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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더건/율리안] 비슷한 사람

2022. 10. 30. 23:48 | Posted by 호랑이!!!

여어.”

 

율리안은 보조가방 가득 책을 담아서 걷다가 집주인과 마주쳤다. 바깥에서 마주쳐서 좋을 것 없는 인간이지만 인사를 받은 이상 무시할 배짱은 없었기에 가볍게 목례 했다.

 

어디 가시나요?”

 

마악 온 거야.”

 

무슨 뜬금없는 소리를 하는 거야. 하지만 이 사람은 그에 대한 설명을 해주는 대신 그대로 가 버렸다. 또 무언가 질척거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상하단 말이야. 율리안은 저 사람도 바쁜 일이 있겠거니 하며 일과를 보내고 밤에 다시 크나트와 마주쳤다.

 

일은 잘 끝났습니까?”

 

무슨 일?”

 

아까 바쁘게 갔잖습니까.”

 

“...?”

 

크나트는 드물게 멍청한 얼굴을 했다. 그는 고개를 기울이다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이 얼굴이 둘은 아닐 텐데. 헷갈릴 만한 얼굴도 아니고...”

 

“?”

 

오늘 우리는 계속 건물 안에서 대기였거든. 점심도 누가 사온 맛대가리 없는 도넛으로 때웠어.”

 

이상한 일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율리안은 크나트가 자발적으로 사 먹을 리 없는 음식을 역겨워하면서 즐겁게 먹는 것도 보았고 어제 샀던 넥타이를 같은 상점에서 사서 나오는 것도 보았다. 심지어 오늘은-

 

스호르 씨, 만난 김에 같이 저녁 먹으러 가자.”

 

스호르... ? 저 양반이 성으로 부르는 것만도 놀랄 일인데 라고?

 

어디 아픈 거 아닙니까?”

 

평소에 이렇게 안 불렀나.”

 

언제 그렇게 불렀습니까? 또 이런 것으로 저를 놀릴 셈이라면-”

 

평소에 뭐라고 불렀는데? 불러줘, 뭐 그런 식으로 놀릴 셈이었겠지. 이런 개방적인 장소가 뭐 어떠하냐면서. 율리안의 눈이 세모꼴로 날카로워지자 크나트는 아무래도 좋지 않냐며 어물쩍 손을 내밀었다.

 

드디어 당신이 바깥에서의 체면을 챙기기 시작하는 것 같아 다행입니다.”

 

그러자 뭐가 좋은지 또 웃어젖힌다.

 

이 쪽이 좋구나.”

 

당연합니다.”

 

설마 당신, 지금까지 계속 거부했는데도 바깥에서 달링이니 자기니 하고 불러댔던 건 제가 좋아한다고 생각해서- 하고 다시 입을 딱 다물자 그럴 리가 있냐며 손을 내젓는다.

 

아무튼 스호르씨는 내가 좋다는 거지? 그래 그래, 그럼 이제 밥이나 먹으러 가자.”

 

그게 또 왜 그렇게 연결된다는 말입니까! 하고 왈칵 성을 내면서도 율리안은 멋진 호텔 레스토랑으로 끌려갔다. 분위기 있는 음악이 흐르고 미리 예약해둔 듯한 음식이 차례로 나온다. 심지어 디저트까지 끝내고 나니 직원이 한아름이나 되는 꽃다발을 가져다주기까지 했다.

 

“...감사, 합니다...?”

 

이 사람이 이런 거 좋아하긴 하지만 공개적인 장소에서 이렇게 유치한 짓을 하지는 않았는데. 이제 당연한 수순으로 이 위에 딸린 호텔방을 예약했다는 말을 하겠지. 율리안은 품에 안은 책을 추슬렀다.

 

차 몰고 나왔지요? 트렁크에 책을 먼저 뒀으면 합니다.”

 

- ..., 오늘은 안 가지고 왔어.”

 

율리안은 새삼스럽다는 표정으로 크나트를 쳐다보았다.

 

뭐 괜찮습니다. 이 정도는 무겁지 않으니까요. 잠깐 드는 정도라면-”

 

그래? 튼튼하네. 그럼 이따 집에서 봐.”

 

?”

 

율리안은 크나트를 빤히 바라보았다. 평소랑 비슷한 웃는 얼굴인데... 뭔가 수상쩍게 다르다. 그러나 크나트는 율리안에게 손을 내밀지도 않았고, 다음 코스를 짜놨다던가, 방으로 가자던가, 사실 차를 가져왔다던가 하는 말을 하지 않았다. 이 사람이랑 호텔까지 와서 이렇게 돌아간다고? 사실 어디 아프다던가,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크나트와 눈이 마주치자 크나트는 싱긋 웃었지만 그 눈에는 언뜻언뜻 비틀린 그늘 같은 것이 비쳤다. 정확히 어떤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율리안에게조차 숨길 수 없이 강렬했다. 말해달라고 해서 말해줄 사람도 아니고. 망설이다가 꽃다발을 안은 팔에 힘을 주어 마음에 든다는 것을 어필해 보았다.

 

“...향이 좋습니다. 그럼 이따 뵙겠습니다.”

 

먼저 실례한다는 말을 하고 자리를 피했지만 뒤에서 자신을 잡거나 하지는 않았다. 진짜 무슨 일이 있는 거 아냐? 율리안은 어쩐지 걱정이 되어 얼른 집에도 들어가지 못했다. 어떻게 위로를 해야 하나, 어떻게 티나지 않게 물어보나 이래저래 생각하다보니 어느 정도 정리되었을 때에는 이미 어둑어둑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무거운 건 책 때문만은 아니겠지. 발만큼이나 무거운 손으로 문을 열었다.

 

달링! 왜 이렇게 늦은 거야, 모처럼 옥수수 넣고 감자도 으깼는데 다 식었겠어.”

 

야식...? 입니까?”

 

무슨 소리야. 저녁이지. 세상에 이 무거운 걸 들고 이때까지 돌아다닌 거야? 가서 손부터 씻고 와. 마실 건 뭘로 할래? 레드? 화이트? 샴페인? 아니면 핫 초콜릿?”

 

물이면 충분합니다. 그보다 아까 저녁은 먹었잖습니까.”

 

누구랑?”

 

뭔가 말이 안 통하는데. 크나트는 식탁에 앉아 감자 샐러드를 듬뿍 떠 접시에 얹었다.

 

그보다 지금은 기분이 좀 나아진 것 같아 다행입니다.”

 

뭐가...?”

 

어쩐지 말이 안 맞는다고 느낀 것은 저쪽도 마찬가지인지,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을 깬 것은 문을 가볍게 두드리는 소리였다. 이어 비밀번호를 누르고 열쇠를 꽂는 것까지도. 크나트는 조용히 식기를 내려놓고 손짓으로 집 안쪽을 가리켰다. 다른 손은 품속으로 조용히 들어갔는데 율리안은 그 안에 있을 권총을 어렵잖게 상상할 수 있었다.

 

여어.”

 

문이 열리고, 익숙한 목소리가 바깥쪽에서 흘러나왔다. 안으로 피신하려던 율리안은 그 목소리에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발을 멈추었고 문은 스르륵 열렸다.

 

또 만나네, 스호르 씨.”

 

크나트가 현관에 서 있었다. 집 안에 있던 크나트는 주저없이 소음기가 달린 총을 꺼내 두어 발 연달아 갈겼다. 현관의 크나트는 어디로 쏠지 알고 있었다는 듯 총알을 피했고 아슬아슬하게 스친 것이 정장을 그슬리고 사라졌다.

 

저런, 한 벌밖에 없는 건데.”

 

웬 놈이냐.”

 

현관의 크나트는 고개를 들었다. 실내의 불빛 아래 얼굴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얼굴이 아니었더라도 그 미묘한 습관이며 행동, 목소리, 체격, 자세, 그 외 무엇이라고 집어 말할 수 없는 것으로 그 둘이 동일인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다만 어딘가 인간 같지 않은 분위기가 옅게 덮였는데 마치 인간 아닌 것이 인간 흉내라도 내는 듯 했다. 집 안의 크나트는 한 걸음 옆으로 옮겨 율리안을 완전히 그의 시야에서 가렸고 현관의 크나트의 눈빛이 조금 더 짙어졌다.

 

크나트 L. 율리케.”

 

그는 집 안으로 한 걸음 더 들어왔다. 어둠 속에서는 기묘하고 오싹한 느낌이 있었는데 더 밝은 곳으로 나오자 그런 느낌이 적어졌다.

 

이젠 내가 크나트 율리케야.”

 

과연 그럴까?”

 

이 쪽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가자, 현관 쪽의 사람은 이를 드러냈다.

 

내 흉내를 내는 놈이 돌아다닌다는 얘기는 들었지. 마치 인간 흉내를 내는 게 처음이라는 듯이 다녔다고?”

 

“...내가 크나트 율리케야. 내가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어떤 환경에서 자라서 어떤 생각을 하는지, 네 행동 도식을 가지고 있어.”

 

비웃는 표정으로 크나트의 눈썹 한쪽이 올라갔다. 그러자 상대도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는지 잇새로 그르륵 소리를 냈다.

 

이제 널 없애면 내가 진짜가 되는 거야. 그리고 마지막 감각을 느껴보는 거지.”

 

그 마지막 감각이 무엇입니까?”

 

율리안이 툭 질문하자 두 쌍의 청록색 눈동자가 그를 향했다.

 

“..., . 있잖아. 둘이 맨날 하는...”

 

그거요?”

 

, 설마 이거?”

 

크나트가 난잡한 은유를 했다. 그러자 현관 쪽의 크나트가 쉭- 위협하는 소리를 내고는 율리안 쪽 크나트를 깔아뭉갰다가 옆으로 나가떨어졌다. 아래에 깔린 크나트는 너클을 낀 손으로 희미하게 붉은 기가 비치는 팔을 문질렀다. 그 잠깐 사이에 소매가 찢어져 안쪽 피부가 보였다.

 

잠깐! 잠깐만요.”

 

나가떨어져 놓고서도 다시 달려들려는 것을 가만 두고 볼 수 없었기 때문에 율리안은 큰 소리를 냈다.

 

, 감각이 목적이라면 굳이 사람을 죽일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그러자 누군가의 손톱이 서서히 줄어 평범한 수준으로 돌아갔다.

 

“...그럴지도 모르지.”

 

잠깐, 허니? 내가 설마 저 정체모를 이상한거랑 홀딱 벗긴 채로 단둘이 둘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러면 뭐 셋이서 하기라도 하려고 그러는 겁니까.”

 

무심코 말했던 율리안은 정말로 크나트의 침실로 끌려가자 끌려가지 않으려고 버티고 섰다. 뒤통수로 익숙한 가슴근육을 느끼며 앞으로도 같은 것이 보이자 반항은 숫제 발버둥이 되었다.

 

, 무립니다. 두개씩이나 들어가지 않아요!”

 

당연하지, 이걸 어떻게 둘이나 넣어?”

 

음란하긴.”

 

율리안은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옷이 벗겨지고 양 팔을 등 뒤 사람에게 잡힌 채 몸 위로 다른 쪽이 올라오는 것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가까이에서, 번갈아서 그 눈들을 보다보니 알 것 같았다.

 

자신을 볼 때마다 드러나는 기묘한 비틀림.

 

제 뒤의 사람을 볼 때면 분노라고 생각할 만큼 강한 것.

 

바다 같은 색 눈을 그늘지게 하는 감정.

 

질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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