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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어냐.”

 

안녕, 우리 또 만났네?”

 

단단한 빙하는 어부 길드 앞에서 낯익은 사람들을 만났다.

 

봄처녀 드레스에 꽃이 달린 넓은 밀짚모자를 쓴 세 사람은 자매라고 해도 좋을 만큼 닮아 있었으나 단단한 빙하의 앞을 가로막고 노려보는 것을 보자면 자매라기보다는 주종에 가깝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아니, 언니에게 가까이 오지 말아라, 이 벌레!”

 

무엇 때문에 이리 오는 것이냐, 먹이를 구하러 가든 짝을 찾으러든 가란 말이다.”

 

심지어 둘이 팔을 벌리고 막아선 것을 보자니 꼭 사나운 짐승이 다가오지 못하게 지키는 것 같으니 원.

 

예를 들면 멧돼지 같은 걸로부터.

 

우리 길드장님은 도끼로 마빡을 쪼개라고 했지만.

 

아무튼 이러면 내가 너무 억울하잖아? 내가 뭘 했다고?

 

거기 아가씨.”

 

기껏해야 바람신의 영역에 들어서자마자 달려가서 포옹하고 윙크하고 손 키스하고 또 뭐더라, 아무튼 그런 것밖에 안 했는데 말이야.

 

날씨도 좋은데 나랑 차 한 잔 어때?”

 

그러자 치라다와 수파르나는 캬악 소리를 냈다.

 

무례하다, 이놈!”

 

언니, 이런 녀석의 말은 들을 것도 없습니다.”

 

아웅다웅 하려는 때 선장이 끼어들었다.

 

이 배는 코스타 델 솔로 가는 배다. 갈 거면 얼른 타라고!”

 

가루다와 둘, 그리고 단단한 빙하는 조그만 배에 올라탔다.

 

돛을 불룩 부풀게 할 정도의 순풍이 계속해서 불었고, 선장은 이맘때에는 이런 바람이 불지 않는데 이상하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치라다는 투명하게 빛나는 바닷물 아래로 보이는 수십 가지 산호초와 물고기들, 커다란 상어에 금방 시선이 팔렸고 상어가 배 옆을 지나가자 잡으려고 손을 뻗었다가 선장에게 제지당했다.

 

순식간에 항구에 도착한 배는 멀미로 고생하는 모험가들을 한 무더기나 쏟아냈고 가루다는 치라다와 수파르나를 데리고 사뿐하게 판자 위로 올라섰다.

 

아가씨, 이제 어디로 가?”

 

코스타 델 솔에 오면 게게루주라는 벌레에게 가 보라고 그러더구나, 그리로 갈 예정이다.”

 

뭐어? 누가 그런 말을 해?”

 

안경을 쓴 털꼬리 달린 것이 그러했다.”

 

게게루주 옆에 있는 그 사람인가.

 

그런 사람에게는 가는 거 아니라며 단단한 빙하는 손을 내저었다.

 

됐어, 내가 데려다줄 테니까. 어디로 가고 싶어?”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을 수 있는 곳이 좋으니라.”

 

그리고 아마 바다에서 놀 만한 곳이겠지.

 

남의 눈이 쉽게 닿지 않을 장소라면 숨겨진 폭포가 있겠지만 거기에는 항상 호젓한 산골자기가 폭포 물을 맞고 있고, 그 앞에 있는 정자에는 항상 미코테족 무희들이 춤을 추고 있다.

 

커다란 에테라이트를 지나고 바위가 깎여나간 아래로 한참이나 걸어서 데려간 곳은 흰 갈매기 탑 아래쪽 해안가.

 

이 즈음이면 괜찮겠다고 말을 하자마자 야만신과 그 분신은 옷과 모자를 벗어던졌다.

 

이 텐트 같은 것 정말 귀찮았느니라!”

 

귀찮았습니다-”

 

치라다는 첨벙 물에 뛰어들었고 수파르나는 모래 위에 돗자리를 깔고 커다란 바구니를 내려놓았다.

 

바구니에서는 영원한 소녀 주점이나 레스토랑 비스마르크에서 사온 것이 분명한 다과와 차가 나왔고 가루다가 손짓하자 수파르나는 단단한 빙하 쪽을 힐끔힐끔 보았지만 결국 치라다를 따라 물에 들어갔다.

 

날씨는 정말 좋아서 바닷물은 햇빛에 반짝이며 바닥의 모래알까지 투명하게 비추었고 부드러운 모래에 달구어진 바람이 이국적인 꽃향기를 품고 몸에 감기는데다 이따끔 웃음소리가 들릴 때면 커다란 파도가 두 분신을 덮치며 부서졌다.

 

물이 짜! 라던가 깃털이 다 젖었다던가 하는 소리가 들리고 가루다는 비스마르크 샌드위치를 집어 포장 종이를 벗겼다.

 

포장 종이를 벗기고 호두가 박힌 빵을 들어 올리자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아삭 소리가 날 듯 신선한 라노시아 양상추와 쿡 찌르면 노른자가 흘러내릴 것 같은 아프칼루 알이 드러났고 단단한 빙하는 가루다가 양상추 냄새를 맡는 동안 바구니에서 마도사 모양 쿠키를 꺼냈다.

 

빼앗겼지만.

 

네놈에게 주려고 가져온 것이 아니다!라고 가루다가 말한 것도 아니고.

 

수파르나가 빼앗은 것도 아니고.

 

치라다는 물 속에 들어가서 나오지 않은 게 이미 한참이다.

 

고개를 돌린 단단한 빙하와 가루다는 한 떼의 노랗고 푸른 새와 마주쳤다.

 

납작하고 날렵한 날개에 뭉툭한 부리를 가진, 보통은 사람에게 먼저 덤비지 않는 새.

 

이 새들의 이름은 아프칼루라고 한다.

 

 

 

 

 

 

 

아프칼루들은 열심히 덤볐지만 한 명은 야만신이고 한 명은 그 야만신도 때려눕히는 전사였으니 결과는 안타까웠다.

 

그래도 비스마르크 샌드위치를 훔치는 데는 성공해서, 그 새떼들은 우르르 도망쳤고 단단한 빙하와 가루다는 뒤를 쫓아가려다 그 새들이 뱉어놓고 간 정어리를 밟고 미끄러졌다.

 

“...난폭한 새로다.”

 

가루다는 단단한 빙하의 갑옷에 얹힌 정어리를 집어 멀리멀리 던졌다.

 

- 갑옷에서 정어리 냄새 나겠네.”

 

무어 하느냐.”

 

가루다는 새 같은 발을 움직였다.

 

우리도 바다에 들어가도록 하지.”

 

 

 

 

 

오후 내도록 놀고, 어두워지면 산호에서 나오는 빛 위에서 또 놀고, 다시 림사 로민사로 돌아가는 배를 타러 갈 때는 한밤중이 된다.

 

벗어던진 봄 처녀 드레스를 다시 입고 밀짚모자를 쓰면 인간과 다른 부분은 가려지고 치라다와 수파르나는 기대앉아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부드러운 바람이 돛대를 부풀렸고 소금기를 머금은 바람이 손길처럼 피부를 스친다.

 

달이 바다에 비치는 것을 보다가 단단한 빙하가 입을 열었다.

 

또 여행 갈 거야?”

 

인간의 관심이 이제 우리의 신도에게 있지 않으니 우리는 때로 불러와질 뿐 할 일이 없느니라.”

 

오고모로 화산구의 그 녀석처럼 아이들을 끌어안고 살지도 아니하고 잔라크의 그 녀석처럼 조용하게 수양할 생각도 없으니 나는 이렇게 다니는 것이다.

 

배는 어부 길드 앞에 닿았고 가루다는 두 분신을 데리고 배에서 내렸다.

 

한 번만 말하는 것이니 똑똑하게 듣거라.”

 

단단한 빙하는 절그럭거리는 갑옷을 메고 배에서 내렸다.

 

다음은 다날란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