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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밤, 실내 수영장에서 일어난 일

2023. 1. 13. 22:56 | Posted by 호랑이!!!

A는 눈을 떴다.

 

희부연 유리창 너머로 밤하늘이 보였다.

 

어두운 하늘을 배경으로 검은 나뭇잎이 일렁였다.

 

물을 살균하는 것인지 멀리서 기계가 우는 소리가 들린다.

 

하얀 플라스틱 썬베드에서 일어나서 주위를 둘러보자 어두운 수영장에 물결만이 반짝였다.

 

여기도 관리인이 있을 텐데 왜 사람을 두고 간 거지?

 

A는 널찍한 수영장을 한 바퀴 돌았다.

 

온수풀은 중단되었고, 미끄럼틀에서 나오는 물도 멈췄고, 파도풀도 멈췄고, 저번에 보았던 마감 직전 모습이랑 똑같은데?

 

A는 여기에 아주 자주 왔었다.

 

눈 감고도 수영하라고 하면 할 수 있을 정도로, 아주 어린 아이 때부터 이제 성인이 된 지금까지 방학마다 주말마다 쉬는 날이면 날마다 여름이고 겨울이고 할 것 없이.

 

직원이 기계를 끄는 모습을 보는 것이나 수영반 선생님이 이제 나가야 한다고 하는 말을 듣는 것도 한 해에 두 번씩은 있었다.

 

그러고 보니 모처럼 사람도 없겠다 이런 수영장을 독차지하게 되다니?

 

바로 물로 뛰어들려던 그 때 수면 아래에서 무언가가 일렁였다.

 

A는 난데없는 위화감에 물 가까이로 갔다.

 

창 가까운 곳은 물결이 빛으로 부서졌으나 위화감이 드는 곳은 조금 더 먼 곳이다.

 

빛이 들지 않아 검은 물이 한없이 깊고 무거워 보였다.

 

별 감정이 다 드네.’

 

이 곳의 물은 자신의 가슴팍 조금 아래까지 찬다.

 

어릴 때에는 바닥에 발이 안 닿을 정도로 깊었으나 이제는 얕게 느껴질 정도였다.

 

게다가 이 곳은 눈 감고도 걸어다닐 만큼 익숙한 곳이고 좋아하는 곳이다.

 

자신이 밤새 수영하게 된다는 것을 알았다면 어릴 때 자신은 엄청나게 질투했겠지.

 

이런 곳에서 공포심을 느낀 것에 어이없어하며 A는 조금 더 몸을 기울여 그대로 물에 빠졌다.

 

익숙하게 미지근한 물이 몸을 감쌌다.

 

손이 움직일 때마다 물이 부드럽게 갈라지고 다리가 움직일 때마다 요란하게 물이 튄다.

 

눈을 감은 채 레일을 따라 수영했다가, 레일을 피하며 가로로 수영했다가, 대각선으로도 헤엄쳤다.

 

다시 첫 번째 레일로 돌아와 숨을 고르는데 멀찍이 튜브 거치대가 눈에 띄었다.

 

튜브가 있었지!

 

여기 물에 튜브를 띄워놓고 거기 기대있으면 기분 좋겠다!

 

사람이 있을 때는 하면 안 되는 일이지만 지금은 나 혼자니까!

 

A는 2인용 튜브를 몇 개 헤치고 커다란 1인용 튜브를 잡았다.

 

물 위로 휙 던져놓고 따라 걸어가는데 기대했던 탈팍 소리가 나지 않는다.

 

철벅, 하는 지나치게 큰 물소리가 났다.

 

작은 비명소리도 같이.

 

A는 후다닥 물로 뛰어갔다.

 

누구 있어요? 맞았어요? 죄송합니다!”

 

그러나 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튜브 거치대에서 물까지는 겨우 다섯 걸음 남짓이었다.

 

분명히 비명 소리를 들었다.

 

그런데 항의하는 소리도 없고 물에서 나오는 소리도 없고 자리를 피하는 소리조차 나지 않는다.

 

저기요?”

 

물 가까운 데까지 왔지만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다...”

 

다시 위화감이 있었다.

 

그늘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친 위화감이.

 

다시 물 앞에서 몸을 기울였다.

 

저 멀리에서 일렁임이 있었고, A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인영이 움찔 놀라는 것이 보였다.

 

, 너 누구야! 왜 숨어!”

 

아무리 수영을 잘한다고는 하나 A는 뭍에서 더 빨랐다.

 

A는 달렸고, 수영하느라 튄 물로 흠뻑 젖은 바닥에 쭐떡 미끄러져 버렸다.

 

땅까지 울릴 정도로 요란하게.

 

으으...”

 

A는 까끌까끌한 바닥에 쓸린 다리를 쓰다듬었다.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금속성 냄새가 나는 걸로 보아 피가 제법 나는 모양이다.

 

...”

 

옆에서 작게 낑낑거리는 소리가 났다.

 

아파라... 아니, 너 누구야?”

 

수면에서 스르륵 인영이 일어났다.

 

수영모 없이 긴 머리카락과 자그마한 체구에 묘한 짠내가 났다.

 

, 여기 머리도 안 묶고 들어오면 어떡해?”

 

그러자 저 쪽 인영의 입이 벌어지더니 놀랄 정도로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뭐 임마?! 언제 봤다고 야, ? 야는!”

 

그러자 A도 울컥해서 배에 힘을 주었다.

 

누구 있냐고 물어봤을 때는 왜 안 나왔는데! 너 뭐야!?”

 

뭠마! 내가 그런 것도 대답 다 해줘야 하냐!?”

 

안 할 이유가 뭔데! 이런 데 숨어가지고!”

 

숨어? 숨어어? 난 계속 여기 있었거든! 네가 몰래 살금살금 들어온 거겠지!”

 

몰래라고!!! 야 너 여기 나와봐라 가만안둬!”

 

저 멀리, 대각선 끝 즈음에서 험악하게 첨벙 소리가 났다.

 

“...뭐야, 또 누가 있어?”

 

“...”

 

가운데 라인에서 무언가가 부표를 스치는 소리가 났다.

 

“...뭐지? 어떻게 아까 수영하면서 하나도 모를 수가 있었지...?”

 

너 눈 감고 수영했잖아.”

 

그건 그렇긴 한데.

 

“...잠깐, 그건 어떻게 알았어?”

 

그 애는 라인 가장자리로 다가와 사다리를 꼭 쥐었다.

 

그리고 불쑥, 물 위로 두 번째 인영이 일어났다.

 

아니, 저건 인영이 아닌데.

 

거대하고 둥근 것이 솟아났다.

 

그 위쪽에는 반투명하고 너풀너풀한 것이 달려 둔탁하게 빛을 여과시켰다.

 

그 두 번째 그림자는 서서히 가운데부터 벌어지더니 물 속으로 스르르 사라졌다.

 

A는 입을 벌렸다.

 

너 인어야?”

 

뭐 그렇지.”

 

A가 입을 다물지도 못하고 너풀거리는 지느러미까지 물에 잠기는 것을 지켜보자 인어는 어딘가 우쭐한 듯 보였다.

 

우와아아!? 인어!? 거대 인어? 진짜로!? 쩔어! 엄청나다! 이거 꿈 아냐? ! ...아니구나, 아 진짜 근데 우와아아아아아... ! 아 진짜로 아니구나... 스으읍... 나 만져도 돼? 만져봐도 돼? 우와 얼마나 길어? 불 켜고 싶다! 불 아 핸드폰 플래시라도 으아 핸드폰 거기 탈의실에 있어...”

 

한참이나 퍼덕거리던 A는 불현듯 정신을 차렸다.

 

“...아까 튜브에 맞은 건 괜찮아?”

 

“...참내... 괜찮아.”

 

역광이라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어이없어 하는 게 보이는 인어는 뒷머리를 벅벅 긁었다.

 

, 너 다리 줘봐.”

 

어어...”

 

무언가가 따끔하더니 다리에서 느껴지던 통증이 가셨다.

 

이어 물이 몇 번 끼얹어지고, 여전히 어느 부위는 따끔거렸지만 이내 익숙해지고 A는 방금까지 상처가 있던 곳을 살짝 쓰다듬어 보았다.

 

“......”

 

놀라긴.”

 

그러나 그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우쭐함이 있었다.

 

어둠에 익숙해진 눈이 그 윤곽을 감지했다.

 

A는 그것을 보다가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 만져봐도 돼? 화상 입어?”

 

넌 겁도 없냐!”

 

그러고보니 왜 여기 있었어? 어떻게 있었어? 낮엔 사람들 많이 오는데! 너 뭍으로 나올 수 있어?”

 

하이고...”

 

인어는 A의 손을 잡았다.

 

내가 뜨라고 할 때까지 절대로 눈을 뜨면 안 돼.”

 

?”

 

좀 하라면 해.”

 

?’라고 하면 그게 뭐든간에 안 해주겠지.

 

A는 눈을 깜박이다가 천천히 감았다.

 

인어는 A가 숨을 들이쉬게 하고는 천천히 물 속으로 끌고 들어갔다.

 

물이 깊었다.

 

물이 차갑다.

 

바닥에 발이 닿지 않았다.

 

몸은 부유하려 하는데 잡힌 손이 아래로 아래로 끌고 내려간다.

 

지금 무언가 환상적인 현장일 텐데.

 

A는 작게 끙끙거리는 소리를 냈다.

 

숨 막혀? 조금만 더 가면 돼.”

 

비늘과 머리카락이 스치는 소리일까,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이따끔씩 들렸다.

 

조금만 눈을 뜨면 안 될까?

 

실눈이라던가?

 

어차피 인어만 갈 수 있는 길이라면 내가 조금 본다고 해도 따라서 갈 수는 없을텐데.

 

A는 마음 속 유혹을 들었다.

 

아주 조금만이라면.

 

아주 조금은 괜찮지 않을까?

 

A는 살짝 눈을 떴다.

 

 

 

-13일의 금요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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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릿한 인영이 흔들렸다.

 

그들은 생각보다도 가까웠다.

 

문득 A는 알아차렸다.

 

비늘이 물을 가르는 소리라고 생각했던 것은 그들의 웃음소리였다.

 

그들은 A가 언제 숨이 다할지, 인어의 손에서 빙빙 도는 것을 즐겁게 보고 있었다.

 

A가 작게 소리를 냈다.

 

조금만 더 가면 돼. 거의 다 왔어.”

 

고개는 들지 않았지만 A는 인어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즐거워하고 있었다.

 

A는 물갈퀴 돋은 손을 있는 힘껏 뿌리쳤고, 다음 순간에는, 발끝까지 젖은 채 하얀 썬베드 위에 내팽개쳐져 있었다.

 

 

 

 

 

-원래 계획했던 엔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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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았던 손이 사라졌다.

 

A를 끌고가던 힘 역시도.

 

빠른 속도로 A를 스쳐지나가던 물살은 부드러운 벽처럼 A를 붙들었다.

 

검고 광활했던 주위는 마치 벌레를 가두는 풀처럼 A를 향해 우그러들었다.

 

새파란 타일과 하얀 시멘트.

 

낯익은 수영장 바닥이었다.

 

수영장은 언제 손님이 둘이나 있었냐는 듯 고요했고, 수면 아래에서 비치던 위화감은 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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