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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들 6

2018. 6. 27. 04:21 | Posted by 호랑이!!!

 

그렇게 시작된 첫째 날.

 

가위바위보에 이긴 줄리아나는 즐거운 표정으로 초록이를 데리고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는 운전수도 없이 가고 있었는데 풍선이 잔뜩 달린 의자에 앉은 사람이 손을 들자 멈추어서 문을 열었다.

 

후다닥 뛰어 그 뒤에 줄을 서자 버스는 그 셋이 다 탈 때까지 기다렸다가 출발했다.

 

내부는 평범한 버스처럼 보였는데 예란이가 따로, 줄리아나와 초록이가 같이 앉았다.

 

지금 어디 가?”

 

우리 집.”

 

우리 집에는 커다란 온실이 있고 정원이 있고 그리고 또, 하고 이야기하던 줄리아나는 초록이가 바깥으로 눈을 힐끔힐끔 돌리자 웃었다.

 

바깥이 재미있어어?”

 

!”

 

바깥에 이것도 있고 저것도 있고 광고도 막-

 

[이번 정류장은 사거리 은행건물 앞, 은행건물 앞, 다음은...]

 

그렇구나, 신기하구나아.”

 

손이 뻗어오는가 싶더니 초록이는 예란이에게 맞은 팔뚝을 문질렀다.

 

, 너 그거 꼭 통과해야 한다고!”

 

못 하면 어떻게 되는데?”

 

줄리아나는 그 말에 여느 때처럼 우아하게 웃었다.

 

별 일은 안 생겨.”

 

정말?”

 

그냥 네 기억을 다시 지우고, 수정하고, 마법사는 못 되고, 예란이는 카드를 잃게 되고오.”

 

그리고 또, 라는 말에 초록이는 뭐가 또 있냐는 표정이 되었다.

 

우리는 헤어지는 거야, 영원히이.”

 

영원히?”

 

기억을 지울 때 우리 기억도 지우는 거지이.”

 

어때, 별 일은 아니지?

 

“...줄리아나네 집에 커다란 온실이 있다고?”

 

초록이는 가방을 뒤졌다.

 

핸드폰과 지갑 외에 있는 것은 충전기와 보조 배터리와 수첩.

 

수첩을 급히 펴들고 펜을 찾아 가방을 뒤지자 한 마디가 날아온다.

 

너는 요즘 같은 시대에 핸드폰 메모장을 안 쓰고 수첩에 펜이냐.”

 

그 쪽이 편하단 말이야.”

 

집에 가면 펜 몇 자루는 있을 테니까아, 하나 줄게.”

 

하나만 빌려주십시오.”

 

[이번 정류장은...]

 

버스는 한참을 달렸다.

 

처음에는 열심히 듣고 적던 초록이도 나중에는 지겨워지고 열심히 이야기하던 예란이도 줄리아나도 대화 주제가 다른 쪽으로 새는 것을 막지 않아서 버스에서 내릴 때는 어느샌가 주제가 최근에 본 영화로 옮겨가 있었다.

 

자아, 이쪽.”

 

줄리아나가 다가가자 철문 옆에 서 있던 경비가 고개를 숙였다.

 

엄마는 계시나요?”

 

아까 본관으로 들어가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집에 가면 펜 몇 자루는 있다, 고 했던 줄리아나를 따라 철문 안으로 들어서자 보이는 것은 거대한 유리 돔들이다.

 

반짝이는 유리 안으로 잎이 넓은 열대의 식물이 가득 자란 것이 보이고 광장이라는 이름이 더 어울릴 것 같은 뜰에는 계절과 어울리지 않는 잔디와 꽃이 그득했다.

 

초록이는 줄리아나를 따라 작은 건물 안으로 들어가며 기념품이라고 적힌 문패를 읽었다.

 

아가씨 오셨어요.”

 

다녀왔습니다아. 이쪽은 예란이랑 초록이라는 친구예요.”

 

아아, 이야기는 들었어요.”

 

볼펜 하나 가져가려고 하니까 적어 두세요.”

 

그러겠습니다.”

 

예란이는 줄리아나와 점원이 뭐라고 이야기하든 초록이를 펜이 놓인 진열대 앞으로 끌고 갔다.

 

나 저기 인형 좀 보면 안 돼?”

 

놀러온 거 아니잖아.”

 

그치만 저거- 엄청 폭신폭신해 보이고, 엄청 진짜 같고, 엄청 호기심이 들어-.”

 

안돼.”

 

초록이의 입술이 삐죽 나왔다.

 

3초도 못 가 펜에 정신이 팔렸지만.

 

나뭇결이 살아 있는 나무 볼펜(아래에는 가시에 찔리지 않는다는 문장이 붙어 있다), 향기가 나는 것, 진짜 나비가 앉아 얇은 날개를 팔락이는 것, 꽃이나 열매가 있는 것, 휘어지기도 하는 덩굴 모양, 이끼와 물이 담긴 유리공이 달린 등등.

 

다양하고 화려한 것들에 초록이는 진열대 앞으로 뛰어왔다.

 

이게 그거야? 이끼랑 물이랑 벌레를 넣어서 순환하는 완전한 생태계를 만든 거?”

 

유가암, 그거 사실 녹화 영상이야. 이끼의 생태를 관찰할 수 있어어.”

 

가끔 벌레 영상도 나오니까, 라고 줄리아나가 덧붙이자 초록이는 볼펜을 내려놓았다.

 

나비는 어때?”

 

“...나 나비도 싫어.”

 

펜을 들여다보다 초록이는 손을 멈췄다.

 

“..., , 그냥 펜이면 되거든. 이거... 굳이, , 그냥... 괜찮으니까? 그냥 펜이 좋으니까.”

 

모처럼이니까 기념품이라고 생각해.”

 

이것 봐, 라며 줄리아나는 꽃이 핀 볼펜을 들었다.

 

주기적으로 물과 햇빛을 주면 계속 잉크가 나오는 펜이야아. 벌레가 꼬이지 않게 처리했어.”

 

그건 엄마가 개발한 거고 그 옆에 통나무 볼펜은 내가 만든 거, 라고 줄리아나는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나무에 물이랑 햇빛을 주면 언젠가는 꽃과 잎이 필거야.”

 

나도 그렇게까지 자란 건 한 번밖에 못 봤지만- 무엇보다 그거 시간이 지나면 자라서 길어지니까 불편하려나아.

 

그걸 들어서 수첩에 긋자 보통 사용하는 볼펜보다는 묽은 듯한 잉크가 나왔다.

 

필기감은 어때?”

 

괜찮은... 것 같아.”

 

그립감도 괜찮고, 무슨 종류인지는 모르겠지만 폭신폭신해서 손목에도 좋은 듯하다.

 

그렇게 감상을 말하자 줄리아나는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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