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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들 5

2018. 6. 1. 14:34 | Posted by 호랑이!!!

 

이게 뭐예요? 아니 그 이전에 이걸 왜 상대해야 하나요?”

 

영상은 복사본을 줄 테니 일주일 후에 시험을 치르도록 하지.”

 

자세한 것은... 향씨가 설명해 주리라고 믿어요.”

 

그동안은 이 도시 어디에 가도 괜찮단다.”

 

그런 대답을 듣고 초록이는 밖으로 쫓겨났다.

 

향이 초록이를 데리고 간 곳은 카페로, 방음 시설이 잘 되어 있는 방 여럿으로 나뉘어있다.

 

그 중 하나에 들어갔더니 지친 표정을 한 줄리아나와 미간을 좁힌 예란이가 있었는데 초록이가 들어오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초록!”

 

별 일 없었어?”

 

일반 사람에게 마법을 보여준 것이나 무허가로 기억을 지운 댓가로 황예란은 카드 및 도구에 마물을 소환하여 빙의시키는 일을 하지 못한다.”

 

그러자 예란이는 시무룩하게 카드를 내려놓았다.

 

“...다만 마법에 대해 알게 된 이초록이 마법사가 되기를 희망한 점, 마력을 일깨운 점 등으로 초록이 제대로 마법사가 되어 마도구를 만들 수 있게 된다면 초록이 만든 카드에 한해 허가함.”

 

뭐야아, 괜찮네.”

 

그리고 홍 줄리아나는 방조한 죄로 처벌을 받아야 한다.”

 

“....”

 

다만 예란이랑 같은 이유로 완화되어서 초록이가 시험을 합격하도록 도와야 해.”

 

시험은 뭔데? 17살 때 치르는 그거랑 같은 거?”

 

그래. 대신에 얘 대상은 키메라야.”

 

그제야 제대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지금까지 마법사들이라고 부르는 것은 기존에 책에서 보던 것이나 역사 속의 마녀와 별다르지 않았으나 현대에 와서는 마법사와 다른 사람의 기준이 보이는 사람보이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나.

 

보이는 것이나 마력 같은 것은 유전이라고 하는데 중요한 것은 그런 게 아니고.

 

이제 마법사들은 공무원이라고 한다.

 

불과 수십년 전까지만 해도 마법사는 예술가나 연구원의 면모가 더 강했어. 그런데 그 연구원이니 뭐니 하는 사람들이 실수로 만들어버리고 바깥에 방생해버린 키메라나 호문쿨루스나 골렘 같은 것들이 사고를 쳐 버리거든~”

 

사람들한테 보이지 않는 생물들이 치는 사고도 만만찮거든~”

 

그 외에 뭔가 필요하거나 한 일이 있으면 차출되고오...”

 

하는 일은 많지만 요즈음은 특히나 실수로 만들어진 무언가와 생물의 처리가 더 많은 모양이라 최소한의 실력으로 요구받는 것 같다.

 

아까 자료 주었던 그 사람이나 1층에서 서류 처리하던 사람이나, 하다못해 저기 편의점에서 알바하는 사람도 전부 키메라 정도는 잡을 걸.”

 

물론 영 적성이 아닌 사람들은 서류 처리를 한다던가, 아니면 연구나 제작으로 간다던가... 뭐든 할 일은 많아아.”

 

만약에 마법사로 태어났는데 락 가수가 되고 싶다던가, 학교 선생님이 되고 싶다던가 하면?”

 

마법사들이 다니는 학교 선생님을 해도 되고?”

 

낮에는 락 가수, 밤에는 마법사로 일할 수도 있고. 본인 체력이 된다면.”

 

밤에는 락 가수, 낮에는 마법사 아냐?”

 

몰라.”

 

아무튼, 이라며 줄리아나는 빈 파르페 그릇을 밀었다.

 

일주일이나 시간은 있으니까! 오늘은 약초밭 가알래?”

 

약초밭이라니, 얘는 약초랑은 인연이 없을 거라고!”

 

약초는 모든 마법사와 마녀들의 가장 친한 친구야! 아무리 갓 마법사가 되었어도 기본적인 약초학은 알아야지!”

 

무슨 소리, 당연히 소환술이지 소환술! 요즘에는 마물이나 마물의 마력을 써서 강화시키는 게 트렌드거든? 전에 텔레비전 나온 사람 못 봤어? 누구에게나 친근한 것은 있기 때문에 소환술이 더 쉽고 효과가 좋다고!”

 

그것도 다 약초가 필요한 일이잖아! 자기랑 어떤 약초가 맞는지부터 확인하는 게 기본 중의 기본이야!”

 

자기랑 풀이 맞는지 아닌지부터 알아야지! 약초 안 쓰는 소환술도 얼마든지 있거든?”

 

너 지금 풀이라고 했냐!라고 또 큰 소리가 나는 동안 신 향은 예란이의 탄산 에이드를 다 마시고 일어났다.

 

나중에 우리 집으로 와서 자. 방은 많으니까, 저 두 명도 어느 정도 진정이 되면 데려와.”

 

고마워.”

 

그럼 일이 많아서, 이따 보자.”

 

그렇게 향이 떠나고, 예란이와 줄리아나는 서로 이야기를 하다가 결론이 나지 않았는지 초록이에게 바싹 다가왔다.

 

소환술부터 할 거지! 거긴 그냥 재능이 있는가 없는가만 검사해보면 되니까!”

 

그 검사 다 하는데 일주일은 넘게 걸릴 걸! 차라리 약초를 배워서 약 만드는 걸 연습해보면 훨씬 유용할거야. 무엇보다 그건 방법을 따라하면 실패하지는 않으니까!”

 

둘은 서로를 쳐다보지도 않고 있다.

 

마치.

 

자신에게 새로운 게임이나 만화를 같이 하자고 권하는 것처럼.

 

그것도 광적으로.

 

초록이는 서비스로 나왔다는 쿠키를 들어 끝을 깨물었다.

 

다른 건 뭐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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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들 4

2018. 5. 30. 14:14 | Posted by 호랑이!!!

어느 정도의 마력이 생기기는 했군요.”

 

도시는 그럭저럭 평범해 보였다.

 

빌딩도 몇 개 있고, 체육관 같은 것도 있고, 연구소 같은 것도 있고, 가게도 있다.

 

비둘기도 있고,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사람도 있고, 동물병원도 있고.

 

다른 것이 있다면 허공을 날아다니는 동물이나, 동물 아닌 것들이나, 가끔은 사람 정도.

 

향은 초록이를 데리고 낡은 건물로 갔다.

 

시청처럼 생긴 건물이었는데 1층에서는 창구와 사람들이 앉아있고 23층도 비슷해 보인다.

 

그러다 위층에는 사무실, 사무실, 사무실.

 

엘리베이터에 타고 올라가면서 초록이는 안내판을 읽을 수 있었다.

 

맨 아래부터 민원 접수, 조정과, 변호사실, 제작 및 수리 접수과, 우편, 이사 관련, 그리고 맨 위는 제 1사무실 겸 회의실.

 

이사 관련은 뭐...예요?”

 

여기서 살던 사람들은 다른 도시에서 살 때 마법이나 관련된 것을 드러내지 않도록 교육받습니다. 그리고 살 집을 알아봐주거나 근처 인간을 알아봐주거나.”

 

무슨 기준인데요?”

 

마법이 얼마나 잘 먹히나, 혹은 마력양.”

 

엘리베이터는 3층에서 열렸다.

 

[이사를 위한 이사 층입니다. 당신의 새 이웃에 대해 궁금하거나 새로 이사간 곳에서 뭘 해야 할 지 궁금할 때 찾아주세요]

 

부드러운 남자 목소리가 들리자 초록이는 고개를 들어 마치 그 사람이 있기라도 한 것처럼 스피커 쪽을 봤다.

 

이초록 자료!”

 

종이 몇 장을 든 사람이 뛰어왔다.

 

미리 준비해 놓으라고 했잖아요.”

 

죄송합니다.”

 

향은 하나의 흐트러짐도 없는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한 발짝을 움직여 그 사람이 들어올 수 있도록 했다.

 

그 사람이 자료를 건네자 향은 종이를 넘기며 안의 글을 읽었다.

 

초록이도 힐끔 넘겨다보았는데 그 시선을 느끼자 향은 신경질적으로 종이를 덮었다.

 

얼마쯤 올라가자 다시 엘리베이터가 열렸고 자료를 건네주었던 사람은 다른 자료도 같이 가져가겠다며 내렸다.

 

마침내 둘이 남게 되자 초록이는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 수 있었다.

 

향 씨.”

 

?”

 

저 싫으세요?”

 

그러자 신 향은 입술을 꽉 깨물면서 숨을 들이쉬었다가 길게 숨을 내쉬었다.

 

“...”

 

“...?”

 

“...안녕, 난 신 향이야. 황예란이 친구고 땅 위의신이라는 가문의 가주야.”

 

초록이가 갑자기 내밀어진 향의 손을 잡자 향은 위아래로 흔들고 손을 놓는다.

 

땅 위의 신...!”

 

신은 그냥 성이야. ‘땅 위의가 우리 가문에 붙는 별명.”

 

그렇구나. 안녕, 나는 이 초록이야. 예란이랑 줄리 친구.”

 

너만 아니었으면 예란이가 이 도시로 돌아올 리 없다는 생각을 했어, 미안해. 사실은 네 탓이 아닌데.”

 

이 도시에 돌아오는 게 문제가 있어?”

 

그 말에는 대답을 하지 않고, 향은 목소리를 낮추었다.

 

넌 이제부터 가주와 세 명의 원로가 있는 회의에 부쳐질 거야. 넌 어차피 마법사가 아니니까 별 일 없을 테니 잘 듣고 무조건 예란이에게 유리하게 말해.”

 

뭐가 유리한 소리인데?”

 

뭐든 하겠냐고 물으면 한다고 말해.”

 

그거면 되냐고 다시 물으려는 찰나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고, 상아색 바닥이 깔린 것이 보였다.

 

[2 회의실입니다, 1 회의실에 가지 않는 가주 및 동행자 분들은 여기에서 내려 주십시오]

 

옆은 계단식으로 아래가 잘 보이도록 빙 두르듯이 책상과 의자가 자리했고 거기에는 사람들이 앉아서 파일과 모니터에 코를 묻고 있다가 엘리베이터가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다들 짜증이 가득하거나 피로한 얼굴로, 주위를 날아다니는 조그만 것들이 커피나 주스 같은 것을 잔에 채워주면 홀짝이다가 내려놓았다.

 

신 향입니다. 이 초록씨를 데려왔습니다.”

 

그제야 초록이는 가장 큰 책상에 앉은 사람을 보았다.

 

다른 책상에 비해 세 배는 더 큰 책상에는 새하얗게 센 머리를 틀어 올리거나 묶거나 아예 짧게 잘라버린 할머니가 세 분 앉아 있었는데 그 사람들은 책상에 종이가 한두 장 있을 뿐 모니터나 키보드 같은 것은 없었다.

 

먼 길 오느라 수고했어요, 뭐라도 좀 마시겠어요? 차라던가, 커피, 주스?”

 

그 전에 앉혀야지.”

 

한 사람이 손을 흔들자 공중에서 안락의자가 쿵 떨어졌다.

 

흔들의자나 바퀴 달린 의자가 좋니?”

 

뭐든 마실 거면 테이블도 있어야 하고.”

 

조금 바랜 빛은 있지만 안락의자는 푹신하고 햇볕에 말린 냄새가 난다.

 

마찬가지로 위에서 떨어진 테이블에는 하얀 테이블보가 펼쳐지고 조그만 머그컵이 향과 초록이 앞에 하나씩 놓였다.

 

이렇게 오게 되어서 많이 놀랐을 거 알아요, 그렇지만 우리는 초록씨에게 나쁜 짓을 하거나 아프게 하기 위해서 부른 것이 아니에요.”

 

그냥 일이 어떻게 되었나 해서 부른 것뿐이니까, 겁먹지 말고.”

 

쿠키도 좀 줄까?”

 

쿠키캔이나 주스병, 주전자를 든 조그마한 인형들이 주위를 빙빙 날아다녔다.

 

주스..로 할게요, 감사합니다.”

 

그러자 의기양양한 표정이 된 주스병 인형이 다가와서 컵에 넘치도록 주스를 따라 주었다.

 

쿠키캔 인형도 조그마한 접시에 쿠키를 담아 올려주었고, 초록이는 어딘가 예상과는 다른 분위기에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후에도 몇 가지 검사결과가 모니터에 올라갔고 향은 열심히 변호를 했고 몇 가지 질문을 한 뒤에는 자기들끼리만 이야기한다.

 

기분이 이상한걸.

 

이상하리만치 평온한 기분이다.

 

아까까지만 해도 향이 제대로 조사를 했니 안했니, 자료가 어떠니 화를 냈고,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줄리아나도 예란이도 엄청나게 긴장을 한 것 같았는데 좀 예상과는 다른 전개라.

 

그러다 세 원로 중 하나가 입을 열었다.

 

초록씨.”

 

?”

 

너는 마법사가 될 수 있단다. 기억을 지우고 평범한 사람이 될 수도 있겠지만 모처럼 이렇게 마력도 생겼으니 마법사가 되지 않겠니?”

 

좀 더 가까이 오라고 손을 까딱이자 의자가 초록이를 앉힌 채로 찌익 끌려갔다.

 

우리나라의 마법사들은 가족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으니 아마 네 가문을 만들어야 할 거야.”

 

알아보았더니 10대쯤 전까지는 너희 할머니에게 가문이 있었어요, 그 가문이 가지고 있던 금액이라던가 그런 것은 시에 기증되었으니 당신이 하겠다고 하면 예산이나 집, 기구 등은 전부 내주겠어요.”

 

알고 보았더니 갈수록 마법사는 적어지는 추세라고 했다.

 

남자가 적은 것과 관련이 있는 것이냐고 했더니 웃으면서 그런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건 그냥 마법으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어머나, 겁을 줄 수도 있으니 그런 말은 안 돼요.”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이라면 겁을 먹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에 안심할 거야.”

 

남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은 벌을 받는단다. 그건 당연한 이야기잖아?”

 

마법사 뿐 아니라 일반적인 법에 대해서도, 라면서 오른쪽에 앉은 원로가 종이를 가리켰다.

 

당신에게 사기를 치려고 하는 사람들, 강도, 악의를 가지고 접근하는 사람들, 혹은 그 사람들이 사용하는 기구 등에서 안전할 수 있어요.”

 

왼쪽에 앉은 원로도 종이를 내밀었다.

 

거주지나 작업실, 연구실을 포함한 이런 집을 지어줄 수 있단다. 태어난 아이가 마법사 적성이 있다고 하면 원래 이 정도 금액을 주는데 연구비를 포함하고 집을 짓는 비용을 빼서 이 정도를 매월 줄 수 있거든.”

 

옆을 힐끗 보았더니 향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게요.”

 

그러면.”

 

가운데 앉은 원로는 그 앞에 있는 모니터를 돌려 초록이가 볼 수 있게 했다.

 

거기에는 인간의 형태에 개구리의 거죽을 뒤집어쓰고 털이 부분부분 나 있는 무언가가 찍혀 있었다.

 

이걸 상대해 줘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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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들 3

2018. 5. 29. 18:05 | Posted by 호랑이!!!

초록이는 눈을 떴다.

 

아침의 새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은 익숙해지지 않아서, 아직 해도 다 뜨지 않은 어슴푸레한 바깥임에도 오후나 된 것처럼 느껴졌다.

 

옆에서는 줄리아나와 만두가 자고 있었는데 만두의 뜨뜻함이 싫은지 저리가... 라는 잠꼬대를 하고 있음에도 만두는 더 줄리아나에게 파고들었다.

 

인났나.”

 

그리고 예란이는 오프라인으로 게임을 한다.

 

또 제대로 자지 않았는지 책상 위에는 탄산 캔이 나뒹굴고 있었고 가운데는 자주색 천을 펼쳐 카드를 늘어놓았다.

 

이 카드는 초록이도 자주 본 것으로 투박한 그림이 특징일 뿐인 평범한 카드였는데 이상하게도 오늘은 은은한 빛이 나고 있어서 쳐다보고 있자니, 예란이가 말을 걸었다.

 

한 장 골라 볼래?”

 

아무거나?”

 

그래.”

 

초록이는 별 생각 없이 손을 내밀었다.

 

예란이가 매일 하는 평범한 오늘의 운 점치기겠지.

 

그런데 손을 대는 순간 카드에서는 팍 불꽃이 튀더니, 따끔함에 놀라 손을 잡는 순간 은은한 빛이 꺼져 버렸다.

 

?”

 

아아?”

 

“....뭐야!!!! 이거!!!!!!”

 

무슨 일이옹!”

 

만두는 불빛이 사라진 카드를 보더니 비명을 질렀다.

 

냐아아앙!!!!”

 

초록이는 안절부절 못 하다가 옆에서 머리를 감싸쥔 예란이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뭔데... 미안해.”

 

아니... 이게 니 잘못은 아닌데...”

 

초록씨, 혹시 평소랑 다른 점은 없었옹?”

 

그러고 보니, 카드에서 약하게 빛이 반짝반짝 했는뎅.”

 

예란이는 카드를 모아 정리하다가 그 말을 듣고 다시 머리를 감싸 쥐었다.

 

뭐야, 큰 일이야?”

 

난 씻고 올 테니까 줄리 좀 깨워줘.”

 

응야.”

 

욕실에서 물소리가 나고 초록이는 줄리아나를 흔들었다.

 

줄리, 일어나.”

 

으엉..... 몇 시야....?”

 

“6. 그런데 시간이 문제가 아니고, 란이 카드 때문에 그래.”

 

카드으...?”

 

줄리아나는 눈을 뜨더니 머리맡을 더듬어 안경을 찾았다.

 

네모난 안경을 끼고 몸을 일으킨 줄리아나는 책상 위에 놓인 카드 뭉치를 보더니 고개를 기울였다.

 

“...아하...”

 

이거 귀찮게 됐네. 줄리아나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옷장을 열어 불편해 보이는 외출복을 꺼냈다.

 

이제 무슨 일이 생기는 거야?”

 

우리 다 같이 마법계로 가는 거야아. ...가기 싫다, 정말.”

 

사실은 마법계 같은 건 아니고, 그냥 마법사들이 사는 도시지만 마법계라고 말하는 쪽이 이해하기 쉬우려나아? 라며 줄리아나가 웃었다.

 

셋이 준비를 마치고 예란이 만두에게 연락을 하라고 말했다.

 

높은 옷장 위로 올라갈 때처럼 몸을 웅크렸다가 쭉 펴는 순간 만두는 사라졌고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초록이의 눈이 빛났다가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이 물었다.

 

카드 때문이야?”

 

그런 것도 있고.”

 

카드에서 나오던 그거 마력이거든, 내가 빙의시킨 마물에서 나오는 빛. 그런데 네가 그게 보였잖아.”

 

보이면 안 돼?”

 

그걸 볼 수 있는 건 마법사들 뿐이니까.”

 

정정.”

 

갑자기 또 다른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초록이가 고개를 들자, 이 쪽을 엄한 얼굴로 내려다보는 또래의 사람이 있었다.

 

!”

 

오랜만이야.”

 

머리를 하나로 올려 묶은 향이라는 사람은 창문 너머에 있었고, 나오라는 손짓을 했다.

 

쟤는 마법사라고 할 수는 없지. 그냥 마력이 마법사 수준으로 생긴 것 뿐이니까.”

 

창 밖을 내다보았더니 커다란 가마가 있었고, 향이 문을 열듯이 벽을 열어 예란이와 줄리아나, 초록이가 타도록 했다.

 

가마 안쪽은 푹신한 쿠션이 있고 어색하게 자리에 앉자 벽면에서 주스와 과자가 담긴 선반이 튀어나왔다.

 

이것 좀 먹어, 다들 아침 안 먹었지.”

 

고마워.”

 

주스를 컵에 따르는데 향이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원래 이 사람은 마법사가 아니었을 텐데. 어떻게 된 거야.”

 

왠지 내가 얘 기억을 없앤다고... 하다보니까 그렇게 된 것 같아.”

 

이번에 가게 되면 너 회의에 부쳐져.”

 

“...그렇겠지.”

 

그러니까 그 전에. 저 사람을 좀 조사해야겠어.”

 

얼마 안 있어 가마 문이 열렸다.

 

그러니까 너희 둘은 집에 인사드리고 와.”

 

향은 예란이와 줄리아나를 내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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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아이들 #8

2018. 5. 19. 00:20 | Posted by 호랑이!!!

 

헨리 제임스 헤일로, 통칭 얀은 서재로 돌아와 가장자리에 금박이 들어가 화려한 편지지를 찾았다. 옆에는 짙푸른 봉투를 하나 놓고 황금색 초와 용이 새겨진 도장을 꺼내놓고 펜을 들었는데 다니엘이 잠시 짐을 챙기러 간 잠깐 사이에 쓰려는 기색이 만연했다.

“...그래서 저희는 세이렌의 설득을 실패했습니다. 이 일은 여기서 그만...”

오빠!”

문이 쾅 열렸다. 그 너머에 있던 것은 로잘린 레이첼 헤일로, 자신이 만들어낸 듯한 켄타우로스의 등에 타고 있었다.

로즈, 집 안에서는...”

켄타우로스를 만들지 않는다, 알지만!”

그리고 숙녀는...”

오빠 또 나만 두고 가려고!”

얀은 방금까지 쓰던 편지를 손으로 덮었다. 켄타우로스는 로즈를 조심스럽게 내려주었고 로즈는 얀에게 손가락을 들어올렸다.

다니엘 오빠가 말해줘쪄! 플로라 공주님한테 갈 거라고!”

만약 안 간다고 하면 어떻게 될까. 일단 귀찮음에서 해방되고, 로즈한테도 널 놓고 가려는 게 아니고 그냥 안 가는 거라고 말할 수 있겠지. 여행 안 가도 되고, 그 끔찍한 마차도 안 타도 되고. 그렇지만 나중에 또 여왕님이 어떻게든 가라고 보낼 수도 있고, 공주님도 점검차 한 번은 보러 가야 하기는 하고. ... 하면서 머리를 굴리는데 듀크 단이 돌아왔다.

준비 다 됐다.”

아니, 그게.”

!”

로즈의 손에 분필이 들려 있다.

“...다 같이 가자.”

켄타우로스는 희미한 유황 냄새를 내더니 익숙한 얼굴로 돌아왔다. 판달루치아를 보던 얀은 입꼬리를 쓱 올렸다.

둘이 친해졌군.”

아니야!”

그렇지?”

헬렌은 갔나?”

그 인간은 몇 시간 전에 갔다.”

크게 한숨을 쉬더니 얀은 금박이 있는 편지지를 물에 담갔다. 책상 서랍을 열어 꺼내놓았던 짙푸른 편지봉투를 정리하고 새로 골라서 꺼내면 아까 꺼내두었던 것 못잖게 진한 청록색 봉투와 은박이 들어간 편지지가 책상 위에 오른다. 시험 삼아 펜을 몇 번 긋고 얀은 글을 써내려갔다.

플로라 폰 우드 공주님께. 헨리 제임스 헤일로 자작이 인사드립니다. 연락을 몇 주 전에 드리는 것이 예의임을 알고 있지만 부득이한 사정으로 급박하게 서신을 보내오니 내일 뵙도록 하겠습니다

그 뒤로 몇 가지 인삿말을 더하고 잘 접어 봉투에 넣은 뒤 인장을 눌러 찍은 뒤 고개를 들자 얀은 방 안 다른 사람들과 눈이 마주쳤다.

“...뭘 봐?”

야호! 플로라 공주님한테 간다!”

드디어 할 마음이 들었나보군!”

또 무언가 기뻐하려는 판달루치아를 툭툭 건드리고 얀은 편지를 내밀었다.

뭐야?”

이걸 플로라 공주님한테 배달. 위치는 그린 영지. 까만 눈에 녹색 머리카락인 사람이니 찾기는 쉬울 거다.”

귀찮은 녀석. 판달루치아는 입모양으로 투덜거리더니 편지를 쥐었다. 문을 열고, 나가서 닫았는데 발소리가 들리지 않아 문을 다시 열어보았더니 거기에는 유황 조각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그로부터 다들 분주하게 짐을 싼다 어쩐다 해서 다음날 아침 로즈는 잠을 못 잔 티가 나는 얼굴로 눈을 비비며 마차 앞에 섰다. 그리고 또 날아다니는 마차를 타는 끔찍한 시간을 보냈고 정오가 다 되어서야 자그마한 궁의 앞에 내리게 되었다.

여기에 공주님이 계신다고?”

단이 궁을 보자마자 한 첫 번째 말이다. 벽은 크림 같은 하얀색이고 물감이며 은을 녹인 것으로 기둥에 무늬도 넣은 데다 둥그스름한 지붕에도 장식을 한 것인지 가장 높을 때의 태양빛에 환하게 빛나고 있다. 온 벽과 물건에 새며 나무, 사슴들이 우아하게 양각되어 있고 사용한 재료도 전부 내외국을 따지지 않은 고급품들. 이 정도의 건물은 과연 공주라는 사람이 가질 만한 물건이기는 한데. 너무 작지 않나.

잘 왔다, 오랜만이구나 모두들.”

가냘픈 목소리가 들려왔다. 얀은 가슴에 손을 얹고 허리를 숙였고 단도 후다닥 허리를 숙였다.

고개를 들라.”

고개를 들면 그 곳에 있는 사람은 짙은 녹색 머리카락이 물결치는 듯 흘러내린 순한 인상의 사람이다. 놀랍게도 장식은커녕 레이스 한 자락도 달리지 않은 간소한 옷차림인데다 발은 맨발이었지만 가장 눈을 끄는 것은 플로라를 태운 커다란 사슴이다. 사슴이 무릎을 굽히자 플로라는 미끄러지듯 땅에 내려섰고 몇 번 박수를 치자 너구리가 바구니를 들고 뒤뚱뒤뚱 걸어왔다.

원래라면 테이블에서 차를 마셔야겠으나 이 집에는 부릴 사람이 없으니 부디 이것으로 만족해다오.”

바구니 안에서 나온 것은 널찍한 천이었는데 새들이 귀퉁이를 물어 풀밭에 넓게 펼쳤고 깨끗해 보이는 접시와 찻잔이 그 위에 놓였다. 플로라는 손수 찻주전자를 잡았다가 파득 놀라며 손가락을 움켜쥐었다.

, 뜨거워!”

괜찮아요?”

로즈가 펜으로 동그라미를 그리자 그 안에서는 녹색 동그라미가 있는 간호모를 쓴 간호사가 솟아났다. 간호사가 플로라의 손을 찬물로 식혀주는 동안 로즈의 메이드가 사람들에게 차를 따르고 간식을 꺼냈다. 얀은 플로라를 빤히 쳐다보다가 플로라의 곁에서 안절부절 못 하는 너구리며 저만치 떨어져서 지켜보는 대형 동물로 시선을 옮겼다가 생긋 웃었다.

좋아 보이는군요, 공주님.”

얀 오빠, 공주님은 지금 손가락을 다쳐, , 다구요!”

그 말에 플로라는 하얀 찻잔을 잡은 로즈를 내려다보았다.

로즈는 내 모습이 이상하지 않으냐?”

이상하다니, 어디가요?”

플로라가 얀에게로 시선을 보내자 얀은 미소띈 얼굴을 한 번 기울였다.

로즈는 어렸으니까요.”

로즈도 잘 컸군.”

자상한 미소를 지으며 성공을 축하하는 말과 격려를 건네려는 찰나에 문이 거칠게 열렸다. 숨기려들지 않는 가죽 날개와 한 쌍의 뿔이 돋은 잘생긴 얼굴은 낯익은 것. 언제나 겉으로 보이는 나이와 걸맞지 않는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곤 하는 그 얼굴은, 로즈를 보자마자 활짝 밝아졌다. 아이답게.

어서와, 로즈!”

여긴 판의 집이 아니에요.”

로즈는 미간을 찡그리며 자신의 옆자리를 탁탁 쳤다. 플로라의 옆에 있던 너구리는 로즈가 내미는 비스킷을 찻물에 담가 씻고, 또 받아 씻고, 씻고 있었는데 플로라가 헛기침을 하자 고개를 번쩍 들었다.

로즈, .”

?”

숲에 가면 꽃이랑 딸기가 많이 있으니까 가서 놀다가 오렴.”

플로라는 작은 바구니를 가지고 오라고 지시했다. 메이드가 가지고 온 작은 바구니에 과자와 차 한 병을 담은 것을 내밀자 로즈와 판은 바구니를 들고 숲으로 갔다.

저 둘만 가기에는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아이들이 사라진 쪽을 보던 단이 묻자 마악 차 한 모금을 마신 플로라는 잔을 내렸다.

이 숲에 있는 한 괜찮아.”

나는 이 숲에 일어나는 일을 모두 알 수 있느니라, 하고 말하는데 얀이 손을 들었다.

그럼 이제 온 이유를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말하라.”

얀과 단은 설명했다. 세이렌의 부탁, 푸른 아이들, 여왕님의 명령이며 모든 것을. 그 이야기를 들은 플로라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싫다.”

플로라 공주님.”

가기 싫다.”

왕족의 반열에 오르셨는데 한 번은 가셔야지요.”

사람은 싫다, 귀족은 더더욱 싫어.”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단은 그들의 주위에 기척이 늘어난 것을 알아차렸다. 유감스럽게도 그 기척은 호의적이지 않는데다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 같아서 습관적으로 허리춤으로 손을 가져가려 하자 얀이 그 손을 눌렀다.

우드는 이미 나를 버렸다. 나는 이 곳에서 죽을 때까지만 사는 것이 소원일 뿐, 밖으로는 한 걸음도 나가고 싶지 아니하다.”

우드의 사람들을 나쁘게 보는 것은 이해하지만 세이렌과 여왕님을 생각해주십사 합니다.”

나는 우드를 공작까지 끌어올린 것으로 모든 것에 대한 대가를 지불했으니. 더는 할 말 없다.”

원하신다면 그들이 가까이 오지 못하게 조치를 하겠습니다.”

너는 이해하지 못한다. 애당초 가족 때문에 괴로워본 적 없는 자가 가족 때문에 괴로워지는 마음을 어떻게 안다는 말이냐.”

다니엘은 공주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지는 것을 보았다. 그렇지만 이 옆의 헨리는 케이크에 포크를 꽂아 넣을 뿐 조금도 긴장하거나 당황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그렇기에 긴장하는 것은 오히려 다니엘 자신뿐인 것 같다.

우드 공작, 공작의 남편, 그들의 아들과 딸을 모두 치우면 됩니까?”

헨리, 그런 소리를 함부로 하면 안 돼.”

나는 진지하다니까. 공주님의 문제가 그걸로 해결된다면 나쁘지 않잖은가?”

안돼와 돼 뿐인 말을 하는데 플로라가 손을 저었다.

조용히 좀 해 보아라. 누구 하나는 살려두어야 하지 않겠나.”

어째서 살려두려고 하시는 겁니까?”

공작의 다른 귀찮은 일을 떠맡아야 하지 않으냐.”

그렇게 말하는 플로라의 얼굴은 좋지 않았다. 때문에 얼마 안 있어 숲에서 비명소리가 들리자 플로라는 오히려 안도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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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어냐.”

 

안녕, 우리 또 만났네?”

 

단단한 빙하는 어부 길드 앞에서 낯익은 사람들을 만났다.

 

봄처녀 드레스에 꽃이 달린 넓은 밀짚모자를 쓴 세 사람은 자매라고 해도 좋을 만큼 닮아 있었으나 단단한 빙하의 앞을 가로막고 노려보는 것을 보자면 자매라기보다는 주종에 가깝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아니, 언니에게 가까이 오지 말아라, 이 벌레!”

 

무엇 때문에 이리 오는 것이냐, 먹이를 구하러 가든 짝을 찾으러든 가란 말이다.”

 

심지어 둘이 팔을 벌리고 막아선 것을 보자니 꼭 사나운 짐승이 다가오지 못하게 지키는 것 같으니 원.

 

예를 들면 멧돼지 같은 걸로부터.

 

우리 길드장님은 도끼로 마빡을 쪼개라고 했지만.

 

아무튼 이러면 내가 너무 억울하잖아? 내가 뭘 했다고?

 

거기 아가씨.”

 

기껏해야 바람신의 영역에 들어서자마자 달려가서 포옹하고 윙크하고 손 키스하고 또 뭐더라, 아무튼 그런 것밖에 안 했는데 말이야.

 

날씨도 좋은데 나랑 차 한 잔 어때?”

 

그러자 치라다와 수파르나는 캬악 소리를 냈다.

 

무례하다, 이놈!”

 

언니, 이런 녀석의 말은 들을 것도 없습니다.”

 

아웅다웅 하려는 때 선장이 끼어들었다.

 

이 배는 코스타 델 솔로 가는 배다. 갈 거면 얼른 타라고!”

 

가루다와 둘, 그리고 단단한 빙하는 조그만 배에 올라탔다.

 

돛을 불룩 부풀게 할 정도의 순풍이 계속해서 불었고, 선장은 이맘때에는 이런 바람이 불지 않는데 이상하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치라다는 투명하게 빛나는 바닷물 아래로 보이는 수십 가지 산호초와 물고기들, 커다란 상어에 금방 시선이 팔렸고 상어가 배 옆을 지나가자 잡으려고 손을 뻗었다가 선장에게 제지당했다.

 

순식간에 항구에 도착한 배는 멀미로 고생하는 모험가들을 한 무더기나 쏟아냈고 가루다는 치라다와 수파르나를 데리고 사뿐하게 판자 위로 올라섰다.

 

아가씨, 이제 어디로 가?”

 

코스타 델 솔에 오면 게게루주라는 벌레에게 가 보라고 그러더구나, 그리로 갈 예정이다.”

 

뭐어? 누가 그런 말을 해?”

 

안경을 쓴 털꼬리 달린 것이 그러했다.”

 

게게루주 옆에 있는 그 사람인가.

 

그런 사람에게는 가는 거 아니라며 단단한 빙하는 손을 내저었다.

 

됐어, 내가 데려다줄 테니까. 어디로 가고 싶어?”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을 수 있는 곳이 좋으니라.”

 

그리고 아마 바다에서 놀 만한 곳이겠지.

 

남의 눈이 쉽게 닿지 않을 장소라면 숨겨진 폭포가 있겠지만 거기에는 항상 호젓한 산골자기가 폭포 물을 맞고 있고, 그 앞에 있는 정자에는 항상 미코테족 무희들이 춤을 추고 있다.

 

커다란 에테라이트를 지나고 바위가 깎여나간 아래로 한참이나 걸어서 데려간 곳은 흰 갈매기 탑 아래쪽 해안가.

 

이 즈음이면 괜찮겠다고 말을 하자마자 야만신과 그 분신은 옷과 모자를 벗어던졌다.

 

이 텐트 같은 것 정말 귀찮았느니라!”

 

귀찮았습니다-”

 

치라다는 첨벙 물에 뛰어들었고 수파르나는 모래 위에 돗자리를 깔고 커다란 바구니를 내려놓았다.

 

바구니에서는 영원한 소녀 주점이나 레스토랑 비스마르크에서 사온 것이 분명한 다과와 차가 나왔고 가루다가 손짓하자 수파르나는 단단한 빙하 쪽을 힐끔힐끔 보았지만 결국 치라다를 따라 물에 들어갔다.

 

날씨는 정말 좋아서 바닷물은 햇빛에 반짝이며 바닥의 모래알까지 투명하게 비추었고 부드러운 모래에 달구어진 바람이 이국적인 꽃향기를 품고 몸에 감기는데다 이따끔 웃음소리가 들릴 때면 커다란 파도가 두 분신을 덮치며 부서졌다.

 

물이 짜! 라던가 깃털이 다 젖었다던가 하는 소리가 들리고 가루다는 비스마르크 샌드위치를 집어 포장 종이를 벗겼다.

 

포장 종이를 벗기고 호두가 박힌 빵을 들어 올리자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아삭 소리가 날 듯 신선한 라노시아 양상추와 쿡 찌르면 노른자가 흘러내릴 것 같은 아프칼루 알이 드러났고 단단한 빙하는 가루다가 양상추 냄새를 맡는 동안 바구니에서 마도사 모양 쿠키를 꺼냈다.

 

빼앗겼지만.

 

네놈에게 주려고 가져온 것이 아니다!라고 가루다가 말한 것도 아니고.

 

수파르나가 빼앗은 것도 아니고.

 

치라다는 물 속에 들어가서 나오지 않은 게 이미 한참이다.

 

고개를 돌린 단단한 빙하와 가루다는 한 떼의 노랗고 푸른 새와 마주쳤다.

 

납작하고 날렵한 날개에 뭉툭한 부리를 가진, 보통은 사람에게 먼저 덤비지 않는 새.

 

이 새들의 이름은 아프칼루라고 한다.

 

 

 

 

 

 

 

아프칼루들은 열심히 덤볐지만 한 명은 야만신이고 한 명은 그 야만신도 때려눕히는 전사였으니 결과는 안타까웠다.

 

그래도 비스마르크 샌드위치를 훔치는 데는 성공해서, 그 새떼들은 우르르 도망쳤고 단단한 빙하와 가루다는 뒤를 쫓아가려다 그 새들이 뱉어놓고 간 정어리를 밟고 미끄러졌다.

 

“...난폭한 새로다.”

 

가루다는 단단한 빙하의 갑옷에 얹힌 정어리를 집어 멀리멀리 던졌다.

 

- 갑옷에서 정어리 냄새 나겠네.”

 

무어 하느냐.”

 

가루다는 새 같은 발을 움직였다.

 

우리도 바다에 들어가도록 하지.”

 

 

 

 

 

오후 내도록 놀고, 어두워지면 산호에서 나오는 빛 위에서 또 놀고, 다시 림사 로민사로 돌아가는 배를 타러 갈 때는 한밤중이 된다.

 

벗어던진 봄 처녀 드레스를 다시 입고 밀짚모자를 쓰면 인간과 다른 부분은 가려지고 치라다와 수파르나는 기대앉아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부드러운 바람이 돛대를 부풀렸고 소금기를 머금은 바람이 손길처럼 피부를 스친다.

 

달이 바다에 비치는 것을 보다가 단단한 빙하가 입을 열었다.

 

또 여행 갈 거야?”

 

인간의 관심이 이제 우리의 신도에게 있지 않으니 우리는 때로 불러와질 뿐 할 일이 없느니라.”

 

오고모로 화산구의 그 녀석처럼 아이들을 끌어안고 살지도 아니하고 잔라크의 그 녀석처럼 조용하게 수양할 생각도 없으니 나는 이렇게 다니는 것이다.

 

배는 어부 길드 앞에 닿았고 가루다는 두 분신을 데리고 배에서 내렸다.

 

한 번만 말하는 것이니 똑똑하게 듣거라.”

 

단단한 빙하는 절그럭거리는 갑옷을 메고 배에서 내렸다.

 

다음은 다날란이니라.”

 

 

아티산과 왕자님

2018. 5. 5. 04:41 | Posted by 호랑이!!!

A는 푸른 색 봉투에 찍힌 은색 삼각형을 노려보았다.

 

이 나라의 국기는 신, 귀족, 백성을 뜻하는 삼원으로 되어 있고 자신의 소속에 따라 삼원의 부분을 그리는 것이 정석이다.

 

농사와 목축이 주된 일인 백성과 친한 농사의 여신이나 짐승의 신은 백성을 포함한 구역과 신을 그리고 귀족과 관련된 부분은 제외하며 귀족 중에서도 신전과 연이 있는 사람은 그 부분까지 온전하게 원을 그리는 것이 일례.

 

그러나 그 삼원의 가운데에 있는 삼각형은.

 

, 귀족, 백성, 그 모든 것의 위에 있다는 왕가의 상징.

 

“...가기 싫어....”

 

왕실 직속 배달부가 직접 우편을 가져다주고 큰 소리로 임명장을 외는 바람에 주위 사람들의 시선은 쏠렸지, 거부권이라는 건 없고, 거기에 더해서 이사까지 해야 할 테니까.

 

좋지 못한 기억을 떠올리다가 A는 문득 한 사람을 떠올렸다.

 

자신이 탄 마차가 궁전을 빠져나갈 때 울면서 손을 뻗던 아주 작은 아이를.

 

그 때 스물이었던 자신이 벌써 마흔이 넘었으니 그 분도 이제 스물은 넘었겠군.

 

오빠.”

 

“B, 들어올 때는 노크 좀 해.”

 

뭐 어때, 오빠는 어차피 공부밖에 안 하잖아.”

 

올해 마흔 살이 되는 B는 어린 나이부터 백작 지위를 물려받아 훌륭하게 가문을 이끌어나가고 있다.

 

B는 은색 삼각형이 찍힌 봉투를 마음대로 열더니 안에 든 임명장을 읽었다.

 

“...기술의 궁전에서 숙식하며 그 장으로서 일하고 공헌해주기를 바란다, 이거 나쁘지 않네.”

 

뭐가 나쁘지 않아? 정말 가기 싫어!”

 

아티산 직위잖아? 오빠는 그냥 자작이니까 백작 대우인 아티산은 파격적이도록 좋은 조건 아니야?”

 

사람 많은 곳은 싫어. 발표회는 어쩔 수 없다지만 무도회 같은 게 열리면 또 일해야 하고, 무슨 행사라도 생기면 거기서 일할 테고. 그러면 또....!”

 

안 갈 거야?”

 

가야지. 그 말을 하고 A는 눈을 내리깔았다.

 

그럼 됐어. 필요한 것만 간소하게 가지고 올라가고 나머지는 거기서 사.”

 

깔끔하게 정리하고 BA를 마차로 올려 보냈다.

 

그것이 겨우 일주일 전.

 

왕궁 안에 있는 건물 중에 따로 떨어진 기술의 궁전이라고 불리는 별채는 여러 발표회와 왕손의 교육을 위해 호화롭게 지어져 있었다.

 

원래는 연금 부서, 마법 부서, 연마 등 각 부서의 고위직만도 스무명이 넘었고 아래 연구원이나 직원까지 합하면 백 명이 넘었지만.

 

A가 돌아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만둘 수 있는 사람들은 전부 그만두어 연금 부서의 총 인원은 다섯 명, 대장장이 일을 하는 연마 부서는 열 명, 행정직 직원들도 반수 이상 그만둔데다 A 직속인 마법 부서는 겨우 세 명이다.

 

그런 주제에 잡무는 많고, 그래서 연구도 진척이 없고, 아티산인 자신은 이런저런 일에까지 불려나간다.

 

원래라면 60분으로 주어진 점심시간에서 30분을 서류에 쏟아 부은 오늘도 지쳐 A는 비척비척 바깥으로 나갔다.

 

왕실 정원사가 돌보아주는 정원은 보기 아름답고 쉬기에도 좋지만 사람의 발길이 닿은 흔적이 없다.

 

누군가는 시간에 늦지 않게 자신을 깨워야 할 텐데.

 

그런 생각을 하며 A는 그늘이 드리워진 벤치에 몸을 뉘였고 따뜻한 바람이 뺨을 간질이는 것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왜 사람들이 이렇게 없는지, 왜 잡무까지 기술의 궁전까지 넘어왔는지는 알고 있지만.

 

그래도.

 

“...또 그만둘까보냐...”

 

웅얼거리는 소리를 마지막으로 의식이 사라졌다.

 

이십분이 지나 본 궁전에서 A에게 일을 맡기러 왔지만, 그 사람들은 누군가의 손짓에 곤란해 하면서도 돌아갔다.

 

누군가는 높았던 해가 가라앉고 어두운 하늘에서 별이 뜰 때까지 옆에 앉아 있다가 누군가가 찾으러 오자 그제서야 어깨에서 망토를 풀어 A의 위에 덮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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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칼님네 걔들]

2018. 4. 24. 10:27 | Posted by 호랑이!!!

적당히 따뜻하고 선선한 그리다니아에서 나와 천천히 걷다보면 조그마한 다람쥐나 무당벌레 같은 것들이 돌아다녔고 길을 따라 걷다 보면 깃털 달린 이크살족이 있다.

 

무당벌레가 있고, 청설모가 있고, 이크살족이랑, 그리고.

 

또 요엘과 에녹이 여기 있다.

 

이 쪽이지?”

 

우리 때랑 그렇게 많이 바뀌지는 않았네.”

 

요엘은 지도를 펼쳤다.

 

그거 알아? 우리 때랑 같은 지도를 쓰고 있더라고.”

 

그래?”

 

바보, 그 엄청난 일이 있었는데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게 더 신기한 일이라고.”

 

심지어 청동호수 쪽 지도도 다르지 않단 말이지.

 

그렇지만 사람들이 커르다스에 대해 말한 것은 좀 다르다.

 

그리다니아보다 따뜻한 기후, 끝없이 펼쳐진 초원, 피어난 색색의 꽃과 나비가 기억하는 커르다스이건만 사람들에게 커르다스에 갈 거라고 이야기를 할 때 돌아오는 말이라고는 두꺼운 옷을 챙기라는 말이 전부였다.

 

그래서 구할 수 있는 만큼 두꺼운 방한모에 장갑과 외투, 신발을 준비했는데 가을박 마을을 다 지나갈 때까지도 날씨가 바뀌려는 기색은 없다.

 

그냥 그리다니아 시가지보다 조금 더 서늘하고 메마른 기후로군.

 

사람들 말을 들어보자면 가을박 마을 옆으로 난 길로 쭉 가면 된다고 했는데 얼마쯤 걸어가도 기후가 바뀌려는 기색은 보이지 않는다.

 

역시 조사가 더 필요했어.

 

요엘은 지도를 접어 가방에 쑤셔 넣었다.

 

얼마간 걷다보니 뺨에 닿는 바람이 차가워졌다.

 

에녹은 요엘에게 외투를 둘러주었고 더 차가운 바람이 불수록 장갑, 모자를 짐에서 꺼내주었다.

 

가을처럼 높고 푸르렀던 하늘에는 서서히 먹구름이 끼고 풍요로워 보이던 황금빛 단풍들은 걸음을 뗄수록 칙칙한 색이 되어 요엘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춥고, 흐리고.

 

훅 내뿜은 입김이 안경에 하얗게 서려 잠깐 옷깃에 문질러 닦는데 무언가가 요엘의 얼굴에 닿았다.

 

차갑고, 얼굴에 닿자마자 녹아 사라지는 것.

 

에녹은 하늘을 보더니 상기된 얼굴로 외쳤다.

 

눈이다!”

 

? 눈이라고! 커르다스에?

 

요엘이 어이없어하는데 에녹은 요엘의 가방까지 등에 지더니 커르다스의 한복판까지 전력질주로 뛰었다.

 

, 슈가! , 아저씨야!”

 

 

데바데 헌트리스

2018. 4. 17. 16:29 | Posted by 호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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