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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니까 꽃

2018. 4. 4. 14:36 | Posted by 호랑이!!!

하얗게 먼지 낀 유리창으로 해질녘의 빛이 들어와 다락 안을 메웠다.

 

황혼이라고 부르는 저 해는 방을 비출 뿐 아니라 A의 몸을 감싸고 흘러 손을 들면 황금빛을 떠올릴 수 있었고 깊게 숨을 들이쉬면 해의 냄새도 맡을 수 있을 것 같다.

 

다락방의 그림자진 구석구석에는 과거가 낡은 인형이나 쓰지 않는 흔들의자, 빛바랜 액자의 모습으로 둘러앉았고 이렇게 늘어진 햇빛이 간지럽혀 깨울 때면 쌓여가는 먼지조차도 추억의 길을 지나오느라 묻은 시간의 가루처럼 빛났다.

 

어디가 더라고 할 것 없이 다락방은 낡았는데 유독 한 군데만 말끔하고 마루판도 반질반질하다. 거기에 A는 빛바랜 깔개를 깔고 책을 펼쳤는데 아까보다 확연히 붉어진 빛이 종이에 퍼졌다.

 

그 빛은 더 탁한 붉은 빛이 되었다가 빛이라고 부르지도 못할 만큼 약해졌다가 언제라고 말하지도 못할 찰나에 사그라들었다. 더 이상 책을 읽지 못하게 된 A가 창문을 열자 유리에서는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나고 빛 대신 바람이 A의 몸을 휘감았다. 옷깃에 남아있던 아주 작은 햇빛 조각도, 그 온기도 털어낸 대신 밤의 상쾌함으로 깊게 숨을 들이마신 A는 책을 덮었다.

 

달을 찾으러 간 책 속의 사람은 숲으로 갔을 것이다. 더 이상 차갑지 않은 밤바람이 그에게도 불었을 것이고 갓 돋은 싹이나 마악 깨어난 씨앗, 흐르기 시작한 샘물의 냄새를 맡았을 것이다. 그리고 전설로 전해지는 샘에 도달하면 찾을 수 있겠지. 샘에 비친 달을.

 

그 순간 무언가가 A의 뺨을 간질이며 떨어졌다. 바닥에서 주워들면 어두운 밤하늘이라도 비칠 만큼 엷은 꽃잎이 달빛에 반짝였다. 창밖으로는 푸른 하늘에 달이 떠오르고 있었고 빛을 받은 꽃잎 한 장, 한 장이 빛나 바람이 일 때마다 날아올랐다.

 

마치 달빛에 빛나는 커다란 샘 같다고 생각했는데, 그 나무들은 A가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기라도 했는지 끝없는 저 멀리에서부터 바람이 불면 수없이 많은 꽃잎들이 떠올라 작은 창문으로 쏟아졌다.

 

떨어지는 꽃잎을 맞으며 A는 팔을 활짝 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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