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이 아직 능력이 발현하기 전, 그는 사랑하는 연인과 밤하늘을 유영하는 상상을 했다.
그것은 최고로 로맨틱한 데이트일 거라며.
그러나 그의 능력은 그가 가지고 있던 로맨스와는 전혀 다른 방향, 어쩌면 정반대라고 할 만한 방향으로 뻗었다.
‘꼴도 보기 싫어’
‘언제쯤 자게 해 줄까’
‘이 사람도 저 사람도 더 나를 좋아했으면 좋겠어’
오늘도 여기저기에서 들린다.
심지어, 겉으로 보기에는 더없이 행복해 보이는 연인의 모습으로.
사람의 마음속을 이렇게까지 보는 내가 사랑에 빠질 리 없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저런 생각을 하는 것을 보면 식어버리겠지.
내가 저런 생각을 해 버리면 어떻게 하지.
마틴은 멍하게 그들을 쳐다보다가 문득 옆에서 들리는 부름에 정신을 차렸다.
“챌피?”
“아아, 톰슨씨...?”
마틴은 멍한 표정을 보였을까 허둥지둥하며 모자를 매만지고 푹 눌러 썼다.
“날 알고 있소?”
“물론요. 그, 저쪽에서 게이트를 열어 주시는...”
그리고 마틴은 말을 멈추어야 했다.
자신이 안다, 라고 하자마자 바로 곁에서 교회의 커다란 종이 울리는 것 같은 소리가 났기 때문에.
아 이 사람, 소녀도 아니고!
머릿속에서 종이 울려서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자신이 웃을 때마다 옆에서 종소리가 더욱 크게 울렸다.
한참을 웃다가 그는 릭의 식사를 같이하자는 요청을 수락했다.
“...그래서 그 때는 왜 그렇게 웃었던 거요?”
단순히 ‘그 때’지만 마틴은 언제를 말하는 것인지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트와일라잇 근처를 걸으며 그가 말했다.
“당신 머릿속에서 종이 울렸거든요.”
“종?”
그러고 릭의 얼굴이 빨개진다.
사람의 마음이 사랑스러울 수 있다는 것을 당신을 처음 만나 알게 되었지만, 이 말은 나중으로 미뤄 둬야지.
마틴은 키득키득 웃었고 릭은 물수건으로 손을 닦으며 진정해갔다.
“...그래서, 마틴. 오늘 뭔가 하고 싶은 거 없소?”
당신은 평소에 나한테 많이 맞춰주는 것 같은데, 연상인 내가 그대에게 맞춰주기도 해야 하잖아.
그런 소리가 뒤에 들렸다.
마틴은 고민하고 눈을 굴리다가 생각해냈다.
“...제가 어릴 때 있잖아요. 저는 사랑하는 사람과 밤하늘을 산책하고 싶었어요.”
릭은 턱을 괴어 잠시 생각하더니 마틴을 손짓으로 불러서 풀밭에 누웠다.
밤이슬에 옷이 젖을 텐데, 생각하면서도 냉큼 그의 팔을 베고 누웠더니 릭이 손을 앞으로 뻗었다.
“모든 공간은 연결되어 있지.”
릭이 무언가를 치워내듯 손을 옆으로 움직이자 릭이 스친 그 부분에 구멍이 뚫리듯 어두운 부분이 하늘에 생겨났다.
뉘엿뉘엿 넘어가는 해는 어두워지는 하늘을 붉은 색으로 물들여놓았고 릭이 걷어낸 그 부분만이 어둡고 검은 하늘을 향한 창문을 열었다.
빛을 받아 밝은 여러 가지 색과 모양의 별들, 허공을 떠다니는 돌가루들, 빛과 얼음 알갱이들.
구름이 보이고 바위가 보이고 하얗거나 붉게 타오르는 태양.
릭은 무심코 손을 뻗는 마틴을 저지했다.
“그러면 손이 날아갈거요.”
릭은 손을 저어 그 우주로 뚫린 창문을 조금씩 조금씩 넓히고는 마틴의 손을 꼭 잡았다.
“...어때, 밤하늘이라는 기분은 들지 않겠지만. 이것도 꽤 괜찮지 않소? 블론디.”
마틴은 자신의 손을 잡은 그의 손을 힘주어 잡았다.
“릭을 만나 저는 사람이 사랑스러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어릴 적 자신이 상상했던 밤하늘을, 오랜만에 다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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