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호랑이!!!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글 보관함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티엔하랑마틴/오메가버스] Mine 5

2018. 6. 30. 03:00 | Posted by 호랑이!!!

 

망할, 더워!”

 

하랑은 머리에 쓴 모자를 벗어 얼굴에 대고 부쳤다.

 

이하랑, 성질 부리지 마라.”

 

어차피 조선어로 떠들었으니 알아들었을 사람도 없지 않아.”

 

버릇없이 굴지 말라며 티엔은 하랑의 손에서 모자를 빼앗아 머리에 씌워 주었다.

 

티엔 정, 가서 방 확인이나 해요.”

 

또 하랑을 오냐오냐 하는군, 챌피.”

 

더운 건 사실이잖아요.”

 

조금만 참아요, 라고 하랑에게 귓속말을 하고 마틴은 티엔 쪽으로 갔다.

 

그러니까 재단의 이름으로 예약을 했다고 말했다만. 침실 두 개가 딸린 방을 말이다.”

 

죄송하지만 이 서류로는 손님이 재단에서 온 것을 확인하기에는 불충분합니다. 적어도 재단에 전화를 해서 확인받지 않으면 저희로서는 방을 드릴 수가 없군요.”

 

전화를 해라.”

 

지금 시간에는 전화를 사용하기 곤란합니다. 전화선에 문제가 있어서 말이지요.”

 

아까부터 억지나 부리고.

 

티엔은 울컥 올라오려는 화를 애써 가라앉혔다.

 

마틴 형, 무슨 일 있대?”

 

제가 보기에는 실수로 방을 준비하지 못한 것 같네요.”

 

그런데 온 일행에 동양인이 둘이나 있으니까 재단 사람인지 아닌지 확인할 수 없다는 핑계로 돌려보내려는 것 같아요...라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아 뭐야, 짜증나!”

 

바깥에 보니까 바다 있던데 바다 가고 싶다.

 

어차피 지금 상황도 이 모양 이 꼴인데 잠깐 놀다 와도 괜찮지 않을까.

 

수리하려면 좀 걸릴 겁니다. 내일 아침에야 사람이 올지도 몰라요. 그러니까 다른 호텔에 객실을 잡으시거나 다른 방이라도 괜찮으시다면 바꾸시겠습니까?”

 

마틴 형, 나 잠깐만 밖에 나갔다 와도 돼?”

 

이제 곧 해결될지도 모르는데 잠시만 기다렸다가 방에 짐 내려놓고 가요.”

 

와중에 마틴에게 도움을 청하지도 않던 티엔은 그래도 마틴이 가까이 오자 옆으로 한 발짝 비켜주었다.

 

아까까지 뻔뻔한 얼굴로 고개를 젓던 사람은 마틴이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몇 마디 건네자 금방 울상이 되어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티엔은 무언가가 느껴지는지 한 발짝, 더욱 멀리 마틴에게서 떨어졌다.

 

이야기를 마친 마틴은 열쇠를 두 개 받아서 돌아왔다.

 

우선 1인용 객실 하나랑 2인용 객실 하나를 받았어요. 침실 두 개가 딸린 커다란 객실은 아니지만 가까운 곳에 있는 방이라고 하니까요. 그리고 몇 가지 서비스에 대한 쿠폰을 받았으니 편한 때 써 주세요.”

 

내 것도 있어?”

 

자요.”

 

마사지권, 룸서비스, 세탁, 구두닦이 등의 쿠폰을 받은 티엔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럼 나 이제 바다로 가도 돼?”

 

바다는 무슨!”

 

또 놀 생각 뿐이구나, 그렇게 해서 언제 강해지려고, 주위에서 사람들은 이렇게 고생하는데 혼자서 그렇게...

 

티엔이 딱딱거리자 하랑은 인상을 찌푸리며 마틴을 따라 엘리베이터에 탔다.

 

지금까지 계속 단어도 외웠고! 어차피 오늘 더 이상 할 것도 없는데 좀 놀면 어때서?”

 

멀리 와서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는데 그렇게 방종하다니. 게다가 지금부터 할 게 없기는 왜 없나, 내일부터 시작해야 하는 일에 대해서 미리 보고서를 읽어보고 해야 할 거 아닌가.”

 

그건 내가 단어 외우는 동안 형이랑 사부가 했잖아. 내일 가는 동안 설명해줄 거 아냐?”

 

그런 건 남의 손에 목숨을 맡기는 행위나 다름없다. 너도 어린 나이가 아니니 책임감을 갖고 행동을 해야 하는 거 아니냐.”

 

자꾸 안된다고만 하고! 게다가 재단의 임무를 맡을 정도라면 혼자 바다에 가는 것 정도는 괜찮잖아!

 

그런 건 할 일을 다 끝낸 다음에 해라.

 

보고서나 조사서를 읽는 건 몇 시간이면 되는 일인데 그것까지 다 하고 나면 밖은 완전히 깜깜해질 거라고, 그게 더 위험하잖아.

 

할 걸 다 한 다음에 이야기하면 내가 같이 가겠다.”

 

엘리베이터가 멈추었다.

 

이 고집불통, 합리적이지도 못하고! 계속 안된다는 소리만 하고!”

 

맨날 공부도 운동도 너무 많이 시키고! 다른 사람하고 말하는 것도 맨날 끼어들고! 옷도 답답하게 입히고! 기차 안에서 바깥 구경도 못 하게 했지!

 

매일 게으름피울 생각이나 하고, 힘이 필요하다고 해서 데려왔더니 힘은 고사하고 여기저기 놀 생각만 하는데다-”

 

데리고 왔다니, 끌고 온 거지! 애당초 그런 거래를-”

 

그만!”

 

마틴은 둘 사이에 끼어들어서 양 쪽으로 밀쳤다.

 

둘 다 지금 너무 흥분했어요.”

 

티엔 정은 그렇다 치고 하랑도, 평소에는 이렇게까지 화내지 않잖아요.

 

지금 피곤해서 그런 걸 거예요. 오늘은 이만 푹 쉬고 내일 아침에 볼까요?”

 

티엔이 길게 한숨을 쉰 다음 문을 열었고 마틴은 하랑을 억지로 방 안으로 밀어 넣었다.

 

이렇게 된다고 해도 바다로 외출해도 좋다는 허락은 하지 않았다. 얌전히 방 안에 있어.”

 

웃기지 마, 누가 허락 같은 거 필요하대? 정티엔 진짜 싫어! 멍청이야!”

 

하랑, 좋은 밤 되세요!”

 

마틴의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하랑은 방 안에 들어갔다.

 

바다가 보이는 넓은 테라스는 바람이 불 때마다 얇은 커튼이 커다랗게 부풀었다가 가라앉았고 나무로 만든 티테이블에는 하얀 테이블보가 덮여 있었다.

 

침대는 네 개의 기둥과 두꺼운 캐노피가 달렸는데 하랑은 가방을 테이블 옆에 던져놓고 침대 위로 뛰어들었다.

 

한 사람용이라는 침대는 커다랗고 푹신푹신한데 베개도 몇 개나 있다.

 

베개를 안아 보자 푹신한데 딱 안기 좋은 크기다.

 

잔뜩 치솟았던 짜증도 조금은 가라앉아서 하랑은 방 안을 살펴본답시고 이리저리 뛰어다녔다가 차가운 물통을 발견하고 한 모금 마셨다.

 

어쩐지 덥네.

 

하랑은 아무렇게나 침대에 거꾸로 엎드렸다.

 

발을 베개에 묻고 물통을 이마에 대자 차가운 물방울이 이마를 따라 흘러내렸다.

 

더워...”

 

조금 뛴 것 치고는 지나치도록.

 

열이 난다.



[루이벨져] 하얀 눈

2018. 6. 27. 05:26 | Posted by 호랑이!!!

루이스는 종이를 내려다보고 있다.

 

그 종이쪽에는 언제나 건성인 사람이 썼을 거라고는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세련된 글씨로 주소가 적혀 있었고 그는 그 주소를 따라왔다.

 

종이의 주소는 한적하다 못해 적막한 촌구석이었다.

 

간판에 녹이 슨 식료품점과 문조차 지저분한 잡화점을 지나 마을 끝에 있는 집으로 가며, 루이스는 추천받은 대로 꽤 괜찮은 포도주 한 병을 샀다.

 

살 일이 드문 포도주 향을 맡아보곤 루이스는 이글이 건네준 잡화 꾸러미를 살짝 흔들어보았지만 깨지지 않게 천과 신문으로 싼 것인지 소리는 나지 않았다.

 

마을 끝의 집.

 

이 주소는 이글이 준 것이었는데, 이글이 잘못된 주소를 주었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그 집을 본 순간 루이스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정원은 황폐하고 경첩은 기름을 치지 않았는지 끼익 하는 불쾌한 소리가 나고.

 

집의 벽에는 덩굴이 올라가고 있고 문의 페인트는 군데군데 벗겨지고 색이 바래서...

 

폐가... 아니, 흉가?

 

라는 생각까지 들게 했다.

 

이질적으로 매끄럽게 다듬어진 돌길을 따라 집으로 가니 문은 잠겨 있었다.

 

정말 제대로 된 주소를 준 것인지 잠시 의심했지만 이글이 맡긴 열쇠로 문을 열었더니 삐그덕 소리가 나며 문이 열렸고, 안쪽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났다.

 

"이글? 늦었다."

 

집은 지나치게 작았다.

 

이 작은 마을에서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상인도 방이 네 개쯤 딸린 이층집에서 사는데.

 

이 집은 단층이다.

 

좁고 작은 부엌에 거실이라고 부를 만한 곳에도 난로와 소파에 다리 길이가 각각 다른 나무 테이블이 전부.

 

가장 안쪽에는 방이 하나 있었지만 열린 문틈으로 보건대 거실이나 부엌보다 나아 보이지 않는다.

 

"늦었다니까, 빨리 이리로 와라."

 

루이스는 그쪽으로 저벅저벅 걸어갔다.

 

그것은 아마도 침실인데, 가장 안쪽 벽에 침대가 붙어 있었고 그 옆으로 작은 탁자와 의자, 투박하고 작은 테이블이 있었다.

 

침대는 철사로 만든 철사 침대에 매트리스를 깔고 그 위에 시트를 깐 저급품이었는데 마치 어느 영화의 비련의 여주인공처럼, 벨져는 그 위에 앉아 있었다.

 

침대 헤드에 등을 기대서, 얇고 하얀 잠옷 하나만 입은 채, 그 긴 머리를 빗어 늘어뜨리고.

 

지나칠 정도로 평소와 같았다.

 

뜬 눈동자가 흐릿하다는 것만 빼면.

 

마법사들 7

2018. 6. 27. 04:22 | Posted by 호랑이!!!

 

나무 볼펜을 들고 다음으로 간 곳은 가장 커다란 온실이었는데 입구에는 겉옷을 넣을 수 있는 로커가 있어서 안은 따뜻하다고 줄리아나가 말하자 초록이와 예란이는 두꺼운 파카와 코트를 벗어 넣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얕은 연못이 있고 꽃과 키 작은 나무들이 보기 좋게 가장자리에서 자랐다.

 

부분부분 벤치가 있고 연못 안은 물과 꽃, 진흙으로 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해서 초록이는 연못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건네주는 팜플렛을 받았다.

 

“...이렇게 어린애들이 많은 건 오랜만에 보네....”

 

여기는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해서어, 가족 단위로 자주 오는 곳이야아.”

 

물고기를 잡았다는 환호성이 들리자 초록이는 연못으로 고개를 홱 틀었다.

 

물고기!?”

 

아아, 물고기이.”

 

때마침 옆을 뛰어 지나간 아이가 공중을 날아다니는 나비를 덥썩 잡았다.

 

나비를 잡았어!?”

 

, 나비-.”

 

어릴 때 물고기나 나비 안 잡았어?”

 

저렇게 거칠게 잡지는 않았어! 물고기랑 사람 체온은 달라! 저거 틀림없이 화상 입었을 거라고! 나비도 저렇게 막 잡으면 어떻게 해!?”

 

괜찮아아, 다 진짜 살아있는 건 아니니까아.”

 

물고기는 얕은 물에서 사는 것 치고는 커다란 크기였는데 잡은 아이의 손 안에서도 얌전했는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물고기를 관찰해 봅시다. 물고기에게는 아가미가 있고 비늘과 지느러미가....]

 

나비를 잡은 아이가 손을 펴 보자 날개가 구겨지기는 했지만 그대로인 모습으로 다시 날아올랐는데 아이가 보기 좋은 높이에 글자가 떠올랐다.

 

모시나비 산이나 근처에서 자주 보이는 나비의 종류. 크기는...

 

“...놀라워.”

 

필요에 따라 음성이나 글자로 변환할 수 있어. 점자는 아직이지마안... 그건 어떻게 제공을 해야 할지 모르겠네에... , 어차피 내 일은 아니지만...”

 

이제 조금 진정하고 초록이는 팜플렛을 들었다.

 

“...‘푸른빛의 홍식물원?”

 

이름 이상한 건 아니까아.”

 

식물원?”

 

식물원.”

 

식물원!? 너 식물원에 살아!? 그럼 적당한 곳에 유리 티 테이블 놓고 티타임 할 수 있어!? 아니면 길쭉한 의자가 있는 그네 같은 것도!?”

 

“...그런 건 장미원에서 제공하고 있어어.”

 

진짜 취향 한결같다니까.”

 

일단은 주위를 빙 둘러볼 수 있었다.

 

고산지대의 식물, 식충식물, 희귀 식물, 열대우림의 식물 등등.

 

가시가 있는 식물이라는 방 앞에는 붉은 색 글씨가 반짝였다.

 

“...뛰거나 장난하지 마세요, 7세 이하 아동은 보호자의 손을 잡고 들어오시오.”

 

그러자 양 쪽에서 손을 내민다.

 

어쩔 수 없지, 잡아줄게.”

 

자아

 

그래, 우리 집 아동들.”

 

초록이는 둘의 손을 잡고 선인장이 가득한 방을 돌고 열대우림으로 넘어갔고 조금은 흥미가 있는 초록이가 이 식물, 저 식물 하고 가리키면 도통 흥미가 없어 보이는 예란이는 날아다니는 나비나 벌에 관심을 가졌고 줄리아나는 때때로 들으라고 잔소리를 하면서 설명을 해 주었다.

 

물론 삼천포로 빠지기도 하고.

 

“...그 때에 여기서 일했던 남자 직원이... 깜박하고 잠그지 않은 통을 두고 일을 했는데에... 뒤에서 소리가 들리더래... 달각, 달그락, 달각, 달각달각달각달각달각. 여기서 먹이는 건 유충인데 그 하얗고 부드러운 녀석들이 바깥으로 나가려고 유리 뚜껑을 밀어서 열렸다가, 닫혔다가, 달각달각달각......”

 

으아아아 그만! 그만!”

 

좀 조용히 하라고 초록이는 줄리아나의 등을 찰싹찰싹 때렸다.

 

식충식물 쪽에서는 먹이를 주는 체험이 있었고 수생식물 쪽은 아쿠아리움처럼 수초와 수조와 물고기가 있었고 고산식물이 있는 방 앞에서는 산소가 희박할 거라며 얼굴을 덮는 형태의 호흡기를 대여해 주었다.

 

데이트하기 좋다는 장미원이나 수생식물원을 빼면 사람들은 대개 입구 부근에 있는 모양이라 다른 곳은 사람이 거의, 혹은 아예 없기도 했다.

 

덕분에 웃고 떠들면서 느긋하게 관람하다가 예란이는 팜플렛을 펼쳤다.

 

“...그만 좀, 너 지금 놀러 온 거 아니야.”

 

아니었나?”

 

질문 1. 기침이 날 때 사용하고 우리 주위의 약초밭에서 흔히 볼 수 있으며-”

 

아 잠깐, 우리 주위의 약초밭이요?”

 

초록이가 손을 들었다.

 

그러게, 요즘 약초 키우는 사람이 얼마나 된다고.”

 

없어어?”

 

우리 집도, 엄마가 화분을 키우기는 하는데 그거 레몬그라스랑 상추거든? 아빠가 키우는 건 난이고.”

 

줄리네 집에는 밭 있어?”

 

줄리아나는 팜플렛의 지도를 가리켰다.

 

이런저런 상처와 굳은살이 있는 손가락은 기념품관과 식물관, 어린이용 영상관, 체험관을 지나 맨 위로 올라갔다.

 

체험관 2?”

 

어떻게 약초가 자라는지 직접 볼 수 있습니다, 라고 적혀 있어.”

 

가끔 유치원이라던가아, 초등부 애들이 약초 체험 같은 거 하러 와아.”

 

단골이지. 나 그거 고등학생 때도 했어.”

 

지긋지긋하다고 예란이가 고개를 흔들자 줄리아나가 웃었다.

 

말 나온 김에 보러 가자.”

 

계단으로 향하는데 옆에서 엘리베이터가 열렸다.

 

홍 줄리아나.”

 

줄리아나의 표정이 변했다.

 

아까까지 느긋하게 설명하고, 웃고, 떠들던 얼굴은 경직해서 천천히 몸을 돌렸다.

 

예란이와 초록이도 덩달아 굳은 표정으로 엘리베이터 쪽을 보았다.

 

'오리지널'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법사들 9  (0) 2018.08.22
마법사들 8  (0) 2018.08.18
마법사들 6  (0) 2018.06.27
푸른 아이들 #9  (0) 2018.06.15
마법사들 (날이 너무 더워서 겨울 소재 미리 끌어옴)  (0) 2018.06.04

마법사들 6

2018. 6. 27. 04:21 | Posted by 호랑이!!!

 

그렇게 시작된 첫째 날.

 

가위바위보에 이긴 줄리아나는 즐거운 표정으로 초록이를 데리고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는 운전수도 없이 가고 있었는데 풍선이 잔뜩 달린 의자에 앉은 사람이 손을 들자 멈추어서 문을 열었다.

 

후다닥 뛰어 그 뒤에 줄을 서자 버스는 그 셋이 다 탈 때까지 기다렸다가 출발했다.

 

내부는 평범한 버스처럼 보였는데 예란이가 따로, 줄리아나와 초록이가 같이 앉았다.

 

지금 어디 가?”

 

우리 집.”

 

우리 집에는 커다란 온실이 있고 정원이 있고 그리고 또, 하고 이야기하던 줄리아나는 초록이가 바깥으로 눈을 힐끔힐끔 돌리자 웃었다.

 

바깥이 재미있어어?”

 

!”

 

바깥에 이것도 있고 저것도 있고 광고도 막-

 

[이번 정류장은 사거리 은행건물 앞, 은행건물 앞, 다음은...]

 

그렇구나, 신기하구나아.”

 

손이 뻗어오는가 싶더니 초록이는 예란이에게 맞은 팔뚝을 문질렀다.

 

, 너 그거 꼭 통과해야 한다고!”

 

못 하면 어떻게 되는데?”

 

줄리아나는 그 말에 여느 때처럼 우아하게 웃었다.

 

별 일은 안 생겨.”

 

정말?”

 

그냥 네 기억을 다시 지우고, 수정하고, 마법사는 못 되고, 예란이는 카드를 잃게 되고오.”

 

그리고 또, 라는 말에 초록이는 뭐가 또 있냐는 표정이 되었다.

 

우리는 헤어지는 거야, 영원히이.”

 

영원히?”

 

기억을 지울 때 우리 기억도 지우는 거지이.”

 

어때, 별 일은 아니지?

 

“...줄리아나네 집에 커다란 온실이 있다고?”

 

초록이는 가방을 뒤졌다.

 

핸드폰과 지갑 외에 있는 것은 충전기와 보조 배터리와 수첩.

 

수첩을 급히 펴들고 펜을 찾아 가방을 뒤지자 한 마디가 날아온다.

 

너는 요즘 같은 시대에 핸드폰 메모장을 안 쓰고 수첩에 펜이냐.”

 

그 쪽이 편하단 말이야.”

 

집에 가면 펜 몇 자루는 있을 테니까아, 하나 줄게.”

 

하나만 빌려주십시오.”

 

[이번 정류장은...]

 

버스는 한참을 달렸다.

 

처음에는 열심히 듣고 적던 초록이도 나중에는 지겨워지고 열심히 이야기하던 예란이도 줄리아나도 대화 주제가 다른 쪽으로 새는 것을 막지 않아서 버스에서 내릴 때는 어느샌가 주제가 최근에 본 영화로 옮겨가 있었다.

 

자아, 이쪽.”

 

줄리아나가 다가가자 철문 옆에 서 있던 경비가 고개를 숙였다.

 

엄마는 계시나요?”

 

아까 본관으로 들어가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집에 가면 펜 몇 자루는 있다, 고 했던 줄리아나를 따라 철문 안으로 들어서자 보이는 것은 거대한 유리 돔들이다.

 

반짝이는 유리 안으로 잎이 넓은 열대의 식물이 가득 자란 것이 보이고 광장이라는 이름이 더 어울릴 것 같은 뜰에는 계절과 어울리지 않는 잔디와 꽃이 그득했다.

 

초록이는 줄리아나를 따라 작은 건물 안으로 들어가며 기념품이라고 적힌 문패를 읽었다.

 

아가씨 오셨어요.”

 

다녀왔습니다아. 이쪽은 예란이랑 초록이라는 친구예요.”

 

아아, 이야기는 들었어요.”

 

볼펜 하나 가져가려고 하니까 적어 두세요.”

 

그러겠습니다.”

 

예란이는 줄리아나와 점원이 뭐라고 이야기하든 초록이를 펜이 놓인 진열대 앞으로 끌고 갔다.

 

나 저기 인형 좀 보면 안 돼?”

 

놀러온 거 아니잖아.”

 

그치만 저거- 엄청 폭신폭신해 보이고, 엄청 진짜 같고, 엄청 호기심이 들어-.”

 

안돼.”

 

초록이의 입술이 삐죽 나왔다.

 

3초도 못 가 펜에 정신이 팔렸지만.

 

나뭇결이 살아 있는 나무 볼펜(아래에는 가시에 찔리지 않는다는 문장이 붙어 있다), 향기가 나는 것, 진짜 나비가 앉아 얇은 날개를 팔락이는 것, 꽃이나 열매가 있는 것, 휘어지기도 하는 덩굴 모양, 이끼와 물이 담긴 유리공이 달린 등등.

 

다양하고 화려한 것들에 초록이는 진열대 앞으로 뛰어왔다.

 

이게 그거야? 이끼랑 물이랑 벌레를 넣어서 순환하는 완전한 생태계를 만든 거?”

 

유가암, 그거 사실 녹화 영상이야. 이끼의 생태를 관찰할 수 있어어.”

 

가끔 벌레 영상도 나오니까, 라고 줄리아나가 덧붙이자 초록이는 볼펜을 내려놓았다.

 

나비는 어때?”

 

“...나 나비도 싫어.”

 

펜을 들여다보다 초록이는 손을 멈췄다.

 

“..., , 그냥 펜이면 되거든. 이거... 굳이, , 그냥... 괜찮으니까? 그냥 펜이 좋으니까.”

 

모처럼이니까 기념품이라고 생각해.”

 

이것 봐, 라며 줄리아나는 꽃이 핀 볼펜을 들었다.

 

주기적으로 물과 햇빛을 주면 계속 잉크가 나오는 펜이야아. 벌레가 꼬이지 않게 처리했어.”

 

그건 엄마가 개발한 거고 그 옆에 통나무 볼펜은 내가 만든 거, 라고 줄리아나는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나무에 물이랑 햇빛을 주면 언젠가는 꽃과 잎이 필거야.”

 

나도 그렇게까지 자란 건 한 번밖에 못 봤지만- 무엇보다 그거 시간이 지나면 자라서 길어지니까 불편하려나아.

 

그걸 들어서 수첩에 긋자 보통 사용하는 볼펜보다는 묽은 듯한 잉크가 나왔다.

 

필기감은 어때?”

 

괜찮은... 것 같아.”

 

그립감도 괜찮고, 무슨 종류인지는 모르겠지만 폭신폭신해서 손목에도 좋은 듯하다.

 

그렇게 감상을 말하자 줄리아나는 활짝 웃었다.

 

 

'오리지널'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법사들 8  (0) 2018.08.18
마법사들 7  (0) 2018.06.27
푸른 아이들 #9  (0) 2018.06.15
마법사들 (날이 너무 더워서 겨울 소재 미리 끌어옴)  (0) 2018.06.04
마법사들 5  (0) 2018.06.01

[청의 엑소시스트/시로메피] 옛날에 썼던거 발견함

2018. 6. 24. 16:47 | Posted by 호랑이!!!

「나의 메피스토-펠레스에게.

(본문 생략)

P.S : 그런데 전화를 당분간 쓰지 못한다니, 버릇 나쁜 고양이라도 만난건가?」


메피스토는 그저 버릇 나쁜 ‘고양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라고 생각하며 깃펜을 들었다.


「친애하는 시로, 잘 지내시는지요. 저는 매우   」


메피스토의 깃펜이 양피지 위에서 딱 멈췄다.


시로를 걱정시키지 않으려면 잘 지낸다고 적어야 하고, 그에게 거짓말하지 않으려면 못 지낸다고 적어야 한다.


악마가 거짓말하는데 양심에 찔리냐고 물으면 정말 할 말 없지만, 그것도 다 상대 보고 하는거다.


(아서라던가 하는)바보들을 속여넘기는건 오히려 즐기는 편이지만, 시로에게, 그러니까, 연인한테만은 하고싶지 않다.


그렇다고 솔직하게 ‘스트레스 받아 죽기 딱 좋다’고 적었다간...


...아마, 앞뒤분간 안하고 여기까지 달려올지도.


꽤나 신빙성 높은 추측을 하고, 메피스토는 좋다와 싫다의 중간쯤 되는 단어를 찾으려 했다.


‘찾았다’가 아니라 ‘찾으려 했다’라고 한 것은, 누군가 메피스토의 목을 뒤에서 안은 까닭이다.


“메피스토~♡”


소리없는 비명을 지르며, 메피스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뭡니까, 아버님!”


“뭐냐니, 아빠가 아들 이름부르면서 안는데도 이유가 있어야 하는거냐.”


“이런걸 인간들은 희롱이라고 하는걸 알아주십시오.”


“네가 인간이 아니란것 정도는 슬슬 깨우칠 때가 되지 않은거냐?”


한마디도 안 진다.


메피스토는 속으로 여러마디의 험한 말을 씹어삼키며 최대한 눌러 참았다.


“도대체가 말입니다, 어째서 게헤나로 가지 않으시는 겁니까.”


“네가 여기 있잖느냐.”


사탄은 메피스토의 목을 다시금 끌어안았다.


“너 말이다, 넌 인간이 아니라고 하지 않느냐. 꼴같잖게 인간흉내를 내면서 이렇게 나이까지 먹고.”


사탄은 메피스토의 뺨을 잡아 늘였다.


“주름봐라 주름, 피부도 꽤 까칠해졌고~♪”


“놓으십시오.”


성격도 딱딱해졌어, 이 녀석아.


사탄은 낄낄거리다 메피스토의 의자에 제멋대로 걸터앉았다.


팔걸이에 몸을 삐딱하게 누이고 다른 팔걸이엔 다리를 꼬아 내려놓았다.


“분명히 말합니다만...”


똑똑.


두어번의 노크 소리가 들리고 의자에 앉아있던 사탄은 그 자세 그대로 확 타올라 모습을 숨겼다.


“펠레스경, 서류 입니다.”


정십자에서 온 서류다.


서류는 ‘시로가 보낸 것’으로 생각하고(진위 여부를 따지면 일하기 싫어진다) 받아들었다.


문이 닫히자, 다시 불꽃이 확 타오르더니 아까의 자세 그대로 사탄이 나타났다.


“...그래, 분명히 말해보지. 인간과 악마의 사랑이라니, 이 얼마나 넌센스냐.”


사탄은 과장되게 팔을 벌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아버님도 인간과 관계를 맺었다고 들었습니다만.”


“...지금 나의 얘기를 하는게 아니란다, 사랑하는 메피스토.”


사탄은 갑자기 얼굴을 확 굳혔다.


“인간, 인간 하니 인간식으로 따져보자꾸나. 내가 관계맺었던 인간이 ‘너의 친애하는 시로’의 딸이었던것도 아느냐?”


“...편지를 훔쳐보다니, 악취미로군요.”

“장인어른을 며느리로 맞게 될 줄이야 꿈에도 몰랐구나.”


“저도 아버님도 그런걸 신경쓰지 않는 악마라는걸 잊을만큼 나이가 드셨는줄은 몰랐군요.”


치매라도 왔던 겁니까, 슬슬 후계자위 주시고 은퇴하지 그러십니까?


사탄은 재미난 말이라도 들었다는 듯, 깔깔거리고 웃다가 농염한 미소를 흘리며 메피스토에게 매달렸다.


“오늘은 너와 잠자리를 같이하고 싶구나, 메피스토.”


굳이 밤이 아니어도 좋고, 라고 덧붙이는 사탄에게 메피스토는 단칼에 거절했다.


“싫습니다.”


“이 모습이 싫다면 ‘친애하는 시로’의 모습으로도 바꿔줄수 있다만.”


“악마는 외면에 집착하는 생물이 아니란 것을 잊으신것 같습니다, 아버님.”


사탄은 시로의 모습으로 변하더니 입술을 삐죽이 내밀었다.


“메피스토오~ 설마 인간도 아니면서 정조란걸 지킬 생각은 아니겠지이~”


메피스토는 자신의 의자에 털석 주저앉고는 다시 깃펜을 들어 잉크병에 담갔다.


“악마든 인간이든, 여자든 남자든, 연인이 있는 이상 정절은 지켜야 하는 겁니다. 아버님.”


메피스토는 몇 글자 편지에 적었다.


「저는 매우 잘 지내고 있습니다.」


바람이 불어, 시로 신부가 보낸 편지가 뒤집혔다.


「보고싶어, 메피!!!」


메피스토의 눈이 곱게 휘었다.


“악마와 인간 사이에, 사랑은 있어도 연애는 있을수 없다고 하셨지요, 아버님.”


사탄은 메피스토의 말에 ‘무슨 소리냐’는 듯 과자 접시에서 시선을 떼었다.


“유감스럽게도, 저와 ‘저의 친애하는 시로’는 연애를 하는것 같습니다만. 존경하는, 아버님.”




푸른 아이들 #9

2018. 6. 15. 01:29 | Posted by 호랑이!!!

 

플로라는 비명이 들리자 달려서 가까이 오는 사슴의 목을 잡고 올라탔다. 사슴은 조금도 속도를 줄이지 않고, 오히려 더 빠른 속도로 달렸는데 그 뒤로도 사슴 두 마리가 뛰어와 각자 헨리와 다니엘을 태워서 숲의 가장자리로 달려갔다.

로즈, , 괜찮나!”

로잘린과 판달루치아의 옆에는 대리석 같은 팔을 가진 기사와 마력으로 만들어낸 거대한 사냥개가 있다. 이름을 불렀지만 그들은 돌아보지 않고, 오히려 둘이 대치하는 것이 플로라의 쪽을 보았다. 거미와 개, 코끼리를 뒤섞어 놓은 듯한 거대한 마물은 그들의 목소리가 들리자 괴성을 질렀고 단은 검을 뽑았다.

헨리, 위험하니까 내 뒤에 있어!”

어째서 이 정도의 마물이 여기에!?”

헨리의 비명소리와 함께 플로라는 손을 들었고 동시에 나무뿌리와 덩굴 같은 것이 땅에서 솟아났다.

당황하지 말아라.”

그들을 태우고 온 사슴들은 들이받을 것처럼 머리를 낮추고 앞을 노려보았고 땅에서는 뿌리가 돋아났지만 어느 쪽도 움직이지 않았고 마물도 움직이지 않으면서 서로를 재어 보고 있는데, 갑자기 얀이 뛰었다. 동시에 마물은 날이 달린 것처럼 날카로운 앞발을 들었으나 땅에서 솟아난 것은 마물이 움직이지 못하도록 단단히 묶었고, 그 사이에 단은 로즈와 판을 안전한 곳으로 데려올 수 있었다. 기사와 사냥개는 거대한 마물을 처리했고 마물은 단단한 뼈와 약간의 가죽만을 남기고 자연의 마력으로 변해 흩어졌다. 그 사이에 얀은 숲의 가장자리, 가장 끝에 도달했다.

해조차 들기 어려울 정도로 울창한 플로라의 숲. 풀은 무성하게 자라나고 인간에게 호의적인 그 숲. 그 너머.

“....사막....?”

황야, 쪽이 맞겠군.”

아직 모래로 변하지 않은 붉은 빛 바위가 어디까지나 깔려 있었고 한때는 자랐던 것 같은 나무가 검고 마르게 돋아 있었으나 바람이 불 때마다 먼지처럼 변해 깎여나갔다. 흙먼지 바람이 불었지만 땅은 뜨거워 보였고 내리쬐는 해에 일렁이는 아지랑이 사이사이에 검은 그림자가 나타났다가 사라졌는데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는 화산이 솟아 먼 곳에서도 무언가가 끓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얀은 귀에 손을 대고 자세한 소리를 듣는 듯했다가 뒤로 돌았다.

“...공주님이 저를 부르셨군요.”

알아차렸구나, 장하다.”

금방이라도 꺼질 것 같은 목소리로 말하며, 플로라가 웃었다.

'오리지널'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법사들 7  (0) 2018.06.27
마법사들 6  (0) 2018.06.27
마법사들 (날이 너무 더워서 겨울 소재 미리 끌어옴)  (0) 2018.06.04
마법사들 5  (0) 2018.06.01
마법사들 4  (0) 2018.05.30

[크더건] 칠리새우 먹는 이야기

2018. 6. 5. 02:52 | Posted by 호랑이!!!

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 잘 되고 있습니까.”

 

율리안은 드물게도 크나트에게 말을 걸었다.

 

마찬가지로 드물게도 크나트는 탭을 카운터에 놓고 주기적으로 모니터를 누르면서 레시피를 읽었는데 잘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마도... 되고는 있는데...”

 

있는데?”

 

“...웬일로 날 걱정해준 거야, ?”

 

안 합니다.”

 

지금 말 돌린 건 너무 뻔했습니다.

 

그러자 크나트는 입술을 쭈욱 내밀고 노골적으로 표정을 구겼다.

 

여기 들어가는 게 새우밖에 없다고 하니까. 적어도 오징어나 조개 같은 걸 더 넣고 싶어서 그래.”

 

그랬다가는 부이야베스가 될 겁니다. 색은 이미 비슷하군요.”

 

잘 모르겠는데.

 

크나트는 갓 튀긴 새우를 접시에 덜어서 만든 소스를 얹었다.

 

맛 좀 봐줘.”

 

저는 칠리새우이니 하는 것의 맛을 잘 모릅니다만.”

 

그러면서도 율리안은 새우를 집었다.

 

“...새우?”

 

“...”

 

새우라고 하는 것은 손바닥만하지, 껍데기가 다 달려 있어도.

 

그리고 납작하고, 예쁜 분홍색을 띄는 걸로 아는데 말이야.

 

어째서인지 이 칠리 새우라는 것은 좀, 양손으로 들고 먹어야 할 정도로 큰데.

 

“...오늘 랍스터가 싸길래.”

 

잘 모르는 메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잘 모르는 메뉴라면 레시피를 충실하게 따르라, 는 잔소리를 눈빛으로 보내고 율리안은 조금 큰 듯한 칠리 랍스터를 한 입에 넣었다.

 

일단 튀김은 바삭바삭하고, 고소한데 안의 랍스터는 부드럽고 쫄깃쫄깃한 것이 느껴진다.

 

소스를 따로 달라고 할 걸 그랬나, 랍스터 튀김이 충분히 맛있는데 계속 씹다보니 소스까지 입 안에 번졌다.

 

부드럽고 쫄깃한 랍스터와 바삭한 튀김옷이 매콤하고 달콤한 소스에 젖고 입 안에서 뒤섞여가니 이 맛도 나쁘지는 않은걸.

 

동양의 음식이라고 해서 이국적인 무언가를 기대했는데도 낯익은 칠리맛과 새우 비슷한 것에 그렇게까지 이국적이지는 않다.

 

파인애플을 좀 넣어볼까 했어.”

 

율리안은 볼 가득히 칠리 랍스터를 넣고 씹다가 꿀꺽 삼켰다.

 

이대로도 맛있습니다.”

 

그럼 됐어 됐어, 그렇게 여유로워지던 크나트는 레시피를 다시 읽어보다가 비명을 질렀다.

 

뭡니까.”

 

따로 만드는 게 아니고 넣고 볶는 거잖아!”

 

때마침 벨소리가 들렸다.

 

율리안 신부님, 문 좀 열어줘!”

 

율리안은 한숨을 쉬며 문으로 갔다.

 

아저씨 잘 있었어요?”

 

저 왔습니다.”

 

율리안이 문을 열어 주자 들어온 것은 새까맣게 차려 입고 온 미론, 그리고 새하얗게 차려입고 온 블랑쉐로 손에 들고 왔던 와인을 건네주었다.

 

뭐야, 요리는 아직입니까.”

 

나도 처음 만들어보는 거라서 시간이 좀 걸렸다고.”

 

부엌 식탁 앞의 의자는 겨우 두 개다.

 

블랑과 미론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율리안이 방에서 의자를 빼 오는것을 보았고 급한대로 소파 쪽으로 테이블을 옮기는 것을 또 지켜만 보았다.

 

그리고 율리안은 숟가락과 포크를 옮기고 접시를 나르고 크나트는 소파에 앉은 두 사람 쪽으로 소리를 질렀다.

 

둘 다 움직여!”

 

가서 접시도 옮기고! 와인잔 샀으니까 그것도 꺼내고! 와인도 따고!

 

네에 네에. 그러죠 뭐.”

 

그러죠 뭐가 아니거든?”

 

뭡니까, 저희는 손님이란 말입니다.”

 

됐으니까 움직여.”

 

그렇게 움직이고 미론과 블랑쉐가 받은 것은 접시와 그 위에 올라간 커다란 칠리 랍스터, 버섯과 양배추절임.

 

당신 오늘 칠리 새우를 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내가 아는 칠리 새우는 좀 다르게 생겼는데.

 

랍스터야 랍스터!”

 

?”

 

오늘 장 보러 갔더니 랍스터가 싸길래 사버렸는데 이건 오래 보관하는 종류가 아니라는 거지...”

 

아저... 크나트씨 그래서 저희를 부른 거군요?”

 

이거 튀김 같은데 어째서 소스랑 같이 볶은 겁니까? 따로 놓고 찍어서 먹으면 되지 않습니까.”

 

맞아, 눅눅하잖아요.”

 

크다, 질기다, 눅눅하다, 어떻다 어떻다 재잘거리던 두 사람은 크나트의 말에 얌전히 먹었다.

 

그럴 거면 먹지 마! 대신 디저트도 없어!”

 

 

이제는 슬슬 찬바람이 부는 때가 되었다.

 

예란이도 줄리도 돌아올 때는 보온 마법이 걸린 커피를 하나씩 사 들고 들어오는 것이 습관이 되고 향이도 나갈 때는 초록이가 만든 목도리를 가지고 나간다.

 

그러다 간만에 h가 놀러왔다가 며칠째 집 안에서 유유자적하게 보내는 초록이를 보고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너 한가해 보인다?”

 

, ?”

 

이제 상자를 만들어두는 때잖아. 지금 주문이 안 들어온다고 방심하면 안 돼.”

 

뭔데?”

 

이 곳에서 하는 장난 중 하나인 것 같다.

 

h가 설명해준 바에 따르면, 이맘때부터는 적당한 상자를 준비한다고 한다.

 

그러다 처음으로 눈이 오면 눈을 담아 사람들에게 보내는데 눈 상자인 것을 알고 돌려보내면 받은 사람이 승리, 모르고 열어버렸다면 보낸 사람의 승리.

 

“...별걸 다...”

 

커플들 사이에서는 엄청 인기거든, 여는 순간 벌칙이 나오는 쪽지도 있는데 볼래? 재미있어.”

 

이럴 줄 알았다며 h는 상자를 우르르 쏟아놓았는데 상자는 재질도 크기도 모양도 장식도 가지각색이라 화려했다.

 

초록이는 가장 가까이 있는 상자를 열었다.

 

“...멸치 액젓 먹기, 앉았다 일어났다 열 개, 노래 부르기... 뭐 평범하네.”

 

분홍색 상자는 커플을 위한 것이라고 한다.

 

뽀뽀하기, 손잡고 걷기, 일일 데이트권, 소원 1회권 같은 뻔한 것을 보다가 초록이는 뚜껑을 덮었다.

 

단번에 흥미가 떨어진 것 같은 초록이를 위해 h가 빨간색 상자를 내밀었다.

 

여기 빨간 색은 성인용이야.”

 

그러자 초록이는 잽싸게 상자를 받았다.

 

그다지 크지 않은 빨간색 상자를 흔들었지만 안에서는 이렇다 할 소리가 나지 않는다.

 

그럼 눈 넣은 게 들키지 않아?”

 

성인용이니까 상대의 동의가 먼저라고.”

 

어디 보자. ...이 옷을 입어줘?”

 

상자가 열리자 안에서는 의상이 손에 잡기 편하도록 튀어나왔다.

 

“......?”

 

천이 어디 있는데...?”

 

다른 거 열어 볼게. ...이걸 사용해서 오늘.... ....‘이거가 뭔데?”

 

뭔진 몰라도 썼나 보다...”

 

투 머치 인포메이션.

 

그렇지만 이런 걸 주고받을 수 있다는 건 부럽다.

 

초록이는 메모지와 펜을 꺼냈다.

 

일단 평범한 상자들하고, 분홍색 상자들하고, 그리고 빨간색 상자 수량은 얼마나 만들어야 하나.

 

h는 초록이가 메모하는 것을 보다가 어깨를 툭툭 쳤다.

 

넌 허가 안 받았으니까 성인용 물품은 제작 못 해.”

 

뭐어!”

 

초록이의 흥미가 다시 식어버렸다.

'오리지널'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법사들 6  (0) 2018.06.27
푸른 아이들 #9  (0) 2018.06.15
마법사들 5  (0) 2018.06.01
마법사들 4  (0) 2018.05.30
마법사들 3  (0) 2018.05.29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내용을 보시려면 비밀번호를 입력하세요.

마법사들 5

2018. 6. 1. 14:34 | Posted by 호랑이!!!

 

이게 뭐예요? 아니 그 이전에 이걸 왜 상대해야 하나요?”

 

영상은 복사본을 줄 테니 일주일 후에 시험을 치르도록 하지.”

 

자세한 것은... 향씨가 설명해 주리라고 믿어요.”

 

그동안은 이 도시 어디에 가도 괜찮단다.”

 

그런 대답을 듣고 초록이는 밖으로 쫓겨났다.

 

향이 초록이를 데리고 간 곳은 카페로, 방음 시설이 잘 되어 있는 방 여럿으로 나뉘어있다.

 

그 중 하나에 들어갔더니 지친 표정을 한 줄리아나와 미간을 좁힌 예란이가 있었는데 초록이가 들어오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초록!”

 

별 일 없었어?”

 

일반 사람에게 마법을 보여준 것이나 무허가로 기억을 지운 댓가로 황예란은 카드 및 도구에 마물을 소환하여 빙의시키는 일을 하지 못한다.”

 

그러자 예란이는 시무룩하게 카드를 내려놓았다.

 

“...다만 마법에 대해 알게 된 이초록이 마법사가 되기를 희망한 점, 마력을 일깨운 점 등으로 초록이 제대로 마법사가 되어 마도구를 만들 수 있게 된다면 초록이 만든 카드에 한해 허가함.”

 

뭐야아, 괜찮네.”

 

그리고 홍 줄리아나는 방조한 죄로 처벌을 받아야 한다.”

 

“....”

 

다만 예란이랑 같은 이유로 완화되어서 초록이가 시험을 합격하도록 도와야 해.”

 

시험은 뭔데? 17살 때 치르는 그거랑 같은 거?”

 

그래. 대신에 얘 대상은 키메라야.”

 

그제야 제대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지금까지 마법사들이라고 부르는 것은 기존에 책에서 보던 것이나 역사 속의 마녀와 별다르지 않았으나 현대에 와서는 마법사와 다른 사람의 기준이 보이는 사람보이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나.

 

보이는 것이나 마력 같은 것은 유전이라고 하는데 중요한 것은 그런 게 아니고.

 

이제 마법사들은 공무원이라고 한다.

 

불과 수십년 전까지만 해도 마법사는 예술가나 연구원의 면모가 더 강했어. 그런데 그 연구원이니 뭐니 하는 사람들이 실수로 만들어버리고 바깥에 방생해버린 키메라나 호문쿨루스나 골렘 같은 것들이 사고를 쳐 버리거든~”

 

사람들한테 보이지 않는 생물들이 치는 사고도 만만찮거든~”

 

그 외에 뭔가 필요하거나 한 일이 있으면 차출되고오...”

 

하는 일은 많지만 요즈음은 특히나 실수로 만들어진 무언가와 생물의 처리가 더 많은 모양이라 최소한의 실력으로 요구받는 것 같다.

 

아까 자료 주었던 그 사람이나 1층에서 서류 처리하던 사람이나, 하다못해 저기 편의점에서 알바하는 사람도 전부 키메라 정도는 잡을 걸.”

 

물론 영 적성이 아닌 사람들은 서류 처리를 한다던가, 아니면 연구나 제작으로 간다던가... 뭐든 할 일은 많아아.”

 

만약에 마법사로 태어났는데 락 가수가 되고 싶다던가, 학교 선생님이 되고 싶다던가 하면?”

 

마법사들이 다니는 학교 선생님을 해도 되고?”

 

낮에는 락 가수, 밤에는 마법사로 일할 수도 있고. 본인 체력이 된다면.”

 

밤에는 락 가수, 낮에는 마법사 아냐?”

 

몰라.”

 

아무튼, 이라며 줄리아나는 빈 파르페 그릇을 밀었다.

 

일주일이나 시간은 있으니까! 오늘은 약초밭 가알래?”

 

약초밭이라니, 얘는 약초랑은 인연이 없을 거라고!”

 

약초는 모든 마법사와 마녀들의 가장 친한 친구야! 아무리 갓 마법사가 되었어도 기본적인 약초학은 알아야지!”

 

무슨 소리, 당연히 소환술이지 소환술! 요즘에는 마물이나 마물의 마력을 써서 강화시키는 게 트렌드거든? 전에 텔레비전 나온 사람 못 봤어? 누구에게나 친근한 것은 있기 때문에 소환술이 더 쉽고 효과가 좋다고!”

 

그것도 다 약초가 필요한 일이잖아! 자기랑 어떤 약초가 맞는지부터 확인하는 게 기본 중의 기본이야!”

 

자기랑 풀이 맞는지 아닌지부터 알아야지! 약초 안 쓰는 소환술도 얼마든지 있거든?”

 

너 지금 풀이라고 했냐!라고 또 큰 소리가 나는 동안 신 향은 예란이의 탄산 에이드를 다 마시고 일어났다.

 

나중에 우리 집으로 와서 자. 방은 많으니까, 저 두 명도 어느 정도 진정이 되면 데려와.”

 

고마워.”

 

그럼 일이 많아서, 이따 보자.”

 

그렇게 향이 떠나고, 예란이와 줄리아나는 서로 이야기를 하다가 결론이 나지 않았는지 초록이에게 바싹 다가왔다.

 

소환술부터 할 거지! 거긴 그냥 재능이 있는가 없는가만 검사해보면 되니까!”

 

그 검사 다 하는데 일주일은 넘게 걸릴 걸! 차라리 약초를 배워서 약 만드는 걸 연습해보면 훨씬 유용할거야. 무엇보다 그건 방법을 따라하면 실패하지는 않으니까!”

 

둘은 서로를 쳐다보지도 않고 있다.

 

마치.

 

자신에게 새로운 게임이나 만화를 같이 하자고 권하는 것처럼.

 

그것도 광적으로.

 

초록이는 서비스로 나왔다는 쿠키를 들어 끝을 깨물었다.

 

다른 건 뭐가 있어?”

 

'오리지널' 카테고리의 다른 글

푸른 아이들 #9  (0) 2018.06.15
마법사들 (날이 너무 더워서 겨울 소재 미리 끌어옴)  (0) 2018.06.04
마법사들 4  (0) 2018.05.30
마법사들 3  (0) 2018.05.29
푸른 아이들 #8  (0) 2018.05.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