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을 샌 탓인지 다니엘은 여느 때보다 일찍 잠이 들었다.
로즈는 자신의 방에서 자수를 놓거나 그림을 그리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서재에서 헨리는 아직도 가득하게 쌓인 편지를 읽고, 태우고, 버렸다.
어제 잠을 자지 못 했으니 평소보다 일찍 자도 괜찮겠지만 할 일이 아직 한참이나 남아 있어서.
‘이 지방 아이들은 공통적으로 요정 이야기를 많이 해. 단순히 요정 이야기가 유행하는 걸까? 요정이 깨어났다면... 요정은 종에 따라서는 거의 해를 끼치지 않는 생물이니까 나와도 괜찮겠지만. 만약 요정이 아니라 우리 중 하나가 만들어낸 것이라면?’
만들어내는 능력은 로즈 계통이지.
로즈를 필두로 한 서너명 더 있었던 것 같은데, 그 중에서 둘은 죽었고...
요정은 약한 생물이니 아직 용이 깨어나기까지는 여유가 있나.
그런 생각을 하는데 테라스로 통하는 문이 활짝 열렸다.
“안녕, 얀.”
얀과 비슷한 나잇대의 사람이 서 있었다.
“오랜만이지?”
얀은 그를 보자마자 읽던 편지를 불 속에 던져넣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오랜만에 보는군.”
“멋진 집이네. 우리가 살던 곳이랑은 완전히 다른 분위기야.”
그 사람은 안으로 훌쩍 뛰어들어와서는 우아하게 양각된 벽을 쓰다듬었다.
“따뜻한 난롯불이 있고, 누구나 좋아할 디저트도 있고, 차도 있고, 책도 가득하군.”
그는 벽을 메운 책꽂이에서 하드커버 책 한 권을 뽑아들었다.
“덕분에 아주 푹 잤어. 지겨울 정도로.”
페이지를 팔랑팔랑 넘기다가 탁, 덮으니 책은 검게 물들어갔다.
얀은 책을 잡은 그 손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벌써 일어나서, 뭘 하려고?”
검게 물든 책이 손 안에서 흐늘거렸다.
“내가 할 일이 있을 거 아냐. 전쟁... 파괴... 누군가를 없애는 일이라던가.”
그 사람의 시선이 얀에서 책상에 가득하게 쌓인 천과 종이조각으로 가 멎었다.
“저건가.”
“아니네.”
그 사람은 천천히 걸어 얀의 앞에 와 섰다.
얀은 평소와는 달리 딱딱하게 굳어서, 느긋해 보이는 그와는 대조적이었다.
“정말 아니라면, 그렇게 긴장하면 안 되지.”
그 사람이 잽싸게 손을 뻗어 편지를 잡아챈 동시에 얀은 그 사람의 어깨를 잡았다.
“놔!”
얀은 아예 그를 꽉 끌어안았다.
끌어안긴 쪽은 얀을 밀어내려는 듯 버둥거렸으나 서서히 움직임에서 힘이 빠졌고, 결국에는 얀에게 기대 정신을 잃었다.
철퍽 소리를 내며 검게 물든 책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제서야 얀은 그를 안은 팔에서 힘을 빼었다.
“조금만 더 자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