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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X빅터] 고양이 -05

2015. 10. 11. 01:28 | Posted by 호랑이!!!

 

잘 교육받은 귀족집 도련님 답게, 이글은 깨끗한 발음으로 둘을 구분했다.

 

빅터, 그리고 빅토르.

 

빅터도 몇 번쯤 그 발음을 흉내내 보았지만 이글이 만드는 그 낮게 울리는 음은 나오지 않았다.

 

빅터가 빅토르라고 말하는 것은 꼭 빅톨처럼 들렸는데, 어쨌거나 그래도 이글은 알아들었고 잘 한다며 가끔은 빅터의 등을 두드려 주기도 했다.

 

아직도 계절은 겨울 한가운데라 빅터는 벽난로 앞 안락의자 팔걸이에 머리를 기대고 바닥에 앉아 멍하니 일렁이는 불꽃을 보았다.

 

이글이 자신을 빅토르라고 하는 상상을 하며.

 

빅터의 상상 속에서 이글은 빅터를 보고 빅토르라고 불렀고, 끝의 발음을 길게 늘어뜨렸다.

 

회색 줄무늬가 있는 하얀 고양이 대신, 이글은 굳은살이 박힌 묵은 흉터투성이 손으로 웅크린 빅터를 몇 번이고 머리부터 등허리까지 쓰다듬었다.

 

그 때 이글의 표정은-

 

.”

 

퍼뜩, 빅터는 정신이 들었다.

 

지금 무슨 생각을 한 거야?

 

벽난로 앞에 그렇게 가까이 붙어있으면 어떡해? , 열 올라서 얼굴이 빨갛잖아.”

 

이글의 손이 빅터의 뺨을 잡았다.

 

정말로 열이 나는 것 같았다.

 

자고 가. 이 날씨에 밖을 돌아다니면 더 심해지니까.”

 

그 말에 빅터는 벌떡 일어났다.

 

빅토르가 무릎에서 굴러 떨어져 약하게 항의하는 소리를 냈다.

 

몇 시지?

 

벌써 열시 반이 되어가고 있었다.

 

간다.”

 

?”

 

이글은 못마땅함과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 뒤섞인 표정을 지었다.

 

내 침대 넓어, 베개도 이불도 있고 옷도 좀 크지만 여분이 있고.”

 

아니, .”

 

공장 직원, 더부살이, 야간학교.

 

빅터는 다른 의미로 얼굴이 빨개지는 것을 느꼈다.

 

학교 가.”

 

상대는 개인 교사를 붙여 교육을 받은 사람이고, 저보다 얼마 나이가 많지 않은데 어른이고 집도 있는데다 가족들도 더할 나위없이 상류층인 사람이다.

 

잊고 있었지만, 그런 사람에게 말하려니 스스로에게 화가 난다.

 

아직까지 제 발을 공격하는 새끼 고양이를 번쩍 들어다 의자 위에 내려놓고 바깥으로 나갔다.

 

아마 학교가 끝나면 한밤중일 테고 딱딱한 침대에 누워서 얇은 이불로 몸을 말고 웅크리면 따뜻한 난롯불 생각이 날 것이다.

 

그렇지만 이글이 빅토르하고 부를 때마다 움찔거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보다는 그래도.

 

그래도 차가운 침대 쪽이 낫지 않겠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