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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벨라 26

2019. 8. 13. 17:38 | Posted by 호랑이!!!

 

해가 지고 진행된 결혼식은 지루하기 그지없었다.

 

새하얀 드레스에 새까만 정장에 보석들이 주렁주렁 달리고 페데사 공작이 속삭이는 사랑의 말 전부 지루하기 짝이 없었으나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자신과 마르틴 뿐인지 다른 사람들은 좋아하는 극의 결말을 보듯 눈을 크게 뜨고 몸을 기울였다.

 

식의 맨 마지막에 귀족들이 다같이 나비는 잠들면 어쩌구저쩌구 하는 노래를 부르는 것은 참 놀라웠지만 그뿐이었고...

 

면사포를 쓴 미티우 페데사 공작부인은 분명 아름답기는 했지만 부러질 듯 졸라맨 허리는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그것 역시 아라벨라만의 생각인지 수도 가까이에 산다는 미혼 여성 귀족과 기혼 여성 귀족들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허리를 졸라매고 있었다.

 

심지어는 졸라맨 코르셋을 밖으로 드러내 장식을 단 사람도 있었고 어떤 사람들은 그 사람에게 한 마디씩 정숙하다느니, 조신해 보인다느니 하는 칭찬을 한다.

 

좀 의무적으로.

 

누군가 다가와 벽에 기대기에 보았더니 사나기 공주였다.

 

끔찍하지 않나.”

 

오셨습니까 공주님.”

 

불과 50년 전에 건강을 이유로 폐지당한 옷이건만 다시 유행한다는 것이.”

 

“50년 전이요?”

 

나도 그 때 일을 보지는 못했으나 듣기로는 아주 훌륭한 광경이었다고 한다.”

 

하기는 공주의 나이가 아라벨라보다도 세 살이 어렸다.

 

그래, 그대가 물어보는 것은 어떠한가, 라고 다시 사나기 공주가 입을 열었다.

 

당시 코르셋을 폐지했던 데에는 자네 할머니가 공이 컸다고 하네.”

 

할머니가? 궁궐에 출입하던 사람이라고?

 

아라벨라의 의아한 표정에 사나기 공주가 무어라 덧붙이려는 순간 사람들이 우르르 물러나 길을 만들었다.

 

그 이상한 움직임에 고개를 틀자 자나미 왕자와 왕비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레이디-”

 

자나미가 손을 들자 사람들은 숨을 들이켰다.

 

이제 연회를 알리기 위해 왕실 가족이 춤을 추어야 하지만 자나미 왕자에게는 약혼자도 연인도 없었다.

 

심지어 누구와 춤을 출 지도 정해지지 않았으니,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쏟아진다.

 

자나미의 손이 아라벨라 앞으로 불쑥 내밀어졌다.

 

아라벨라. 나와 춤을 출 것을 명한다.”

 

꺄악, 하고 환호와 비명이 들렸다.

 

어쩜 귀엽기도 하시지.”

 

아직 서투신 거야.”

 

명령이라고 했어.”

 

재잘거리는 소리는 퍽 사랑스럽게 느껴졌을 터다.

 

저 멍청한 명을 받은 게 자신만 아니라면!

 

쿠트 왕비가 자나미의 앞을 팔로 가로막았다.

 

렐리악의 영애, 미안하기도 하지. 아직 왕자가 여자에게는 서툰 터라 무례하게 행동했구나. 아직 영애가 서툰 남자에게 귀여움을 느낄만한 나이는 아니니, 부디 저 명령이라는 말을 부탁으로 바꿔 들어주지 않겠나.”

 

그러도록 하겠습니다 마마.”

 

아라벨라는 드레스 대신 입은 긴 기장의 겉옷자락을 들며 무릎을 굽혔다.

 

쿠트 왕비가 부채로 건드리자 자나미 왕자는 보다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었고 아라벨라는 그 위에 손을 얹었다.

 

쿠트 왕비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자리로 돌아가며 자나미 왕자의 등을 부채로 세게 찔렀다.

 

영애에게 잘 하는 것이 좋을 거다, 왕자.”

 

, 어머니.”

 

아라벨라와 자나미 왕자는 홀 중앙으로 나갔다.

 

그 모습을 보며 쿠트 왕비는 왕에게 몸을 기울였다.

 

전하. 이번 대의 렐리악은 왕가에 호감이 있는 모양입니다. 기쁘지 않습니까.”

 

그러한가. 그렇게 보이는군요.”

 

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악사들은 부드러운 음악을 연주하고 자나미는 아라벨라의 손을 홱 잡아당겨 기대게 했다.

 

왜 저한테 춤을 신청하신 거지요?”

 

그러자 자나미가 고개를 숙였다.

 

자네 마음에 들어가기 위해서.”

 

꽤 그럴싸하게 낮춘 목소리다.

 

하지만 아라벨라는 부족한 눈치로도 자나미의 말이 진심이 아님을 알 수 있었기에, 떠 보기로 했다.

 

사실 제가 아니라 사나기 공주님께 신청하려던 것은 아닙니까?”

 

사나기? , 그런 멍청이 따위.”

 

이 왕자는 생각을 대장으로 하나?

 

공주님은 고귀한 피에 걸맞는 분처럼 보입니다만. 사나기 공주님께 그런 말을-”

 

자나미의 눈이 아라벨라에게 멈췄다.

 

금빛 눈은 짐승의 것마냥 이질적이다.

 

그러고 보니, 영애는 소문에 무지하지.”

 

어쩔 수 없으니 말해주마고 자나미가 거만한 표정을 지었다.

 

우선, 사나기의 어미는 사나기가 눈을 뜨기도 전에 죽었는데, 나의 어마마마를 보고 어마마마, 하고 쫓아다닌다. 밀어내고 부정해도 어찌나 고집이 센지.”

 

네에?”

 

쌍둥이처럼 닮았지만 사나기는 자나미보다 어렸고 사나기 공주의 어머니는 왕비였다.

 

전 왕비며, 적통이라고 불러도 좋을 공주를 후궁 소생 왕자가 저렇게 부르다니.

 

아라벨라는 당황스러움에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그래서 내가 말했지. 이름을 시키는대로 바꾸면 우리 가족에 넣어준다고.”

 

목소리가 떨렸다.

 

바꾸셨나요?”

 

자나미가 웃었다.

 

! 바꿨다, 그 멍청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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