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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서필] 발레리안의 여름

2022. 5. 24. 00:41 | Posted by 호랑이!!!

진한 여름 냄새가 났다.

 

발레리안은 고개를 들었다.

 

모든 이에게 박한 계절이 지나고 있었다.

 

그 사실이 기꺼웠다.

 

차갑고 냉혹한 계절의 밤이 되고 달이 떠서 좁은 골목을 거닐 때면 이따끔 날 리 없는 피 냄새가 걸음마다 쫓아왔기 때문에.

 

절대 잊지 못할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결국 얼굴은 잊혔다.

 

목소리도 잊었다.

 

냄새조차도 희미하다.

 

그러나 한겨울 밤에, 조명이라고는 달빛밖에 없는 때에 거리를 순찰해야 할 때면-

 

발레리안은 불과 피 냄새를 맡았다.

 

그와 다니는 후배들은 겨울에 담배를 피우는 횟수가 늘었다.

 

이제는 제법 쌓인 연차를 되돌아보는데 들리는 소리에 귀가 쫑긋하게 섰다.

 

파이 아저씨!”

 

밤만큼이나 짙은 나무그늘 아래에서 아이 소리가 들렸다.

 

겨울밤에 내리는 눈만큼이나 하얗게 작열하는 햇빛과의 경계가 뚜렷했다.

 

발레리안이 돌아보자 허리만큼도 안 되는 아이들이 해 안으로 뛰어와 오늘은 과자가 없냐고 매달렸다.

 

그 너머에서는 아이의 보호자가 수줍게 손을 들어 흔든다.

 

꽃이 졌다가 다시 피어나는 계절이다.

 

여름에 피어나는 온갖 붉고 누른 꽃들과 겹겹이 드리워진 녹색 나뭇잎과 두터운 구름을 뚫고 내비치는 새파란 하늘까지 온갖 다채로운 것들이 세상을 메운다.

 

열기 품은 바람이 꽃과 땀과 아이들과 피크닉 바구니, 심지어는 담배 냄새까지도 온통 몰아 왔다.

 

목덜미에 매달리는 한기가 녹아내렸다.

 

여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