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호랑이!!!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글 보관함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토마스X이글X토마스] 거짓말쟁이

2015. 10. 25. 04:33 | Posted by 호랑이!!!

※얀데레 요소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거부감이 있으신 분은 보지 마세요


==========================================================================


이글 형!”

 

흠칫, 하고 팔이 떨렸다.

 

연합 성인들 중에서는 명실공히 막내, 주제에 성실하고 겸손하고 제법 능력까지 뛰어나 두루두루 인망 좋은.... 토마스 스티븐슨이 자신의 어깨를 잡고 있었다.

 

“..., 놀래라.”

 

하하, 별 건 아니고. 저기 물건 좀 내려달라고 하려구요.”

 

한창 재미있었는데-”

 

이글은 재미나게 얘기하던 중인 레베카 쪽을 보았고, 레베카는 괜찮다는 듯 손을 들어보였다.

 

나중에 다시 얘기하자.”

 

그래도 간만에 얘기하는건데-”

 

됐어 됐어, 다음에 맥주나 마시러 가자.”

 

레베카는 다른 사람과 얘기할 생각인지 자리를 떴다.

 

레베카랑은 정말로 오래간만에 얘기하는건데 말이야.

 

아니지, 요즘 들어서는 다같이 모이는 저녁 시간이라던가 임무때 외에는 얘기를 거의 안 했다.

 

게다가 묘-하게, 일이 있으면 꼭 간접적으로, 간접의 간접적으로 토마스가 연관되어 있었다.

 

마치, 도미노 놀이처럼 자신이라는 마지막 패가 쓰러지는 반대쪽에는 토마스가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과한 생각일 수도 있겠지만.

 

이글은 묘한 기분이 들어 토마스를 흘끗 보았다.

 

사람 좋게 웃어보이는 녀석.

 

스물 한 살짜리 애송이.

 

그래 뭘 내려달라고~?”

 

토마스가 피터를 맡아 돌본다.

 

트리비아와 나이오비는 현재 연합에 필요한 물품을 사러 갔고 루이스가 거기 따라갔다.

 

원래라면 트리비아가 아닌 이글의 차례였으나 저번에 이글이 트리비아 대신 다녀온 일이 있어 바꿔 주었다.

 

그 때 트리비아와 같이 가야 했던 당번은 토마스였는데 하필 피터와 놀아주다가 한쪽 팔을 삐었었고.

 

덕분에 대신 하겠다고 자원했었지.

 

지금 이 시각 엘리는 피터와 함께 놀이터에 있을테고.

 

덕분에 이 연합에 있는 사람이라고는 도일이나 휴톤이나 레이튼... 그래, 레베카도 있지.

 

하지만 그들은 저만치 부엌에서 목청 좋게도 떠들고 있다.

 

토마스가 내려 달라고 하는 물품은 꽤 높은 곳에 있어서 의자를 가지고 와야 했다.

 

이런거면 차라리 휴톤 형님한테 해달라고 하지 그랬어? 나보다 키가 한 뼘은 더 큰데.”

 

아무리 그래도 내 키가 거진 180인데 그러고도 의자가 필요하다니 너무 높은 곳에 물건을 둔 건 아닌지.

 

이글이 속으로 꿍얼거리며 등받이 없는 나무의자를 가져왔다.

 

거기 올라가서 상자를 잡아당겼더니 꽤 묵직했다.

 

그런데 토마스, 이건 어디에...”

 

어디에 쓰려는 거야?하고 물으려고 고개를 돌린 순간 보았다.

 

토마스의 발이 의자를 툭 걷어차는 것을.

 

이래봬도 운동신경이 제법 좋으니까 잽싸게 자세를 잡으려고 했는데 얼음 결정이 그것을 방해해서 요란하게도 머리부터 떨어졌다.

 

그러게, 이성이 아니라 내 감을 믿어야 했는데

 

우습게도, 이글은 그러게 나는 토마스가 무서웠어라는 생각을 하며 느리게 눈을 깜박였다.

 

머리를 너무 세게 박은 것인지 눈 앞이 어질거려서 마치 토마스가 웃는 것 같았다.

 

==

 

이글이 다시 눈 뜬 곳은 하얀색 천장이 있는 병원이었다.

 

방싯방싯 웃는 상냥하고 친절한 미소를 띈 토마스가 있는.

 

“...까미유는?”

 

유감스럽게도, 친구분의 몸에 이상이 있다고 해서 불려갔다고 들었어요.”

 

사나흘은 잡혀있을 거라고 하던데요.

 

이글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들고 일어나 앉았다.

 

토마스는 애써 도와주려 하지 않았다.

 

전부 계산한거지?”

 

글쎄요, 뭘 말인가요?”

 

토마스가 생긋 웃었다.

 

새삼 이글은 안경으로 일견 동글동글해 보이는 토마스의 눈매가 날카롭다는 것을 깨달았다.

 

토마스는 보호자용 의자에서 일어나 이글 쪽으로 다가와서는 이글이 부담감에 조금씩 몸을 뒤로 물리다가 결국 누울 때까지 몸을 가까이 했다.

 

저는, 그러고 싶지 않았어요.”

 

처음에는 이글 형이랑 같이 임무에 나간다던가, 잔심부름을 한다던가.

 

우연을 가장해서 만나 같이 연합으로 돌아온다던가.

 

정말로 그 정도로 충분했었는데.

 

전부 형 탓이예요.”

 

다른 사람하고 말했잖아요.

 

다른 사람하고도 연합으로 돌아왔잖아요.

 

형은 삼남이죠?”

 

첫째도 둘째도 아닌 셋째, 막내.

 

첫째는 가문을 잇는다 정략 결혼한다 쓰임이 많고.

 

둘째는 첫째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때를 대비한 예비품.

 

하지만 셋째까지 쓰일 일은 거의 없지요.

 

심지어 형은 회사가 아닌 연합 소속이니까.

 

형의 가족들은 형이 전장에 나오지 못하면 오히려 안심할거예요.”

 

사흘이면 충분해요, 그렇게 토마스가 웃었다.

 

잘도 주변 사람들을 속여 왔군, 이 거짓말쟁이.

 

이글은 코앞까지 다가온 토마스의 눈을 노려보았다.

 

 

[티엔하랑] 마틴은 티엔이 정말 싫습니다

2015. 10. 21. 17:43 | Posted by 호랑이!!!

좋은 일이 있나 보네요.”

 

마틴은 팔랑팔랑 책 한 권을 끼고 복도를 지나가는 하랑이에게 말을 건넸다.

 

오늘 생일이야!”

 

, 그랬었죠.”

 

그러고보니 제가 누구 생일이라 선물을 준비했는데~

 

라던 마틴은 하랑이의 기대감이 높게 치솟자 냉큼 한 마디 찬물을 끼얹었다.

 

저녁에 가져다 줄게요.”

 

그게 뭐야! 사실 아무 준비 안 했지!?”

 

진짜거든요!”

 

, 아침부터 하랑군이랑 웃고 떠드니까 좋네.

 

좋아, 이 좋은 기분으로 티엔에게도 한 마디 말을 건네 줄까.

 

마틴은 웃느라 가빠진 숨을 골랐다.

 

잠시 브루스가 하랑을 부르는 것이 보여서, 후우 숨을 마저 고르고는 티엔을 툭툭 건드리며 말했다.

 

티엔 정, 그래도 선생님인데 하랑군한테 생일 축하한다는 말은 해 줬어요?”

 

그러자 이 티엔이라는 작자는 더없이 무뚝뚝한 표정으로 한 마디 한다.

 

생일이 뭐가 대수라고.”

 

뭐라고요!!!

 

마틴은 그 말에 입을 쫙 벌려서는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봐요 티엔 정!”

 

오늘은 1021일이다. 365일 중 단 하나. 그리고 그 때 이하랑이 태어난 것 뿐이다.”

 

마틴은 냉큼 이하랑을 돌아보았다.

 

다행히 아직도 브루스씨와 얘기하느라 이쪽은 보지 않고 있다.

 

티엔이 뭐라고 하는지도 아직 못 들었겠지, 아마!

 

마틴은 한껏 목소리를 죽여 소근거렸다.

 

당신 제정신이예요? 아니, 인간은 맞아요?”

 

자네가 사람에게 이렇게 막 말하는 것은 또 희귀한 일이군.”

 

남의 태도보고 오오 희귀하다~’하면서 감상할 때가 아니거든요! 이 목석!”

 

불쑥, 하랑이 고개를 내밀었다.

 

뭐야, 둘이 또 싸워?”

 

싸우는 게 아니다. 마틴이 일방적으로 시비를 거는 거지.”

 

... 이 거만하기 짝이 없는...

 

마틴은 으득, 이를 갈았다.

 

지금 당장 하랑군한테 일러바치고 싶지만 그랬다간 상처받을지도 모르니까 참아주는 거예요!

 

아 정말, 티엔 정은 평생 나한테 감사한다고 외쳐야 해.

 

, 우리 마틴 형씨는 그런 짓 안 하거든!”

 

하랑이 마틴에게 냅다 어깨동무를 하면서 편을 들자, 마틴은 자연스럽게 하랑이를 끌어안으면서 티엔에게만 보이도록 혀를 내밀었다.

 

“...이하랑, 내 말은 안 믿나.”

 

평소에 착하게, 바르고 고운 옳은 말만 하면서 사셨어야죠.”

 

마틴이 우쭐해진 표정으로 쳐다보자 티엔은 어딘지 심통이 나 보이더니, 손목시계를 툭툭 건드렸다.

 

이하랑, 지금 뛰어가도 시간에 늦을 텐데. 그리고 마틴 챌피, 회의는 30분부터 일 텐데 지금은 20분이다.”

 

헉 늦었다! 싸부, 마틴 형 이따 봐!”

 

아 정말! 이따 봐요 하랑군!”

 

그래도 오늘 저녁시간에는 다같이 식사도 하기로 했고, 하랑군한테는 비밀로 케이크도 샀고!

 

선물도 나름대로 고심해서 샀으니 내가 제일 나으렷다.

 

마틴은 한껏 기분 좋은 표정으로 회의실에 들어갔다.

 

그 기분은 저녁시간까지 이어졌지만, 깨지는 건 한순간이었다.

 

한 손에는 케이크 상자, 다른 쪽 손에는 커다란 인형을 안고 모이기로 한 하랑의 방문 앞에서 티엔을 마주쳤으니까.

 

심지어, 빈손이다!!!

 

티엔 정! 아까 그런 말을 했어도 이렇게 먼 이국까지 따라온 제자한테 줄 작은 무언가라도 준비했을 줄 알았는데!”

 

마틴, 뭔가 착각한 것 같은데. 하랑은 내기에 졌기 때문에 온 것이다. 여기에는 아무런 기특함도 무엇도 없어.”

 

... 이 피도 눈물도 없는!

 

마음만 읽혔더라면 당장 기억을 뒤져서... 아니면 최면을 걸어서 잊지 못할 흑역사를 헤집어 주고 싶네요!

 

으르렁거리는데 저만치에서 브루스 보이틀러가 이하랑의 눈을 곰 앞발로 가리고 천천히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 이럴때가 아니지! 빨리 선물을 방에다가...!

 

하면서 방 안으로 들어섰더니.

 

상 위에는 이하랑이 말하던 조선 음식이 가득.

 

방 안에는 풍선과 촛불과 장미가 그득한 것이다.

 

이 사기꾼.”

 

이런 것을 만들 줄 아는 사람은 한사람밖에 없으니.

 

마틴이 티엔을 돌아보자, 티엔은 의기양양한 미소를 만면에 띄웠다.

 

아무 준비도 안 했다고는 하지 않았다.”

 

 




11월의 이맘때쯤이면 학생들이 가장 손꼽아 기다리는 행사가 있다.

 

그것은 바로 퀴디치컵!

 

벌써 아침 연습을 마친 기숙사팀은 땀이나 이슬, 진흙에 젖어 연회장으로 오기도 하고, 연회장으로 오지 않은 선수들에게 가져다준다고 휴지에 토스트를 싸가는 학생들도 종종 보인다.

 

작은 수첩에 전략을 적어 웅얼거리며 외우는 학생들도 있고 선수나 전략에 대해 토론하는 학생들도 여기저기에.

 

이번달의 경기는 그리핀도르와 후플푸프인데 학생들의 얘기를 조금 듣자면 이렇다.

 

후플푸프는 추격꾼 층이 탄탄하지.”

 

거긴 여자들이 꽤 많아. 파수꾼인 린도 여자애고.”

 

거기 수색꾼은 작년에 7학년이었잖아? 이번 수색꾼은 2학년 여자애래!”

 

그리핀도르에 대해 얘기하는 학생들을 보자면.

 

뭐니뭐니해도 영웅루이스가 파수꾼이니까.”

 

거긴 응원도 되게 화려하지. 저번에 클레어가 하는 거 봤어? 올해도 하려나-”

 

추격꾼은 그냥 그렇지만 파수꾼이 단단하고, 무엇보다...”

 

몰이꾼. 걔들이 대단해.”

 

아침의 연회장.

 

피터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이글을 찾아내었다.

 

토마스 형은?”

 

연습, 나도 하러 가는 길이고.”

 

이글은 토마스가 없다는 말에 부루퉁해지는 피터의 머리를 헝클어뜨려 놓고는 어깨에 빗자루를 맨 체 휙 돌아섰다.

 

늦지 말고 가라?”

 

“..., 잘난척은.”

 

피터는 그릇에 포리지를 덜다가.

 

티슈를 딱딱하게 뭉쳐 이글의 머리에 대고 던졌다.

 

“...좋아, 이 꼬마야. 지금 당장 미안하다고 하면...”

 

철퍽, 이번에는 끈적끈적한 호박 주스에 적셔 뭉쳐진 휴지가 얼굴에 날아왔다.

 

“...너 죽었어.”

 

 

 

 

 

 

 

 

오늘은 단언컨대, 토마스 스티븐슨 최악의 날이었다.

 

아침의 퀴디치 연습에서는 스니치 대신 던지는 골프공을 두 개나 놓쳤으며 연습하다가 도중에 나와서 연회장에서 피터와 이글이 대판 싸운 통에 엎질러지고 뒤집힌 테이블과 집기류를 원래대로 해 놓아야 했으며, 그로 인해 징계를 받은 피터가 자기는 징계를 받기 싫다고 한바탕 난리를 피우는 것을 달랬다.

 

이제 한 숨 돌리는가 하여 포리지에 설탕을 듬뿍 떠넣었더니 설탕이 아니라 소금이었던 데다, 그 끔찍한 아침의 피날레로 요일을 착각해 교재를 잘못 들고 왔다.

 

래번클로, 3점 감점.”

 

그 말에 토마스가 얼마나 절망했는지.

 

3점은 토마스가 학교에서 지낸 5년 동안 잃은 유일한 점수였다.

 

토마스가 선망하는 루이스나, 존경하는 다이무스가 잇따라 찾아오기는 했으나 루이스의 경우 점수를 잃는 데 있어 별로 거리낌이 없었고, 다이무스는 스스로 이겨내야 한다는 주의라 결국 도움이 되지 않았다.

 

결국 인생은 혼자라는 생각을 새삼 하며, 토마스는 치료사용 약물 교재를 들었다.

 

침착하고 차분하게 만드는 약, 327페이지.

 

달이 없는 밤에 투구꽃과 쥐오줌풀 뿌리를 썰어서 뭉근하게 끓이는데 길면 길수록 좋다나.

 

토마스는 후우 숨을 내쉬고 자신의 냄비를 들었다.

 


[다이글/19금] 바나나

2015. 10. 19. 02:31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내용을 보시려면 비밀번호를 입력하세요.

[릭마] 아쿠아리움

2015. 10. 19. 01:39 | Posted by 호랑이!!!

온 몸을 아쿠아리움의 유리벽에 붙이고 귀를 가져다대면 맞은편 유리에서 몸을 붙인 챌피의 가슴에서 째깍, 째깍 시곗소리가 났었다.

 

고개를 돌려 이마를 붙이고 보면 마치 물 속에 내가 들어간 것처럼 물 속이 생생하게 보이고, 저 멀리 금발이 푸른 빛을 받아 금속빛으로 빛났었다.

 

그래 그 옛날에는.

 

릭은 유리벽에 기대 감았던 눈을 떴다.

 

푸른 물 속에서 금색 은색으로 반짝이는 물고기가 유유히 헤엄친다.

 

저 깊은 바닷속으로 게이트를 열어 들어가면 있을법한 물고기가 마치 손을 뻗으면 닿을 마냥.

 

무어라 말을 하려 입이라도 연다면 공기방울이 부그르르 나올 것 같고 무언가를 잡기 위해 손을 내밀면 무거운 물 때문에 몸이 묶일 것 같은.

 

그런 어두운 아쿠아리움 안은 조용하고, 폐장시간이 넘은 때라 릭은 혼자였다.

 

“..., 분명 여행 외에는 쓰지 않으려고 했었는데.”

 

사람이란 절망에 빠지면 꽤나 자포자기하게 되는군.

 

릭은 쓰게 웃으며 물 너머를 보았다.

 

일렁이는 물과, 해초와, 떼지어 헤엄치는 물고기들 너머로 반짝이는 금발이 보일락 말락.

 

갈색 옷과 주근깨.

 

친근한 웃음.

 

눈을 감고, 이번에는 귀를 대었다.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가 고요하게 울려퍼지고, 귀를 기울이면 시곗소리가 유리벽에 부딪혀 째깍거리며 들려온다.

 

마치 블론디의 심장에서 시작된 것 같은 두 가지 소리.

 

여기에 이마를 바싹 붙이고 눈을 뜨는 법을 가르쳐 주었던 날 제 옆에서 마틴은 한참이나 숨을 참더니 머리를 유리벽에서 떼고 나서야 숨을 몰아쉬며 웃었다.

 

여기서 익사할 것 같아요, 라고 했었지.

 

그 때는 웃어넘겼지만 오늘은 절절하게 가슴 속으로 그의 말이 박혀왔다.

 

그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렸더니 가슴이 메어와 숨을 쉴 수 없었다.

 

물에 빠져서 죽을 것 같소.”

 

일렁이는 물 너머의 어두운 유리벽에 그의 모습이 반짝인다.

 

귀를 기울이면 그의 가슴에서 째깍거리던 회중시계의 소리가 들려온다.

 

, 따뜻한 바다가 어울리는 사람.

 

익사하여도 좋으니 다시 내게 밀려와 주시오.

 

익사하게 해 주시오, 나의 블론디.

 

 

[홀든] 말 안듣는 동생

2015. 10. 18. 04:28 | Posted by 호랑이!!!

다이무스씨, 전화 왔습니다.”

 

휴식시간, 다이무스는 눈을 감고 푹신한 의자에 기대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문이 열리더니 사무직원 중 하나가 손짓을 했다.

 

어디에서 온 전화지.”

 

기사단입니다.”

 

벨져의 기사단인가, 이번에는 또 무슨 일로?

 

다이무스는 전화를 받으러 걸어가는 동안 머리를 굴렸다.

 

그러고보니 어제 저녁에 벨져가 음식을 남기는 것에 대해, 오늘 아침은 머리를 묶지 않는 것에 대하여 짧게 잔소리를 했지.

 

그 때문에 지금 벨져의 상태는 아마.

 

1. 여기저기 성질을 부린다.

 

...라던가.

 

2. 기사단 앞으로 비싼 물건을 주문해 놓아 다른 사람들을 곤란하게 만들었다.

 

...라던가.

 

다이무스 홀든입니다.”

 

왜 다들 벨져를 어려워하는지 모르겠군.

 

까탈스럽고 까다로운 아이이긴 하지만 어려워 할 아이는 아닌데.

 

[벨져 홀든 경이 보이지 않습니다]

 

3. 가출.

 

다이무스는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문질렀다.

 

전언 철회, 성질 더러운 동생이다.

 

벨져 이 녀석은 일전의 긴 가출 동안 자신이 사라지면 형이 찾는다는 것을 깨달아서 뭔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툭하면 가출해대기 시작했다.

 

어차피 찾으면 자신의 집 침실에서 누워 있거나 서재로 쓰는 방 구석에 있겠지.

 

어찌나 가출을 해대는지, 이젠 저 기사단도 자신에게 찾아달라고 전화를 한다.

 

바빠서 못 찾을 것 같군요.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그리고 저쪽이 뭐라고 하건 간에 수화기를 놓았다.

 

휴식시간은 아직 얼마간 더 남았으나, 빨리 종이와 펜을 손에 쥐고 서류를 처리하고 싶었다.

 

그래서 땡땡 종이 치고 휴식시간이 끝나고, 다시 종이 쳐서 퇴근 시간임을 알릴 즈음에도 계속 손을 바삐 움직였다.

 

커튼을 치지 않은 창 밖으로 노을이 지고 있었고 옆으로 손을 더듬어 아까 타서 옆에 둔 홍차를 찾았으나, 없다.

 

고개를 들어보니 언제 들어왔는지 벨져가 한 손에는 홍차 잔을 손에 쥐고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뭐냐, 벨져.”

 

형아는 나 걱정도 안 되는가?”

 

전혀.

 

무슨 불의의 사고에 휘말렸대도 사고를 친 쪽이 불쌍하지 휘말리는 벨져는 안 불쌍하다.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건만, 이 동생들은 다이무스의 표정에서 생각을 읽어내는 것이 너무나도 능숙해서.

 

벨져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고 손목을 휙 뒤집어 다이무스가 보던 서류에 찻물을 확 끼얹어 버리더니 문 밖으로 성큼성큼 걸어나갔다.

 

벨져.”

 

찻물이 서류에 번져 글을 읽을 수가 없군.

 

벨져의 발소리는 멀어져만 갔다.

 

벨져 홀든!”

 

, 이 말 안 듣는 녀석.

 

다이무스는 미간을 문질렀다.

 

오늘 저녁에는 무릎 위에다 엎어놓고 빨갛게 자국이 나도록 때려 주지.

 

 

[다이글?/연령반전] 망나니가 되오리다

2015. 10. 17. 02:07 | Posted by 호랑이!!!

접니다 형님.”

 

어서와 다이무스.”

 

노크를 하고 들어서면 난롯가의 안락의자에 앉아있는 이글, 형이 보인다.

 

밖은 비가 내리고 있어 창문에 부딪힌 비가 흘러내리고 있지만 이 방 안만은 다른 세상인 양 따뜻하고 건조하다.

 

타닥타닥 난롯가의 불은 소리를 내며 타오르고 제가 끓여 들고 온 홍차는 좋은 향기를 주위로 퍼뜨렸다.

 

이번에 학교를 졸업했다지? 회사로 올 거야?”

 

“...아뇨, 가지 않습니다.”

 

그러자 이글 홀든, 차기 가주는 읽던 책에서 눈도 떼지 않고 계속 말을 이었다.

 

기사단? 벨져처럼?”

 

아니오.”

 

설마하니 연합으로 가겠다던가 그런 말은 하지 않겠지.”

 

비록 이글의 눈은 책에 박혀있다지만 그 너머로 자신 역시 신경쓰고 있다는 것을 아는 다이무스는 고개를 저었다.

 

검을 놓을 것입니다.”

 

.

 

책이 덮였다.

 

다이무스?”

 

이글은 그 말을 믿을 수 없었다.

 

다이무스 홀든, 자신의 막내동생이 어떤 이던가.

 

무뚝뚝하고 고결하여 이야기 속에나 나오는 고귀한 기사 같던 게 유일하게 승부욕을 보이고 즐거워하던 것이 검 뿐인 녀석이.

 

검을 놓는다니.”

 

놓을 것입니다.”

 

검을 놓는다고? 이글은 다시 다이무스가 한 말을 되뇌어 보았다.

 

상상이 안 가는데? 정말로? 지금 저 녀석이 내가 알아듣는 언어로 얘기한 게 맞나?

 

형님.”

 

다이무스는 진지한 얼굴로 이글을 불렀다.

 

아주 진지한 결심을 말하면서.

 

저는 망나니가 되겠습니다.”

 

이글은 입을 떡 벌렸다.

 

팽팽하게 잘 돌아간다고 자부하던 머리가 지금만은 굳어서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데, 다이무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할나위없이 절도있고 격식을 차린 자세로 뚜벅뚜벅 걸어나가서는, 심지어 이만 실례하겠습니다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닫혔다.

 

오 세상에.

 

이글 홀든, 유서깊은 홀든 가의 차기 가주이자 유달리 출중하다는 평을 듣는 삼형제 중 첫째, 다시 말해서 장남은.

 

올해로 스물넷 먹은 제 동생의 때늦은 반항기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책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랬던 것이 불과 며칠 전, 이글은 집으로 연락이 와서 어딘가의 변두리에 있다는 술집으로 갔다.

 

저보다 커다란 동생이라 간신히 어깨에 팔을 걸치게 해 부축하면서 이글은 한숨을 쉬었다.

 

확인해볼 것도 없이, 동생의 지갑은 벌써 다 털렸을 것이고.

 

중간에 싸움까지 했는지 그 잘생긴 얼굴에는 길게 상처까지 났다.

 

망나니짓을 한다 해도 밤이면 돌아오고 아침에야 나가곤 하는데 분명 오늘 아침에는 얼굴에 저런거 없었단 말이지.

 

“...요령없는 놈.”

 

“...... ...니다...”

 

입을 열자 알콜 냄새가 훅 풍겨온다.

 

쯔쯔 혀를 차며 이글은 계속 걸음을 걸었다.

 

조용하고 사람 없는 좁은 거리 위로 새까만 하늘에 구름이 끼어 달빛조차 흐린 곳을.

 

작정하고 반항한다고 하는 것이 내가 열 몇 살 때 하던 짓보다 못하니, 넌 아무래도 반항아는 못될 것 같네~”

 

어둡고, 사람 없고, 집까지 가는 길은 멀다.

 

적막하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조용하고 무뚝뚝한 막내는 술에 취했으니, 이글은 이 때가 좋으리라 싶어 딱 조용함에 어울릴 정도의 목소리를 조근조근하게 입에 올렸다.

 

“...그래서, 왜 뜬금없이 반항을 하는 거야.”

 

다이무스는 멈칫, 하더니 다시 걸음을 비틀거렸다.

 

“...저는 강해져봤자, 라고 생각했습니다.”

 

가문의 분란의 씨가 되고 싶지 않다.

 

괜히 여기저기 이용되다가 누군가의 짐이나 걸림돌이 되고 싶지 않다.

 

작은형은 결국 원하는 곳으로 떠나 가문에서 벗어났으나 자신은 쓸데없이 미련이 많아 어디로도 떠나지 못하겠지.

 

이글은 두어번 더 채근했으나 다이무스는 입을 꽉 다물었다.

 

별 것 아닌 사람으로 보이고 싶다.

 

가치 없는 사람으로 보여서, 형님 옆에 남아서.

 

온전히 가문을 받치는 작은 돌멩이이고 싶다.

 

기둥 따위, 주춧돌이 아니어도, 한 장 유리가 되어 창을 메우거나 한 겹 얇은 천이 되어 집을 깨끗하게 할 수 있다면 그 어디 보람차지 않을까.

 

이글은 그런 다이무스를 보고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요령없는 놈.”

 

그리고 생각했다.

 

만약에 이것과 반대라 자신이 막내였더라면.

 

그랬더라면 자신도 이와 같은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사이퍼즈' 카테고리의 다른 글

[릭마] 아쿠아리움  (0) 2015.10.19
[홀든] 말 안듣는 동생  (0) 2015.10.18
[이글X빅터] 고양이 -10 (완)  (6) 2015.10.16
[이글X빅터] 고양이 -09  (0) 2015.10.15
[이글X빅터] 고양이 -08  (0) 2015.10.14

[이글X빅터] 고양이 -10 (완)

2015. 10. 16. 00:18 | Posted by 호랑이!!!

 

하루 더, 라고 말했지만.

 

그 하루는 이틀이 되었고 그 이틀은 사흘이 되었고.

 

처음의 목적은 분명히 감기가 다 나을 때까지 좋은 것을 주고 좋은 자리에서 재우는 것이었지만 어느샌가 그 말도 무의미해지도록 자연스럽게 빅터는 이글의 집에 오게 되었다.

 

그리고 나흘째 되는 날 밤.

 

이글은 빅터의 학교까지 손수 마중을 가서 집으로 데려왔다.

 

거실에는 방을 밝고 따뜻한 빛으로 물들이는 벽난로가 타닥타닥 타고 있었고 그 앞 깔개에는 따뜻하게 데운 우유를 할짝이는 빅토르가 앉아있다가 고개를 들어 그들을 맞았다.

 

“...따뜻하네.”

 

원체가 크지 않은 집이라 그런지 방 모든 곳에 따뜻한 불빛이 닿아서 마치 집이 따뜻한 불꽃으로 가득찬 것 같은 착각까지 들었다.

 

우유 데워올게~”

 

“...초콜릿도.”

 

이글이 집안일을 돕도록 내버려 둔 뒤로, 빅터는 조금씩 말이 늘었다.

 

방금처럼 요구가 생기기도 했고, 어떤 때는 당근은 먹기 싫어같이 까다롭게 굴기도 했다.

 

따뜻하게 데운 우유에 바닐라빈 향을 두어방울 떨어뜨리고 설탕도 조금, 초콜릿을 타려는데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이미 한밤중인데 무슨 일인지.

 

빅터, 대신 열어줘-”

 

대답은 없었지만, 얼마 안 있어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부엌은 집 가장 안쪽에 있어서 이글은 나름대로 귀기울임에도 별 소리는 듣지 못했다.

 

다만 별 일 아니겠거니 하며 태평하게 우유를 가지고 나올 즈음에, 어떤 남자가 빅터의 멱살을 거칠게 잡아당기는 것을 보아서.

 

옆에 세워두었던 검을 검집째 들어 달려들었다.

 

아슬아슬하게 자신을 막아서며 쳐다보는 빅터가 아니었다면 그대로 뽑아 휘두를 것을 간신히 멈추고.

 

습관적으로, 다문 잇새로 흘러나오는 목소리에 웃음이 섞였다.

 

이거 처음보는 사람인데 여기에 왜 왔을까~?”

 

능력자들이란! 하여간 양아치같은 놈들 뿐이라니까!”

 

그 사람이 입을 열고 빅터의 뺨에 맞은듯한 자욱이 도드라질수록 언제쯤 베어버릴까 하는 기대감에 눈은 깜박임을 잊고, 입꼬리가 스멀스멀 위로 기어올라갔다.

 

빅터만 저리 가면, 잠깐 눈이라도 감으면...

 

, 빅터는 공성전에 참가하잖아? 그럼 이 정도야 익숙하겠네~?

 

거기까지 생각이 닿아, 냉큼 검 손잡이를 잡아 한 뼘쯤 뽑았는데 빅터가 제 손 위에 손을 얹어 눌렀다.

 

“...... 돌봐주는 친척이예요.”

 

돌봐주는?

 

이글의 흥분감이 한 김 식었다.

 

대신 그 속에서 더 기분 나쁜 것, 흔히 노여움이라고 부르는 것이 부글부글 기포를 터뜨리며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그가 아는 돌봐준다는 것은 적어도,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아플 때 일을 시키는 것이 아니었다.

 

적어도, 낮동안 학교에 보내는 대신 공장에 보내는 것도 아니었고.

 

우유에 설탕을 타 달라던가, ‘싫다는 말을 할 수 없을 만큼 주눅들게 만드는 것은 더욱 아니었다.

 

그와 보낸 얼마 안 되는 기간 동안 빅터는 싫다던가 좋다던가 하는 말이 늘었고, 굳은 표정이 풀어졌고, 어떤 때는 일부러 눈을 흘기기도 하고, 싫은 일에는 버둥거리며 반항도 할 줄 알게 되었는데.

 

이 친척이라는 작자를 만난 지 겨우 몇 분, 몇 초만에!

 

다시 바싹 얼어서는.

 

고양이를 주워 데려왔던 비오는 날 밤처럼, 얼어서, 긴장해서, 주눅들어서, 눈치보면서.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침묵이 늘고, 표정이 굳고, 참는 것이 당연하다는 모습으로.

 

얘기는 우리끼리 다 했수. 그동안 신세 많았는데, 앞으로는 올 일 없을 거요.”

 

이글은 그 얘기에 눈을 굴려 빅터를 내려다보았다.

 

그 친척이라는 자가 멋대로 내린 결정인지, 빅터의 굳은 무표정 뒤로 겁먹은 표정이 번져갔다.

 

옷 갈아입고, 짐 챙겨서 가자!”

 

그렇게 말하면서 멋대로 들어와 소파에 앉으려고 하기에, 이글은 검을 뽑아서 그의 목에 대었다.

 

“...내 집에 들어오려고~?”

 

, 친척을 밖에 세워두고 문을 세게 닫았다.

 

그러고보니 빅터가 입던 옷은 아침에인가 빨아서 아직 축축할텐데.

 

그런 생각에 고개를 돌렸더니 젖은 옷을 입은 빅터가 빈손으로 서 있었다.

 

젖은거 말고 아까까지 입던 거 입어.”

 

대답이 없다.

 

다만 고개가 좌우로 딱 한 번 흔들렸다.

 

마치 이글의 집에 처음 왔던 그 날처럼.

 

갈거야?”

 

빅터는 입을 열었다가 한 마디 말 없이 닫았고, 대신 야간학교에서 사용한다는 질 나쁜 공책에 연필을 대었다.

 

[]

 

, 말해보라고. 갈거야? ? 지금까지 잘 있었잖아?”

 

꼭 지금 가지 않아도 되잖아, 지금까지처럼 요리하고 청소하고, 낮에 일 가고 밤에 공부하더라도 같이 살면 재미있고, 편하고, 좋잖아.

 

이글은 소용이 없을 거라는 것을 알면서도 빅터에게 말했다.

 

집에 마련해둔 사탕, 초콜릿, 달콤한 과자들.

 

같이 가려고 계획하던 주말의 외출, 공원, 축제, 박람회.

 

따뜻한 벽난로, 빅토르, 그리고 많은 것들.

 

하지만 매번, 빅터는 고개를 가로저었고 이글은 빅터가 좋아할 만한 것을 더 많이 입에 올렸다.

 

얼마 안 있어 빅터가 그만해, 라고 말하는 것으로 이글은 입을 닫았고, 이번에는 빅터가 입을 열었다.

 

진지하게 말하는 거다.”

 

길게 이어진 침묵으로 다시 쉬어들기 시작하는 목소리를 가다듬지도 않고.

 

익숙해질 것 같아서 더는 못 버티겠어.”

 

그 친척이 무서워서, 혹은 그 말을 들어야 하니까 간다는 대답이 나올 줄 알았는데.

 

심심하다는 이유로 길들여놓지 마.”

 

축축하게 젖은 파란 옷이 손에서 빠져나갔다.

 

이글은 뒤에 남겨져서, 닫히지 않고 덜걱거리는 문을 보며 가슴에 손을 얹었다.

 

따끔하게 아팠지만 이유를 알 수 없어서.

 

분노 때문이겠거니, 그 열린 문만 쳐다보며 옷을 콱 쥐었다.

 

 

 

 

 

 

 

 

 

다음날부터 빅터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아침 일찍이면 공장으로 갔고 무거운 짐을 옮기면 힘들었고 빵에 물로 식사를 해결했다.

 

공장이 끝나면 지쳤고 학교를 마쳐 집으로 돌아오면 딱딱한 침대가 기다리고 있었다.

 

옷을 껴입어도 추위가 이불새로 들어와서 잠을 깰 때에는 몸을 웅크리고 있었고.

 

배가 고프면 억지로 물을 마셨고, 못 견딜 때에는 끓였다.

 

설탕을 넣은 따뜻한 우유라던가 난롯불은 그렇게 잊을 수 있었다.

 

배고픔도, 별로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까지 편하게, 일도 않고 지냈던 것에 대한 벌이라고 생각이 들어 고마울 정도였으니까.

 

그러나 때로 새벽에 잠에서 흐릿하게 깰 때가 있었다.

 

돌아누워서 손을 뻗으면, 그 아래 있어야 할 다른 사람의 몸이 없었다.

 

잠결에 돌아누웠을 때 팔을 뻗으면 위에 얹혔던 다른 사람의 몸은.

 



 

[이글X빅터] 고양이 -09

2015. 10. 15. 00:46 | Posted by 호랑이!!!

 

빅터가 공장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저녁때였고, 언제나 이글이 집에 있었다.

 

창 밖까지 퍼지는 냄새를 맡아보면-

 

오늘은 톡 쏘는 토마토 소스가 맡아진다.

 

초인종을 누르면 누른지 얼마 안 되어서 이글이 문을 열어주었고 빅터는 안으로 들어가 겉옷을 벗어 옷걸이에 걸쳐두고는 욕실로 들어가 샤워를 하고 나온다.

 

특별히 이걸 입으라는 말은 없었지만 빅터가 벗어두었던 옷을 찾으러 연 문 앞에는 이글의 것이 분명해 보이는 하얀 와이셔츠와 파란색 반바지가 있었다.

 

바지야 그렇다 쳐도 셔츠는 좀 커서 소매를 접어서 입고 나오자 이글은 그제서야 젓고 있던 소스 냄비에서 눈을 떼고 인사한다.

 

왔어?”

 

.”

 

라디오라도 틀어줄까? 지금쯤 팝이라도 나올 텐데.”

 

빅터는 그가 소스 젓는 것을 빤히 보며 뭔가를 결심한 듯한 표정으로 인상을 찌푸리더니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대답 대신 이글 옆에 서서 그가 들고 있던 국자를 빼앗았다.

 

“...”

 

너 지금까지 일하고 왔잖아. 쉬어.”

 

그러나 빅터는 이쪽을 노려봤고, 이글은 말없이 그를 쳐다보다 어깨를 으쓱하더니 순순히 옆으로 물러나 파스타면을 삶기 시작했다.

 

파스타 좋아해?”

 

.”

 

이글은 옆을 흘끗 보았다.

 

양이 적어서 작은 냄비를 꺼낸 덕분에 빅터는 발돋움도 않고, 쉽게 소스를 젓고 있었다.

 

다음번에 대량으로 만들면- 그때도 도와줄래?”

 

“....”

 

이글이 자신에게 일을 맡기는 모습에 빅터는 다소 안심한 것 같았지만.

 

좋아하지 말아, 꼬마야.

 

나는 너를 곯리고 싶을 뿐이니까.

 

높이가 두 피트(60cm 정도)는 되는 커다란 냄비가 있으면 네가 발돋움하는 정도로는, 바람으로 몸을 띄우는 정도로는 젓기 힘들 테지.

 

이글은 키득키득 웃으면서 익은 면을 휙 건져내 뜨끈뜨끈한 김이 오르는 것을 파스타 보울에 담았다.

 

그리고 문득 떠오르는 생각에 그를 돌아보았다.

 

그래도 금요일 밤인데, 외식하는 편이 나았을까?”

 

“...됐어.”

 

 

 

 

 

 

 

그리고 일요일의 밤, 이글은 보기 드물게 품으로 파고드는 빅토르 때문에 설핏 잠에서 깨었다.

 

원래도 밤이나 아침에는 사람 옆으로 오는 녀석이지만 이렇게 맨살에 솜털이 닿아 간질거리도록 품으로 파고드는 건 또 처음이랄까.

 

옷 속으로 파고드는 녀석을 잡아다 끌어내서는 턱 아래를 긁어주는데 밖에서 웅웅거리는 기계음이 난다는 것을 깨달았다.

 

빅토르를 안고 침실 밖으로 나가자 자신이 빌려준 와이셔츠에 반바지 차림으로 빅터가 서 있었다.

 

품에는 청소기를 안다시피 하고.

 

청소 중?”

 

그러자 고개를 끄덕인다.

 

청소기가 있길래 써 보고 있어.”

 

이글이 사용하는 청소기는 흡입기에 먼지통이 붙은 것이 아니라 좀 구식인, 먼지통과 흡입기가 분리된 것이었다.

 

청소기는 성인이 사용할 것이라고 가정하고 만들어서인지 흡입기가 그저 길쭉한 봉 모양이라 하더라도 길고 무거워서 빅터는 끙끙거리며 움직이고 있었다.

 

무거울텐데~”

 

괜찮아.”

 

괜찮긴?

 

이글은 빅토르의 머리를 쓰다듬어 진정시키다가 장식용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고 빅토르는 후닥닥 뛰어 집안 어디의 구석으로 뛰어 사라졌다.

 

잠시간 벽에 기대 서서 빅터가 청소하는 모습을 보아하니.

 

결국 무게를 못이기고 휘두르다시피 하고 있다.

 

그래서 결국 이글은 빅터가 잡은 청소기의 뒷부분을 잡았다.

 

, 천천히 다시 밀어봐.”

 

이글이 부드럽게 힘을 주자 아까보다 자연스럽게 움직였고.

 

청소기를 들어 방향을 고치는 것도, 한 손으로 힘을 주어 누르자 손쉽게 들어올려졌다.

 

“...불필요한 도움이야.”

 

혼자서 할 수 있다, 며 눈을 흘기는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 그러셔?”

 

이글은 빅터가 단단히 막대를 잡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몸을 앞으로 숙여서 흡입기의 뒤를 잡지 않은 손으로 빅터가 잡은 부분보다 조금 앞을 잡았다.

 

덕분에 몸이 바싹 밀착했고, 이글은 제 뺨에 닿는 색 연한 머리카락에 대고 입김을 훅 불었다.

 

뭐 하는-!”

 

글쎄~”

 

영차 힘을 주어 청소기를 들었다가 내려서 밀자 막대에 매달린 몸이 달랑 들려 흔들린다.

 

야아~ 혼자서도 잘~ 하네~?”

 

말하는 한 마디 박자에 맞춰서 청소기를 앞으로 밀었다가, 뒤로 당겼다가, 다시 밀었고.

 

거기 맞춰서 빅터의 발이 땅에 닿았다가, 달랑 들렸다가 다시 땅에 닿았고.

 

여지껏 검을 배우거나 하며 몸을 단련한 것을, 이글은 감사했다.

 

열다섯 먹은 소년이 매달려 바둥거리는데도 이렇게 간단히 놀릴 수 있다니.

 

속으로만 웃으려는 것이 조금씩 밖으로 기어나와서 입 밖으로, 작은 기침같은 소리에서 시작해서 결국 참지 못하고 터져나왔다.

 

웃음소리가 커질수록 빅터의 바둥거림도 심해져서 결국 놓아줄 수밖에 없었다.

 

, 삐졌어? ?”

 

이쪽을 보지는 않는데.

 

이봐, 목덜미가 발긋하잖아.

 

손을 뻗어 따끈한 목을 잡았더니 홱 빠져나간다.

 

~ 이봐, 빅터~”

 

이름을 부르는 건 또 간만인가.

 

빅토르처럼 어디 구석을 찾아 뛰어가는 모습에 청소기의 전원도 내리지 않고 이글이 뒤를 쫓아 뛰었다.

 

이상도 하지.

 

분명 처음에는 화가 날 정도로 불쾌했던, 그에게서 보였던 어린 날 자신의 모습이 싫지 않다니.

 

아니, 오히려.

 

오히려.

 


[이글X빅터] 고양이 -08

2015. 10. 14. 02:09 | Posted by 호랑이!!!

새벽에 가까운 아침.

 

이글은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일어났어...?”

 

“....”

 

이글의 고집으로 결국 침대에서 자서인지 여름용으로 둔 베개가 눌려 있었다.

 

“...공장 가지 말고 더 자.”

 

“그러면 잘려.”

 

이제야 목소리가 나오는 것 같지만 그래도 다 쉬어서 골골거리는 녀석이 무슨.

 

이글은 눈앞에 보이는 파란 소매를 잡아당겼다.

 

너같이 어린애가 무슨 공장일이야.”

 

나보다 어린애들도 다 공장에서 일해.”

 

시계를 보니 해는 떴나 싶은 시각이었다.

 

이글은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씻고 나와.”

 

빅터가 순순히 욕실로 들어가자 찬장을 열어보았다.

 

도시락통으로 쓸 만한 것이 없잖아.

 

그나마 있다고 한다면- 유리병이나, 저 정도인가.

 

이글은 냉장고에서 어제 만들었던 수프와 그 전에 만들어서 보관해둔 빵 몇 쪽과 버터, 우유, 과일을 꺼냈다.

 

그리고 빅터는 이글이 도시락이랍시고 흰 보가 덮인 커다란 바구니를 내밀었을 때 제정신인가라는 생각이 노골적으로 드러난 얼굴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결국 유리병에 수프를 담는 정도로 타협하고 나가려는데 이글이 빅터를 다시 불렀다.

 

아침 먹고 가.”

 

늦었어.”

 

그럼 가면서 이거라도 먹어.”

 

이글이 계란과 감자를 삶아 으깬 것을 빵에 넣은 샌드위치를 주었다.

 

어제 저녁도 아파서 제대로 못 먹었지.

 

가져가라니까.”

 

이글이 두세번 더 권하자 그제야 빅터는 정말 받고 싶지 않지만 권하니까 받아준다는 듯 샌드위치를 받아 입에 물었다.

 

잘 다녀와.”

 

“...”

 

문이 닫혔다.

 

이글은 침대로 돌아가 풀썩 누웠다.

 

다른 누군가와 침대를 같이 쓰는 것은 아주 어릴 때 이후 처음이라.

 

자신이 눕지 않은 쪽을 만져보니 작은 열이 느껴진다.

 

눈이 감겨왔다.

 

 

 

 

 

 

 

 

 

빅터는 길을 걸으며 샌드위치를 베어물었다.

 

아삭아삭 씹히는 신선한 양배추와 계란과 감자와 토마토와...

 

속으로 재료를 하나씩 대던 빅터는 이내 그만두고 샌드위치를 한 입 가득 베어물었다.

 

‘...맛있어...’

 

그리고 그 날 하루는 이상함의 연속이었다.

 

무거운 물건을 옮기고 나서도 그렇게 지치지 않았고, 점심시간 직전에 배가 고파 죽을 것 같지도 않았다.

 

단순노동을 하는 것뿐인데도 공장 일이 재미있었고 맛없고 퍼석한 빵이라도 유리병의 수프와 먹었더니 꽤나 먹을만했다.

 

좋은 잠자리에서 잘 자서 그런가, 맛난 음식을 먹어서 그런가.

 

하루가 편하고 힘들지 않아.

 

그리고 빅터는 문득 몰려오는 불안감에 손을 더 재게 놀려 작업을 빨리했다.

 

여기서 더 기분이 좋아진다면, 평소에 힘들었다는 생각이 들 것 같았다.

 

힘든 일이 아니야.

 

그래서도 안돼.

 

왜냐하면 앞으로도 나는 틀림없이 그렇게 살 거니까.

 

빅터는 돌아오는 길에 붉은 벽돌로 만든 건물을 보았다.

 

딱딱하고 날카로운 모서리를 가진 집.

 

그 집 벽에다 대고, 이글이 수프를 담아준 유리병을 세게 던져 깼다.

 

쨍그랑, 요란한 소리가 나고.

 

빅터는 휙 허공으로 날아올라서 이글의 집으로 돌아왔다.

 

유리병은?”

 

잃어버렸어.”

 

화내지 않는다.

 

오히려 신경쓰는 것 같지도 않다.

 

빅터는 감기가 나을 때까지라며, 하루 더 자고 가라는 이글의 말에 내키지 않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