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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글/19금] 바나나

2015. 10. 19. 0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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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릭마] 아쿠아리움

2015. 10. 19. 01:39 | Posted by 호랑이!!!

온 몸을 아쿠아리움의 유리벽에 붙이고 귀를 가져다대면 맞은편 유리에서 몸을 붙인 챌피의 가슴에서 째깍, 째깍 시곗소리가 났었다.

 

고개를 돌려 이마를 붙이고 보면 마치 물 속에 내가 들어간 것처럼 물 속이 생생하게 보이고, 저 멀리 금발이 푸른 빛을 받아 금속빛으로 빛났었다.

 

그래 그 옛날에는.

 

릭은 유리벽에 기대 감았던 눈을 떴다.

 

푸른 물 속에서 금색 은색으로 반짝이는 물고기가 유유히 헤엄친다.

 

저 깊은 바닷속으로 게이트를 열어 들어가면 있을법한 물고기가 마치 손을 뻗으면 닿을 마냥.

 

무어라 말을 하려 입이라도 연다면 공기방울이 부그르르 나올 것 같고 무언가를 잡기 위해 손을 내밀면 무거운 물 때문에 몸이 묶일 것 같은.

 

그런 어두운 아쿠아리움 안은 조용하고, 폐장시간이 넘은 때라 릭은 혼자였다.

 

“..., 분명 여행 외에는 쓰지 않으려고 했었는데.”

 

사람이란 절망에 빠지면 꽤나 자포자기하게 되는군.

 

릭은 쓰게 웃으며 물 너머를 보았다.

 

일렁이는 물과, 해초와, 떼지어 헤엄치는 물고기들 너머로 반짝이는 금발이 보일랑 말랑.

 

갈색 옷과 주근깨.

 

친근한 웃음.

 

눈을 감고, 이번에는 귀를 대었다.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가 고요하게 울려퍼지고, 귀를 기울이면 시곗소리가 유리벽에 부딪혀 째깍거리며 들려온다.

 

마치 블론디의 심장에서 시작된 것 같은 두 가지 소리.

 

여기에 이마를 바싹 붙이고 눈을 뜨는 법을 가르쳐 주었던 날 제 옆에서 마틴은 한참이나 숨을 참더니 머리를 유리벽에서 떼고 나서야 숨을 몰아쉬며 웃었다.

 

여기서 익사할 것 같아요, 라고 했었지.

 

그 때는 웃어넘겼지만 오늘은 절절하게 가슴 속으로 그의 말이 박혀왔다.

 

그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렸더니 가슴이 메어와 숨을 쉴 수 없었다.

 

물에 빠져서 죽을 것 같소.”

 

일렁이는 물 너머의 어두운 유리벽에 그의 모습이 반짝인다.

 

귀를 기울이면 그의 가슴에서 째깍거리던 회중시계의 소리가 들려온다.

 

, 따뜻한 바다가 어울리는 사람.

 

익사하여도 좋으니 다시 내게 밀려와 주시오.

 

익사하게 해 주시오, 나의 블론디.

 

 

[홀든] 말 안듣는 동생

2015. 10. 18. 04:28 | Posted by 호랑이!!!

다이무스씨, 전화 왔습니다.”

 

휴식시간, 다이무스는 눈을 감고 푹신한 의자에 기대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문이 열리더니 사무직원 중 하나가 손짓을 했다.

 

어디에서 온 전화지.”

 

기사단입니다.”

 

벨져의 기사단인가, 이번에는 또 무슨 일로?

 

다이무스는 전화를 받으러 걸어가는 동안 머리를 굴렸다.

 

그러고보니 어제 저녁에 벨져가 음식을 남기는 것에 대해, 오늘 아침은 머리를 묶지 않는 것에 대하여 짧게 잔소리를 했지.

 

그 때문에 지금 벨져의 상태는 아마.

 

1. 여기저기 성질을 부린다.

 

...라던가.

 

2. 기사단 앞으로 비싼 물건을 주문해 놓아 다른 사람들을 곤란하게 만들었다.

 

...라던가.

 

다이무스 홀든입니다.”

 

왜 다들 벨져를 어려워하는지 모르겠군.

 

까탈스럽고 까다로운 아이이긴 하지만 어려워 할 아이는 아닌데.

 

[벨져 홀든 경이 보이지 않습니다]

 

3. 가출.

 

다이무스는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문질렀다.

 

전언 철회, 성질 더러운 동생이다.

 

벨져 이 녀석은 일전의 긴 가출 동안 자신이 사라지면 형이 찾는다는 것을 깨달아서 뭔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툭하면 가출해대기 시작했다.

 

어차피 찾으면 자신의 집 침실에서 누워 있거나 서재로 쓰는 방 구석에 있겠지.

 

어찌나 가출을 해대는지, 이젠 저 기사단도 자신에게 찾아달라고 전화를 한다.

 

바빠서 못 찾을 것 같군요.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그리고 저쪽이 뭐라고 하건 간에 수화기를 놓았다.

 

휴식시간은 아직 얼마간 더 남았으나, 빨리 종이와 펜을 손에 쥐고 서류를 처리하고 싶었다.

 

그래서 땡땡 종이 치고 휴식시간이 끝나고, 다시 종이 쳐서 퇴근 시간임을 알릴 즈음에도 계속 손을 바삐 움직였다.

 

커튼을 치지 않은 창 밖으로 노을이 지고 있었고 옆으로 손을 더듬어 아까 타서 옆에 둔 홍차를 찾았으나, 없다.

 

고개를 들어보니 언제 들어왔는지 벨져가 한 손에는 홍차 잔을 손에 쥐고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뭐냐, 벨져.”

 

형아는 나 걱정도 안 되는가?”

 

전혀.

 

무슨 불의의 사고에 휘말렸대도 사고를 친 쪽이 불쌍하지 휘말리는 벨져는 안 불쌍하다.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건만, 이 동생들은 다이무스의 표정에서 생각을 읽어내는 것이 너무나도 능숙해서.

 

벨져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고 손목을 휙 뒤집어 다이무스가 보던 서류에 찻물을 확 끼얹어 버리더니 문 밖으로 성큼성큼 걸어나갔다.

 

벨져.”

 

찻물이 서류에 번져 글을 읽을 수가 없군.

 

벨져의 발소리는 멀어져만 갔다.

 

벨져 홀든!”

 

, 이 말 안 듣는 녀석.

 

다이무스는 미간을 문질렀다.

 

오늘 저녁에는 무릎 위에다 엎어놓고 빨갛게 자국이 나도록 때려 주지.

 

 

[다이글?/연령반전] 망나니가 되오리다

2015. 10. 17. 02:07 | Posted by 호랑이!!!

접니다 형님.”

 

어서와 다이무스.”

 

노크를 하고 들어서면 난롯가의 안락의자에 앉아있는 이글, 형이 보인다.

 

밖은 비가 내리고 있어 창문에 부딪힌 비가 흘러내리고 있지만 이 방 안만은 다른 세상인 양 따뜻하고 건조하다.

 

타닥타닥 난롯가의 불은 소리를 내며 타오르고 제가 끓여 들고 온 홍차는 좋은 향기를 주위로 퍼뜨렸다.

 

이번에 학교를 졸업했다지? 회사로 올 거야?”

 

“...아뇨, 가지 않습니다.”

 

그러자 이글 홀든, 차기 가주는 읽던 책에서 눈도 떼지 않고 계속 말을 이었다.

 

기사단? 벨져처럼?”

 

아니오.”

 

설마하니 연합으로 가겠다던가 그런 말은 하지 않겠지.”

 

비록 이글의 눈은 책에 박혀있다지만 그 너머로 자신 역시 신경쓰고 있다는 것을 아는 다이무스는 고개를 저었다.

 

검을 놓을 것입니다.”

 

.

 

책이 덮였다.

 

다이무스?”

 

이글은 그 말을 믿을 수 없었다.

 

다이무스 홀든, 자신의 막내동생이 어떤 이던가.

 

무뚝뚝하고 고결하여 이야기 속에나 나오는 고귀한 기사 같던 게 유일하게 승부욕을 보이고 즐거워하던 것이 검 뿐인 녀석이.

 

검을 놓는다니.”

 

놓을 것입니다.”

 

검을 놓는다고? 이글은 다시 다이무스가 한 말을 되뇌어 보았다.

 

상상이 안 가는데? 정말로? 지금 저 녀석이 내가 알아듣는 언어로 얘기한 게 맞나?

 

형님.”

 

다이무스는 진지한 얼굴로 이글을 불렀다.

 

아주 진지한 결심을 말하면서.

 

저는 망나니가 되겠습니다.”

 

이글은 입을 떡 벌렸다.

 

팽팽하게 잘 돌아간다고 자부하던 머리가 지금만은 굳어서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데, 다이무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할나위없이 절도있고 격식을 차린 자세로 뚜벅뚜벅 걸어나가서는, 심지어 이만 실례하겠습니다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닫혔다.

 

오 세상에.

 

이글 홀든, 유서깊은 홀든 가의 차기 가주이자 유달리 출중하다는 평을 듣는 삼형제 중 첫째, 다시 말해서 장남은.

 

올해로 스물넷 먹은 제 동생의 때늦은 반항기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책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랬던 것이 불과 며칠 전, 이글은 집으로 연락이 와서 어딘가의 변두리에 있다는 술집으로 갔다.

 

저보다 커다란 동생이라 간신히 어깨에 팔을 걸치게 해 부축하면서 이글은 한숨을 쉬었다.

 

확인해볼 것도 없이, 동생의 지갑은 벌써 다 털렸을 것이고.

 

중간에 싸움까지 했는지 그 잘생긴 얼굴에는 길게 상처까지 났다.

 

망나니짓을 한다 해도 밤이면 돌아오고 아침에야 나가곤 하는데 분명 오늘 아침에는 얼굴에 저런거 없었단 말이지.

 

“...요령없는 놈.”

 

“...... ...니다...”

 

입을 열자 알콜 냄새가 훅 풍겨온다.

 

쯔쯔 혀를 차며 이글은 계속 걸음을 걸었다.

 

조용하고 사람 없는 좁은 거리 위로 새까만 하늘에 구름이 끼어 달빛조차 흐린 곳을.

 

작정하고 반항한다고 하는 것이 내가 열 몇 살 때 하던 짓보다 못하니, 넌 아무래도 반항아는 못될 것 같네~”

 

어둡고, 사람 없고, 집까지 가는 길은 멀다.

 

적막하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조용하고 무뚝뚝한 막내는 술에 취했으니, 이글은 이 때가 좋으리라 싶어 딱 조용함에 어울릴 정도의 목소리를 조근조근하게 입에 올렸다.

 

“...그래서, 왜 뜬금없이 반항을 하는 거야.”

 

다이무스는 멈칫, 하더니 다시 걸음을 비틀거렸다.

 

“...저는 강해져봤자, 라고 생각했습니다.”

 

가문의 분란의 씨가 되고 싶지 않다.

 

괜히 여기저기 이용되다가 누군가의 짐이나 걸림돌이 되고 싶지 않다.

 

작은형은 결국 원하는 곳으로 떠나 가문에서 벗어났으나 자신은 쓸데없이 미련이 많아 어디로도 떠나지 못하겠지.

 

이글은 두어번 더 채근했으나 다이무스는 입을 꽉 다물었다.

 

별 것 아닌 사람으로 보이고 싶다.

 

가치 없는 사람으로 보여서, 형님 옆에 남아서.

 

온전히 가문을 받치는 작은 돌멩이이고 싶다.

 

기둥 따위, 주춧돌이 아니어도, 한 장 유리가 되어 창을 메우거나 한 겹 얇은 천이 되어 집을 깨끗하게 할 수 있다면 그 어디 보람차지 않을까.

 

이글은 그런 다이무스를 보고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요령없는 놈.”

 

그리고 생각했다.

 

만약에 이것과 반대라 자신이 막내였더라면.

 

그랬더라면 자신도 이와 같은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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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X빅터] 고양이 -10 (완)

2015. 10. 16. 00:18 | Posted by 호랑이!!!

 

하루 더, 라고 말했지만.

 

그 하루는 이틀이 되었고 그 이틀은 사흘이 되었고.

 

처음의 목적은 분명히 감기가 다 나을 때까지 좋은 것을 주고 좋은 자리에서 재우는 것이었지만 어느샌가 그 말도 무의미해지도록 자연스럽게 빅터는 이글의 집에 오게 되었다.

 

그리고 나흘째 되는 날 밤.

 

이글은 빅터의 학교까지 손수 마중을 가서 집으로 데려왔다.

 

거실에는 방을 밝고 따뜻한 빛으로 물들이는 벽난로가 타닥타닥 타고 있었고 그 앞 깔개에는 따뜻하게 데운 우유를 할짝이는 빅토르가 앉아있다가 고개를 들어 그들을 맞았다.

 

“...따뜻하네.”

 

원체가 크지 않은 집이라 그런지 방 모든 곳에 따뜻한 불빛이 닿아서 마치 집이 따뜻한 불꽃으로 가득찬 것 같은 착각까지 들었다.

 

우유 데워올게~”

 

“...초콜릿도.”

 

이글이 집안일을 돕도록 내버려 둔 뒤로, 빅터는 조금씩 말이 늘었다.

 

방금처럼 요구가 생기기도 했고, 어떤 때는 당근은 먹기 싫어같이 까다롭게 굴기도 했다.

 

따뜻하게 데운 우유에 바닐라빈 향을 두어방울 떨어뜨리고 설탕도 조금, 초콜릿을 타려는데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이미 한밤중인데 무슨 일인지.

 

빅터, 대신 열어줘-”

 

대답은 없었지만, 얼마 안 있어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부엌은 집 가장 안쪽에 있어서 이글은 나름대로 귀기울임에도 별 소리는 듣지 못했다.

 

다만 별 일 아니겠거니 하며 태평하게 우유를 가지고 나올 즈음에, 어떤 남자가 빅터의 멱살을 거칠게 잡아당기는 것을 보아서.

 

옆에 세워두었던 검을 검집째 들어 달려들었다.

 

아슬아슬하게 자신을 막아서며 쳐다보는 빅터가 아니었다면 그대로 뽑아 휘두를 것을 간신히 멈추고.

 

습관적으로, 다문 잇새로 흘러나오는 목소리에 웃음이 섞였다.

 

이거 처음보는 사람인데 여기에 왜 왔을까~?”

 

능력자들이란! 하여간 양아치같은 놈들 뿐이라니까!”

 

그 사람이 입을 열고 빅터의 뺨에 맞은듯한 자욱이 도드라질수록 언제쯤 베어버릴까 하는 기대감에 눈은 깜박임을 잊고, 입꼬리가 스멀스멀 위로 기어올라갔다.

 

빅터만 저리 가면, 잠깐 눈이라도 감으면...

 

, 빅터는 공성전에 참가하잖아? 그럼 이 정도야 익숙하겠네~?

 

거기까지 생각이 닿아, 냉큼 검 손잡이를 잡아 한 뼘쯤 뽑았는데 빅터가 제 손 위에 손을 얹어 눌렀다.

 

“...... 돌봐주는 친척이예요.”

 

돌봐주는?

 

이글의 흥분감이 한 김 식었다.

 

대신 그 속에서 더 기분 나쁜 것, 흔히 노여움이라고 부르는 것이 부글부글 기포를 터뜨리며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그가 아는 돌봐준다는 것은 적어도,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아플 때 일을 시키는 것이 아니었다.

 

적어도, 낮동안 학교에 보내는 대신 공장에 보내는 것도 아니었고.

 

우유에 설탕을 타 달라던가, ‘싫다는 말을 할 수 없을 만큼 주눅들게 만드는 것은 더욱 아니었다.

 

그와 보낸 얼마 안 되는 기간 동안 빅터는 싫다던가 좋다던가 하는 말이 늘었고, 굳은 표정이 풀어졌고, 어떤 때는 일부러 눈을 흘기기도 하고, 싫은 일에는 버둥거리며 반항도 할 줄 알게 되었는데.

 

이 친척이라는 작자를 만난 지 겨우 몇 분, 몇 초만에!

 

다시 바싹 얼어서는.

 

고양이를 주워 데려왔던 비오는 날 밤처럼, 얼어서, 긴장해서, 주눅들어서, 눈치보면서.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침묵이 늘고, 표정이 굳고, 참는 것이 당연하다는 모습으로.

 

얘기는 우리끼리 다 했수. 그동안 신세 많았는데, 앞으로는 올 일 없을 거요.”

 

이글은 그 얘기에 눈을 굴려 빅터를 내려다보았다.

 

그 친척이라는 자가 멋대로 내린 결정인지, 빅터의 굳은 무표정 뒤로 겁먹은 표정이 번져갔다.

 

옷 갈아입고, 짐 챙겨서 가자!”

 

그렇게 말하면서 멋대로 들어와 소파에 앉으려고 하기에, 이글은 검을 뽑아서 그의 목에 대었다.

 

“...내 집에 들어오려고~?”

 

, 친척을 밖에 세워두고 문을 세게 닫았다.

 

그러고보니 빅터가 입던 옷은 아침에인가 빨아서 아직 축축할텐데.

 

그런 생각에 고개를 돌렸더니 젖은 옷을 입은 빅터가 빈손으로 서 있었다.

 

젖은거 말고 아까까지 입던 거 입어.”

 

대답이 없다.

 

다만 고개가 좌우로 딱 한 번 흔들렸다.

 

마치 이글의 집에 처음 왔던 그 날처럼.

 

갈거야?”

 

빅터는 입을 열었다가 한 마디 말 없이 닫았고, 대신 야간학교에서 사용한다는 질 나쁜 공책에 연필을 대었다.

 

[]

 

, 말해보라고. 갈거야? ? 지금까지 잘 있었잖아?”

 

꼭 지금 가지 않아도 되잖아, 지금까지처럼 요리하고 청소하고, 낮에 일 가고 밤에 공부하더라도 같이 살면 재미있고, 편하고, 좋잖아.

 

이글은 소용이 없을 거라는 것을 알면서도 빅터에게 말했다.

 

집에 마련해둔 사탕, 초콜릿, 달콤한 과자들.

 

같이 가려고 계획하던 주말의 외출, 공원, 축제, 박람회.

 

따뜻한 벽난로, 빅토르, 그리고 많은 것들.

 

하지만 매번, 빅터는 고개를 가로저었고 이글은 빅터가 좋아할 만한 것을 더 많이 입에 올렸다.

 

얼마 안 있어 빅터가 그만해, 라고 말하는 것으로 이글은 입을 닫았고, 이번에는 빅터가 입을 열었다.

 

진지하게 말하는 거다.”

 

길게 이어진 침묵으로 다시 쉬어들기 시작하는 목소리를 가다듬지도 않고.

 

익숙해질 것 같아서 더는 못 버티겠어.”

 

그 친척이 무서워서, 혹은 그 말을 들어야 하니까 간다는 대답이 나올 줄 알았는데.

 

심심하다는 이유로 길들여놓지 마.”

 

축축하게 젖은 파란 옷이 손에서 빠져나갔다.

 

이글은 뒤에 남겨져서, 닫히지 않고 덜걱거리는 문을 보며 가슴에 손을 얹었다.

 

따끔하게 아팠지만 이유를 알 수 없어서.

 

분노 때문이겠거니, 그 열린 문만 쳐다보며 옷을 콱 쥐었다.

 

 

 

 

 

 

 

 

 

다음날부터 빅터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아침 일찍이면 공장으로 갔고 무거운 짐을 옮기면 힘들었고 빵에 물로 식사를 해결했다.

 

공장이 끝나면 지쳤고 학교를 마쳐 집으로 돌아오면 딱딱한 침대가 기다리고 있었다.

 

옷을 껴입어도 추위가 이불새로 들어와서 잠을 깰 때에는 몸을 웅크리고 있었고.

 

배가 고프면 억지로 물을 마셨고, 못 견딜 때에는 끓였다.

 

설탕을 넣은 따뜻한 우유라던가 난롯불은 그렇게 잊을 수 있었다.

 

배고픔도, 별로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까지 편하게, 일도 않고 지냈던 것에 대한 벌이라고 생각이 들어 고마울 정도였으니까.

 

그러나 때로 새벽에 잠에서 흐릿하게 깰 때가 있었다.

 

돌아누워서 손을 뻗으면, 그 아래 있어야 할 다른 사람의 몸이 없었다.

 

잠결에 돌아누웠을 때 팔을 뻗으면 위에 얹혔던 다른 사람의 몸은.

 



 

[이글X빅터] 고양이 -09

2015. 10. 15. 00:46 | Posted by 호랑이!!!

 

빅터가 공장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저녁때였고, 언제나 이글이 집에 있었다.

 

창 밖까지 퍼지는 냄새를 맡아보면-

 

오늘은 톡 쏘는 토마토 소스가 맡아진다.

 

초인종을 누르면 누른지 얼마 안 되어서 이글이 문을 열어주었고 빅터는 안으로 들어가 겉옷을 벗어 옷걸이에 걸쳐두고는 욕실로 들어가 샤워를 하고 나온다.

 

특별히 이걸 입으라는 말은 없었지만 빅터가 벗어두었던 옷을 찾으러 연 문 앞에는 이글의 것이 분명해 보이는 하얀 와이셔츠와 파란색 반바지가 있었다.

 

바지야 그렇다 쳐도 셔츠는 좀 커서 소매를 접어서 입고 나오자 이글은 그제서야 젓고 있던 소스 냄비에서 눈을 떼고 인사한다.

 

왔어?”

 

.”

 

라디오라도 틀어줄까? 지금쯤 팝이라도 나올 텐데.”

 

빅터는 그가 소스 젓는 것을 빤히 보며 뭔가를 결심한 듯한 표정으로 인상을 찌푸리더니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대답 대신 이글 옆에 서서 그가 들고 있던 국자를 빼앗았다.

 

“...”

 

너 지금까지 일하고 왔잖아. 쉬어.”

 

그러나 빅터는 이쪽을 노려봤고, 이글은 말없이 그를 쳐다보다 어깨를 으쓱하더니 순순히 옆으로 물러나 파스타면을 삶기 시작했다.

 

파스타 좋아해?”

 

.”

 

이글은 옆을 흘끗 보았다.

 

양이 적어서 작은 냄비를 꺼낸 덕분에 빅터는 발돋움도 않고, 쉽게 소스를 젓고 있었다.

 

다음번에 대량으로 만들면- 그때도 도와줄래?”

 

“....”

 

이글이 자신에게 일을 맡기는 모습에 빅터는 다소 안심한 것 같았지만.

 

좋아하지 말아, 꼬마야.

 

나는 너를 곯리고 싶을 뿐이니까.

 

높이가 두 피트(60cm 정도)는 되는 커다란 냄비가 있으면 네가 발돋움하는 정도로는, 바람으로 몸을 띄우는 정도로는 젓기 힘들 테지.

 

이글은 키득키득 웃으면서 익은 면을 휙 건져내 뜨끈뜨끈한 김이 오르는 것을 파스타 보울에 담았다.

 

그리고 문득 떠오르는 생각에 그를 돌아보았다.

 

그래도 금요일 밤인데, 외식하는 편이 나았을까?”

 

“...됐어.”

 

 

 

 

 

 

 

그리고 일요일의 밤, 이글은 보기 드물게 품으로 파고드는 빅토르 때문에 설핏 잠에서 깨었다.

 

원래도 밤이나 아침에는 사람 옆으로 오는 녀석이지만 이렇게 맨살에 솜털이 닿아 간질거리도록 품으로 파고드는 건 또 처음이랄까.

 

옷 속으로 파고드는 녀석을 잡아다 끌어내서는 턱 아래를 긁어주는데 밖에서 웅웅거리는 기계음이 난다는 것을 깨달았다.

 

빅토르를 안고 침실 밖으로 나가자 자신이 빌려준 와이셔츠에 반바지 차림으로 빅터가 서 있었다.

 

품에는 청소기를 안다시피 하고.

 

청소 중?”

 

그러자 고개를 끄덕인다.

 

청소기가 있길래 써 보고 있어.”

 

이글이 사용하는 청소기는 흡입기에 먼지통이 붙은 것이 아니라 좀 구식인, 먼지통과 흡입기가 분리된 것이었다.

 

청소기는 성인이 사용할 것이라고 가정하고 만들어서인지 흡입기가 그저 길쭉한 봉 모양이라 하더라도 길고 무거워서 빅터는 끙끙거리며 움직이고 있었다.

 

무거울텐데~”

 

괜찮아.”

 

괜찮긴?

 

이글은 빅토르의 머리를 쓰다듬어 진정시키다가 장식용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고 빅토르는 후닥닥 뛰어 집안 어디의 구석으로 뛰어 사라졌다.

 

잠시간 벽에 기대 서서 빅터가 청소하는 모습을 보아하니.

 

결국 무게를 못이기고 휘두르다시피 하고 있다.

 

그래서 결국 이글은 빅터가 잡은 청소기의 뒷부분을 잡았다.

 

, 천천히 다시 밀어봐.”

 

이글이 부드럽게 힘을 주자 아까보다 자연스럽게 움직였고.

 

청소기를 들어 방향을 고치는 것도, 한 손으로 힘을 주어 누르자 손쉽게 들어올려졌다.

 

“...불필요한 도움이야.”

 

혼자서 할 수 있다, 며 눈을 흘기는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 그러셔?”

 

이글은 빅터가 단단히 막대를 잡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몸을 앞으로 숙여서 흡입기의 뒤를 잡지 않은 손으로 빅터가 잡은 부분보다 조금 앞을 잡았다.

 

덕분에 몸이 바싹 밀착했고, 이글은 제 뺨에 닿는 색 연한 머리카락에 대고 입김을 훅 불었다.

 

뭐 하는-!”

 

글쎄~”

 

영차 힘을 주어 청소기를 들었다가 내려서 밀자 막대에 매달린 몸이 달랑 들려 흔들린다.

 

야아~ 혼자서도 잘~ 하네~?”

 

말하는 한 마디 박자에 맞춰서 청소기를 앞으로 밀었다가, 뒤로 당겼다가, 다시 밀었고.

 

거기 맞춰서 빅터의 발이 땅에 닿았다가, 달랑 들렸다가 다시 땅에 닿았고.

 

여지껏 검을 배우거나 하며 몸을 단련한 것을, 이글은 감사했다.

 

열다섯 먹은 소년이 매달려 바둥거리는데도 이렇게 간단히 놀릴 수 있다니.

 

속으로만 웃으려는 것이 조금씩 밖으로 기어나와서 입 밖으로, 작은 기침같은 소리에서 시작해서 결국 참지 못하고 터져나왔다.

 

웃음소리가 커질수록 빅터의 바둥거림도 심해져서 결국 놓아줄 수밖에 없었다.

 

, 삐졌어? ?”

 

이쪽을 보지는 않는데.

 

이봐, 목덜미가 발긋하잖아.

 

손을 뻗어 따끈한 목을 잡았더니 홱 빠져나간다.

 

~ 이봐, 빅터~”

 

이름을 부르는 건 또 간만인가.

 

빅토르처럼 어디 구석을 찾아 뛰어가는 모습에 청소기의 전원도 내리지 않고 이글이 뒤를 쫓아 뛰었다.

 

이상도 하지.

 

분명 처음에는 화가 날 정도로 불쾌했던, 그에게서 보였던 어린 날 자신의 모습이 싫지 않다니.

 

아니, 오히려.

 

오히려.

 


[이글X빅터] 고양이 -08

2015. 10. 14. 02:09 | Posted by 호랑이!!!

새벽에 가까운 아침.

 

이글은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일어났어...?”

 

“....”

 

이글의 고집으로 결국 침대에서 자서인지 여름용으로 둔 베개가 눌려 있었다.

 

“...공장 가지 말고 더 자.”

 

“그러면 잘려.”

 

이제야 목소리가 나오는 것 같지만 그래도 다 쉬어서 골골거리는 녀석이 무슨.

 

이글은 눈앞에 보이는 파란 소매를 잡아당겼다.

 

너같이 어린애가 무슨 공장일이야.”

 

나보다 어린애들도 다 공장에서 일해.”

 

시계를 보니 해는 떴나 싶은 시각이었다.

 

이글은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씻고 나와.”

 

빅터가 순순히 욕실로 들어가자 찬장을 열어보았다.

 

도시락통으로 쓸 만한 것이 없잖아.

 

그나마 있다고 한다면- 유리병이나, 저 정도인가.

 

이글은 냉장고에서 어제 만들었던 수프와 그 전에 만들어서 보관해둔 빵 몇 쪽과 버터, 우유, 과일을 꺼냈다.

 

그리고 빅터는 이글이 도시락이랍시고 흰 보가 덮인 커다란 바구니를 내밀었을 때 제정신인가라는 생각이 노골적으로 드러난 얼굴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결국 유리병에 수프를 담는 정도로 타협하고 나가려는데 이글이 빅터를 다시 불렀다.

 

아침 먹고 가.”

 

늦었어.”

 

그럼 가면서 이거라도 먹어.”

 

이글이 계란과 감자를 삶아 으깬 것을 빵에 넣은 샌드위치를 주었다.

 

어제 저녁도 아파서 제대로 못 먹었지.

 

가져가라니까.”

 

이글이 두세번 더 권하자 그제야 빅터는 정말 받고 싶지 않지만 권하니까 받아준다는 듯 샌드위치를 받아 입에 물었다.

 

잘 다녀와.”

 

“...”

 

문이 닫혔다.

 

이글은 침대로 돌아가 풀썩 누웠다.

 

다른 누군가와 침대를 같이 쓰는 것은 아주 어릴 때 이후 처음이라.

 

자신이 눕지 않은 쪽을 만져보니 작은 열이 느껴진다.

 

눈이 감겨왔다.

 

 

 

 

 

 

 

 

 

빅터는 길을 걸으며 샌드위치를 베어물었다.

 

아삭아삭 씹히는 신선한 양배추와 계란과 감자와 토마토와...

 

속으로 재료를 하나씩 대던 빅터는 이내 그만두고 샌드위치를 한 입 가득 베어물었다.

 

‘...맛있어...’

 

그리고 그 날 하루는 이상함의 연속이었다.

 

무거운 물건을 옮기고 나서도 그렇게 지치지 않았고, 점심시간 직전에 배가 고파 죽을 것 같지도 않았다.

 

단순노동을 하는 것뿐인데도 공장 일이 재미있었고 맛없고 퍼석한 빵이라도 유리병의 수프와 먹었더니 꽤나 먹을만했다.

 

좋은 잠자리에서 잘 자서 그런가, 맛난 음식을 먹어서 그런가.

 

하루가 편하고 힘들지 않아.

 

그리고 빅터는 문득 몰려오는 불안감에 손을 더 재게 놀려 작업을 빨리했다.

 

여기서 더 기분이 좋아진다면, 평소에 힘들었다는 생각이 들 것 같았다.

 

힘든 일이 아니야.

 

그래서도 안돼.

 

왜냐하면 앞으로도 나는 틀림없이 그렇게 살 거니까.

 

빅터는 돌아오는 길에 붉은 벽돌로 만든 건물을 보았다.

 

딱딱하고 날카로운 모서리를 가진 집.

 

그 집 벽에다 대고, 이글이 수프를 담아준 유리병을 세게 던져 깼다.

 

쨍그랑, 요란한 소리가 나고.

 

빅터는 휙 허공으로 날아올라서 이글의 집으로 돌아왔다.

 

유리병은?”

 

잃어버렸어.”

 

화내지 않는다.

 

오히려 신경쓰는 것 같지도 않다.

 

빅터는 감기가 나을 때까지라며, 하루 더 자고 가라는 이글의 말에 내키지 않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티엔하랑마틴?/알파오메가] Mine

2015. 10. 13. 03:41 | Posted by 호랑이!!!

하랑이 영국으로 와서 가장 놀란 것은 알파와 오메가로 나뉘는 신분제였다.

 

조선은 이미 양반이다 상놈이다 하는 신분제가 있었고 페로몬을 흘리는 오메가보다 그 페로몬에 자제를 못하고 달려드는 알파를 더 낮게 내려다보았기 때문에 비록 저가 오메가라도 이따끔 약이나 먹으면 불편함 없이 살 수 있었다.

 

허나 이 영국이라는 곳은, 더더군다나 세계를 구하겠다고 모인 양반들이 말이야.

 

자기들 자제력 따윈 생각하지 않고 오메가를 겁탈하고도 오메가 잘못이라고 한다고?

 

알파와 오메가에 따라 신분이 나뉜다니, 상놈 자식이 양반되고 양반 자식이 상놈이 된다니 이 무슨 근본 흐릿한 양반네들이냐는 말이다.

 

문화 충격이라도 받은 모양이군.”

 

좀 받았어.”

 

내키지 않으면 돌아가도 좋다.”

 

됐수다.”

 

하랑은 손을 내저었다.

 

자신은 힘을 원했고, 이들은 줄 수 있을 것처럼 말하니까.

 

어차피 난 무당 자식이라 상놈이야. 여기서도 내 신분이 상놈이라도 상관없어.”

 

그렇군.”

 

새삼스레.

 

배에서 내려, 티엔의 뒤를 따라 걸었다.

 

역시 지구 반대편이라 그런가 바다 냄새부터 다르구만.

 

무어라 떠들어대는 것도 귀기울이지 않으면 모르겠고.

 

그래도 알아들을 수는 있지~

 

얼씨구, 저 사람 오늘 저녁에 아가씨랑 약속이 있구만?

 

하랑은 스스로가 대견해 흥흥 웃으며 길을 걸었는데.

 

누군가가 대뜸 손목을 잡아챘다.

 

양반집 아가씨도 아니고 이 정도에 뭐 놀랄까.

 

뭐야?”

 

이거 동양인이잖아? 동양인 오메가!”

 

오메가가 이런 거리를 혼자 다니다니 겁이 없-”

 

빠악.

 

이하랑은 넘어진 그 앞에 서서 손목을 살살 흔들어 보였다.

 

정티엔이 건강한 몸에 건전한 정신이랍시고 열심히 훈련시키더니 이거 꽤 괜찮잖아?

 

부두 노동자였는지, 저 뒤쪽에서부터 덩치 큰 색목인 무리들이 하나둘씩 보인다.

 

입술이 벌어진 틈으로 휘파람이 흘러나오고.

 

즐겁다는 듯 눈꼬리가 올라간다.

 

판을-”

 

벌려볼까!를 외치기 전.

 

자신의 어깨에 익숙한 손이 얹혔다.

 

철없는 녀석. 힘을 써 보고 싶어 벌써부터 안달이라니.”

 

시비 건 쪽은 저쪽이거든!”

 

주먹을 내지를 때에 자세가 흐트러졌다.”

 

자기보다 작은 동양인 오메가에게 맞아 분한지 넘어졌던 사람이 덤벼들었다.

 

하랑은 팔을 뻗어 제쳐두고 티엔이 자세를 잡고 서서, 뒤로 뻗었던 팔을 앞으로 묵직하게 휘둘렀다.

 

이 정도면 괜찮군.”

 

괜찮~? 괜찮구운~? 이봐 정- 아니, 사부. 저기 사람 최소한 뼈 두세대는 나갔을걸!”

 

글쎄 어떨까.

 

티엔은 조금 흐트러진 겉옷의 매무새를 단정하게 하고, 한 팔로 하랑을 끌어당겨 안고 검은 물이 든 손을 올려 하랑의 뺨을 감쌌다.

 

“Mine.”

 

딱 한 마디였으나 어쩐지 그들은 수긍했고, 곧 사라졌다.

 

뭐야? 방금 뭐야? 방금 ‘Mine’이라고 했지? 광산? 지뢰? 건드리면 폭파시켜 버린다?”

 

“...내가 네 보호자라고 했다.”

 

아 뭐야, 협박거리가 안 되잖아.”

 

얼마간 걸어서 번듯한 거리가 나오자 하랑은 여기저기 둘러보느라 바빴고, 티엔은 하랑이 잠시라도 솜사탕, 유리 너머로 진열된 것, 거리에서의 공연에 시선이 팔리면 잡아오기 바빠서.

 

결국에는 손을 잡고 걸었다.

 

“...이거 부끄럽지 않수? 내가 일고여덟 먹은 애라도 부끄러울 짓인데.”

 

이제 딴데 안 보고 잘 따라갈게, ? 놔주라~

 

티엔은 쫑알거리는 하랑을 힐끗, 고개만 돌려 내려다보다가 잡은 손에 더 힘을 주어 끌고 갔다.

 

오늘 하루는 이렇게 끌고 다닐거다.”

 

뭐어~? ... 싸부! 사부~ 사부님~?”

 

결국 놔주지 않았고, 하랑은 입을 삐죽 내밀고서도 그를 따라가는 수밖에 없었다.

 

번듯한 거리에서 조금 더 항구 쪽으로 들어가는 곳에 그랑플람이 위치해 있었다.

 

오늘은 네가 꼭 알아야 할 사람들만 소개시켜 주마.”

 

가장 먼저 만난 것은 풍채 좋은 할아버지였다.

 

오오, 그 뭐시냐.

 

서부 활동사진에 나오는 사람이랑 똑같이 생겼구만.

 

브루스 보이틀러씨다. 재단의 후원자이며 재단 소속의... 큰어른이다. 이렇게 말하는 편이 더 빠르겠군.”

 

, 이해했수.”

 

간단하게 인사를 나누는데 옆에서 갈색머리에 눈 푸른 사람이 나타났다.

 

“...이 사람은?”

 

재단 소속은 아니지만 우리와 좋은 관계를 맺고 있는 릭 톰슨이다.”

 

, 손목에 시계가 하나... .. 무지 많네? 유행하는 패션이야?”

 

하하, 이건 어디까지나 실용적인 목적이오, 동양 소년.”

 

그리고 대뜸 안겨서, 하랑은 깜짝 놀랐고 티엔은 거의 반사적으로 하랑의 뒷덜미를 당겨 빼냈다.

 

인사야 인사. 좋은 향이 나는군.”

 

그래?”

 

서양인들은 개방적이구만.

 

하랑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럼 이 다음에 또 만나게 할 사람이 있어서 이만 실례.”

 

티엔은 문을 열어 하랑이 먼저 나가게 했다.

 

티엔 정.”

 

아까부터 우물쭈물하던 릭은 하랑이 나가자마자 입을 열었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 어리지 않소? 열일곱이라더니 직접 보니 훨씬 어려보이는데.”

 

걱정은 감사한다만.”

 

티엔은 어깨를 으쓱하고 문 밖으로 나갔다.

 

자네보다도 각오가 돼 있는지도 모르는 아이다.”

 

하랑은 먼저 나가서 복도에 있는 의자에 누군가 앉아있는 것을 보았다.

 

색목인의 머리털은 색이 다양하다더니. 진짜로 연한 금 같은 색이야.’

 

양털 빗어놓은거랑 비슷해 보이는데, 만져보고 싶네.

 

너무 빤히 보고 있었을까, 그가 고개를 들었다.

 

안녕하세요.”

 

. , 안녕!”

 

만져볼래요? 머리카락.”

 

그래도 돼?”

 

납작한 모자를 벗자 햇살을 받아 머리가 더 반짝였다.

 

마악 손을 뻗으려는 순간, 문이 열렸다.

 

사부 나왔어? 나 잠깐만-”

 

특별히 갈 필요는 없겠구나.”

 

하랑은 뻗던 손을 멈칫했다.

 

정티엔 표정이 바뀌었어.

 

뭔가 아주- 싫어하는 걸 보는 듯한.

 

그런데 그 싫다는게 그냥 싫다는 건 아니고... 으음, 이거 뭐라고 부르지? 으으 모르겠다!

 

그 사람이 내가 오늘 소개해 주려고 했던 마지막 사람이다. 이름은 마틴 챌피, 한 때 기울어져가던 재단을 지금 위치까지 끌어올린 장본인이지.”

 

- 대단한 사람이네?”

 

그렇게 보일지도 모르겠군.”

 

저거 왜 저렇게 날을 세우지?

 

하랑은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이고는 마틴 쪽을 봤는데.

 

어라, 이 사람.

 

웃고는 있는데 이 사람도 싫다는 표정이...

 

둘 사이의 분위기에 당황하던 하랑은 우물쭈물하다가 덥석 마틴 쪽으로 뛰어 안았다.

 

반가워~ 조선 출신 이하랑이올시다!”

 

“..., 격하네요 하랑.”

 

아까 릭 톰슨이라는 사람을 봤는데 이게 인사라고 했거든.”

 

하하, 그 사람다운 말이네요.”

 

다시, 티엔의 손이 이하랑의 목덜미를 잡아채 끌고 갔다.

 

낯 익혔으니 되었지 않나. 어서 방으로 가 짐정리부터 끝내도록.”

 

어 그치만-”

 

가라.”

 

아쉬움에 뒤를 흘끗 돌아보았더니 마틴은 여전히 햇살을 받고 있었고, 부드럽게 미소지으며 손을 흔들어주고 있었다.

 

다음에 만지게 해 줄게요.”

 

다음에 봐 형씨!”

 

꽤나 경쾌한 발소리가 타박타박 멀어지자 티엔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아직 멀었군, 마음을 읽히고.”

 

꽤나 순진- 아니지, 순수한. 좋은 아이더군요.”

 

“...남의 제자에 눈독 들이지 마라.”

 

“‘제자’? 솔직해지지 그래요.”

 

마틴이 우습지도 않다는 듯 흥 소리를 내자 티엔이 마침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복도는 조용했고, 영국의 하늘은 다시 구름이 끼려는지 어둑해졌다.

 

티엔은 잠시 그를 노려보다가 진중한 목소리로 한 마디를 선고하듯 말했다.

 

내 것이다.”

 

아직이잖아요.”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 것보다 한참이나 날 선 목소리가 비웃듯이 떨어졌다.

 

곧이다.”

 

물건만 전해주러 온 것이었는지 브루스의 사무실 문이 열리고 릭이 나왔다.

 

간단한 눈짓으로 인사를 마친 마틴은 서류를 들고 의자에서 일어섰다.

 

그거야, 두고 볼 일이겠지요.”

 


, 나랑 외식하자.”

 

이글은 여느때처럼 높게 묶은 머리를 살랑거리면서 다이무스의 사무실로 들어왔다.

 

다이무스의 눈빛이 탐탁찮다는 듯 바뀌자 이글은 허둥허둥 거기에 몇 마디를 덧붙였다.

 

내가 쏘는거야! 형 지갑 스틸하려는 것도 아니고 이거 빌미로 뭐 해달라는것도 아니고 일부러 비싼거 시켜놓고 어라, 지갑이 없네에~’하려는 것도 아냐!”

 

그러고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눈빛은 가시질 않는다.

 

이글.”

 

약간의 침묵이 있었고 마침내 다이무스가 입을 열었다.

 

“‘쏜다는 말은 어디서 배운 거냐. 내가 분명 어린 나이니 연합에 간다는 철없는 선택을 할 수는 있을거라고 했지만-”

 

“...책임을 지라고, 네에 네에.”

 

이글은 건성건성 대꾸하다가 다이무스의 눈매가 사나워짐을 느끼자 헛기침을 하고 짐짓 예절바른 모습으로 팔을 움직였다.

 

금일, 홀든 다이무스님의 탄신일을 맞이하야 기쁜 마음으로 데이트를 신청하고 싶습니다만 저녁식사라도 함께 어떠십니까.”

 

다이무스는 무어라 한 마디 야단이나 잔소리라도 할 것처럼 입을 열었다가 짤막하게 한숨을 쉬었다.

 

“...알았다. 옷은 뭘 입고 가지? 평상복?”

 

아니! ~쁘게 차려입고 나와. 그럼 난 이만 가볼게!”

 

문이 닫혔다.

 

문 너머로 이글이 은행 아가씨들에게 수작질하는 소리가 들려 다이무스는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저번처럼 정장을 입고 갔더니 허름한 펍으로 데려가는 일만 없었으면 좋겠군.

 

경쾌한 발소리가 멀어져갔다.

 

...그래도 내 생일 챙겨주는 건 저 녀석밖에 없군.

 

 

 

 

 

 

 

저녁, 다이무스는 늦지 않게 약속장소에 갔다.

 

차림은 격식에 맞게.

 

그리고 약속시간을 조금 넘어서 나타난 이글을 본 다이무스는.

 

본디 표현이나 말이 적은 그였지만.

 

놀라움을 짧게나마 얼굴 가득히 띄웠다.

 

이글?”

 

짜잔~ 놀랐지~?”

 

장난기 가득한 표정에 경쾌한 웃음소리에, 거기까지는 자신이 알던 그대로고 예상했던 차림이지만.

 

나머지 부분이 평소와 엄청나게 다르다.

 

방해되지 않도록 대충 올려묶은 머리는 단정히 빗어 아래로 내려 묶었고(한때 벨져가 그랬던 것처럼) 보기만 해도 거슬리고 답답한 한가닥 앞머리는 넘겼는지, 보이지 않았다.

 

평소에는 갑주 안에도 아무것도 입지 않았고, 벨트도 왜 하는지 모를 정도로 헐겁게 늘어뜨리고 다니던 녀석이 단정한 아비 프락(연미복)에 크라바트라니.

 

놀랐나보네! 아하하!”

 

이대로 사진관에 데려가서 사진 한 장 박고 싶구나.”

 

그 말은 들은체만체하고, 이글은 다이무스의 손을 이끌어 제법 그럴싸한 레스토랑으로 데리고 갔다.

 

이글 홀든으로 예약했습니다.”

 

이쪽입니다.”

 

자리에 앉자 전채로 훈제한 연어를 멜론에 싼 것이 나왔다.

 

웨이터가 물러가자 가장자리의 포크를 집으며 다이무스가 먼저 입을 열었다.

 

예상 밖이구나.”

 

아하하, 어떠셔? 이 몸이 할 때는 한다는 말이지~”

 

기왕이라면 내 생일 같은 날보다는 집안의 중요한 일이나 그런 때 해줬으면 좋겠다만.”

 

에엥~ 무슨 말씀? 이글 홀든 24년 인생에 집안 최대 행사는 큰형아 생일이거든?”

 

전채요리를 담은 접시가 비워지자 수프가 나왔다.

 

다이무스의 취향에 맞는 것으로, 이글과 종류가 다른 것을 보아 신경 써서 예약한 것이 틀림없었다.

 

그 후의 생선, 고기 테린, 메인, 샐러드에 곁들인 와인까지 전부 그가 특별한 날에 즐기는 것이라.

 

다이무스는 꽤나 감동받았다.

 

형아~ 어때~ 만족스럽지이~”

 

“...테이블에 팔을 괴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다.”

 

퉁명스레 얘기함에도 이글은 다 안다는 듯 씩 웃는다.

 

“.....동생을 키운 보람이 있다, 정도는 생각하고 있다.”

 

아 웃기셔, 형이 키웠나? 한나가 키웠지.”

 

다음은 디저트 차례다.

 

달지 않고 깔끔하게 끝낼 수 있는게 좋겠지.

 

사실 어느 정도는 기대했다.

 

뻔히 마음에 차는 것을 알면서도 굳이 한 마디 말이나 머리를 쓰다듬는 것으로 칭찬을 받고 싶은지, 이글이 안절부절 못 하여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디저트 있지, 다크 초콜릿이랑 과일을 써서 형이 좋아할만한 걸로 해 달라고 했다~?”

 

기대되는군.”

 

다이무스의 눈가가 누그러졌다.

 

이글은 그들의 테이블로 웨이터가 다가오는 것이 보이자 초조하게 머리 끝을 손가락으로 감아대었다가 풀었다.

 

저 모습은 어릴적과 하나도 안 바뀌었지.

 

다이무스는 웨이터가 가져다주는 접시가 제 앞에 놓이자 코를 씰룩였다.

 

초콜릿과 과일을 듬뿍 얹은 케이크, 그리고 굳이 코를 가져다대지 않아도 느껴지는 단내.

 

이글이 기대에 가득 찬 눈으로 이 쪽을 보는 것이 느껴졌다.

 

다이무스는 이글 앞에 다른 접시가 놓이는 것을 보고는 작은 스푼을 들었다.

 

달그락, 달그락.

 

이글은 제 앞에 놓인 디저트를 신나게 퍼먹었다.

 

제 형이 앞에서 보기만 해도 달아빠진 초콜릿 디저트를 덤덤하게 먹는 것은.

 

글쎄, 동생에게 실망을 안겨주지 않겠다는 상으로서의 위엄 같은 걸까?

 

마침내 다이무스의 그릇이 비워지고 딸그랑 소리를 내며 숟가락이 떨어지자, 둘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 디저트 먹는 속도가 느리던데~”

 

배가 불러서 그랬던 거다.”

 

아까 형이 미간 찡그리는거 다 봤거든요!

 

레스토랑 밖으로 나오자 이글은 숨죽여 킥킥 웃으면서 냅다 달려들어 다이무스의 팔짱을 꼈다.

 

~, 그럼 오늘은 특별히...”

 

사진 찍으러 가지.”

 

? , ? 형아? 다이무스 형?!”

 

아이고 큰형이 나 납치한다~며 이글이 웃었다.

 

장담하는데, 이건 디저트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하는 거다.

 

냉철한 은행원이고 회사의 에이스에 홀든을 이을 장남?

 

...근데, 동생인 내가 봐도 귀여운데!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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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0. 12. 11:25 | Posted by 호랑이!!!

 

야간학교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이것도 내 머리가 좋은 덕이지.

 

이글은 다소 자만하며 정문에 가 섰다.

 

어디, 이 꼬맹이가 감히 며칠이나 내 집에 오지 않았단 말이지?

 

정문 한가운데에 서 있으려니 얼마 안 있어 학교의 문 쪽에서 사람들이 떼지어 나왔다.

 

과연 야간학교라서 그런가 생각보다 나이 든 사람들이 다수.

 

빅터 같은 학생뻘 아이들은 오히려 적었다.

 

직업만 봐도 일용직 노동자들이 다수.

 

그리고 어린아이 한 무리가 나오고(그래도 빅터보다는 나이 들어 보인다).

 

어느 술집에 가서 맥주를 한 잔 하자는 소리를 하며 우우 몰려가는 무리 뒤로 익숙한 파란색이 보였다.

 

하얀 머리는 고개를 숙이고, 그렇게 무거워 보이지 않는 가방을- 아니, 가방조차 없이 옆구리에 책과 공책을 끼웠다.

 

고개를 들어 저를 볼 것 같지 않아, 이글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

 

하얀 머리가 퍼뜩 들렸다.

 

놀란 것처럼.

 

그리고 눈이 동그랗게 뜨이고, 뭔가 말할 것처럼 입이 벌어졌다가 다물린다.

 

이글은 빅터가 무릎을 구부려 날아오를 준비를 하자 냉큼 손목을 잡아챘다.

 

어딜 가?”

 

“...”

 

손을 흔들어 떼려고 하는 주제에 입은 조용하네.

 

이글은 어린애를 안아올리듯 양 겨드랑이에 손을 넣더니 들어올려 어깨에 걸쳤다.

 

, 가만있네.

 

비록 등을 주먹으로 내리치긴 하지만 예상했던 발길질은 날아오지 않고, 주먹질도 이 정도면 안 아픈거지 뭐~

 

이글은 그대로 제 집으로 데려갔다.

 

발로 툭 걷어차 소파를 벽난로 쪽으로 밀어 거기 빅터를 내려놓자 조그만 고양이가 달려들어 올라탄다.

 

핫밀크에 초콜릿?”

 

이걸 거부한 적은 없으니까 물으면서도 우유 든 주전자를 불 위에 올렸는데, 흘끗 돌아보니 고개를 젓고 있다?

 

이글은 성큼성큼 걸어서 빅터 앞에 서 고개를 얼굴 가까이로 들이밀었다.

 

--하는 숨소리가 들리고.

 

얼굴 빨간 것은 들쳐업느라 피가 몰려서라던가 벽난로 때문은 아니렷다.

 

“...말해보라고, .”

 

고개를 젓는데.

 

이봐, 난 그렇게 거칠게 굴고 싶지 않았다?

 

이글은 커다란 손으로 덥썩 빅터의 얼굴을 잡아 억지로 입을 벌렸다.

 

감기구만?”

 

말을 하지 않은, 못한 건 목이 부어서네.

 

이글은 눈살을 과장스럽게 찌푸리며 뒤로 물러났다.

 

마침 잘 됐네~ 며칠 여기 있으면서 내가 오븐으로 시험작 만드는 거나 좀 봐라?”

 

글쎄 어젠가 그제인가는 빵을 구워봤는데 글쎄 그게 까맣게 타서 훅 부니까 가루가 날아가지 뭐야~

 

빅터는 빅토르를 옆으로 내려놓고 잽싸게 몸을 일으켜 문 쪽으로 한 걸음 내딛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빅터는 이글 바로 앞에 서서, 안겼다.

 

사영도~ , 이건 부지깽이지만!”

 

이글이 유려한 손놀림으로 장작 뒤집는 쇠막대를 마치 칼처럼 써서 빅터를 제 앞으로 끌어온 것이다.

 

그리고 덥썩 안고.

 

빅터가 고개를 들자 이글은 씩 웃다가 가늘게 눈을 떴다.

 

“...자고 갈 거지?”

 

빅터는 굳어서 부지깽이가 바닥으로 툭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간신히 대답 대신 고개를 푹 떨구자, 만족스럽다는 듯 이글은 빅터를 놓아주고 홱 뒤로 돌았다.

 

이글은 감기에는 닭 넣고 끓인 수프라며 부엌 쪽으로 가다가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깔깔 웃었다.

 

안아줄 때 엄청 긴장하더라?”

 

빅터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이글의 웃음소리가 더 커졌다.

 

말을 할 수 있다면 우유 탄다고 한 마디 쏘아줄 텐데.

 

빅터는 투덜거리며 소파에 몸을 더 깊이 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