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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먼은 그 실험실 이후 꽤나 여유로운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그동안의 삶에 비해서도, 객관적으로도.

 

늘어지게 잤다가 일어나서는 책(대개 동화책)을 읽거나 산책을 하거나, 이도저도 아니면 다시 누워서 잠들기도 했다.

 

밀러의 별장에서.

 

오늘도 느지막지 일어나서는 푹신한 베개에 얼굴을 부비다 눈을 떠 보니 시곗바늘은 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문을 열고 나가서 웅얼웅얼 말하지만 평소의 잘 잤나내지는 지금은 아침이 아니다같은 인사는 들려오지 않는다.

 

뭐지? 이 아저씨 또 납치당했나?

 

눈이 번쩍 뜨여서 테이블이며 서재를 우다닥 뛰어서 살펴봤지만 역시 없다.

 

대신 냉장고 앞에 작은 쪽지가 붙어 있었다.

 

6시 전까지 돌아오지 -M-

 

사이먼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기울이며 그 쪽지를 들어 읽다가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그 뒤로 두 시간은 베개를 끌어안고 뒹굴면서 보냈다.

 

그 뒤로 한 시간은 베개를 끌어안은 채 텔레비전을 보다 만화영화가 끝나서 아예 꺼 버렸고.

 

이제 뭐 하지.

 

그렇게 뒹굴거리다가 뭔가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사이먼은 벌떡 몸을 일으켰다.

 

아까까지 끌어안고 있던 베개는 소파에다 아무렇게나 던져놓고 부엌으로 후닥닥 달려가서 놓여있는 요리책을 펼쳤다.

 

이건 어려우니 패스, 이건 내가 싫어하니 패스, 으웩 이거 재료 손질 어려워 보인다.

 

그렇게 팔랑팔랑 넘기다가 이 정도면 괜찮겠다 하는 부분을 발견했다.

 

, 이거라면... 할 수, 할 수 있...있어.”

 

버섯과 가지와 마늘 등을 다지고 썰고, 만들고 난 곳을 치우다보니 시간이 훌쩍 사라졌다.

 

이제 맛있는 냄새를 풍기는 냄비 안을 들여다보았는데 시계를 보니 아직 6시까지는 30분이나 남았고.

 

아저씨가 집 안에 담배 냄새가 배는 걸 싫어할 거 같으니, 사이먼은 테라스로 나갔다.

 

담배를 꺼내물고 불을 붙인 뒤 한 모금 빨아들이니 마음이 편해졌다.

 

그 때 받았던 것을 꺼내보려고 습관적으로 주머니를 뒤적이니 바스락 소리가 났다.

 

비닐 끄트머리를 손가락으로 집어 꺼내는데 뭔가 이상하다?

 

비닐 안에 있어야 할 것이 없다!!!

 

이제 막 꺼내문 장초지만 주저없이 재떨이에 비벼 끄고 사이먼은 방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자다가 침대에라도 떨어뜨렸나?

 

씻다가 떨어뜨렸나?

 

설마 변기 안에 떨어진 건 아니겠지!

 

허둥지둥 방 안을 뒤지는데 저 멀리에서 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삑 삑삑 삐리릭.

 

사이먼은 잘 때 덮었던 이불을 확 펼쳐들었다가 그 아래 아무것도 없자 후다닥 뛰어나갔다.

 

아저, 아저, 아저씨.”

 

다녀왔다.”

 

, . 다녀오, 다녀오셨어요. 그런, 그런데... 없어, , ! 어요...!”

 

당황했는지 말이 마구 엉키기 시작했다.

 

사이먼은 말하는 대신 주머니에서 경찰들이 증거품을 보관할 때 쓰는 것과 비슷한 지퍼가 달린 비닐을 꺼내들었다.

 

경찰이 쓰는 것과는 달리, 매일 주머니에 넣고 다니느라 구깃구깃하고 하얗게 자국이 남았지만.

 

이거 찾나?”

 

밀러는 주머니에서 상자를 꺼냈다.

 

작은 상자였고, 그걸 열자 가느다란 끈이 달린 총알이 굴러나왔다.

 

“....”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는 것 같길래, 끈을 달아놓았네.”

 

사이먼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그걸 받아 목에 걸었고 맥이 풀린다는 듯 그의 몸에 푹 기댔다.

 

“...말하는 걸 깜박했군.”

 

사이먼은 다시금 한숨을 내쉬고는 그의 코트와 가방을 받아들었다.

 

“...이거, 케이, ?”

 

첫눈에 보아도 제과점 상자같은 것을 보고 사이먼은 작은 비닐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전에 자네가 케이크 좋아하는 것 같길래. 겸사겸사 사 왔네.”

 

사이먼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의 어깨 즈음에 머리를 힘주어 부볐다.

 

머리로 밀어내듯 부비고는 케이크를 거실의 커피 테이블에 놓고 포크를 꺼냈다.

 

시럽에 재운 블루베리와 과일들이 듬뿍 올라간 치즈 케이크.

 

커다란 걸로.

 

“......”

 

많이 들게.”

 

사이먼은 커다란 컵에 우유를 잔뜩 부어 왔다.

 

아저- 아저씨, -”

 

한쪽 손으로는 총알에 걸린 끈을 만지작거리고 꼬면서 다른 손으로는 케이크를 푹 떠서 내민다.

 

밀러가 입을 딱 닫자 사이먼은 배실배실 웃으면서 다시 입가로 케이크를 디밀었다.

 

, -”

 

“....”

 

입을 벌리자 케이크가 닿을 듯- 하다가 쏙 사이먼 쪽으로 돌아간다.

 

한입 가득하게 물고 우물거리다가 사이먼은 이번에는 진짜라며 다시 포크를 내밀었고 밀러가 입을 벌리자 다시 쏙 사이먼의 입으로 들어갔다.

 

밀러는 삐딱한 표정을 짓더니 냉큼 그의 손에 들린 포크를 뺏어다 퍽퍽 케이크를 잘라 입에 넣었다.

 

그렇게 커다란 케이크를 반 넘게 먹고, 입이 달아 우유를 마시다가 밀러는 저 주방 안이 보였다.

 

아침에 나갈 때는 없었던 냄비가 가스레인지 위에 놓여 있었다.

 

저 냄비는 뭔가?”

 

, . ... 만들었, 어요.”

 

밀러는 포크를 내려놓았다.

 

그럼 밥부터 먹었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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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풍] 북소리 둥둥

2015. 12. 10. 05:08 | Posted by 호랑이!!!

제아무리 이명이 삭풍이라지만 빅터 그에게도 겨울바람은 늘 싫을 정도로 추웠다.

 

아니, 어쩌면 겨울이라는 계절 자체가 싫을지도 모른다.

 

어떤 계절도 그에게는 좋아할 이유가 없었지만 겨울은 특히 춥고 아프고 차가우니까.

 

바람을 다루는 만큼 공기에 민감하기 때문에 더더욱 살을 에는 듯한-.

 

빅터는 푸르르 머리를 털고는 옷깃을 여몄다.

 

야학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은 한밤중이라 너무 추운데다가 어두웠다.

 

기실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둔 저 옆의 길에는 가로등이 켜져 있었고 빅터가 빛 없는 어두운 길로 가고 있었을 뿐이지만.

 

그렇지만 그 길 건너에는 야학을 마친 사람들이 둘씩 혹은 셋씩 걸어가고 있어서 무의식적으로, 혼자서 걷는 빅터는 그 길을 피했다.

 

아래를 내려다보던 고개를 들고 후 숨을 쉬자 추운 공기에 하얗게 입김이 부서졌다.

 

새삼 혼자구나 생각이 들었는데.

 

갑자기 둥 북소리가 났다.

 

카를로스가 왔다! 나 보고 싶었지?”

 

둥둥.

 

카를로스의 움직임은 항상 타악기에 맞춰 추는 춤처럼 유쾌했고, 그 주위의 바람은 항상 음악처럼 부드럽게 맥박쳤다.

 

어떻게 찾은 거야?”

 

난 빅터가 어디에 있던지 찾아낼 수 있지롱!”

 

쾌활한 웃음소리가 뒤이어 퍼졌다.

 

카를로스는 빅터의 손을 잡고 끌어당겼다.

 

빅터는 그 때문에 고개를 돌리게 되었고 가로등이 켜진 길 너머 조금 멀리에 뭔가를 파는 가판대를 발견했다.

 

과연 거기로 갈 참이었는지 카를로스가 위로 휙 지갑을 던졌다.

 

나 오늘 용돈 받았거든. 이 형이 살게!”

 

형은 무슨.”

 

빅터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지만 카를로스는 히히 웃을 뿐이었다.

 

카를로스는 겨우 거기까지 가는데도 바람의 힘으로 통통 튀어갔다.

 

오렌지색 환한 가로등 아래를 뒤따라 뛰어가면서, 빅터는 다시 둥 하고 북 두드리는 소리를 들었다.

 

둥둥.

 

둥둥둥.

 

활짝 펴진 가죽 위를 둔탁하게 퉁퉁 내리치는 소리.

 

아무렇게나 썰어내 튀긴 감자를 받고 카를로스는 집까지 데려다 주겠다더니 빅터의 손을 잡고 하늘 위로 휙 뛰어올랐다.

 

하늘 위는, 빅터는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환한 가로등 아래보다 밝다.

 

그렇게 느껴졌다.

 

하나씩 빼먹던 튀김은 빅터의 집 앞에 가볍게 착지할 즈음에는 손에 기름기조차 남지 않았다.

 

내일도 또 올게.”

 

카를로스는 빅터를 놔두고는 가볍게 뛰어올라 멀어졌다.

 

바람에 감싸인 그 모습을 보다가 빅터는 문득 손을 자신의 몸에 대 보았다.

 

부드럽게, 북이 울렸다.

 

 

유달리, 빅터는 카를로스와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다.

 

다른 사람과 논다고 한다면 겨우 길 위, 땅 위의 앞뒤좌우가 전부인 광장이었지만 카를로스와 함께 다닌다면 겨우 땅 위가 아니라 벽 위, 지붕 위까지 그들의 놀이터였으니까.

 

지붕 위이든 돌담 위이든 누구라도 원한다면 올라갈 수 있겠지만 그들은 그들만의 공간이라고 생각했고,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 사람으로서 꽤나 서로에게 친밀감을 느꼈다.

 

어느 날의 야학 마지막 시간, 빅터는 맨 앞자리에서 칠판을 빤히 올려다보다가 뒤에서 날아온 쪽지를 주워 펴 보았다.

 

[날 좀 봐요, 카를로스가 왔어요]

 

뒤를 돌아보니 맨 뒷자리, 희뿌연 전등 빛도 제대로 안 비쳐 보이는 어둠침침한 구석 즈음에 왠지 익숙해 보이는 실루엣이 보인다.

 

하스 학생, 듣고 있나?”

 

, 죄송합니다.”

 

선생님의 주의에 고개를 홱 돌리며 빅터는 다시 책으로 코를 묻었다.

 

그러면서도 뒤에서는 연달아 작게 접은 쪽지들이 바람을 타고 날아와 선생님이 보지 못하는 사이에 책상에 툭 툭 떨어진다.

 

[나 왔어! 보고 싶었지!]

 

[빅터랑 같이 수업 들으니까 좋다~]

 

공부는 하고 있냐.

 

바로 옆에 있었다면 쏘아붙였을 말인데.

 

빅터는 보란 듯이 부루퉁하게 입술을 내밀었지만 마음 한 구석이 간질거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옆자리의 누군가가 오늘 무슨 좋은 일 있냐고 속삭여 물을 만큼, 빅터의 입꼬리가 흐물흐물 무너지는 것을 억지로 잡았더니 끝이 부들부들 떨린다.

 

 

 

 

 

 

나 오니까 좋지?”

 

“...자신감 과잉이야 그거.”

 

에이~ 좋잖아~”

 

그치! 하고 물어보자 빅터는 길에서 휙 뛰어올라 건물 위로 올라갔다.

 

뒤에서 카를로스가 쫓아오는 것을 느끼고는 다음 건물 위로 날아갔다.

 

- 터어어-”

 

이 술래잡기는 한동안 계속되다가 카를로스가 아래에서 뭔가를 발견함으로 멈추었다.

 

, 아이스크림!”

 

계절은 벌써 겨울이고 밤이라 가뜩이나 어둡고 쌀쌀한데, 카를로스는 아이스크림을 먹자며 빅터를 불렀다.

 

그러다 감기 걸려.”

 

걸리면 그거 핑계로 학교 안 나가지 뭐-”

 

배부른 소리 하기는.

 

빅터가 투덜거리는 중에 카를로스는 아이스크림을 사서는 입에다 들이밀었다.

 

빅터가 감기 걸리면 이 형이 간호해주러 갈 테니까 안심하라구?”

 

그거 별로 안심 안 되거든.”

 

핀잔을 주면서 덥석 베어물면 단 맛이 입안에서 녹아내렸다.

 

이따끔 공장에서 밖을 내다보면 좋은 옷을 입은 아이들이 옆구리에 책을 끼고 사탕으로 군것질하는 모습을 본 적 있었다.

 

그것이 부럽다는 생각은 한 적 없지만.

 

그래도 카를로스와 함께 지내는 이 때만은 빅터도 자신이 다른 아이들과 같다는 느낌을 받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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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2월인가- 체감이 확 되네.”

 

이글은 제대로 말리지 않은 머리 끝이 얼어서 톡톡 부러뜨리며 투덜거렸다.

 

빅터는 고집을 부려 공장을 계속 다니고 있었는데, 그래도 이글 보다는 집에 일찍 와서 벽난로에 불을 지핀다던가 물을 끓여놓는다던가 하는 일을 했다.

 

야학도 계속 다니고 있어서 이글은 그 점이 대견스럽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했다.

 

아무래도 저랑 닮은 이 꼬마는 공장을 그만두고 낮에 학교를 다니게 할 만큼 저를 아직 못 믿고 있지만 그래도 제가 가출할 즈음보다 야무진 모양이다.

 

빨리 크리스마스가 되면 좋을 텐데, 그렇지?”

 

“...별로, 그러면 포장 일이 느니까...”

 

그러고보니 발렌타인에 초콜릿을 받았는데 그것조차 자기가 포장한 거라고 했던가.

 

이거 안쓰럽네.

 

그건 그거고, 뭐 갖고 싶은 거 없어? 스노우볼이라던가, 새 장갑이라던가.”

 

그러나 고개를 젓는다.

 

“...이글-........?”

 

~? 글쎄~ 좋은 술도 좋고, 뭐든지 재미있을만한 거?”

 

빅터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제 무릎에 당연하다는 듯 올라와 앉는 빅토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빅토르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솜털이 보송보송했는데 이제는 그 티를 벗고 제법 자라서 이따끔은 몸은 자라고 머리는 덜 큰 청소년기 같은 티를 냈다.

 

빅터는 의자에다 묶어둔 고양이 낚싯대에 바람을 보내 흔들었다.

 

거기 냅다 달려가는 빅토르를 보다가 고개를 돌려 이글 쪽을 향했다.

 

벌써 크리스마스 얘기를 해?”

 

미리미리 해 둬야지.”

 

아 그건 그거고.

 

이글은 품에서 공책을 몇 권 꺼내 내밀었다.

 

이거 뭐야?”

 

너 전에 쓰던 공책, 다 써가잖아.”

 

제법 질 좋은 공책이다.

 

덤으로 꽤 괜찮은 펜까지.

 

“...용케 무난한 거 골랐네.”

 

안그래도 옆에 개당 수십달러 하는 펜들이 있더라고.”

 

그런거 사주고 싶었는데, 안 받을 거잖아.

 

이글이 짐짓 삐진 체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그래도 받았을 걸, 생일인데.”

 

빅터가 공책을 양 손으로 쥐어 들면서 작게 웅얼거리자 이글은 잡아당기기라도 한 것처럼 몸을 홱 틀었다.

 

생일이었어?!”

 

몰랐단 말이야?!”

 

이글은 벽에 걸어둔(그러나 잘 확인하지 않는) 달력 쪽으로 뛰어가 확인했다.

 

빨간 동그라미가 있고, 빅터의 생일이라고 적혀있다.

 

그것도 자기 글씨로!

 

, 오늘은 외식을... 그 전에 케이크도 사고, 풍선도 사고...!”

 

어쩐지 오늘은 생전 좋아하지도 않는 단 것이 당기더라!

 

이글은 빅터의 공책을 뺏었다.

 

이거 말고 역시 펜을...!!!”

 

내놔 그거!”

 

빅터는 높이 쳐든 공책 쪽으로 펄쩍 뛰어 달려들었고 이글은 몸을 뒤로 빼며 공책을 못 잡게 했다.

 

그 몸 위로 냅다 올라타 바닥에 쓰러뜨려서는, 빅터는 그 손에서 공책을 채 갔다.

 

공책을 주더라도 좀 더 좋은걸 사올 수 있어!”

 

생일 아니어도 나 생각해서 사온- , 됐어! 내놔!”

 

빅터가 잡아채는 공책 끝을 잡고 이글은 씨익 웃었다.

 

널 생각해서 사와서, ?”

 

“......”

 

말 해야지.”

 

또 도망가려는 것을, 냉큼 허리에 손을 둘러 잡았다.

 

“....고마워.”

 

그리고?”

 

“..........”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씹는 것을 지켜보다가 이글은 공책을 한 번 더 잡아당겼다.

 

그리고?”

 

“......기뻐.”

 

잘했어.”

 

이글이 허리에 감은 손을 떼자 빅터는 이글의 몸 위에서 벌떡 일어났다.

 

누워서 키득키득 웃는데, 빅터는 손을 뻗더니 이글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고 방으로 후닥닥 뛰어가더니 문을 쾅 닫았다.

 

...아 혹시 날 흉내내서 칭찬을 하는 건가.

 

그리고 이글은 빅토르가 깜짝 놀랄 정도로 박장대소했다.

 

그것이 불만인지 빅터가 들어간 방에서 문을 쾅 치는 소리가 났지만 웃음을 그칠 수 없었다.

 

서툴러 빠진 꼬맹이 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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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날 불러냈어? 뭐 할 말이라도 있나?”

 

어두운 방 안에서 원형 테이블에 재료와 진을 그리고 불을 붙이는 순간, 꽤 얄미운 어투의 남자가 잔에 담긴 술을 홀짝거리며 방 안에 나타났다.

 

지금 찾는 사람을 찾으려면 또 다른 각인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불운하게도, 네가 적임자거든.”

 

? ?”

 

그는 과장스레 몸을 젖히고 눈을 굴리며 생각하는 척을 하더니 몸을 바싹 바로 세웠다.

 

, 못해줄 것도 없지! 어디보자-”

 

그는 딘의 몸을 이리저리 살피더니 항복이라는 뜻으로 양 손을 들어올렸다.

 

갈비뼈가 다 찼어.”

 

딘은 갈비뼈에 새겨진 걸 만져보려는 듯 제 가슴에 손을 올렸다.

 

제일 무난하고 좋은게 그건데 말이지, 다 찼다고 두개골에 하기에는 너희 원숭이들은 지나치게 섬세하고, 뇌에 영향이 갈지도 모르잖아?”

 

보호 각인이 그렇게 많을 줄은 몰랐는데.”

 

샘이 각인을 위해 벗어뒀던 겉옷을 챙겨들면서 말하자 발타자르가 가볍게 손짓해서 겉옷을 떨어뜨렸다.

 

보호 각인은 갈비뼈 중심에 있는 그거 하나뿐이야. 물론 샘, 네 몸에는 없지.”

 

물론인데?”

 

, , ... 날 아주 한가한 천사로 보고 있군. 그런 질문에 대한 대답은 다른 천사한테나 물어봐.”

 

그는 투덜거리면서 샘의 몸에다 손을 얹었다.

 

“...그 왜, 더러운 트렌치코트를 입고 너랑 사랑에 빠진 그 녀석.”

 

농담하고는, 딘이 한 마디 쏘아붙여주려던 순간 그는 각인을 마치고 사라졌다.

 

“..각인이 내 몸에 새겨졌는데. 이제 어쩌지, ?”

 

너 혼자 가는거지 뭐, 난 밖에서 대기하고 있을게.”

 

그들은 총에 총알을 채워넣고는 밖으로 나갔다.

 

 

 

 

 

 

 

 

샘은 조사를 위해 밤새 도서관에 있겠다고 했다.

 

안전을 위해 밤이면 항상 돌아오곤 했기에 걱정이 되어 딘은 안절부절 못하다가 결국 모텔방에 앉아 텔레비전을 켰다.

 

야한거 하네.

 

예쁜 여자가 옷을 벗는 장면이었는데 딘은 심드렁하게 쳐다보다가 결국 자리에 누웠다.

 

“...하아...”

 

샘은 안전하다.”

 

깜짝이야!”

 

딘은 카스티엘의 목소리가 방 안에서 들려서 벌떡 일어났다.

 

다음부터는 인기척을 내도록 하지.”

 

마치 놀랐다는 걸 숨기려 들 듯 딘은 얼굴을 문지르고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래서 그 얘기를 하려고 여기까지 온 거야? 그 먼 천국에서?”

 

본 목적은 다른 것이다.”

 

카스티엘은 딘이 엉덩이를 걸치고 앉은 침대 앞에 서서는 그를 내려다보았다.

 

아이가 필요하다.”

 

특별히 바쁜 일이 없으니까, 딘은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데? 어디 사는 애고?”

 

뭐 샘처럼 특별한 날에 선택받아서 살고 있거나 한 그런 애려니.

 

데려다 주면 감시를 하거나 이래저래 하겠지.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

 

태어나지 않았다?

 

이봐, 아무리 나라도 갓 태어난 아기를 훔쳐오는 것은 양심에 걸리는데.”

 

그건 법이고 뭐고 하기 이전에 양심의 문제-

 

너와 나의 아이다.”

 

뭐라고!”

 

그러니 벗어라.”

 

, 잠깐! 말이 되냐! 둘 다 남자잖아!”

 

엄밀히 말해, 천사는 양성이다.”

 

딘은 그 말에 제 옷을 벗겨오는 그 손을 잡았다.

 

네가 임신하는 모습은 보고싶지 않은...”

 

임신하는 것은 너다.”

 

?!”

 

내가 임신할 수는 없잖아.”

 

나는 되냐고!

 

카스티엘은 힘을 써서 딘을 억지로 침대에 눕혔다.

 

그리고, 손가락부터 천천히 몸이 빛나기 시작했다.

 

눈이 부셔서 딘이 눈을 감는데, 그 빛은 딘의 몸에 스며들었고.

 

딘은 직감적으로 자신의 몸에 다른 생명이 들어찼다는 것을 느꼈다.

 

 

 

 

 

 

 

 

 

“...라는 꿈을 꿨어.”

 

낮부터 일 안하고 낮잠을 자니까 그런 꿈을 꾸는 거야.”

 

자료조사 혼자 시킨다고 삐졌냐?”

 

내가 무슨!”

 

샘은 어깨를 으쓱하더니 가방에 노트북을 접어 넣고는 어깨에 휙 둘러멨다.

 

“...어이, 새미, 어디 가?”

 

도서관에. 좀 조사할 게 있어서... 내일이나 되어야 들어올 거야.”

 

샘은 주섬주섬 노트며 볼펜을 주머니에 쑤셔넣고는 모텔의 문 손잡이를 잡았고 딘은 무언가의 불길함에 몸을 던져 샘을 붙들었다.

 

안돼!!!”

 

 

[릭벨] 11월의 꿈

2015. 11. 27. 01:03 | Posted by 호랑이!!!

오늘로 일주일, 아무런 수확이 없었다.

 

그동안 들었던 정보를 종합하면 이 곳이 맞을 텐데.

 

대뜸 액자가 나오거나 안타리우스의 본거지를 발견하는 일은 기대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최소한 실마리 정도는 나와야 할 것 아닌가!

 

여관으로 돌아와 벨져는 덧입은 겉옷을 벗어 침대에 던지고 의자에 털석 주저앉았다.

 

아무리 그래도 일주일은 길어도 너무 길다.

 

프리츠의 꼬마한테 연락이라도? 아니, 아직은 하지 않을테다.

 

벨져는 테이블에 놓인 것을 팔로 밀어내고 지도를 펼쳤다.

 

테이블에 있었던 쇠그릇과 안에 담긴 사과가 마루 위로 흩어졌다.

 

다녀왔소?”

 

수확은?하고 물어오는 이를 쌀쌀맞게 노려보고 벨져는 수첩을 펼쳤다.

 

분명 놓친 것이 있을 것이다.

 

있어야 한다.

 

수첩에 구멍 뚫리겠소.”

 

방해된다.”

 

릭은 어깨를 으쓱하고 저녁거리를 사오겠다며 겉옷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거리를 돌아다니며 조금 발품을 팔아 저만치 먼 가게에서 제일 맛있는 치킨 샌드위치에 컵에 담아 파는 수프, 그 옆 거리로 돌아들어가면 파는, 디저트로 먹을 애플파이까지 샀더니 저녁시간이 지나 있었다.

 

그래도 이 거리에서 제일 맛있다는 것으로 샀으니 저녁시간을 한 시간 넘긴 것쯤이야 벨져도 눈감아줄 테지.

 

옆구리에 종이봉투를 끼고 우유 한 병을 사 들고 들어갔더니 방이 난장판이었다.

 

테이블은 뒤집어져있고 의자도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의자 중 하나는 다리가 부러져 있었는데 부러진 다리는 바닥에, 나머지 부분은 조각조각나 침대 위에 있었다.

 

이런 중요한 일을 하는 중에 술 때문에 실수라도 할 수 없다며 술을 입에 대지도 않던 벨져는 한 손에 릭이 마시곤 하던 맥주병을 쥐고 침대에 상체를 기대 잠들어 있었다.

 

바닥에도 술병이 있군.

 

하나, , , ...

 

술도 약한 이가 참...”

 

릭은 테이블을 일으키곤 그 위에 저녁거리를 내려놓았다.

 

 

 

 

 

 

 

벨져는 낯선 향기에 눈을 떴다.

 

어두웠고, 일주일이나 머물렀던 여관의 냄새가 아니라 수풀의 향이라는 것을 깨닫고 몸을 일으켰다.

 

이상하기도 하지, 분명 달까지 뜬 밤인데 밝다.

 

가스등 따위의 희무끄레한 빛도 아니고 반딧불이의 색도 아닌, 그런 밝음.

 

독어로 중얼거리는 소리에 릭이 벨져를 돌아보았다.

 

일어났소? 벨져.”

 

여긴 어디지?”

 

릭은 벨져가 일어나도록 손을 내밀어 잡게 했다.

 

이 길을 따라가 보시오.”

 

벨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언덕 같은 곳에 풀과 나무가 가득하게 자라 있고 길은 달 쪽으로 나 있었다.

 

그럴 리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이 길을 따라가면 달로 날아갈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고 벨져는 자조적인 웃음을 지었다.

 

아무래도 자신이 너무 술을 마신 모양이다.

 

그렇지 않으면 큰형의 감상적인 부분이 옮았던가.

 

아직 술이 덜 깨서 몽롱했지만 손은 릭에게 맡기고 달에게 걸어갔다.

 

길 끝으로 가자 따뜻한 빛이 눈부시게 자신에게 쏟아졌고, 달은 팔을 벌려 벨져를 안아주었다.

 

아니.

 

눈앞에 펼쳐진 것은 마을이었다.

 

길마다 구석마다 모든 곳에 촛불, 혹은 기름등잔이 불을 밝히고 있었고 그래서 밤인데도 모든 곳이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촛불 특유의 따스한 빛깔이 땅에서부터 벽을 타고 공기 중에 퍼져나가고 있었고 어떤 사람들은 향을 태워 향긋한 향기가 감돌게 했다.

 

집 안팎으로 전통 무늬가 가득했고 아이들과 사람들은 발에 하얀 가루나 빨간 가루를 묻혀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발자국을 남기며 기뻐하고 있었다.

 

따분하고 느긋하게 살기에 인생은 너무 짧소.”

 

릭은 어느샌가 손에 빨간 가루를 들고 있었다.

 

", 보시오."

 

릭은 신발과 양말을 벗어던지고 발에 빨간 가루를 묻힌 뒤 하얗게 먼지가 이는 흙바닥에 발자국을 찍었다.

 

어떻소, 그대도 같이...?”

 

벨져는 고개를 저었다.

 

릭은 보란 듯 빨갛게 발자국을 남기며 마을을 돌아다녔고 다시 돌아왔을 땐 꽃과 말린 과일을 손에 들고 있었다.

 

나무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벨져는 나무에 기댔다.

 

길은 달로 이어져 있고, 저 아래로 내려가면 평화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촛불을 태우며 기뻐하는 축제가 있다.

 

사람들은 노래를 부르고, 그림을 그리고, 발자국을 남기고, 향을 사른다.

 

공기에 떠도는 향기는 달콤하고, 때때로 짤랑거리며 장신구로 찬 은조각 부딪히는 소리가 난다.

 

따뜻하고, 낯설고, 다정해서.

 

벨져는 눈을 감았다.

 

 

 

 

 

 

다음날 아침, 일어난 것은 하얀색 침대 시트 위였다.

 

어제 엎어놓고 잤던 테이블은 원래대로 세워져서 위에는 샌드위치며 수프가 있었다.

 

방은 말끔했고, 릭은 의자에 앉아 사과를 베어물고 있었다.

 

잘 잤소? 어제 저녁거리를 사 왔는데 그대가 너무 잘 자길래 그냥 내버려뒀더니 다 식었지 뭐야.”

 

릭은 씻으러 간다며 욕실로 들어갔다.

 

차가운 샌드위치를 베어 무는데 문득, 릭이 신었던 슬리퍼가 눈에 들어왔다.

 

하얗고, 얇고, 으레 고급 여관에서 주는 일회용 슬리퍼.

 

그 끝에는 붉은 자국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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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의 꿈은 '짧은 여행'이라는 제목으로 인쇄하였습니다.


온라인 발행은 이쪽을 참고하여 주십시오 : http://posty.pe/ms2q7f 

[릭마] To. 메또또님

2015. 11. 23. 01:46 | Posted by 호랑이!!!

마틴이 아직 능력이 발현하기 전, 그는 사랑하는 연인과 밤하늘을 유영하는 상상을 했다.

 

그것은 최고로 로맨틱한 데이트일 거라며.

 

그러나 그의 능력은 그가 가지고 있던 로맨스와는 전혀 다른 방향, 어쩌면 정반대라고 할 만한 방향으로 뻗었다.

 

꼴도 보기 싫어

 

언제쯤 자게 해 줄까

 

이 사람도 저 사람도 더 나를 좋아했으면 좋겠어

 

오늘도 여기저기에서 들린다.

 

심지어, 겉으로 보기에는 더없이 행복해 보이는 연인의 모습으로.

 

사람의 마음속을 이렇게까지 보는 내가 사랑에 빠질 리 없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저런 생각을 하는 것을 보면 식어버리겠지.

 

내가 저런 생각을 해 버리면 어떻게 하지.

 

마틴은 멍하게 그들을 쳐다보다가 문득 옆에서 들리는 부름에 정신을 차렸다.

 

챌피?”

 

아아, 톰슨씨...?”

 

마틴은 멍한 표정을 보였을까 허둥지둥하며 모자를 매만지고 푹 눌러 썼다.

 

날 알고 있소?”

 

물론요. , 저쪽에서 게이트를 열어 주시는...”

 

그리고 마틴은 말을 멈추어야 했다.

 

자신이 안다, 라고 하자마자 바로 곁에서 교회의 커다란 종이 울리는 것 같은 소리가 났기 때문에.

 

아 이 사람, 소녀도 아니고!

 

머릿속에서 종이 울려서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자신이 웃을 때마다 옆에서 종소리가 더욱 크게 울렸다.

 

한참을 웃다가 그는 릭의 식사를 같이하자는 요청을 수락했다.

 

 

 

 

 

 

 

“...그래서 그 때는 왜 그렇게 웃었던 거요?”

 

단순히 그 때지만 마틴은 언제를 말하는 것인지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트와일라잇 근처를 걸으며 그가 말했다.

 

당신 머릿속에서 종이 울렸거든요.”

 

?”

 

그러고 릭의 얼굴이 빨개진다.

 

사람의 마음이 사랑스러울 수 있다는 것을 당신을 처음 만나 알게 되었지만, 이 말은 나중으로 미뤄 둬야지.

 

마틴은 키득키득 웃었고 릭은 물수건으로 손을 닦으며 진정해갔다.

 

“...그래서, 마틴. 오늘 뭔가 하고 싶은 거 없소?”

 

당신은 평소에 나한테 많이 맞춰주는 것 같은데, 연상인 내가 그대에게 맞춰주기도 해야 하잖아.

 

그런 소리가 뒤에 들렸다.

 

마틴은 고민하고 눈을 굴리다가 생각해냈다.

 

“...제가 어릴 때 있잖아요. 저는 사랑하는 사람과 밤하늘을 산책하고 싶었어요.”

 

릭은 턱을 괴어 잠시 생각하더니 마틴을 손짓으로 불러서 풀밭에 누웠다.

 

밤이슬에 옷이 젖을 텐데, 생각하면서도 냉큼 그의 팔을 베고 누웠더니 릭이 손을 앞으로 뻗었다.

 

모든 공간은 연결되어 있지.”

 

릭이 무언가를 치워내듯 손을 옆으로 움직이자 릭이 스친 그 부분에 구멍이 뚫리듯 어두운 부분이 하늘에 생겨났다.

 

뉘엿뉘엿 넘어가는 해는 어두워지는 하늘을 붉은 색으로 물들여놓았고 릭이 걷어낸 그 부분만이 어둡고 검은 하늘을 향한 창문을 열었다.

 

빛을 받아 밝은 여러 가지 색과 모양의 별들, 허공을 떠다니는 돌가루들, 빛과 얼음 알갱이들.

 

구름이 보이고 바위가 보이고 하얗거나 붉게 타오르는 태양.

 

릭은 무심코 손을 뻗는 마틴을 저지했다.

 

그러면 손이 날아갈거요.”

 

릭은 손을 저어 그 우주로 뚫린 창문을 조금씩 조금씩 넓히고는 마틴의 손을 꼭 잡았다.

 

“...어때, 밤하늘이라는 기분은 들지 않겠지만. 이것도 꽤 괜찮지 않소? 블론디.”

 

마틴은 자신의 손을 잡은 그의 손을 힘주어 잡았다.

 

릭을 만나 저는 사람이 사랑스러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어릴 적 자신이 상상했던 밤하늘을, 오랜만에 다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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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월야밀회 (신윤복의 그림을 보고)

2015. 11. 19. 23:46 | Posted by 호랑이!!!

이것 참 난감하게도 되었구나.

 

명월이 그리 생각하였다.

 

그녀의 기명은 밝은 달이라는 명월인데, 오늘 밤은 그녀 이름처럼 달이 밝아 있었다.

 

지나치게, 밝아 있었다.

 

그녀 있는 기생관은 뒷문으로 찾아오는 손님이 뉘인지 모르도록 담 사이를 좁게 한 뒷길이 있었는데, 평소라면 이 길로 다녀도 별다른 일이 없었다. 누굴 마주치지도 않았고.

 

그래서 달 밝은 오늘밤도 색 진한 녹색 장옷을 뒤집어쓰고 나가려고 했는데 글쎄, 그녀 동기 기생인 애화가 웬 남정네 하나와 서 있는 것이었다.

 

꼴을 보아하니 연회 열리는 곳에서 함께 빠져나온 모양.

 

두 연놈이 정분이라도 났나 그 좁은 길을 틀어막고 속살대는 꼴이 눈꼴시립다.

 

모자에 매달린 붉은 끈이 어떻다, 구슬 장식이 어떻다, 다음에 하나 사다 주마, 네 웃는 얼굴이 보기 좋기도 좋니.

 

네 웃는 상판이야 아무렴 어떻고 저 치의 장식이 좋으면 떼어가구, 그리도 좋으면 사람 다니는 길 말고 네 방에서나 그러란 말이다.

 

얼마인가 기다리니 다리가 아파와서 아무래도 안 되겠다, 야단하여 쫓아내려는데 둘이가 멀어지는 소리가 났다.

 

안도의 한숨을 쉬고, 다리를 통통 두드리는데 또 이 길에서 발소리가 난다.

 

오늘은 왜 이렇게 길에 손이 많은고, 손에 내가 쥐인 것 같구나.

 

명월은 더는 아니되겠다 싶어 그냥 지나치리라 했다.

 

어디 자제나 다른 기생들인가 했더니 뜻밖에도 화통을 어깨에 맨 서생같은 이, 손에는 그림이 있다.

 

누구요?”

 

화공이요.”

 

이 명월관에서 화공을 부른 적은 없었을 텐데.”

 

지나가다가 소재를 발견해서, 그렸을 뿐이오.”

 

그림에는 애화와 남자와 자신이 그려져 있었다.

 

월야의 밀회라.”

 

당신도 밀회하러 가는 길이요?”

 

명월이는 장옷을 쓰고 매무새를 다듬었다.

 

무어라 제게 말 붙이려는 화공을 홱 노려보고 매몰차게 한 마디 남기고 쌩하니 지나쳐갔다.

 

왜 이리 귀치않게 굴어!”

 

길을 지나고 문을 지나고 다시 한참이나 사람 없는 길로 가니 이젠 아무도 근처에 없겠거니 하여 다시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어디 보자, 오늘은 새 시체가 있겠거니.

 

명월의 섬섬옥수가 치맛자락을 들었다.

 

아래 털 풍성한 꼬리가 여럿이나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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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총] 차 상자가 비었다

2015. 11. 19. 01:51 | Posted by 호랑이!!!

웨슬리는 장을 봐 온 갈색 봉투를 식탁 위에 올렸다.

 

당근, 감자, 빵과 우유와 그 외 여러 가지 물건들.

 

그것을 하나하나 정리하던 웨슬리는 쓰게 웃었다.

 

너무 많이 사 버렸군.”

 

불과 사흘 전, 카인은 레나를 회사 쪽에서 회수했다는 말에 회사로 가 버렸다.

 

돌아올 리 없겠지, 그렇게 바라던 일인데.

 

듣자하니 치료를 시작하는 것 같다고 한다.

 

웨슬리는 물건을 정리하고 집안을 청소하고 가진 총기를 손질했다.

 

불그스름하던 하늘은 서서히 어둑하게 변했고, 웨슬리는 주전자에 물을 담아 끓였다.

 

차 상자에서 티백을 꺼내 찻잔 하나에 담고 빈 차 상자를 바라보았더니 지끈, 하고 두통이 났다.

 

그리고 그는 제 몫으로 커피를 찾아 다른 잔에 담았다.

 

끓인 물을 붓고 설탕을 하나 떨어뜨려서 젓다보니 커피향과 옆에 둔 차 향이 진하게 흘렀다.

 

시계 한 번, 그리고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면 익숙하기도 익숙한 새벽 3.

 

앞에 앉아 있어야 할 사람이 없으니, 앞으로 시선을 돌리지만 않으면 말이지만.

 

후우- 입김을 부니 차가워진 바깥의 기온 탓인지 창문이 하얗게 변한다.

 

손가락으로, 사선으로 줄을 그었다.

 

그러다 문득, 어둑한 창에 비쳐 보이던 무뚝뚝한 얼굴이 생각났다.

 

마치 그 얼굴을 지워버리듯, 웨슬리는 손바닥으로 창문을 문질러 닦았다.

 

“...하아...”

 

다시 입김을 불지만 방금 닦았던 곳이라, 그리 하얗게는 되지 않았다.

 

고개를 돌리고 시선을 내려 빈 자리를 보지 않으려 애썼다.

 

그는 커피잔을 들어 김이 피어오르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려고 했다.

 

새벽 세 시.

 

모두가 잠들 그 시간에 누군가 열쇠로 문을 여는 소리만 나지 않았더라면.

 

현관으로 달려갔더니 익숙한 사람이, 한 손에는 작은 차 상자를 들고 있었다.

 

“...스타이거...?”

 

“...생각해보니... 차가, 떨어졌을 것 같더군.”

 

카인은 놀라서인지 가만히 서 있는 웨슬리, 그를 품으로 당겨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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