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 나랑 외식하자.”
이글은 여느때처럼 높게 묶은 머리를 살랑거리면서 다이무스의 사무실로 들어왔다.
다이무스의 눈빛이 탐탁찮다는 듯 바뀌자 이글은 허둥허둥 거기에 몇 마디를 덧붙였다.
“내가 쏘는거야! 형 지갑 스틸하려는 것도 아니고 이거 빌미로 뭐 해달라는것도 아니고 일부러 비싼거 시켜놓고 ‘어라, 지갑이 없네에~’하려는 것도 아냐!”
그러고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눈빛은 가시질 않는다.
“이글.”
약간의 침묵이 있었고 마침내 다이무스가 입을 열었다.
“‘쏜다’는 말은 어디서 배운 거냐. 내가 분명 어린 나이니 연합에 간다는 철없는 선택을 할 수는 있을거라고 했지만-”
“...책임을 지라고, 네에 네에.”
이글은 건성건성 대꾸하다가 다이무스의 눈매가 사나워짐을 느끼자 헛기침을 하고 짐짓 예절바른 모습으로 팔을 움직였다.
“금일, 홀든 다이무스님의 탄신일을 맞이하야 기쁜 마음으로 데이트를 신청하고 싶습니다만 저녁식사라도 함께 어떠십니까.”
다이무스는 무어라 한 마디 야단이나 잔소리라도 할 것처럼 입을 열었다가 짤막하게 한숨을 쉬었다.
“...알았다. 옷은 뭘 입고 가지? 평상복?”
“아니! 예~쁘게 차려입고 나와. 그럼 난 이만 가볼게!”
문이 닫혔다.
문 너머로 이글이 은행 아가씨들에게 수작질하는 소리가 들려 다이무스는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저번처럼 정장을 입고 갔더니 허름한 펍으로 데려가는 일만 없었으면 좋겠군.
경쾌한 발소리가 멀어져갔다.
...그래도 내 생일 챙겨주는 건 저 녀석밖에 없군.
저녁, 다이무스는 늦지 않게 약속장소에 갔다.
차림은 격식에 맞게.
그리고 약속시간을 조금 넘어서 나타난 이글을 본 다이무스는.
본디 표현이나 말이 적은 그였지만.
놀라움을 짧게나마 얼굴 가득히 띄웠다.
“이글?”
“짜잔~ 놀랐지~?”
장난기 가득한 표정에 경쾌한 웃음소리에, 거기까지는 자신이 알던 그대로고 예상했던 차림이지만.
나머지 부분이 평소와 엄청나게 다르다.
방해되지 않도록 대충 올려묶은 머리는 단정히 빗어 아래로 내려 묶었고(한때 벨져가 그랬던 것처럼) 보기만 해도 거슬리고 답답한 한가닥 앞머리는 넘겼는지, 보이지 않았다.
평소에는 갑주 안에도 아무것도 입지 않았고, 벨트도 왜 하는지 모를 정도로 헐겁게 늘어뜨리고 다니던 녀석이 단정한 아비 프락(연미복)에 크라바트라니.
“놀랐나보네! 아하하!”
“이대로 사진관에 데려가서 사진 한 장 박고 싶구나.”
그 말은 들은체만체하고, 이글은 다이무스의 손을 이끌어 제법 그럴싸한 레스토랑으로 데리고 갔다.
“이글 홀든으로 예약했습니다.”
“이쪽입니다.”
자리에 앉자 전채로 훈제한 연어를 멜론에 싼 것이 나왔다.
웨이터가 물러가자 가장자리의 포크를 집으며 다이무스가 먼저 입을 열었다.
“예상 밖이구나.”
“아하하, 어떠셔? 이 몸이 할 때는 한다는 말이지~”
“기왕이라면 내 생일 같은 날보다는 집안의 중요한 일이나 그런 때 해줬으면 좋겠다만.”
“에엥~ 무슨 말씀? 이글 홀든 24년 인생에 집안 최대 행사는 큰형아 생일이거든?”
전채요리를 담은 접시가 비워지자 수프가 나왔다.
다이무스의 취향에 맞는 것으로, 이글과 종류가 다른 것을 보아 신경 써서 예약한 것이 틀림없었다.
그 후의 생선, 고기 테린, 메인, 샐러드에 곁들인 와인까지 전부 그가 특별한 날에 즐기는 것이라.
다이무스는 꽤나 감동받았다.
“형아~ 어때~ 만족스럽지이~”
“...테이블에 팔을 괴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다.”
퉁명스레 얘기함에도 이글은 다 안다는 듯 씩 웃는다.
“.....동생을 키운 보람이 있다, 정도는 생각하고 있다.”
“아 웃기셔, 형이 키웠나? 한나가 키웠지.”
다음은 디저트 차례다.
달지 않고 깔끔하게 끝낼 수 있는게 좋겠지.
사실 어느 정도는 기대했다.
뻔히 마음에 차는 것을 알면서도 굳이 한 마디 말이나 머리를 쓰다듬는 것으로 칭찬을 받고 싶은지, 이글이 안절부절 못 하여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디저트 있지, 다크 초콜릿이랑 과일을 써서 형이 좋아할만한 걸로 해 달라고 했다~?”
“기대되는군.”
다이무스의 눈가가 누그러졌다.
이글은 그들의 테이블로 웨이터가 다가오는 것이 보이자 초조하게 머리 끝을 손가락으로 감아대었다가 풀었다.
저 모습은 어릴적과 하나도 안 바뀌었지.
다이무스는 웨이터가 가져다주는 접시가 제 앞에 놓이자 코를 씰룩였다.
초콜릿과 과일을 듬뿍 얹은 케이크, 그리고 굳이 코를 가져다대지 않아도 느껴지는 단내.
이글이 기대에 가득 찬 눈으로 이 쪽을 보는 것이 느껴졌다.
다이무스는 이글 앞에 다른 접시가 놓이는 것을 보고는 작은 스푼을 들었다.
달그락, 달그락.
이글은 제 앞에 놓인 디저트를 신나게 퍼먹었다.
제 형이 앞에서 보기만 해도 달아빠진 초콜릿 디저트를 덤덤하게 먹는 것은.
글쎄, 동생에게 실망을 안겨주지 않겠다는 연상으로서의 위엄 같은 걸까?
마침내 다이무스의 그릇이 비워지고 딸그랑 소리를 내며 숟가락이 떨어지자, 둘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형, 디저트 먹는 속도가 느리던데~”
“배가 불러서 그랬던 거다.”
아까 형이 미간 찡그리는거 다 봤거든요!
레스토랑 밖으로 나오자 이글은 숨죽여 킥킥 웃으면서 냅다 달려들어 다이무스의 팔짱을 꼈다.
“좋~아, 그럼 오늘은 특별히...”
“사진 찍으러 가지.”
“엉? 앗, 형? 형아? 다이무스 형?!”
아이고 큰형이 나 납치한다~며 이글이 웃었다.
장담하는데, 이건 디저트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하는 거다.
냉철한 은행원이고 회사의 에이스에 홀든을 이을 장남?
...근데, 동생인 내가 봐도 귀여운데!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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