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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갈리엔] 히에미스가 놀러왔어요

2022. 12. 27. 01:16 | Posted by 호랑이!!!

 

아니이, 이거 진짜 해요?”

 

그렇습니다, 덤비시지요.”

 

데임은 조금 울고 싶었다.

 

자신이 든 것은 봉이고 그가 든 것도 나무로 만든 봉이었지만 쥐는 자세부터가 다르지 않은가.

 

어릴 때야 무기를 배운다며 훈련하고 대련해본 적도 있지만 사람을 상대로 무기를 드는 것이 지나치게 오랜만이라 거부감까지 든다.

 

히에미스가 다치면 어떻게 해요?”

 

히에미스는 세상에 다시는 없을 소리를 들은 표정을 지었다.

 

“제가 당신에게는 무른 편이긴 합니다만 그것은 매우, 헛소립니다.

 

혹시... 그는... 전투광 같은... 걸까...?

 

데임은 봉을 꽉 쥐었다가 다시 그의 눈치를 보았다.

 

“...살려주시면 안될까요?”

 

“...그럴 거였으면 아까 좀 돕지 그랬습니까.”

 

히에미스는 너무 오래 한 자세로 있었던 나머지 굳어버린 손을 꽉 쥐었다.

 

분명히 털장갑을 꼈을 뿐인데, 까득 소리가 났다.

 

그치만 어린애들 때문에 엄청 곤란해하는 모습이 재미이으아아악!!!”

 

안 오면 먼저 갑니다!”

 

==

 

오늘은 히에미스가 지원 겸 놀러오기로 한 날이었다.

 

부대원에게는 황궁에서 알게 된 옆 부대의 대단한 사람이라고 하였으나 데임의 대단한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에 부대원들은 데임을 지나치게 귀여워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평소대로 늘어져 술을 마시거나 나무토막을 깎거나 잠을 잤고 심지어는 난로 앞에서 구멍 난 양말 째 발에 불을 쪼이다가 노크 소리가 나자 데임을 불렀다.

 

어이, 꼬마! 대단한 애기 왔다!”

 

그야말로 망나니들 같은 모습이었다.

 

이따가 정찰 때 이모랑 삼촌들이 같이 나갈 거니까 둘이는 먼저 밥 먹고 놀고 있어.”

 

친구 온대서 토시를 하나 준비했는데 맞을까 모르겠네. 여기가 좀 춥잖아.”

 

아니 북부가 춥지 그러면.”

 

친구는 남부 출신이라던데? 바다에도 들어가 봤대.”

 

뭐어? 나암부우? 아이고 얼어 죽겠네.”

 

문 가까이 있던 부대원 하나가 문을 열었다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나동그라졌다.

 

그는 발로 문을 차 다시 닫아버리려 했으나 그 문이 닫기지 않도록 불쑥, 하얀 머리통이 들어왔다.

 

제길, 치사하게 노크를 하다니!”

 

애들, 애들은 다 있어?”

 

문 닫아! 무기 꺼내!”

 

말하지 않아도 제각기 칼이며 도끼며 하는 것을 꺼내들고 그들은 언제 드러누워 있었냐는 듯 문을 노려보았다.

 

염병할 문짝! 닫기질 않어!”

 

들어온 것은 거대한 회색 늑대의 머리였다.

 

노란 눈은 흉흉하고 하얀 이가 드러나도록 벌어진 입에서는 피거품이 살벌하게 흘러나오는.

 

데임은 총총 다가가 그 머리를 이리저리 눌러보더니 반가운 얼굴을 했다.

 

잘 찾아오셨네요!”

 

잘 찾아오다니?

 

부대원들은 갑주는커녕 셔츠도 신지 않은 모습으로 제각기 무기를... 어라, 셔츠가 신는 거던가?

 

, 문 닫아!”

 

대단한 인간이 아니잖아!”

 

못 들어오게 해!”

 

“...저를 이르심입니까?”

 

그러나 회색 늑대에게서 들리는 것은 멀쩡한 인간의 목소리였다.

 

데임이 길을 비켜주자 회색 늑대가 툭 떨어지면서 늑대만큼이나 거칠고 커 보이는 인간이 들어왔다.

 

반갑습니다. 아주... 편히 쉬고 있으셨군.”

 

늑대의 노란 눈과 같은 호박색 눈이 좌중을 훑어보자 사람들은 자신들이 든 무기를 내려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헷갈리다가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그 호박색 눈과 회색 머리카락에 특징적인 흉터까지.

 

눈 사이를 떼지어 누비는 회색 늑대는 물론 무섭지만 단신으로 회색 늑대 한 마리를 잡아 온 저 사람은... 그들의 짐작이 맞다면, 악몽이지 않은가.

 

, 이거 멋지네요!”

 

오다... 잡았습니다.”

 

그럼 그걸 잡았겠지!

 

혼자서!?

 

왜 그렇게 오다가 덫 하나 수거해 온 양 말합니까!?

 

소리 없는 아우성을 듣지 못한 히에미스는 주춤주춤 무기를 내린 어느 부대원이 내준 푹신한 방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난로 바로 곁이라 일렁이는 불꽃이 그의 황금색 눈가를 훑었다.

 

저기, 혹시 히에미스...입니까?”

 

그러합니다.”

 

혹시 단신으로 독수리형 괴물을 잡았다는... ...?”

 

아무리 나라도 단신으로 잡기는 어려우니 과장된 면이 있군요.”

 

아 역시 그런가.

 

인간적인 모습에 사람들은 다소 안도했다.

 

그럼 같이 오신 분들은 어디 계신지? 나머지 늑대를 정리하고 있나요?”

 

혼자 왔습니다.”

 

다시 조용해졌다.

 

우리 이제 나가?”

 

데임은 늑대를 정리하러 가버렸고, 정적을 깬 것은 아이들이었다.

 

잿빛 귀며 짧은 꼬리가 자란 아이들이 올망졸망 모였는데 어른들은 죄다 정적처럼 굳어서 단신으로 늑대를 잡았다는 사람 곁에 다가가려는 아이들을 말릴 수 없었다.

 

아저씨가 히에미스예요?”

 

그렇습니다.”

 

갈색 머리인 아이가 곁에 털썩 앉자 히에미스는 움찔했다.

 

엄청 커. 왜 이렇게 커요?”

 

“...가족력인 것 같습니다.”

 

가종녁이 머예요?”

 

가족력은...”

 

채소 안 먹으면 우리 잡아 먹어요?”

 

일찍 안 자도 잡아먹어요?”

 

왜 그렇게 애들을 많이 먹어요?”

 

아이 하나가 그의 종아리를 베고 눕자 히에미스는 다시 움찔했다.

 

내 조카도 나를 무서워하는데, 요즘 애들은 다 이런가?

 

그가 굳어 움직이지 못하는 것을 두고 아이들은 자신들에게 위해를 끼칠 인물이 아니라고 판단했는지 더 가까이 다가왔고, 히에미스의 마음만은 그 두 배로 뒷걸음질했지만 늑대 가죽 정리를 마친 데임이 돌아왔을 때에는 가지런히 모아 내민 히에미스의 양손 위에 한쪽 팔과 머리를 얹고 잠들어버린 아이까지 있었다.

 

“......”

 

투박한 외모, 덩치는 크고, 일견 곰 같기도 한 모습에 표정은 오래 된 나뭇등걸처럼 거칠다.

 

그 위의 눈은 마치 한겨울 사시나무처럼 데임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 눈빛에 소리가 있다면 아마도 딸그락딸그락 하는 것이었겠지.

 

마치 지옥에 떨어진 거미줄을 보는 눈빛이 저러할까.

 

데임은 그 눈빛을 마주하다가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 급히 손을 내밀었다.

 

삼촌. 팔 토시 어딨어?”

 

데임?!”

 

내 방 서랍장 속에. 지금 가져오게?”

 

데임은 더욱 강렬하게 흔들리는 눈빛을 보았으나 역시는 역시.

 

.”

 

거미줄은 거미줄.

 

툭 끊어진 거미줄의 뒷모습을 배신감에 찬 히에미스가 황망한 눈으로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