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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릭벨] 11월의 꿈

2015. 11. 27. 01:03 | Posted by 호랑이!!!

오늘로 일주일, 아무런 수확이 없었다.

 

그동안 들었던 정보를 종합하면 이 곳이 맞을 텐데.

 

대뜸 액자가 나오거나 안타리우스의 본거지를 발견하는 일은 기대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최소한 실마리 정도는 나와야 할 것 아닌가!

 

여관으로 돌아와 벨져는 덧입은 겉옷을 벗어 침대에 던지고 의자에 털석 주저앉았다.

 

아무리 그래도 일주일은 길어도 너무 길다.

 

프리츠의 꼬마한테 연락이라도? 아니, 아직은 하지 않을테다.

 

벨져는 테이블에 놓인 것을 팔로 밀어내고 지도를 펼쳤다.

 

테이블에 있었던 쇠그릇과 안에 담긴 사과가 마루 위로 흩어졌다.

 

다녀왔소?”

 

수확은?하고 물어오는 이를 쌀쌀맞게 노려보고 벨져는 수첩을 펼쳤다.

 

분명 놓친 것이 있을 것이다.

 

있어야 한다.

 

수첩에 구멍 뚫리겠소.”

 

방해된다.”

 

릭은 어깨를 으쓱하고 저녁거리를 사오겠다며 겉옷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거리를 돌아다니며 조금 발품을 팔아 저만치 먼 가게에서 제일 맛있는 치킨 샌드위치에 컵에 담아 파는 수프, 그 옆 거리로 돌아들어가면 파는, 디저트로 먹을 애플파이까지 샀더니 저녁시간이 지나 있었다.

 

그래도 이 거리에서 제일 맛있다는 것으로 샀으니 저녁시간을 한 시간 넘긴 것쯤이야 벨져도 눈감아줄 테지.

 

옆구리에 종이봉투를 끼고 우유 한 병을 사 들고 들어갔더니 방이 난장판이었다.

 

테이블은 뒤집어져있고 의자도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의자 중 하나는 다리가 부러져 있었는데 부러진 다리는 바닥에, 나머지 부분은 조각조각나 침대 위에 있었다.

 

이런 중요한 일을 하는 중에 술 때문에 실수라도 할 수 없다며 술을 입에 대지도 않던 벨져는 한 손에 릭이 마시곤 하던 맥주병을 쥐고 침대에 상체를 기대 잠들어 있었다.

 

바닥에도 술병이 있군.

 

하나, , , ...

 

술도 약한 이가 참...”

 

릭은 테이블을 일으키곤 그 위에 저녁거리를 내려놓았다.

 

 

 

 

 

 

 

벨져는 낯선 향기에 눈을 떴다.

 

어두웠고, 일주일이나 머물렀던 여관의 냄새가 아니라 수풀의 향이라는 것을 깨닫고 몸을 일으켰다.

 

이상하기도 하지, 분명 달까지 뜬 밤인데 밝다.

 

가스등 따위의 희무끄레한 빛도 아니고 반딧불이의 색도 아닌, 그런 밝음.

 

독어로 중얼거리는 소리에 릭이 벨져를 돌아보았다.

 

일어났소? 벨져.”

 

여긴 어디지?”

 

릭은 벨져가 일어나도록 손을 내밀어 잡게 했다.

 

이 길을 따라가 보시오.”

 

벨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언덕 같은 곳에 풀과 나무가 가득하게 자라 있고 길은 달 쪽으로 나 있었다.

 

그럴 리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이 길을 따라가면 달로 날아갈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고 벨져는 자조적인 웃음을 지었다.

 

아무래도 자신이 너무 술을 마신 모양이다.

 

그렇지 않으면 큰형의 감상적인 부분이 옮았던가.

 

아직 술이 덜 깨서 몽롱했지만 손은 릭에게 맡기고 달에게 걸어갔다.

 

길 끝으로 가자 따뜻한 빛이 눈부시게 자신에게 쏟아졌고, 달은 팔을 벌려 벨져를 안아주었다.

 

아니.

 

눈앞에 펼쳐진 것은 마을이었다.

 

길마다 구석마다 모든 곳에 촛불, 혹은 기름등잔이 불을 밝히고 있었고 그래서 밤인데도 모든 곳이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촛불 특유의 따스한 빛깔이 땅에서부터 벽을 타고 공기 중에 퍼져나가고 있었고 어떤 사람들은 향을 태워 향긋한 향기가 감돌게 했다.

 

집 안팎으로 전통 무늬가 가득했고 아이들과 사람들은 발에 하얀 가루나 빨간 가루를 묻혀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발자국을 남기며 기뻐하고 있었다.

 

따분하고 느긋하게 살기에 인생은 너무 짧소.”

 

릭은 어느샌가 손에 빨간 가루를 들고 있었다.

 

", 보시오."

 

릭은 신발과 양말을 벗어던지고 발에 빨간 가루를 묻힌 뒤 하얗게 먼지가 이는 흙바닥에 발자국을 찍었다.

 

어떻소, 그대도 같이...?”

 

벨져는 고개를 저었다.

 

릭은 보란 듯 빨갛게 발자국을 남기며 마을을 돌아다녔고 다시 돌아왔을 땐 꽃과 말린 과일을 손에 들고 있었다.

 

나무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벨져는 나무에 기댔다.

 

길은 달로 이어져 있고, 저 아래로 내려가면 평화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촛불을 태우며 기뻐하는 축제가 있다.

 

사람들은 노래를 부르고, 그림을 그리고, 발자국을 남기고, 향을 사른다.

 

공기에 떠도는 향기는 달콤하고, 때때로 짤랑거리며 장신구로 찬 은조각 부딪히는 소리가 난다.

 

따뜻하고, 낯설고, 다정해서.

 

벨져는 눈을 감았다.

 

 

 

 

 

 

다음날 아침, 일어난 것은 하얀색 침대 시트 위였다.

 

어제 엎어놓고 잤던 테이블은 원래대로 세워져서 위에는 샌드위치며 수프가 있었다.

 

방은 말끔했고, 릭은 의자에 앉아 사과를 베어물고 있었다.

 

잘 잤소? 어제 저녁거리를 사 왔는데 그대가 너무 잘 자길래 그냥 내버려뒀더니 다 식었지 뭐야.”

 

릭은 씻으러 간다며 욕실로 들어갔다.

 

차가운 샌드위치를 베어 무는데 문득, 릭이 신었던 슬리퍼가 눈에 들어왔다.

 

하얗고, 얇고, 으레 고급 여관에서 주는 일회용 슬리퍼.

 

그 끝에는 붉은 자국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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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의 꿈은 '짧은 여행'이라는 제목으로 인쇄하였습니다.


온라인 발행은 이쪽을 참고하여 주십시오 : http://posty.pe/ms2q7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