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슬슬 찬바람이 부는 때가 되었다.
예란이도 줄리도 돌아올 때는 보온 마법이 걸린 커피를 하나씩 사 들고 들어오는 것이 습관이 되고 향이도 나갈 때는 초록이가 만든 목도리를 가지고 나간다.
그러다 간만에 h가 놀러왔다가 며칠째 집 안에서 유유자적하게 보내는 초록이를 보고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너 한가해 보인다?”
“응, 왜?”
“이제 상자를 만들어두는 때잖아. 지금 주문이 안 들어온다고 방심하면 안 돼.”
“뭔데?”
이 곳에서 하는 장난 중 하나인 것 같다.
h가 설명해준 바에 따르면, 이맘때부터는 적당한 상자를 준비한다고 한다.
그러다 처음으로 눈이 오면 눈을 담아 사람들에게 보내는데 눈 상자인 것을 알고 돌려보내면 받은 사람이 승리, 모르고 열어버렸다면 보낸 사람의 승리.
“...별걸 다...”
“커플들 사이에서는 엄청 인기거든, 여는 순간 벌칙이 나오는 쪽지도 있는데 볼래? 재미있어.”
이럴 줄 알았다며 h는 상자를 우르르 쏟아놓았는데 상자는 재질도 크기도 모양도 장식도 가지각색이라 화려했다.
초록이는 가장 가까이 있는 상자를 열었다.
“...멸치 액젓 먹기, 앉았다 일어났다 열 개, 노래 부르기... 뭐 평범하네.”
분홍색 상자는 커플을 위한 것이라고 한다.
뽀뽀하기, 손잡고 걷기, 일일 데이트권, 소원 1회권 같은 뻔한 것을 보다가 초록이는 뚜껑을 덮었다.
단번에 흥미가 떨어진 것 같은 초록이를 위해 h가 빨간색 상자를 내밀었다.
“여기 빨간 색은 성인용이야.”
그러자 초록이는 잽싸게 상자를 받았다.
그다지 크지 않은 빨간색 상자를 흔들었지만 안에서는 이렇다 할 소리가 나지 않는다.
“그럼 눈 넣은 게 들키지 않아?”
“성인용이니까 상대의 동의가 먼저라고.”
“어디 보자. ...「이 옷을 입어줘」?”
상자가 열리자 안에서는 의상이 손에 잡기 편하도록 튀어나왔다.
“......옷?”
“천이 어디 있는데...?”
“다른 거 열어 볼게. ...「이걸 사용해서 오늘..」.. ....‘이거’가 뭔데?”
“뭔진 몰라도 썼나 보다...”
투 머치 인포메이션.
그렇지만 이런 걸 주고받을 수 있다는 건 부럽다.
초록이는 메모지와 펜을 꺼냈다.
일단 평범한 상자들하고, 분홍색 상자들하고, 그리고 빨간색 상자 수량은 얼마나 만들어야 하나.
h는 초록이가 메모하는 것을 보다가 어깨를 툭툭 쳤다.
“넌 허가 안 받았으니까 성인용 물품은 제작 못 해.”
“뭐어!”
초록이의 흥미가 다시 식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