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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글/19금] 바나나

2015. 10. 19. 0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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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든] 말 안듣는 동생

2015. 10. 18. 04:28 | Posted by 호랑이!!!

다이무스씨, 전화 왔습니다.”

 

휴식시간, 다이무스는 눈을 감고 푹신한 의자에 기대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문이 열리더니 사무직원 중 하나가 손짓을 했다.

 

어디에서 온 전화지.”

 

기사단입니다.”

 

벨져의 기사단인가, 이번에는 또 무슨 일로?

 

다이무스는 전화를 받으러 걸어가는 동안 머리를 굴렸다.

 

그러고보니 어제 저녁에 벨져가 음식을 남기는 것에 대해, 오늘 아침은 머리를 묶지 않는 것에 대하여 짧게 잔소리를 했지.

 

그 때문에 지금 벨져의 상태는 아마.

 

1. 여기저기 성질을 부린다.

 

...라던가.

 

2. 기사단 앞으로 비싼 물건을 주문해 놓아 다른 사람들을 곤란하게 만들었다.

 

...라던가.

 

다이무스 홀든입니다.”

 

왜 다들 벨져를 어려워하는지 모르겠군.

 

까탈스럽고 까다로운 아이이긴 하지만 어려워 할 아이는 아닌데.

 

[벨져 홀든 경이 보이지 않습니다]

 

3. 가출.

 

다이무스는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문질렀다.

 

전언 철회, 성질 더러운 동생이다.

 

벨져 이 녀석은 일전의 긴 가출 동안 자신이 사라지면 형이 찾는다는 것을 깨달아서 뭔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툭하면 가출해대기 시작했다.

 

어차피 찾으면 자신의 집 침실에서 누워 있거나 서재로 쓰는 방 구석에 있겠지.

 

어찌나 가출을 해대는지, 이젠 저 기사단도 자신에게 찾아달라고 전화를 한다.

 

바빠서 못 찾을 것 같군요.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그리고 저쪽이 뭐라고 하건 간에 수화기를 놓았다.

 

휴식시간은 아직 얼마간 더 남았으나, 빨리 종이와 펜을 손에 쥐고 서류를 처리하고 싶었다.

 

그래서 땡땡 종이 치고 휴식시간이 끝나고, 다시 종이 쳐서 퇴근 시간임을 알릴 즈음에도 계속 손을 바삐 움직였다.

 

커튼을 치지 않은 창 밖으로 노을이 지고 있었고 옆으로 손을 더듬어 아까 타서 옆에 둔 홍차를 찾았으나, 없다.

 

고개를 들어보니 언제 들어왔는지 벨져가 한 손에는 홍차 잔을 손에 쥐고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뭐냐, 벨져.”

 

형아는 나 걱정도 안 되는가?”

 

전혀.

 

무슨 불의의 사고에 휘말렸대도 사고를 친 쪽이 불쌍하지 휘말리는 벨져는 안 불쌍하다.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건만, 이 동생들은 다이무스의 표정에서 생각을 읽어내는 것이 너무나도 능숙해서.

 

벨져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고 손목을 휙 뒤집어 다이무스가 보던 서류에 찻물을 확 끼얹어 버리더니 문 밖으로 성큼성큼 걸어나갔다.

 

벨져.”

 

찻물이 서류에 번져 글을 읽을 수가 없군.

 

벨져의 발소리는 멀어져만 갔다.

 

벨져 홀든!”

 

, 이 말 안 듣는 녀석.

 

다이무스는 미간을 문질렀다.

 

오늘 저녁에는 무릎 위에다 엎어놓고 빨갛게 자국이 나도록 때려 주지.

 

 

[다이글?/연령반전] 망나니가 되오리다

2015. 10. 17. 02:07 | Posted by 호랑이!!!

접니다 형님.”

 

어서와 다이무스.”

 

노크를 하고 들어서면 난롯가의 안락의자에 앉아있는 이글, 형이 보인다.

 

밖은 비가 내리고 있어 창문에 부딪힌 비가 흘러내리고 있지만 이 방 안만은 다른 세상인 양 따뜻하고 건조하다.

 

타닥타닥 난롯가의 불은 소리를 내며 타오르고 제가 끓여 들고 온 홍차는 좋은 향기를 주위로 퍼뜨렸다.

 

이번에 학교를 졸업했다지? 회사로 올 거야?”

 

“...아뇨, 가지 않습니다.”

 

그러자 이글 홀든, 차기 가주는 읽던 책에서 눈도 떼지 않고 계속 말을 이었다.

 

기사단? 벨져처럼?”

 

아니오.”

 

설마하니 연합으로 가겠다던가 그런 말은 하지 않겠지.”

 

비록 이글의 눈은 책에 박혀있다지만 그 너머로 자신 역시 신경쓰고 있다는 것을 아는 다이무스는 고개를 저었다.

 

검을 놓을 것입니다.”

 

.

 

책이 덮였다.

 

다이무스?”

 

이글은 그 말을 믿을 수 없었다.

 

다이무스 홀든, 자신의 막내동생이 어떤 이던가.

 

무뚝뚝하고 고결하여 이야기 속에나 나오는 고귀한 기사 같던 게 유일하게 승부욕을 보이고 즐거워하던 것이 검 뿐인 녀석이.

 

검을 놓는다니.”

 

놓을 것입니다.”

 

검을 놓는다고? 이글은 다시 다이무스가 한 말을 되뇌어 보았다.

 

상상이 안 가는데? 정말로? 지금 저 녀석이 내가 알아듣는 언어로 얘기한 게 맞나?

 

형님.”

 

다이무스는 진지한 얼굴로 이글을 불렀다.

 

아주 진지한 결심을 말하면서.

 

저는 망나니가 되겠습니다.”

 

이글은 입을 떡 벌렸다.

 

팽팽하게 잘 돌아간다고 자부하던 머리가 지금만은 굳어서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데, 다이무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할나위없이 절도있고 격식을 차린 자세로 뚜벅뚜벅 걸어나가서는, 심지어 이만 실례하겠습니다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닫혔다.

 

오 세상에.

 

이글 홀든, 유서깊은 홀든 가의 차기 가주이자 유달리 출중하다는 평을 듣는 삼형제 중 첫째, 다시 말해서 장남은.

 

올해로 스물넷 먹은 제 동생의 때늦은 반항기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책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랬던 것이 불과 며칠 전, 이글은 집으로 연락이 와서 어딘가의 변두리에 있다는 술집으로 갔다.

 

저보다 커다란 동생이라 간신히 어깨에 팔을 걸치게 해 부축하면서 이글은 한숨을 쉬었다.

 

확인해볼 것도 없이, 동생의 지갑은 벌써 다 털렸을 것이고.

 

중간에 싸움까지 했는지 그 잘생긴 얼굴에는 길게 상처까지 났다.

 

망나니짓을 한다 해도 밤이면 돌아오고 아침에야 나가곤 하는데 분명 오늘 아침에는 얼굴에 저런거 없었단 말이지.

 

“...요령없는 놈.”

 

“...... ...니다...”

 

입을 열자 알콜 냄새가 훅 풍겨온다.

 

쯔쯔 혀를 차며 이글은 계속 걸음을 걸었다.

 

조용하고 사람 없는 좁은 거리 위로 새까만 하늘에 구름이 끼어 달빛조차 흐린 곳을.

 

작정하고 반항한다고 하는 것이 내가 열 몇 살 때 하던 짓보다 못하니, 넌 아무래도 반항아는 못될 것 같네~”

 

어둡고, 사람 없고, 집까지 가는 길은 멀다.

 

적막하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조용하고 무뚝뚝한 막내는 술에 취했으니, 이글은 이 때가 좋으리라 싶어 딱 조용함에 어울릴 정도의 목소리를 조근조근하게 입에 올렸다.

 

“...그래서, 왜 뜬금없이 반항을 하는 거야.”

 

다이무스는 멈칫, 하더니 다시 걸음을 비틀거렸다.

 

“...저는 강해져봤자, 라고 생각했습니다.”

 

가문의 분란의 씨가 되고 싶지 않다.

 

괜히 여기저기 이용되다가 누군가의 짐이나 걸림돌이 되고 싶지 않다.

 

작은형은 결국 원하는 곳으로 떠나 가문에서 벗어났으나 자신은 쓸데없이 미련이 많아 어디로도 떠나지 못하겠지.

 

이글은 두어번 더 채근했으나 다이무스는 입을 꽉 다물었다.

 

별 것 아닌 사람으로 보이고 싶다.

 

가치 없는 사람으로 보여서, 형님 옆에 남아서.

 

온전히 가문을 받치는 작은 돌멩이이고 싶다.

 

기둥 따위, 주춧돌이 아니어도, 한 장 유리가 되어 창을 메우거나 한 겹 얇은 천이 되어 집을 깨끗하게 할 수 있다면 그 어디 보람차지 않을까.

 

이글은 그런 다이무스를 보고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요령없는 놈.”

 

그리고 생각했다.

 

만약에 이것과 반대라 자신이 막내였더라면.

 

그랬더라면 자신도 이와 같은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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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랑 외식하자.”

 

이글은 여느때처럼 높게 묶은 머리를 살랑거리면서 다이무스의 사무실로 들어왔다.

 

다이무스의 눈빛이 탐탁찮다는 듯 바뀌자 이글은 허둥허둥 거기에 몇 마디를 덧붙였다.

 

내가 쏘는거야! 형 지갑 스틸하려는 것도 아니고 이거 빌미로 뭐 해달라는것도 아니고 일부러 비싼거 시켜놓고 어라, 지갑이 없네에~’하려는 것도 아냐!”

 

그러고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눈빛은 가시질 않는다.

 

이글.”

 

약간의 침묵이 있었고 마침내 다이무스가 입을 열었다.

 

“‘쏜다는 말은 어디서 배운 거냐. 내가 분명 어린 나이니 연합에 간다는 철없는 선택을 할 수는 있을거라고 했지만-”

 

“...책임을 지라고, 네에 네에.”

 

이글은 건성건성 대꾸하다가 다이무스의 눈매가 사나워짐을 느끼자 헛기침을 하고 짐짓 예절바른 모습으로 팔을 움직였다.

 

금일, 홀든 다이무스님의 탄신일을 맞이하야 기쁜 마음으로 데이트를 신청하고 싶습니다만 저녁식사라도 함께 어떠십니까.”

 

다이무스는 무어라 한 마디 야단이나 잔소리라도 할 것처럼 입을 열었다가 짤막하게 한숨을 쉬었다.

 

“...알았다. 옷은 뭘 입고 가지? 평상복?”

 

아니! ~쁘게 차려입고 나와. 그럼 난 이만 가볼게!”

 

문이 닫혔다.

 

문 너머로 이글이 은행 아가씨들에게 수작질하는 소리가 들려 다이무스는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저번처럼 정장을 입고 갔더니 허름한 펍으로 데려가는 일만 없었으면 좋겠군.

 

경쾌한 발소리가 멀어져갔다.

 

...그래도 내 생일 챙겨주는 건 저 녀석밖에 없군.

 

 

 

 

 

 

 

저녁, 다이무스는 늦지 않게 약속장소에 갔다.

 

차림은 격식에 맞게.

 

그리고 약속시간을 조금 넘어서 나타난 이글을 본 다이무스는.

 

본디 표현이나 말이 적은 그였지만.

 

놀라움을 짧게나마 얼굴 가득히 띄웠다.

 

이글?”

 

짜잔~ 놀랐지~?”

 

장난기 가득한 표정에 경쾌한 웃음소리에, 거기까지는 자신이 알던 그대로고 예상했던 차림이지만.

 

나머지 부분이 평소와 엄청나게 다르다.

 

방해되지 않도록 대충 올려묶은 머리는 단정히 빗어 아래로 내려 묶었고(한때 벨져가 그랬던 것처럼) 보기만 해도 거슬리고 답답한 한가닥 앞머리는 넘겼는지, 보이지 않았다.

 

평소에는 갑주 안에도 아무것도 입지 않았고, 벨트도 왜 하는지 모를 정도로 헐겁게 늘어뜨리고 다니던 녀석이 단정한 아비 프락(연미복)에 크라바트라니.

 

놀랐나보네! 아하하!”

 

이대로 사진관에 데려가서 사진 한 장 박고 싶구나.”

 

그 말은 들은체만체하고, 이글은 다이무스의 손을 이끌어 제법 그럴싸한 레스토랑으로 데리고 갔다.

 

이글 홀든으로 예약했습니다.”

 

이쪽입니다.”

 

자리에 앉자 전채로 훈제한 연어를 멜론에 싼 것이 나왔다.

 

웨이터가 물러가자 가장자리의 포크를 집으며 다이무스가 먼저 입을 열었다.

 

예상 밖이구나.”

 

아하하, 어떠셔? 이 몸이 할 때는 한다는 말이지~”

 

기왕이라면 내 생일 같은 날보다는 집안의 중요한 일이나 그런 때 해줬으면 좋겠다만.”

 

에엥~ 무슨 말씀? 이글 홀든 24년 인생에 집안 최대 행사는 큰형아 생일이거든?”

 

전채요리를 담은 접시가 비워지자 수프가 나왔다.

 

다이무스의 취향에 맞는 것으로, 이글과 종류가 다른 것을 보아 신경 써서 예약한 것이 틀림없었다.

 

그 후의 생선, 고기 테린, 메인, 샐러드에 곁들인 와인까지 전부 그가 특별한 날에 즐기는 것이라.

 

다이무스는 꽤나 감동받았다.

 

형아~ 어때~ 만족스럽지이~”

 

“...테이블에 팔을 괴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다.”

 

퉁명스레 얘기함에도 이글은 다 안다는 듯 씩 웃는다.

 

“.....동생을 키운 보람이 있다, 정도는 생각하고 있다.”

 

아 웃기셔, 형이 키웠나? 한나가 키웠지.”

 

다음은 디저트 차례다.

 

달지 않고 깔끔하게 끝낼 수 있는게 좋겠지.

 

사실 어느 정도는 기대했다.

 

뻔히 마음에 차는 것을 알면서도 굳이 한 마디 말이나 머리를 쓰다듬는 것으로 칭찬을 받고 싶은지, 이글이 안절부절 못 하여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디저트 있지, 다크 초콜릿이랑 과일을 써서 형이 좋아할만한 걸로 해 달라고 했다~?”

 

기대되는군.”

 

다이무스의 눈가가 누그러졌다.

 

이글은 그들의 테이블로 웨이터가 다가오는 것이 보이자 초조하게 머리 끝을 손가락으로 감아대었다가 풀었다.

 

저 모습은 어릴적과 하나도 안 바뀌었지.

 

다이무스는 웨이터가 가져다주는 접시가 제 앞에 놓이자 코를 씰룩였다.

 

초콜릿과 과일을 듬뿍 얹은 케이크, 그리고 굳이 코를 가져다대지 않아도 느껴지는 단내.

 

이글이 기대에 가득 찬 눈으로 이 쪽을 보는 것이 느껴졌다.

 

다이무스는 이글 앞에 다른 접시가 놓이는 것을 보고는 작은 스푼을 들었다.

 

달그락, 달그락.

 

이글은 제 앞에 놓인 디저트를 신나게 퍼먹었다.

 

제 형이 앞에서 보기만 해도 달아빠진 초콜릿 디저트를 덤덤하게 먹는 것은.

 

글쎄, 동생에게 실망을 안겨주지 않겠다는 상으로서의 위엄 같은 걸까?

 

마침내 다이무스의 그릇이 비워지고 딸그랑 소리를 내며 숟가락이 떨어지자, 둘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 디저트 먹는 속도가 느리던데~”

 

배가 불러서 그랬던 거다.”

 

아까 형이 미간 찡그리는거 다 봤거든요!

 

레스토랑 밖으로 나오자 이글은 숨죽여 킥킥 웃으면서 냅다 달려들어 다이무스의 팔짱을 꼈다.

 

~, 그럼 오늘은 특별히...”

 

사진 찍으러 가지.”

 

? , ? 형아? 다이무스 형?!”

 

아이고 큰형이 나 납치한다~며 이글이 웃었다.

 

장담하는데, 이건 디저트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하는 거다.

 

냉철한 은행원이고 회사의 에이스에 홀든을 이을 장남?

 

...근데, 동생인 내가 봐도 귀여운데!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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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은 연합 소파에 길게 누워 있었다.

 

맨발에는 쇠 양동이가 걸려 이따끔 발을 흔들 때마다 휭 돌았고 늘 올려 묶던 머리는 풀어져 몸이며 소파 위에 흘러내렸다.

 

발치에는 양동이와 같이 쓰는 빗자루나 대걸레가 같이 놓여서 소파에 기대고 있었고.

 

아슬아슬하게 발가락에 걸어 몇 번 더 양동이를 흔들던 이글은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손가락에 감아 비비꼬며 전화기의 번호판을 손가락 끝으로 돌렸다.

 

차르륵 차르륵 기계 돌아가는 소리에 이어 얼마간 기계음이 나고, 수화기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나다]

 

잘 있었어?”

 

[별 용건이 없다면 이만 끊으마]

 

매몰차긴, 우리 형.

 

이글은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이번에 동양계 능력자들이 대거 참전했는데 말이야~ 그 중 둘이 그랑플람이거든?”

 

누가 들었다고 하더라도 요즘 제 주변에서 일어나는 근황 정도로 들릴만한 정보들을 말하고 나자, 손가락이 머리카락을 꼬는 것이 빨라졌고 어쩌다 실수로 양동이를 떨어뜨렸는데 조심스레 발끝을 뻗어 다시 걸었다.

 

있지- 이번에도 물어보는건데 말이야아-”

 

어딘가 머뭇거리고, 어딘가 말꼬리를 늘이고, 어딘가 수줍어하는 목소리.

 

마치 예닐곱살의 아이들이 좋아하는 여자아이에게 길에서 꺾은 들꽃을 내밀기 직전의 목소리.

 

이글은 그런 목소리로 속삭였다.

 

루이스 때문에 영국으로 오지 않는거면- 내가 죽여줄까?”

 

뎅겅-.

 

이글의 발에 걸린 양동이는 한 바퀴 크게 돌더니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왜 루이스를 죽이는데 그렇게 집착하는 거냐]

 

그치마안- 내가 여기서 형을 위해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겨우 그것밖에 없단 말야-”

 

맨발가락을 까딱까딱 움직이며 이글은 해사하게 웃었다.

 

천진하고 밝은 웃음이라서 누군가 보았다면 좋아하는 사람과 통화한다고 생각이 들 정도로.

 

죽이게 해줘- ?”

 

[네가 루이스를 죽여도 내가 그쪽으로 당장 가는 일은 없다]

 

네에-”

 

이글은 짐짓 토라진 목소리를 내어 대꾸하고는 허공으로 새끼손가락을 뻗었다.

 

그럼, 나중에 무슨 일 있으면 나 부를 거지?”

 

[...]

 

부를 거지?”

 

[...]

 

약속했다?”

 

수화기 너머에서 한숨 쉬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전화는 끊어졌다.

 

이글은 끊어졌다는 요란한 소리가 나는 수화기를 귀에 바짝 대고서 소파 위에서 굴렀다.

 

, . 벨져 형.”

 

너무 좋아.

 

바르작거리다 떨어졌는지 쿵, 소리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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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무스X이글] '지나치게' 감상적인

2014. 11. 2. 20:53 | Posted by 호랑이!!!

주위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건 간에, 다이무스 홀든은 스스로를 지나치게 감상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꽃잎이 떨어지는 광경이나 구름이 하늘에 흘러가는 모양을 하염없이 바라보거나 시 쓰는 일을 좋아하니까.

 

자신은 감상적이다.

 

가주는 감상적이어서는 안 된다.

 

자신은 가주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다.

 

그래서 때로 그는 생각했다.

 

차라리 벨져가 첫째로 태어났더라면 좋았을 것을.

 

분명 좋은 가주는 되지 못하더라도 스스로가 그 위치에 만족할 테니까.

 

다이무스는 창밖을 보다가 책상 위의 쌓인 서류로 시선을 돌렸다.

 

자신은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기억을 더듬어 보면 이글과 책을 읽던 일이 떠오른다.

 

그 책에서는 현학적이고 감상적인 현자가 나왔었고, 같이 책을 읽던 이글은 그 현자가 멋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어렸던 자신은 그 말이 뇌리에 박혔다.

 

현학적이고 감상적인 시라도 써 보려고 했다가 너무 형편없어서 물에 씻어버린 양피지도 여럿 되었었지.

 

그 생각에 이르자 굳어있던 눈가가 부드럽게 풀렸다.

 

"형아, 술 마시자."

 

갑자기 노크도 없이 불쑥 들어와 이글이 말했다.

 

'같이 마실래?'가 아니라 '마시자'인 만큼 이글의 손에는 글라스 두 개와 포도주 병도 들려 있었다.

 

뭔가 중대한 결심이라도 한 걸까, 안색은 굳었고 불안해 보였다.

 

매일 실없이 웃는 얼굴을 하던 이글이 저런 표정이라니.

 

아무래도 이상해서 서류를 하는 대신 같이 술을 마셔주기로 하고 다이무스는 책상에서 서류를 정리해 한쪽에 쌓아두었다.

 

이글은 의자를 가져와 털석 앉더니 글라스에다 와인을 콸콸콸 따랐다.

 

"무슨 일 있더냐?"

 

", 나 말이야-"

 

이글은 연거푸 몇 잔을 들이켰다.

 

저만한 양을 저렇게 들이킨다면 한잔으로도 취할 텐데.

 

"난 형이 좋아. 형이 날 좋아하듯 형이 좋다는 게 아니야. 사랑해."

 

젊은 남자가 연인에게 할 법한 사랑한다는 고백을 듣고 다이무스는 눈을 내리깔고 천천히 글라스에 술을 따랐다.

 

자신은 지나치게 감상적인 인간이다.

 

방금도 이글의 고백을 듣고 하마터면 흔들릴 뻔 했으니.

 

자신은 가주가 되어야 한다.

 

감상적인 부분은 잘라내야 한다.

 

절대로, 흔들리면 안 된다.

 

다이무스는 와인잔을 내려놓고 서랍에서 뭔가를 꺼냈다.

 

형의 반응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던 이글은 자신의 손 옆에 칼이 내려꽂히자 섬뜩함을 느꼈다.

 

아름답게 세공된 편지칼이 손목 옆에 꽂혀 있다.

 

아주 조금이라도 옆으로 움직였다간 오랫동안 검을 잡지 못할 위치였다.

 

"... 다이무스 형...?"

 

"기분 나쁘다."

 

다이무스는 아까와 다를 바 없는 표정과 목소리로 지극히 당연한 것을 말한다는 듯 천천히 손을 떼었다.

 

"네가 제정신이라면 그런 말을 하지 못할 것이다."

 

다이무스는 자칫 흔들릴 뻔한 자신을 다잡듯 말했다.

 

"설마 내가 네 말을 듣고 기뻐하기라도 할 줄 알았나."

 

몸을 숙이자 자신의 눈 앞에 불안하게 떨리는 이글의 눈이 있었다.

 

"두 번 다시는, 내게 가까이 오지 마라."

 

이글은 도망치듯 방을 빠져나갔고 다이무스는 열린 문을 보다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쓰러지듯 자리에 털석 주저앉았다.

 

팔을 앞으로 쭉 뻗더니 정갈하게 쌓여있던 서류를 옆으로 떨어뜨려버렸다.

 

종이는 팔락거리는 소리를 내며 땅으로 떨어졌고 다이무스는 책상에 이마를 대고 있다가 머리를 들고 엎질러진 잔에 와인을 다시 가득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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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마법계는 꽤나 치열했다.

 

모두가 열광하는 퀴디치 시합 결과가 예언자일보 2면에 실릴 정도로.

 

퀴디치를 제치고 예언자일보 1면에 실린 내용은 머글 태생 초능력자에 관한 의견으로 싸우는 해리 포터와 지니 포터, 그리고 헤르미온느 위즐리에 관한 얘기였다.

 

프랑스인들 정치 얘기마냥 갑론을박이 온 나라에, 온 마법계에 치열했지만 딱 한군데, 이 모든곳과는 상관없는 곳이 있었다.

 

 

 

 

“...예언자일보도 참 할 일이 없군.”

 

다이무스 홀든은 1면을 다 읽고 감상을 말했다.

 

그에게 있어 이번 1면은 그저 유명인들이 가정 불화로 싸운다더라 하는 가십 기사와 다를 바 없어 보였다.

 

다음 장으로 넘기는데, 옆에서 우아하게 포리지를 떠 먹던 벨져 홀든이 제 형에게 말을 걸었다.

 

오늘은 웬일로 조용하지, ?”

 

“...이렇게 순순히 아침을 보내게 할 리 없는데, 불안하군.”

 

하지만 겉보기만 봐서는 태평하기 그지없다.

 

혹시 모르지, 이글이 드디어...”

 

벨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요란스런 새 소리가 들리고 부엉이들이 한데 얼키고 설켜 거대한 새 덩어리를 만들어 깃털을 흩뿌리며 연회장으로 들이닥쳤다.

 

“...드디어 뭐?”

 

실언이었다, 형아.”

 

깔끔하게 말하며 벨져는 토스트 한 쪽을 들었다.

 

다이무스 홀든은 한숨을 푹 쉬었다.

 

그리곤.

 

이글 홀든!”

 

이글!”

 

동시에, 슬리데린의 다이무스 홀든과 래번클로의 토마스 스티븐슨이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둘의 눈이 마주쳤다.

 

“...항상 미안하다, 스티븐슨.”

 

“...다른 기숙사 일에 신경 쓰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옆에서 보던 벨져는 커피잔으로 시선을 돌렸다.

 

물적 증거는 없겠지만 이 소동의 주범은 자신의 동생, 홀든의 막내 이글 홀든이렷다.

 

이 망나니놈.

 

그리고 벨져는 (아무리 사실이라고 해도)망나니라는 천한 말을 생각했다는 것을 반성했다.

 

원래라면 형과 함께 이글을 혼내야겠지만 올해 래번클로 반장으로 임명된 토마스가 자신의 역할을 대신 해주니 뭐.

 

벨져는 이글과 같은 기숙사의 반장이라는 이유로 매일같이 뒤치다꺼리와 기타 잡무로 고생하는 토마스에게 애도를 표했다.

 

아 잠깐, 내년이면 형은 졸업하고 없을텐데, 다음 잔소리 담당은 나인가.

 

벨져는 미간을 꾹 눌렀다.

 

하늘을 베껴온 듯한 아름다운 천장과 말끔하고 고급스러운 대리석 바닥.

 

각 분야에서 이름난 마녀와 마법사들로 이루어진 교수진.

 

저녁이면 길고 넓은 테이블 위로 수십가지 호화로운 만찬이 펼쳐지는 연회장.

 

그리고 여기저기로 우왕좌왕 뛰어다니는 동료들과 재밌다는 듯 같이 소리지르거나 비명을 지르며 숨는 선배들, 후배들.

 

바닥으로 눈처럼 떨어지는 수많은 부엉이 깃털, 귀를 울리는 꽥꽥거리는 소리.

 

그리고 신이 나서 무어라 소리지르다 토마스 스티븐슨과 제 형에게 잡혀서 혼나는 동생.

 

이것이 창립 이래 우수한 마법사와 마녀를 무수히 많이 배출하였으며 세상을 위협했던 볼드모트를 막아낸 마지막 격전지.

 

마법 학교 호그와트의 평화로운 아침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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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글] 선택지

2014. 10. 7. 16:55 | Posted by 호랑이!!!

눈을 뜬 곳은 어두운 곳이었다.

 

어둡고, 춥고, 불길한 기운이 감도는 곳.

 

주위는 횃불이나 낡은 등불이 비춰주고 있었다.

 

숲인가, 나무가 많다.

 

그러고보니 좀 익숙한 곳이다.

 

...가문 소유의 사냥터?

 

옛날에는 사람 사냥도 빈번하게 있었다는 생각이 드니 오한이 끼쳤다.

 

머리를 젓고 주위를 다시 둘러보려는데 뒤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깼느냐, 이글.”

 

“다이무스 형!”

 

펄쩍 뛸 만큼 놀라고 반가워 돌아보려는데 몸이 기우뚱하더니 기세를 못 이기고 결국 쓰러진다.

 

뭐야, 하고 보았더니 밧줄이었다.

 

밧줄과 거기 묶인 자신의 몸과, 그리고 딱딱한 나무 의자.

 

“형아, 이것 좀 풀어줘...”

 

조금 이상한데.

 

왜 형이 칼을 빼들고 있지?

 

그러고보니 저 앞에 사람 같은 것이 보인다.

 

머리에는 검은 자루를 씌우고, 무릎 꿇려서 손은 뒤로 묶고.

 

“...루이스...?”

 

그중 하나, 옷이 낯익어 말을 걸었다.

 

“이글 홀든? 이게 무슨 일이야?”

 

“나야... 모르지...”

 

이상한데, 몹시 이상한데.

 

“선배예요?”

 

맙소사, 옆은 토마스.

 

그리고... 나이오비...

 

“형, 이게 무슨 상황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줄 좀 풀어주면 안 될까? 나랑, 쟤들이랑...”

 

“네 머리로 무슨 상황인지 알아차리지 못했을 리가 없다.”

 

“이 상황 자체가 말도 안 되잖아! 내 상상력은 빈약하다구.”

 

“내가 너를 너무 과대평가 한 모양이군.”

 

다이무스가 말했다.

 

그러고는 이해를 도와주겠다, 며 루이스 쪽으로 다가가더니, 단번에 칼을 내리쳤다.

 

피가 분출되며 따뜻함이 여기까지 느껴졌다.

 

“...형아...?”

 

“사랑한다고 해 보거라.”

 

약간의 표정 변화도 없이 다이무스가 말했다.

 

“누굴... 형을?”

 

이글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건 형이 아냐.

 

형일 리 없어.

 

다이무스 홀든은 냉철하고 이성적이며 지극히 합리적인 선택을 하고 역사서보다는 기사도 소설책을 좋아하면서... 질려하면서도 꾸역꾸역 성실하게 초콜릿을 먹어주고... 때때로 시나 지으면서 눈물을 흘리는... 흘리는....

 

검이 올라갔다.

 

횃불에 은빛으로 반짝 빛나 이글은 정신을 차렸다.

 

“미친거 아냐?! 그만둬 다이무스 홀든!”

 

가엾은 토마스는 무슨 일인지 감도 잡히지 않았으면서 떨고 있었다.

 

“너무하는거 아닌가, 형한테 미쳤다니.”

 

“형! 다이무스! 그만두라고 다이무스!!!”

 

서걱.

 

그리고 툭, 하는 소리가 났다.

 

다이무스의 검날이 다시 빛을 반사했다.

 

제발, 안돼.

 

엘리가 나이오비를 기다리고 있을 텐데.

 

따뜻한 우유를 마시고, 동화책을 읽어 달라며 양손으로 커다란 책을 들고 침대 위에 앉아 있을 텐데.

 

이글은 더 생각하지 않았다.

 

“사랑해! 사랑해 형! 사랑한다고!”

 

서걱.

 

머리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잉게 나이오비를 살리기 위해 일부러 그러는 건가? 실망이다, 이글.”

 

다이무스는 한숨을 쉬었다.

 

“날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것이 그렇게도 어렵나?”

 

“했잖아! 했잖아 미친놈아!”

 

이글은 눈을 믿을 수 없었다.

 

친했던 세 사람은 죽어버리고, 여태까지 변하지 않을 거라고, 믿고 따르던 큰형은 손에 검을 들고 피를 묻힌 채 무엇이 잘못이냐는 듯 평온하게 말을 한다.

 

“저런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그러는 게 아니라, 정말로 날 사랑해서 하는 말이 듣고 싶은 거다. 빨리 말하거라, 나는 인내심이 없다.”

 

“...제발, 형...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으면, 어쩌면.

 

다음은 레베카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트리비아일 수도 있고.

 

어쩌면, 어쩌면 엘리나 피터나 다른 누군가가 될 수도 있겠지.

 

“나는 진심으로 너를 사랑하고 있다만, 이글.”

 

다이무스가 재촉해 왔다.

 

“사, 사랑해... 형, 사랑해, 진짜 사랑한다고!!!”

 

절박하게 소리 질렀는데, 어깨로 검이 찔러 들어왔다.

 

비명을 지르지 않기 위해 입술을 꽉 깨물었음에도 신음소리는 흘러나왔다.

 

“형이 거짓말은 나쁘다고 누누이 얘기했잖느냐.”

 

사람 어깨에 칼을 꽂아 놓고서 안타깝다는 듯, 나쁜 아이를 야단치는 듯한 목소리로 혀를 찬다.

 

검의 날이 다시 반짝이며 빛을 반사했다.

 

이번에는 자신일지도 모르겠다.

 

이글은 섬뜩해지는 느낌에 조금 더 필사적으로 다이무스를 올려다보았다.

 

“사랑해...”

 

흐느끼는 소리가 났다.

 

“사랑해 다이무스.... 흑... 흐으....”

 

“사랑한다고? 정말로?”

 

다이무스가 역겨우리만치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제 앞에 무릎을 구부려 시선을 맞추고, 눈가로 흐르는 눈물을 손가락으로 닦아냈다.

 

“진심이야.. 흑... 사랑해... 정말로...”

 

문득 불빛에 비친 다이무스의 눈이 정말 자신을 죽일 수 있을거라는 느낌이 들게 했다.

 

시선을 마주치기 싫었다.

 

자신이 사랑한다는 것을 좀 더 말하고 싶어서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정말로-”

 

“고맙구나 이글, 형은 기쁘다.”

 

다이무스가 웃었다.

 

치켜올라갔던 눈꼬리는 미미하지만 부드럽게 휘어졌고 입도 천천히 확실하게 웃는 모양이 되었다.

 

“기쁘다.”

 

푸욱.

 

“그렇게 말해줘서 고맙구나.”

 

소리가 들리고, 몸 가운데를 무언가가 가르고 들어온다는 느낌이 들고.

 

고통은 그 다음에 찾아온다.

 

이글 홀든은 모래바닥에 뉘여졌다.

 

이곳은 사냥터, 이 일은 없던 일이 될 것이다.




[다이글] 선물, 서투름

2014. 10. 2. 05:19 | Posted by 호랑이!!!

“다이무스 도련님께서 선물을 보내셨습니다.”

 

오늘은 꽃이었다.

 

인근의 장미란 장미는 다 긁어모은 것인지 한아름도 넘는 꽃다발이 제 품에 안겼고, 방이 장미 화원이라도 된 마냥 장미로 가득차 온통 붉었다.

 

공사다망한 큰형은 종종 며칠씩 집을 비우곤 했는데 최근 들어 그런 날이면 이런 ‘선물’을 보내곤 하였다.

 

처음에는 새 옷(을 지을 재단사), 그 다음에는 최신 유행의 모자와 신발, 그 다음에는 은시계와 백금 시곗줄(아니, 크리스마스의 선물도 아니고 대체 왜?), 이오니아 산의 금빛나는 오렌지와 향긋한 포도주.

 

그리고 오늘은 장미라.

 

이글은 메이드가 나가자 품에 안았던 장미 꽃다발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발로 툭 찼다.

 

한껏 보기좋게 벌어진 연한 분홍색과 붉은색의 꽃잎이 바닥에 흩어졌다.

 

막상 집에 붙어있을 때는 담소는 고사하고 저녁식사 외에는 얼굴 한 번 보기도 힘든 주제에 출장만 갔다 하면 특별히 가족애라도 생기는 건가, 웃기지도 않아서.

 

이글은 특별히 싱싱하고 붉은 장미 한 송이를 골라 들고 한나에게 갔다.

 

“한나.”

 

“이글 도련님.”

 

“선물이야.”

 

가시를 쳐내고 잎을 잘라 다듬은 장미송이를 내밀고 한나가 앉으라는 얘기를 하기도 전에 테이블 옆에 의자를 끌어당겨 털석 앉았다.

 

“형이 이상해.”

 

“다이무스 도련님이요?”

 

“응-”

 

작은형은 항상 이상했으니까 새삼 이상한짓 한 대도 이상하지 않다구.

 

이글은 삐죽 입술을 내밀었다.

 

그러곤 최근 받았던 선물에 대해 줄줄이 말하곤 짤막한 의견까지 덧붙였다.

 

“꼭- 남자가 여자 환심을 사려고 하는 멍청한 짓 같잖아. 조만간 직접 쓴 사랑시와 함께 반지라도 배달되면 딱이겠어.”

 

“또 가볍게 생각하는 거죠? 만약 진짜면 어쩌려구요.”

 

“뭐 어때~ 형 성격에 사귀고 싶어서 그러는 것도 아닐 테고, 사랑하는 걸로 만족한다면 그러라고 하지 뭐. 내 용돈으로 살 수 없는 물건도 들어오는데.”

 

물론 내 용돈을 올려주면 더할 나위없이 좋겠지만, 이라며 시큰둥하게 앞주머니의 은시계를 꺼내 흔들었다.

 

진짜일 리가, 어디서든 인기 폭발하시는 그 다이무스 홀든이 이런 서툴러 빠진 짓을 할 리가 있나.

 

“조만간 비둘기 깃펜으로 쓴 사랑시가 도착하길 바랄게요.”

 

“뭐어-? 농담도!”

 

우웩, 기분 나빠.

 

이글은 킬킬 웃으며 다른 얘기를 꺼내려다 들리는 노크 소리에 입을 다물었다.

 

저렇게 노크 소리부터 절제된 인간은 자신이 알기로는 하나밖에 없었다.

 

역시나, 들어오라고 했더니 익숙한 얼굴, 다이무스 홀든이 들어왔다.

 

“이글, 네가 여기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실례합니다, 유모.”

 

“어어- 나 여기 있어- ...?”

 

다이무스의 눈이 가늘어졌다.

 

무엇을 봤는데?

 

시선을 따라가 보았더니 유모의 손에 들린, 자신이 준 장미.

 

아 설마.

 

아닐거야.

 

별거 아니잖아.

 

그 커다란 장미 다발과 방을 가득 메운 장미의 물결 속에서 딱 한 송이라고.

 

게다가 받은 사람이 다른 사람도 아니고 어릴 적부터 키워준 유모인데!

 

아- 설마, 설마, 설마!!!

 

“저녁식사 시간이다. 이 내가 손수 널 찾아다녀야겠느냐.”

 

“나가, 나간다고.”

 

문을 닫고, 다이무스의 뒤를 따라가는데 얼굴이 보이지 않아도 화났다는 건 알겠다.

 

“...이글.”

 

“어, 어엉?”

 

“...장미 말이다, 싫던가?”

 

“에에, 그건 아닌데-.”

 

다이무스가 힐끗 뒤를 돌아보았다.

 

“너를 생각해서 고른 선물이 함부로 다루어진다니 썩 기쁘지는 않더구나.”

 

함부로~?라고 하고 싶었지만 아까 장미 다발을 떨어뜨린 것도 있겠다, 찬 것도 있겠다, 거기에 보모에게 장미 준 것도 들켰고.

 

지금 한창 열받은 인간에게 변명을 해 봤자 불난 집에 기름 붓는 꼴밖에 안 되겠지.

 

아까 돌아볼 때 보니까 눈빛이 흉흉하던데 저기서 더 긁었다간 최소한 오늘 저녁은 다 먹었다.

 

다이무스는 팔에 달라붙는 이글의 팔에 힐끗 내려다보았다.

 

“형아야~”

 

다이무스는 어울리지도 않는 애교가 들어가 착 달라붙는 것 같은 이 목소리가 무얼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다.

 

“나 좋아해?”

 

농담의 껍질을 뒤집어쓴 속에는 이쪽을 바로 바라보는 시린 눈동자가 있었다.

 

심지어 떠 보는 것도 아닐 터, 의뭉을 떠는 것이다.

 

거기에 저 좋냐는 물음은 형제로서 갖는 당연스러운 호감을 묻는 것도 아닐 터였다.

 

무엇보다 곤란한 것은, 자신이 이것을 안다는 것을 이글도 안다는 것.

 

슬쩍 흘려버리는 일 따윈 불가능했다.

 

“...오늘 저녁은 다진 오리로 속을 채워 구운 송아지와 무화과를 넣은 케이크다.”

 

“형, 다이무스 형.”

 

이글이 대놓고 기분 나쁜 티를 내었지만 다이무스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 내 질문을 무시하겠다고?”

 

“그렇다.”

 

이글은 다이무스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째려보듯 날카로워진 눈이지만, 자신은 알고 있다.

 

다이무스 홀든, 저 천하의 냉혈한이 지금 자신의 질문을 두려워한다는 것을!

 

아- 아, 이거 정말 재밌는데.

 

놀리고 싶어서 입이 근질거린다.

 

다만 형이 자신이 놀렸을 때 어떻게 반응할지만은 저도 모르니까.

 

제가 원하는 대로 자신이 주도권을 잡으면 좋겠지만 상처 입은 짐승마냥 달려들어 공격이라도 하면 저는 끝이다.

 

“형아~.”

 

“...”

 

“혀엉아아~”

 

다이무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난처해하는 것이 다 보인다.

 

회피하지 않고 무엇에도 당당하게 맞서는 그 다이무스 홀든이 한낱 망나니 동생의 질문에 쩔쩔매다니, 이거 꽤 기분 좋지 않은가!

 

히죽히죽 웃음을 흘리던 이글은 어두운 복도를 지나 밝은 식당으로 들어오자 언제 그랬냐는 듯 입을 딱 다물었다.

 

시치미를 떼고 제 자리에 앉아 소스에 적신 송아지 요리를 덜어내는데 사용인 중 하나가 다이무스에게 무어라 전했다.

 

“뭐야, 형?”

 

“크리스티네가 물건을 전하러 왔다.”

 

헹, 퍽이나.

 

크리스가 진짜로 전하고 싶은 건 어떤 ‘물건’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겠지.

 

형이 그걸 모를까봐서- 아니, 모를지도.

 

모를거야 저 둔한 인간은.

 

이글은 속으로 히죽거리다가 슬그머니 자리를 떴다.

 

크리스가 어떤 치마를 입고 왔을지도 궁금하지만 형아를 좀 더 놀려줄 것 없나 하여.

 

다이무스의 방문을 열었다.

 

빛깔 좋은 오크목의 책상이 깊은 색을 내며 자리잡고 있었다.

 

그 위에는 묵직한 펜이 있었고 양피지도 펼쳐져 있었다.

 

서류- 라기엔 빛깔이 좀 다른걸.

 

아니, 양피지도 아니잖아.

 

그냥 종이다.

 

그것도 빨간 하트와 리본 그림이 있는.

 

한창 아가씨들과 연인들에게 인기 좋다는 그거다.

 

“우와, 징그러.”

 

입 밖으로 불쑥 말이 튀어나왔다.

 

그 냉혈한, 목석인 큰 형이 아기자기한 가게에 가서 이런걸 고르고 있다고?

 

“기분 나빠.”

 

뭔가 더러운 것이라도 집듯 손끝으로 편지지를 들어 팔랑팔랑 흔들어 보는데 뒤에서 뻗어나온 손이 그것을 잡아채 찢었다.

 

“이글.”

 

그 목소리에 이글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어, 형-...”

 

“식사중에 자리를 뜨는 것은 예의에서 어긋나는 일이다.”

 

“아니, 형, 이건 말이야...”

 

“주인 없는 남의 방에 함부로 들어가는 것도 그렇지.”

 

다이무스의 표정은 얼음장 같았다.

 

읽어낼 수 없는데 냉기가 흘러나왔다.

 

다이무스는 손에 들린 상자를 내려다보더니 이글을 문 밖으로 떼밀었다.

 

문은 육중한 소리를 내며 닫혔고 안에서는 무언가 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침, 이글은 그답잖게 일찍 일어나 식사 자리로 갔다.

 

여느 날처럼 다이무스는 셔츠와 조끼를 입고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형!”

 

다이무스는 어제 같은 무표정으로 이글을 바라보았다.

 

“그... 있지... 잘 잤어?”

 

쭈삣쭈삣 인사를 건네며 맞은편에 앉았더니 대답 대신 신문을 거칠게 펴 든다.

 

“있지이, 내가 어제 기분 나쁘다고 한 건 말야...”

 

“되었다.”

 

“...형이 그런 편지지를...”

 

“되었다니까.”

 

신문이 파스락거리는 소리를 내며 다음 장으로 넘어갔다.

 

“...쓸 줄은...”

 

파각.

 

신문이 반으로 접혔다.

 

“별로 얘기하고 싶은 기분이 아니다.”

 

“형! 미안하다고! 내가 뭘 잘못했던!”

 

다이무스는 마시던 커피잔을 거칠게 내려놓은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은 네 사과를 받아줄 기분이 아니다. 먼저 일어나마.”

 

다이무스는 자신의 방으로 가는 대신 서재로 갔고, 이글은 다이무스의 방으로 갔다.

 

아직 메이드가 청소하기 전인 방은 평소보다 어수선했고 바닥에는 나무판 조각이 널려 있었다.

 

이글은 벽난로를 보았다.

 

타다 만 종잇조각에는 빨간 하트와 리본이 그려져 있었다.

 

타다만 나무 위에는 어그러지고 녹은 은 목걸이가 있었다.

 

이 근처에서는 구하기 힘든 모양으로, 이글의 눈과 같은 색의 보석이 펜던트로 매달려 있었다.

 

형이 몹시 멀게 느껴졌다.

 

자신이 편안히 기대 응석을 부리던 관계가 마치 이 목걸이처럼, 자신의 손 안에서 우그러진 것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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