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가까운 아침.
이글은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일어났어...?”
“...응.”
이글의 고집으로 결국 침대에서 자서인지 여름용으로 둔 베개가 눌려 있었다.
“...공장 가지 말고 더 자.”
“그러면 잘려.”
이제야 목소리가 나오는 것 같지만 그래도 다 쉬어서 골골거리는 녀석이 무슨.
이글은 눈앞에 보이는 파란 소매를 잡아당겼다.
“너같이 어린애가 무슨 공장일이야.”
“나보다 어린애들도 다 공장에서 일해.”
시계를 보니 해는 떴나 싶은 시각이었다.
이글은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씻고 나와.”
빅터가 순순히 욕실로 들어가자 찬장을 열어보았다.
도시락통으로 쓸 만한 것이 없잖아.
그나마 있다고 한다면- 유리병이나, 저 정도인가.
이글은 냉장고에서 어제 만들었던 수프와 그 전에 만들어서 보관해둔 빵 몇 쪽과 버터, 우유, 과일을 꺼냈다.
그리고 빅터는 이글이 도시락이랍시고 흰 보가 덮인 커다란 바구니를 내밀었을 때 ‘제정신인가’라는 생각이 노골적으로 드러난 얼굴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결국 유리병에 수프를 담는 정도로 타협하고 나가려는데 이글이 빅터를 다시 불렀다.
“아침 먹고 가.”
“늦었어.”
“그럼 가면서 이거라도 먹어.”
이글이 계란과 감자를 삶아 으깬 것을 빵에 넣은 샌드위치를 주었다.
어제 저녁도 아파서 제대로 못 먹었지.
“가져가라니까.”
이글이 두세번 더 권하자 그제야 빅터는 ‘정말 받고 싶지 않지만 권하니까 받아준다’는 듯 샌드위치를 받아 입에 물었다.
“잘 다녀와.”
“...”
문이 닫혔다.
이글은 침대로 돌아가 풀썩 누웠다.
다른 누군가와 침대를 같이 쓰는 것은 아주 어릴 때 이후 처음이라.
자신이 눕지 않은 쪽을 만져보니 작은 열이 느껴진다.
눈이 감겨왔다.
빅터는 길을 걸으며 샌드위치를 베어물었다.
아삭아삭 씹히는 신선한 양배추와 계란과 감자와 토마토와...
속으로 재료를 하나씩 대던 빅터는 이내 그만두고 샌드위치를 한 입 가득 베어물었다.
‘...맛있어...’
그리고 그 날 하루는 이상함의 연속이었다.
무거운 물건을 옮기고 나서도 그렇게 지치지 않았고, 점심시간 직전에 배가 고파 죽을 것 같지도 않았다.
단순노동을 하는 것뿐인데도 공장 일이 재미있었고 맛없고 퍼석한 빵이라도 유리병의 수프와 먹었더니 꽤나 먹을만했다.
좋은 잠자리에서 잘 자서 그런가, 맛난 음식을 먹어서 그런가.
하루가 편하고 힘들지 않아.
그리고 빅터는 문득 몰려오는 불안감에 손을 더 재게 놀려 작업을 빨리했다.
여기서 더 기분이 좋아진다면, 평소에 힘들었다는 생각이 들 것 같았다.
힘든 일이 아니야.
그래서도 안돼.
왜냐하면 앞으로도 나는 틀림없이 그렇게 살 거니까.
빅터는 돌아오는 길에 붉은 벽돌로 만든 건물을 보았다.
딱딱하고 날카로운 모서리를 가진 집.
그 집 벽에다 대고, 이글이 수프를 담아준 유리병을 세게 던져 깼다.
쨍그랑, 요란한 소리가 나고.
빅터는 휙 허공으로 날아올라서 이글의 집으로 돌아왔다.
“유리병은?”
“잃어버렸어.”
화내지 않는다.
오히려 신경쓰는 것 같지도 않다.
빅터는 감기가 나을 때까지라며, 하루 더 자고 가라는 이글의 말에 내키지 않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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