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호랑이!!!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글 보관함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쌍총] 모티브 : 쩨로 그림

2015. 7. 19. 02:19 | Posted by 호랑이!!!

[우리는 이 행성을 점거했다. 이 행성을 파괴하기 전에 기회를 주겠다]

 

주어진 것은 익숙하기 짝이 없는 무기였다.

 

[너희는 선택받았다. 이것은 이 행성의 신식 무기 모양을 본떠서 만든 것이다, 그것으로 네 옆의 사람을 죽여라]

 

한 사람과 행성을 저울에 올렸다.

 

신식이라더니, 웨슬리는 얼핏 낡아 보이는 총을 손에 쥐고, 내려다보았다.

 

이것으로 카인을 쏘면 세계 멸망을 막을 수 있다.

 

사람의 목숨 하나와 수십억, 혹은 그 이상의 목숨.

 

단순한 숫자로 계산한다면 더없이 명쾌하게 답을 낼 수 있는데.

 

망설이다가 고개를 들었더니, 앞에 카인이 있었다.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아마도, 죽을 각오를 하고서.

 

그 얼굴을 보자 웃음이 나왔다.

 

그래서 총의 안전장치를 걸어 품에 넣었다.

 

못 하네.”

 

슬로언, 이건 답이 정해진 일이네!”

 

아니지, 아니야.

 

일순 망설인 내가 부끄러워졌네, 나는 아직 장군이라는 직위에서 벗어나지 못했나봐.”

 

목숨 하나와 목숨 여럿을 비교하는 일은 전쟁 중으로 충분했는데.

 

조금은 이기적으로 굴어도 괜찮지 않겠나.”

 

이제라도 늦지 않았을테니, 빨리...”

 

카인은 웨슬리의 품에서 총을 꺼내 손수 잠금장치를 풀어 손에 쥐어주기까지 했다.

 

웨슬리는 그 총을 내려다보다가 한숨을 한 번 쉬었다.

 

꼭 그래야겠나?”

 

총구는 카인의 머리를 향했다.

 

카인은 눈을 감았다.

 

무언가 폭발음이 들리고, 조심스럽게 눈을 떠 본 그 곳에는 총을 전해주러 왔던 로봇이 박살나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서 정말로 세계는 멸망 직전에 이르렀다.

 

그들은 자원을 채취한다며 땅을 파고들었고 사람 몸에 든 성분을 조사한다며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포획해 가거나, 공기가 너무 맑다며 알 수 없는 이물질 같은 연기를 뿌렸다.

 

다행히도 능력자들에게는 별 문제가 없었고, 그 중에서도 공성전에 참가했던 사람들은 대등하게 싸울 수 있었기 때문에 51조로 파괴 임무가 떨어지곤 했다.

 

능력자들은.

 

공성전에 참가했다는 이유만으로 카인과 웨슬리 역시 전장에 투입되었다.

 

단단하게 보강된 상자나 건물은 부서졌고, 그들은 상처를 입었다.

 

웨슬리의 구급함은 이미 다 써버린 상태인데다 카인도 웨슬리도 무시 못 할 상처를 입었다.

 

보급품은 얼마 후에 오지?

 

카인은 잔해의 그늘에 숨어서 센트리 레이더를 설치했다.

 

붉은 빛이 깜박거리면서 시야를 흐릿하게 밝혔고, 카인은 웨슬리를 돌아보았다.

 

대전차지뢰는?”

 

묻어두었네.”

 

우선적으로 총기며 사용하는 장비를 점검하고, 탄창을 채우고, 아군에게 연락을 하거나 물을 마셔두는 등, 한동안 아무 말도 없었다.

 

수통에 남은 미지근한 물을 몇 모금 마시고, 무언가를 생각하던 카인은 웨슬리에게 말을 꺼냈다.

 

슬로언, 내 생각에는 이제라도 늦지 않았는데.”

 

그러나 슬로언은 묵묵히 건량을 씹을 뿐이었다.

 

레이더의 붉은 빛에 그림자가 졌다.

 

카인은 반사적으로 일어나 그 광택나는 쇳덩이에 우지를 갈겨 대었다.

 

이내 탄창은 비었지만 그 기계는 여전히 움직였고, 눈 역할을 하는 렌즈를 그들 쪽으로 돌렸다.

 

내가 가정을 좀 해 봤는데.”

 

카인은 코트 안주머니에서 류탄을 꺼내 던졌다.

 

왜 그 기계는 너희라고 했을까?”

 

다음은 잡아서 내리누르고 머리로 추정되는 부분에 한 발.

 

“‘선택받았다라는 건 어떤 기준일까.”

 

카인이 드라그노프를 꺼내려는 순간, 웨슬리는 그 손에 자신의 품에서 꺼낸 낡은 총 한 자루를 쥐어주었다.

 

그리고 카인이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고 당기는 순간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이내 웨슬리의 몸은 무너졌고, 기계의 렌즈는 그 모습을 똑똑히 담았다.

 

미친-”

 

내가... 가정을 좀... 해 봤는데...”

 

슬로언, 웨슬리! 응급 키트는...! 눈 감지 말게, 나 보고 있어!”

 

“...비가 오는구먼...”

 

자네가 세계를 구할 만큼 대단한 자라면, 나는 그것을 선택할 수 있을만큼 대단한 자 아닌가.

 

기뻐하게, 이 세계는 지금 자네가 구했지 않나.

 

웨슬리의 눈이 천천히 감겼다.

 

그 손은 올라가, 카인의 눈가를, 뺨을 부드럽게 감쌌다.

 

따뜻한 비가 오는구먼...”

 

 

[Jail] 니키타/이화 - 형제라면

2015. 7. 16. 15:54 | Posted by 호랑이!!!

교도소에서 보내는 편지는 보내는데 생각보다 오래 걸린다.

 

니키타 네를린, 현재 복역 중인 죄수는 아주 오래 전에 알게 된 동생뻘 친구에게 하나, , 도합 여섯장의 편지를 적어 부쳤다.

 

그리고 그것이 장장 삼 개월 지나서.

 

이화는 편지를 받았다.

 

기억이 사라졌는데.

 

교도소에서 편지가 온다.

 

이 사람은 누굴까, 예전의 는 조직폭력단에라도 들어있었던 걸까.

 

니키타는 무슨 드라마 이름 같은 이름인데, 여자인가? 글씨체가 부드러운걸 봐서는 여자야.

 

이화는 편지 마지막 줄을 손가락으로 밑줄까지 그어가며 읽었다.

 

아주 재미있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 한 번 놀러와

 

놀러오라니, 교도소로?

 

뭘 가져가지? 뭘 입어야 하지? 기억 잃었다고 얘기를 해야 할까?

 

여러 가지 고민을 하다가, 마침내 이화는 한 손에 초콜릿이라던가, 여성들에게 인기 있다는 로맨스 소설까지 한 권 사서 들고 왔다.

 

저기... 오늘 면회 오겠다고 했던 이화인데요.”

 

그러자 무뚝뚝해 보이는 간수가 이쪽이라며 안내해주었다.

 

면회는 투명한 부스 안에서 이루어졌는데 감시를 위해서라며 그 간수는 안으로 들어와 구석의 의자에 앉았다.

 

편지를 교환했던 그 사람이 곧 온다니.

 

내용이랑 말투만 봐서는 키 크고 파마한 금발에 예쁜 누나일까.

 

두근거리는 가슴에 손을 얹고 심호흡을 하는데 문이 열렸다.

 

들어온 것은 까만색에 가까운 갈색 머리 남자.

 

오오, 키 크다.

 

곱슬 머리? 파마 머리인가? 이제 거의 다 풀렸네.

 

밤색 머리고, 여기서 간수 하기에는 엄청 부드러워 보이는 인상인데-

 

키는 크지만, 하고 덧붙이는데 뭔가 이상하다.

 

옷이, 옷이 주황색 죄수복이야.

 

이화!”

 

꽤 반가워 보이는 표정으로 자신의 이름을 부른다.

 

금발 파란눈 170cm의 누나의 환상이 쨍그랑 쨍그랑 깨진다.

 

니키타... 네를린씨?”

 

왜 그렇게 어색해. 하하, 오랜만이야.”

 

니키타는 팔을 활짝 벌려 와락 끌어안았다.

 

잘 지냈어? 어때, 뭐하고 지냈어? 감옥 밖 얘기 좀 해줘.”

 

다행히도, 서로 좋지 못한 사이는 아닌 것 같다.

 

앉지도 않고 선 채로 밖에서는 지내기가 이렇고, 저렇고, 얘기하다가 니키타가 예전 얘기를 할 것 같아, 이화는 먼저 입을 열었다.

 

제가 약을 잘못 먹어서 예전 기억이 없어요.”

 

니키타의 얼굴이 웃는 그대로 굳었다. 일순이지만.

 

그리고 의자를 뒤로 당기더니 털석 주저앉았다.

 

“...교도소에서 오라는 편지가 왔다고 냉큼 오면 어떡해.”

 

내가 마약왕이고 연쇄살인범이고... 연쇄살인범은 맞지만, 아무튼 그래서 너한테 몹쓸 짓을 시키거나 하려고 하면 어쩌려고 이렇게 온 거야? 어디 중국이라던가 러시아에서 편지가 와도 무시하기 어렵지 않은데, 다른 곳도 아니고 교도소라고 교도소! 내가 뭐하는 사람일 줄 알고? 그냥 그대로 눈 딱 감고 편지를 태워버리고 그런 일 없다는 듯이 모른체하면 되었을 거 아냐? 예전부터 스스로를 좀 아끼라고 했더니 이거 하나도 안 변했어 아주.

 

니키타가 다다다 잔소리를 하자 이화는 양 손을 들어 귀를 막았다.

 

하하.

 

니키타는 어이없다는 듯 웃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억 돌아오면 찾아와, 아마 그때까지도 있을 것 같으니까.”

 

재미있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면서요?”

 

이화를 한 번 보고, 니키타는 여느 때처럼의 웃는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교도소도 국가 시스템이라고, 내가 모르는 내 이야기도 있더라고.”

 

너랑 나, 라고 하는 듯이 손가락으로 이화 쪽을 가리켰다가 자신 쪽을 가리킨다.

 

형제.”

 

, 눈 동그랗게 변했다.

 

니키타는 조심조심 손으로 이화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저씨... 아니, ...?”

 

아저씨.”

 

아저씨, 덧붙이고 니키타는 다시 이화의 머리를 헝클어뜨려 놓았다.

 

 

[티엔하랑마틴] 어느 날의 꿈?

2015. 7. 15. 02:44 | Posted by 호랑이!!!

이것은 아주 어릴 적, 이하랑이 산신을 만나기 전에 있었던 이야기다.

 

어린 하랑은 그날도 아이들과 진탕 싸우고 돌아왔고 고단하여 일찍 잠이 들었더란다.

 

꿈속에서 온갖 개를 보는데 그 개들은 눈빛이 형형하고 살갗이 벗겨지거나 다리가 없거나 한 일도 왕왕 있어 안타까운 마음이 들긴 했었다.

 

개들은 그를 보니 반갑다며 꼬리를 치고 혹여 놀랄까 달려들지도 않고 의젓하게 옆에 서 만져달라며 가만 기다렸다.

 

영특하고 안타까우니 쓰다듬을 만도 하건만 하랑은 선뜻 그러질 못했다.

 

그 개들에게서는 이세상의 것이 아닌 기운이 풍겨 본능적인 거부감에 다가갈 수 없게 했으니.

 

앞에 서서 마침내 그 거부감을 누르고 머리며 귀를 만져주니 개들은 좋다고 다시 꼬리를 친다.

 

하지만 그뿐이라, 개들은 하랑이 몸이라도 더 쓰다듬거나 안아주기 위해 가까이 가려 할 때마다 몸을 뒤로 물려버리고.

 

그에 하랑이 가까이 가려 했더니 뒤에서 누군가 걸어오는 것이 느껴졌더란다.

 

고개를 돌렸더니 글쎄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상냥한 목소리의 사람이 여기까지 오는 게 아니라고 달랬고.

 

여기는 죽은 이들이 오는 곳이지요?”

 

그렇단다.”

 

왜 난 여기가 무서운 것이오?”

 

그러니 그 이가 말했다.

 

친구가 없어서 그렇지.”

 

어린 하랑은 양 팔을 벌렸다.

 

무서우니 안아주시오.”

 

그 이는 하랑이 안겨오자 당황한 듯 했지만 이내 등을 토닥이었다.

 

갈 때는 조심하거라, 누군가 맛난 것을 주어도 먹으면 아플 테니 입에 대지 말고, 누군가 이리 오라 손짓해도 믿지 말고.”

 

길을 따라 쭉 걸어가면 될 것이라.

 

그가 등을 떠미니 아까까지 없던 곳에 문이 생겼다.

 

“...나랑...”

 

나랑 친구가 되어주지 않겠소? 하고 묻고 싶었는데.

 

그 사람은 답 없이 문을 열어 그를 쫓아냈다.

 

길은 고르고 알록달록한 돌로 꾸민 예쁜 곳이었다.

 

길이 꼭 사탕과자 같고나 생각하는데 누군가 제 손에 아가 이거 먹어보렴 하고 하얀 것을 준다.

 

나중에서 안 거지만 그것은 과자에 얹은 아이스크림으로 보기에도 퍽 맛나 보여 한 입 물었더니 대번에 숨이 막히고 가슴이 아팠다.

 

문득 먹지 말랬지!’하는 소리가 들리고 손을 찰싹 맞아 아이스크림을 떨어뜨렸다.

 

그제야 아까 일이 생각나서 화닥닥 길을 뛰었다.

 

뛰고, 뛰고, 뛰었고 한숨을 슥 돌리려는데 눈이 확 뜨였다.

 

꿈은 거기서 끝.

 

하랑은 개꿈이려니 생각하고 일어나 머리를 털었다.

 

단 하나 아쉬운 건 친구가 되어달라고 말할 것을, .

 

그리고 그 아쉬움도 령을 부리기 시작하며 사라졌다.

 

 

 

 

 

 

하랑, 얌전히 굴어야 한다.”

 

사부도 참, 한두살 먹은 애도 아니고 걱정도 많소.”

 

처음 재단에 오는 날, 이색적인 능력이라 보고 싶어하는 이가 많다고 티엔은 그를 사람들 앞에 세웠었다.

 

이거 꼭 서당에 처음 간 날 같구만.

 

단상에서 주위를 둘러보는데 문득 하랑의 눈을 잡아끄는 사람이 있었다.

 

가로세로 하얗게 줄무늬가 들어간 모자를 푹 눌러쓰고, 그 아래는 금색 머리카락.

 

오라 저게 금발이라는 거구만?

 

하는데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하랑은 지독한 기시감에 몸을 멈췄다.

 

? 예지몽 따위에서 본 사람인가?

 

아니, 최근에 꾼 예지몽에서는 저런 사람이 나오질 않았었는데.

 

소개가 끝나고 질문을 받는 도중에도 눈은 그 사람에게서 떨어지질 않았다.

 

마침내 서커스단 원숭이마냥 앞에 두는 일은 끝났고 티엔은 계속 집중하지 않는 하랑이 어딜 보는가 하여 그쪽을 보았다가 어깨를 잡아 시선을 돌리게 했다.

 

이하랑, 그 사람은 가까이하지 않는 게 좋다.”

 

실례네요 티엔 정, 이제 한 식구잖아요?”

 

아까까지 저 멀리 있던 이는 고개를 돌리니 바로 앞에 있었다.

 

부드러운 표정과 선량한 인상에 목소리는 유난히 상냥하다.

 

저 목소리, 저 목소리를 분명 들은 적 있었는데!

 

목소리를 들으니 마치 벼락이라도 맞은 마냥 몸이 부르르 떨리고 온몸의 털이 바짝 섰다.

 

마틴 챌피예요, 이름이 마틴이고 패밀리 네임이 챌피, 이해했나요?”

 

대답도 못 하고 얼떨떨히 고개를 끄덕이는데 티엔이 그들 사이를 막아섰다.

 

무슨 수작이냐.”

 

수작이라니 너무하시네요, 그저 인사를 하려는 것뿐이랍니다.”

 

그 잔재주로 내 제자를 꼬드기기라도 했다간 끝이 좋지 못할 거다.”

 

그럴 생각은 없으니 비켜 주시죠, 오랜만에 인사를 하고 싶으니까.”

 

마틴은 티엔을 비켜나게 한 뒤 하랑을 꼭 껴안았다.

 

색목인들은 이게 인사야?”

 

그렇답니다, 반가워요 하랑 이.”

 

옆에서 지켜보던 티엔은 마틴의 입에서 이어 흘러나온 답잖은 말에 놀랐다.

 

저와 친구가 되지 않겠어요?”

 

 

 

 

 

 

 

 

 

친구가 되겠다니 정말 어울리지 않는 말이로군.”

 

실례라니까요.”

 

하랑의 조선 신분은 박수라 높지도 않고, 능력이야 앞으로 자라겠지만 당장은 쓸 곳이 없는데 뭣 때문이냐?”

 

부드러운 빛의 스탠드 조명에 의지해 책을 읽던 마틴 챌피는 책을 탁 덮어버렸다.

 

그런 것 때문에 사람을 사귀지는 않는답니다. 웬일로 제 방에 온다 싶더니 시비를 걸러 온 건가요?”

 

경고다.”

 

하랑은 내 제자다.

 

그렇게 말하고 사라지는 뒤에 대고 마틴이 웃었다.

 

하랑은 제 것이 될 거예요.”

 

 



[피톰] To. 팬쥐님

2015. 7. 5. 19:54 | Posted by 호랑이!!!

그 날이 왔다.


올 것이 왔다!


연합의 사람들은 은근히 시선을 피하며 뒷걸음질 치고, 한군데 모여 수군거리며 뭔가 의논을 하더니 마침내는 인내심이 다한 피터 때문에 멈추어야 했다.


"아기는 어떻게 생겨?"



 


우선은 이글이 입을 열었다.


그는 한손으로는 동그라미를 만들고 다른 쪽 손의 손가락은 하나만 바짝 세워서는 외설적인 손짓을 하려 했다.


"아이는..."


"드라이아이스!"


토마스와 루이스가 동시에 외치며 손을 뻗었다.


이글은 그 자세 그대로 굳었다가 이내 얼음을 후둑후둑 떨어뜨리며 다시 피터를 쳐다보았다.


"아기는 섹스하면... 아 잠깐 영구동토는 안돼! 토마스, 너도 크리스탈 허리케인은...!"


루이스가 이글을 질질 끌고 나가는 동안 레베카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기는 말이지! 황새가 물어다준다?"


"...그런건 안 믿어."


이거 안 먹히네- 레베카는 단호한 피터의 말에 하하 웃었다.


"남자에게는 정자가 분비되고 여자는..."


"언니이이! 언니이이!"


나이오비가 뭔가 제대로 된 설명을 하려는데 엘리가 뭔가 엉망인 모습으로 연합에 들어섰고 나이오비는 설명을 중단했다.


그 사이 이글을 버리고 루이스가 들어왔고 트리비아는 잠시 외출한 사이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들었다.


그러고는...


"직접 보여줄까?"


", 잠깐 트리비아!"


"어머, 농담이야."


여긴 글렀어.


토마스가 중얼거렸다.


"선배, 선배가 설명해봐요"


"섹스가 뭐야?"


어느샌가 변경된 질문에 남자몸이 어떻고 여자몸이 어떻고 하는 설명을 하려던 루이스는 일순 굳었다.


"..."


?


"하하하하하하하하- 트리비아, 오늘 저녁에 외식할까?"


"잠깐, 도망가지 말아요!"


이미 늦었다. 나갔어.


토마스는 주위에서 설명해줄 만한 사람이 자신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러니까 섹스는 말이지, 어른들이 사랑을 확인할때 동반되곤 하는 육체적 수단인데... 할 때는 상대에 대한 사랑과 배려가 아주 중요하고..."


이어지는 설명에 피터는 이해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상대에 대한 사랑과 배려... 라고 했던가..?"


"흐윽, ... , 터야..."


"목소리 줄이지 마, . 괜찮아."

 



[Ss어필] 엘커, 사망

2015. 6. 29. 01:17 | Posted by 호랑이!!!

안녕하세요!”

 

발레리안은 꽃집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여기 꽃다발을 어머니께서 참 좋아하시더라.

 

오늘은 뭐가 좋을까- 백합? 장미?

 

섞어달라고 해야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면서 안면을 익혀둔 꽃집 주인을 찾는데 꽃집 주인이 안 보인다.

 

오늘은 과자도 구워 왔는데.

 

엘커~ 엘커~? 어디 있어요?”

 

꽃을 다듬는 테이블 너머, 새 의자가 놓인 것이 보였다.

 

등받이가 넓적하고 커다란 거.

 

버드나무로 짠 건가? 예쁘다!

 

거기 다가갔더니 익숙한 사람이 누워 있는 게 보였다.

 

“...엘커, 자요...?”

 

작게 속삭였는데 조금도 반응하지 않는다.

 

“...엘커어-”

 

조금 목소리를 높여서.

 

그러나 일어나지는 않는다.

 

“...자나보네...”

 

꼬리를 늘어뜨리고 느릿하게 흔들었다.

 

더운 여름날에, 문을 열어둔 덕인지 살랑살랑 시원한 바람이 불고.

 

무당벌레 한 마리가 위이잉 날아 들어오더니 엘커의 콧잔등에 앉았다.

 

, 벌레...”

 

발레리안은 손가락으로 조심스럽게 벌레를 털어내다가 예상보다 세게 엘커의 코를 쳐 버렸다.

 

, , 죄송해요 엘커...!”

 

그러나 엘커는 미동도 않는다.

 

발레리안은 그것을 내려다보다, 안색이 창백해졌다.

 

엘커! 엘커!!! 엘커어어어어어어!!!!!!!!”

 

꿈쩍도 안 한다.

 

안돼, 엘커! 왜죠! 왜예요!!!”

 

갱 일 때려쳐서? 그래서 암살이라도 당한 거예요!?!?!???

 

발레리안은 열심히 엘커를 흔들었다.

 

 

 

 

 

 

엘커는 눈을 떴다.

 

감기약 때문인지 정말 너무 푹 잤다.

 

어두운데, 밤인가?

 

... 가게 문 열어놓고 자 버렸는데... 도둑 들지는 않았겠지.

 

눈을 뜨고, 몸을 일으켰다.

 

코 끝에 백묵 냄새가 스쳤다.

 

... 뻐근하다...”

 

우당탕.

 

뭔가 넘어지고 어질러지는 소리가 났다.

 

뭐지?! 도둑인가?!

 

주위를 둘러봤더니, 제 실루엣을 따라 분필이 그어져 있고, 주위에는 노란색 접근금지 테이프가 둘러쳐져 있었다.

 

“...발레리안...?”

 

, 엘커?!”

 

눈가가 빨갛게 되어서, 운 것이 분명해 보이는 발레리안이 다른 가게 리본이 달린 국화 화분을 들고 있었다.

 

그건 뭐예요?”

 

, 선물...?”

 

“...여기 꽃집이예요, 발레리안.”

 

 

[럽토] 지아코베, 사망

2015. 6. 28. 23:31 | Posted by 호랑이!!!

회사.

 

아델리 펭귄, 딘 델리는 커피를 타다가 저 멀리 비품실에서 누군가의 발이 비쭉 튀어나온 것을 발견했다.

 

사람 발? 아니면 마네킹? 아니면 또 무언가의 소품?

 

타다 만 커피를 내려놓고는 그 쪽으로 쪼르르 가 보았다.

 

이 구두,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해서 문을 열고 들어가 봤더니 상자 위에 지아코베가 널부러져 있었다.

 

농땡이 동지~ 여기서 자면 안돼요~”

 

여기 있다가 사장님한테 걸리면 감봉 당한다구요~ 아니면 야한 벌을 받거나~

 

몸을 잡고 슬슬 흔드는데도 일어나지 않는다.

 

숨은 쉬나? 하면서 손가락으로 코를 한참이나 집어 보았지만 아무 반응이 없다.

 

죽었나?!”

 

딘은 놀라 지아코베를 마구 흔들어댔다.

 

안돼요, 안돼요! 죽으면 안 돼요!!! 다른 것도 아니고 복상사라니, 이것도 산재 처리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구요!!!”

 

한참 흔들었지만 미동도 없다.

 

이거 어쩌지? 119를 불러야 하나?!

 

“119가 몇번이더라!!!”

 

딘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1...1....

 

그리고 덥썩, 지아코베의 손이 딘의 팔을 잡았다.

 

꺄아아아!!!!”



[에러에게] 한가란과 트리거

2015. 6. 9. 02:48 | Posted by 호랑이!!!

한가란.”

 

보스?”

 

꽃이야? 예쁘네~”

 

그 말에 한가란은 몸에서 자란 꽃 몇 송이를 꺾어다가 내밀었다.

 

그것을 받아들고, 트리거는 짐짓 관심이 있는 양 향기를 맡아 보았다.

 

그래서, 네가 죽이고 싶다고 했던 사람은 누구야? 도와줄까?”

 

뭐가 필요해? ? 도구?

 

, 비밀(하트)입니다.”

 

한가란은 무표정으로 말 끝에 하트를 붙였다.

 

입술 앞에는 손가락까지 하나 대고.

 

뭐든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해, 도와줄게.”

 

그 말에 한가란은 무표정인 상태였지만 분위기만은 즐겁게 웃는모습으로 비쳤다.

 

그것도 트리거만 알아볼 수 있었겠지만.

 

정말?”

 

정말.”

 

재확인하듯 묻고, 마침내 한가란의 입꼬리는 트리거에게서 배운 것처럼 슬쩍 올라갔다.

 

저 웃었습니다.”

 

잘했어.”

 

칭찬, 머리를 쓰다듬고.

 

한가란은 자신의 몸에서 자라난 꽃송이를 슬쩍 쓰다듬었다.

 

==

보스, 저건 뭐예요?”

 

“‘저거라고 하면 안되지, 사람인데.”

 

근데 저거’, 말도 잘 안하고, 보스만 노려보고 있는데?”

 

연구소가 폭파되고 얼마 되지 않아, 딕토에는 멤버 하나가 더 늘었다.

 

그들의 보스가 손수 주워온 가운데가 검은 흰 머리에 자주색 눈의 남자.

 

고양이마냥 소파나 어딘가 푹신하고 따뜻하고 양지바른 곳에서 쪼그리거나 웅크린 자세로 이 쪽을 바라보는데.

 

진짜 고양이라면 귀엽기라도 하지, 다 큰 남자가 이쪽을 관찰하는 게 달가울 리 없다.

 

보스, 저 팬더 엄청 거슬린다고요!”

 

팬더 아냐, 인간이야.”

 

이거든 저거든! 하얗고 까만데!”

 

하얗고 까맣고 동양인이라고 팬더라고 하면 그거 인종차별 아냐?

 

트리거가 소심하게 태클을 걸었지만 상대는 아무렴 어때!하고 말았다.

 

그래도 보스인데, .

 

그럼 말이라도 하게 하면 되지!”

 

트리거는 한가란에게 척척 다가갔다.

 

해 드는 구석에 쌓아둔 쿠션에 몸을 기대고 이쪽을 바라보던 한가란은 시선을 올려서 반쯤 누운 그 자세 그대로 눈을 마주보았다.

 

안녕!”

 

“...”

 

“...안녕~”

 

“...”

 

트리거는 잠시 허리를 숙였던 것을 펴고, 양 허리에 손을 얹으며 설교라도 하듯 입을 열었다.

 

사람이 안녕, 하면 너도 안녕, 해야지!”

 

마지막에 소리가 조금 커졌더니, 한가란은 몸을 조금 뒤로 빼었다.

 

그에 트리거가 몸을 숙여서 조금 더 다가갔더니, 한가란은 조금 더 뒤로 몸을 뺀다.

 

한가란!”

 

그러자 몸을 기대던 베개까지 밀어내고 뒤로 파사사삭 물러난다.

 

, 구석이다.

 

트리거가 다가가서 다시 몸을 숙이자, 한가란은 뒤로 물러나려다 뒤가 막혔다는 것을 깨닫고.

 

너도 안녕~ 해주면 좋잖아? , 따라해봐. 안녕~”

 

한가란은 고개를 들고, 뒤로 빼었던 손을 앞으로 내었다.

 

악수라도 하려나, 트리거가 손을 내미는 순간 한가란은 주먹을 휘둘렀다.

 

, 보스! 맞을 뻔 했잖아요! 그 팬더, 역시 내다버리라니까!”

 

아 쫌! 냅둬!”

 

그 부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방을 나가버렸고, 트리거는 주머니를 뒤져 작은 막대사탕을 꺼냈다.

 

소리질러서 놀랐지? 애도 아니고, 이걸 보상으로 주는 건 좀 그렇지만.”

 

싫으려나, 하고 다시 주머니에 넣으려는 순간 손이 트리거의 손목을 잡았다.

 

“...안녕.”

 

?

 

트리거가 놀랄 짬도 없이, 한가란의 손은 그의 손에서 사탕을 가져갔다.

 

 

 

 

 

안녕~”

 

안녕하십니까.”

 

, 뭐야.”

 

트리거와 한가란이 자연스럽게 인사를 주고받자, 일전의 부하는 고개를 갸웃했다.

 

말 할 줄 알았네요? 저 팬더.”

 

안녕.”

 

, 쟤 방금 나한테는 반말했어!

 

그렇게 입을 열려고 하는데, 한가란은 불쑥 그의 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팬더 아니고, 사람. 입니다.”

 

워 워.

 

부하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가, 그들을 한 번 훑어보더니 자리를 떴다.

 

빨리도 길들였네, 보스.

 

 

피터와 엘리는 커다란 고무 대야에 타고 있었다.

 

다용도로 쓰이는 터라 끝이 나달하게 닳은 대야 아래로는 하얀 구름이 넘실거리고, 드문드문 구름 사이로 난 구멍 아래로는 바다같은 밤하늘이 보인다.

 

피터는 할로윈에 사용했던 암녹색의 커다란 해적 모자를 쓰고 허리춤에는 그럴싸한 나무칼을 찼다.

 

옆에서 엘리는 옷자락이 질질 끌리는, 나이오비의 것이 분명해 보이는 하얀 군복 코트를 망토처럼 두르고 소매를 목 앞으로 돌려 묶었다.

 

신문을 말아서 만든 망원경을 눈앞에 대던 엘리는 손가락을 들었다.

 

“12시 방향에 구름 고래가 나타났다-! 백 미터는 되겠어!”

 

불쑥, 앞쪽의 구름이 들썩이고 거대한 고래의 머리가 튀어나왔다.

 

이대로 가면 먹혀버려!”

 

피노키오에서 봤잖아!

 

피터는 허리춤에 찬 나무칼을 빼들었다.

 

그 칼은 끝부터 은빛으로 변하고 뾰족해지더니 마침내 멋들어진 칼이 되었다.

 

피터 해적! 대포를 장전하라!”

 

예 써, 엘리 장군!”

 

어느새 고무 대야는 커다란 돛도 없고 핸들도 없는 범선으로 바뀌어 있었다.

 

피터는 서 있던 난간 아래쪽에서 어디서 튀어나오는지 모를 커다란 청동색 대포를 조준했다.

 

사과폭탄 장저언-!”

 

매끈하게 윤기가 도는 빨간 사과를 청동색 대포에 우르르 떨어졌다.

 

장전-!”

 

엘리가 신이 나 피터의 말을 따라 외쳤다.

 

피터가 자갈 부싯돌을 꺼내 착착 긋자 불꽃이 튀었다.

 

-!”

 

, 라고 하려는 순간 이불이 걷혔다.

 

얘들아.”

 

펄럭.

 

하얀 시트가 걷히는 순간 대야 아래의 구름도, 앞의 고래도, 커다란 대포도 한순간에 펑 사라졌다.

 

토마스는 테이블을 덮는 이불을 들추고 짐짓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불이나 폭탄, 날카로운 물건처럼 위험한 건?”

 

만들고 놀지 않는다.”

 

피터와 엘리는 동시에 대답하고는 자루에 담겨서 대야 옆에 둔 사과를 돌아보았다.

 

토마스는 그 중 하나를 꺼내 옷자락에 문질러 닦고는 들추었던 이불자락을 내렸다.

 

재미있게 놀렴.”

 

아이들은 다시 놀이에 푹 빠졌는지 대답이 없었다.

 

고래를 무찌르는 대신 친구가 되자는 얘기를 듣고, 토마스는 사과를 한 입 베어물었다.

 

 

'사이퍼즈' 카테고리의 다른 글

[티엔하랑마틴] 어느 날의 꿈?  (0) 2015.07.15
[피톰] To. 팬쥐님  (0) 2015.07.05
[릭마] 연인의 심장 소리  (0) 2015.05.08
[To.XJ] 아무 날도 아닌 날  (0) 2015.04.12
[티엔하랑] 조각 케이크  (1) 2015.03.09

[킹스맨/해그시] Language!

2015. 6. 4. 00:36 | Posted by 호랑이!!!

최근의 갤러해드는 고민이 있다.

 

킹스맨의 기지는 언제나 청결하고 잘 정리되어 있으며 기품있고, 현대적이고, 온 몸에서 젠틀함이 풍겨나오는, 사람으로 따지자면 그야말로 젠틀맨인 건물.

 

그 안의 사람들도 아서니 갤러해드니 멀린이니... 아서왕과 그 기사들의 이름을 딴 기사들이며 젠틀맨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그런데 그러기엔, 뭔가 최근에는 위화감이 있다.

 

인마(oi) 랜슬롯, 내부 회선을 장난질에 이용하지 말랬잖아.”

 

멀린- 꼬장꼬장하게 굴지 말아요.”

 

에그시 너도! 이 자식-”

 

불건전한 단어들이 들리고 있다.

 

“...”

 

우와 깜짝이야!(Hell fuck) 언제 왔어요 해리?”

 

갤러해드라고 불러야지.”

 

에그시의 말을 정정해주며 해리는 한숨을 쉬었다.

 

불과 얼마 전... 그러니까 에그시가 킹스맨에 정식으로 합류하기 전까지만 해도 신입 랜슬롯은 장난은커녕 바짝 얼어서 주어진 업무를 해내기도 빠듯해했고 멀린도 임마- 따위의 말은 하지 않았다.

 

이래봬도 귀족 출신인데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인데.

 

“...에그시.”

 

- 갤러해드?”

 

“...해리라고 부르렴.”

 

아까는 갤러해드라고 부르라면서요.”

 

마음이 바뀌었단다.”

 

그거 무슨 의미인데요? 데이트?”

 

데이트라는 단어에 록산느가 이쪽을 돌아보는 것이 느껴진다.

 

딱히 숨긴 것은 아니지만 나이가 반쯤밖에 안되는 젊은 애랑 데이트 한다고 말하기엔 좀 부끄러운 것이... 아니, 이게 문제가 아니라.

 

네 말투를 교정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단다.”

 

제 말투요? 이상해요?”

 

랜슬롯, 방금 에그시가 한 말을 네 식대로 다시 말해줄 수 있겠니?”

 

그러자 갑자기 지명당한 록산느는 잠시의 머뭇거림 없이(당황했을지 모르는데도) 말했다.

 

제 언행에 어떠한 문제가 있습니까?”

 

거 보렴, 다르지.

 

해리는 에그시 쪽으로 다시 고개를 돌렸다.

 

뭐가 다른지 알겠니?”

 

언행 같은 어려운 단어를 버킹엄 궁전 문지기 같은 말투로 하는 거요?”

 

내 기억이 맞다면 그걸 격식이라고 하는 것 같구나.”

 

매너 메잌스 맨, 모르니?

 

해리는 록산느가 에그시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콱 찌르는 걸 보고 한숨이 나올 뻔한 것을 막는데 성공했다.

 

식사 예절도 가르쳤고 옷입는 법도 가르쳐놨는데 아직도 갈 길이 빠듯하다.

 

훈련생 시절도 아니고 요원이 되었는데도 이런 기본적인 것을 가르쳐야 하다니.

 

멀린, 부탁할 것이 있는데.”

 

앞으로 일주일 정도 대부분의 시간은 같이 있을 수 있도록 스케쥴을 조정해두었습니다.”

 

역시 멀린은 눈치가 빨라.

 

해리는 만족스럽다는 듯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고 멀린은 최근 익숙해진 스케쥴 조정을 마무리하고 프로그램을 닫았다.

 

 

 

 

 

앞으로 속어, 비속어, 은어를 사용할 때마다 다소간의 페널티를 줄 거다.”

 

“...데이트에서까지요?”

 

안 그러면 또 할테니까.”

 

그야 그렇지만.

 

에그시는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해리, 해리는 저에 대해 너무 많은 걸 알고 있다구요.

 

그러자 해리는 가볍게 맞받아쳤다.

 

너를 제외한 모두가 너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단다 에그시.

 

 

[최군/톰맥스]MAX

2015. 6. 1. 07:15 | Posted by 호랑이!!!

맥스는 칼을 들고, 거울을, 그 너머를 겨누었다.

 

 

불공평한 계집애, 나한테 모든 나쁜 것을 밀어넣고 자기 혼자 잠에 빠져 있어.

 

그 애가 힘든 건 힘든게 아닐 거야.

 

혹시 모르지? 나쁜 용이 지키는 성에 갇힌 공주님 놀이라도 혼자 하고 있을지?

 

 

칼 끝은 거울에 닿고 거슬리기 그지없는 마찰 소리를 낸다.

 

끼이익, 쨍그랑, 끼이익, 쨍그랑.

 

칼은 거울을 긋고 후려친다.

 

그 조각은 맥스의 얼굴에 튀어 잔금을 남겼지만, 맥스의 춤은 멈추지 않았다.

 

 

내가 춤을 출 때 내 손에 잡힌 것이 칼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손이었으면 좋겠어.

 

누군가를 해치고, 겁을 주고, 미워하기보다 한 마디 상냥한 말을 먼저 할 수 있기를 바라.

 

나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이라고 해서 그게 좋은 것인 걸 모를 리 없잖아.

 

 

거울의 유리는 박살나서 바닥에 파편이 흘러 넘쳤고 이제 그 유리를 받치고 있던 연한 색의 나무판조차 계속되는 칼질에 너덜너덜해지고 있었다.

 

맥스의 칼질은 거세어지고, 그 호흡도 거칠어졌다.

 

 

나에게 미움을 준 네가 미워.

 

너를 미워하게 만든 네가 미워.

 

 

나쁜 계집애!”

 

 

나무판 중앙에 칼이 깊숙이 꽂혔다.

 

맥스는 숨을 몰아쉬며 거울을 노려보다가, 주먹을 들었다.

 

맥스, 나그네 형이 오래.”

 

치려는 순간, 손이 누군가의 손에 잡혔다.

 

“...”

 

, 가자.”

 

톰은 맥스의 방에 깔린 유리조각이나 깨진 거울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오히려 보이지 않는다는 듯 그 파편을 밟고 지나왔다.

 

맥스는 숨을 마저 고르고 헝클어진 머리를 뒤로 휙 넘기며 방에서 빠져나왔다.

 

 

마야 이 못된 계집애.

 

네가 나에게 남겨준 아주 쬐-끄만 좋은 마음은 말야.

 

활활 불태워 버릴거야.

 

하나도 남김없이 이 애한테 줘버릴 거라고.

 

그러니 너는 네게 남은 아주 약간의 미움을 불태우고 있으렴!

 

하하!

 

 

[Ss어필] 엘커와 발레리안의 놀이동산 간 이야기

2015. 5. 26. 19:29 | Posted by 호랑이!!!

“엘커! 놀이동산이예요!”

 

쨍쨍한 태양, 후끈한 열기.

 

그리고, 넘치는 사람들.

 

그 사람들 사이에서 엘커는 챙이 넓은 밀짚모자를 쓰고 꽃집에서 입곤 했던 검은 티셔츠를 입고 서 있었다.

 

발레리안은 넓은 지도를 펼쳐들고는 꼬리를 마구 휘두르며 볼펜으로 놀이기구 그림에 체크를 해 댔다.

 

“일단 시작은 바이킹- 그리고 그 다음은 롤러코스터랑-”

 

엘커는 왠지 발레리안이 좋아할 것 같은 음료수와 솜사탕을 파는 가판대를 힐끗 보고는 뭔가를 중얼거리는 발레리안에게 다가갔다.

 

“그럼, 타러 갈까요?”

 

“넵!”

 

사람은 많았다.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사람은 많았다.

 

덕분에 장장 30분을 기다리고 바이킹에 오를 수 있었다.

 

올랐는데, 엘커는 맨 끝자리로 가려는 발레리안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엘커, 저기 두 자리가 비었...”

 

그러나 엘커가 발레리안을 잡아당기는 동안 그 자리에는 다른 사람들이 앉아 버렸다.

 

끝의 자리는 거의 다 찼는데 다만 가장 가운데에는 몇 자리가 비어 있어서 발레리안과 엘커는 결국 그 자리에 앉았다.

 

안전바가 내려오고 바이킹은 위 아래 위위 아래로 흔들려서 마칠 즈음에는 끝에 앉기를 기대했던 발레리안도 축 쳐진 꼬리를 다시 힘차게 흔들었다.

 

여기까진 좋았다.

 

높이높이 올라갈 때마다 손도 번쩍번쩍 들었고, 재미있었고.

 

그래, 여기까지는.

 

그러나 바이킹에서 내려오고서는.

 

“엘커! 저기 봐요, 헬륨 풍선! 풍선 망치랑 철퇴예요!”

 

“그거 지금 들고다니면 다 짐이예요 짐.”

 

이라던가.

 

“...발레리안, 저 사실 저렇게 흉악한 건 못 타요.”

 

“저거 그냥 평범한 공중그네인데요!”

 

“안돼 안돼, 그거 재미없고 흉악해요.”

 

라는 상황이 이어졌다.

 

결국 발레리안은 잔뜩 동그라미를 치고 계획했던 동선을 전면 취소했고, 겨우 롤러코스터 하나를 더 타고 나서는 둘 다 땡볕에 지쳐 놀이공원 내의 식당으로 갔다.

 

식당은 주로 아이들이 좋아할 것 같은 메뉴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도시락을 싸온다는 선택지는 생각하지 못했던 둘은 결국 피자를 선택했다.

 

작은 피자 하나와 탄산음료를 주문해서 앉아있자 열린 창문으로 살랑살랑 바람이 불어와 땀으로 젖은 머리카락을 식혀 주었고 옆의 의자에 가방을 내려놓자 별로 든 것도 없음에도 어깨가 시원해진다.

 

“후우...”

 

“저 이거 뭔지 알아요, 소박함에서 오는 행복이예요.”

 

맛있는 피자와 시원한 음료수와 그늘과... 아아, 다시 한숨이 나온다.

 

기가 죽어있던 발레리안은 다시 지도를 펼쳐들었다.

 

“엘커, 어떤 놀이기구는 탈 수 있어요?”

 

“그럼 이것부터...”

 

회전목마 세 번, 바이킹은 중간자리로 한번 더.

 

범퍼카는 탔지만 벽을 들이받고 더는 움직이지 못했고.

 

가판대에서 구입한 츄러스와, 슬러쉬 두 개와 음료수와 물과 솜사탕과- 여러 가지들.

 

끈적해진 손을 화장실에서 씻고 나오니 밖은 이제 뉘엿뉘엿 노을이 지고 있었다.

 

“엘커, 마지막으로 관람차 타러 갈래요?”

 

“좋아요!”

 

관람차에 올라서, 천천히 노을이 지는 밖의 경치가 예쁘니 어쩌니 얘기하고.

 

나중에 나가서 밥을 먹고 오락실에라도 가자는 얘기를 하다가, 발레리안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거 되게 데이트 코스 같네요, 이상한 기분이야.”

 

그러자 엘커는 어깨를 으쓱했다.

 

“보통은 남자 둘이서 놀이공원에 오려고 하지도 않을걸요.”

 

 

 

'커뮤' 카테고리의 다른 글

[Ss어필] 엘커, 사망  (0) 2015.06.29
[럽토] 지아코베, 사망  (0) 2015.06.28
[에러에게] 한가란과 트리거  (0) 2015.06.09
[Ss어필] 발레리안/레오의 휴가 이야기  (0) 2015.04.17
[to.복익님] 베르베르  (0) 2015.03.04

[킹스맨/찰리x에그시] 핸드폰

2015. 5. 13. 01:55 | Posted by 호랑이!!!

[야]

 

찰리는 아주 짧게 들리는 목소리에 한숨을 쉬었다.

 

“전화를 할 때는 ‘저는 누구의 무엇인 누구라고 합니다, 누구 있나요?’라고 해야지.”

 

[뻔히 넌 줄 알고 전화한건데 뭐]

 

게다가 너도 난 줄 알았을 거 아냐.

 

그 덧붙인 말에 전화를 건 사람은 자신의 눈앞에 없음에도 대답으로서 고개를 끄덕여 버렸다.

 

뭐 어때, 쟤도 내가 알았다는 걸 알 텐데.

 

[바빠?]

 

“바빠.”

 

[잘됐네]

 

잘되긴 뭐가 잘돼.

 

그렇게 투덜거렸더니 저쪽에서도 또 성의없는 목소리로 주절거린다.

 

[이리 와]

 

“바쁘다니까.”

 

[내가 새로 핸드폰을 샀는데 말이야, 양아버지네 똘마니가 자기 전화번호를 단축번호 1번으로 넣으라고 하지 뭐야]

 

“...”

 

이건 별로 자극이 되지 못하는가, 하고 작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해리한테 새로 핸드폰을 샀다고 했더니 나중에 직접 번호를 찍어주러 오겠대]

 

“왜 해리가 찾아가는데?”

 

그러자 잠시 수화기 너머에서 머뭇거리는 소리가 난다.

 

[스마트폰 써보는게 처음이라 어떻게 써야할지 잘 모르겠어]

 

가르쳐주러 오라고 하려 했는데, 바쁘다면 어쩔 수 없고.

 

“커피 사라.”

 

[단축번호 1번은 비워두겠지만 바쁘면 안와도 돼]

 

찰리는 손에 든 서류를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책상에 던져두었던 지갑과 달걀 모양의 열쇠고리가 달린 자동차 열쇠를 집어 주머니에 쑤셔박았다.

 

그리고 그 시각, 새 핸드폰을 손에 든 에그시는 웃으면서, 카페의 자리에 앉아 웨이트리스를 불렀다.

 

“커피 두 잔, 15분 후에 가져다주세요.”

 

 

'ETC' 카테고리의 다른 글

[킹스맨/해그시] Language!  (0) 2015.06.04
[최군/톰맥스]MAX  (0) 2015.06.01
[릭마/Bㅣ광] 최군과 사퍼 크로스오버  (0) 2014.12.20
[최군/햄그네] 내 이름을 불러줘  (0) 2014.12.13
[최군/B비광] 달밤  (0) 2014.11.24

[릭마] 연인의 심장 소리

2015. 5. 8. 19:31 | Posted by 호랑이!!!

째 깍 째 깍

 

마틴의 회중시계는 9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사람의 심장이 분당 몇 번을 뛰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시계랑 비슷하지 않을까?

 

아마 그럴 것이다.

 

적어도 릭에게는 그럴 것이다.

 

사람에게 어떠한 소리가 있다면 릭에게서 나는 소리는 갓 베어낸 풀향기를 실은 남풍이 부는 소리와 바로 이, 시곗바늘이 움직이는 소리일 테니.

 

그렇지 않고서야 그에게 안겼을 때 들리는 시곗소리에 그렇게 마음이 편해질 리 없으니까.

 

마틴은 릭에게 안길때면 귓가에서 들렸던 톱니바퀴가 맞물려 나는 시계의 합창을 기억했다.

 

빨리 업무가 끝났으면 좋겠다.

 

“지금 몇 시예요?”

 

“형씨 시계 있잖아?”

 

마틴은 그 물음에 웃음으로 답한다.

 

 

 

 

릭은 트와일라잇에 있을 때와는 달리 와이셔츠의 소매를 내렸다.

 

소매 너머로 찬 손목시계들이 울퉁불퉁하게 보였지만 얼핏 옷 주름으로 보이기도 했기에 누구도 릭에게 왜 그렇게 많은 시계를 차고 다니느냐 묻지 않는다.

 

릭은 그 중 소매 밖으로 나온 하나의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6시.

 

빨리 점심시간이 되어서 커피라도 같이 마시고 싶네.

 

이미 하얀 머그컵에는 포트로 끓여낸 향 좋은 커피가 가득 담겨 있었지만 릭은 마틴이 타주는 맛없는 커피를 생각했다.

 

“데이트라도 있어?”

 

“티 납니까?”

 

“계속 시계만 들여다보니까 그렇지, 그런다고 시간이 빨리 가지는 않아~”

 

릭의 회사 동료인 그는 몸을 기울여서 데이트 시간이 시계에 표시되기라도 한 것 마냥 릭의 손목시계를 내려다보았다.

 

“...어라? 시계가 고장났나? 시간이 안 맞잖아, 시계 고치는 곳에 가 봐.”

 

“고장났을 리가 없는데.”

 

“봐, 지금은 6시가 아니라 10시라고.”

 

릭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가 떠나고, 릭은 마틴이 있는 런던의 시간으로 맞춰진 시계를 손목에서 풀어내었다.

 

시계를 귓가에 가져다대면 째깍째깍 초침 돌아가는 소리가 난다.

 

귀에 댄 것은 아까까지 손목에 차고 있던 손목시계지만 릭이 떠올리는 것은 놋쇠 빛깔의 둥근 회중시계다.

 

마틴의 심장 가까이 매달린 그것은 어쩌면 마틴을 닮았을 것이다.

 

째깍 째깍.

 

마치 연인의 심장소리를 듣는 기분.

 

릭은 웃음을 참으려는 듯,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아 점심시간까지 못 참겠네, 커피 마시러 간다고 하고 몰래 찾아갈까.

 

이 시간에 찾아가면 놀라겠지?

 

릭은 눈을 감고 미소를 지었다.

 

연인의 푸른 눈이 놀라 동그랗게 커진 것이 눈 앞에 보이는 듯 했다.

 



[Ss어필] 발레리안/레오의 휴가 이야기

2015. 4. 17. 05:43 | Posted by 호랑이!!!

발레리안이 휴가를 받은 어느 날.

 

레오폴드는 자신이 손으로 집어 입으로 가져가는 것이 과자라는 사실을 깨닫고 멈칫했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람 하나 살기에 충분한 크기의 원룸식 아파트.

 

현관을 들어서면 왼편으로는 부엌이 있고 오른편에는 텔레비전과 소파, 테이블이 있고 소파 뒤로는 침대가 있다.

 

그리고 그는 소파에 앉아서 그 앞 테이블에 놓인 과자 그릇에 가득 담긴 갓 구워진 쿠키를 들고 있었다.

 

‘...벌써 몇 개나 먹었더라?’

 

그릇 옆에는 먹다 남은 치킨이 든 상자와 빈 피자박스, 빈 맥주캔이 여러개나 있었다.

 

크림이 덕지덕지 묻은 게임기는 바닥에 떨어져 있었고 오랫동안 방치한 텔레비전의 모니터는 까만 바탕에 초록색 글자로 <외부입력>이라는 글자가 깜박거렸다.

 

벌써 며칠이나 이런 생활을 한 거지?!

 

레오폴드는 과자를 입술로 물고 몇 번 우물거렸지만 머릿속이 혼돈의 도가니가 된 탓에 움직일 수 없었다.

 

운동도 하지 않고 이런거나 먹고, 야채도 과일도 피자에 토핑된 것 외에는 보지도 못하고.

 

아 세상에, 이런 폐인같은 생활이라니.

 

아무리 휴가의 진정한 재미가 불규칙한 생활이라지만 이건 건강에 안 좋잖아!

 

레오? 과자, 맛없어요?”

 

레오폴드 에반스는 옆에서 들리는 소리에 그 원흉을 짐짓 노려보았다.

 

이런 설탕 중독 같으니.

 

이렇게나 야채도 과일도 섭취하지 않는데 영양 불균형으로 죽기는커녕 살도 찌지 않는다.

 

아마 이것은 자신이 열심히 잔소리를 해서겠지.

 

....아니면 신의 편애거나.

 

레오, - 해봐요.”

 

멋모르고 입을 벌렸더니 물고있던 과자가 떨어졌다.

 

그걸 집어 다시 입으로 넣는데 발레리안 헌트는 아직 따끈한 과자를 여러개나 쥐더니 전부 레오, 그의 입으로 넣어 버리는 것이다.

 

아에이아-?!”

 

손을 더듬자 주스병이 만져진다.

 

컵에 따르지도 않고 벌컥벌컥 마시는데 옆에서는 재밌다는 듯 깔깔거리고 웃는다.

 

레오폴드는 억지로 입에 든 것을 씹어 삼키더니 옆을 보고 한 마디 했다.

 

오늘 식사는 샐러드만 줄 거예요.”

 

레오?!”

 

 



'커뮤' 카테고리의 다른 글

[Ss어필] 엘커, 사망  (0) 2015.06.29
[럽토] 지아코베, 사망  (0) 2015.06.28
[에러에게] 한가란과 트리거  (0) 2015.06.09
[Ss어필] 엘커와 발레리안의 놀이동산 간 이야기  (0) 2015.05.26
[to.복익님] 베르베르  (0) 2015.03.04

[To.XJ] 아무 날도 아닌 날

2015. 4. 12. 03:06 | Posted by 호랑이!!!




아무 날도 아닌 날이었다.

 

휴일도 생일도 기념일도 아닌 그런 날.

 

간만에 날씨는 좋고 따뜻해서 웨슬리는 외출할 때 으레 쓰곤 했던 중절모를 벗어 옆에 끼고 걸었다.

 

어제 침대 옆에 아무렇게나 던져둬서인지 겉옷의 소매가 조금 구겨져 있었다.

 

그걸 매만져 펴면서 웨슬리는 어젯밤의 생각을 했다.

 

따뜻하게 데워진 방안의 공기와 음란하게 흔들리는 연인의 몸.

 

어쩌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자신만인지도 모르겠다.

 

침대 옆에는 협탁이 하나 있는데, 그 위에는 액자에조차 들어있지 않은 사진이 있었다.

 

앨범이라면 집의 책장에 꽂혀 있는데.

 

벌써 몇 년 전에 샀지만 아직 절반도 채우지 못한 앨범은 위에 먼지가 쌓일 정도였는데도.

 

그런데 청소도 하지 않는 협탁 위의 사진은 먼지가 쌓이기는커녕 가장자리가 닳아 있었다.

 

젊은 날의 카인과 레나.

 

그리고 때마침 잡화점이 웨슬리의 눈에 띄었다.

 

...그래, 여태까지는 카인이 레나를 잊을 수 있게 노력했지.

 

그게 잘못이었을지도 모른다.

 

카인이 레나를 잊지 못하고 사랑한다고 해도 웨슬리는 그런 카인도 사랑할 수 있었다.

 

웨슬리는 잡화점으로 갔다.

 

 

 

 

 

간만에 날씨는 좋고 따뜻하니 창문을 열고 거리를 내려다볼 수 있는, 그런 날.

 

카인은 저녁부터 밤까지 웨슬리와 뒹굴었던 침대에 앉아 있었다.

 

으레 쓰던 도구가 든 협탁 위에는 흑백의 사진이 한 장, 액자도 없이 놓여 있었다.

 

카인은 그것을 쥐고 침대로 누웠다.

 

, 레나.

 

그대의 사진을 보며 웨슬리의 침대 위에 있어도, 이제 미안한 마음은 들지 않아.

 

어쩌면 지금껏 슬로언이 노력했던 것이 결실을 맺는지도 모르지.

 

슬로언은 벌써 몇 년이나 노력했으니까, 남자의 마음은 갈대라 이 말이야.

 

카인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책장 아래를 뒤져 벌써 옅게 먼지가 쌓인 앨범을 꺼내 먼지를 털어내고는 앨범을 활짝 펼쳤다.

 

앨범에는 웨슬리와 자신과, 가끔은 다른 사람들이 함께 찍은 사진이 가득했다.

 

새삼 한 장씩 페이지를 넘겨가며 사진과 거기 붙은 두줄짜리 메모를 보며 추억에 젖던 카인은 그 중에서 한 장을 꺼내들었다.

 

웨슬리와 함께 살기 시작한 날 집 앞에서 찍은 것.

 

그리고 그 자리에는 레나의 사진을 내려놓고 다시 얇은 비닐을 덮었다.

 

다시 앨범을 꽂아놓는데 열쇠 돌아가는 소리가 나고 웨슬리가 들어왔다.

 

다녀왔네.”

 

웨슬리는 들어오자마자 카인의 손에 납작하게 포장된 상자를 내밀었다.

 

어서오게.”

 

자신의 마음에 웨슬리가 들어왔다.

 

자신의 예상보다 크게.

 

그 사실을 인정해서인지 카인의 마음은 꽤나 들떠있었다.

 

그래서 자신이 꺼내든 사진을 웨슬리 앞에 내밀었다.

 

슬로언, 앞으로 침대 옆의 테이블에 놓을 사진은 이걸세.”

 

그러자 웨슬리는 조금 당황한 듯 보였다.

 

카인은 테이블에 사진을 올려두고는 웨슬리가 준 선물의 포장지를 풀어보았다.

 

웬 건가? 오늘은 내 생일이 아니네만.”

 

“...그냥 자네 생각이 나서 사 봤네.”

 

레나의 머리카락을 연상시키는 테의 액자.

 

카인은 그것을 들고 잠시 내려다보았다.

 

아무래도... 내가 좋지 않은 때 사온 모양이지?”

 

“...전혀, 그렇지 않네.”

 

카인은 그 뚜껑을 열어서는 그 안에 자신이 빼 두었던 사진을 집어넣었다.

 

사진이 조금 더 컸지만 끝을 조금 접으니 무리 없이 들어간다.

 

팔을 쭉 뻗어 보고는,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기다리겠지만 그대 이상으로 그를 사랑하고 있을 거야.

 

나의 밤은 뜨겁지 않지만 따뜻하고 온화해.

 

그대와 하던 식사만큼 재미있지는 않지만 나는 즐거워.

 

그대와 있던 날은 아름다웠고 지금의 나는 행복해.

 

카인은 지그시 눈을 감고는 작게 웃음지었다.

 

“Auch er tief in mir einfiel.”

 

그는 내 마음 속에 너무나도 깊이 들어와 버렸네.




[티엔하랑] 조각 케이크

2015. 3. 9. 00:13 | Posted by 호랑이!!!

시작은 늘 그렇듯, 자그마한 것이다.

 

하랑이 건네는 것을 받다가 손가락이 스쳤다.

 

어쩌면 다른 것이 시작일 수도 있겠지.

 

시선이 스쳤다던가, 말을 하는데 목소리가 섞였다던가.

 

하지만 티엔이 유달리 반응한 시작은 손가락이었다.

 

손가락이 스쳤다.

 

그것뿐이었는데 하루 종일 그 손가락에 신경이 쓰였다.

 

아직도 하랑의 손가락이 닿아 있는 것 같고 쥐여 있는 것 같아 종이 하나도 그 손으로 들 수 없었다.

 

두 번째는 머리카락.

 

연합의 홀든이 하는 머리를 보더니 저도 해보겠노라고 머리를 풀었는데 그런 모양으로 묶어본 적이 없다고, 티엔 그더러 묶어달라 댕기를 내밀었다.

 

티엔은 내 머리도 묶지 않는데 네 머리를 묶을 수 있겠느냐며 타박하면서도 하랑이 내민 댕기 대신 주려고 마련해두었던 리본을 꺼내들었다.

 

하랑이 내민 참빗을 받아들고 앞에 앉혀 머리카락을 쥐었는데, 머리카락이 손 안에서 미끄러졌다.

 

사라락 하는 소리가 들렸고, 그 소리는 밖에서 내리는 빗소리마냥 하루 종일 귓가에서 맴돌았다.

 

겨우 손가락일 뿐이었는데.

 

겨우 머리카락 흘러내리는 소리였는데.

 

거울을 보고 익숙하지 않은 모양새에 쑥스러워하다 이내 풀어내리는 모습이.

 

손가락에 닿은 온기가.

 

머리카락이 손 안에서 미끄러지던 촉감이.

 

그것들이 하나하나 너무 달콤해서, 마치 시럽에 담가 재운 케이크 같았다.

 

손가락과 한 줌의 머리카락.

 

작은 케이크.

 

케이크에서 잘라낸 작은 조각.

 

입에 댈수록 더 당겨오는 향기로운.

 

티엔은 앞서 걸어가는 하랑을 보았다.

 

머리채 끝에는 하던 댕기 대신에 자신이 선물한 리본이 감겨 있었다.

 

양과의 조각이 맛 좋았으니, 다음은 커다란 것을 손에 넣을 것이다.

 

티엔은 생각을 갈무리하며 그 뒤를 조용히 걸었다.

 

 

[to.복익님] 베르베르

2015. 3. 4. 00:01 | Posted by 호랑이!!!

해가 질 시간이지긴 하지만 밖은 매우 밝았다.

 

그러나 방 안은 어두웠다.

 

커튼을 젖히면 밝은 햇살이 방 안을 가득 채울텐데도, 방의 주인은 고집스레 커튼을 닫아두었다.

 

어두운 색의 두꺼운 커튼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햇살은 방 안의 불보다 밝았다.

 

겨우 문 하나 차이인데, 만약 누군가가 복도에 서 있다 그 방으로 들어섰다면 오래간 묵은 공기에 숨이 막혔을지도 모른다.

 

베르나르, 라고 불리는 사람은 여느 때와 다름없는 어딘지 권태로운 표정으로 문을 열었다.

 

잘 맞는 정장에 바닥에 부딪혀 뚜벅뚜벅 소리를 내는 구두와 지팡이 대신 앞을 짚는 검은 우산.

 

그는 방 안으로 들어서서 문에 기대 잠시 눈을 감았다가 뜨고 장갑 낀 손을 내려다보았다.

 

, 이탈리아.”

 

히죽 웃으면서 뒤를 이탈리아어로 말한다.

 

밝고 아름다운 도시.”

 

그는 거리에서 보았던 작은 소녀를 떠올렸다.

 

하얀색 천을 덧댄 분홍색의 원피스를 입은 소녀는 볕 잘 드는 곳에 앉아 입에는 사탕을 물고 손에는 동화책을 들고 있었다.

 

위로 하나나 둘 정도 형제가 있었는지 책은 살짝 바래 있었고 몇 페이지는 끝이 접혔던 흔적이 보였다.

 

별로 예쁜 꼬마도 아니었고, 눈길을 끌 만한 무엇도 없었기에 베르나르는 이내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떠올렸다.

 

하지만 어느 페이지에 이르자 그 여자아이는 울었고, 어느 페이지에서는 웃었다.

 

여자아이가 그 짧은 책을 오래오래 읽을 동안 베르나르는 그 자리에 못박혀 그 아이만을 빤히 쳐다보았다.

 

제목도 외웠다.

 

Il Blue Bird.

 

독일어로는 ‘Der blaue Vogel’.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는 서점에 들렀었다.

 

아까 그 꼬마아이가 읽고 있던 것과 같은 책을 찾으려고 해 봤지만 똑같은 책은 없었다.

 

똑같이 바래고 똑같이 접힌 책이 갖고 싶었는데.

 

결국에는 같은 제목의 다른 책을 손에 들었다.

 

꽤나 세밀하고 멋진 삽화가 실린 책.

 

표지에 그려진 덩굴이 전부 몇 번이나 꼬였는지, 잎사귀가 몇 개나 달리고 꽃은 몇 송이나 피고 파랑새는 몇 마리나 날고 있는지 외울 정도로 보았지만, 표지조차 넘기지 못했다.

 

또 그런 것을 보고 있구나, 르미엘.’

 

환청처럼, 어릴 때 듣곤 했던 목소리가 기억 속에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목소리만 떠올렸을 뿐인데도 서늘한 눈동자가 떠올랐다.

 

이어 숨조차 조심스레 쉬어야 했던 분위기와 어머니가 즐겨 입던 드레스의 빛깔이 되살아나고 자신이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듯한 시선이 다가왔다.

 

베르나르는 결국 책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거기까지 회상했을 때 발치에서 작은 고양이 소리가 들려 현실로 깨어났다.

 

때마침 핸드폰이 울렸다.

 

어느샌가 딱딱하게 인상을 썼던 베르나르는 나쁜 꿈을 꾼 사람이 그러하듯 길게 숨을 내쉬고 눈을 깜박였다.

 

핸드폰을 보니 어느 동료가 한 전화였다.

 

, 심장이 뛴다.

 

그 박동을 새삼스럽다는 듯 느끼며 그는 전화를 받았다.

 

, 베르나르입니다~”

 

밝고, 어머니가 들었다면 경박하다고 할 만한 말투로 그는 전화를 받았다.

 

외울 정도로 보았던 동화책도, 소녀도, 서점에서 떠올렸던 그 생각들도.

 

모두, 곧 잊혀질 것이다.

 

어느샌가 그는 다시 권태롭기도 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어느 날 티엔은 제 몸이 묶인 것을 알아차렸다.

 

침상이 아닌 푹신한 침대에 몸이 묶이고 몸 위로 누가 올라타 있었다.

 

그 사람은 팔을 뻗어 바로 옆에 있는 창문을 활짝 열었고, 그제서야 하얗게 달빛이 쏟아들어왔다.

 

따뜻한 바람에 하얀 레이스 커튼이 나부끼고 티엔은 제 위에 누가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루시.

 

인생의 오점이라고 할 수 있는 그녀는 너머가 훤히 비치는 하얀 레이스로 된 원피스 같은 속옷을 입고 있었고 손에는 같은 색의 레이스로 만든 부채를 들고 웃고 있었다.

 

아 저 웃음.

 

아 저 야살스러운 웃음.

 

티엔은 미간을 찌푸렸다.

 

루시는 더 진하게 웃음을 피우며 펼쳐들고 가만히 부치던 부채를 접었다.

 

차르륵 하는 익숙한 소리가 들렸다.

 

루시는 그 위에서 몸을 앞으로 굽혔다.

 

몸을 앞으로 굽히자 가뜩이나 눈 둘 곳이 없어 곤란해하던 티엔은 고개를 돌렸지만 이내 원래대로 돌아왔다.

 

반대로 돌렸지만 다시, 루시를 보게 된다.

 

하얀 레이스 부채가 턱을 간질이고 있었다.

 

고개를 이리 돌리면 부채는 제 뺨을 눌러 고개를 다시 저쪽으로 향하게 하고, 저리 돌리면 다시 루시를 보게 하고.

 

루시가 제아무리 능력자라지만 결국은 한낱 연약한 계집아이.

 

그런 계집아이가 부채로 농락하는 것에 제가 놀아나는 것인가.

 

고개를 돌리지 못하게 턱 아래에 부채를 대는 것에 아예 눈을 감았더니 루시는 부채를 꽉 쥐었다가 제 뺨을 후려갈긴다.

 

, , , 부채가 제 얼굴을 때리는 소리가 연달아 들리고.

 

결국 눈을 떴더니 루시는 부채를 활짝 펼쳐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반투명하고 하얗게 반짝이는 부채 너머로는 빨간 입술이 어두운 방에 달빛만으로도 요염하게 빛나고 있었다.

 

티엔.”

 

꿈에도 잊은 적 없는 목소리는 제 이름을 부르고 루시는 제 뺨을 쓰다듬었다.

 

맞아서 트고 부은 뺨은 부드럽지 않은 손에 열을 식히고.

 

티엔은 눈을 느리게 깜박였다가 문득 무언가를 깨달았다.

 

..., 그렇구나.

 

이 곳은 루시의 방이다.

 

티엔은 묶인 손과 발을 조금씩 당겨 보았다.

 

가위일까?

 

루시는 여전히 그 위에 올라앉아 이 모든 것이 재미있다는 듯 여전히 웃고 있었다.

 

티엔은 눈을 감았다.

 

이번에는 루시도 제 뺨을 내리치지 않았다.

 

어쩌면 그 이름을 부르면 깰지도 모른다.

 

손가락을 한 번 까딱하면 깰지도 모르고.

 

이대로 침대를 박차고 일어나면, 다시 눈을 뜨면, 목소리를 내면, 깰지도 모른다.

 

하지만 티엔은 그 중 무엇도 하지 않았다.

 



[윌라드렉] 기분을 알아차리는 것

2015. 3. 1. 03:34 | Posted by 호랑이!!!

런던 거리, 잘 닦인 도로 가장자리로는 가스등이 죽 늘어서있고 녹지 않은 눈은 도로 사이사이로 눌려 얼어붙어 있다.

 

메마른 눈이 광장 가득 떨어지고 있지만 눈을 뭉쳐 노는 어린아이들이나 뛰어다니는 귀여운 강아지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 중절모를 쓰고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마차를 타거나 서로 지나칠 뿐.

 

얘깃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고 웃음소리 역시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윌라드와 드렉슬러도 마찬가지였다.

 

둘은 기차역에서 내려 마차에 올랐고 내리는 눈만큼이나 조용한 목소리로 윌라드가 목적지를 말한 이후로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드렉슬러는 코트의 깃을 세우고 마차에 앉았다.

 

뚜껑이 없는 마차라 어깨며 모자 위로 눈이 떨어졌다.

 

우중충하고 칙칙한 런던.

 

눈조차도 보기 좋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군.

 

심지어 어느 곳에선가는 조금 녹은 눈이 질척한 웅덩이를 만들어 거리의 미관을 더욱 해쳤다.

 

드렉슬러는 힐끗 옆을 보았다.

 

원래도 잡담을 좋아하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오늘은 유달리 말이 없다.

 

아까 기차 안에 나오던 히터 온도가 좀 높긴 했지, 겉옷을 벗었는데도 더워서 차장을 불러다 물어보니 고장났다고 했었고.

 

가다가 배가 고파져서 식당칸에서 식사를 주문했는데 시킨 샌드위치에선 벌레도 나왔고, 주문했던 음식이 전부 맛이 없어서 반도 안 먹고 나왔다.

 

결국 홍차와 커피를 마시고 고픈 배를 안고 자리로 돌아와 더운 바람이나 맞으며 왔는데... 원래가 금세 기분이 나빠지는 양반이니 뭐.

 

윌라드가 들었다면 남말하지 마십시오라고 할 만한 생각을 하며 드렉슬러는 묵묵히 앞만 보았다.

 

마차는 도착했습니다, 라는 말도 없이 목적지에 매끄럽게 멈춰 섰다.

 

삯을 지불하고 둘은 백화점 안으로 들어갔다.

 

드렉슬러는 품에서 물건의 이름을 적어둔 종이를 꺼내 점원에게 읽어주었다.

 

오늘 받기로 예약해둔 크루그먼입니다.”

 

하지만 크루그먼이라는 이름은 다음 주로 적혀 있는데요, 뭔가 실수가...”

 

드렉슬러는 뒤에서 윌라드 크루그먼 이사의 기분이 나빠지는 것을 느꼈다.

 

아아, 보지 않아도 느껴진다.

 

대신에 이 술은 어떨까요? 예약하신 물건 못지않게 좋은 건데-”

 

드렉슬러는 되었다고 말하려고 했지만 뒤에서 윌라드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거라도 주십시오.”

 

점원은 활짝 핀 얼굴로 이건 어떻고 저건 어떻고 하면서 설명을 늘어놓았으나 윌라드는 시큰둥한 얼굴로 고개나 몇 번 끄덕일 뿐이었다.

 

딴 생각 하고 있구만, 저거저거.

 

드렉슬러는 또 저걸 어떻게 기분을 풀어주나, 했다가 뭔가를 깨달았다.

 

내가 왜 기분을 풀어줘야 해?

 

생각해보니 이거 또 화가 나네.

 

윌라드 저건 내 기분 따위 하나도 관심이 없을 텐데 난 뭐하러 삐지면 달래주고 비위 맞춰주고 있는 거지? 내가 언제부터 남의 기분을 신경썼다고!

 

드렉슬러는 뒤에 가만히 서 있다가 윌라드가 내미는 술 상자를 받아들고 다시 밖으로 나가 마차에 올랐다.

 

마차를 타고 협력 관계에 있는 회사로 가 안으로 들어가자 안으로 들어오라는 안내를 받았다.

 

런던에 오는 것은 또 오랜만이군요, 오는 길에 생각이 나 술을 한 병 샀는데 마음에 드실지 모르겠습니다.”

 

드렉슬러는 술 상자를 넘겼다.

 

나무 상자가 열리고 두터우며 고급스러운 보라색 천이 벗겨지자 안에서 호박색 빛을 내는 술이 든 병이 나왔다.

 

유리잔에 얼음이 딸그랑 소리를 내며 떨어졌고 호박색 액체가 부어졌다.

 

건배.

 

드렉슬러는 한 모금 마시고 작게 미간을 찌푸렸다.

 

상대는 이 술이 마음에 든 모양이지만 제 입맛에 맞는 술은 아니었다.

 

딸그락.

 

평소보다 센 소리로 유리잔이 내려지길래 옆을 힐끗 보았더니 또 기분이 나쁘다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

 

어차피 자신밖에 못 알아보는 것 같긴 하지만.

 

드렉슬러는 얼음이 녹기를 기다렸다가 잔을 기울여 마저 비워냈다.

 

일을 끝내고 머물기로 한 호텔에 돌아와 잘 준비를 하는데 윌라드는 문득 적포도주 한 병을 꺼냈다.

 

한 잔 하시죠.”

 

됐어, 너나 마셔.”

 

“...안 마실 겁니까?”

 

드렉슬러는 잠깐 윌라드를 쳐다보았다가 빼앗듯이 잔을 낚아챘다.

 

일부러 취할 때까지 마시고 침대에 풀썩 드러누우니 그 위로 체중이 실리는 것이 느껴졌다.

 

다리오.”

 

술 때문에 기분 좋은 열이 났고 차가운 시트가 닿는 것도, 스치면서 간질거리는 것도 전부 기분이 좋았다.

 

지그시 눈을 감는데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났다.

 

어차피 자는 것은 아니라는 건 알고 있어서인지 말소리가 들렸다.

 

오늘, 계속 기분이 좋지 않아 보이더군요.”

 

“...내가?”

 

그러자 익숙한 손이 닿아 왔다.

 

어차피 저밖에 알아차리지 못하는 일이긴 합니다만.”

 

드렉슬러는 잠시 눈을 떴다가, 다시 감았다.

 

지나치게 기분이 좋았다.

 

 

 

어둠의 마법 방어술 교수인 카인 스타이거의 사무실은 3.

 

허나 스타이거 교수가 수업을 위해 고른 교실은 1층이다.

 

점심시간이면 늘 오전 수업동안 배고파했던 학생들은 교수가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를 말하는 순간 연회장으로 달려간다.

 

그러면 스타이거 교수는 학생들이 달려나간 직후의 고요한 복도를 걸어 계단 앞까지 가고, 그러면 아래층에서 마악 걸어 올라온 마법의 약 교수 웨슬리 슬로언과 마주칠 수 있다.

 

오늘도 수고했네, 슬로언.”

 

자네도, 스타이거.”

 

한쪽 팔에는 오늘 사용했던 책을 끼고 나란히 걷지만, 연회장으로 바로 가지 않고 넓은 1층을 한 바퀴 돌다시피 한다.

 

오늘도 복도에는 사람이 없구먼, 다들 배가 고팠나 보지.”

 

“...그러니까 젊은 애들한테 아침마다 죽 따윌 먹이니까 저렇게 굶주려 있는 거야."

 

내가 젊을 땐-하고 운을 떼는 것을, 슬로언 교수가 막았다.

 

덕분에 우리는 좋지 않나.”

 

그도 그렇군.”

 

식전 산책은 홀과 연결되는 계단부터 시작해서 안뜰이 보이는 복도를 걸어 한 바퀴 도는 것을 말한다.

 

원래라면 유령들이 돌아다니곤 하지만 스타이거 교수와 얘기한 덕분에 이 시간만은 1층에 오지 않는다.

 

한 번 정도는 괜찮지 않나.”

 

질리지도 않는군.”

 

언젠가 그들이 학생이었던 때처럼 웃음섞인 목소리로 키득거리면서 결과를 아는 시답잖은 수작을 걸었다.

 

저쪽에서 다 보이네.”

 

어차피 아무도 없지 않나.”

 

그래도, 그럼 춥기도 하니 이쪽으로 돌아서서-”

 

날씨는 평소처럼 흐리다.

 

그런 평소의 나른하고, 조금은 야릇한 분위기를 내려는 찰나.

 

안뜰 쪽에서 외침 소리가 들렸다.

 

피터!!!”

 

마악 빈 교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려던 스타이거는 손을 멈춰버렸다.

 

“...래번클로의... 토마스 스티븐슨이군.”

 

“...성실한 학생이지.”

 

자네한테서 성실하다는 얘기를 듣다니, 역시 기대되는 학생이야.”

 

평소와 달리 다급해 보이는 모습에 그들은 빈 교실에서의 밀회 대신 안뜰을 지켜보기로 하고 난간에 다가서서 기댔다.

 

안뜰, 아직 겨울이라 분명히 나무와 덩굴이 있음에도 초록색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회색에 가까운 정원 속에서 서로 다른 두 가지의 푸른 머리색은 확실히 눈에 띄었다.

 

“...뭐라는지 들리지는 않는군.”

 

학생의 프라이버시는 지켜주는 게 어떤가, 슬로언.”

 

버릇처럼 기둥의 그늘 뒤에 숨어 지켜보던 그들은 마침내 푸른 머리 중에서 작은 쪽이 큰 쪽에게 안기는 것을 보았다.

 

그러고보니 저 학생이지? 자네 수업 중에 무작정 들어왔다던.”

 

스타이거 교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피터 모나헌은... 듣자하니 1학년 중에서도 유독 두각을 드러낸다고 하더군.”

 

내 수업시간에도 가장 뛰어나긴 하네만.”

 

슬로언 교수는 몸을 구부려 기둥 바깥쪽으로 고개를 내밀고 의뭉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스타이거 교수를 올려다보았다.

 

옛날의 자네를 닮았네.”

 

나는 재능이라곤 없었지만.”

 

스타이거 교수는 작게 대꾸하고 여느 때라면 슬슬 연회장에 도착할 시간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오늘은 이만 가지.”

 

그럴까, 점심 메뉴가 기대되는군.”

 

스타이거 교수는 벽을 짚고 몸을 일으키는 슬로언 교수에게 짧게 입술을 대었다.

 

“...그래도 작은 모나헌에게 스티븐슨 학생이 있어서 다행이네.”

 

내가 그러했고, 그러한 것처럼.

 

그들은 복도를 마저 돌아 홀로 가는 계단을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