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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캠/파] 어린 파의 하루

2015. 9. 18. 20:01 | Posted by 호랑이!!!

어느 뱀 가는 아예 사시사철 따뜻한 대륙에서 산다고들 한다.

 

그러나 교사 가(蛟蛇 家)는 그 몸이 튼튼하고 강인한 것을 자랑으로 하였기에, 부러 혹독한 겨울이 존재하는 곳에 그대로 남았다.

 

구렁이라고는 하나 용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자들도 아니고, 본성이 음습하고 뒤틀린 자들이 다수였다.

 

그래서 교사 파, 아명 은 살아남을 수 있었다.

 

==

 

가문의 아이는 사촌이 아닌 형제로서 공동으로 길러진다.

 

실제로는 삼촌의 아이, 고모의 아이인 사촌으로서 인식하면서도 누이, 형제로 부르며 함께 숙식하고 한데 뒤엉켜 자란다.

 

악만은 예외로.

 

누이 무엇하오?”

 

현을 탄다.”

 

아이들 중 가장 윗사람인 영은 윤기가 흐르는 검은 머리에 새까만 눈을 가지고 있었다.

 

언제나 비녀나 구슬끈으로 틀어올려 묶지만 겨울에 풀어내린 모습을 보면 그 머리는 찬란하게 흘러내리는 폭포수 같았다.

 

그 머리를 볼 때면 파는 하얗고 부슬거리는 제 짧은 머리를 만져보곤 했다.

 

고양이같은 눈으로 악기를 연주하다 그녀는 악이 들어오자 손을 멈추었다.

 

저도 악기를-”

 

그러다 손 다치면 안되잖니? 너는 우리보다 몸이 약하니까.”

 

저 말은 선의에서 나오지 않는다.

 

악은 영이 악기를 연주하는 모양을 한참이나 빤히 바라보다가 나갈까 하여 자리에서 일어났다.

 

, 악아.”

 

영은 연주를 멈추고 악을 불렀다.

 

이것 먹으렴.”

 

손에 들린 것은 악이 싫어하는 향이 나는 사탕이다.

 

그것을 입에 넣으니 뻔히 그것을 싫어하는 줄 아는 영의 입매가 보기 좋게 일그러진다.

 

정원으로 나서면, 저 멀리 마당에서 형제들이 공을 가지고 노는 것이 보인다.

 

형제라고는 하나 악보다 한두 자는 더 큰 사람이 대다수에 노는 것은 거칠어서 낄 수도 없지만 꼭 자기가 근처에 있으면 부러 평소보다 더 험하게 몸을 움직인다.

 

저번에는 그래서 한참이나 가만히 보고 있었더니 자기들끼리 더 열이 올라 누군가의 다리가 부러졌다던가.

 

그러고는 한 자리가 비었으니 보고 있던 네가 들어와라 하면서 반시진이나 뛰게 했다.

 

그땐 정말 죽을 뻔 했지.

 

악은 계속 걸음을 옮겨서 아기들 방으로 갔다.

 

교사의 아이들은 하루에 한 뼘씩 자란다고 하지만(헛소문이다) 걸음마를 하고 혼인 전의 누이들이 돌보게 되기까지는 한두해가 걸린다.

 

식사 시간이 끝나고 낮잠 시간인지 벌써 많이 자란 아이들은 해 아래에서 뒹굴거리며 자고 있었다.

 

아기 냄새나.

 

아이가 울 것 같으면 얼러서 달래고, 기저귀 때문에 울 것 같으면 잽싸게 갈아 주고.

 

악은 주위에 사람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 해가 반쯤 드는 구석에 누웠다.

 

이따끔 아이 칭얼거리는 소리가 나고, 종이 바른 문 너머로 들어오는 해는 따뜻하고.

 

꼬박꼬박 졸다가 저만치서 전해지는 발걸음의 진동에 고개를 들고 서둘러 방을 빠져나갔다.

 

이미 해는 산 너머로 많이 넘어갔고 마당에 가득하던 아이들 기척도 사라져 있었다.

 

다시 정원 쪽으로 발걸음을 하다 보면, 아이들이 사는 별채의 창호지 너머로 아이들 노는 것이 보인다.

 

그림자놀이, 술래잡기, 나무인형 가지고 노는 모습, 그림 그리는 모습.

 

이야기책 읽는 소리, 잡담하는 소리, 말놀이 하는 소리, 그리고 타닥타닥 난로에서 나무 타는 소리.

 

악은 정원 사이로 계속 걸었다.

 

하얀 돌로 만든 길 위로 계속 걷다 보면 작은 별당이 보인다.

 

작고 깔끔하고 춥지는 않은.

 

그리고 따뜻하지 않은.

 

신을 벗고 들어서면 나무 담긴 항아리의 불부터 확인한다.

 

다 젖었다.

 

또 아이들이 와서 장난질을 치는 모양이다.

 

담긴 재와 남은 나무토막을 버리고 새로 흙을 담고 그 위에 장작 남은 것을 구해와 넣은 뒤 불쏘시개를 담는다.

 

아기들 방에 가면 누군가 있을테니 불 좀 빌려달라고 해야겠다.

 

그리고 오늘 밤도 책과 신문으로 지새야지.

 

악은 이불 가득한 위에 책상을 꺼내놓고 그 위에 어른들이 보고 던져놓은 신문과 실로 엮은 책을 꺼내 올려두었다.

 

매일같이 사용하느라 먼지 앉을 틈도 없는 작은 단지를 들고 온 길을 되돌아가니 셋째 고모가 아이들을 보고 있었다.

 

회요요 고모님.”

 

불이 없나 보구나.”

 

쌀쌀맞은 목소리였다.

 

뱀이 불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것은 목숨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것과 같다, 너는 한여름에 자다가 동사할지도 모른다는 잔소리를 한바탕 듣고 나서야 마침내 작은 불을 담을 수 있었다.

 

악은 그것을 들고 다시 방으로 돌아갔다.

 

이미 밖은 어두워져서 하늘에는 별과 달이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저 달이 해처럼 따뜻하면 밤에도 춥지 않을 텐데.

 

서둘러 방으로 돌아가 항아리에 불을 담자 얼마 안 있어 따뜻하게 타올랐다.

 

악은 기름등잔에 불을 붙이고 신문을 펼쳤다.

 

세상 어딘가에는 피가 해를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세상 어딘가에는 동물로 변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고.

 

세상 어딘가에는 소매가 좁은 옷을 입는 사람들이 있고.

 

세상 어딘가에는 하루 세 끼를 먹는 사람들이 있고.

 

세상 어딘가에는 꼬리달린 사람들이 있고.

 

세상 어딘가에는.

 

세상 어딘가에는.

 

그리고 언젠가는,


세상 어딘가에서 나도 부부의 연을 맺어 내 아이를 품에 안아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