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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산] To. 뉸님 : 지감이 어릴 적에

2016. 2. 23. 23:36 | Posted by 호랑이!!!

여우가 있다 하여 여우산.

 

산 속 어느 작은 계곡에.

 

이팔청춘이 조금 못 되는 나이의 지감이 있었다.

 

짙은 자색 저고리에 같은 색 댕기를 빈틈없이 드리우고서.

 

장정도 밤에는 고개를 넘지 못 하고 사람이 열둘이나 되어도 깊은 곳으로는 가지 못한다는 이 산 속은 기껏해야 나무하는 아이들이 사람 다니는 길 근처에나 다니지만 지감은 이 사람 다니지 않는 산을 누볐다.

 

용감하게 다니다가 우연히 알게 된 계곡은 맑은 물도 흐르겠다, 저 놀기 딱이라.

 

오늘도 글공부하다 빠져나와 멱 감고 널찍한 바위에서 몸을 말리는데 인기척이 났다.

 

여우냐?”

 

그렇게 말하는 상대는 사람이었다.

 

나이는 저보다 한두어살 많을 것 같지만 키는 저보다 조금 더 작은.

 

얼마 전 수도에서 요양차 왔다는 그 도령이었다.

 

서울 도령이군요. 안녕하십니까.”

 

어린애가 여길 돌아다니는 줄은 몰랐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저랑 나이 차도 나지 않으면서.

 

그러는 도령도 어린애잖습니까.”

 

그러자 대답 대신 웃어 보인다.

 

사냥꾼들이랑 같이 왔었거든요.”

 

하면서 겉에 입은 옷자락을 들추니 사냥꾼들이 산에 다닐 때 쓰는 단도 한 자루와 던지는 용도로 사용한다는 짧은 칼이 몇 자루 보였다.

 

이것 보시지요.”

 

손목을 까딱, 하자 저만치의 나무에 짧은 칼이 박혀 있었다.

 

해보시겠습니까?”

 

그에 혹하여 받아서 던지다 보니 시간은 훅 갔다.

 

가뜩이나 산 속이라 더 일찍 지는 해가 하늘을 발갛게 물들이고, 둘은 던졌던 칼을 주워 모았다.

 

지감은 바로 집으로, 서울 도령은 사냥꾼들과 같이 간다고 하여서 길의 중간까지만 같이 가기로 했다.

 

아까, 여우냐, 라고 했잖아요? 진짜 여우면 어쩌려고 그랬습니까?”

 

어쩌긴 뭘 어쩝니까. 잡아야죠.”

 

그 말에 지감이 웃었다.

 

이 도령은 생긴 것은 무뚝뚝한 장군감인데 참 다정하신 분입니다.”

 

그러는 서울 도령도 생긴 것과 따로 놀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러자 서울 도령이 웃었다.

 

갈림길에 서서, 서울 도령이 손을 흔들었다.

 

다음에 또 봅시다.”

 

땅거미 내리는 산길에서 도령이 사라지고, 지감은 불 켜지는 마을 쪽으로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