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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쌍빙/쓰다 만 거]

2015. 12. 17. 14:12 | Posted by 호랑이!!!

그러니까 일이라는 것은 전혀 의외의 방향으로 흘러간다.

예를 들면 루이스가 토마스의 초콜릿 무스에 질투를 느껴 그걸 숨겼다던가, 그래서 토마스가 화를 내기를 소파 뒤에 숨어서 기다렸다던가.

그런데 하필 루이스가 케익을 숨긴 곳이 피터의 가방이었는데 포장에 문제가 생겨 가방 안에서 터졌다던가.

이전까지 토마스와 피터는 데면데면한 사이었다.

토마스는 어린애인 피터를 상대할 가치도 없다고 여겼고, 피터는 피터대로 토마스와 말을 붙일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둘다 붙임성있는 성격은 아니라 소 닭보듯 하는 사이였다만 그것이 바뀌었다!

케익 때문에 엉망이 된 피터의 가방을 보고 토마스는 인상을 찌푸렸고, 피터도 인상을 찌푸렸다.

토마스는 당연히 피터가 울거라는 생각에 머리가 아파왔지만 당연히 피터는 울지 않았고, 외려 책가방을 닦아낸 후 토마스의 등을 두드렸다.

툭툭 투둑 툭.

"나랑 케익 먹으러 갈래?"

"좋아."

물론 소파 뒤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루이스의 표정은 구겨졌다.


"토미~♡"

"뭐요, 떨어져."

"나랑 (삐-)할래?"

토마스는 잠시 더러운 개라도 보듯 찡그리며 쳐다보았다가 고개를 홱 돌렸다.

"오늘 저녁엔 안 돼요. 피터 공부 봐주기로 했어요."

"뭐어? 지금 이 나보다 그 꼬맹이가 우선이라는 거야?"

"먼저 약속했으니까 어쩔 수 없잖아요."

"그럼 지금 하자."

"인간이 왜 아침부터 발정나서 이래."

지금 아침도 아닌데!

웃기지 말고 꺼져요.

그리고 루이스는 밖에서 아무나 잡아 할거라고 뛰쳐나갔다.

토마스는 한 번도 그를 잡으러 간 적 없었지만 그런 날 저녁이면 낙인이라도 찍듯 거칠게 굴었고, 루이스는 그런 게 좋았다.

그러나 다음날이 되어도 토마스는 루이스를 안기는커녕 손도 잡지 않았고 심지어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래서 루이스는 토마스가 자리를 비운 사이 피터를 잡아챘다.

"야, 꼬맹이. 너 뭐야?"

"..."

무표정이었지만 그 표정은 '이건 또 뭐야'라고 말하는 듯 했다.

그게 묘하게 토마스와 닮은 것 같아서 일순 할 말을 잃었다.

나이를 열 살... 아니, 다섯 살만 더 먹었어도 확 잡아먹어버리는 건데.

아쉬워서 쩝, 하고 입맛을 다셨다.

그렇다고 나이가 너무 어려서 양심에 거리낀다던가 아청법이 무섭다는 건 아니고, 거기가 작을 것 같아서.

제대로 발기는 하나?

"질투나?"

잠시 딴생각을 하는 루이스에게 피터가 툭 던졌다.

"뭐, 뭐어?"

"형아는 토마스 형아랑 놀고 싶은데 토마스 형이 요즘 나랑만 노니까 질투나는 거지?"

정답.

"그래, 질투나! 너 토마스한테서 떨어져!"

대화 내용만 보면 어린이 둘이라고 해도 믿겠네.

"싫어."

"...태워버린다, 너."

"돌려버릴거야."

노려보다, 먼저 움직인 쪽은 피터였다.

늘 들고 다니는 가방에서 연필이며 컴퍼스, 각도기를 꺼내 날려보냈고 추적 미사일이라도 되는지 몸을 틀었건만 루이스에게 사정없이 박혔다.

"토마스 형아한테 집착하지 마, 아저씨."

"이 시건방진 꼬맹이놈..."

루이스는 여기가 연합이라는 것도 잊고 궁극기를 사용하려 했다.

몸에서 지글거리는 소리가 나고, 유례없는 일이지만 루이스의 능력자용 옷에서 그을리는 냄새가 났다.

"모두..."

빠악.

루이스의 머리에 토마스의 불이 부딪혔다.

머리카락이 탄다거나 심하게 아프다던가 하는 건 아니었지만 집중력을 흐트러뜨리는 데는 충분한 정도.

"애한테 궁극기를 쓰려 하다니 선배 지금 제정신이예요?! 게다가 여긴 연합 건물 안이라구요!!!"

"토미, 저 꼬맹이가...!"

"핑계대지 말아요, 보나마나 선배가 먼저 시비 걸었겠지!"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렇지만!

"먼저 시비걸어놓고 애한테 능력까지 쓰려 했어요? 선배 정말-"

뒷 말을 끊은 건 피터였다.

주의력을 돌리려는 건지 토마스의 옷깃을 잡고 톡톡 당겼다.

"난 괜찮아, 형아."

"정말 괜찮아? 어디 다치진 않았어?"

저 다정해보이는 모습에, 우리들의 루이스는 지나치게 울컥한 나머지 밖으로 뛰쳐나가고 말았다.


'토마스는 바보야! 그 꼬맹이도 능력을 썼는데! ...물론 내 불만큼 강하진 않지만... 그래도! 내 걱정은 안 하냐고!'

어린아이가 부모한테 땡깡 부릴 때나 할 법한 말들을 속으로 끊임없이 생각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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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릭벨릭] 혼자가 아냐

2015. 12. 17. 13:20 | Posted by 호랑이!!!

가만히 있기만 하려니 좀이 쑤시는군.”

 

벨져가 그를 홀든가에 데려온지 사흘째에 한 말이었다.

 

검이라도 배워 보겠나?”

 

빌어먹을.

 

릭은 고개를 저었다.

 

이 집안 어르신과 안주인은 첫날에 인사를 나누더니 일이 있다고 자리를 비우셨지, 형제 중 큰 쪽은 공사다망하다며 코빼기도 안 보이고, 작은 쪽은 술이다 식사다 보는 쪽이 질리도록 먹고 마시더니 칼질하는거(본인이 한 말을 인용한 것이다) 보여준다고 연무장에 끌고 나가 세 시간 동안 사람을 패지 않나, (그나마) 희망을 품었던 둘째는 릭 그보다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서 기본 운동만 한 시간, 대련이 두 시간째다.

 

하다못해 정원을 산책하고 말을 타게 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이놈의 검잡이들은 하는 거라고는 칼질밖에 없으니!

 

운동은 좋은 거다.”

 

아무리 좋다지만 너희는 너무 해대.

 

이 아저씨는 체력이 약해서.”

 

헛소리가 지나치다.”

 

지나치다니.

 

의사가 권장하는 최저 운동 시간은 일주일에 땀나는 운동을 30분씩 2회차... 아니, 3회차던가.

 

아무튼 그 정도라고.

 

바쁘고 연약한 회사원은 그나마도 공성전으로 대신하고 있지만.

 

이제 돌아가도 될까?”

 

헛소리.”

 

이번에도 헛소리냐.

 

기껏 초대했더니.”

 

심심하단 말이오. 하다못해 근처의 명물을 보여준다던가, 있지 않소.”

 

“...명물이라.”

 

벨져는 잠시 생각하더니 이쪽이라고 손짓했다.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가보라도 보여줄 모양인가.

 

그러나 그 발길이 향한 곳은 홀든의 쾌검사들이 연습이나 대련을 하는 널찍한 뜰이었다.

 

이 일대 최고의 명물이다. 신체강화 능력자들의 쾌검 대련.”

 

“...”

 

릭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하네.

 

마음에 들지 않나 보군.”

 

“...슬슬 검 말고 다른 것을 보여줄 때도 된 것 같소만.”

 

릭은 고개를 저었다.

 

모처럼 초대해주었는데 미안하지만, 나는...”

 

안 된다.”

 

애당초 부모님께 인사 드리라고 데려왔다며, 인사한 지가 옛날이다.

 

릭은 질린 표정을 지었다.

 

벨져.”

 

안 된다.”

 

아무리 요즘 내가 휴가라 한가하다지만, 난 원래 휴가에는 외국으로 여행을 간다고.”

 

여기도 네게는 충분히 외국일 텐데.”

 

그런 말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지 않소.”

 

벨져는 못들은 척 했다.

 

아저씨가 따지지 말고.”

 

“...너무하는군.”

 

아저씨라고 먼저 널 지칭한 것은 너다.”

 

더 이상 훈련을 하지 않는지 벨져는 수건을 들고 다른 손으로는 물을 마셨다.

 

아무래도 난-”

 

.”

 

인상을 찌푸리며, 벨져는 손가락으로 릭의 가슴을 쿡 찔렀다.

 

언제까지 이라고 할 건가.”

 

뭐라고?

 

릭은 벨져가 내미는 수건과 빈 잔을 받아들었다.

 

... , 리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릭이 말하자 벨져가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해라.”

 

우리, 여행가지 않겠소? 외국으로.”

 

그러자 벨져의 표정이 배부른 고양이처럼 변했다.

 

그렇게 말한다면야, 같이 가 주지.”

 

5분 기다려라.

 

벨져는 집 안으로 들어가버렸고 릭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남겨졌다.

 


[홀인/엘리X미셸] 눈오는 날

2015. 12. 15. 22:47 | Posted by 호랑이!!!

파티 이후, 미셸은 엘리와 함께 지내고 있었다.

 

비록 엘리가 사는 곳은 따뜻한 지역이었지만 미셸이 더운 기후에 적응할 짬도 없이 이 나라 저 나라로 날아다녔다.

 

한달째 다니는 여행의 목적은 일이 절반, 그리고 신혼이 절반이다.

 

남들은 따뜻한 해변가로 신혼여행을 간다지만 엘리와 미셸의 이번 목적지는 눈 내리는 프랑스 시골이었다.

 

눈 내리니까 인터넷이 안 잡히네요.”

 

일부러 안 잡히는 곳으로 왔는걸요, 미시엘.”

 

빌린 숙소는 책에 나올 것 같은 한적한 통나무집이었다.

 

안락의자 옆에 따뜻하고 환한 난롯불이 타오르고 은은하게 말린 꽃향기가 나는.

 

엘리는 보란 듯이 권외지역이라고 뜨는 핸드폰을 들어 보였다.

 

21세기에 터지지 않는 핸드폰이라니.

 

신선해하며 미셸은 핸드폰을 침대 위로 던져놓았다.

 

왜요? , 바쁜거 아니었어요?”

 

그래도 신혼이니까요.”

 

눈이 사박사박 내리고 있었다.

 

이미 바깥은 무릎까지 올 정도로 눈이 쌓여 있었는데도 계속해서 내리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눈 터널도 만들 수 있을 것 같네요."

 

엘리는 배시시 웃으면서 여행가방을 열었다.

 

올 때는 답답하다고 쓰지 않았던 모자나 목도리같은 것이 안에 들어있었다.

 

방울 달린 털모자, 복슬복슬한 목도리, 벙어리 장갑까지.

 

"이게 다 뭐예요."

 

벙어리 장갑이라니 애도 아니고.

 

미셸은 웃으면서 벙어리 장갑을 들었다.

 

"이제부터 나갈 거라서."

 

눈내린 바닥에 누워 천사 자국을 남기고 커다란 눈사람을 만들어 목도리를 둘러 주고 뒤에 숨어서 눈뭉치를 던지거나 눈토끼를 만들거나.

 

해가 져서 더는 놀지 못할 때까지 놀고 나니 온몸이 눈에 흠뻑 젖어 있었다.

 

모닥불 앞에서 눈에 젖고 얼어서 뻣뻣해진 목도리를 벗어 탁탁 털다가 미셸은 핸드폰의 사진을 넘기는 엘리를 돌아보았다.

 

"실컷 놀았네요. 눈 처음 봐요?"

 

코끝이 빨갛게 얼어서 엘리는 잘 나온 사진을 발견했는지 씩 웃으며 핸드폰을 들어보였다.

 

"미시엘이랑 보는 눈이 처음이예요."

 

 

사이먼은 그 실험실 이후 꽤나 여유로운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그동안의 삶에 비해서도, 객관적으로도.

 

늘어지게 잤다가 일어나서는 책(대개 동화책)을 읽거나 산책을 하거나, 이도저도 아니면 다시 누워서 잠들기도 했다.

 

밀러의 별장에서.

 

오늘도 느지막지 일어나서는 푹신한 베개에 얼굴을 부비다 눈을 떠 보니 시곗바늘은 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문을 열고 나가서 웅얼웅얼 말하지만 평소의 잘 잤나내지는 지금은 아침이 아니다같은 인사는 들려오지 않는다.

 

뭐지? 이 아저씨 또 납치당했나?

 

눈이 번쩍 뜨여서 테이블이며 서재를 우다닥 뛰어서 살펴봤지만 역시 없다.

 

대신 냉장고 앞에 작은 쪽지가 붙어 있었다.

 

6시 전까지 돌아오지 -M-

 

사이먼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기울이며 그 쪽지를 들어 읽다가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그 뒤로 두 시간은 베개를 끌어안고 뒹굴면서 보냈다.

 

그 뒤로 한 시간은 베개를 끌어안은 채 텔레비전을 보다 만화영화가 끝나서 아예 꺼 버렸고.

 

이제 뭐 하지.

 

그렇게 뒹굴거리다가 뭔가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사이먼은 벌떡 몸을 일으켰다.

 

아까까지 끌어안고 있던 베개는 소파에다 아무렇게나 던져놓고 부엌으로 후닥닥 달려가서 놓여있는 요리책을 펼쳤다.

 

이건 어려우니 패스, 이건 내가 싫어하니 패스, 으웩 이거 재료 손질 어려워 보인다.

 

그렇게 팔랑팔랑 넘기다가 이 정도면 괜찮겠다 하는 부분을 발견했다.

 

, 이거라면... 할 수, 할 수 있...있어.”

 

버섯과 가지와 마늘 등을 다지고 썰고, 만들고 난 곳을 치우다보니 시간이 훌쩍 사라졌다.

 

이제 맛있는 냄새를 풍기는 냄비 안을 들여다보았는데 시계를 보니 아직 6시까지는 30분이나 남았고.

 

아저씨가 집 안에 담배 냄새가 배는 걸 싫어할 거 같으니, 사이먼은 테라스로 나갔다.

 

담배를 꺼내물고 불을 붙인 뒤 한 모금 빨아들이니 마음이 편해졌다.

 

그 때 받았던 것을 꺼내보려고 습관적으로 주머니를 뒤적이니 바스락 소리가 났다.

 

비닐 끄트머리를 손가락으로 집어 꺼내는데 뭔가 이상하다?

 

비닐 안에 있어야 할 것이 없다!!!

 

이제 막 꺼내문 장초지만 주저없이 재떨이에 비벼 끄고 사이먼은 방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자다가 침대에라도 떨어뜨렸나?

 

씻다가 떨어뜨렸나?

 

설마 변기 안에 떨어진 건 아니겠지!

 

허둥지둥 방 안을 뒤지는데 저 멀리에서 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삑 삑삑 삐리릭.

 

사이먼은 잘 때 덮었던 이불을 확 펼쳐들었다가 그 아래 아무것도 없자 후다닥 뛰어나갔다.

 

아저, 아저, 아저씨.”

 

다녀왔다.”

 

, . 다녀오, 다녀오셨어요. 그런, 그런데... 없어, , ! 어요...!”

 

당황했는지 말이 마구 엉키기 시작했다.

 

사이먼은 말하는 대신 주머니에서 경찰들이 증거품을 보관할 때 쓰는 것과 비슷한 지퍼가 달린 비닐을 꺼내들었다.

 

경찰이 쓰는 것과는 달리, 매일 주머니에 넣고 다니느라 구깃구깃하고 하얗게 자국이 남았지만.

 

이거 찾나?”

 

밀러는 주머니에서 상자를 꺼냈다.

 

작은 상자였고, 그걸 열자 가느다란 끈이 달린 총알이 굴러나왔다.

 

“....”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는 것 같길래, 끈을 달아놓았네.”

 

사이먼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그걸 받아 목에 걸었고 맥이 풀린다는 듯 그의 몸에 푹 기댔다.

 

“...말하는 걸 깜박했군.”

 

사이먼은 다시금 한숨을 내쉬고는 그의 코트와 가방을 받아들었다.

 

“...이거, 케이, ?”

 

첫눈에 보아도 제과점 상자같은 것을 보고 사이먼은 작은 비닐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전에 자네가 케이크 좋아하는 것 같길래. 겸사겸사 사 왔네.”

 

사이먼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의 어깨 즈음에 머리를 힘주어 부볐다.

 

머리로 밀어내듯 부비고는 케이크를 거실의 커피 테이블에 놓고 포크를 꺼냈다.

 

시럽에 재운 블루베리와 과일들이 듬뿍 올라간 치즈 케이크.

 

커다란 걸로.

 

“......”

 

많이 들게.”

 

사이먼은 커다란 컵에 우유를 잔뜩 부어 왔다.

 

아저- 아저씨, -”

 

한쪽 손으로는 총알에 걸린 끈을 만지작거리고 꼬면서 다른 손으로는 케이크를 푹 떠서 내민다.

 

밀러가 입을 딱 닫자 사이먼은 배실배실 웃으면서 다시 입가로 케이크를 디밀었다.

 

, -”

 

“....”

 

입을 벌리자 케이크가 닿을 듯- 하다가 쏙 사이먼 쪽으로 돌아간다.

 

한입 가득하게 물고 우물거리다가 사이먼은 이번에는 진짜라며 다시 포크를 내밀었고 밀러가 입을 벌리자 다시 쏙 사이먼의 입으로 들어갔다.

 

밀러는 삐딱한 표정을 짓더니 냉큼 그의 손에 들린 포크를 뺏어다 퍽퍽 케이크를 잘라 입에 넣었다.

 

그렇게 커다란 케이크를 반 넘게 먹고, 입이 달아 우유를 마시다가 밀러는 저 주방 안이 보였다.

 

아침에 나갈 때는 없었던 냄비가 가스레인지 위에 놓여 있었다.

 

저 냄비는 뭔가?”

 

, . ... 만들었, 어요.”

 

밀러는 포크를 내려놓았다.

 

그럼 밥부터 먹었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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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풍] 북소리 둥둥

2015. 12. 10. 05:08 | Posted by 호랑이!!!

제아무리 이명이 삭풍이라지만 빅터 그에게도 겨울바람은 늘 싫을 정도로 추웠다.

 

아니, 어쩌면 겨울이라는 계절 자체가 싫을지도 모른다.

 

어떤 계절도 그에게는 좋아할 이유가 없었지만 겨울은 특히 춥고 아프고 차가우니까.

 

바람을 다루는 만큼 공기에 민감하기 때문에 더더욱 살을 에는 듯한-.

 

빅터는 푸르르 머리를 털고는 옷깃을 여몄다.

 

야학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은 한밤중이라 너무 추운데다가 어두웠다.

 

기실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둔 저 옆의 길에는 가로등이 켜져 있었고 빅터가 빛 없는 어두운 길로 가고 있었을 뿐이지만.

 

그렇지만 그 길 건너에는 야학을 마친 사람들이 둘씩 혹은 셋씩 걸어가고 있어서 무의식적으로, 혼자서 걷는 빅터는 그 길을 피했다.

 

아래를 내려다보던 고개를 들고 후 숨을 쉬자 추운 공기에 하얗게 입김이 부서졌다.

 

새삼 혼자구나 생각이 들었는데.

 

갑자기 둥 북소리가 났다.

 

카를로스가 왔다! 나 보고 싶었지?”

 

둥둥.

 

카를로스의 움직임은 항상 타악기에 맞춰 추는 춤처럼 유쾌했고, 그 주위의 바람은 항상 음악처럼 부드럽게 맥박쳤다.

 

어떻게 찾은 거야?”

 

난 빅터가 어디에 있던지 찾아낼 수 있지롱!”

 

쾌활한 웃음소리가 뒤이어 퍼졌다.

 

카를로스는 빅터의 손을 잡고 끌어당겼다.

 

빅터는 그 때문에 고개를 돌리게 되었고 가로등이 켜진 길 너머 조금 멀리에 뭔가를 파는 가판대를 발견했다.

 

과연 거기로 갈 참이었는지 카를로스가 위로 휙 지갑을 던졌다.

 

나 오늘 용돈 받았거든. 이 형이 살게!”

 

형은 무슨.”

 

빅터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지만 카를로스는 히히 웃을 뿐이었다.

 

카를로스는 겨우 거기까지 가는데도 바람의 힘으로 통통 튀어갔다.

 

오렌지색 환한 가로등 아래를 뒤따라 뛰어가면서, 빅터는 다시 둥 하고 북 두드리는 소리를 들었다.

 

둥둥.

 

둥둥둥.

 

활짝 펴진 가죽 위를 둔탁하게 퉁퉁 내리치는 소리.

 

아무렇게나 썰어내 튀긴 감자를 받고 카를로스는 집까지 데려다 주겠다더니 빅터의 손을 잡고 하늘 위로 휙 뛰어올랐다.

 

하늘 위는, 빅터는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환한 가로등 아래보다 밝다.

 

그렇게 느껴졌다.

 

하나씩 빼먹던 튀김은 빅터의 집 앞에 가볍게 착지할 즈음에는 손에 기름기조차 남지 않았다.

 

내일도 또 올게.”

 

카를로스는 빅터를 놔두고는 가볍게 뛰어올라 멀어졌다.

 

바람에 감싸인 그 모습을 보다가 빅터는 문득 손을 자신의 몸에 대 보았다.

 

부드럽게, 북이 울렸다.

 

 

유달리, 빅터는 카를로스와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다.

 

다른 사람과 논다고 한다면 겨우 길 위, 땅 위의 앞뒤좌우가 전부인 광장이었지만 카를로스와 함께 다닌다면 겨우 땅 위가 아니라 벽 위, 지붕 위까지 그들의 놀이터였으니까.

 

지붕 위이든 돌담 위이든 누구라도 원한다면 올라갈 수 있겠지만 그들은 그들만의 공간이라고 생각했고,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 사람으로서 꽤나 서로에게 친밀감을 느꼈다.

 

어느 날의 야학 마지막 시간, 빅터는 맨 앞자리에서 칠판을 빤히 올려다보다가 뒤에서 날아온 쪽지를 주워 펴 보았다.

 

[날 좀 봐요, 카를로스가 왔어요]

 

뒤를 돌아보니 맨 뒷자리, 희뿌연 전등 빛도 제대로 안 비쳐 보이는 어둠침침한 구석 즈음에 왠지 익숙해 보이는 실루엣이 보인다.

 

하스 학생, 듣고 있나?”

 

, 죄송합니다.”

 

선생님의 주의에 고개를 홱 돌리며 빅터는 다시 책으로 코를 묻었다.

 

그러면서도 뒤에서는 연달아 작게 접은 쪽지들이 바람을 타고 날아와 선생님이 보지 못하는 사이에 책상에 툭 툭 떨어진다.

 

[나 왔어! 보고 싶었지!]

 

[빅터랑 같이 수업 들으니까 좋다~]

 

공부는 하고 있냐.

 

바로 옆에 있었다면 쏘아붙였을 말인데.

 

빅터는 보란 듯이 부루퉁하게 입술을 내밀었지만 마음 한 구석이 간질거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옆자리의 누군가가 오늘 무슨 좋은 일 있냐고 속삭여 물을 만큼, 빅터의 입꼬리가 흐물흐물 무너지는 것을 억지로 잡았더니 끝이 부들부들 떨린다.

 

 

 

 

 

 

나 오니까 좋지?”

 

“...자신감 과잉이야 그거.”

 

에이~ 좋잖아~”

 

그치! 하고 물어보자 빅터는 길에서 휙 뛰어올라 건물 위로 올라갔다.

 

뒤에서 카를로스가 쫓아오는 것을 느끼고는 다음 건물 위로 날아갔다.

 

- 터어어-”

 

이 술래잡기는 한동안 계속되다가 카를로스가 아래에서 뭔가를 발견함으로 멈추었다.

 

, 아이스크림!”

 

계절은 벌써 겨울이고 밤이라 가뜩이나 어둡고 쌀쌀한데, 카를로스는 아이스크림을 먹자며 빅터를 불렀다.

 

그러다 감기 걸려.”

 

걸리면 그거 핑계로 학교 안 나가지 뭐-”

 

배부른 소리 하기는.

 

빅터가 투덜거리는 중에 카를로스는 아이스크림을 사서는 입에다 들이밀었다.

 

빅터가 감기 걸리면 이 형이 간호해주러 갈 테니까 안심하라구?”

 

그거 별로 안심 안 되거든.”

 

핀잔을 주면서 덥석 베어물면 단 맛이 입안에서 녹아내렸다.

 

이따끔 공장에서 밖을 내다보면 좋은 옷을 입은 아이들이 옆구리에 책을 끼고 사탕으로 군것질하는 모습을 본 적 있었다.

 

그것이 부럽다는 생각은 한 적 없지만.

 

그래도 카를로스와 함께 지내는 이 때만은 빅터도 자신이 다른 아이들과 같다는 느낌을 받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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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2월인가- 체감이 확 되네.”

 

이글은 제대로 말리지 않은 머리 끝이 얼어서 톡톡 부러뜨리며 투덜거렸다.

 

빅터는 고집을 부려 공장을 계속 다니고 있었는데, 그래도 이글 보다는 집에 일찍 와서 벽난로에 불을 지핀다던가 물을 끓여놓는다던가 하는 일을 했다.

 

야학도 계속 다니고 있어서 이글은 그 점이 대견스럽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했다.

 

아무래도 저랑 닮은 이 꼬마는 공장을 그만두고 낮에 학교를 다니게 할 만큼 저를 아직 못 믿고 있지만 그래도 제가 가출할 즈음보다 야무진 모양이다.

 

빨리 크리스마스가 되면 좋을 텐데, 그렇지?”

 

“...별로, 그러면 포장 일이 느니까...”

 

그러고보니 발렌타인에 초콜릿을 받았는데 그것조차 자기가 포장한 거라고 했던가.

 

이거 안쓰럽네.

 

그건 그거고, 뭐 갖고 싶은 거 없어? 스노우볼이라던가, 새 장갑이라던가.”

 

그러나 고개를 젓는다.

 

“...이글-........?”

 

~? 글쎄~ 좋은 술도 좋고, 뭐든지 재미있을만한 거?”

 

빅터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제 무릎에 당연하다는 듯 올라와 앉는 빅토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빅토르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솜털이 보송보송했는데 이제는 그 티를 벗고 제법 자라서 이따끔은 몸은 자라고 머리는 덜 큰 청소년기 같은 티를 냈다.

 

빅터는 의자에다 묶어둔 고양이 낚싯대에 바람을 보내 흔들었다.

 

거기 냅다 달려가는 빅토르를 보다가 고개를 돌려 이글 쪽을 향했다.

 

벌써 크리스마스 얘기를 해?”

 

미리미리 해 둬야지.”

 

아 그건 그거고.

 

이글은 품에서 공책을 몇 권 꺼내 내밀었다.

 

이거 뭐야?”

 

너 전에 쓰던 공책, 다 써가잖아.”

 

제법 질 좋은 공책이다.

 

덤으로 꽤 괜찮은 펜까지.

 

“...용케 무난한 거 골랐네.”

 

안그래도 옆에 개당 수십달러 하는 펜들이 있더라고.”

 

그런거 사주고 싶었는데, 안 받을 거잖아.

 

이글이 짐짓 삐진 체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그래도 받았을 걸, 생일인데.”

 

빅터가 공책을 양 손으로 쥐어 들면서 작게 웅얼거리자 이글은 잡아당기기라도 한 것처럼 몸을 홱 틀었다.

 

생일이었어?!”

 

몰랐단 말이야?!”

 

이글은 벽에 걸어둔(그러나 잘 확인하지 않는) 달력 쪽으로 뛰어가 확인했다.

 

빨간 동그라미가 있고, 빅터의 생일이라고 적혀있다.

 

그것도 자기 글씨로!

 

, 오늘은 외식을... 그 전에 케이크도 사고, 풍선도 사고...!”

 

어쩐지 오늘은 생전 좋아하지도 않는 단 것이 당기더라!

 

이글은 빅터의 공책을 뺏었다.

 

이거 말고 역시 펜을...!!!”

 

내놔 그거!”

 

빅터는 높이 쳐든 공책 쪽으로 펄쩍 뛰어 달려들었고 이글은 몸을 뒤로 빼며 공책을 못 잡게 했다.

 

그 몸 위로 냅다 올라타 바닥에 쓰러뜨려서는, 빅터는 그 손에서 공책을 채 갔다.

 

공책을 주더라도 좀 더 좋은걸 사올 수 있어!”

 

생일 아니어도 나 생각해서 사온- , 됐어! 내놔!”

 

빅터가 잡아채는 공책 끝을 잡고 이글은 씨익 웃었다.

 

널 생각해서 사와서, ?”

 

“......”

 

말 해야지.”

 

또 도망가려는 것을, 냉큼 허리에 손을 둘러 잡았다.

 

“....고마워.”

 

그리고?”

 

“..........”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씹는 것을 지켜보다가 이글은 공책을 한 번 더 잡아당겼다.

 

그리고?”

 

“......기뻐.”

 

잘했어.”

 

이글이 허리에 감은 손을 떼자 빅터는 이글의 몸 위에서 벌떡 일어났다.

 

누워서 키득키득 웃는데, 빅터는 손을 뻗더니 이글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고 방으로 후닥닥 뛰어가더니 문을 쾅 닫았다.

 

...아 혹시 날 흉내내서 칭찬을 하는 건가.

 

그리고 이글은 빅토르가 깜짝 놀랄 정도로 박장대소했다.

 

그것이 불만인지 빅터가 들어간 방에서 문을 쾅 치는 소리가 났지만 웃음을 그칠 수 없었다.

 

서툴러 빠진 꼬맹이 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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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날 불러냈어? 뭐 할 말이라도 있나?”

 

어두운 방 안에서 원형 테이블에 재료와 진을 그리고 불을 붙이는 순간, 꽤 얄미운 어투의 남자가 잔에 담긴 술을 홀짝거리며 방 안에 나타났다.

 

지금 찾는 사람을 찾으려면 또 다른 각인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불운하게도, 네가 적임자거든.”

 

? ?”

 

그는 과장스레 몸을 젖히고 눈을 굴리며 생각하는 척을 하더니 몸을 바싹 바로 세웠다.

 

, 못해줄 것도 없지! 어디보자-”

 

그는 딘의 몸을 이리저리 살피더니 항복이라는 뜻으로 양 손을 들어올렸다.

 

갈비뼈가 다 찼어.”

 

딘은 갈비뼈에 새겨진 걸 만져보려는 듯 제 가슴에 손을 올렸다.

 

제일 무난하고 좋은게 그건데 말이지, 다 찼다고 두개골에 하기에는 너희 원숭이들은 지나치게 섬세하고, 뇌에 영향이 갈지도 모르잖아?”

 

보호 각인이 그렇게 많을 줄은 몰랐는데.”

 

샘이 각인을 위해 벗어뒀던 겉옷을 챙겨들면서 말하자 발타자르가 가볍게 손짓해서 겉옷을 떨어뜨렸다.

 

보호 각인은 갈비뼈 중심에 있는 그거 하나뿐이야. 물론 샘, 네 몸에는 없지.”

 

물론인데?”

 

, , ... 날 아주 한가한 천사로 보고 있군. 그런 질문에 대한 대답은 다른 천사한테나 물어봐.”

 

그는 투덜거리면서 샘의 몸에다 손을 얹었다.

 

“...그 왜, 더러운 트렌치코트를 입고 너랑 사랑에 빠진 그 녀석.”

 

농담하고는, 딘이 한 마디 쏘아붙여주려던 순간 그는 각인을 마치고 사라졌다.

 

“..각인이 내 몸에 새겨졌는데. 이제 어쩌지, ?”

 

너 혼자 가는거지 뭐, 난 밖에서 대기하고 있을게.”

 

그들은 총에 총알을 채워넣고는 밖으로 나갔다.

 

 

 

 

 

 

 

 

샘은 조사를 위해 밤새 도서관에 있겠다고 했다.

 

안전을 위해 밤이면 항상 돌아오곤 했기에 걱정이 되어 딘은 안절부절 못하다가 결국 모텔방에 앉아 텔레비전을 켰다.

 

야한거 하네.

 

예쁜 여자가 옷을 벗는 장면이었는데 딘은 심드렁하게 쳐다보다가 결국 자리에 누웠다.

 

“...하아...”

 

샘은 안전하다.”

 

깜짝이야!”

 

딘은 카스티엘의 목소리가 방 안에서 들려서 벌떡 일어났다.

 

다음부터는 인기척을 내도록 하지.”

 

마치 놀랐다는 걸 숨기려 들 듯 딘은 얼굴을 문지르고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래서 그 얘기를 하려고 여기까지 온 거야? 그 먼 천국에서?”

 

본 목적은 다른 것이다.”

 

카스티엘은 딘이 엉덩이를 걸치고 앉은 침대 앞에 서서는 그를 내려다보았다.

 

아이가 필요하다.”

 

특별히 바쁜 일이 없으니까, 딘은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데? 어디 사는 애고?”

 

뭐 샘처럼 특별한 날에 선택받아서 살고 있거나 한 그런 애려니.

 

데려다 주면 감시를 하거나 이래저래 하겠지.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

 

태어나지 않았다?

 

이봐, 아무리 나라도 갓 태어난 아기를 훔쳐오는 것은 양심에 걸리는데.”

 

그건 법이고 뭐고 하기 이전에 양심의 문제-

 

너와 나의 아이다.”

 

뭐라고!”

 

그러니 벗어라.”

 

, 잠깐! 말이 되냐! 둘 다 남자잖아!”

 

엄밀히 말해, 천사는 양성이다.”

 

딘은 그 말에 제 옷을 벗겨오는 그 손을 잡았다.

 

네가 임신하는 모습은 보고싶지 않은...”

 

임신하는 것은 너다.”

 

?!”

 

내가 임신할 수는 없잖아.”

 

나는 되냐고!

 

카스티엘은 힘을 써서 딘을 억지로 침대에 눕혔다.

 

그리고, 손가락부터 천천히 몸이 빛나기 시작했다.

 

눈이 부셔서 딘이 눈을 감는데, 그 빛은 딘의 몸에 스며들었고.

 

딘은 직감적으로 자신의 몸에 다른 생명이 들어찼다는 것을 느꼈다.

 

 

 

 

 

 

 

 

 

“...라는 꿈을 꿨어.”

 

낮부터 일 안하고 낮잠을 자니까 그런 꿈을 꾸는 거야.”

 

자료조사 혼자 시킨다고 삐졌냐?”

 

내가 무슨!”

 

샘은 어깨를 으쓱하더니 가방에 노트북을 접어 넣고는 어깨에 휙 둘러멨다.

 

“...어이, 새미, 어디 가?”

 

도서관에. 좀 조사할 게 있어서... 내일이나 되어야 들어올 거야.”

 

샘은 주섬주섬 노트며 볼펜을 주머니에 쑤셔넣고는 모텔의 문 손잡이를 잡았고 딘은 무언가의 불길함에 몸을 던져 샘을 붙들었다.

 

안돼!!!”

 

 

[릭벨] 11월의 꿈

2015. 11. 27. 01:03 | Posted by 호랑이!!!

오늘로 일주일, 아무런 수확이 없었다.

 

그동안 들었던 정보를 종합하면 이 곳이 맞을 텐데.

 

대뜸 액자가 나오거나 안타리우스의 본거지를 발견하는 일은 기대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최소한 실마리 정도는 나와야 할 것 아닌가!

 

여관으로 돌아와 벨져는 덧입은 겉옷을 벗어 침대에 던지고 의자에 털석 주저앉았다.

 

아무리 그래도 일주일은 길어도 너무 길다.

 

프리츠의 꼬마한테 연락이라도? 아니, 아직은 하지 않을테다.

 

벨져는 테이블에 놓인 것을 팔로 밀어내고 지도를 펼쳤다.

 

테이블에 있었던 쇠그릇과 안에 담긴 사과가 마루 위로 흩어졌다.

 

다녀왔소?”

 

수확은?하고 물어오는 이를 쌀쌀맞게 노려보고 벨져는 수첩을 펼쳤다.

 

분명 놓친 것이 있을 것이다.

 

있어야 한다.

 

수첩에 구멍 뚫리겠소.”

 

방해된다.”

 

릭은 어깨를 으쓱하고 저녁거리를 사오겠다며 겉옷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거리를 돌아다니며 조금 발품을 팔아 저만치 먼 가게에서 제일 맛있는 치킨 샌드위치에 컵에 담아 파는 수프, 그 옆 거리로 돌아들어가면 파는, 디저트로 먹을 애플파이까지 샀더니 저녁시간이 지나 있었다.

 

그래도 이 거리에서 제일 맛있다는 것으로 샀으니 저녁시간을 한 시간 넘긴 것쯤이야 벨져도 눈감아줄 테지.

 

옆구리에 종이봉투를 끼고 우유 한 병을 사 들고 들어갔더니 방이 난장판이었다.

 

테이블은 뒤집어져있고 의자도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의자 중 하나는 다리가 부러져 있었는데 부러진 다리는 바닥에, 나머지 부분은 조각조각나 침대 위에 있었다.

 

이런 중요한 일을 하는 중에 술 때문에 실수라도 할 수 없다며 술을 입에 대지도 않던 벨져는 한 손에 릭이 마시곤 하던 맥주병을 쥐고 침대에 상체를 기대 잠들어 있었다.

 

바닥에도 술병이 있군.

 

하나, , , ...

 

술도 약한 이가 참...”

 

릭은 테이블을 일으키곤 그 위에 저녁거리를 내려놓았다.

 

 

 

 

 

 

 

벨져는 낯선 향기에 눈을 떴다.

 

어두웠고, 일주일이나 머물렀던 여관의 냄새가 아니라 수풀의 향이라는 것을 깨닫고 몸을 일으켰다.

 

이상하기도 하지, 분명 달까지 뜬 밤인데 밝다.

 

가스등 따위의 희무끄레한 빛도 아니고 반딧불이의 색도 아닌, 그런 밝음.

 

독어로 중얼거리는 소리에 릭이 벨져를 돌아보았다.

 

일어났소? 벨져.”

 

여긴 어디지?”

 

릭은 벨져가 일어나도록 손을 내밀어 잡게 했다.

 

이 길을 따라가 보시오.”

 

벨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언덕 같은 곳에 풀과 나무가 가득하게 자라 있고 길은 달 쪽으로 나 있었다.

 

그럴 리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이 길을 따라가면 달로 날아갈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고 벨져는 자조적인 웃음을 지었다.

 

아무래도 자신이 너무 술을 마신 모양이다.

 

그렇지 않으면 큰형의 감상적인 부분이 옮았던가.

 

아직 술이 덜 깨서 몽롱했지만 손은 릭에게 맡기고 달에게 걸어갔다.

 

길 끝으로 가자 따뜻한 빛이 눈부시게 자신에게 쏟아졌고, 달은 팔을 벌려 벨져를 안아주었다.

 

아니.

 

눈앞에 펼쳐진 것은 마을이었다.

 

길마다 구석마다 모든 곳에 촛불, 혹은 기름등잔이 불을 밝히고 있었고 그래서 밤인데도 모든 곳이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촛불 특유의 따스한 빛깔이 땅에서부터 벽을 타고 공기 중에 퍼져나가고 있었고 어떤 사람들은 향을 태워 향긋한 향기가 감돌게 했다.

 

집 안팎으로 전통 무늬가 가득했고 아이들과 사람들은 발에 하얀 가루나 빨간 가루를 묻혀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발자국을 남기며 기뻐하고 있었다.

 

따분하고 느긋하게 살기에 인생은 너무 짧소.”

 

릭은 어느샌가 손에 빨간 가루를 들고 있었다.

 

", 보시오."

 

릭은 신발과 양말을 벗어던지고 발에 빨간 가루를 묻힌 뒤 하얗게 먼지가 이는 흙바닥에 발자국을 찍었다.

 

어떻소, 그대도 같이...?”

 

벨져는 고개를 저었다.

 

릭은 보란 듯 빨갛게 발자국을 남기며 마을을 돌아다녔고 다시 돌아왔을 땐 꽃과 말린 과일을 손에 들고 있었다.

 

나무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벨져는 나무에 기댔다.

 

길은 달로 이어져 있고, 저 아래로 내려가면 평화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촛불을 태우며 기뻐하는 축제가 있다.

 

사람들은 노래를 부르고, 그림을 그리고, 발자국을 남기고, 향을 사른다.

 

공기에 떠도는 향기는 달콤하고, 때때로 짤랑거리며 장신구로 찬 은조각 부딪히는 소리가 난다.

 

따뜻하고, 낯설고, 다정해서.

 

벨져는 눈을 감았다.

 

 

 

 

 

 

다음날 아침, 일어난 것은 하얀색 침대 시트 위였다.

 

어제 엎어놓고 잤던 테이블은 원래대로 세워져서 위에는 샌드위치며 수프가 있었다.

 

방은 말끔했고, 릭은 의자에 앉아 사과를 베어물고 있었다.

 

잘 잤소? 어제 저녁거리를 사 왔는데 그대가 너무 잘 자길래 그냥 내버려뒀더니 다 식었지 뭐야.”

 

릭은 씻으러 간다며 욕실로 들어갔다.

 

차가운 샌드위치를 베어 무는데 문득, 릭이 신었던 슬리퍼가 눈에 들어왔다.

 

하얗고, 얇고, 으레 고급 여관에서 주는 일회용 슬리퍼.

 

그 끝에는 붉은 자국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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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의 꿈은 '짧은 여행'이라는 제목으로 인쇄하였습니다.


온라인 발행은 이쪽을 참고하여 주십시오 : http://posty.pe/ms2q7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