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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키벨져] 립스틱

2015. 11. 11. 23:09 | Posted by 호랑이!!!

귀찮은 놈.”

 

벨져는 드물게 입술을 말아 이를 드러냈다.

 

사려문 이가 창백하고 어둑한 달 아래에서 번뜩 빛을 반사했다.

 

그의 몸 여기저기에는 핏자국도 상처도 보였고 옷도 찢어져 있었는데, 그가 벽에 기댄 앞에는 비교적 최근에 참전하기 시작한 안타리우스의 젊은 교주가 있었다.

 

손이 많이 가기도 하지!”

 

경박한 목소리, 벨져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가뜩이나 들어올린 고개건만 턱이 잡혀 젖혀졌다.

 

제키엘은 씩 웃으며 입을 벌렸다가 손에 힘을 주어 억지로 벨져를 일으키다시피 해서 입을 맞췄다.

 

, -

 

억눌린 소리와 밀어내는 손의 움직임이 보였고 마침내는 무언가에 놀란 듯 제키엘이 입을 떼었다.

 

꽤나 앙칼지게 물린 듯 피가 배어나오는 입가를 손등으로 밀어 닦는 중 벨져가 몸을 일으키려는 듯한 움직임을 보이자, 그는 팔을 벌렸고 동시에 등에서 금속 가시가 뻗어나왔다.

 

그 가시에 몸이 걸린 벨져를 잡아 땅으로 누르며 제키엘은 이쪽을 죽일 듯 노려보는 그를 내려다보았다.

 

크크크큭, 그렇게 움직여대니 삐뚤게 묻지 않았나.”

 

미친놈.”

 

입가에 묻은 연한 청록색 도료를 손가락으로 문질러 모양을 내다가 제키엘은 벨져의 목에 매달린 크라바트를 뜯어냈다.

 

평소에까지 입던 재킷 모양 경갑은 어디 가고, 흰 셔츠 차림인 것을 자락을 들자 못잖게 하얀 피부가 드러났다.

 

수치심에 몸이 작게 경련하고 움츠러드는 것을 제키엘은 그의 양 팔을 잡고 눌러 막았다.

 

겉모양은 유약해도 속은 그 눈빛만큼이나 강하지, 마음에 드는구나.”

 

어디, 처녀애처럼 구는 이 몸뚱아리를 물어뜯어도 똑같이 구는가 보자꾸나.

 

소름끼치는 소리를 내며 가시가 뻗어 벨져의 몸을 억눌렀다.

 

한 번 입술을 대고 느릿하게 색을 입술에 칠하고 다시 입술을 대고.

 

그 일련의 행동은 지나치게 느릿느릿해서 벨져의 정신이 긴장으로 아득해지는 것에 충분했다.

 

달 뜬 밤에 시작했던 것을 희부옇게 안개가 피어오르는 새벽에 끝내고 제키엘이 떠나도 벨져가 일어나지 못하도록.

 

그가 정신을 차리고 향한 곳은 기사단 거처가 아닌 다이무스가 쓰는 집이었다.

 

이 시간이면 없겠거니 하고 갔건만 예상 외로 다이무스는 신문을 읽을 때 사용하는 안경을 쓰고 집에서 서류를 처리하는 중이었고.

 

벨져는 이렇다 저렇다 인사를 건넬 생각도 않고 욕실로 걸어 들어갔다.

 

다이무스는 서류를 테이블에 내려놓고 안경을 벗으며 욕실 앞으로 갔다.

 

따듯한 물이 나오려면 좀 기다려야 할 거다.”

 

, 형아.”

 

저것도 부탁이라고.

 

다이무스는 제가 입는 옷 중에서 하얀 와이셔츠와 바지 하나를 꺼내들었다.

 

이것도 꽤나 클 텐데 아예 새로 사는 편이 낫지 않으려나.

 

그런 생각을 하는데 욕실 문이 열리는가 싶더니 펄럭 펄럭 옷이 떨어졌다.

 

쯔쯔, 아주 구르고 뛰고... 기사단이 벨져를 험하게 굴리는군.

 

안에서는 샤워기에서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다이무스는 페인트에라도 담갔던 건지 초록색과 파란색 사이의 서늘한 색으로 물든 와이셔츠를 들었다가 고개를 저으며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티엔하랑] 사부

2015. 11. 11. 03:16 | Posted by 호랑이!!!

티엔은 양 팔 가득 과자를 안고 그랑플람의 복도를 걷고 있었다.

 

봉투나 바구니를 이용하면 그만일 것을 굳이 들어 팔에 안고 걷는 그는 그 복도에서도 가장 끄트머리에 있는 자신의 방에 들어섰다.

 

언젠가는 사무실과 가까운 쪽에 있는 방을 썼지만 지금은 다소 사정이 생긴 터라 부득불 방을 옮기게 되었다.

 

주머니에 있는 열쇠를 찾아서 잠금쇠에 꽂아 돌리니 안에서 부스럭부스럭 소리가 들렸다.

 

몸을 방 안으로 들여놓으니 아직 해도 지지 않았건만 커튼을 친 방이 어둡기만 했다.

 

나다, 하랑아.”

 

찰칵 스위치 켜지는 소리가 나고 갑자기 밝아진 방 때문에 눈을 깜박이는 사이 긴 머리를 내린 소년 하나가 덤벼들 듯이 품에 안겨온다.

 

과자나 좀 받아다오.”

 

이건 다 뭐야? 무슨 날이야?”

 

그냥, 네가 종종 과자를 한아름이나 사들고 와 먹이던 것이 생각나서 그랬다.”

 

하랑은 티엔의 팔에서 과자를 앗아들어 커다란 침대 위에 뿌리듯 놓았다.

 

조심성없이 아무렇게나 놓아서 몇 개는 바닥으로 떨어져 구르기도 했고.

 

티엔은 그 모습을 마냥 사랑스럽게 보다가 다가와 침대가에 앉았다.

 

머리를 땋고 있으래도.”

 

, ? 어차피 보는 사람이라고 해 봤자 티엔밖에 없는데.”

 

뭐하러 그런 손 가는 일을 하냐며 히히 웃는 얼굴을 내려다보는 티엔의 표정이 차갑게 굳어가자 하랑의 표정에서도 서서히 웃음이 사라졌다.

 

“...아 알았어. 묶으면 될 거 아냐.”

 

하랑이 순순히 수긍하자 티엔은 한결 풀린 얼굴로 손짓해 불렀다.

 

이리와라, 땋아 주마.”

 

하랑은 티엔 앞에 앉아서 침대에 쌓인 과자 중에 하나를 골라 포장을 벗기고 입에 물었다.

 

티엔이 머리를 빗겨주는 동안 길쭉한 과자를 끝부터 톡톡 부러뜨려 먹다가 하랑은 언젠가 티엔이 주었던 책을 발끝으로 가리켰다.

 

티엔.”

 

뭐냐.”

 

책에서 그랬는데, 티엔처럼 이것저것 가르쳐 주는 사람을 선생님이라고 부른대. 그러면 나, 티엔을 선생님이라고 불러야 하는 거야?”

 

움직이지 말라며 허벅지를 찰싹 때리고는, 티엔은 댕기를 들어 옆에다 놓고 익숙한 손놀림으로 머리를 땋기 시작했다.

 

선생님보다는 사부가 좋겠구나.”

 

사부? 사부님?”

 

사부.”

 

사부, 사부 하며 익숙하지 않은 단어를 연습하는 하랑의 머리를 땋아 댕기까지 드리워 주고는 티엔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부우- 어디 가?”

 

잠시 쉬는 시간이었다. 일하러 다녀오마.”

 

있지, 티엔.”

 

불을 끄면서 하랑은 결국 익숙하지 않은 단어 대신 이름을 불렀고 길게 땋아 내린 머리채 끝을 들어 흔들었다.

 

왜 이 댕기 쓰는거야?”

 

가보마.”

 

누군가가 바느질로 애써 찢어진 것을 잇고 천을 덧대거나 수를 이은 흔적이 있는, 그을리고 탄 자국이 있는 댕기.

 

그 댕기를 손에 든 하랑 앞에서 문이 닫혔다.

 

침대로 돌아가 엎드려서 과자를 깨문다고 벌어진 입 안, 혓바닥에 천칭 모양의 낙인이 언뜻 보였다.

 

 

이하랑.”

 

정티엔의 목소리다.

 

그러나 하랑은 자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잔다는 것을 알았다.

 

왜 불러?”

 

공성전에 참가해야 한다.”

 

알았수!”

 

하랑은 자신이 잔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잠든 상태로 하랑은 보았다.

 

자기 자신이 안락의자에서 일어나 읽던 책을 내려놓고 티엔을 따라가는 것을.

 

어라, 이건 좀 이상한데.

 

그렇게 생각하면서 하랑은 잠들었다.

 

요즘 부쩍 잠이 늘었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잤더니 잠을 얕게 자기 시작한 건지 자신이 무얼 하는지 느껴졌다.

 

일어나서 품의 부적을 꺼내고 붉은 개를 불러다 사람을 물어 해치고.

 

이상도 하지, 나는 분명 자고 있는데.

 

어딘가 우습기도 했다.

 

공성전이 끝나고, 본디는 따뜻한 물로 몸을 씻는데 오늘 몸에 끼얹어지는 물은 차가운 물이었으나 아무런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상쾌하구나.

 

그리고 이 안은 아늑해서 잠들고 또 잠들어도 이상하지 않구나.

 

티엔도 내게 아무 말 않고, 양인들이 떠드는 것도 내게 닿지 않고, 다른 이의 공격조차 내게 닿지 않으니 이 어찌 안락하지 않은 장소란 말인가.

 

비록 하랑 자신은 책을 읽지 않았지만 몸이 책을 들면 잠든 머릿속으로 이야기가 들어왔다.

 

기사가 용을 무찌르고 범을 잡고 아리따운 아가씨에게 구혼하는 이야기들.

 

요정이 나오고 사슴이 나오고 맑은 샘물과 풀들.

 

그러다 까무룩 잠들었는데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하랑! 이하랑? 정신 차려요, 일어나!”

 

무슨 소리야? 나는 일어나 있는데.”

 

..., 마틴 형씨인가? 미안한데... 나 조금만 더 자고...

 

더 자면 안돼요! 어서 눈을 떠!”

 

졸려, 여기는 따뜻하다고.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둥실둥실 떠다니는 것 같단 말이야.

 

하랑! 그런 소리 말고 냉큼 일어나요!”

 

나는 이미 일어났다니까. 챌피.”

 

당신 누구야? 내 앞에서 숨길 수 있다고 생각해? 당장 하랑군을 깨우라고!”

 

이 몸에 국한된 것은 슬프지만, 이미 늦었어.”

 

제게 말을 거는 것 때문에 눈을 반쯤 떴지만, 그 자리를 떠나는 것인지 말소리가 멀어지고 다시 잠이 왔다.

 

그리고 이하랑 자신은 입술 새로 연신 귀에 익은 노래를 흥얼거렸다.

 

자장자장 우리 아가, 잘도 자는구나 우리 아가. 잠들고 우리 신명나게 놀아 보자꾸나.”

 

내가 네가 되고, 네가 내가 되는.

 

너는 남이 되고 남이 네가 되는 그런 즐거운 꿈 속에서 우리 함께 신명나게 놀자꾸나.

 


[호그와트AU] 오늘도 학교는 평화롭습니다 -07

2015. 10. 28. 02:25 | Posted by 호랑이!!!

 

할로윈 하면 내가 빠질 수 없지!”

 

긴 까만 머리에 당찬 성격, 그리고 빨갛게 빛나는 한쪽 눈.

 

호그와트에 딱 두 명 있는 동양인 능력자 중에 한 사람.

 

그 이름도 당당한 이하랑이시다!

 

“...이미 학교에 귀신은 차고 넘친다만.”

 

본래 호그와트는 영국인의, 영국인에 의한, 영국인을 위한 학교였으나 요즘은 세계화 시대다.

 

그로 인한 첫 번째 동양 학생이 티엔이었는데 아주 모범적이고 그럭저럭 좋은 결과를 이끌어냈다나.

 

그래서 다음 학생을 물색했더니 티엔이 아는 동생이라며 하랑을 추천해왔다.

 

머리도 짧게 깎고 반듯하며 타의 모범이 되는 티엔을 믿고 하랑에게 입학 원서를 보냈으나.

 

이 이하랑이라는 녀석은 굳이 서양식으로 스스로를 맞추려고 하지 않았으며...

 

아니, 그건 둘째 치고, 아예 싸움닭이다!!!

 

요즘에는 좀 누그러졌다지만 1학년, 2학년, 3학년까지만 해도 동양인을 처음 본다는 마법사 아이들이나 스스로에게 자부심 높은 슬리데린 학생들이 찾아왔다가 나란히 병동으로 가는 일도 부지기수.

 

게다가 더 심각한 것은.

 

하랑의 기숙사가, 후플푸프다.

 

마법의 분류모자도 이제 수명이 다 되었다니까. 어떻게 너를 후플푸프에 넣는 건지.”

 

하랑을 추천한 장본인, 정 티엔은 혀를 찼다.

 

하랑은 그 말을 못 들은체 하며 지팡이를 휘둘렀다.

 

나와라!”

 

빨간 개, , 원숭이, 등등.

 

동물 령들이 우루루 나오는 것을 보며 티엔은 고개를 저었다.

 

그러게 우리 학교에는 이미 귀신이 많다니까

 

[호그와트AU] 오늘도 학교는 평화롭습니다 -06

2015. 10. 27. 20:02 | Posted by 호랑이!!!

 

약이 완성된 것은 할로윈, 호그와트의 모든 학생들이 과식을 하는 날이다.

 

토마스 스티븐슨, 래번클로의 반장은 자그마한 약병 하나를 손에 감추고 길게 심호흡을 한 뒤 연회장으로 들어섰다.

 

좋아, 아직 이글 형 안 왔지?

 

피터도 이글 형도 토마스의 좌우로 와 앉곤 했으니까, 토마스는 연회장 문을 쳐다보며 조심스럽게 손 안의 병을 열었다.

 

다행히, 맨 가장자리의 테이블에는 이글에 피터까지 가세하게 되면서 아무도 앉지 않았으니까, 호박 주스가 든 보울에 똑 똑 약물을 붓고는 포리지용 설탕을 슬쩍 떠 넣었다.

 

좋아, 맛은 문제 없겠지.

 

휴우 한숨을 쉬고 이글이 언제 들어오려나 하고 있는데 어김없이, 요란한 소리가 나면서 허공에서 히아신스 향이 나는 비누방울이 가득해졌다.

 

분명 저번 호그스미드 외출은 금지였던걸로 기억하는데 언제 또 갔다온거야.

 

그래도 뭐, 이 정도면 무난하고 무해한 편인가- 하는데 갑자기 비누방울들이 부풀어오르더니 요란한 폭죽이 그 안에서 터져나왔다.

 

필리버스터 박사의 불꽃놀이 세트인가.

 

요란하게 불꽃이 퍼지고 폭음과 파지직거리는 소리가 울리고, 토마스는 주위를 둘러보며 이글을 찾았다.

 

이글 형!”

 

으하하, 토마스 안녕!”

 

좋아, 그래도 오늘이 지나면 당분간 장난질은 꿈에도 없을 줄 알아!

 

이글은 깔깔거리더니 교수님이 오시기 전에 도망칠거라며 컵에다 호박 주스를 가득 따랐다.

 

토마스는 컵을 빤-히 쳐다보았다.

 

좋아, 저기서 한 모금이면. 딱 한 모금이면.

 

이글의 입이 벌어지더니, 호박색 주스가 흘러들어갔다.

 

좋아!

 

토마스의 눈이 반짝 빛났다.

 

이제 이글은 적어도 한달간은 차분해지겠지!

 

아직도 연회장 여기저기에서는 펑 펑 폭죽 터지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펑, 이글 쪽에서 무언가 터지는 소리가 났다.

 

...잘못 들었겠지?하면서 토마스가 그 쪽으로 돌아보았으나 거기 이글은 없었다.

 

대신 연회장 안에서 요란스러운 비명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터져나왔다.

 

“...이글?”

 

그리고 돌아보았더니 거기에 호박 주스가 든 커다란 보울은 없었다.

 

대신 연회장 천장에 커다란 새 같은 것이 펄럭거리면서 주스 보울을 가지고 날고 있었는데, 그 아래에서 주스 방울이 몸에 튄 학생들은 팔이나 얼굴에 깃털이나 부리가 돋아나 비명을 질렀다.

 

오 설마.

 

야 이거 굉장한데! 할로윈 음식은 과연 뭐가 달라도 달라!”

 

머리 위에서는 이글이 커다란 날개를 펄럭이며 빈 보울을 땅바닥에 던졌다.

 

머리 위에서 깔깔거리는 소리가 났다.

 

토마스는 울 것 같았다.

 

아냐, 그거 아니란 말이야.

 



[데샹바레] 안녕

2015. 10. 26. 02:55 | Posted by 호랑이!!!

히카르도는 좁고 지저분한 골목을 지나 거처로 향하다가 익숙한 사람과 마주쳤다.

 

새하얀 가운에 하얀 양 같은 곱슬머리.

 

, 혀를 차고 지나치는데 그 쪽에서 히카르도의 손목을 잡아챘다.

 

리키.”

 

이제는 차라리 천국처럼 느껴지는 어릴적부터 귓가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목소리가 달콤하게 울렸다.

 

나 봤잖아, 그런데 그렇게 지나가기야?”

 

“...여기엔 웬일이지?”

 

남들 눈이 미치지 않는 곳인데도 잘도 믿음직한 의사같은 미소를 짓는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인사는 했어야지.”

 

좁은 골목.

 

힘 없는 의사라지만 마음먹고 한 번 밀자 히카르도의 등이 벽에 부딪혔다.

 

너랑 내가 이제 인사나 주고받을 사이는 아닐텐데.”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래도 했어야 했어.”

 

왜냐하면 너는 내 리키고, 나는 네 데샹이니까.

 

빙그레 웃는 입매가 선량해 보였다.

 

히카르도는 손목을 탁 털어 까미유의 손아귀에서 빼내었다.

 

하지만 그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까미유는 그 좁은 골목에서 다시 또 한 걸음 다가와 고개를 바싹 들이민다.

 

안녕, 리키.”

 

갈색 눈동자 위로 녹색빛이 일렁여서 일견 초록색 눈동자를 마주하는 착각이 들었다.

 

이 눈에 홀리면 안 돼.

 

히카르도는 입술을 꽉 물었다.

 

일렁일렁 물들어가는 눈동자를 노려보다가, 그를 밀쳐내는 대신 옆으로 몸을 빼었다.

 

으르릉 목 울리는 소리를 내며.

 

까미유는 순순히 비켜주었고 이내 발걸음은 탁탁탁 빠른 소리를 내며 사라졌다.

 

“...잘 가, 리키.”

 

내 손에 잡힌, 네 목에 감긴 이 빨간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아.

 

제아무리 네가 몸부림친다 하더라도, 이렇게 내가 다가와서 줄을 당기면 끊어질 듯 하다가도 다시 이어지지.

 

-, 이런 더러운 골목에 있으려니 하얀 옷이 더러워지겠어.

 

빨리 나가야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까미유는 히카르도가 뛰어간 방향과는 반대로 걸어갔다.

 

느긋하게.

 

 

[토마스X이글X토마스] 거짓말쟁이

2015. 10. 25. 04:33 | Posted by 호랑이!!!

※얀데레 요소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거부감이 있으신 분은 보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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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 형!”

 

흠칫, 하고 팔이 떨렸다.

 

연합 성인들 중에서는 명실공히 막내, 주제에 성실하고 겸손하고 제법 능력까지 뛰어나 두루두루 인망 좋은.... 토마스 스티븐슨이 자신의 어깨를 잡고 있었다.

 

“..., 놀래라.”

 

하하, 별 건 아니고. 저기 물건 좀 내려달라고 하려구요.”

 

한창 재미있었는데-”

 

이글은 재미나게 얘기하던 중인 레베카 쪽을 보았고, 레베카는 괜찮다는 듯 손을 들어보였다.

 

나중에 다시 얘기하자.”

 

그래도 간만에 얘기하는건데-”

 

됐어 됐어, 다음에 맥주나 마시러 가자.”

 

레베카는 다른 사람과 얘기할 생각인지 자리를 떴다.

 

레베카랑은 정말로 오래간만에 얘기하는건데 말이야.

 

아니지, 요즘 들어서는 다같이 모이는 저녁 시간이라던가 임무때 외에는 얘기를 거의 안 했다.

 

게다가 묘-하게, 일이 있으면 꼭 간접적으로, 간접의 간접적으로 토마스가 연관되어 있었다.

 

마치, 도미노 놀이처럼 자신이라는 마지막 패가 쓰러지는 반대쪽에는 토마스가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과한 생각일 수도 있겠지만.

 

이글은 묘한 기분이 들어 토마스를 흘끗 보았다.

 

사람 좋게 웃어보이는 녀석.

 

스물 한 살짜리 애송이.

 

그래 뭘 내려달라고~?”

 

토마스가 피터를 맡아 돌본다.

 

트리비아와 나이오비는 현재 연합에 필요한 물품을 사러 갔고 루이스가 거기 따라갔다.

 

원래라면 트리비아가 아닌 이글의 차례였으나 저번에 이글이 트리비아 대신 다녀온 일이 있어 바꿔 주었다.

 

그 때 트리비아와 같이 가야 했던 당번은 토마스였는데 하필 피터와 놀아주다가 한쪽 팔을 삐었었고.

 

덕분에 대신 하겠다고 자원했었지.

 

지금 이 시각 엘리는 피터와 함께 놀이터에 있을테고.

 

덕분에 이 연합에 있는 사람이라고는 도일이나 휴톤이나 레이튼... 그래, 레베카도 있지.

 

하지만 그들은 저만치 부엌에서 목청 좋게도 떠들고 있다.

 

토마스가 내려 달라고 하는 물품은 꽤 높은 곳에 있어서 의자를 가지고 와야 했다.

 

이런거면 차라리 휴톤 형님한테 해달라고 하지 그랬어? 나보다 키가 한 뼘은 더 큰데.”

 

아무리 그래도 내 키가 거진 180인데 그러고도 의자가 필요하다니 너무 높은 곳에 물건을 둔 건 아닌지.

 

이글이 속으로 꿍얼거리며 등받이 없는 나무의자를 가져왔다.

 

거기 올라가서 상자를 잡아당겼더니 꽤 묵직했다.

 

그런데 토마스, 이건 어디에...”

 

어디에 쓰려는 거야?하고 물으려고 고개를 돌린 순간 보았다.

 

토마스의 발이 의자를 툭 걷어차는 것을.

 

이래봬도 운동신경이 제법 좋으니까 잽싸게 자세를 잡으려고 했는데 얼음 결정이 그것을 방해해서 요란하게도 머리부터 떨어졌다.

 

그러게, 이성이 아니라 내 감을 믿어야 했는데

 

우습게도, 이글은 그러게 나는 토마스가 무서웠어라는 생각을 하며 느리게 눈을 깜박였다.

 

머리를 너무 세게 박은 것인지 눈 앞이 어질거려서 마치 토마스가 웃는 것 같았다.

 

==

 

이글이 다시 눈 뜬 곳은 하얀색 천장이 있는 병원이었다.

 

방싯방싯 웃는 상냥하고 친절한 미소를 띈 토마스가 있는.

 

“...까미유는?”

 

유감스럽게도, 친구분의 몸에 이상이 있다고 해서 불려갔다고 들었어요.”

 

사나흘은 잡혀있을 거라고 하던데요.

 

이글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들고 일어나 앉았다.

 

토마스는 애써 도와주려 하지 않았다.

 

전부 계산한거지?”

 

글쎄요, 뭘 말인가요?”

 

토마스가 생긋 웃었다.

 

새삼 이글은 안경으로 일견 동글동글해 보이는 토마스의 눈매가 날카롭다는 것을 깨달았다.

 

토마스는 보호자용 의자에서 일어나 이글 쪽으로 다가와서는 이글이 부담감에 조금씩 몸을 뒤로 물리다가 결국 누울 때까지 몸을 가까이 했다.

 

저는, 그러고 싶지 않았어요.”

 

처음에는 이글 형이랑 같이 임무에 나간다던가, 잔심부름을 한다던가.

 

우연을 가장해서 만나 같이 연합으로 돌아온다던가.

 

정말로 그 정도로 충분했었는데.

 

전부 형 탓이예요.”

 

다른 사람하고 말했잖아요.

 

다른 사람하고도 연합으로 돌아왔잖아요.

 

형은 삼남이죠?”

 

첫째도 둘째도 아닌 셋째, 막내.

 

첫째는 가문을 잇는다 정략 결혼한다 쓰임이 많고.

 

둘째는 첫째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때를 대비한 예비품.

 

하지만 셋째까지 쓰일 일은 거의 없지요.

 

심지어 형은 회사가 아닌 연합 소속이니까.

 

형의 가족들은 형이 전장에 나오지 못하면 오히려 안심할거예요.”

 

사흘이면 충분해요, 그렇게 토마스가 웃었다.

 

잘도 주변 사람들을 속여 왔군, 이 거짓말쟁이.

 

이글은 코앞까지 다가온 토마스의 눈을 노려보았다.

 

 

[티엔하랑] 마틴은 티엔이 정말 싫습니다

2015. 10. 21. 17:43 | Posted by 호랑이!!!

좋은 일이 있나 보네요.”

 

마틴은 팔랑팔랑 책 한 권을 끼고 복도를 지나가는 하랑이에게 말을 건넸다.

 

오늘 생일이야!”

 

, 그랬었죠.”

 

그러고보니 제가 누구 생일이라 선물을 준비했는데~

 

라던 마틴은 하랑이의 기대감이 높게 치솟자 냉큼 한 마디 찬물을 끼얹었다.

 

저녁에 가져다 줄게요.”

 

그게 뭐야! 사실 아무 준비 안 했지!?”

 

진짜거든요!”

 

, 아침부터 하랑군이랑 웃고 떠드니까 좋네.

 

좋아, 이 좋은 기분으로 티엔에게도 한 마디 말을 건네 줄까.

 

마틴은 웃느라 가빠진 숨을 골랐다.

 

잠시 브루스가 하랑을 부르는 것이 보여서, 후우 숨을 마저 고르고는 티엔을 툭툭 건드리며 말했다.

 

티엔 정, 그래도 선생님인데 하랑군한테 생일 축하한다는 말은 해 줬어요?”

 

그러자 이 티엔이라는 작자는 더없이 무뚝뚝한 표정으로 한 마디 한다.

 

생일이 뭐가 대수라고.”

 

뭐라고요!!!

 

마틴은 그 말에 입을 쫙 벌려서는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봐요 티엔 정!”

 

오늘은 1021일이다. 365일 중 단 하나. 그리고 그 때 이하랑이 태어난 것 뿐이다.”

 

마틴은 냉큼 이하랑을 돌아보았다.

 

다행히 아직도 브루스씨와 얘기하느라 이쪽은 보지 않고 있다.

 

티엔이 뭐라고 하는지도 아직 못 들었겠지, 아마!

 

마틴은 한껏 목소리를 죽여 소근거렸다.

 

당신 제정신이예요? 아니, 인간은 맞아요?”

 

자네가 사람에게 이렇게 막 말하는 것은 또 희귀한 일이군.”

 

남의 태도보고 오오 희귀하다~’하면서 감상할 때가 아니거든요! 이 목석!”

 

불쑥, 하랑이 고개를 내밀었다.

 

뭐야, 둘이 또 싸워?”

 

싸우는 게 아니다. 마틴이 일방적으로 시비를 거는 거지.”

 

... 이 거만하기 짝이 없는...

 

마틴은 으득, 이를 갈았다.

 

지금 당장 하랑군한테 일러바치고 싶지만 그랬다간 상처받을지도 모르니까 참아주는 거예요!

 

아 정말, 티엔 정은 평생 나한테 감사한다고 외쳐야 해.

 

, 우리 마틴 형씨는 그런 짓 안 하거든!”

 

하랑이 마틴에게 냅다 어깨동무를 하면서 편을 들자, 마틴은 자연스럽게 하랑이를 끌어안으면서 티엔에게만 보이도록 혀를 내밀었다.

 

“...이하랑, 내 말은 안 믿나.”

 

평소에 착하게, 바르고 고운 옳은 말만 하면서 사셨어야죠.”

 

마틴이 우쭐해진 표정으로 쳐다보자 티엔은 어딘지 심통이 나 보이더니, 손목시계를 툭툭 건드렸다.

 

이하랑, 지금 뛰어가도 시간에 늦을 텐데. 그리고 마틴 챌피, 회의는 30분부터 일 텐데 지금은 20분이다.”

 

헉 늦었다! 싸부, 마틴 형 이따 봐!”

 

아 정말! 이따 봐요 하랑군!”

 

그래도 오늘 저녁시간에는 다같이 식사도 하기로 했고, 하랑군한테는 비밀로 케이크도 샀고!

 

선물도 나름대로 고심해서 샀으니 내가 제일 나으렷다.

 

마틴은 한껏 기분 좋은 표정으로 회의실에 들어갔다.

 

그 기분은 저녁시간까지 이어졌지만, 깨지는 건 한순간이었다.

 

한 손에는 케이크 상자, 다른 쪽 손에는 커다란 인형을 안고 모이기로 한 하랑의 방문 앞에서 티엔을 마주쳤으니까.

 

심지어, 빈손이다!!!

 

티엔 정! 아까 그런 말을 했어도 이렇게 먼 이국까지 따라온 제자한테 줄 작은 무언가라도 준비했을 줄 알았는데!”

 

마틴, 뭔가 착각한 것 같은데. 하랑은 내기에 졌기 때문에 온 것이다. 여기에는 아무런 기특함도 무엇도 없어.”

 

... 이 피도 눈물도 없는!

 

마음만 읽혔더라면 당장 기억을 뒤져서... 아니면 최면을 걸어서 잊지 못할 흑역사를 헤집어 주고 싶네요!

 

으르렁거리는데 저만치에서 브루스 보이틀러가 이하랑의 눈을 곰 앞발로 가리고 천천히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 이럴때가 아니지! 빨리 선물을 방에다가...!

 

하면서 방 안으로 들어섰더니.

 

상 위에는 이하랑이 말하던 조선 음식이 가득.

 

방 안에는 풍선과 촛불과 장미가 그득한 것이다.

 

이 사기꾼.”

 

이런 것을 만들 줄 아는 사람은 한사람밖에 없으니.

 

마틴이 티엔을 돌아보자, 티엔은 의기양양한 미소를 만면에 띄웠다.

 

아무 준비도 안 했다고는 하지 않았다.”

 

 




11월의 이맘때쯤이면 학생들이 가장 손꼽아 기다리는 행사가 있다.

 

그것은 바로 퀴디치컵!

 

벌써 아침 연습을 마친 기숙사팀은 땀이나 이슬, 진흙에 젖어 연회장으로 오기도 하고, 연회장으로 오지 않은 선수들에게 가져다준다고 휴지에 토스트를 싸가는 학생들도 종종 보인다.

 

작은 수첩에 전략을 적어 웅얼거리며 외우는 학생들도 있고 선수나 전략에 대해 토론하는 학생들도 여기저기에.

 

이번달의 경기는 그리핀도르와 후플푸프인데 학생들의 얘기를 조금 듣자면 이렇다.

 

후플푸프는 추격꾼 층이 탄탄하지.”

 

거긴 여자들이 꽤 많아. 파수꾼인 린도 여자애고.”

 

거기 수색꾼은 작년에 7학년이었잖아? 이번 수색꾼은 2학년 여자애래!”

 

그리핀도르에 대해 얘기하는 학생들을 보자면.

 

뭐니뭐니해도 영웅루이스가 파수꾼이니까.”

 

거긴 응원도 되게 화려하지. 저번에 클레어가 하는 거 봤어? 올해도 하려나-”

 

추격꾼은 그냥 그렇지만 파수꾼이 단단하고, 무엇보다...”

 

몰이꾼. 걔들이 대단해.”

 

아침의 연회장.

 

피터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이글을 찾아내었다.

 

토마스 형은?”

 

연습, 나도 하러 가는 길이고.”

 

이글은 토마스가 없다는 말에 부루퉁해지는 피터의 머리를 헝클어뜨려 놓고는 어깨에 빗자루를 맨 체 휙 돌아섰다.

 

늦지 말고 가라?”

 

“..., 잘난척은.”

 

피터는 그릇에 포리지를 덜다가.

 

티슈를 딱딱하게 뭉쳐 이글의 머리에 대고 던졌다.

 

“...좋아, 이 꼬마야. 지금 당장 미안하다고 하면...”

 

철퍽, 이번에는 끈적끈적한 호박 주스에 적셔 뭉쳐진 휴지가 얼굴에 날아왔다.

 

“...너 죽었어.”

 

 

 

 

 

 

 

 

오늘은 단언컨대, 토마스 스티븐슨 최악의 날이었다.

 

아침의 퀴디치 연습에서는 스니치 대신 던지는 골프공을 두 개나 놓쳤으며 연습하다가 도중에 나와서 연회장에서 피터와 이글이 대판 싸운 통에 엎질러지고 뒤집힌 테이블과 집기류를 원래대로 해 놓아야 했으며, 그로 인해 징계를 받은 피터가 자기는 징계를 받기 싫다고 한바탕 난리를 피우는 것을 달랬다.

 

이제 한 숨 돌리는가 하여 포리지에 설탕을 듬뿍 떠넣었더니 설탕이 아니라 소금이었던 데다, 그 끔찍한 아침의 피날레로 요일을 착각해 교재를 잘못 들고 왔다.

 

래번클로, 3점 감점.”

 

그 말에 토마스가 얼마나 절망했는지.

 

3점은 토마스가 학교에서 지낸 5년 동안 잃은 유일한 점수였다.

 

토마스가 선망하는 루이스나, 존경하는 다이무스가 잇따라 찾아오기는 했으나 루이스의 경우 점수를 잃는 데 있어 별로 거리낌이 없었고, 다이무스는 스스로 이겨내야 한다는 주의라 결국 도움이 되지 않았다.

 

결국 인생은 혼자라는 생각을 새삼 하며, 토마스는 치료사용 약물 교재를 들었다.

 

침착하고 차분하게 만드는 약, 327페이지.

 

달이 없는 밤에 투구꽃과 쥐오줌풀 뿌리를 썰어서 뭉근하게 끓이는데 길면 길수록 좋다나.

 

토마스는 후우 숨을 내쉬고 자신의 냄비를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