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연합 소파에 길게 누워 있었다.
맨발에는 쇠 양동이가 걸려 이따끔 발을 흔들 때마다 휭 돌았고 늘 올려 묶던 머리는 풀어져 몸이며 소파 위에 흘러내렸다.
발치에는 양동이와 같이 쓰는 빗자루나 대걸레가 같이 놓여서 소파에 기대고 있었고.
아슬아슬하게 발가락에 걸어 몇 번 더 양동이를 흔들던 이글은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손가락에 감아 비비꼬며 전화기의 번호판을 손가락 끝으로 돌렸다.
차르륵 차르륵 기계 돌아가는 소리에 이어 얼마간 기계음이 나고, 수화기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나다]
“잘 있었어?”
[별 용건이 없다면 이만 끊으마]
매몰차긴, 우리 형.
이글은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이번에 동양계 능력자들이 대거 참전했는데 말이야~ 그 중 둘이 그랑플람이거든?”
누가 들었다고 하더라도 요즘 제 주변에서 일어나는 근황 정도로 들릴만한 정보들을 말하고 나자, 손가락이 머리카락을 꼬는 것이 빨라졌고 어쩌다 실수로 양동이를 떨어뜨렸는데 조심스레 발끝을 뻗어 다시 걸었다.
“있지- 이번에도 물어보는건데 말이야아-”
어딘가 머뭇거리고, 어딘가 말꼬리를 늘이고, 어딘가 수줍어하는 목소리.
마치 예닐곱살의 아이들이 좋아하는 여자아이에게 길에서 꺾은 들꽃을 내밀기 직전의 목소리.
이글은 그런 목소리로 속삭였다.
“루이스 때문에 영국으로 오지 않는거면- 내가 죽여줄까?”
뎅겅-.
이글의 발에 걸린 양동이는 한 바퀴 크게 돌더니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왜 루이스를 죽이는데 그렇게 집착하는 거냐]
“그치마안- 내가 여기서 형을 위해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겨우 그것밖에 없단 말야-”
맨발가락을 까딱까딱 움직이며 이글은 해사하게 웃었다.
천진하고 밝은 웃음이라서 누군가 보았다면 좋아하는 사람과 통화한다고 생각이 들 정도로.
“죽이게 해줘- 응?”
[네가 루이스를 죽여도 내가 그쪽으로 당장 가는 일은 없다]
“네에-”
이글은 짐짓 토라진 목소리를 내어 대꾸하고는 허공으로 새끼손가락을 뻗었다.
“그럼, 나중에 무슨 일 있으면 나 부를 거지?”
[...]
“부를 거지?”
[...]
“약속했다?”
수화기 너머에서 한숨 쉬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전화는 끊어졌다.
이글은 끊어졌다는 요란한 소리가 나는 수화기를 귀에 바짝 대고서 소파 위에서 굴렀다.
“아, 형. 벨져 형.”
너무 좋아.
바르작거리다 떨어졌는지 쿵, 소리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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