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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플x] 불면증

2015. 9. 21. 23:33 | Posted by 호랑이!!!

잔이 깨졌다.

 

꾸벅꾸벅 졸던 마틴은 그 소리에 잠을 깨었다.

 

흰색 머그컵은 불과 몇 초 전까지만 해도 마틴의 손가락에 걸려있던 것이다.

 

미안해요 릭, 잔을 깼네요.”

 

다치진 않았소?”

 

괜찮아요.”

 

괜찮긴, 차가 뜨거운데.

 

릭은 눈살을 찌푸리며 마틴의 손을 잡았다.

 

잠이 모자라오?”

 

그런 건 아니고, 요즘 잠들기가 힘들어서.”

 

마틴은 말을 하며 길게 하품했다.

 

얼핏 그의 눈 아래에 그늘이 진 것 같았다.

 

“...그래서 며칠 밤을 샜더니... 흐아암.”

 

며칠이나?”

 

어디보자... 오늘이 금요일이니까...”

 

쫙 펴졌던 마틴의 손가락이 하나 둘 굽혀진다.

 

셋 넷으로 넘어가자 릭의 표정이 찌푸려졌다.

 

“...그렇게 못 자는 동안 뭐 했소?”

 

책도 읽고... 밤새서 일도 해 보고요... , 여자랑 잤어요. 섹스가 불면증에 좋다길래.”

 

문득 릭의 한쪽 눈썹이 치켜올라간 것 같았지만 마틴이 돌아봤을 때에는 아무 일도 없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랑플람에서 쉬고 오라고 한 거군.”

 

그렇죠. 덧붙이자면 그 티엔 정이 저를 손수 문 밖으로 밀어냈답니다.”

 

다시 생각해봐도 정말 싫네요.

 

마틴이 찻물 묻은 손가락을 손수건에 닦으며 투덜거렸다.

 

그래서 나한테 왔고.”

 

이 근처에서 바로 찾아가도 될 만한 사람이 릭밖에 없었거든요. 사실 반신반의 했어요, 일하는 시간이라던가 여행 중이면 어쩌지 하고.”

 

있어서 다행이오.”

 

마틴은 식탁 위에 멋없이 놓인 컵을 정리했다.

 

릭은 마틴이 입을만한 편한 티셔츠와 바지를 찾아 주고 여분의 베개를 찾아두었다.

 

그럼 자러 가볼까.”

 

시계는 10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벌써 자려구요?”

 

나는 원래 이 시간에 자.”

 

한 침대에서?”

 

혹시 모르지, 사람의 온기 때문에 잠을 잘 수 있을지.”

 

불을 끄고, 릭이 먼저 누웠다.

 

마틴은 불신하는 표정이었지만 어쨌든 릭의 옆에 누워서 익숙하지 않은 베개 아래에 한쪽 손을 넣어 잘 준비를 했다.

 

안아줄까? 뜨끈뜨끈할텐데.”

 

됐어요, 답답하니까.”

 

마틴은 픽 웃고 눈을 감았다.

 

이번에도 못 자면 어떡하지.

 

피곤하고, 자고 싶은데 잠이 오지 않는다니 머리도 어지럽고 아프고 힘든데.

 

걱정스러운 마음은 불안으로 이어지고 그것은 또 다른 잡생각으로 이어진다.

 

마틴은 몇 번 뒤척이다 마침내 눈을 떴다.

 

자고 가라며 신경써준 릭한테는 미안하지만 저쪽에서 작은 전등이라도 켜고 책이라도 읽어야겠어.

 

그렇게 눈을 뜨자 어둠에 익숙해진 눈이 릭을 찾았다.

 

자면서도 웃고 있네, 평화로운 표정으로.

 

, 저 표정은 쿼카 닮았다.

 

잠꼬대도 없고, 고른 숨소리가 새근새근 들려와서.

 

갑자기 맥이 탁 풀렸다.

 

커피와 과자 향내가 밴 손끝의 향과 그의 체취가 갑자기 몰려드는 느낌이었다.

 

마틴은 다시 눈을 감았다.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

P.S : 릭 컵은 머그컵인데 차가 있는 이유는 미국인이라 찻잔은 없지만 마틴이 차를 좋아하기 때문이라고(덧붙여 티테이블이 없어서 식탁에서 마신다)



[릭마/인어AU] 왜 웃지 않나요

2015. 9. 12. 04:28 | Posted by 호랑이!!!

인어의 눈물은 진주가 된다.

 

그래서 마틴이라고 이름 붙여진 인어는 육지로 잡혀왔다.

 

조그마한 수조 안에 비늘로 덮인 하체를 담그고 상체는 불편하기 짝이 없는 화려한 석제 침대 위에 뉘여서.

 

처음에는 맞았고, 그 다음에는 돌아갈 수 없다고 속삭이며 마음을 괴롭게 만들었다.

 

지상의 공기는 무거워서 자신의 몸을 지탱하기에는 부족하니까 스스로는 바다로 갈 수 없다는 건 아주 잘 알고 있는데도.

 

자그마한 수조 안이나 딱딱한 돌바닥에는 자신이 흘린 눈물로 만들어진 회백색 진주가 그득 굴러다니고 있었다.

 

이따끔 마틴은 지상의 인간들보다 매끄러운 손가락 끝으로 눈물이 굳은 둥근 보석을 굴려보곤 했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눈물이니까, 원하는 만큼 울다 보면 돌려보내주지 않을까 생각도 해 봤지만.

 

그들이 원하는 만큼이라는 것은 마틴 혼자로는 채우지 못한다.

 

삼칠일을 울었다.

 

삼칠일을 웃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포기했다.

 

눈물이 나오지 않았고, 웃음이 나오지 않았고, 자신의 눈물을 보고 웃던 사람들조차 발걸음을 드물게 하자 표정이 서서히 사라져갔다.

 

그리고 필요 없는 인어는 굶겨 죽여라는 말이 들렸다.

 

그래서 마틴은 안도했다.

 

드디어 죽는구나.

 

그러나 몸에 힘이 빠져 누운 마틴의 입가에 무언가가 닿았다.

 

깨끗한 물과 과실.

 

눈을 떴더니, 밝은 갈색 머리의 소년이 거기 서 있었다.

 

누구세요?”

 

릭 톰슨. 널 가둔 사람의 아들이야.”

 

이상하게도 마틴은 기운을 차리기 시작했다.

 

처음 만난 이후로 릭이 가져오는 이야깃거리에 조금씩 웃기 시작했고, 때로는 울었다.

 

인간의 아이는 빠르게 자랐다.

 

밝은 갈색 머리는 짙게 변하고, 위아래의 길이가 마틴보다 길어지고 목소리가 낮게 깔리도록.

 

어릴 적에는 문으로 들어왔지만 좀 자라서는 갑자기 방 안으로 불쑥 떨어지거나 푸르게 빛나는 둥근 원 안에서 나오거나 하도록.

 

말투도 변했다.

 

어린아이의 직설적인 말투는 어느샌가 그대, 당신이 포함된 격식과 예의가 포함된 말이 되었다.

 

인간의 아이는 정말 빨리 크네요.”

 

마틴은 석제 침대에 기대어 릭을 올려다보았다.

 

요만한 아이가 와서 물을 먹여줄 때가 엊그제 같은데.”

 

마틴은 손으로 어림하여 표시하며 웃었다.

 

그에 비해 인어는 정말 늙지 않잖소. 예전이나 지금이나 그대는 참 변함이 없소.”

 

간이의자를 가져와 앉은 릭이 마주 웃었다.

 

어제는 높은 산, 그 전에는 사람 없는 전망대.

 

아주 옛날에는 이 마을 어느 집의 지붕 위.

 

릭은 마틴을 여러 곳으로 데려가고 있었다.

 

오늘은 어디예요?”

 

그대도 좋아할 만한 곳이지.”

 

릭은 눈을 찡긋했다.

 

어둡고 푸르게 빛나는 원 안으로 들어가 눈을 감고 기다리면, 또 어딘가에 뚝 떨어진다.

 

몸이 떨어지는 느낌이 들고.

 

코 끝에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향기가 스쳤다.

 

비슷한 걸 맡아본 적 있어.

 

예전에, 릭이 가져다준 꽃이란 것에서 이런 향이 났어.

 

눈을 뜨자.

 

초록색이라고만 알고 있던 들판에는 온통 하얗고 노란 꽃들이 달빛을 받아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땅에서 밤하늘이 자라는 것 같아요.”

 

릭은 미리 펼쳐두었던 자리 위로 마틴을 옮겨주었다.

 

마틴은 예쁘게 핀 꽃을 킁킁 냄새도 맡아보고 손가락으로 더듬어 보기도 하고 조심스럽게 꽃잎 끄트머리를 깨물어 보기도 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웃으며, 릭은 자리에 벌렁 누웠다.

 

깊은 하늘이 가득 빛나고 있었다.

 

“...제 고향에서는 가끔 차갑지 않은 눈이 내려요.”

 

마틴도 자리에 누웠다.

 

지느러미가 풍성한 꼬리가 때로 흔들리는 소리를 냈다.

 

녹지 않으니 치우기도 힘들고, 몸에서 떼어내는게 귀찮으니까, 눈이 오면 다들 집 안에 들어가 지내는데 저는 아예 수면까지 올라왔어요.”

 

하얗고 고운 손가락이 하늘을 가리켰다.

 

저 하늘은 아주 깊고, 다양한 것들이 저 먼 수면 아래에서 헤엄치는 것처럼 보여서. 저는 언젠가 저 하늘에서 헤엄치고 싶었어요.”

 

지금은?”

 

마틴은 눈을 감았다.

 

예전에도 릭이 이런 질문을 했었다.

 

돌아가고 싶은 거지?’

 

릭이 자신을 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입가를 올려 웃었다.

 

괜찮아요 저는.”

 

인어의 것보다 따뜻한 팔이 차가운 몸을 덮었다.

 

달콤한 공기는 혀 끝에 향긋하게 와 닿고 몸은 따뜻해지고 있었다.

 

눈을 뜨면 깊은 하늘에 별이 헤엄친다.

 

잠이 들고.

 

눈을 뜨면 다시 수조가 있는 그 방이었다.

 

몸에 따뜻한 느낌이 남아있는 것 같았다.

 

기분이 좋아서.

 

마틴은 칼을 훔쳤다.

 

늘 자신의 식사를 가져다주는 일꾼 중 하나가 주머니에 넣어둔 나이프에 대해 생각하고 있길래 그의 귓가에 속삭여 나이프를 내놓게 했다.

 

날이 잘 서 있었다.

 

뾰족하고, 칼집의 가죽은 매끈하고 차갑고.

 

그것을 품고 기다리면 여느 때처럼 밤이 왔다.

 

.”

 

블론디.”

 

여느 때와 다르게, 릭은 마틴을 안고 이동했다.

 

여느 때처럼 눈을 감았더니, 코 끝에 오랫동안 그리워했던 냄새가 감돌았다.

 

눈을 뜨자 끝없이 펼쳐진 깊은 하늘과 검게 빛나는 바다가 있었다.

 

“......”

 

마음이 약해질 것 같아서 마틴이 손짓했다.

 

저는 괜찮다고 했잖아요.”

 

울 것 같은 미소에 마틴은 달래듯이 그의 뺨에 손을 얹었다.

 

잎 넓은 나무에 릭이 기대고, 거기에 마틴이 기대고.

 

그렇잖아도 마지막 선물을 주려고 했어요.”

 

지느러미가 곧게 펼쳐진 꼬리를 그렇게도 그리워했던 바닷물에 담그고 마틴은 품에서 칼을 꺼냈다.

 

밝다고는 하나 그래도 희미한 달빛 아래라 릭은 처음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랐다.

 

투명한 눈물은 회백색으로 굳어지고 붉은 피는 몽글몽글 투명한 색으로 엉겼다.

 

“...왜 그런 표정이예요?”

 

내 눈물을 보면 사람들은 웃었는데.

 

블론디, 마틴... 안돼, 안돼 블론디. 마틴!”

 

손가락으로 상처를 벌리면 보석이 쏟아진다.

 

릭의 손은 그 상처를 틀어막으려 했지만 그 손가락 사이에서는 바작바작 마르는 소리를 내며 붉은 보석이 굴러떨어진다.

 

왜 웃지 않아요?”

 

마틴은 꺼질 듯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갈색 머리의 청년, 혹은 소년, 어쩌면 청년은 반짝이는 돌로 뒤덮인 인어의 시체를 끌어안았다.

 

인어는 죽음이 목을 훑을 때까지 물었다.

 

왜 웃지 않아요?

 

 


[티엔하랑마틴] 어느 날의 꿈?

2015. 7. 15. 02:44 | Posted by 호랑이!!!

이것은 아주 어릴 적, 이하랑이 산신을 만나기 전에 있었던 이야기다.

 

어린 하랑은 그날도 아이들과 진탕 싸우고 돌아왔고 고단하여 일찍 잠이 들었더란다.

 

꿈속에서 온갖 개를 보는데 그 개들은 눈빛이 형형하고 살갗이 벗겨지거나 다리가 없거나 한 일도 왕왕 있어 안타까운 마음이 들긴 했었다.

 

개들은 그를 보니 반갑다며 꼬리를 치고 혹여 놀랄까 달려들지도 않고 의젓하게 옆에 서 만져달라며 가만 기다렸다.

 

영특하고 안타까우니 쓰다듬을 만도 하건만 하랑은 선뜻 그러질 못했다.

 

그 개들에게서는 이세상의 것이 아닌 기운이 풍겨 본능적인 거부감에 다가갈 수 없게 했으니.

 

앞에 서서 마침내 그 거부감을 누르고 머리며 귀를 만져주니 개들은 좋다고 다시 꼬리를 친다.

 

하지만 그뿐이라, 개들은 하랑이 몸이라도 더 쓰다듬거나 안아주기 위해 가까이 가려 할 때마다 몸을 뒤로 물려버리고.

 

그에 하랑이 가까이 가려 했더니 뒤에서 누군가 걸어오는 것이 느껴졌더란다.

 

고개를 돌렸더니 글쎄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상냥한 목소리의 사람이 여기까지 오는 게 아니라고 달랬고.

 

여기는 죽은 이들이 오는 곳이지요?”

 

그렇단다.”

 

왜 난 여기가 무서운 것이오?”

 

그러니 그 이가 말했다.

 

친구가 없어서 그렇지.”

 

어린 하랑은 양 팔을 벌렸다.

 

무서우니 안아주시오.”

 

그 이는 하랑이 안겨오자 당황한 듯 했지만 이내 등을 토닥이었다.

 

갈 때는 조심하거라, 누군가 맛난 것을 주어도 먹으면 아플 테니 입에 대지 말고, 누군가 이리 오라 손짓해도 믿지 말고.”

 

길을 따라 쭉 걸어가면 될 것이라.

 

그가 등을 떠미니 아까까지 없던 곳에 문이 생겼다.

 

“...나랑...”

 

나랑 친구가 되어주지 않겠소? 하고 묻고 싶었는데.

 

그 사람은 답 없이 문을 열어 그를 쫓아냈다.

 

길은 고르고 알록달록한 돌로 꾸민 예쁜 곳이었다.

 

길이 꼭 사탕과자 같고나 생각하는데 누군가 제 손에 아가 이거 먹어보렴 하고 하얀 것을 준다.

 

나중에서 안 거지만 그것은 과자에 얹은 아이스크림으로 보기에도 퍽 맛나 보여 한 입 물었더니 대번에 숨이 막히고 가슴이 아팠다.

 

문득 먹지 말랬지!’하는 소리가 들리고 손을 찰싹 맞아 아이스크림을 떨어뜨렸다.

 

그제야 아까 일이 생각나서 화닥닥 길을 뛰었다.

 

뛰고, 뛰고, 뛰었고 한숨을 슥 돌리려는데 눈이 확 뜨였다.

 

꿈은 거기서 끝.

 

하랑은 개꿈이려니 생각하고 일어나 머리를 털었다.

 

단 하나 아쉬운 건 친구가 되어달라고 말할 것을, .

 

그리고 그 아쉬움도 령을 부리기 시작하며 사라졌다.

 

 

 

 

 

 

하랑, 얌전히 굴어야 한다.”

 

사부도 참, 한두살 먹은 애도 아니고 걱정도 많소.”

 

처음 재단에 오는 날, 이색적인 능력이라 보고 싶어하는 이가 많다고 티엔은 그를 사람들 앞에 세웠었다.

 

이거 꼭 서당에 처음 간 날 같구만.

 

단상에서 주위를 둘러보는데 문득 하랑의 눈을 잡아끄는 사람이 있었다.

 

가로세로 하얗게 줄무늬가 들어간 모자를 푹 눌러쓰고, 그 아래는 금색 머리카락.

 

오라 저게 금발이라는 거구만?

 

하는데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하랑은 지독한 기시감에 몸을 멈췄다.

 

? 예지몽 따위에서 본 사람인가?

 

아니, 최근에 꾼 예지몽에서는 저런 사람이 나오질 않았었는데.

 

소개가 끝나고 질문을 받는 도중에도 눈은 그 사람에게서 떨어지질 않았다.

 

마침내 서커스단 원숭이마냥 앞에 두는 일은 끝났고 티엔은 계속 집중하지 않는 하랑이 어딜 보는가 하여 그쪽을 보았다가 어깨를 잡아 시선을 돌리게 했다.

 

이하랑, 그 사람은 가까이하지 않는 게 좋다.”

 

실례네요 티엔 정, 이제 한 식구잖아요?”

 

아까까지 저 멀리 있던 이는 고개를 돌리니 바로 앞에 있었다.

 

부드러운 표정과 선량한 인상에 목소리는 유난히 상냥하다.

 

저 목소리, 저 목소리를 분명 들은 적 있었는데!

 

목소리를 들으니 마치 벼락이라도 맞은 마냥 몸이 부르르 떨리고 온몸의 털이 바짝 섰다.

 

마틴 챌피예요, 이름이 마틴이고 패밀리 네임이 챌피, 이해했나요?”

 

대답도 못 하고 얼떨떨히 고개를 끄덕이는데 티엔이 그들 사이를 막아섰다.

 

무슨 수작이냐.”

 

수작이라니 너무하시네요, 그저 인사를 하려는 것뿐이랍니다.”

 

그 잔재주로 내 제자를 꼬드기기라도 했다간 끝이 좋지 못할 거다.”

 

그럴 생각은 없으니 비켜 주시죠, 오랜만에 인사를 하고 싶으니까.”

 

마틴은 티엔을 비켜나게 한 뒤 하랑을 꼭 껴안았다.

 

색목인들은 이게 인사야?”

 

그렇답니다, 반가워요 하랑 이.”

 

옆에서 지켜보던 티엔은 마틴의 입에서 이어 흘러나온 답잖은 말에 놀랐다.

 

저와 친구가 되지 않겠어요?”

 

 

 

 

 

 

 

 

 

친구가 되겠다니 정말 어울리지 않는 말이로군.”

 

실례라니까요.”

 

하랑의 조선 신분은 박수라 높지도 않고, 능력이야 앞으로 자라겠지만 당장은 쓸 곳이 없는데 뭣 때문이냐?”

 

부드러운 빛의 스탠드 조명에 의지해 책을 읽던 마틴 챌피는 책을 탁 덮어버렸다.

 

그런 것 때문에 사람을 사귀지는 않는답니다. 웬일로 제 방에 온다 싶더니 시비를 걸러 온 건가요?”

 

경고다.”

 

하랑은 내 제자다.

 

그렇게 말하고 사라지는 뒤에 대고 마틴이 웃었다.

 

하랑은 제 것이 될 거예요.”

 

 



[릭마] 연인의 심장 소리

2015. 5. 8. 19:31 | Posted by 호랑이!!!

째 깍 째 깍

 

마틴의 회중시계는 9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사람의 심장이 분당 몇 번을 뛰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시계랑 비슷하지 않을까?

 

아마 그럴 것이다.

 

적어도 릭에게는 그럴 것이다.

 

사람에게 어떠한 소리가 있다면 릭에게서 나는 소리는 갓 베어낸 풀향기를 실은 남풍이 부는 소리와 바로 이, 시곗바늘이 움직이는 소리일 테니.

 

그렇지 않고서야 그에게 안겼을 때 들리는 시곗소리에 그렇게 마음이 편해질 리 없으니까.

 

마틴은 릭에게 안길때면 귓가에서 들렸던 톱니바퀴가 맞물려 나는 시계의 합창을 기억했다.

 

빨리 업무가 끝났으면 좋겠다.

 

“지금 몇 시예요?”

 

“형씨 시계 있잖아?”

 

마틴은 그 물음에 웃음으로 답한다.

 

 

 

 

릭은 트와일라잇에 있을 때와는 달리 와이셔츠의 소매를 내렸다.

 

소매 너머로 찬 손목시계들이 울퉁불퉁하게 보였지만 얼핏 옷 주름으로 보이기도 했기에 누구도 릭에게 왜 그렇게 많은 시계를 차고 다니느냐 묻지 않는다.

 

릭은 그 중 소매 밖으로 나온 하나의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6시.

 

빨리 점심시간이 되어서 커피라도 같이 마시고 싶네.

 

이미 하얀 머그컵에는 포트로 끓여낸 향 좋은 커피가 가득 담겨 있었지만 릭은 마틴이 타주는 맛없는 커피를 생각했다.

 

“데이트라도 있어?”

 

“티 납니까?”

 

“계속 시계만 들여다보니까 그렇지, 그런다고 시간이 빨리 가지는 않아~”

 

릭의 회사 동료인 그는 몸을 기울여서 데이트 시간이 시계에 표시되기라도 한 것 마냥 릭의 손목시계를 내려다보았다.

 

“...어라? 시계가 고장났나? 시간이 안 맞잖아, 시계 고치는 곳에 가 봐.”

 

“고장났을 리가 없는데.”

 

“봐, 지금은 6시가 아니라 10시라고.”

 

릭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가 떠나고, 릭은 마틴이 있는 런던의 시간으로 맞춰진 시계를 손목에서 풀어내었다.

 

시계를 귓가에 가져다대면 째깍째깍 초침 돌아가는 소리가 난다.

 

귀에 댄 것은 아까까지 손목에 차고 있던 손목시계지만 릭이 떠올리는 것은 놋쇠 빛깔의 둥근 회중시계다.

 

마틴의 심장 가까이 매달린 그것은 어쩌면 마틴을 닮았을 것이다.

 

째깍 째깍.

 

마치 연인의 심장소리를 듣는 기분.

 

릭은 웃음을 참으려는 듯,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아 점심시간까지 못 참겠네, 커피 마시러 간다고 하고 몰래 찾아갈까.

 

이 시간에 찾아가면 놀라겠지?

 

릭은 눈을 감고 미소를 지었다.

 

연인의 푸른 눈이 놀라 동그랗게 커진 것이 눈 앞에 보이는 듯 했다.

 



[릭마틴] When can I see you again?

2014. 12. 29. 03:15 | Posted by 호랑이!!!

(*같은 제목의 노래에서 아이디어를 받았습니다)






⌜이 편지는 미국에서 최초로 시작되어 일년에 한바퀴 돌면서 받는 사람에게 행운을 주었고....⌟

 

마틴 챌피는 한숨을 쉬며 편지를 접었다.

 

편지는 봉투째로 벽난로 속으로 들어갔다.

 

“유치하기 짝이 없는 편지네요.”

 

저게 설령 사이퍼가 만든 일종의 사이킥 페이퍼라서 진짜로 행운을 가져다준다고 해도 지금 자신에게 필요한 건 아니었다.

 

‘지금 제게는 행복이 필요한 거지 행운이 필요한 게 아니니까요’

 

하지만 하얀색 종이봉투에 담긴 행운의 편지는 다음날, 그 다음날에도 찾아왔다.

 

세 번째로 받은 날, 마틴은 다시 봉투를 열고 안의 내용을 읽었다.

 

어라? 뭔가 이상하다.

 

⌜이 편지는 미국에서 최초로 시작되어 일년에 한바퀴 돌면서 받는 사람에게 행운을 주었고 지금은 당신에게로 옮겨진 이 편지는 3일 안에 당신 곁을 떠나야 합니다. 행운이 당신에게 깃들 것입니다⌟

 

이런 편지에 으레 있어야 하는 ‘7통을 다른 사람에게 보내시오’하는 문구가 없다.

 

마틴은 그 편지의 뒷면과 봉투까지 꼼꼼하게 살펴보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옆에 놓아두었던 시계가 땡땡땡 하는 소리를 내었다.

 

벌써 잘 시간이군요.

 

커튼을 걷어 바깥을 살폈더니 창밖은 어둑했고 지나다니는 사람조차 없었다.

 

편지는 원래대로 접어 책상에 올려두고 마틴은 방의 불을 껐다.

 

 

 

 

 

마틴은 기분 좋은 바람이 뺨을 스치는 것을 느끼며 눈을 떴다.

 

바다 냄새가 났다.

 

그리고 자신은 바닥에 누워 있었다.

 

하늘에는 달이 크고 밝게 빛나고 있었고 별은 쏟아질 듯, 손을 뻗기만 하면 잡을 수 있을 것처럼 가득 매달려 있다.

 

“일어나 보시오.”

 

다정스런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일어나자 갈색 머리의 남자가 앞에 서 있었다.

 

“...꿈에는 자신이 본 사람의 얼굴만 나온다고 하던데, 제가 언제 당신을 만난 적 있었나요?”

 

그러자 그는 입꼬리를 올리더니, 그야말로 시원스레 소리내어 웃었다.

 

“내가 그대의 꿈에 나타난다면, 그것은 내가 그대를 그리워하기 때문이라 생각하시오.”

 

마틴은 자신이 서 있는 곳을 둘러보았다.

 

불 꺼진 등대에 바로 앞엔 바다가 파도치고 불빛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별이 반짝였다.

 

열기를 머금은 바닷바람이 머리카락을 기분좋게 헤집고 앞에 서 있는 남자의 머릿속조차 들리지 않는 고요한 밤.

 

너무나도 오랜만에 느끼는 평화로운 기분이었다.

 

그는 마틴을 이끌어 유리 테이블 앞에 앉혔다.

 

유리 테이블 위에는 유리그릇이 놓여 있었고 그 안에는 작은 유리 구슬이 가득하게 들어 달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블론디, 그거 아시오?”

 

이것은 별이라오.

 

이게 별이라고요?

 

마틴이 반문하자 그는 어디서 났는지 모를 작고 하얀 초에 불을 붙였다.

 

초를 옆에 내리자 유리그릇 속의 수많은 유리알이 반짝거리며 빛을 내었다.

 

“그대를 위해 빛나는 별이라오.”

 

 

 

 

 

자명종이 금속 부딪히는 소리를 내며 마틴을 깨웠다.

 

마틴은 하품을 하며 일어났다.

 

정말 멋진 꿈이었는데.

 

오늘도 하루종일 사람들 사이에서 일해야 한다.

 

어제만 해도 이 생각만 하면 쉬고 싶다, 아프다고 할까, 감기에 걸렸다고 할까 생각했지만 왠지 오늘은 그조차 웃어넘길 수 있을 것 같았다.

 

문득 마틴의 시야에 책상에 두고 잔 편지가 보였다.

 

행운이라.

 

꿈 속에서 보았던 그 사람이 떠올랐다.

 

“...하하.”

 

그처럼 시원스레 웃어보려 했지만 큰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거울에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찌푸리고, 맥없는 모습.

 

양 손바닥으로 뺨을 꾹 눌렀다.

 

거울을 보고 활짝 웃었다.

 

 

 

 

 

오늘의 꿈 속은 몹시 추웠다.

 

이게 정말 살을 엔다는 거구나.

 

“춥지 않소?”

 

어제의 꿈 속에 나왔던 그 사람이었다.

 

그는 두터운 겉옷을 입혀 주었고 털신을 신겨 주었다.

 

오늘의 꿈속은 소파 위였는데 그 앞엔 모닥불이 타오르고 둥글게 주변이 정돈되어 있었다.

 

모닥불의 위에는 작은 주전자가 걸려 있었고 그는 마틴이 일어나 앉자 커다란 담요를 꺼내 함께 덮었다.

 

바닥이 얼음인데 불을 피워도 되는 걸까? 묻고 싶었지만 이내 머릿속에 답이 떠올랐다.

 

“여기는 제 꿈속이니까요.”

 

“스모어 먹겠소?”

 

“스모어?”

 

“내가 아주 좋아하는 거지, 밖에서 캠핑을 할 때마다 만든다오.”

 

아주 쉬워, 자 이걸 받아.

 

마틴은 쇠꼬챙이를 받았다.

 

끝이 뾰족한 쇠꼬챙이에 마시멜로를 끼우고 불 쪽으로 내밀자 곧 달콤한 향이 났다.

 

“챌피, 그렇게 가까이 놓으면 타 버린다오.”

 

하지만 이미 늦었다.

 

하얀 마시멜로의 겉에는 갈색 기포가 생기더니 이내 불에 휩싸여 버렸다.

 

그가 후 불자 불이 꺼졌지만 하얀 마시멜로는 까맣게 타 버렸다.

 

“하는 수 없지. 자, 내 것으로 만드시오.”

 

겉이 살짝 갈색으로 변해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마시멜로를 크래커에 올리고 그 위에 초콜릿 조각을 얹은 뒤 그 위에 크래커를 하나 더 얹자 보기 좋은 샌드가 되었다.

 

그는 그걸 익숙한 솜씨로 하더니 다 된 것을 마틴에게 내밀었다.

 

“자, 맛을 봐.”

 

마틴은 그것을 받아 한 입 깨물려다 그가 태운 마시멜로로 만든 스모어를 먹으려는 것을 보고 소매를 잡아당겼다.

 

“태운 것은 저니까, 그걸 저한테 주세요.”

 

그러자 그는 씩 웃더니 스모어를 입에 쏙 넣었다.

 

“아, 앗 뜨거! 뜨거....!”

 

“당신?!”

 

“이거 막 구운거라 뜨거우니 조심하시오. 아.. 후... 하후...”

 

마틴은 그 모습을 보고 웃음이 나왔다.

 

혀를 내밀고 뜨거워하는 모습에 몸을 그 쪽으로 기울이곤 후- 입김을 불었다.

 

“좋아, 이 꿈의 주인인 제가 후-후- 했으니까 이제 괜찮을 거예요.”

 

릭은 하하, 웃고는 사랑스럽다는 눈길로 보았다.

 

“그래, 이제는 하나도 안 아파.”

 

문득, 마틴은 하늘이 몹시 밝다는 생각을 했다.

 

마치 그 생각을 읽은 것처럼 그는 하늘을 가리켰다.

 

하늘 가득 빛의 장막이 펼쳐져 있었다.

 

황록색, 백색, 보라색, 푸른색이 어두운 밤에게서 그들을 감싸듯 하늘 끝까지 펼쳐진 것 같았다.

 

“정말... 아름다워요.”

 

그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발견했다고 했다.

 

마틴은 그가 만들어준 스모어를 한 입 베어물었다.

 

세상에 다시없을 달콤한 맛이었다.

 

“어떻소, 맘에 드오?”

 

“정말로... 멋져요.”

 

그는 마틴의 뺨에 입술을 대었다.

 

 

 

 

 

 

 

어김없이 자명종이 마틴을 깨웠다.

 

마틴은 입술이 닿았던 뺨을 만져보았다.

 

정말이지 생생한 꿈이다.

 

반할 것 같아.

 

책상 위에 올려두었던 행운의 편지를 들어 한가운데에 몇 번이고 입맞추었다.

 

자명종을 끄고 언제부터인지 거의 걷은 적 없던 커튼을 활짝 열었다.

 

아침햇살이 이렇게나 밝았던가? 아침의 공기가 이렇게 상쾌했던가?

 

뼛속까지 파고드는 찬 바람조차 기분 좋았다.

 

큰 소리로 웃고 싶었다.

 

일터에서 하루종일 그 꿈 생각이 났고, 꿈을 생각할 때면 손이 뺨을 만지고 있었다.

 

오늘도 만약 그 꿈을 꾼다면, 그 사람의 이름을 물어볼 것이다.

 

평소 외출이라고는 거의 하지 않았지만 오늘은 점심시간에 재단 밖으로 나갔다.

 

재단 근처의 작은 가게로 들어가 크래커 한 봉지와 마시멜로, 초콜릿을 샀다.

 

돌아오는 길에, 어느 가게의 쇼윈도에 전시되어 있는 상품이 눈에 띄었다.

 

가격표를 보니 제법 비싼데...

 

하지만 저걸 보니 꿈 속의 그 사람이 떠오른다.

 

저걸 선물해 주면 좋아할...

 

...아니, 정신 차려, 그 사람은 꿈 속의 사람이라고.

 

요 며칠의 꿈은 그냥... 꿈이야.

 

저걸 봐, 넌 평생가도 쓰고 싶지 않을 텐데 저만큼이나 비싼것에 돈을 쓸 여유가 있어?

 

하지만 결국 마틴은 사고 말았다.

 

심지어 점원에게 선물로 줄 거니 잘 포장해달라는 말까지 해서.

 

손바닥만한 상자를 벨벳 천으로 감싸고 비단끈으로 장식하듯 묶은 것을 주머니에도 넣지 않고, 마틴은 그대로 들고 재단으로 돌아왔다.

 

자신의 방에 들어와서, 편지를 다시 읽었다.

 

⌜이 편지는 미국에서 최초로 시작되어 일년에 한바퀴 돌면서 받는 사람에게 행운을 주었고 지금은 당신에게로 옮겨진 이 편지는 3일 안에 당신 곁을 떠나야 합니다. 행운이 당신에게 깃들 것입니다⌟

 

3일?

 

오늘이 3일째였다.

 

마틴은 소용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잘 포장된 선물을 손에 쥐고 잠이 들었다.

 

 

 

 

 

“눈 떴소?”

 

밤이다.

 

꿈은 밤에 꾸는 거니까.

 

하지만.....

 

마틴은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보았다.

 

“여긴 내 꿈이예요, 그렇죠?”

 

“그렇소.”

 

“그럼 꿈의 배경도 바꿀 수 있지 않을까요?”

 

“그대가 원한다면.”

 

이걸 보시오, 라며 그는 긴 종이를 펼쳐 보였다.

 

“그대가 무엇을 하고 싶어하던지, 뭐든 가능하오.”

 

그리스의 건축물을 볼 수도 있고, 그 어떤 누구도 발견하지 못한 고대 신전을 탐험할 수도 있소.

 

히말라야의 산봉우리, 브라질 밀림의 흑표범을 만져볼 수도 있고 따뜻한 남쪽 바다에서 거대한 고래와 함께 헤엄칠 수도 있소.

 

“따뜻한 곳으로 가고 싶어요.”

 

그는 마틴의 손을 잡았다.

 

다음 순간, 그들은 거대한 축제의 한복판에 와 있었다.

 

“주위를 보시오.”

 

신문에서 본 적 있다.

 

저것은 피라미드, 저것은 스핑크스.

 

“챌피, 아침에는 네 발, 점심에는 두 발, 저녁에는 세 발로 걷는 것이 무엇인지 아시오?”

 

“전혀. 동물인가요?”

 

“그대는 방금 스핑크스에게 잡아먹혔소. 답은 사람이오.”

 

축제를 하는 사람들은 외국의 이방인들이 나타났는데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북을 두드리는 소리와 음악 소리는 끊이지 않고 흘러나왔고 사람들은 거기 맞추어 춤을 추었다.

 

여기저기 불이 밝았고 사람들은 신처럼 웅장한 건축물 앞에서 춤을 주고 있었다.

 

“밤에? 춤을 춘다고요?”

 

“바로 그렇소!”

 

걱정 말아, 어두워도 남의 발에 발을 밟히는 일은 없을 테니까.

 

릭은 마틴의 손을 잡아당겼다.

 

그들은 순식간에 춤추는 사람들 사이에 휘말렸다.

 

“한밤의 축제 속에 빠진 것을 환영하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이내 익숙해져서 지칠 때 까지 춤을 출 수 있었다.

 

춤을 추고, 추고, 추고, 음악은 뼛속까지 파고들어 뛰고, 손을 들고, 빙글빙글 돌게 한다.

 

마침내는 지쳐, 마틴은 한쪽으로 나가 주저앉았다.

 

“지쳤소?”

 

“너무 재미있어요!”

 

그러자 그는 이가 드러나도록 활짝 웃었다.

 

“나는 그대의 꿈이니까.”

 

그대가 거부할 수 없는 것을 가지고 꿈 속으로 유혹하지.

 

거부할 수 없는 것, 이라는 말에 문득 떠올라서 마틴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왜 그러오?”

 

“분명... 아까 쥐고 잠들었는데, 없어요.”

 

선물과 더불어 잊고 있던 사실이 떠올랐다.

 

마틴이 기운이 없어 보여, 그는 마틴의 옆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당신이 행운의 편지를 보냈어요, 그렇죠?”

 

“그렇소.”

 

“그럼 오늘밤이 마지막 꿈이예요?”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틴은 그를 올려다보았다.

 

저만치, 한쪽 하늘이 밝아오는 것이 보였다.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꿈이고, 헛된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마틴은 그렇게 물었다.

 

“챌피, 이제 가야 하오.”

 

가기 전에 말해 주세요.

 

“우린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그는 마틴의 머리를 쓰다듬었고, 마틴은 어느새 침대에 누워 있었다.

 

잠이 몰려왔다.

 

이름을 물어보려 했는데, 정말 재미있었다고, 멋진 꿈이라고 말해야 하는데.

 

마틴은 ‘마지막’이라고 생각해 팔을 뻗었다.

 

그의 목에 팔을 감고, 귓가에 한마디를 속삭였다.

 

“사랑해요.”

 

세상은 검게 변했다.

 

 

 

 

 

 

네 번째, 다섯 번째 밤.

 

꿈은 꾸지 않았다.

 

선물로 주려고 했던 것은 침대 아래에 떨어져 있었다.

 

여섯 번째의 밤을 보내고 일어난 마틴은 책상 위의 행운의 편지를 집어들었다.

 

봉투 위로 가볍게 입을 맞추고 꿈속의 그를 떠올렸다.

 

재단에서 일을 하고, 입이 심심할 때는 크래커에 초콜릿과 굽지 않은 마시멜로를 얹어 베어 물었다.

 

그리고 지금은.

 

서류를 브루스씨한테 전달해야 했다.

 

다시 한숨이 나왔다.

 

서류뭉치를 들고 그의 사무실로 가, 문을 똑똑 두드렸다.

 

지나가던 누군가가 브루스씨는 지금 응접실에 있다고 했다.

 

급한 서류는 아니었지만 전달하기 위해 응접실로 걸음을 옮겼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길쭉한 의자와 테이블이 있고, 한쪽에 브루스가 앉은 것이 보였다.

 

“브루스씨, 이거...”

 

‘챌피’

 

손에서 서류가 우수수 떨어졌다.

 

“챌피.”

 

‘너무나도 보고 싶었던’

 

“보고싶었소.”

 

생각과 같은 말, 생각과 같은 느낌.

 

마틴은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재단의 ‘침착’하고 ‘차분’한 인재, 마틴 챌피는 자신의 방으로 전력질주를 했고, 다시 응접실까지 전력으로 뛰어 돌아왔다.

 

헉헉거리고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면서, 마틴은 손에 든 벨벳 상자를 그에게 있는 힘껏 던진 뒤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나의 행복한 행운








[릭마/Bㅣ광] 최군과 사퍼 크로스오버

2014. 12. 20. 13:09 | Posted by 호랑이!!!

“마음을 읽는다고 하셨나요? 마인드랑 같은 능력이네요.”

 

“그쪽에도 저 같은 능력자가 있나 보네요. 반가워요, 마틴 챌피예요.”

 

“B라고 해요.”

 

마틴과 B가 멋쩍게 인사를 나누었다.

 

저 한편에서는 저런 화기애애하고 수줍은 분위기가 아닌 상당히 불꽃튀는 분위기로 인사를 나누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대가 군단 프리랜서의 대표요?”

 

“아따, 거 먼데까이 내가 알려졌나 보이. 그랴, 내가 프리랜서 대표, 비광이요 타키온.”

 

차분한 목소리.

 

예의바르게 올라간 입꼬리와 웃는 표정.

 

그러나 그 눈만은 웃지 않고 있었으니.

 

이것이 바로 정 중 동!

 

그리고 저 멀리, 인사하는 보모와 아이 페어가 있었다.

 

“반가워요 어이.”

 

부엉!

 

“...”

 

“초코파이 사줘.”

 

 

 

 

 

 

“요거요거 이것이 양놈들 화투다냐?”

 

“깔끔하니 보기 쉽죠?”

 

릭은 비광이 돈 거는 게임을 좋아한다는 말에 카드게임을 하자며 서양카드 한 벌을 꺼내들었다.

 

B는 전혀 몰랐지만, 비광은 릭이 저러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아마도, 거의 확실하게.

 

“이런걸로 골패놀이를 하면 재미있나? 그림도 네 종류밖에 없고 영...”

 

비광은 에이스 카드 한 장을 집어들고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화투보다 넓고, 얇고, 하얀 배경에 무늬가 숫자에 맞게 박혀 있고... 흐음.

 

“...소매에 숨기기 좋겠구마.”

 

...네?

 

B는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이길 바랐다.

 

“...비광...?”

 

그러자 비광은 그를 돌아보더니 화알-짝 웃어보인다.

 

“비광, 안돼요, 안 돼요.”

 

비광 전에 사기치다 걸려서 손목 잘릴 뻔 했다면서요, 저기 마인드랑 같은 능력 쓰는 사람 있단 말이예요.

 

이번에 걸리면 진짜 손목 잘릴지도 모른다.

 

게다가 저 사람들은 전쟁에서 나왔다고 하니 손목으로 안 끝날지도 모르고.

 

“아그야.”

 

비광은 더없이 진지한 얼굴로 B에게 바싹 고개를 들이밀었다.

 

B는 가면 밑으로 보이는 목이 새빨개져선 몸을 뒤로 빼었고 비광은 거기 따라붙어 얼굴을 가까이 했고 B는 다시 뒤로 빼었고 비광은 또 가까이 붙었다.

 

이 이상한 술래잡기는 B의 등이 벽에 부딪히며 끝이 났고 비광은 벽에 등이 닿아 옴짝달싹 못하는 B의 양 옆에 팔을 대고 코가 닿을 정도로 가까이 얼굴을 대었다.

 

“아그야, 게임이 뭐냐?”

 

“게임이요? 재밌는...거?”

 

“그랴, 재밌는 거. 내는 도박판에서 남을 속여가며 이기는거이 그리도 즐겁드라.”

 

“하지만... 하지만 비광...”

 

“아그야, 남자는 안된다는 걸 알면서도 가슴이 시키는대로 따를 때가 있다.”

 

비광은 멋들어지게 겉옷을 어깨에 걸치며 돌아섰고 B는 주르르 벽을 타고 미끄러지며 중얼거렸다.

 

“비광은 여자잖아요...”

 

 

 

 

 

 

동양인은 좌식! 이라는 릭은 따끈한 바닥에 돗자리를 깔아 자리를 만들었다.

 

비광은 양쪽으로 허리까지 갈라진 치마임에도 떡하니 양반다리로 앉았고 B는 ‘팬티 보여요!’라고 기겁하며 겉옷을 벗어 덮어주었다.

 

“이 오빠가 이렇게 얌전해 보여도 라스베이거스랑 메트로폴리스에서 큰 판 벌리던 사람이었는데, 이거이거 촌 아가씨 기 죽으면 어떡하오~?”

 

“아따, 걱정도 팔자랑께. 양화투라고 봐주기 없기여? 뭐혀, 후딱 패 돌려.”

 

공정함을 기해 자신이 패를 나눠주겠다며 마틴이 카드를 착착 섞었다.

 

차르르 차르르 카드 섞이는 것을 보며 한쪽 팔을 괴고 있던 비광이 씩 웃으며 한 마디 했다.

 

“사내자식 손이 참 곱기도 곱구마잉~ 이따가 함 잡아봐도 될랑가?”

 

“물론이죠, 그러세요.”

 

그러자 과자를 집어 입에 넣던 릭이 B에게 웃어보였다.

 

“거기 예쁜이, 과자 좀 먹여 줄까?”

 

“아, 저... 저기... 괜찮아요.”

 

B는 귀 끝을 붉히며 무릎을 안고 비광의 옆에 쪼그려 앉았고 비광과 릭 사이에는 파지직 불꽃이 튀었다.

 

‘마틴 손을 잡아보겠다고?’

 

‘우리 B한테 작업이라도 거는 기가 뭐가?’

 

그리고 웃음을 참는 마틴이 카드를 돌렸다.

 

 

 

 

 

“나그네씨도 프리랜서예요?”

 

“초코파이 사줘.”

 

“허리춤의 검을 보니 역시 검을 다루시는 분인가봐요.”

 

“어이 없어.”

 

토마스는 뒤로 돌아보았다.

 

어이라는 저 커다란 부엉이는 사람마냥... 아니 사람보다 훌륭하게 피터와 놀아주고 있었다.

 

뭐든지 일단 시큰둥해하고 관심이 없던 피터도 이 커다란 부엉이와는 순식간에 친해져 왠지...

 

아 갑자기 피터와 보냈던 지난날이 눈 앞을 스쳐지나간다.

 

주마등은 아니겠지.

 

“간식 만들어 줄까요?”

 

“초코파이 줘.”

 

초콜릿이 들어간 파이?

 

토마스는 고개를 갸웃했다.

 

“재료가 충분히 있는지 모르겠네요, 해볼게요.”

 

“먹을거 줘.”

 

토마스는 피터와, 피터와 놀아주는 어이 쪽으로 손나팔을 만들었다.

 

“피터, 어이, 간식시간 할까?”

 

“할래.”

 

부엉!

 

날이 춥더라, 형이 따뜻한 우유랑 맛있는 거 만들어 줄 테니까 쉬었다가 놀...

 

토마스는 아이들을 데리고 들어오자마자 손으로 피터의 눈을 가렸고, 어이는 날개를 펼쳐 나그네의 눈을 가렸다.

 

“마에스트로! 마침 잘 왔소! 당장 저 여자 얼려버리시오!”

 

“나그네야 저놈아 저거저거 아주 몹쓸 놈이여!”

 

릭의 뒤에서 어깨를 잡고 말리는 마틴, 그리고 비광의 앞에서 막아서는 B.

 

아까까지 앉아서 ‘저 이거 좀 잘하거든요, 당신한테 이게 너무 어렵지 않았으면 좋겠어요’와 ‘괜찮아요, 잘 못하니까 열심히 할게요. 우리 얼른 시작해 볼까요?’라고 하던 사람들은(어디까지나 토마스 시점) 자리에서 일어나 멱살이라도 잡을 듯 씩씩거렸다.

 

“...피터는 저런거 보면 안돼, 가서 식탁에 앉을까?”

 

“알았어 형아.”

 

토마스는 재료를 늘어놓기 시작했고 식탁 위에 선 어이는 마치 손가락인 마냥 큰 깃털 하나를 들고 말했다. 부엉부엉.

 

부엉, 부엉부엉부엉. 부엉.

 

“알았어 어이.”

 

나그네는 피터 옆에 얌전히 앉았다.

 

“거기 네 분도 이리 오세요, 차 끓여 드릴게요.”

 

배고프면 신경 날카로워지니까요.

 

그렇게 널찍한 테이블에 어른 다섯에 아이 하나, 부엉이까지 하나 앉았더니 꽉 찬다.

 

아무래도 이거 작은 오븐에 굽는 작은 파이는 못 만들겠는데.

 

손이 근질근질해진 토마스는 커다란 보울에 밀가루와 계란을 넣고는 커다란 프라이팬에 레코드판만한 팬케이크를 만들어냈다.

 

반질반질한 하얀 접시에 커다란 팬케이크를 층층이 쌓고 생크림과 여러 가지 시럽, 딸기를 맨 위에 하나씩 장식해 자리 앞에 하나씩 놓았다.

 

나그네가 포크를 들자 토마스는 나그네 앞에 머그컵을 탕 소리나게 내려놓았다.

 

“기다려. 요.”

 

묘한 박력이 있어 손을 대려던 비광도 릭도 포크로 향하던 손을 멈췄다.

 

토마스는 각자의 컵에 우유와 차를 따라주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컵에 따뜻한 우유와 각설탕 두 개를 떨어뜨려 찻숟가락으로 저었다.

 

“이제 먹어도 돼요.”

 

와구와구와구.

 

그리고 접시가 요란하게 비워지는 소리가 났다.

 

“벌써 다 먹었어요?”

 

“맛있어!”

 

“정말요?”

 

“아따, 저 아그가 이렇게까지 빨리 먹지는 않는디. 거 괜찮으면 하나만 더 만들어 줘, 응?”

 

“저한테 맡기세요!”

 

아니, 하나만 더 만들면 되는....이라고 하는 소리도 듣지 못하고, 토마스는 아까보다 더 커다란 팬케이크를 구워내기 시작했다.

 

“...아따아... 그쪽 아가야들은 다 이렇다냐? 엄~청 나구만~”

 

“저희도... 이런 모습은 처음 보는 것 같네요.”

 

톰슨씨! 가서 밀가루랑 우유랑 버터 좀 더 사다주세요!

 

다 먹은 그릇은 설거지통에! 물 붓는 거 잊지 말구요.

 

“저기... 토마스, 제가 설거지할게요.”

 

“고마워요!”

 

엄청 신나 보이네, 형.

 

피터는 부루퉁하게 양손으로 턱을 괴다가 이따끔씩 제 것을 얼만큼 떼어 옆의 어이에게 먹여주었다.

 

물론 딸기는 안 줘.

 

“피터, 형이 동물한테는 과자 주지 말라고 했지?”

 

“어이는 동물 아니야.”

 

“어이는 부엉이잖아.”

 

그러자 나그네가 식탁을 탁 쳤다.

 

“어이는 부엉이 아니야.”

 

 

 

 

 

 

토마스라 했던가? 아그야 니도 끼래이.

 

라는 말에 의해, 토마스도 그들 사이에 앉아 카드를 잡게 되었다.

 

“이거 그냥 게임만 할라니 맥아리가 빠져 못하겠구만.”

 

“그럼 역시 상품이 있어야하지 않겠소?”

 

“저기, 그거 사행성...”

 

“릭, 그걸 상품이라고 걸면 저 화낼거예요.”

 

그러자 릭은 잠시 주춤했으나 비광이 ‘사내자식이...’로 시작하는 도발을 듣자마자 자신이 생각하던 상품을 외쳤다.

 

“마틴이랑 B 사이에 앉아서 ‘양손의 꽃’ 하기!”

 

“좋다!”

 

“저도 상품이예요?!”

 

“릭 그거 하지 말라고 했잖아요!”

 

마틴은 바닥을 손바닥으로 탕탕 내려치더니 카드를 섞기 시작했다.

 

“승부는 삼세판.”

 

“이 오빠한테 영혼까지 털릴까봐 단판은 무섭소?”

 

“이 누나야가 타키온 아그 울까봐 해주는거 아니겠수~? 세 번이나 기회를 줬으니 응애응애 울지는 말더라구?”

 

마틴이 패를 섞어 돌렸다.

 

첫 번째는 릭의 승리, 두 번째는 비광의 승리.

 

그런데 세 번째가 토마스의 승리라 그들은 다시 한 판을 하기로 했다.

 

대망의 마지막 판의 첫 패를 오픈하려는데, 마틴이 릭을 쿡 찔렀다.

 

“아야야, 왜 그러오 블론디?”

 

“제가 왜 이러는지 모르지 않으실 텐데요.”

 

그러자 릭은 칫 하더니 슬그머니 뒤로 돌렸던 손을 앞으로 가져왔다.

 

B는 불안한 눈으로 보다가 비광을 툭툭 두드렸다.

 

“왜 그런다야?”

 

“...비광, 지면 안 돼요. 아무리 제가 악당이었다고 해도 팔려가기는 싫어요.”

 

“팔려간다고?”

 

“저 상품이잖아요.”

 

인신매매는 싫다, 고 했더니 비광이 입술을 꽉 깨무는 것이 보였다.

 

“비광?! 저 진짜 팔아버릴 거예요?!”

 

“자, 자 패 오픈한데이~”

 

“비과아앙!!!”

 

릭의 첫 카드는 하트 A, 그리고 두 번째도 하트, 세 번째도 하트, 네 번째, 다섯 번째도 하트였다.

 

“아쉽게도 플러쉬네.”

 

꽤나 좋은 카드라 자신만만한 릭 앞에 비광이 의기양양 카드를 뒤집었다.

 

“풀하우스여 아그야.”

 

5 세 장과 8 두 장의 카드가 뒤집혔고 비광은 제 오른편 자리를 탁 쳤다.

 

“거 마틴아 이리 좀 와 보아라.”

 

춘향이 수청 들라는 사또처럼 말하는데 토마스가 손짓했다.

 

“스트레이트 플러쉬예요.”

 

이게 바로 초심자의 행운인가봐요♡

 

 

 

 

 

그 후로 B는 끅끅거리면서 ‘안돼요 이러지마세요 저 비광이랑 있고 싶어요’를 울면서 말했고 정절을 위협받는 과부마냥 가슴 앞에서 손을 교차시켰다.

 

가면 밑으로 눈물이 뚝 뚝 떨어졌고 입으로는 ‘안돼요’를 연발하는 바람에 토마스는 ‘이것은 절대 인신매매가 아니며 자신은 B를 사고팔 생각이 없다’는 것을 설명하고 안심시켜야 했다.

 

마틴은 ‘그러게 제가 안된다고 했죠!’라고 릭에게 다그쳤고, 보란 듯이 토마스의 무릎에 앉다가 ‘무거워’라는 마음의 소리를 듣고 벌떡 일어났다.

 

“오늘 재미있었어요, 다음에 봐요.”

 

“그랴, 다음에 또 보장께.”

 

“다음에 또 봐요. 자, 피터도 인사.”

 

“...”

 

부엉!

 

피터는 토마스의 손을 꼭 잡고 연합으로 걸었다.

 

“그런데 형, 양손의 꽃이 뭐야?”

 

“음... 손에 손잡고 나란히 있는게 아닐까?”

 

“그럼 형아는 나랑 엘리랑 사이에 있으니까 매일 양손의 꽃이네.”

 

마틴은 재단 쪽으로 걷다, 문득 생각났다는 듯 릭에게 물었다.

 

“우리 지금까지 어디에 있었던 거예요?”

 

“...그러게나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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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X이글] 도서관

2014. 11. 11. 00:57 | Posted by 호랑이!!!

마틴은 도서관에서 이글 홀든과 마주쳤다.

 

그의 팔에 들린 것은 꽤 두꺼운 책들.

 

의외로군, 책을 많이 읽는다는 느낌은 받지 않았는데.

 

마틴의 능력이 사람들의 마음속을 읽는 것이니만큼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멍청한 일인지는 안다.

 

하지만 책을 읽는 사람에게서 으레 배어나오곤 하는 깊이나 매력 따위는 여지껏 이글에게서 본 적 없었다.

 

여어, 챌피. 너도 책 빌리러 왔어?”

 

안녕하세요 홀든.”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건네자 이곳이 도서관이라는 점을 감안해 작아진 목소리가 귓가를 간질였다.

 

여기, 도서관이 생각보다 잘 되어있지 뭐야. 나도 모르게 이것저것 빌려 버렸어.”

 

그러면서 짓궂은 웃음을 짓는다.

 

자신과는 동갑이라고 생각하지 못 할 정도로 가볍고 장난스러워 얼핏 귀엽다고 생각해버렸다.

 

그때 연합의 나이오비가 양팔에 책을 안고 다가왔다.

 

이글, 여기 좀 봐.”

 

나이오비가 가져온 책은 전부 동화책이었는데 이글은 그 책들을 두 가지로 나누었다.

 

여기, 이쪽에 있는 건 애들 읽기 힘들 테고... ...이쪽에 있는 게 내가 추천하는 쪽.”

 

이거 재미있네.

 

나이오비는 책에 시선을 두느라 몰랐겠지만 마틴은 보았다.

 

책을 분류하느라 집중하는 동안 이글의 얼굴에서 뭔가가 한 겹 떨어지는 것 같더니 책을 많이 읽는 사람들이 책을 대할 때 짓는 표정이 보였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무언가의 분위기가 흘러나왔다.

 

그 머릿속에 나타난 것은 이글이 기억하는 어린 시절.

 

아마도 행복했을 한 때.

 

이글이 생각하는 속에는 고풍스러운 방 안과 커다랗고 밝은 난롯가가 있었고, 푹신하고 멋진 안락의자와 유모와 형들이 있었다.

 

거기 비치는 감정까지 읽으려 했는데 이글은 이미 마지막 책까지 분류해버렸다.

 

그리고 그 기억들과 분위기와 표정은 이글이 가진 까맣고 차가운 상자 속에 빨려들어가더니 이내 그 상자마저 사라졌다.

 

마틴은 고개를 들었다.

 

평소의 이글이다.

 

겉도, 속도, 표정도, 분위기도, 생각하는 방식까지도.

 

마틴은 이글이 분류한 책 한 권을 들었다.

 

이 책들을 전부 읽어봤나요?”

 

아아, 집에 서재가 있어서. 책만큼은 아쉽지 않게 읽으며 자랐어.”

 

마틴은 이글과 잘 가라는 인사를 나눈 뒤 집었던 동화책을 펼쳤다.

 

이글의 머릿속에서 보았던 것과 토씨 하나 다르지 않은 내용이었다.

 

마틴은 책의 덮개를 입술에 가져다 대고 미소를 지었다.

 

아주 재미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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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릭마틴] 베이커리

2014. 9. 5. 04:38 | Posted by 호랑이!!!



마틴 챌피는 작은 베이커리의 종업원이다.

 

분홍빛 벽돌이 깔린 거리에 작고 아기자기한 마을의 아가씨들은 설탕 같은 목소리를 가진 금발 종업원을 만나기 위해 찾아와 케이크와 홍차를 시키곤 했다.

 

마틴은 오늘도 생크림과 딸기를 듬뿍 얹은 타르트에 향 좋은 홍차를 끓여 티 테이블로 가져갔다.

 

“딸기 타르트와 홍차입니다.”

 

세팅을 마치면 아가씨들은 저에게도 한 자리 내어준다.

 

마틴은 이러한 호의가 이성으로서의 호감에서 오는 것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호감은 호감이지만, 그것은 목소리 때문에 얻은 것이고.

 

다른 사람의 감정에 유달리 민감했던 그라 사람들이 좋아해주는 자신의 목소리에 대해서는 감사히 여기고 있었다.

 

“...아, 향 좋다.”

 

“음- 딸기에 설탕이라니, 달콤해~”

 

마틴은 아가씨들이 행복해하자 방긋 웃었다.

 

이 설탕 케이크와 홍차가 이 아가씨들이 하루에 누리는 것 중 가장 사치스럽겠지.

 

이런 귀여운 아가씨들의 이번 대화 주제는 낯선 이.

 

외부인이 적은 마을이다 보니 다들 호기심을 가지고 관찰한듯 싶었다.

 

“어투가 미국식이었어, 진짜 미국인일지도 몰라.”

 

“그 옷 봤어? 코트는 점잖지만 안에 입은 건 이상해.”

 

“맞아, 셔츠도 타이도 없고 색깔은 밝은 파랑색이잖아!”

 

“쇼 하는 사람일까? 노래나 마술 같은 거.”

 

“쇼 하는 사람의 옷 치곤 수수하던걸, 정말 정체가 뭘까?”

 

홍차잔을 꼭 쥔 채 아가씨들의 대화는 이제 특유의 로맨틱한 상상으로 넘어갔다.

 

“미국은 경박하지만 다들 축제처럼 들떠있다고 하던 걸. ...어쩌면 있지, 미국의 왕자 같은 거 아닐까?”

 

“미국은 왕자 같은 거 없어, 바보.”

 

“아무렴 어때, 미국의 젊은 사업가가 영국 여행을 왔을 수도 있지.”

 

아가씨들은 꿈꾸는 것처럼 손을 모으고 상상이라도 하듯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사랑에 빠지면 내 앞에 무릎을 꿇고 말하는거야.”

 

“‘나는 당신을 만나기 위해 왔어’... 꺄악!”

 

첫눈에 반한다던가, 운명이라던가, 그런 얘기에는 관심이 없었다.

 

둘 다 믿지 않으니까.

 

뭐, 금슬 좋은 부모님을 보자면 운명의 붉은 실이라는 게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은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생각일 뿐이고, 흔히 볼 만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시간이 지나고 홍차 잔이 비워지면 아가씨들은 돌아가 버렸다.

 

귀족 집 아가씨들처럼 즐기고 싶어 하지만 결국 집안일을 도우며 행복한 결혼생활을 바라는 소박한 아가씨들이니까.

 

이제 빵을 사러 오는 사람들은 더 없으려나, 마틴은 주방을 정리하고 쓰레기 봉지를 꽉 묶어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다시 매장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낮에 아가씨들이 말하던 이방인이 가게 안에 있다는 것에 깜짝 놀랐다.

 

“블론디.”

 

그리고 그 놀람이 가시기도 전에 여태껏 느껴본 감정 중 가장 특별한 것이 느껴졌다.

 

마치 깃털로 스치듯 간질거리고 한겨울 벽난로보다 따뜻하며 새로 만든 솜털 이불처럼 폭신폭신하고 새끼고양이의 가슴털만큼 보드라웠다.

 

짧은 말이었지만 미국식 억양임을 확인하기에는 충분했는데, 그 미국인은 성큼성큼 걸어와 자신을 꼭 끌어안았다.

 

“보고싶었소.”

 

마틴은 잠시 고민했다.

 

빵 반죽을 펼 때 쓰는 밀대로 때려야 할까?

 

그리고 그러한 생각을 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는지 그는 몸을 떨어뜨렸다.

 

“...당신은 날 처음 보는 거겠군, 나는 릭 톰슨이라 하오.”

 

178센티미터에 70킬로그램의 나이스 바디에 33살, 코드명 타키온.

 

“사랑스러운 어트랙티브, 당신을 만나기 위해 이만큼이나 먼 곳으로 왔소이다.”

 

릭은 아직 얼떨떨해하는 마틴의 입술 앞에 아직 아무 말도 하지 말라는 뜻으로 손가락을 가져다 대었다.

 

“처음은 아주 사소했지, 능력의 한계를 시험해보자 싶었소.”

 

어릴 때의 나는... 그러니까 20대까지의 나는 몹시 겁이 없었거든.

 

죽어도 그만이라고 생각했었으니까 말야.

 

그래서 목숨 내놓고 한계를 시험해보자 한 거지.

 

그러니까 또 다른 당신을 만날 수 있게 되었어.

 

마틴은 감정 저편에서 처음으로 무언가 영상을 보았다.

 

자신이 죽어가는 모습을.

 

“그 쪽에서의 저는 죽었나요?”

 

그러자 다른 모습들이 어두운 밤 강에 등을 띄우듯 나타났다.

 

모두 자신으로, 보이는 모습이나 방법이나 상황은 달랐지만 전부 죽어가고 있었다.

 

이 사람은 어째서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보고서도 다음, 다음의 나를 만나기 위해 이렇게나 무리하는 것일까.

 

마틴은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릭을 만져 보았다.

 

따뜻하고 간질거리고 폭신한 느낌 너머로 아주 무거운 것이 느껴졌다.

 

아주 무겁고,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것.

 

아직 어린 자신이 감당하기에는 버거운 것이라 눈에서 한 줄기 눈물이 흘렀다.

 

“힘들지 않았나요? ...그러니까, 만약 처음으로 돌아간다면 그러지 않았을지도 모르잖아요. 아프니까.”

 

그러자 깃 세운 코트에 파란 옷을 입은 그 사람은 과장된 몸짓으로 제 앞에 무릎을 꿇으며 종내엔 고개를 들고 밝게 웃어 보이는 것이다.

 

“사랑하는 그대여, 전 다시, 수천번이라도 다시 그랬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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