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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릭마] To. 메또또님

2015. 11. 23. 01:46 | Posted by 호랑이!!!

마틴이 아직 능력이 발현하기 전, 그는 사랑하는 연인과 밤하늘을 유영하는 상상을 했다.

 

그것은 최고로 로맨틱한 데이트일 거라며.

 

그러나 그의 능력은 그가 가지고 있던 로맨스와는 전혀 다른 방향, 어쩌면 정반대라고 할 만한 방향으로 뻗었다.

 

꼴도 보기 싫어

 

언제쯤 자게 해 줄까

 

이 사람도 저 사람도 더 나를 좋아했으면 좋겠어

 

오늘도 여기저기에서 들린다.

 

심지어, 겉으로 보기에는 더없이 행복해 보이는 연인의 모습으로.

 

사람의 마음속을 이렇게까지 보는 내가 사랑에 빠질 리 없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저런 생각을 하는 것을 보면 식어버리겠지.

 

내가 저런 생각을 해 버리면 어떻게 하지.

 

마틴은 멍하게 그들을 쳐다보다가 문득 옆에서 들리는 부름에 정신을 차렸다.

 

챌피?”

 

아아, 톰슨씨...?”

 

마틴은 멍한 표정을 보였을까 허둥지둥하며 모자를 매만지고 푹 눌러 썼다.

 

날 알고 있소?”

 

물론요. , 저쪽에서 게이트를 열어 주시는...”

 

그리고 마틴은 말을 멈추어야 했다.

 

자신이 안다, 라고 하자마자 바로 곁에서 교회의 커다란 종이 울리는 것 같은 소리가 났기 때문에.

 

아 이 사람, 소녀도 아니고!

 

머릿속에서 종이 울려서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자신이 웃을 때마다 옆에서 종소리가 더욱 크게 울렸다.

 

한참을 웃다가 그는 릭의 식사를 같이하자는 요청을 수락했다.

 

 

 

 

 

 

 

“...그래서 그 때는 왜 그렇게 웃었던 거요?”

 

단순히 그 때지만 마틴은 언제를 말하는 것인지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트와일라잇 근처를 걸으며 그가 말했다.

 

당신 머릿속에서 종이 울렸거든요.”

 

?”

 

그러고 릭의 얼굴이 빨개진다.

 

사람의 마음이 사랑스러울 수 있다는 것을 당신을 처음 만나 알게 되었지만, 이 말은 나중으로 미뤄 둬야지.

 

마틴은 키득키득 웃었고 릭은 물수건으로 손을 닦으며 진정해갔다.

 

“...그래서, 마틴. 오늘 뭔가 하고 싶은 거 없소?”

 

당신은 평소에 나한테 많이 맞춰주는 것 같은데, 연상인 내가 그대에게 맞춰주기도 해야 하잖아.

 

그런 소리가 뒤에 들렸다.

 

마틴은 고민하고 눈을 굴리다가 생각해냈다.

 

“...제가 어릴 때 있잖아요. 저는 사랑하는 사람과 밤하늘을 산책하고 싶었어요.”

 

릭은 턱을 괴어 잠시 생각하더니 마틴을 손짓으로 불러서 풀밭에 누웠다.

 

밤이슬에 옷이 젖을 텐데, 생각하면서도 냉큼 그의 팔을 베고 누웠더니 릭이 손을 앞으로 뻗었다.

 

모든 공간은 연결되어 있지.”

 

릭이 무언가를 치워내듯 손을 옆으로 움직이자 릭이 스친 그 부분에 구멍이 뚫리듯 어두운 부분이 하늘에 생겨났다.

 

뉘엿뉘엿 넘어가는 해는 어두워지는 하늘을 붉은 색으로 물들여놓았고 릭이 걷어낸 그 부분만이 어둡고 검은 하늘을 향한 창문을 열었다.

 

빛을 받아 밝은 여러 가지 색과 모양의 별들, 허공을 떠다니는 돌가루들, 빛과 얼음 알갱이들.

 

구름이 보이고 바위가 보이고 하얗거나 붉게 타오르는 태양.

 

릭은 무심코 손을 뻗는 마틴을 저지했다.

 

그러면 손이 날아갈거요.”

 

릭은 손을 저어 그 우주로 뚫린 창문을 조금씩 조금씩 넓히고는 마틴의 손을 꼭 잡았다.

 

“...어때, 밤하늘이라는 기분은 들지 않겠지만. 이것도 꽤 괜찮지 않소? 블론디.”

 

마틴은 자신의 손을 잡은 그의 손을 힘주어 잡았다.

 

릭을 만나 저는 사람이 사랑스러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어릴 적 자신이 상상했던 밤하늘을, 오랜만에 다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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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월야밀회 (신윤복의 그림을 보고)

2015. 11. 19. 23:46 | Posted by 호랑이!!!

이것 참 난감하게도 되었구나.

 

명월이 그리 생각하였다.

 

그녀의 기명은 밝은 달이라는 명월인데, 오늘 밤은 그녀 이름처럼 달이 밝아 있었다.

 

지나치게, 밝아 있었다.

 

그녀 있는 기생관은 뒷문으로 찾아오는 손님이 뉘인지 모르도록 담 사이를 좁게 한 뒷길이 있었는데, 평소라면 이 길로 다녀도 별다른 일이 없었다. 누굴 마주치지도 않았고.

 

그래서 달 밝은 오늘밤도 색 진한 녹색 장옷을 뒤집어쓰고 나가려고 했는데 글쎄, 그녀 동기 기생인 애화가 웬 남정네 하나와 서 있는 것이었다.

 

꼴을 보아하니 연회 열리는 곳에서 함께 빠져나온 모양.

 

두 연놈이 정분이라도 났나 그 좁은 길을 틀어막고 속살대는 꼴이 눈꼴시립다.

 

모자에 매달린 붉은 끈이 어떻다, 구슬 장식이 어떻다, 다음에 하나 사다 주마, 네 웃는 얼굴이 보기 좋기도 좋니.

 

네 웃는 상판이야 아무렴 어떻고 저 치의 장식이 좋으면 떼어가구, 그리도 좋으면 사람 다니는 길 말고 네 방에서나 그러란 말이다.

 

얼마인가 기다리니 다리가 아파와서 아무래도 안 되겠다, 야단하여 쫓아내려는데 둘이가 멀어지는 소리가 났다.

 

안도의 한숨을 쉬고, 다리를 통통 두드리는데 또 이 길에서 발소리가 난다.

 

오늘은 왜 이렇게 길에 손이 많은고, 손에 내가 쥐인 것 같구나.

 

명월은 더는 아니되겠다 싶어 그냥 지나치리라 했다.

 

어디 자제나 다른 기생들인가 했더니 뜻밖에도 화통을 어깨에 맨 서생같은 이, 손에는 그림이 있다.

 

누구요?”

 

화공이요.”

 

이 명월관에서 화공을 부른 적은 없었을 텐데.”

 

지나가다가 소재를 발견해서, 그렸을 뿐이오.”

 

그림에는 애화와 남자와 자신이 그려져 있었다.

 

월야의 밀회라.”

 

당신도 밀회하러 가는 길이요?”

 

명월이는 장옷을 쓰고 매무새를 다듬었다.

 

무어라 제게 말 붙이려는 화공을 홱 노려보고 매몰차게 한 마디 남기고 쌩하니 지나쳐갔다.

 

왜 이리 귀치않게 굴어!”

 

길을 지나고 문을 지나고 다시 한참이나 사람 없는 길로 가니 이젠 아무도 근처에 없겠거니 하여 다시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어디 보자, 오늘은 새 시체가 있겠거니.

 

명월의 섬섬옥수가 치맛자락을 들었다.

 

아래 털 풍성한 꼬리가 여럿이나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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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총] 차 상자가 비었다

2015. 11. 19. 01:51 | Posted by 호랑이!!!

웨슬리는 장을 봐 온 갈색 봉투를 식탁 위에 올렸다.

 

당근, 감자, 빵과 우유와 그 외 여러 가지 물건들.

 

그것을 하나하나 정리하던 웨슬리는 쓰게 웃었다.

 

너무 많이 사 버렸군.”

 

불과 사흘 전, 카인은 레나를 회사 쪽에서 회수했다는 말에 회사로 가 버렸다.

 

돌아올 리 없겠지, 그렇게 바라던 일인데.

 

듣자하니 치료를 시작하는 것 같다고 한다.

 

웨슬리는 물건을 정리하고 집안을 청소하고 가진 총기를 손질했다.

 

불그스름하던 하늘은 서서히 어둑하게 변했고, 웨슬리는 주전자에 물을 담아 끓였다.

 

차 상자에서 티백을 꺼내 찻잔 하나에 담고 빈 차 상자를 바라보았더니 지끈, 하고 두통이 났다.

 

그리고 그는 제 몫으로 커피를 찾아 다른 잔에 담았다.

 

끓인 물을 붓고 설탕을 하나 떨어뜨려서 젓다보니 커피향과 옆에 둔 차 향이 진하게 흘렀다.

 

시계 한 번, 그리고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면 익숙하기도 익숙한 새벽 3.

 

앞에 앉아 있어야 할 사람이 없으니, 앞으로 시선을 돌리지만 않으면 말이지만.

 

후우- 입김을 부니 차가워진 바깥의 기온 탓인지 창문이 하얗게 변한다.

 

손가락으로, 사선으로 줄을 그었다.

 

그러다 문득, 어둑한 창에 비쳐 보이던 무뚝뚝한 얼굴이 생각났다.

 

마치 그 얼굴을 지워버리듯, 웨슬리는 손바닥으로 창문을 문질러 닦았다.

 

“...하아...”

 

다시 입김을 불지만 방금 닦았던 곳이라, 그리 하얗게는 되지 않았다.

 

고개를 돌리고 시선을 내려 빈 자리를 보지 않으려 애썼다.

 

그는 커피잔을 들어 김이 피어오르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려고 했다.

 

새벽 세 시.

 

모두가 잠들 그 시간에 누군가 열쇠로 문을 여는 소리만 나지 않았더라면.

 

현관으로 달려갔더니 익숙한 사람이, 한 손에는 작은 차 상자를 들고 있었다.

 

“...스타이거...?”

 

“...생각해보니... 차가, 떨어졌을 것 같더군.”

 

카인은 놀라서인지 가만히 서 있는 웨슬리, 그를 품으로 당겨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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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키벨져] 립스틱

2015. 11. 11. 23:09 | Posted by 호랑이!!!

귀찮은 놈.”

 

벨져는 드물게 입술을 말아 이를 드러냈다.

 

사려문 이가 창백하고 어둑한 달 아래에서 번뜩 빛을 반사했다.

 

그의 몸 여기저기에는 핏자국도 상처도 보였고 옷도 찢어져 있었는데, 그가 벽에 기댄 앞에는 비교적 최근에 참전하기 시작한 안타리우스의 젊은 교주가 있었다.

 

손이 많이 가기도 하지!”

 

경박한 목소리, 벨져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가뜩이나 들어올린 고개건만 턱이 잡혀 젖혀졌다.

 

제키엘은 씩 웃으며 입을 벌렸다가 손에 힘을 주어 억지로 벨져를 일으키다시피 해서 입을 맞췄다.

 

, -

 

억눌린 소리와 밀어내는 손의 움직임이 보였고 마침내는 무언가에 놀란 듯 제키엘이 입을 떼었다.

 

꽤나 앙칼지게 물린 듯 피가 배어나오는 입가를 손등으로 밀어 닦는 중 벨져가 몸을 일으키려는 듯한 움직임을 보이자, 그는 팔을 벌렸고 동시에 등에서 금속 가시가 뻗어나왔다.

 

그 가시에 몸이 걸린 벨져를 잡아 땅으로 누르며 제키엘은 이쪽을 죽일 듯 노려보는 그를 내려다보았다.

 

크크크큭, 그렇게 움직여대니 삐뚤게 묻지 않았나.”

 

미친놈.”

 

입가에 묻은 연한 청록색 도료를 손가락으로 문질러 모양을 내다가 제키엘은 벨져의 목에 매달린 크라바트를 뜯어냈다.

 

평소에까지 입던 재킷 모양 경갑은 어디 가고, 흰 셔츠 차림인 것을 자락을 들자 못잖게 하얀 피부가 드러났다.

 

수치심에 몸이 작게 경련하고 움츠러드는 것을 제키엘은 그의 양 팔을 잡고 눌러 막았다.

 

겉모양은 유약해도 속은 그 눈빛만큼이나 강하지, 마음에 드는구나.”

 

어디, 처녀애처럼 구는 이 몸뚱아리를 물어뜯어도 똑같이 구는가 보자꾸나.

 

소름끼치는 소리를 내며 가시가 뻗어 벨져의 몸을 억눌렀다.

 

한 번 입술을 대고 느릿하게 색을 입술에 칠하고 다시 입술을 대고.

 

그 일련의 행동은 지나치게 느릿느릿해서 벨져의 정신이 긴장으로 아득해지는 것에 충분했다.

 

달 뜬 밤에 시작했던 것을 희부옇게 안개가 피어오르는 새벽에 끝내고 제키엘이 떠나도 벨져가 일어나지 못하도록.

 

그가 정신을 차리고 향한 곳은 기사단 거처가 아닌 다이무스가 쓰는 집이었다.

 

이 시간이면 없겠거니 하고 갔건만 예상 외로 다이무스는 신문을 읽을 때 사용하는 안경을 쓰고 집에서 서류를 처리하는 중이었고.

 

벨져는 이렇다 저렇다 인사를 건넬 생각도 않고 욕실로 걸어 들어갔다.

 

다이무스는 서류를 테이블에 내려놓고 안경을 벗으며 욕실 앞으로 갔다.

 

따듯한 물이 나오려면 좀 기다려야 할 거다.”

 

, 형아.”

 

저것도 부탁이라고.

 

다이무스는 제가 입는 옷 중에서 하얀 와이셔츠와 바지 하나를 꺼내들었다.

 

이것도 꽤나 클 텐데 아예 새로 사는 편이 낫지 않으려나.

 

그런 생각을 하는데 욕실 문이 열리는가 싶더니 펄럭 펄럭 옷이 떨어졌다.

 

쯔쯔, 아주 구르고 뛰고... 기사단이 벨져를 험하게 굴리는군.

 

안에서는 샤워기에서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다이무스는 페인트에라도 담갔던 건지 초록색과 파란색 사이의 서늘한 색으로 물든 와이셔츠를 들었다가 고개를 저으며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티엔하랑] 사부

2015. 11. 11. 03:16 | Posted by 호랑이!!!

티엔은 양 팔 가득 과자를 안고 그랑플람의 복도를 걷고 있었다.

 

봉투나 바구니를 이용하면 그만일 것을 굳이 들어 팔에 안고 걷는 그는 그 복도에서도 가장 끄트머리에 있는 자신의 방에 들어섰다.

 

언젠가는 사무실과 가까운 쪽에 있는 방을 썼지만 지금은 다소 사정이 생긴 터라 부득불 방을 옮기게 되었다.

 

주머니에 있는 열쇠를 찾아서 잠금쇠에 꽂아 돌리니 안에서 부스럭부스럭 소리가 들렸다.

 

몸을 방 안으로 들여놓으니 아직 해도 지지 않았건만 커튼을 친 방이 어둡기만 했다.

 

나다, 하랑아.”

 

찰칵 스위치 켜지는 소리가 나고 갑자기 밝아진 방 때문에 눈을 깜박이는 사이 긴 머리를 내린 소년 하나가 덤벼들 듯이 품에 안겨온다.

 

과자나 좀 받아다오.”

 

이건 다 뭐야? 무슨 날이야?”

 

그냥, 네가 종종 과자를 한아름이나 사들고 와 먹이던 것이 생각나서 그랬다.”

 

하랑은 티엔의 팔에서 과자를 앗아들어 커다란 침대 위에 뿌리듯 놓았다.

 

조심성없이 아무렇게나 놓아서 몇 개는 바닥으로 떨어져 구르기도 했고.

 

티엔은 그 모습을 마냥 사랑스럽게 보다가 다가와 침대가에 앉았다.

 

머리를 땋고 있으래도.”

 

, ? 어차피 보는 사람이라고 해 봤자 티엔밖에 없는데.”

 

뭐하러 그런 손 가는 일을 하냐며 히히 웃는 얼굴을 내려다보는 티엔의 표정이 차갑게 굳어가자 하랑의 표정에서도 서서히 웃음이 사라졌다.

 

“...아 알았어. 묶으면 될 거 아냐.”

 

하랑이 순순히 수긍하자 티엔은 한결 풀린 얼굴로 손짓해 불렀다.

 

이리와라, 땋아 주마.”

 

하랑은 티엔 앞에 앉아서 침대에 쌓인 과자 중에 하나를 골라 포장을 벗기고 입에 물었다.

 

티엔이 머리를 빗겨주는 동안 길쭉한 과자를 끝부터 톡톡 부러뜨려 먹다가 하랑은 언젠가 티엔이 주었던 책을 발끝으로 가리켰다.

 

티엔.”

 

뭐냐.”

 

책에서 그랬는데, 티엔처럼 이것저것 가르쳐 주는 사람을 선생님이라고 부른대. 그러면 나, 티엔을 선생님이라고 불러야 하는 거야?”

 

움직이지 말라며 허벅지를 찰싹 때리고는, 티엔은 댕기를 들어 옆에다 놓고 익숙한 손놀림으로 머리를 땋기 시작했다.

 

선생님보다는 사부가 좋겠구나.”

 

사부? 사부님?”

 

사부.”

 

사부, 사부 하며 익숙하지 않은 단어를 연습하는 하랑의 머리를 땋아 댕기까지 드리워 주고는 티엔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부우- 어디 가?”

 

잠시 쉬는 시간이었다. 일하러 다녀오마.”

 

있지, 티엔.”

 

불을 끄면서 하랑은 결국 익숙하지 않은 단어 대신 이름을 불렀고 길게 땋아 내린 머리채 끝을 들어 흔들었다.

 

왜 이 댕기 쓰는거야?”

 

가보마.”

 

누군가가 바느질로 애써 찢어진 것을 잇고 천을 덧대거나 수를 이은 흔적이 있는, 그을리고 탄 자국이 있는 댕기.

 

그 댕기를 손에 든 하랑 앞에서 문이 닫혔다.

 

침대로 돌아가 엎드려서 과자를 깨문다고 벌어진 입 안, 혓바닥에 천칭 모양의 낙인이 언뜻 보였다.

 

 

이하랑.”

 

정티엔의 목소리다.

 

그러나 하랑은 자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잔다는 것을 알았다.

 

왜 불러?”

 

공성전에 참가해야 한다.”

 

알았수!”

 

하랑은 자신이 잔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잠든 상태로 하랑은 보았다.

 

자기 자신이 안락의자에서 일어나 읽던 책을 내려놓고 티엔을 따라가는 것을.

 

어라, 이건 좀 이상한데.

 

그렇게 생각하면서 하랑은 잠들었다.

 

요즘 부쩍 잠이 늘었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잤더니 잠을 얕게 자기 시작한 건지 자신이 무얼 하는지 느껴졌다.

 

일어나서 품의 부적을 꺼내고 붉은 개를 불러다 사람을 물어 해치고.

 

이상도 하지, 나는 분명 자고 있는데.

 

어딘가 우습기도 했다.

 

공성전이 끝나고, 본디는 따뜻한 물로 몸을 씻는데 오늘 몸에 끼얹어지는 물은 차가운 물이었으나 아무런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상쾌하구나.

 

그리고 이 안은 아늑해서 잠들고 또 잠들어도 이상하지 않구나.

 

티엔도 내게 아무 말 않고, 양인들이 떠드는 것도 내게 닿지 않고, 다른 이의 공격조차 내게 닿지 않으니 이 어찌 안락하지 않은 장소란 말인가.

 

비록 하랑 자신은 책을 읽지 않았지만 몸이 책을 들면 잠든 머릿속으로 이야기가 들어왔다.

 

기사가 용을 무찌르고 범을 잡고 아리따운 아가씨에게 구혼하는 이야기들.

 

요정이 나오고 사슴이 나오고 맑은 샘물과 풀들.

 

그러다 까무룩 잠들었는데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하랑! 이하랑? 정신 차려요, 일어나!”

 

무슨 소리야? 나는 일어나 있는데.”

 

..., 마틴 형씨인가? 미안한데... 나 조금만 더 자고...

 

더 자면 안돼요! 어서 눈을 떠!”

 

졸려, 여기는 따뜻하다고.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둥실둥실 떠다니는 것 같단 말이야.

 

하랑! 그런 소리 말고 냉큼 일어나요!”

 

나는 이미 일어났다니까. 챌피.”

 

당신 누구야? 내 앞에서 숨길 수 있다고 생각해? 당장 하랑군을 깨우라고!”

 

이 몸에 국한된 것은 슬프지만, 이미 늦었어.”

 

제게 말을 거는 것 때문에 눈을 반쯤 떴지만, 그 자리를 떠나는 것인지 말소리가 멀어지고 다시 잠이 왔다.

 

그리고 이하랑 자신은 입술 새로 연신 귀에 익은 노래를 흥얼거렸다.

 

자장자장 우리 아가, 잘도 자는구나 우리 아가. 잠들고 우리 신명나게 놀아 보자꾸나.”

 

내가 네가 되고, 네가 내가 되는.

 

너는 남이 되고 남이 네가 되는 그런 즐거운 꿈 속에서 우리 함께 신명나게 놀자꾸나.

 


[호그와트AU] 오늘도 학교는 평화롭습니다 -07

2015. 10. 28. 02:25 | Posted by 호랑이!!!

 

할로윈 하면 내가 빠질 수 없지!”

 

긴 까만 머리에 당찬 성격, 그리고 빨갛게 빛나는 한쪽 눈.

 

호그와트에 딱 두 명 있는 동양인 능력자 중에 한 사람.

 

그 이름도 당당한 이하랑이시다!

 

“...이미 학교에 귀신은 차고 넘친다만.”

 

본래 호그와트는 영국인의, 영국인에 의한, 영국인을 위한 학교였으나 요즘은 세계화 시대다.

 

그로 인한 첫 번째 동양 학생이 티엔이었는데 아주 모범적이고 그럭저럭 좋은 결과를 이끌어냈다나.

 

그래서 다음 학생을 물색했더니 티엔이 아는 동생이라며 하랑을 추천해왔다.

 

머리도 짧게 깎고 반듯하며 타의 모범이 되는 티엔을 믿고 하랑에게 입학 원서를 보냈으나.

 

이 이하랑이라는 녀석은 굳이 서양식으로 스스로를 맞추려고 하지 않았으며...

 

아니, 그건 둘째 치고, 아예 싸움닭이다!!!

 

요즘에는 좀 누그러졌다지만 1학년, 2학년, 3학년까지만 해도 동양인을 처음 본다는 마법사 아이들이나 스스로에게 자부심 높은 슬리데린 학생들이 찾아왔다가 나란히 병동으로 가는 일도 부지기수.

 

게다가 더 심각한 것은.

 

하랑의 기숙사가, 후플푸프다.

 

마법의 분류모자도 이제 수명이 다 되었다니까. 어떻게 너를 후플푸프에 넣는 건지.”

 

하랑을 추천한 장본인, 정 티엔은 혀를 찼다.

 

하랑은 그 말을 못 들은체 하며 지팡이를 휘둘렀다.

 

나와라!”

 

빨간 개, , 원숭이, 등등.

 

동물 령들이 우루루 나오는 것을 보며 티엔은 고개를 저었다.

 

그러게 우리 학교에는 이미 귀신이 많다니까

 

[호그와트AU] 오늘도 학교는 평화롭습니다 -06

2015. 10. 27. 20:02 | Posted by 호랑이!!!

 

약이 완성된 것은 할로윈, 호그와트의 모든 학생들이 과식을 하는 날이다.

 

토마스 스티븐슨, 래번클로의 반장은 자그마한 약병 하나를 손에 감추고 길게 심호흡을 한 뒤 연회장으로 들어섰다.

 

좋아, 아직 이글 형 안 왔지?

 

피터도 이글 형도 토마스의 좌우로 와 앉곤 했으니까, 토마스는 연회장 문을 쳐다보며 조심스럽게 손 안의 병을 열었다.

 

다행히, 맨 가장자리의 테이블에는 이글에 피터까지 가세하게 되면서 아무도 앉지 않았으니까, 호박 주스가 든 보울에 똑 똑 약물을 붓고는 포리지용 설탕을 슬쩍 떠 넣었다.

 

좋아, 맛은 문제 없겠지.

 

휴우 한숨을 쉬고 이글이 언제 들어오려나 하고 있는데 어김없이, 요란한 소리가 나면서 허공에서 히아신스 향이 나는 비누방울이 가득해졌다.

 

분명 저번 호그스미드 외출은 금지였던걸로 기억하는데 언제 또 갔다온거야.

 

그래도 뭐, 이 정도면 무난하고 무해한 편인가- 하는데 갑자기 비누방울들이 부풀어오르더니 요란한 폭죽이 그 안에서 터져나왔다.

 

필리버스터 박사의 불꽃놀이 세트인가.

 

요란하게 불꽃이 퍼지고 폭음과 파지직거리는 소리가 울리고, 토마스는 주위를 둘러보며 이글을 찾았다.

 

이글 형!”

 

으하하, 토마스 안녕!”

 

좋아, 그래도 오늘이 지나면 당분간 장난질은 꿈에도 없을 줄 알아!

 

이글은 깔깔거리더니 교수님이 오시기 전에 도망칠거라며 컵에다 호박 주스를 가득 따랐다.

 

토마스는 컵을 빤-히 쳐다보았다.

 

좋아, 저기서 한 모금이면. 딱 한 모금이면.

 

이글의 입이 벌어지더니, 호박색 주스가 흘러들어갔다.

 

좋아!

 

토마스의 눈이 반짝 빛났다.

 

이제 이글은 적어도 한달간은 차분해지겠지!

 

아직도 연회장 여기저기에서는 펑 펑 폭죽 터지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펑, 이글 쪽에서 무언가 터지는 소리가 났다.

 

...잘못 들었겠지?하면서 토마스가 그 쪽으로 돌아보았으나 거기 이글은 없었다.

 

대신 연회장 안에서 요란스러운 비명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터져나왔다.

 

“...이글?”

 

그리고 돌아보았더니 거기에 호박 주스가 든 커다란 보울은 없었다.

 

대신 연회장 천장에 커다란 새 같은 것이 펄럭거리면서 주스 보울을 가지고 날고 있었는데, 그 아래에서 주스 방울이 몸에 튄 학생들은 팔이나 얼굴에 깃털이나 부리가 돋아나 비명을 질렀다.

 

오 설마.

 

야 이거 굉장한데! 할로윈 음식은 과연 뭐가 달라도 달라!”

 

머리 위에서는 이글이 커다란 날개를 펄럭이며 빈 보울을 땅바닥에 던졌다.

 

머리 위에서 깔깔거리는 소리가 났다.

 

토마스는 울 것 같았다.

 

아냐, 그거 아니란 말이야.

 



[데샹바레] 안녕

2015. 10. 26. 02:55 | Posted by 호랑이!!!

히카르도는 좁고 지저분한 골목을 지나 거처로 향하다가 익숙한 사람과 마주쳤다.

 

새하얀 가운에 하얀 양 같은 곱슬머리.

 

, 혀를 차고 지나치는데 그 쪽에서 히카르도의 손목을 잡아챘다.

 

리키.”

 

이제는 차라리 천국처럼 느껴지는 어릴적부터 귓가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목소리가 달콤하게 울렸다.

 

나 봤잖아, 그런데 그렇게 지나가기야?”

 

“...여기엔 웬일이지?”

 

남들 눈이 미치지 않는 곳인데도 잘도 믿음직한 의사같은 미소를 짓는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인사는 했어야지.”

 

좁은 골목.

 

힘 없는 의사라지만 마음먹고 한 번 밀자 히카르도의 등이 벽에 부딪혔다.

 

너랑 내가 이제 인사나 주고받을 사이는 아닐텐데.”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래도 했어야 했어.”

 

왜냐하면 너는 내 리키고, 나는 네 데샹이니까.

 

빙그레 웃는 입매가 선량해 보였다.

 

히카르도는 손목을 탁 털어 까미유의 손아귀에서 빼내었다.

 

하지만 그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까미유는 그 좁은 골목에서 다시 또 한 걸음 다가와 고개를 바싹 들이민다.

 

안녕, 리키.”

 

갈색 눈동자 위로 녹색빛이 일렁여서 일견 초록색 눈동자를 마주하는 착각이 들었다.

 

이 눈에 홀리면 안 돼.

 

히카르도는 입술을 꽉 물었다.

 

일렁일렁 물들어가는 눈동자를 노려보다가, 그를 밀쳐내는 대신 옆으로 몸을 빼었다.

 

으르릉 목 울리는 소리를 내며.

 

까미유는 순순히 비켜주었고 이내 발걸음은 탁탁탁 빠른 소리를 내며 사라졌다.

 

“...잘 가, 리키.”

 

내 손에 잡힌, 네 목에 감긴 이 빨간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아.

 

제아무리 네가 몸부림친다 하더라도, 이렇게 내가 다가와서 줄을 당기면 끊어질 듯 하다가도 다시 이어지지.

 

-, 이런 더러운 골목에 있으려니 하얀 옷이 더러워지겠어.

 

빨리 나가야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까미유는 히카르도가 뛰어간 방향과는 반대로 걸어갔다.

 

느긋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