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터가 공장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저녁때였고, 언제나 이글이 집에 있었다.
창 밖까지 퍼지는 냄새를 맡아보면-
오늘은 톡 쏘는 토마토 소스가 맡아진다.
초인종을 누르면 누른지 얼마 안 되어서 이글이 문을 열어주었고 빅터는 안으로 들어가 겉옷을 벗어 옷걸이에 걸쳐두고는 욕실로 들어가 샤워를 하고 나온다.
특별히 이걸 입으라는 말은 없었지만 빅터가 벗어두었던 옷을 찾으러 연 문 앞에는 이글의 것이 분명해 보이는 하얀 와이셔츠와 파란색 반바지가 있었다.
바지야 그렇다 쳐도 셔츠는 좀 커서 소매를 접어서 입고 나오자 이글은 그제서야 젓고 있던 소스 냄비에서 눈을 떼고 인사한다.
“왔어?”
“응.”
“라디오라도 틀어줄까? 지금쯤 팝이라도 나올 텐데.”
빅터는 그가 소스 젓는 것을 빤히 보며 뭔가를 결심한 듯한 표정으로 인상을 찌푸리더니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대답 대신 이글 옆에 서서 그가 들고 있던 국자를 빼앗았다.
“...”
“너 지금까지 일하고 왔잖아. 쉬어.”
그러나 빅터는 이쪽을 노려봤고, 이글은 말없이 그를 쳐다보다 어깨를 으쓱하더니 순순히 옆으로 물러나 파스타면을 삶기 시작했다.
“파스타 좋아해?”
“응.”
이글은 옆을 흘끗 보았다.
양이 적어서 작은 냄비를 꺼낸 덕분에 빅터는 발돋움도 않고, 쉽게 소스를 젓고 있었다.
“다음번에 대량으로 만들면- 그때도 도와줄래?”
“...응.”
이글이 자신에게 일을 맡기는 모습에 빅터는 다소 안심한 것 같았지만.
좋아하지 말아, 꼬마야.
나는 너를 곯리고 싶을 뿐이니까.
높이가 두 피트(60cm 정도)는 되는 커다란 냄비가 있으면 네가 발돋움하는 정도로는, 바람으로 몸을 띄우는 정도로는 젓기 힘들 테지.
이글은 키득키득 웃으면서 익은 면을 휙 건져내 뜨끈뜨끈한 김이 오르는 것을 파스타 보울에 담았다.
그리고 문득 떠오르는 생각에 그를 돌아보았다.
“그래도 금요일 밤인데, 외식하는 편이 나았을까?”
“...됐어.”
그리고 일요일의 밤, 이글은 보기 드물게 품으로 파고드는 빅토르 때문에 설핏 잠에서 깨었다.
원래도 밤이나 아침에는 사람 옆으로 오는 녀석이지만 이렇게 맨살에 솜털이 닿아 간질거리도록 품으로 파고드는 건 또 처음이랄까.
옷 속으로 파고드는 녀석을 잡아다 끌어내서는 턱 아래를 긁어주는데 밖에서 웅웅거리는 기계음이 난다는 것을 깨달았다.
빅토르를 안고 침실 밖으로 나가자 자신이 빌려준 와이셔츠에 반바지 차림으로 빅터가 서 있었다.
품에는 청소기를 안다시피 하고.
“청소 중?”
그러자 고개를 끄덕인다.
“청소기가 있길래 써 보고 있어.”
이글이 사용하는 청소기는 흡입기에 먼지통이 붙은 것이 아니라 좀 구식인, 먼지통과 흡입기가 분리된 것이었다.
청소기는 성인이 사용할 것이라고 가정하고 만들어서인지 흡입기가 그저 길쭉한 봉 모양이라 하더라도 길고 무거워서 빅터는 끙끙거리며 움직이고 있었다.
“무거울텐데~”
“괜찮아.”
괜찮긴?
이글은 빅토르의 머리를 쓰다듬어 진정시키다가 장식용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고 빅토르는 후닥닥 뛰어 집안 어디의 구석으로 뛰어 사라졌다.
잠시간 벽에 기대 서서 빅터가 청소하는 모습을 보아하니.
결국 무게를 못이기고 휘두르다시피 하고 있다.
그래서 결국 이글은 빅터가 잡은 청소기의 뒷부분을 잡았다.
“자, 천천히 다시 밀어봐.”
이글이 부드럽게 힘을 주자 아까보다 자연스럽게 움직였고.
청소기를 들어 방향을 고치는 것도, 한 손으로 힘을 주어 누르자 손쉽게 들어올려졌다.
“...불필요한 도움이야.”
혼자서 할 수 있다, 며 눈을 흘기는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아, 그러셔?”
이글은 빅터가 단단히 막대를 잡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몸을 앞으로 숙여서 흡입기의 뒤를 잡지 않은 손으로 빅터가 잡은 부분보다 조금 앞을 잡았다.
덕분에 몸이 바싹 밀착했고, 이글은 제 뺨에 닿는 색 연한 머리카락에 대고 입김을 훅 불었다.
“뭐 하는-!”
“글쎄~”
영차 힘을 주어 청소기를 들었다가 내려서 밀자 막대에 매달린 몸이 달랑 들려 흔들린다.
“야아~ 혼자서도 잘~ 하네~?”
말하는 한 마디 박자에 맞춰서 청소기를 앞으로 밀었다가, 뒤로 당겼다가, 다시 밀었고.
거기 맞춰서 빅터의 발이 땅에 닿았다가, 달랑 들렸다가 다시 땅에 닿았고.
여지껏 검을 배우거나 하며 몸을 단련한 것을, 이글은 감사했다.
열다섯 먹은 소년이 매달려 바둥거리는데도 이렇게 간단히 놀릴 수 있다니.
속으로만 웃으려는 것이 조금씩 밖으로 기어나와서 입 밖으로, 작은 기침같은 소리에서 시작해서 결국 참지 못하고 터져나왔다.
웃음소리가 커질수록 빅터의 바둥거림도 심해져서 결국 놓아줄 수밖에 없었다.
“야, 삐졌어? 응?”
이쪽을 보지는 않는데.
이봐, 목덜미가 발긋하잖아.
손을 뻗어 따끈한 목을 잡았더니 홱 빠져나간다.
“야~ 이봐, 빅터~”
이름을 부르는 건 또 간만인가.
빅토르처럼 어디 구석을 찾아 뛰어가는 모습에 청소기의 전원도 내리지 않고 이글이 뒤를 쫓아 뛰었다.
이상도 하지.
분명 처음에는 화가 날 정도로 불쾌했던, 그에게서 보였던 어린 날 자신의 모습이 싫지 않다니.
아니, 오히려.
오히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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