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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랑 외식하자.”

 

이글은 여느때처럼 높게 묶은 머리를 살랑거리면서 다이무스의 사무실로 들어왔다.

 

다이무스의 눈빛이 탐탁찮다는 듯 바뀌자 이글은 허둥허둥 거기에 몇 마디를 덧붙였다.

 

내가 쏘는거야! 형 지갑 스틸하려는 것도 아니고 이거 빌미로 뭐 해달라는것도 아니고 일부러 비싼거 시켜놓고 어라, 지갑이 없네에~’하려는 것도 아냐!”

 

그러고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눈빛은 가시질 않는다.

 

이글.”

 

약간의 침묵이 있었고 마침내 다이무스가 입을 열었다.

 

“‘쏜다는 말은 어디서 배운 거냐. 내가 분명 어린 나이니 연합에 간다는 철없는 선택을 할 수는 있을거라고 했지만-”

 

“...책임을 지라고, 네에 네에.”

 

이글은 건성건성 대꾸하다가 다이무스의 눈매가 사나워짐을 느끼자 헛기침을 하고 짐짓 예절바른 모습으로 팔을 움직였다.

 

금일, 홀든 다이무스님의 탄신일을 맞이하야 기쁜 마음으로 데이트를 신청하고 싶습니다만 저녁식사라도 함께 어떠십니까.”

 

다이무스는 무어라 한 마디 야단이나 잔소리라도 할 것처럼 입을 열었다가 짤막하게 한숨을 쉬었다.

 

“...알았다. 옷은 뭘 입고 가지? 평상복?”

 

아니! ~쁘게 차려입고 나와. 그럼 난 이만 가볼게!”

 

문이 닫혔다.

 

문 너머로 이글이 은행 아가씨들에게 수작질하는 소리가 들려 다이무스는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저번처럼 정장을 입고 갔더니 허름한 펍으로 데려가는 일만 없었으면 좋겠군.

 

경쾌한 발소리가 멀어져갔다.

 

...그래도 내 생일 챙겨주는 건 저 녀석밖에 없군.

 

 

 

 

 

 

 

저녁, 다이무스는 늦지 않게 약속장소에 갔다.

 

차림은 격식에 맞게.

 

그리고 약속시간을 조금 넘어서 나타난 이글을 본 다이무스는.

 

본디 표현이나 말이 적은 그였지만.

 

놀라움을 짧게나마 얼굴 가득히 띄웠다.

 

이글?”

 

짜잔~ 놀랐지~?”

 

장난기 가득한 표정에 경쾌한 웃음소리에, 거기까지는 자신이 알던 그대로고 예상했던 차림이지만.

 

나머지 부분이 평소와 엄청나게 다르다.

 

방해되지 않도록 대충 올려묶은 머리는 단정히 빗어 아래로 내려 묶었고(한때 벨져가 그랬던 것처럼) 보기만 해도 거슬리고 답답한 한가닥 앞머리는 넘겼는지, 보이지 않았다.

 

평소에는 갑주 안에도 아무것도 입지 않았고, 벨트도 왜 하는지 모를 정도로 헐겁게 늘어뜨리고 다니던 녀석이 단정한 아비 프락(연미복)에 크라바트라니.

 

놀랐나보네! 아하하!”

 

이대로 사진관에 데려가서 사진 한 장 박고 싶구나.”

 

그 말은 들은체만체하고, 이글은 다이무스의 손을 이끌어 제법 그럴싸한 레스토랑으로 데리고 갔다.

 

이글 홀든으로 예약했습니다.”

 

이쪽입니다.”

 

자리에 앉자 전채로 훈제한 연어를 멜론에 싼 것이 나왔다.

 

웨이터가 물러가자 가장자리의 포크를 집으며 다이무스가 먼저 입을 열었다.

 

예상 밖이구나.”

 

아하하, 어떠셔? 이 몸이 할 때는 한다는 말이지~”

 

기왕이라면 내 생일 같은 날보다는 집안의 중요한 일이나 그런 때 해줬으면 좋겠다만.”

 

에엥~ 무슨 말씀? 이글 홀든 24년 인생에 집안 최대 행사는 큰형아 생일이거든?”

 

전채요리를 담은 접시가 비워지자 수프가 나왔다.

 

다이무스의 취향에 맞는 것으로, 이글과 종류가 다른 것을 보아 신경 써서 예약한 것이 틀림없었다.

 

그 후의 생선, 고기 테린, 메인, 샐러드에 곁들인 와인까지 전부 그가 특별한 날에 즐기는 것이라.

 

다이무스는 꽤나 감동받았다.

 

형아~ 어때~ 만족스럽지이~”

 

“...테이블에 팔을 괴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다.”

 

퉁명스레 얘기함에도 이글은 다 안다는 듯 씩 웃는다.

 

“.....동생을 키운 보람이 있다, 정도는 생각하고 있다.”

 

아 웃기셔, 형이 키웠나? 한나가 키웠지.”

 

다음은 디저트 차례다.

 

달지 않고 깔끔하게 끝낼 수 있는게 좋겠지.

 

사실 어느 정도는 기대했다.

 

뻔히 마음에 차는 것을 알면서도 굳이 한 마디 말이나 머리를 쓰다듬는 것으로 칭찬을 받고 싶은지, 이글이 안절부절 못 하여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디저트 있지, 다크 초콜릿이랑 과일을 써서 형이 좋아할만한 걸로 해 달라고 했다~?”

 

기대되는군.”

 

다이무스의 눈가가 누그러졌다.

 

이글은 그들의 테이블로 웨이터가 다가오는 것이 보이자 초조하게 머리 끝을 손가락으로 감아대었다가 풀었다.

 

저 모습은 어릴적과 하나도 안 바뀌었지.

 

다이무스는 웨이터가 가져다주는 접시가 제 앞에 놓이자 코를 씰룩였다.

 

초콜릿과 과일을 듬뿍 얹은 케이크, 그리고 굳이 코를 가져다대지 않아도 느껴지는 단내.

 

이글이 기대에 가득 찬 눈으로 이 쪽을 보는 것이 느껴졌다.

 

다이무스는 이글 앞에 다른 접시가 놓이는 것을 보고는 작은 스푼을 들었다.

 

달그락, 달그락.

 

이글은 제 앞에 놓인 디저트를 신나게 퍼먹었다.

 

제 형이 앞에서 보기만 해도 달아빠진 초콜릿 디저트를 덤덤하게 먹는 것은.

 

글쎄, 동생에게 실망을 안겨주지 않겠다는 상으로서의 위엄 같은 걸까?

 

마침내 다이무스의 그릇이 비워지고 딸그랑 소리를 내며 숟가락이 떨어지자, 둘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 디저트 먹는 속도가 느리던데~”

 

배가 불러서 그랬던 거다.”

 

아까 형이 미간 찡그리는거 다 봤거든요!

 

레스토랑 밖으로 나오자 이글은 숨죽여 킥킥 웃으면서 냅다 달려들어 다이무스의 팔짱을 꼈다.

 

~, 그럼 오늘은 특별히...”

 

사진 찍으러 가지.”

 

? , ? 형아? 다이무스 형?!”

 

아이고 큰형이 나 납치한다~며 이글이 웃었다.

 

장담하는데, 이건 디저트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하는 거다.

 

냉철한 은행원이고 회사의 에이스에 홀든을 이을 장남?

 

...근데, 동생인 내가 봐도 귀여운데!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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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X빅터] 고양이 -07

2015. 10. 12. 11:25 | Posted by 호랑이!!!

 

야간학교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이것도 내 머리가 좋은 덕이지.

 

이글은 다소 자만하며 정문에 가 섰다.

 

어디, 이 꼬맹이가 감히 며칠이나 내 집에 오지 않았단 말이지?

 

정문 한가운데에 서 있으려니 얼마 안 있어 학교의 문 쪽에서 사람들이 떼지어 나왔다.

 

과연 야간학교라서 그런가 생각보다 나이 든 사람들이 다수.

 

빅터 같은 학생뻘 아이들은 오히려 적었다.

 

직업만 봐도 일용직 노동자들이 다수.

 

그리고 어린아이 한 무리가 나오고(그래도 빅터보다는 나이 들어 보인다).

 

어느 술집에 가서 맥주를 한 잔 하자는 소리를 하며 우우 몰려가는 무리 뒤로 익숙한 파란색이 보였다.

 

하얀 머리는 고개를 숙이고, 그렇게 무거워 보이지 않는 가방을- 아니, 가방조차 없이 옆구리에 책과 공책을 끼웠다.

 

고개를 들어 저를 볼 것 같지 않아, 이글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

 

하얀 머리가 퍼뜩 들렸다.

 

놀란 것처럼.

 

그리고 눈이 동그랗게 뜨이고, 뭔가 말할 것처럼 입이 벌어졌다가 다물린다.

 

이글은 빅터가 무릎을 구부려 날아오를 준비를 하자 냉큼 손목을 잡아챘다.

 

어딜 가?”

 

“...”

 

손을 흔들어 떼려고 하는 주제에 입은 조용하네.

 

이글은 어린애를 안아올리듯 양 겨드랑이에 손을 넣더니 들어올려 어깨에 걸쳤다.

 

, 가만있네.

 

비록 등을 주먹으로 내리치긴 하지만 예상했던 발길질은 날아오지 않고, 주먹질도 이 정도면 안 아픈거지 뭐~

 

이글은 그대로 제 집으로 데려갔다.

 

발로 툭 걷어차 소파를 벽난로 쪽으로 밀어 거기 빅터를 내려놓자 조그만 고양이가 달려들어 올라탄다.

 

핫밀크에 초콜릿?”

 

이걸 거부한 적은 없으니까 물으면서도 우유 든 주전자를 불 위에 올렸는데, 흘끗 돌아보니 고개를 젓고 있다?

 

이글은 성큼성큼 걸어서 빅터 앞에 서 고개를 얼굴 가까이로 들이밀었다.

 

--하는 숨소리가 들리고.

 

얼굴 빨간 것은 들쳐업느라 피가 몰려서라던가 벽난로 때문은 아니렷다.

 

“...말해보라고, .”

 

고개를 젓는데.

 

이봐, 난 그렇게 거칠게 굴고 싶지 않았다?

 

이글은 커다란 손으로 덥썩 빅터의 얼굴을 잡아 억지로 입을 벌렸다.

 

감기구만?”

 

말을 하지 않은, 못한 건 목이 부어서네.

 

이글은 눈살을 과장스럽게 찌푸리며 뒤로 물러났다.

 

마침 잘 됐네~ 며칠 여기 있으면서 내가 오븐으로 시험작 만드는 거나 좀 봐라?”

 

글쎄 어젠가 그제인가는 빵을 구워봤는데 글쎄 그게 까맣게 타서 훅 부니까 가루가 날아가지 뭐야~

 

빅터는 빅토르를 옆으로 내려놓고 잽싸게 몸을 일으켜 문 쪽으로 한 걸음 내딛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빅터는 이글 바로 앞에 서서, 안겼다.

 

사영도~ , 이건 부지깽이지만!”

 

이글이 유려한 손놀림으로 장작 뒤집는 쇠막대를 마치 칼처럼 써서 빅터를 제 앞으로 끌어온 것이다.

 

그리고 덥썩 안고.

 

빅터가 고개를 들자 이글은 씩 웃다가 가늘게 눈을 떴다.

 

“...자고 갈 거지?”

 

빅터는 굳어서 부지깽이가 바닥으로 툭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간신히 대답 대신 고개를 푹 떨구자, 만족스럽다는 듯 이글은 빅터를 놓아주고 홱 뒤로 돌았다.

 

이글은 감기에는 닭 넣고 끓인 수프라며 부엌 쪽으로 가다가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깔깔 웃었다.

 

안아줄 때 엄청 긴장하더라?”

 

빅터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이글의 웃음소리가 더 커졌다.

 

말을 할 수 있다면 우유 탄다고 한 마디 쏘아줄 텐데.

 

빅터는 투덜거리며 소파에 몸을 더 깊이 묻었다.

 



[이글X빅터] 고양이 -06

2015. 10. 11. 18:48 | Posted by 호랑이!!!

 

그 다음날의 아침, 화장실의 먼지낀 거울 속 빅터의 얼굴은 열이 올라 새빨갰다.

 

감기, 그것도 열감기인가.

 

친척은 아랑곳않고 공장에 나가라고 할 테고, 학교는 나가야 하니까-

 

아무래도 이글의 집에 가는 것을 쉬어야겠다.

 

어차피 옮기면 안 되니까.

 

이 꼴을 보였다가는 억지로 자고 가라고 할지도 모르고.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생각했다가 빅터는 머리를 털어내었다.

 

뭘 바란다는 듯이 생각하는 거야.

 

그리고 여느 때처럼 파란 겉옷을 챙기고 거리로 나갔다.

 

아침안개의 냄새, 사람 없는 적막한 거리에 드문드문 보이는 것은 저와 같은 처지에 있는 공장 노동자들.

 

작은 가판대 하나 열리지 않았고, 열렸다 하더라도 제 주머니에는 동전 하나도 없다.

 

공장에서 주는 맛없고 퍽퍽한 빵과 차가운 물 한 잔-

 

이 빵이 맛없다고 느끼게 된 것은 아마도 이글이 제게 스튜를 먹인 다음부터겠지.

 

 

 

 

 

 

 

이글은 낮까지 잤다.

 

점심때가 되면 일어나서 연합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는 저녁에 먹을 것을 생각하며 장을 봐 온다.

 

집에 있는 요리도구라고는 냄비, 작은 냄비밖에- , 큰 냄비도 있었군.

 

최근 빅터가 오면서 제대로 요리를 하게 되자 사 놓은 것이다.

 

오븐이 있었다면 좀 더 다채로운 요리를 하게 될 거고, 화덕이 있다면 이탈리안 요리도 할 수 있겠지?

 

...오븐이라도 살까- 고민하는데 그의 어깨를 누군가가 툭 쳤다.

 

요즘 펍에 안 가더라?”

 

돌아보니 레베카였다.

 

펍에 꼬박꼬박 들러 밤을 보낼 때 늘 합석하던 친구.

 

고양이를 주워서~ 그거 돌본다고 말이지.”

 

안어울리네- 맥주라도 사서 집에 찾아갈까?”

 

미안~ 안돼~”

 

레베카의 뒤를 보니 휴톤과 도일이 있었다.

 

오늘도 마시러 가나 보지.

 

손을 흔들어주고, 이글은 충동적으로 지갑을 열어 오븐을 샀다.

 

빵집에 들러 커다란 빵도 하나 사고.

 

설탕과 버터와 초콜릿을 아낌없이 쓴다면 좋아하겠지.

 

어디까지 단 것을 좋아하려나, 우유에 초콜릿도 타서 같이 먹일까.

 

이글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러나 자신의 집에 왔던 날부터 사흘, 빅터가 오지 않는다.

 

첫째 날, 이글은 오븐을 청소하면서 보냈다.

 

이튿날, 이글은 하얀 고양이 빅토르를 손바닥 위에 얹으며 놀았다.

 

셋째 날에 이글은 빅토르를 괴롭히다가 손가락을 물렸다.

 

이놈의 고양이.

 

이글은 빅토르의 우유에 설탕을 넣어 먹였다.

 

, 난 너 마음에 안 들어.”

 

고양이는 설탕 탄 우유를 작은 혀로 할짝할짝 핥았다.

 

듣고 있어? 맘에 안 든다고 꼬맹아.”

 

손가락으로 쿡 고양이의 뺨을 찌르자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애앵 우는 소리를 낸다.

 

벌써 시간은 한밤중이지만-

 

야간 학교는 곧 마칠 시간이지.’

 

위치가 어느 즈음이더라.

 

이글은 겉옷을 집어 어깨에 걸치며 문을 열고 나섰다.




[이글X빅터] 고양이 -05

2015. 10. 11. 01:28 | Posted by 호랑이!!!

 

잘 교육받은 귀족집 도련님 답게, 이글은 깨끗한 발음으로 둘을 구분했다.

 

빅터, 그리고 빅토르.

 

빅터도 몇 번쯤 그 발음을 흉내내 보았지만 이글이 만드는 그 낮게 울리는 음은 나오지 않았다.

 

빅터가 빅토르라고 말하는 것은 꼭 빅톨처럼 들렸는데, 어쨌거나 그래도 이글은 알아들었고 잘 한다며 가끔은 빅터의 등을 두드려 주기도 했다.

 

아직도 계절은 겨울 한가운데라 빅터는 벽난로 앞 안락의자 팔걸이에 머리를 기대고 바닥에 앉아 멍하니 일렁이는 불꽃을 보았다.

 

이글이 자신을 빅토르라고 하는 상상을 하며.

 

빅터의 상상 속에서 이글은 빅터를 보고 빅토르라고 불렀고, 끝의 발음을 길게 늘어뜨렸다.

 

회색 줄무늬가 있는 하얀 고양이 대신, 이글은 굳은살이 박힌 묵은 흉터투성이 손으로 웅크린 빅터를 몇 번이고 머리부터 등허리까지 쓰다듬었다.

 

그 때 이글의 표정은-

 

.”

 

퍼뜩, 빅터는 정신이 들었다.

 

지금 무슨 생각을 한 거야?

 

벽난로 앞에 그렇게 가까이 붙어있으면 어떡해? , 열 올라서 얼굴이 빨갛잖아.”

 

이글의 손이 빅터의 뺨을 잡았다.

 

정말로 열이 나는 것 같았다.

 

자고 가. 이 날씨에 밖을 돌아다니면 더 심해지니까.”

 

그 말에 빅터는 벌떡 일어났다.

 

빅토르가 무릎에서 굴러 떨어져 약하게 항의하는 소리를 냈다.

 

몇 시지?

 

벌써 열시 반이 되어가고 있었다.

 

간다.”

 

?”

 

이글은 못마땅함과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 뒤섞인 표정을 지었다.

 

내 침대 넓어, 베개도 이불도 있고 옷도 좀 크지만 여분이 있고.”

 

아니, .”

 

공장 직원, 더부살이, 야간학교.

 

빅터는 다른 의미로 얼굴이 빨개지는 것을 느꼈다.

 

학교 가.”

 

상대는 개인 교사를 붙여 교육을 받은 사람이고, 저보다 얼마 나이가 많지 않은데 어른이고 집도 있는데다 가족들도 더할 나위없이 상류층인 사람이다.

 

잊고 있었지만, 그런 사람에게 말하려니 스스로에게 화가 난다.

 

아직까지 제 발을 공격하는 새끼 고양이를 번쩍 들어다 의자 위에 내려놓고 바깥으로 나갔다.

 

아마 학교가 끝나면 한밤중일 테고 딱딱한 침대에 누워서 얇은 이불로 몸을 말고 웅크리면 따뜻한 난롯불 생각이 날 것이다.

 

그렇지만 이글이 빅토르하고 부를 때마다 움찔거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보다는 그래도.

 

그래도 차가운 침대 쪽이 낫지 않겠냐고.




이글은 연합 소파에 길게 누워 있었다.

 

맨발에는 쇠 양동이가 걸려 이따끔 발을 흔들 때마다 휭 돌았고 늘 올려 묶던 머리는 풀어져 몸이며 소파 위에 흘러내렸다.

 

발치에는 양동이와 같이 쓰는 빗자루나 대걸레가 같이 놓여서 소파에 기대고 있었고.

 

아슬아슬하게 발가락에 걸어 몇 번 더 양동이를 흔들던 이글은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손가락에 감아 비비꼬며 전화기의 번호판을 손가락 끝으로 돌렸다.

 

차르륵 차르륵 기계 돌아가는 소리에 이어 얼마간 기계음이 나고, 수화기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나다]

 

잘 있었어?”

 

[별 용건이 없다면 이만 끊으마]

 

매몰차긴, 우리 형.

 

이글은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이번에 동양계 능력자들이 대거 참전했는데 말이야~ 그 중 둘이 그랑플람이거든?”

 

누가 들었다고 하더라도 요즘 제 주변에서 일어나는 근황 정도로 들릴만한 정보들을 말하고 나자, 손가락이 머리카락을 꼬는 것이 빨라졌고 어쩌다 실수로 양동이를 떨어뜨렸는데 조심스레 발끝을 뻗어 다시 걸었다.

 

있지- 이번에도 물어보는건데 말이야아-”

 

어딘가 머뭇거리고, 어딘가 말꼬리를 늘이고, 어딘가 수줍어하는 목소리.

 

마치 예닐곱살의 아이들이 좋아하는 여자아이에게 길에서 꺾은 들꽃을 내밀기 직전의 목소리.

 

이글은 그런 목소리로 속삭였다.

 

루이스 때문에 영국으로 오지 않는거면- 내가 죽여줄까?”

 

뎅겅-.

 

이글의 발에 걸린 양동이는 한 바퀴 크게 돌더니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왜 루이스를 죽이는데 그렇게 집착하는 거냐]

 

그치마안- 내가 여기서 형을 위해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겨우 그것밖에 없단 말야-”

 

맨발가락을 까딱까딱 움직이며 이글은 해사하게 웃었다.

 

천진하고 밝은 웃음이라서 누군가 보았다면 좋아하는 사람과 통화한다고 생각이 들 정도로.

 

죽이게 해줘- ?”

 

[네가 루이스를 죽여도 내가 그쪽으로 당장 가는 일은 없다]

 

네에-”

 

이글은 짐짓 토라진 목소리를 내어 대꾸하고는 허공으로 새끼손가락을 뻗었다.

 

그럼, 나중에 무슨 일 있으면 나 부를 거지?”

 

[...]

 

부를 거지?”

 

[...]

 

약속했다?”

 

수화기 너머에서 한숨 쉬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전화는 끊어졌다.

 

이글은 끊어졌다는 요란한 소리가 나는 수화기를 귀에 바짝 대고서 소파 위에서 굴렀다.

 

, . 벨져 형.”

 

너무 좋아.

 

바르작거리다 떨어졌는지 쿵, 소리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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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X빅터] 고양이 -04

2015. 7. 23. 19:08 | Posted by 호랑이!!!

 

“빅토르~?”

 

다음 날, 그 이름을 들은 빅터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예상한 일이었지만) 눈을 치켜떴다.

 

“왜 눈을 그렇게 떠?”

 

어차피 한 마디 제대로 하지도 못할 거면서.

 

이글은 입꼬리를 씨익 올리며 소파에 앉은 그를 내려다보았다.

 

날은 여즉 쌀쌀해, 그 손에는 데운 우유잔이 들려 있었다.

 

초콜릿과 바닐라를 타서 달콤한 향이 나는 것.

 

이글은 단 것이라면 그닥 내키지 않았지만, 아침 즈음 장을 보러 갈 때 빅터의 생각이 나 사둔 것이다.

 

왜 그랬을까, 초콜릿도 바닐라도 커다란 통이라 혼자서는 다 비우지 못할 텐데.

 

언제까지 저 꼬마가 올 줄 알고.

 

“,,,아냐.”

 

거 봐.

 

이글은 그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아, 빅터의 손목을 잡아챘다.

 

“따라해.”

 

“...”

 

뭘? 이라고 말하는 듯 입술이 살짝 벌려졌지만, 결국 말은 나오지 않는다.

 

잡힌 손목 때문인지 잔뜩 굳어서는 가까이 붙은 자신을 간신히 올려보니까.

 

“자, 따라해 봐- 싫어, 라고.”

 

그러나 굳어서는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다.

 

더 가까이 붙어서,

 

“싫다고 해보라니까?”

 

그러나 고개를 젓는다.

 

“말 해. 입 열어.”

 

대답하라고.

 

싫다고 말하라고.

 

“...비...”

 

간신히 입을 열었지만 안돼, 라던가 싫어, 같은 말은 아닐 것 같다.

 

심지어 그 목소리도 아주 작아.

 

“...비켜.”

 

“못 비켜.”

 

비키게 해봐.

 

네가 잘 하는 거 있잖아? 바람으로 밀쳐내기, 때리기, 찢기, 그런거.

 

휘이잉.

 

빅터의 손 안에서 바람이 작게 소용돌이쳤지만 그뿐, 금방 꺼질 듯 말듯하게 보였다.

 

잡은 손목을 부러뜨리기라도 할 것처럼 손에 힘을 주었다.

 

애옹-

 

아직 한참이나 어려 높은 소리로 앵앵 우는 고양이 소리에 이글은 정신을 차린 것처럼 손을 놓았다.

 

“...아, 장난이야. 하하하.”

 




[마틴X이글] 도서관

2014. 11. 11. 00:57 | Posted by 호랑이!!!

마틴은 도서관에서 이글 홀든과 마주쳤다.

 

그의 팔에 들린 것은 꽤 두꺼운 책들.

 

의외로군, 책을 많이 읽는다는 느낌은 받지 않았는데.

 

마틴의 능력이 사람들의 마음속을 읽는 것이니만큼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멍청한 일인지는 안다.

 

하지만 책을 읽는 사람에게서 으레 배어나오곤 하는 깊이나 매력 따위는 여지껏 이글에게서 본 적 없었다.

 

여어, 챌피. 너도 책 빌리러 왔어?”

 

안녕하세요 홀든.”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건네자 이곳이 도서관이라는 점을 감안해 작아진 목소리가 귓가를 간질였다.

 

여기, 도서관이 생각보다 잘 되어있지 뭐야. 나도 모르게 이것저것 빌려 버렸어.”

 

그러면서 짓궂은 웃음을 짓는다.

 

자신과는 동갑이라고 생각하지 못 할 정도로 가볍고 장난스러워 얼핏 귀엽다고 생각해버렸다.

 

그때 연합의 나이오비가 양팔에 책을 안고 다가왔다.

 

이글, 여기 좀 봐.”

 

나이오비가 가져온 책은 전부 동화책이었는데 이글은 그 책들을 두 가지로 나누었다.

 

여기, 이쪽에 있는 건 애들 읽기 힘들 테고... ...이쪽에 있는 게 내가 추천하는 쪽.”

 

이거 재미있네.

 

나이오비는 책에 시선을 두느라 몰랐겠지만 마틴은 보았다.

 

책을 분류하느라 집중하는 동안 이글의 얼굴에서 뭔가가 한 겹 떨어지는 것 같더니 책을 많이 읽는 사람들이 책을 대할 때 짓는 표정이 보였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무언가의 분위기가 흘러나왔다.

 

그 머릿속에 나타난 것은 이글이 기억하는 어린 시절.

 

아마도 행복했을 한 때.

 

이글이 생각하는 속에는 고풍스러운 방 안과 커다랗고 밝은 난롯가가 있었고, 푹신하고 멋진 안락의자와 유모와 형들이 있었다.

 

거기 비치는 감정까지 읽으려 했는데 이글은 이미 마지막 책까지 분류해버렸다.

 

그리고 그 기억들과 분위기와 표정은 이글이 가진 까맣고 차가운 상자 속에 빨려들어가더니 이내 그 상자마저 사라졌다.

 

마틴은 고개를 들었다.

 

평소의 이글이다.

 

겉도, 속도, 표정도, 분위기도, 생각하는 방식까지도.

 

마틴은 이글이 분류한 책 한 권을 들었다.

 

이 책들을 전부 읽어봤나요?”

 

아아, 집에 서재가 있어서. 책만큼은 아쉽지 않게 읽으며 자랐어.”

 

마틴은 이글과 잘 가라는 인사를 나눈 뒤 집었던 동화책을 펼쳤다.

 

이글의 머릿속에서 보았던 것과 토씨 하나 다르지 않은 내용이었다.

 

마틴은 책의 덮개를 입술에 가져다 대고 미소를 지었다.

 

아주 재미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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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무스X이글] '지나치게' 감상적인

2014. 11. 2. 20:53 | Posted by 호랑이!!!

주위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건 간에, 다이무스 홀든은 스스로를 지나치게 감상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꽃잎이 떨어지는 광경이나 구름이 하늘에 흘러가는 모양을 하염없이 바라보거나 시 쓰는 일을 좋아하니까.

 

자신은 감상적이다.

 

가주는 감상적이어서는 안 된다.

 

자신은 가주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다.

 

그래서 때로 그는 생각했다.

 

차라리 벨져가 첫째로 태어났더라면 좋았을 것을.

 

분명 좋은 가주는 되지 못하더라도 스스로가 그 위치에 만족할 테니까.

 

다이무스는 창밖을 보다가 책상 위의 쌓인 서류로 시선을 돌렸다.

 

자신은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기억을 더듬어 보면 이글과 책을 읽던 일이 떠오른다.

 

그 책에서는 현학적이고 감상적인 현자가 나왔었고, 같이 책을 읽던 이글은 그 현자가 멋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어렸던 자신은 그 말이 뇌리에 박혔다.

 

현학적이고 감상적인 시라도 써 보려고 했다가 너무 형편없어서 물에 씻어버린 양피지도 여럿 되었었지.

 

그 생각에 이르자 굳어있던 눈가가 부드럽게 풀렸다.

 

"형아, 술 마시자."

 

갑자기 노크도 없이 불쑥 들어와 이글이 말했다.

 

'같이 마실래?'가 아니라 '마시자'인 만큼 이글의 손에는 글라스 두 개와 포도주 병도 들려 있었다.

 

뭔가 중대한 결심이라도 한 걸까, 안색은 굳었고 불안해 보였다.

 

매일 실없이 웃는 얼굴을 하던 이글이 저런 표정이라니.

 

아무래도 이상해서 서류를 하는 대신 같이 술을 마셔주기로 하고 다이무스는 책상에서 서류를 정리해 한쪽에 쌓아두었다.

 

이글은 의자를 가져와 털석 앉더니 글라스에다 와인을 콸콸콸 따랐다.

 

"무슨 일 있더냐?"

 

", 나 말이야-"

 

이글은 연거푸 몇 잔을 들이켰다.

 

저만한 양을 저렇게 들이킨다면 한잔으로도 취할 텐데.

 

"난 형이 좋아. 형이 날 좋아하듯 형이 좋다는 게 아니야. 사랑해."

 

젊은 남자가 연인에게 할 법한 사랑한다는 고백을 듣고 다이무스는 눈을 내리깔고 천천히 글라스에 술을 따랐다.

 

자신은 지나치게 감상적인 인간이다.

 

방금도 이글의 고백을 듣고 하마터면 흔들릴 뻔 했으니.

 

자신은 가주가 되어야 한다.

 

감상적인 부분은 잘라내야 한다.

 

절대로, 흔들리면 안 된다.

 

다이무스는 와인잔을 내려놓고 서랍에서 뭔가를 꺼냈다.

 

형의 반응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던 이글은 자신의 손 옆에 칼이 내려꽂히자 섬뜩함을 느꼈다.

 

아름답게 세공된 편지칼이 손목 옆에 꽂혀 있다.

 

아주 조금이라도 옆으로 움직였다간 오랫동안 검을 잡지 못할 위치였다.

 

"... 다이무스 형...?"

 

"기분 나쁘다."

 

다이무스는 아까와 다를 바 없는 표정과 목소리로 지극히 당연한 것을 말한다는 듯 천천히 손을 떼었다.

 

"네가 제정신이라면 그런 말을 하지 못할 것이다."

 

다이무스는 자칫 흔들릴 뻔한 자신을 다잡듯 말했다.

 

"설마 내가 네 말을 듣고 기뻐하기라도 할 줄 알았나."

 

몸을 숙이자 자신의 눈 앞에 불안하게 떨리는 이글의 눈이 있었다.

 

"두 번 다시는, 내게 가까이 오지 마라."

 

이글은 도망치듯 방을 빠져나갔고 다이무스는 열린 문을 보다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쓰러지듯 자리에 털석 주저앉았다.

 

팔을 앞으로 쭉 뻗더니 정갈하게 쌓여있던 서류를 옆으로 떨어뜨려버렸다.

 

종이는 팔락거리는 소리를 내며 땅으로 떨어졌고 다이무스는 책상에 이마를 대고 있다가 머리를 들고 엎질러진 잔에 와인을 다시 가득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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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이제 저한테도 평화로운 아침 시간을 달라구요!”

 

뭘 그 정도로 그래~ 오늘은 별일 없었잖아?”

 

-- 없었다구요? 우편물을 전부 다시 분리해서 하나하나 전교생에게 가져다 준 데다 부엉이들이 다친게 별일이 아니예요? 후플푸프 애들도 여럿 다쳤다구요!”

 

부엉이 발톱에 좀 긁힌 거 가지고 호들갑 떨긴.”

 

후플푸프 애들은 이제 래번클로의 이글 홀든하면 치를 떤다구요! 아무리 착한 애들이지만 이대로 가면 그리핀도르와 슬리데린처럼 사이가 나빠질 것...

 

이글은 이어지는 잔소리에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후비적거리는데 지나가던 루이스와 마주쳤다.

 

안녕, 오늘도 수고하네 반장.”

 

수고라뇨, 뭐 수고랄 것 까지는... 루이스 선배도 작년에 반장이셨잖아요.”

 

허어.

 

이글은 순식간에 변신해 수줍어하는 토마스를 보았다.

 

하기사, 이글은 알고 있었다.

 

작년에 루이스가 그리핀도르의 반장을 지낸 이후 토마스가 얼마나 반장을 하고 싶어 했는지.

 

그리고 올해 은색의 P배지가 반장 임명장과 함께 도착하였을 때 얼마나 기뻐하였는지도.

 

그래도 이거 너무하네, 아까까지 자신한테 딱 붙어 잔소리를 퍼붓던 토마스는 어디로 가고 이렇게 수줍어하는 새댁같은 녀석이 왔냐.

 

토마스, 얼굴 빨개졌다.”

 

, 아니, 이건... 그냥 더워서...”

 

이제 11월인데?”

 

손부채질을 하는 토마스를 삐딱하게 놀려대자 루이스는 둘의 어깨를 툭툭 쳤다.

 

수고해, 토마스 반장. 이글 너도 토마스 그만 고생시키고.”

 

루이스가 떠나자 이글 홀든은 입술을 삐죽 거렸다.

 

수고해 토마스 반장~?”

 

이글은 멀어져가는 루이스 쪽으로 혀를 내밀었다.

 

들었죠? 저 좀 그만 고생시키라고 하잖아요.”

 

, 꼭 갓 결혼한 새신랑한테 하는 말 같네.”

 

전 이글 형 아니어도 할 일이 많다구요.”

 

토마스는 이글의 말을 못들은체 하며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토마스 형.”

 

그때 저쪽에서 걸어오는 1학년 꼬마가 보였다.

 

초록색 머리에 하얗게 타들어간 눈.

 

미쉘 모나헌의 동생으로 홀해 입학한 1학년생이었다.

 

반장에, 퀴디치 선수에, 보모라니 거 바쁘겠네.”

 

형이 사고만 안 치면 토마스 형 일도 반으로 줄어들 거야. 망나니 형.”

 

그러더니 토마스의 다리 뒤에 숨어서 보란 듯 토마스를 끌어안는다.

 

그건 네 얘기겠지, 하루종일 토마스한테 찰싹 붙어선.”

 

내가 그런다고 기숙사 점수가 깎이거나 징계를 받지는 않아. 오늘 소동으로는 몇 점 깎았어? 5? 10?”

 

20점이었다.

 

토마스는 그만 하라는 듯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 거기까지. 피터, 수업 들어갈 준비 다 했어?”

 

.”

 

교과서?”

 

넣었어.”

 

양피지 두루말이.”

 

있어.”

 

잉크병, 깃펜은?”

 

피터는 대답 대신 가방을 열어 보여주었다.

 

잘했어, 그럼 수업 잘 다녀와.”

 

, 형아도 잘 다녀와.”

 

얼씨구, 아주 훈훈하시다.

 

겉보기만으로는 우리 형제보다도 더 형제같으니 이게 바로 물이 피보다 진하다는 경우로구나.

 

이글은 피터와 눈이 마주치자 눈꺼풀을 까뒤집었다.

 

그리고 지나가는 피터한테 있는 힘껏 발을 밟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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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X빅터] 고양이 -03

2014. 11. 1. 18:03 | Posted by 호랑이!!!

 

이글이 자고 가라고 했음에도, 빅터는 저녁을 먹고 한두시간 고양이를 돌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애 이름은 지어주고 가.”

 

고양이의 화장실 설치나 스크래처가 딸린 캣타워를 만드느라 시간을 한참이나 써버렸다.

 

피곤한 표정으로 일어나는 빅터에게, 이글이 툭 던졌다.

 

말하고 보니 그럴싸한 이유다.

 

빅터를 그냥 보내기에 아쉬워 아무거나 집히는대로 던졌건만.

 

이름...”

 

나비? 야옹이? 복실이?”

 

농담삼아 몇 가지 얘기했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래, 농담이야.

 

체르니... 바흐... 베토벤...”

 

“...너 음악가한테 무슨 감정이라도?”

 

당장 떠오르는 이름이 그것밖에 없어서.”

 

또 뭐가 있지, 오페라?

 

그러다 시계를 힐끔힐끔 본다.

 

벌써 열시였다.

 

그러고보니 저 어린이의 눈에 졸음이 매달린 것이 보이는 것 같다.

 

착한 어린이는 침대로 갈 시간이긴 하지.

 

자고 가라니까.”

 

그건 싫어.”

 

고양이 이름이라도 빨리 결정할 셈인지 이름을 툭툭툭툭 내뱉는다.

 

에밀리? 엘리자베스? 샤를로트?”

 

“...그 전에, 쟤는 암컷이야 수컷이야?”

 

그러자 너무나도 당당하게 대답한다.

 

나야 모르지.”

 

그리고 자신도 고양이 성별에 신경써본 적이 없다.

 

앞으로도 신경쓰지 않을 예정인 이글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럼 수컷이든 암컷이든 상관없는 이름으로 지어줘.”

 

에클레어.”

 

그건 음식 이름이잖아.”

 

빅터는 다시 한 번 시계를 보더니 걸어가 문을 열었다.

 

내일 정할래.”

 

그리고 한 발을 문 밖으로 뺐다.

 

이글 형도 생각해봐.”

 

다른 한 발도 빠지고, 몸이 거의 사라지려는 찰나 머리가 쏙 안쪽으로 들어온다.

 

형이 지어줘도 상관없어.”

 

그리고 머리는 다시 문 밖으로 나가고, 문도 탕 닫혔다.

 

이글은 소파로 가 당당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있는 새끼고양이의 목덜미를 들어올리더니 자리에 털석 앉아 다리를 꼬았다.

 

빅토르.”

[이글X빅터] 고양이 -02

2014. 10. 30. 19:24 | Posted by 호랑이!!!

 

빅터를 맡고 있던 사람들은 생각외로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조건은 공장일을 마치자마자 돌아와 설거지와 다른 자질구레한 일들을 마칠 것.

 

시간을 빠듯하게 써야겠지만 조금 더 서두르고 자신에게 별다른 일이 생기지 않는다면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왜 자신이 무의식적으로 이글형네 집에 갔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자신이 아는 중에 유일하게 혼자 살면서 고양이를 흔쾌히 맡아주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닐까.

 

빅터는 공장일을 마치자마자 집으로 뛰어와 수프를 끓여놓았다.

 

집안을 청소하고, 세탁기를 돌리고.

 

마른 옷을 잘 다려놓으면 할 일이 일단락된다.

 

마지막 옷을 다려놓자마자 세탁이 다 되었다는 소리에 후다닥 나가 빨랫줄에 널고 나니 정말로 끝났다는 생각이 들어 한숨 돌릴 수 있었다.

 

원래라면 저녁 내내 할 일을 고작 두 시간 안에 하려니 피곤하고 지쳤지만 이글을 만나야 한다는 생각에 땀에 젖은 몸을 씻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차가운 물로 몸을 닦았더니 그나마 정신이 든다.

 

수건으로 대충 머리를 닦고 이글의 집으로 날아가 문을 똑똑 두드렸더니 얼마 안 있어 문이 열리고, 이글이 나왔다.

 

이제 왔어? 벌써 일곱시 반이야.”

 

“...”

 

“...늦은 건 아니니까 들어와.”

 

문을 열어주고, 빅터는 열린 문틈으로 들어왔다.

 

저녁 거의 다 됐으니까 거기 앉아 있어.”

 

저기, 고양이는...”

 

그러자 손가락으로 대충 소파를 가리킨다.

 

그리를 봤더니 어제까지만 해도 말끔한 모습이었던 천 소파는 여기저기 튿어지고 까져 있었다.

 

그리고 그 범인으로 생각되는 은색 털에 초록색 눈을 가진 새끼고양이는 소파에다 앞발의 발톱으로 득득득 긁고 있다가 빅터와 눈이 마주치자 가냘프게 야옹- 하고 울었다.

 

! 소파를...!”

 

덥석 집어들자 이번에는 제 품으로 폭 뛰어든다.

 

털 때문에 간질간질하기도 하고 폭신폭신하기도 하고, 그런데 잘못 쥐었다가 부러지거나 날아가거나 다칠까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그 녀석이 그 소파가 참- 마음에 드나 봐.”

 

이글이 그쪽을 보다 눈을 가늘게 떴다.

 

“...미안.”

 

됐어- 예상했던 일이니까. 오히려 소파 하나로 끝나 줘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이글은 건성건성 대꾸하며 그릇에다가 스튜를 듬뿍 떴다.

 

한창 자랄 때라 햄버그나 양 갈비 같은게 먹고 싶겠지만 내가 그나마 자신있게 만드는 게 이것밖에 없거든? 오늘은 이걸로 참아줘.”

 

고마워, 라고 대답하고 머뭇거리던 빅터는 수저를 찾아 식탁에다 가지런히 놓았다.

 

- , , 임마.”

 

이글은 빅터가 자리에 숟가락을 내려놓자 손가락으로 홱 가리켰다.

 

?”

 

내가 앉아있으랬지, 누가 일하랬어?”

 

빅터는 다시 소파로 가 엉덩이만 살짝 걸치고 앉았다.

 

그리고 제 무릎 위로 기어올라오는 새끼고양이를 바라보는데 갑자기 뒤에서 윙- 하고 들려오는 요란한 소리에 펄쩍 뛸 만큼 놀랐다.

 

, 뭐야, 놀랐잖아!”

 

머리 젖은 거 말려주려고 이러신다, ?”

 

이글은 드라이어를 가지고 빅터의 머리를 말려주다 새끼고양이가 쉬익 소리를 내며 발톱을 세우고 앞발을 뻗는 것을 보았다.

 

- 닮았다.

 

이글은 빅터의 머리를 말려주고 드라이어를 앞발로 툭 치고는 지레 놀라 화닥닥 도망가는 새끼고양이 쪽으로 드라이어를 밀어준 뒤 빅터의 손을 잡고 일으켜 세웠다.

 

스튜 좋아해? , 이런 건 만들기 전에 말해야 하나?”

 

“...좋아해.”

 

빅터가 투덜거리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최근의 마법계는 꽤나 치열했다.

 

모두가 열광하는 퀴디치 시합 결과가 예언자일보 2면에 실릴 정도로.

 

퀴디치를 제치고 예언자일보 1면에 실린 내용은 머글 태생 초능력자에 관한 의견으로 싸우는 해리 포터와 지니 포터, 그리고 헤르미온느 위즐리에 관한 얘기였다.

 

프랑스인들 정치 얘기마냥 갑론을박이 온 나라에, 온 마법계에 치열했지만 딱 한군데, 이 모든곳과는 상관없는 곳이 있었다.

 

 

 

 

“...예언자일보도 참 할 일이 없군.”

 

다이무스 홀든은 1면을 다 읽고 감상을 말했다.

 

그에게 있어 이번 1면은 그저 유명인들이 가정 불화로 싸운다더라 하는 가십 기사와 다를 바 없어 보였다.

 

다음 장으로 넘기는데, 옆에서 우아하게 포리지를 떠 먹던 벨져 홀든이 제 형에게 말을 걸었다.

 

오늘은 웬일로 조용하지, ?”

 

“...이렇게 순순히 아침을 보내게 할 리 없는데, 불안하군.”

 

하지만 겉보기만 봐서는 태평하기 그지없다.

 

혹시 모르지, 이글이 드디어...”

 

벨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요란스런 새 소리가 들리고 부엉이들이 한데 얼키고 설켜 거대한 새 덩어리를 만들어 깃털을 흩뿌리며 연회장으로 들이닥쳤다.

 

“...드디어 뭐?”

 

실언이었다, 형아.”

 

깔끔하게 말하며 벨져는 토스트 한 쪽을 들었다.

 

다이무스 홀든은 한숨을 푹 쉬었다.

 

그리곤.

 

이글 홀든!”

 

이글!”

 

동시에, 슬리데린의 다이무스 홀든과 래번클로의 토마스 스티븐슨이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둘의 눈이 마주쳤다.

 

“...항상 미안하다, 스티븐슨.”

 

“...다른 기숙사 일에 신경 쓰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옆에서 보던 벨져는 커피잔으로 시선을 돌렸다.

 

물적 증거는 없겠지만 이 소동의 주범은 자신의 동생, 홀든의 막내 이글 홀든이렷다.

 

이 망나니놈.

 

그리고 벨져는 (아무리 사실이라고 해도)망나니라는 천한 말을 생각했다는 것을 반성했다.

 

원래라면 형과 함께 이글을 혼내야겠지만 올해 래번클로 반장으로 임명된 토마스가 자신의 역할을 대신 해주니 뭐.

 

벨져는 이글과 같은 기숙사의 반장이라는 이유로 매일같이 뒤치다꺼리와 기타 잡무로 고생하는 토마스에게 애도를 표했다.

 

아 잠깐, 내년이면 형은 졸업하고 없을텐데, 다음 잔소리 담당은 나인가.

 

벨져는 미간을 꾹 눌렀다.

 

하늘을 베껴온 듯한 아름다운 천장과 말끔하고 고급스러운 대리석 바닥.

 

각 분야에서 이름난 마녀와 마법사들로 이루어진 교수진.

 

저녁이면 길고 넓은 테이블 위로 수십가지 호화로운 만찬이 펼쳐지는 연회장.

 

그리고 여기저기로 우왕좌왕 뛰어다니는 동료들과 재밌다는 듯 같이 소리지르거나 비명을 지르며 숨는 선배들, 후배들.

 

바닥으로 눈처럼 떨어지는 수많은 부엉이 깃털, 귀를 울리는 꽥꽥거리는 소리.

 

그리고 신이 나서 무어라 소리지르다 토마스 스티븐슨과 제 형에게 잡혀서 혼나는 동생.

 

이것이 창립 이래 우수한 마법사와 마녀를 무수히 많이 배출하였으며 세상을 위협했던 볼드모트를 막아낸 마지막 격전지.

 

마법 학교 호그와트의 평화로운 아침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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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X빅터] 고양이 -01

2014. 10. 25. 18:31 | Posted by 호랑이!!!

“도와줘.”

 

그건 비오는 날의 저녁이었다.

 

이제 슬슬 추워지는 날씨인데도 빅터 하스, 은발의 꼬마는 여름에 입던 그대로의 차림으로.

 

우산조차 쓰지 않고, 심지어 겉옷조차 입지 않아 새파래진 얼굴로 문간에 서 있었다.

 

전혀 예상외의 방문객이었지만 이글은 빅터를 따뜻한 거실로 안내했다.

 

마른 수건을 머리에 씌워주고 벽난로 앞의 푹신한 의자에 앉혀 놓고, 이글은 따뜻하게 데운 우유를 가져왔다.

 

원래 자신 외의 다른 사람을 들일 예정이 없던 집이라 의자가 하나뿐이어서 이글은 테이블을 끌어당겨 그 위에 앉았다.

 

“우유 마셔.”

 

“고맙... 습니다.”

 

파랗게 변했던 입술도 원래의 색으로 돌아와 떨림도 멎었다.

 

뺨도 제법 발그레해져 보기도 좋고.

 

이글은 빅터를 위 아래로 훑어보았다.

 

비에 쫄딱 젖어서, 옷이라고 걸친 것도 빈약한 채로 외간 남자의 집에 무작정 와 ‘도와줘’라니.

 

왜?라고 생각했던 궁금증은 곧 풀렸다.

 

빅터가 안고 있던 파란 천꾸러미(겉옷)가 꾸물꾸물 움직이더니 가냘프지만 분명하게 ‘야옹’이라는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고양이?”

 

그러자 끄덕, 한다.

 

“왜?”

 

이글은 고개를 기울였다.

 

고개가 기울어짐을 따라 길고 결 좋은 머리가 스르륵 흘러내렸다.

 

“이...애가, 얼마 전부터 종이 박스에 담겨서... 공장 근처에...”

 

뻔하지.

 

버려졌고, 새끼 고양이고, 자신하고 처지가 겹쳐 보여 내버려 둘 수가 없었는데 집에 데려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공장에 둘 수도 없고, 도와주십사 그거겠지.

 

이글은 빅터의 겉옷을 뒤져 예상보다도 훨씬 작은 고양이 새끼를 찾아 뒷목을 잡고 들어올렸다.

 

“닮았네.”

 

“응?”

 

연한 회색 태비(줄무늬) 고양이.

 

색이 아주 연해서 불빛에 따라 은색으로 보이기도 했다.

 

“못생긴게 너랑 닮았어.”

 

“익...”

 

하지만 그뿐이었다.

 

어른들한테 억눌려서 자기 의견 한 번 말하지 못하고... 지냈겠지... 그리고 그게 습관이 되어서...

 

이글은 즉흥적으로 결정해버렸다.

 

“좋아, 내가 맡아 주지.”

 

“정말?”

 

“하지만 조건이 있어.”

 

솔직히 말하자면 답답했다.

 

그까짓 어른이 뭐라고.

 

뭐라고 그렇게 잔뜩 겁먹어서 이깟 조그만 고양이새끼 한 마리 얘기도 못 꺼내.

 

못생겼다고 놀려도 잠깐 발끈했다가 지레 겁먹어서 눈치나 보고.

 

정말 답답하고, 짜증났다.

 

“매일 저녁은 여기서 먹어.”

 

“하지만-”

 

“좁겠지만, 자고 가도 괜찮아.”

 

설마 나한테 저거 뒤치다꺼리를 다 맡길 건 아니지?

 

빅터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다이글] 선택지

2014. 10. 7. 16:55 | Posted by 호랑이!!!

눈을 뜬 곳은 어두운 곳이었다.

 

어둡고, 춥고, 불길한 기운이 감도는 곳.

 

주위는 횃불이나 낡은 등불이 비춰주고 있었다.

 

숲인가, 나무가 많다.

 

그러고보니 좀 익숙한 곳이다.

 

...가문 소유의 사냥터?

 

옛날에는 사람 사냥도 빈번하게 있었다는 생각이 드니 오한이 끼쳤다.

 

머리를 젓고 주위를 다시 둘러보려는데 뒤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깼느냐, 이글.”

 

“다이무스 형!”

 

펄쩍 뛸 만큼 놀라고 반가워 돌아보려는데 몸이 기우뚱하더니 기세를 못 이기고 결국 쓰러진다.

 

뭐야, 하고 보았더니 밧줄이었다.

 

밧줄과 거기 묶인 자신의 몸과, 그리고 딱딱한 나무 의자.

 

“형아, 이것 좀 풀어줘...”

 

조금 이상한데.

 

왜 형이 칼을 빼들고 있지?

 

그러고보니 저 앞에 사람 같은 것이 보인다.

 

머리에는 검은 자루를 씌우고, 무릎 꿇려서 손은 뒤로 묶고.

 

“...루이스...?”

 

그중 하나, 옷이 낯익어 말을 걸었다.

 

“이글 홀든? 이게 무슨 일이야?”

 

“나야... 모르지...”

 

이상한데, 몹시 이상한데.

 

“선배예요?”

 

맙소사, 옆은 토마스.

 

그리고... 나이오비...

 

“형, 이게 무슨 상황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줄 좀 풀어주면 안 될까? 나랑, 쟤들이랑...”

 

“네 머리로 무슨 상황인지 알아차리지 못했을 리가 없다.”

 

“이 상황 자체가 말도 안 되잖아! 내 상상력은 빈약하다구.”

 

“내가 너를 너무 과대평가 한 모양이군.”

 

다이무스가 말했다.

 

그러고는 이해를 도와주겠다, 며 루이스 쪽으로 다가가더니, 단번에 칼을 내리쳤다.

 

피가 분출되며 따뜻함이 여기까지 느껴졌다.

 

“...형아...?”

 

“사랑한다고 해 보거라.”

 

약간의 표정 변화도 없이 다이무스가 말했다.

 

“누굴... 형을?”

 

이글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건 형이 아냐.

 

형일 리 없어.

 

다이무스 홀든은 냉철하고 이성적이며 지극히 합리적인 선택을 하고 역사서보다는 기사도 소설책을 좋아하면서... 질려하면서도 꾸역꾸역 성실하게 초콜릿을 먹어주고... 때때로 시나 지으면서 눈물을 흘리는... 흘리는....

 

검이 올라갔다.

 

횃불에 은빛으로 반짝 빛나 이글은 정신을 차렸다.

 

“미친거 아냐?! 그만둬 다이무스 홀든!”

 

가엾은 토마스는 무슨 일인지 감도 잡히지 않았으면서 떨고 있었다.

 

“너무하는거 아닌가, 형한테 미쳤다니.”

 

“형! 다이무스! 그만두라고 다이무스!!!”

 

서걱.

 

그리고 툭, 하는 소리가 났다.

 

다이무스의 검날이 다시 빛을 반사했다.

 

제발, 안돼.

 

엘리가 나이오비를 기다리고 있을 텐데.

 

따뜻한 우유를 마시고, 동화책을 읽어 달라며 양손으로 커다란 책을 들고 침대 위에 앉아 있을 텐데.

 

이글은 더 생각하지 않았다.

 

“사랑해! 사랑해 형! 사랑한다고!”

 

서걱.

 

머리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잉게 나이오비를 살리기 위해 일부러 그러는 건가? 실망이다, 이글.”

 

다이무스는 한숨을 쉬었다.

 

“날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것이 그렇게도 어렵나?”

 

“했잖아! 했잖아 미친놈아!”

 

이글은 눈을 믿을 수 없었다.

 

친했던 세 사람은 죽어버리고, 여태까지 변하지 않을 거라고, 믿고 따르던 큰형은 손에 검을 들고 피를 묻힌 채 무엇이 잘못이냐는 듯 평온하게 말을 한다.

 

“저런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그러는 게 아니라, 정말로 날 사랑해서 하는 말이 듣고 싶은 거다. 빨리 말하거라, 나는 인내심이 없다.”

 

“...제발, 형...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으면, 어쩌면.

 

다음은 레베카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트리비아일 수도 있고.

 

어쩌면, 어쩌면 엘리나 피터나 다른 누군가가 될 수도 있겠지.

 

“나는 진심으로 너를 사랑하고 있다만, 이글.”

 

다이무스가 재촉해 왔다.

 

“사, 사랑해... 형, 사랑해, 진짜 사랑한다고!!!”

 

절박하게 소리 질렀는데, 어깨로 검이 찔러 들어왔다.

 

비명을 지르지 않기 위해 입술을 꽉 깨물었음에도 신음소리는 흘러나왔다.

 

“형이 거짓말은 나쁘다고 누누이 얘기했잖느냐.”

 

사람 어깨에 칼을 꽂아 놓고서 안타깝다는 듯, 나쁜 아이를 야단치는 듯한 목소리로 혀를 찬다.

 

검의 날이 다시 반짝이며 빛을 반사했다.

 

이번에는 자신일지도 모르겠다.

 

이글은 섬뜩해지는 느낌에 조금 더 필사적으로 다이무스를 올려다보았다.

 

“사랑해...”

 

흐느끼는 소리가 났다.

 

“사랑해 다이무스.... 흑... 흐으....”

 

“사랑한다고? 정말로?”

 

다이무스가 역겨우리만치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제 앞에 무릎을 구부려 시선을 맞추고, 눈가로 흐르는 눈물을 손가락으로 닦아냈다.

 

“진심이야.. 흑... 사랑해... 정말로...”

 

문득 불빛에 비친 다이무스의 눈이 정말 자신을 죽일 수 있을거라는 느낌이 들게 했다.

 

시선을 마주치기 싫었다.

 

자신이 사랑한다는 것을 좀 더 말하고 싶어서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정말로-”

 

“고맙구나 이글, 형은 기쁘다.”

 

다이무스가 웃었다.

 

치켜올라갔던 눈꼬리는 미미하지만 부드럽게 휘어졌고 입도 천천히 확실하게 웃는 모양이 되었다.

 

“기쁘다.”

 

푸욱.

 

“그렇게 말해줘서 고맙구나.”

 

소리가 들리고, 몸 가운데를 무언가가 가르고 들어온다는 느낌이 들고.

 

고통은 그 다음에 찾아온다.

 

이글 홀든은 모래바닥에 뉘여졌다.

 

이곳은 사냥터, 이 일은 없던 일이 될 것이다.




[다이글] 선물, 서투름

2014. 10. 2. 05:19 | Posted by 호랑이!!!

“다이무스 도련님께서 선물을 보내셨습니다.”

 

오늘은 꽃이었다.

 

인근의 장미란 장미는 다 긁어모은 것인지 한아름도 넘는 꽃다발이 제 품에 안겼고, 방이 장미 화원이라도 된 마냥 장미로 가득차 온통 붉었다.

 

공사다망한 큰형은 종종 며칠씩 집을 비우곤 했는데 최근 들어 그런 날이면 이런 ‘선물’을 보내곤 하였다.

 

처음에는 새 옷(을 지을 재단사), 그 다음에는 최신 유행의 모자와 신발, 그 다음에는 은시계와 백금 시곗줄(아니, 크리스마스의 선물도 아니고 대체 왜?), 이오니아 산의 금빛나는 오렌지와 향긋한 포도주.

 

그리고 오늘은 장미라.

 

이글은 메이드가 나가자 품에 안았던 장미 꽃다발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발로 툭 찼다.

 

한껏 보기좋게 벌어진 연한 분홍색과 붉은색의 꽃잎이 바닥에 흩어졌다.

 

막상 집에 붙어있을 때는 담소는 고사하고 저녁식사 외에는 얼굴 한 번 보기도 힘든 주제에 출장만 갔다 하면 특별히 가족애라도 생기는 건가, 웃기지도 않아서.

 

이글은 특별히 싱싱하고 붉은 장미 한 송이를 골라 들고 한나에게 갔다.

 

“한나.”

 

“이글 도련님.”

 

“선물이야.”

 

가시를 쳐내고 잎을 잘라 다듬은 장미송이를 내밀고 한나가 앉으라는 얘기를 하기도 전에 테이블 옆에 의자를 끌어당겨 털석 앉았다.

 

“형이 이상해.”

 

“다이무스 도련님이요?”

 

“응-”

 

작은형은 항상 이상했으니까 새삼 이상한짓 한 대도 이상하지 않다구.

 

이글은 삐죽 입술을 내밀었다.

 

그러곤 최근 받았던 선물에 대해 줄줄이 말하곤 짤막한 의견까지 덧붙였다.

 

“꼭- 남자가 여자 환심을 사려고 하는 멍청한 짓 같잖아. 조만간 직접 쓴 사랑시와 함께 반지라도 배달되면 딱이겠어.”

 

“또 가볍게 생각하는 거죠? 만약 진짜면 어쩌려구요.”

 

“뭐 어때~ 형 성격에 사귀고 싶어서 그러는 것도 아닐 테고, 사랑하는 걸로 만족한다면 그러라고 하지 뭐. 내 용돈으로 살 수 없는 물건도 들어오는데.”

 

물론 내 용돈을 올려주면 더할 나위없이 좋겠지만, 이라며 시큰둥하게 앞주머니의 은시계를 꺼내 흔들었다.

 

진짜일 리가, 어디서든 인기 폭발하시는 그 다이무스 홀든이 이런 서툴러 빠진 짓을 할 리가 있나.

 

“조만간 비둘기 깃펜으로 쓴 사랑시가 도착하길 바랄게요.”

 

“뭐어-? 농담도!”

 

우웩, 기분 나빠.

 

이글은 킬킬 웃으며 다른 얘기를 꺼내려다 들리는 노크 소리에 입을 다물었다.

 

저렇게 노크 소리부터 절제된 인간은 자신이 알기로는 하나밖에 없었다.

 

역시나, 들어오라고 했더니 익숙한 얼굴, 다이무스 홀든이 들어왔다.

 

“이글, 네가 여기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실례합니다, 유모.”

 

“어어- 나 여기 있어- ...?”

 

다이무스의 눈이 가늘어졌다.

 

무엇을 봤는데?

 

시선을 따라가 보았더니 유모의 손에 들린, 자신이 준 장미.

 

아 설마.

 

아닐거야.

 

별거 아니잖아.

 

그 커다란 장미 다발과 방을 가득 메운 장미의 물결 속에서 딱 한 송이라고.

 

게다가 받은 사람이 다른 사람도 아니고 어릴 적부터 키워준 유모인데!

 

아- 설마, 설마, 설마!!!

 

“저녁식사 시간이다. 이 내가 손수 널 찾아다녀야겠느냐.”

 

“나가, 나간다고.”

 

문을 닫고, 다이무스의 뒤를 따라가는데 얼굴이 보이지 않아도 화났다는 건 알겠다.

 

“...이글.”

 

“어, 어엉?”

 

“...장미 말이다, 싫던가?”

 

“에에, 그건 아닌데-.”

 

다이무스가 힐끗 뒤를 돌아보았다.

 

“너를 생각해서 고른 선물이 함부로 다루어진다니 썩 기쁘지는 않더구나.”

 

함부로~?라고 하고 싶었지만 아까 장미 다발을 떨어뜨린 것도 있겠다, 찬 것도 있겠다, 거기에 보모에게 장미 준 것도 들켰고.

 

지금 한창 열받은 인간에게 변명을 해 봤자 불난 집에 기름 붓는 꼴밖에 안 되겠지.

 

아까 돌아볼 때 보니까 눈빛이 흉흉하던데 저기서 더 긁었다간 최소한 오늘 저녁은 다 먹었다.

 

다이무스는 팔에 달라붙는 이글의 팔에 힐끗 내려다보았다.

 

“형아야~”

 

다이무스는 어울리지도 않는 애교가 들어가 착 달라붙는 것 같은 이 목소리가 무얼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다.

 

“나 좋아해?”

 

농담의 껍질을 뒤집어쓴 속에는 이쪽을 바로 바라보는 시린 눈동자가 있었다.

 

심지어 떠 보는 것도 아닐 터, 의뭉을 떠는 것이다.

 

거기에 저 좋냐는 물음은 형제로서 갖는 당연스러운 호감을 묻는 것도 아닐 터였다.

 

무엇보다 곤란한 것은, 자신이 이것을 안다는 것을 이글도 안다는 것.

 

슬쩍 흘려버리는 일 따윈 불가능했다.

 

“...오늘 저녁은 다진 오리로 속을 채워 구운 송아지와 무화과를 넣은 케이크다.”

 

“형, 다이무스 형.”

 

이글이 대놓고 기분 나쁜 티를 내었지만 다이무스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 내 질문을 무시하겠다고?”

 

“그렇다.”

 

이글은 다이무스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째려보듯 날카로워진 눈이지만, 자신은 알고 있다.

 

다이무스 홀든, 저 천하의 냉혈한이 지금 자신의 질문을 두려워한다는 것을!

 

아- 아, 이거 정말 재밌는데.

 

놀리고 싶어서 입이 근질거린다.

 

다만 형이 자신이 놀렸을 때 어떻게 반응할지만은 저도 모르니까.

 

제가 원하는 대로 자신이 주도권을 잡으면 좋겠지만 상처 입은 짐승마냥 달려들어 공격이라도 하면 저는 끝이다.

 

“형아~.”

 

“...”

 

“혀엉아아~”

 

다이무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난처해하는 것이 다 보인다.

 

회피하지 않고 무엇에도 당당하게 맞서는 그 다이무스 홀든이 한낱 망나니 동생의 질문에 쩔쩔매다니, 이거 꽤 기분 좋지 않은가!

 

히죽히죽 웃음을 흘리던 이글은 어두운 복도를 지나 밝은 식당으로 들어오자 언제 그랬냐는 듯 입을 딱 다물었다.

 

시치미를 떼고 제 자리에 앉아 소스에 적신 송아지 요리를 덜어내는데 사용인 중 하나가 다이무스에게 무어라 전했다.

 

“뭐야, 형?”

 

“크리스티네가 물건을 전하러 왔다.”

 

헹, 퍽이나.

 

크리스가 진짜로 전하고 싶은 건 어떤 ‘물건’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겠지.

 

형이 그걸 모를까봐서- 아니, 모를지도.

 

모를거야 저 둔한 인간은.

 

이글은 속으로 히죽거리다가 슬그머니 자리를 떴다.

 

크리스가 어떤 치마를 입고 왔을지도 궁금하지만 형아를 좀 더 놀려줄 것 없나 하여.

 

다이무스의 방문을 열었다.

 

빛깔 좋은 오크목의 책상이 깊은 색을 내며 자리잡고 있었다.

 

그 위에는 묵직한 펜이 있었고 양피지도 펼쳐져 있었다.

 

서류- 라기엔 빛깔이 좀 다른걸.

 

아니, 양피지도 아니잖아.

 

그냥 종이다.

 

그것도 빨간 하트와 리본 그림이 있는.

 

한창 아가씨들과 연인들에게 인기 좋다는 그거다.

 

“우와, 징그러.”

 

입 밖으로 불쑥 말이 튀어나왔다.

 

그 냉혈한, 목석인 큰 형이 아기자기한 가게에 가서 이런걸 고르고 있다고?

 

“기분 나빠.”

 

뭔가 더러운 것이라도 집듯 손끝으로 편지지를 들어 팔랑팔랑 흔들어 보는데 뒤에서 뻗어나온 손이 그것을 잡아채 찢었다.

 

“이글.”

 

그 목소리에 이글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어, 형-...”

 

“식사중에 자리를 뜨는 것은 예의에서 어긋나는 일이다.”

 

“아니, 형, 이건 말이야...”

 

“주인 없는 남의 방에 함부로 들어가는 것도 그렇지.”

 

다이무스의 표정은 얼음장 같았다.

 

읽어낼 수 없는데 냉기가 흘러나왔다.

 

다이무스는 손에 들린 상자를 내려다보더니 이글을 문 밖으로 떼밀었다.

 

문은 육중한 소리를 내며 닫혔고 안에서는 무언가 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침, 이글은 그답잖게 일찍 일어나 식사 자리로 갔다.

 

여느 날처럼 다이무스는 셔츠와 조끼를 입고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형!”

 

다이무스는 어제 같은 무표정으로 이글을 바라보았다.

 

“그... 있지... 잘 잤어?”

 

쭈삣쭈삣 인사를 건네며 맞은편에 앉았더니 대답 대신 신문을 거칠게 펴 든다.

 

“있지이, 내가 어제 기분 나쁘다고 한 건 말야...”

 

“되었다.”

 

“...형이 그런 편지지를...”

 

“되었다니까.”

 

신문이 파스락거리는 소리를 내며 다음 장으로 넘어갔다.

 

“...쓸 줄은...”

 

파각.

 

신문이 반으로 접혔다.

 

“별로 얘기하고 싶은 기분이 아니다.”

 

“형! 미안하다고! 내가 뭘 잘못했던!”

 

다이무스는 마시던 커피잔을 거칠게 내려놓은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은 네 사과를 받아줄 기분이 아니다. 먼저 일어나마.”

 

다이무스는 자신의 방으로 가는 대신 서재로 갔고, 이글은 다이무스의 방으로 갔다.

 

아직 메이드가 청소하기 전인 방은 평소보다 어수선했고 바닥에는 나무판 조각이 널려 있었다.

 

이글은 벽난로를 보았다.

 

타다 만 종잇조각에는 빨간 하트와 리본이 그려져 있었다.

 

타다만 나무 위에는 어그러지고 녹은 은 목걸이가 있었다.

 

이 근처에서는 구하기 힘든 모양으로, 이글의 눈과 같은 색의 보석이 펜던트로 매달려 있었다.

 

형이 몹시 멀게 느껴졌다.

 

자신이 편안히 기대 응석을 부리던 관계가 마치 이 목걸이처럼, 자신의 손 안에서 우그러진 것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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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X이글X토마스] 고백

2014. 9. 15. 01:51 | Posted by 호랑이!!!

이글 홀든은 어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긴 머리카락 때문인지 머리가 무거워 일어나기도 힘들다.

 

어제- 무슨 일이 있었더라... 하고 돌이켜 보면.

 

모처럼 좋은 일이 있어서 진탕 술을 마시고, 다들 제 갈 길 가고 토마스랑 단둘이 남아 다시 술을 퍼마시고.

 

그래, 토마스랑... 그리고... 여관에 가서... 가서... 쏟아지는 물소리가 들렸고.. 샤워실 문이 열렸고...

 

하얀색 수건 하나만을 두른 토마스가 나왔었다.

 

뜨거운 물 때문인지 술 때문인지 그 하얗던 몸에 온통 홍조를 띄우고.

 

주저하던 것이 보였는지 안경을 손가락으로 끌어 벗으며 ‘무서우신가요? 도련님’...이라고 했었지.

 

...어제에 대한 설명은 이것으로 충분한 것 같다.

 

옆으로 고개를 돌렸더니 토마스가 하얀 시트를 몸에 친친 감고 자고 있었다.

 

...아, 정말이지 미치겠네.

 

내가 이런 꼬마랑 하다니.

 

이글은 뒷머리를 벅벅 긁으며 일어나 앉았다.

 

토마스는 말이 스물 하나지 영웅타령 하는 것이나 평소의 행실을 보고 있자면 사춘기도 오지 않은 새나라의 어린이 같으니 원.

 

이글로서는 토마스가 남자인지 여자인지에 대한 문제 이전에 어린애랑 섹스한 기분이라 영 꺼림칙했던 것이다.

 

봐라 봐라, 저 눈감고 입 우물우물 하는 거.

 

웃고 있네, 무슨 좋은 꿈을 꾸면.

 

인상을 찌푸리는데 토마스가 반짝 눈을 떴다.

 

“...잘 잤냐?”

 

“네, 좋은 아침이예요 이글 형.”

 

쯔쯔, 이글은 혀를 찼다.

 

얜 지금 아직도 술이 덜 깨서 자기가 무슨 짓 했는지도 모르는 거야, 기억도 못할 걸.

 

아무리 취했다지만 한 살이라도 많은 내가 어른스럽게 밀어냈어야 했는데.

 

그러는데 토마스는 몸을 일으켜 이글의 뺨, 입술 가까이에 자신의 입술을 댄 것이다!

 

“덕분에 좋은 밤 보냈어요, 먼저 씻고 나와도 괜찮죠?”

 

부끄러움도 없이 슥 일어나니 몸에서 이불이 스륵 흘러내린다.

 

술이든 열기이든 그것에서 벗어나니 이제 토마스의 몸은 다시 새하얘져서 이글이 멋모르고 하나 남겼던 빨간 자국은 그림의 인장 마냥 붉게 남았다.

 

“야, 뭐라도 걸쳐. 거기 샤워 가운 같은 거라도.”

 

“이런 곳에는 그런 거 없어요, 이글 형.”

 

제정신이구나.

 

도련님이 아니라 형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어제의 일은 하룻밤의 꿈처럼, 마치 찬물을 맞아 잠에서 깬 것처럼 정신이 들었다.

 

아- 내가 미쳤지 미쳤지- 머리를 감싸고 앉아 오랫동안 자책하고 있으려니 수건 하나만 아랫도리에 두른 토마스가 밖으로 나왔다.

 

“형도 씻어요, 찝찝하지 않아요?”

 

“아, 아아, 씻어야지.”

 

따뜻한 물을 맞고 있자니 욕조에서 졸 것 같아 수도꼭지를 찬물 쪽으로 확 틀었다.

 

으하아악 차가워~!

 

소리없이 비명을 지르며 부르르 몸을 떨고 가운이 없길래 수건 세 장으로 몸을 닦으며 나오는데 물기 때문인지 몸이 휘청한다.

 

잠도 술도 덜 깨서 넘어지겠구나! 했는데 토마스의 팔이 허리에 감겼다.

 

“괜찮아요?”

 

“어, 어어, 괜찮아.”

 

허리가 아플법도 한데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일으켜주곤 아무 일 없다는 듯 다시 옷을 입는다.

 

...하아?

 

순간적으로 꽤나 두근거렸는데 말이지.

 

사춘기 소녀도 아니고 이런데 두근거려야 해?

 

새침해져서 수건을 집어 토마스 쪽으로 휙 던졌다.

 

“난 이런거 해본 적 없으니까 네가 정리해.”

 

“네- 네.”

 

수건 치워줘, 눕고 싶으니까 이불 정리해줘, 겉옷 입혀줘, 목걸이 걸어줘.

 

이래라 저래라 하는데도 싫은 내색 없이 네 네 한다.

 

화도 안 내냐.

 

이글은 드라이어를 다소 거칠게 내밀었다.

 

“머리 길어서 말리기 힘드니까 네가 말려줘!”

 

이번만큼은 토마스가 드라이어를 받는 손이 한 박자 늦었다.

 

혹시 화난건가 해서 슬쩍 눈치를 살폈더니 이내 웃는 얼굴로 변해 얌전히 드라이어를 받아 주었다.

 

“알았어요, 말려 줄게요. 형 머리 말리면 형이 제 머리 말려 주시기예요?”

 

“엉~”

 

화나지 않았구나, 이글은 그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져서 흔쾌히 대답했다.

 

머리에 와 닿는 손이 생각보다 섬세하고 편해서 자연스럽게 만족스러운 한숨이 흘러나왔다.

 

이제 토마스의 머리를 말려주려는데 언제 자기가 남의 머리를 말려 봤겠냐고.

 

겉만 살살 말려놓고는 드라이어 바람으로 데워진 머리를 만져보는데 따끈따끈하고 폭신폭신해서 뭔가 다른 동물이라도 만지는 기분이었다.

 

신기해서 헤집으면서 놀다가 문득 거울을 보니 토마스가 이쪽을 보고 있다가 눈이 마주치자 생긋 웃어보인다.

 

...고놈, 머리 내리니 꽤 어른스럽고 잘 생겼네.

 

이글은 마주 웃지도 못하고 고개를 팩 돌려 다시 머리를 말리는 일에 집중했다.

 

닭이 땅 헤집듯 헤집어놓은 데다 신기하다고 이래저래 만져놨더니 왁스로 머리를 만들어놓은 것처럼 잔뜩 서 있었다.

 

“으아, 이게 뭐예요, 새집?”

 

시덥잖은 농담을 나누며 웃지만 이글은 거울 너머로라도 토마스의 눈을 볼 수 없었다.

 

그렇게 차비하고 밖으로 나왔다.

 

어쩌면 토마스가 고백해도 받아줄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면 토마스가 연합 앞에서 고백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토마스가 연합 문 앞에서 키스할지도 모르고.

 

아침 삼으려고 토마스더러는 기다리라고 한 후 빵과 마실 것을 샀다.

 

생각보다 계산이며 흥정이 빨리 끝나 토마스 쪽으로 가는데, 토마스가 꽃 파는 소녀에게서 꽃 한 다발을 사는 것을 보았다.

 

하, 귀여운 녀석, 꽃이라니.

 

어린애 같으니라고, 꽃은 너무 티나지 않아?

 

장미나 백합이나 튤립도 아니고 저렇게 작은 꽃 따위 누가 받아준다고.

 

하하 속으로 웃었다.

 

토마스는 주머니에 꽃을 집어넣었고 이글한테서 주스와 빵을 받아들었다.

 

“와, 안에 햄이 들어있네요. 맛있다~”

 

“그렇지? 이거 저기에서 제일 맛있는 거야.”

 

하하 웃는데 실수로 주스를 떨어뜨렸다.

 

컵은 바닥에 떨어져 구겨졌고 내용물은 바닥으로 퍼져 버렸다.

 

“...”

 

신경질적으로 빵을 덥썩 베어물었더니 옆에서 컵이 내밀어졌다.

 

“...뭐야.”

 

“형 마셔요, 전 빵만 먹어도 되거든요.”

 

라면서 제 손에 억지로 주스컵을 쥐어준다.

 

“아, 그래도 가끔 한모금씩은 주셔야 해요!”

 

...뭐, 작은 꽃도 예쁘지.

 

아까 보니 하얀색이던데 하얀 들꽃 예쁘잖아.

 

연합이 보였다.

 

“토마스.”

 

“네, 이글 형?”

 

“아까 그 꽃 산 거 있잖아-”

 

그 때 문이 요란스레 열리고 엘리가 화다닥 튀어나와 토마스에게 안겼다.

 

“토마쯔 오빠!”

 

“안녕 엘리!”

 

토마스의 손이 조끼 앞주머니로 향하더니, 작은 들꽃 다발을 꺼냈다.

 

“자, 선물.”

 

엘리는 꽃다발을 받고 꺅 꺅 소리지르면서 폴짝폴짝 뛰어들어갔다.

 

“...아, 뭐라고 하셨어요 이글 형?”

 

이글은 몇 번,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 입을 열었다가 다물었다.

 

그러기를 수 차례, 입술을 꾹 깨물었다가 아무 일 없다는 듯 활짝, 활짝- 웃으며 엘리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

 

“졸리니까 가서 잘게!”

 

억지로 웃는 입꼬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휘어진 눈가가 감길 듯 아파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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