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쏟아졌다.
이례적인 장마라고, 근 십 년 내에는 비할 게 없는 장마라고 뉴스에서는 떠들어 댔다.
동시에 비가 그치면 작년보다 더 더운 날이 된다는 얘기도 나왔으므로 저 뉴스는 아무런 정보가 되지 못하고 빗소리에 맞서 어떻게든 공간을 차지하려 들었다.
그 불쌍한 소리를 눌러 죽일 생각으로 창문을 열자 소리가 한층 강하게 쏟아졌다.
숨이 막힐 것 같은 후덥지근함 속에 유일하게 시원스러운 것이었다.
멀쩡한 침대에 멀쩡한 책상을 두고 찬 바닥에 앉아 벽에 등을 대고 앉아서 불을 붙이지 않은 담배를 꺼내물었다.
들척지근한 담배향이 가루처럼 입 안으로 새어들어와 타액에 녹았다.
혀 끝에서부터 입 안을 서서히 잠식해갔다.
필터에서 나오는 희미하게 역한 맛이며 입술 너머로 느껴지는 작고 동그란 구슬이며.
이것을 깨물면 상쾌하게 박하 향을 툭 터뜨리겠지.
그 깨지는 감각이 꽤 중독적이고, 향도 좋았으므로 잠시간 이것을 깰까 충동이 들었으나 내킬 때 나가서 이것을 피울 생각이었으므로 그러지 않기로 했다.
A는 손 끝을 조그만 진주알에 올렸다.
이렇게 물소리가 나는 날에는.
그래서 물에 잠긴 것 같은 날에는.
내가 호흡하는 것이 유달리 신경쓰이고 어색하게 느껴지는 날에는 그 아이가 생각났다.
같은 동그라미라도 저 물방울처럼 흔하디 흔한 보통 사람인 나와 달리, 이 진주처럼 보통 사람이 아닌 그 애가.
입에 문 필터가 타액으로 젖어갔다.
축축한 것이 거슬렸으나 굳이 빼내고 싶지 않았다.
차가운 물 속에서 잘 지내고 있을지.
갑작스레 사라진 만큼 또 갑자기 나타날 것만 같았다.
‘뻐끔’
그래, 이렇게.
A는 식어버린 채 며칠이나 방치되었던 커피잔으로 시선을 돌렸다.
“너 뻐끔거리는 거 안 하잖아.”
“너 보라구 하는 거지~”
시선이 마주치자 저 어두운 바닷속에서 보내는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환한 미소가 돌아왔다.
“아이스크림 먹고 싶어! 놀러 갈게!”
“사 놓을게. 언제 올 건데?”
“5분 뒤에 도착할거야!”
“미리 말을 하고 오란 말이야!”
A는 허둥지둥 일어나 담배를 뱉다가 습관적으로 재떨이에 으깨버리고는 절망에 빠진 목소리로 울었다.
그러면서도 몸은 착실하게 우산과 지갑을 챙겼고 신발 뒤축을 구겨신으며 뛰쳐나갔다.
그 서슬에 텔레비전이 꺼졌다.
무의미한 소음이 사라진 공간으로 폭포처럼 빗소리가 쏟아져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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