차가 오는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미친듯이 날뛰는 말 때문에 땅이 거칠게 떨렸다.

 

밧줄이 날아오자 리아는 그 끝을 가볍게 잡아챘고 육중한 몸체가 달리는 그 사나운 힘에 딸려갔다.

 

이거 제법 놀이기구 같은걸.

 

리아는 휘파람이라도 불고 싶었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무의식인지 온 몸의 근육이 굳지만 않았어도 그랬겠지.

 

덧붙여서 발이 땅에 닿아 있었다면.

 

밧줄이 당겨지고 네이선이 리아를 마부석으로 끌어올려주었다.

 

고마워요. 캔디 좀 먹을래요?”

 

떨어지지 않게 조심해.”

 

안전벨트 같은 게 있을 리 없었기에 리아는 마부석 등받이를 꽉 잡았다.

 

네이선은 레몬사탕을 받아 내려다보았다.

 

그가 단 것을 먹은지도 꽤 되었다고 했지.

 

어차피 제 것은 차에도 남았으니 주머니에서 잡히는대로 꺼내 내밀었다.

 

네이선은 가벼운 눈짓으로 감사를 표했는데, 그 순간 마차 바퀴가 덜컹 튀어올랐다.

 

작고 가벼운 레몬사탕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 흩어졌다.

 

어어!?”

 

네이선은 슬픈 표정으로 사탕이 떨어진 곳을 쳐다보았다.

 

“...난 괜찮아.”

 

그런 표정으로 말해봤자 설득력이 없는데요!?

 

정말이야. 내일 청소할 데일이나 불쌍하지.”

 

리아는 서둘러 주머니를 뒤졌으나 네이선이 그 손등을 눌렀다.

 

됐어, 이제 내려야지.”

 

이 괴물 마차가 언제 이렇게 온 건지.

 

리아는 뛰어내릴만한 푹신한 잔디를 눈여겨보고는 마차가 그 옆을 지나가는 틈을 타 몸을 던졌다.

 

고마워요!!!”

 

별 말씀을!!!”

 

내일 봐요오오오오오옷!!!!!!”

 

저 멀리서 네이선의 목소리가 들렸으나 말이 발을 굴러대는 소리 때문에 어떤 소리인지 알 수가 없어졌다.

 

문을 열자 긴 복도가 있었다.

 

아무래도 이 곳의 특성상 유난스러운 보안은 필요하지 않았기에 문은 그저 열렸다.

 

리아는 휴대폰 불빛만 켰다.

 

객관적으로는 물론 어리석은 생각이었으나 아무래도 그간 겪었던 일로 인해 제법 담력이 세진 터다.

 

안으로 들어서서 휴게실 겸 사무실 문을 열었다.

 

여기 어디 있을텐데.

 

이제 물건을 찾아야 하니까 아무래도 불을 켜야겠지?

 

벽을 더듬어 스위치를 올렸다.

 

동시에 하얗게 빛이 들어오며 사무실 내부가 또렷해졌다.

 

커튼을 걷고 간 덕분에 전면의 유리창은 새까매서 거기 비친 리아가 입은 셔츠 색까지 구분이 될 정도였다.

 

어우 사람 하나 더 있는 거 같네.

 

캐비닛 쪽으로 가며 리아가 중얼거렸다.

 

빨리빨리 열쇠를 찾아서 나가야지...를 생각하다가 의자에 발이 걸려 비틀거렸다가 희미하게 느껴지는 공포와 짜증과 기타등등에 의자를 발로 세게 밀어내자 요란한 소리가 났다.

 

아마 이걸 데일이 확인...할 지도 모르지만.

 

알 게 뭐야, 하라지!

 

발로 몇 번 의자를 밀어내자 제법 널찍하게 공간이 생긴다.

 

이제 발에 걸리거나 넘어지지는 않겠다.

 

의자가 밀리는 요란한 소리가 사라지자 이제 다시 완전한 정적이 찾아왔다.

 

어째 마차가 달리는 소리도 안 들리네.

 

빨리 열쇠를 찾아야지.

 

나갈 때도 네이선이 태워줄까? 거리야 얼마 안되지만 재미있-

 

주차장 근처에 몸을 던질만한 곳이 있던가?

 

어쨌거나 거기 타려면 네이선이 근처에 있을 때 나가야 할 텐데.

 

네이선은 핸드폰 없지? 없겠지.

 

비록 불필요하다지만 식사나 화장실로 마차에 내려오는 것도 통증을 동반한다고 했다.

 

그들이 핸드폰 충전이나 수리 등을 필요한 것으로 쳐줬을지는 의문이다.

 

핸드폰이라도 갖다줘야 하나.

 

물론 낮에는 못 하겠지만 보조배터리와 핸드폰이 있다면 밤이 제법 즐거워지지 않을까.

 

...여기 와이파이가 있던가?

 

별별 생각을 하며 캐비닛 숫자를 읽었다.

 

마악 몸을 돌리려는 순간, 뒤에서 손이 뻗어왔다.

 

학생 때 배워두었지만 제대로 익혀두지 않았던 호신술이 쥐어짠 천에서 흐른 마지막 물방울처럼 스며나와 뒤에서 덮친 인영을 몸 위로 넘겨 바닥에 메다꽂았다.

 

아주 운이 좋게 있는줄도 몰랐던 기술이 나왔다는 의미이다.

 

뭐냐! ...카우보이?”

 

동그랗게 뜬 눈이 리아를 올려다보았다.

 

검은 침이 새어나오는 갈라진 입술은 반쯤 벌어져 이 비연기자에게 일말의 인간성을 부여해주고 있었다.

 

다쳤어? 괜찮아?!”

 

강도도 도둑도 아닌 뜻밖의 인물에 리아도 잠시 상황을 파악하느라 굳어있었다가 이내 누구인지 확인하고는 후다닥 일어나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 세상에, 이런 곳에 어떤 멍청한 강도가 들어오겠어.

 

물론 대답이 돌아오지는 않았지만, 카우보이는 폴짝폴짝 뛰며 한 바퀴 돌아서 자신이 무사함을 알렸다.

 

하지만 여전히 표정은 어딘가 헤벌어져 있었다.

 

그야.

 

워린은 그 찰나의 표정이 뇌리에 박혀 사라지지 않았으니까.

 

눈을 뎅그렇게 뜨고 호기심어린 표정으로 딴에는 진지하게 여기저기 쑤석거리는 거야 많이 봐왔다.

 

웃거나 뛰거나 힘들다며 투덜거릴때의 표정도 많이 봐왔다.

 

그런데 자신을 뭘로 오인했는지는 몰라도- 잡아서 냅다 던져버릴 때의 얼굴이라니!

 

일순 리아가 자신이나 이 공원에 대해 낱낱이 파헤쳤나 헷갈리기까지 할 뻔했다!

 

아아 이러니까 스크래치놈이 리아와 있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지.

 

마스코트에서 원형을 따 왔지만, 나도 제법 닮았나본데.

 

안 다쳤어? 다행이다. 그게, 오늘 열쇠를 두고 가서 찾아보고 있었어.”

 

리아가 작은 열쇠고리가 붙은 것을 흔들었지만 워린은 도저히 거기 시선이 가지 않았다.

 

그가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걱정을 잔뜩 하고 괜찮냐고 두 번은 더 묻고, 거기에 사탕까지 손에 쥐어주고서야 리아는 이제 가봐야 한다며 카우보이와 함께 나갔고, 워린은 조용히 마차를 가까운 곳으로 불렀지만 도저히 정신이 돌아오질 않았다.

 

평소 스크래치와 같이 있을 때는 좀 더 장난스럽고 과장스러운... 그런... 느낌이었는데...

 

앗 하는 순간에 바닥에 처박힌 것이나.

 

그 바닥에서 리아를 올려다봐야 했던 것이나.

 

그 올려다본 얼굴이 엄청나게 엄했던 것이라던가...

 

리아는 마차를 타고 떠났고 올 때와는 달리 얌전해진 마차가 멈추기까지 하자 저 멀리서 시동 걸리는 소리가 났다.

 

워린의 입은 다시 흉폭해진 마차를 탄 네이선이 세 번째로 그 앞을 지나칠 때까지도 여전히 헤벌어져 있었다.

 

한 손에는 끈적끈적하게 녹아가는 레몬 사탕을 쥐고.

 

그걸 본 네이선이 혀를 찰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