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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릭마/인어AU] 왜 웃지 않나요

2015. 9. 12. 04:28 | Posted by 호랑이!!!

인어의 눈물은 진주가 된다.

 

그래서 마틴이라고 이름 붙여진 인어는 육지로 잡혀왔다.

 

조그마한 수조 안에 비늘로 덮인 하체를 담그고 상체는 불편하기 짝이 없는 화려한 석제 침대 위에 뉘여서.

 

처음에는 맞았고, 그 다음에는 돌아갈 수 없다고 속삭이며 마음을 괴롭게 만들었다.

 

지상의 공기는 무거워서 자신의 몸을 지탱하기에는 부족하니까 스스로는 바다로 갈 수 없다는 건 아주 잘 알고 있는데도.

 

자그마한 수조 안이나 딱딱한 돌바닥에는 자신이 흘린 눈물로 만들어진 회백색 진주가 그득 굴러다니고 있었다.

 

이따끔 마틴은 지상의 인간들보다 매끄러운 손가락 끝으로 눈물이 굳은 둥근 보석을 굴려보곤 했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눈물이니까, 원하는 만큼 울다 보면 돌려보내주지 않을까 생각도 해 봤지만.

 

그들이 원하는 만큼이라는 것은 마틴 혼자로는 채우지 못한다.

 

삼칠일을 울었다.

 

삼칠일을 웃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포기했다.

 

눈물이 나오지 않았고, 웃음이 나오지 않았고, 자신의 눈물을 보고 웃던 사람들조차 발걸음을 드물게 하자 표정이 서서히 사라져갔다.

 

그리고 필요 없는 인어는 굶겨 죽여라는 말이 들렸다.

 

그래서 마틴은 안도했다.

 

드디어 죽는구나.

 

그러나 몸에 힘이 빠져 누운 마틴의 입가에 무언가가 닿았다.

 

깨끗한 물과 과실.

 

눈을 떴더니, 밝은 갈색 머리의 소년이 거기 서 있었다.

 

누구세요?”

 

릭 톰슨. 널 가둔 사람의 아들이야.”

 

이상하게도 마틴은 기운을 차리기 시작했다.

 

처음 만난 이후로 릭이 가져오는 이야깃거리에 조금씩 웃기 시작했고, 때로는 울었다.

 

인간의 아이는 빠르게 자랐다.

 

밝은 갈색 머리는 짙게 변하고, 위아래의 길이가 마틴보다 길어지고 목소리가 낮게 깔리도록.

 

어릴 적에는 문으로 들어왔지만 좀 자라서는 갑자기 방 안으로 불쑥 떨어지거나 푸르게 빛나는 둥근 원 안에서 나오거나 하도록.

 

말투도 변했다.

 

어린아이의 직설적인 말투는 어느샌가 그대, 당신이 포함된 격식과 예의가 포함된 말이 되었다.

 

인간의 아이는 정말 빨리 크네요.”

 

마틴은 석제 침대에 기대어 릭을 올려다보았다.

 

요만한 아이가 와서 물을 먹여줄 때가 엊그제 같은데.”

 

마틴은 손으로 어림하여 표시하며 웃었다.

 

그에 비해 인어는 정말 늙지 않잖소. 예전이나 지금이나 그대는 참 변함이 없소.”

 

간이의자를 가져와 앉은 릭이 마주 웃었다.

 

어제는 높은 산, 그 전에는 사람 없는 전망대.

 

아주 옛날에는 이 마을 어느 집의 지붕 위.

 

릭은 마틴을 여러 곳으로 데려가고 있었다.

 

오늘은 어디예요?”

 

그대도 좋아할 만한 곳이지.”

 

릭은 눈을 찡긋했다.

 

어둡고 푸르게 빛나는 원 안으로 들어가 눈을 감고 기다리면, 또 어딘가에 뚝 떨어진다.

 

몸이 떨어지는 느낌이 들고.

 

코 끝에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향기가 스쳤다.

 

비슷한 걸 맡아본 적 있어.

 

예전에, 릭이 가져다준 꽃이란 것에서 이런 향이 났어.

 

눈을 뜨자.

 

초록색이라고만 알고 있던 들판에는 온통 하얗고 노란 꽃들이 달빛을 받아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땅에서 밤하늘이 자라는 것 같아요.”

 

릭은 미리 펼쳐두었던 자리 위로 마틴을 옮겨주었다.

 

마틴은 예쁘게 핀 꽃을 킁킁 냄새도 맡아보고 손가락으로 더듬어 보기도 하고 조심스럽게 꽃잎 끄트머리를 깨물어 보기도 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웃으며, 릭은 자리에 벌렁 누웠다.

 

깊은 하늘이 가득 빛나고 있었다.

 

“...제 고향에서는 가끔 차갑지 않은 눈이 내려요.”

 

마틴도 자리에 누웠다.

 

지느러미가 풍성한 꼬리가 때로 흔들리는 소리를 냈다.

 

녹지 않으니 치우기도 힘들고, 몸에서 떼어내는게 귀찮으니까, 눈이 오면 다들 집 안에 들어가 지내는데 저는 아예 수면까지 올라왔어요.”

 

하얗고 고운 손가락이 하늘을 가리켰다.

 

저 하늘은 아주 깊고, 다양한 것들이 저 먼 수면 아래에서 헤엄치는 것처럼 보여서. 저는 언젠가 저 하늘에서 헤엄치고 싶었어요.”

 

지금은?”

 

마틴은 눈을 감았다.

 

예전에도 릭이 이런 질문을 했었다.

 

돌아가고 싶은 거지?’

 

릭이 자신을 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입가를 올려 웃었다.

 

괜찮아요 저는.”

 

인어의 것보다 따뜻한 팔이 차가운 몸을 덮었다.

 

달콤한 공기는 혀 끝에 향긋하게 와 닿고 몸은 따뜻해지고 있었다.

 

눈을 뜨면 깊은 하늘에 별이 헤엄친다.

 

잠이 들고.

 

눈을 뜨면 다시 수조가 있는 그 방이었다.

 

몸에 따뜻한 느낌이 남아있는 것 같았다.

 

기분이 좋아서.

 

마틴은 칼을 훔쳤다.

 

늘 자신의 식사를 가져다주는 일꾼 중 하나가 주머니에 넣어둔 나이프에 대해 생각하고 있길래 그의 귓가에 속삭여 나이프를 내놓게 했다.

 

날이 잘 서 있었다.

 

뾰족하고, 칼집의 가죽은 매끈하고 차갑고.

 

그것을 품고 기다리면 여느 때처럼 밤이 왔다.

 

.”

 

블론디.”

 

여느 때와 다르게, 릭은 마틴을 안고 이동했다.

 

여느 때처럼 눈을 감았더니, 코 끝에 오랫동안 그리워했던 냄새가 감돌았다.

 

눈을 뜨자 끝없이 펼쳐진 깊은 하늘과 검게 빛나는 바다가 있었다.

 

“......”

 

마음이 약해질 것 같아서 마틴이 손짓했다.

 

저는 괜찮다고 했잖아요.”

 

울 것 같은 미소에 마틴은 달래듯이 그의 뺨에 손을 얹었다.

 

잎 넓은 나무에 릭이 기대고, 거기에 마틴이 기대고.

 

그렇잖아도 마지막 선물을 주려고 했어요.”

 

지느러미가 곧게 펼쳐진 꼬리를 그렇게도 그리워했던 바닷물에 담그고 마틴은 품에서 칼을 꺼냈다.

 

밝다고는 하나 그래도 희미한 달빛 아래라 릭은 처음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랐다.

 

투명한 눈물은 회백색으로 굳어지고 붉은 피는 몽글몽글 투명한 색으로 엉겼다.

 

“...왜 그런 표정이예요?”

 

내 눈물을 보면 사람들은 웃었는데.

 

블론디, 마틴... 안돼, 안돼 블론디. 마틴!”

 

손가락으로 상처를 벌리면 보석이 쏟아진다.

 

릭의 손은 그 상처를 틀어막으려 했지만 그 손가락 사이에서는 바작바작 마르는 소리를 내며 붉은 보석이 굴러떨어진다.

 

왜 웃지 않아요?”

 

마틴은 꺼질 듯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갈색 머리의 청년, 혹은 소년, 어쩌면 청년은 반짝이는 돌로 뒤덮인 인어의 시체를 끌어안았다.

 

인어는 죽음이 목을 훑을 때까지 물었다.

 

왜 웃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