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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벨라 17

2019. 6. 27. 17:35 | Posted by 호랑이!!!

 

그렇게 수색은 종료되었다.

 

슈체른이 마르틴과 아라벨라를 데려다 주었고 삐는 마르틴에게서 떨어지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함께 렐리악 저택으로 돌아왔다.

 

옥상에 내려서자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집사, 프루던스가 달려와서 아라벨라나 마르틴, 심지어 슈체른까지 본체만체하고 바실리를 안고 뛰어갔다.

 

저 녀석 하여간 침착하지 못하고.”

 

슈체른이 뒷머리를 벅벅 긁는데 마르틴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데려다 주셔서 감사합니다.”

 

.. 말씀을.”

 

어린 인간이 예의바르게 군다고 어색해하는 것이 여실하다.

 

아라벨라는 항상 느긋하게 굴던 슈체른이 말을 주저하는 것을 처음 보았기에 푸핫, 웃음을 터뜨렸다가 눈이 마주치자 다른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슈체른.”

 

뭡니까.”

 

할머니 찾는데 도움도 주셨고 삐도 걱정될 텐데 며칠 여기 묵는 건 어때?”

 

무사한 거 봤으니까 됐...”

 

마르틴이 슈체른을 쳐다보았다.

 

나는...”

 

아주 기대어린 눈으로.

 

그러니까...”

 

머리에는 삐를 얹고.

 

“...호의를 받아들이겠습니다.”

 

마르틴의 표정이 화악 밝아지더니 슈체른의 손을 잡고 끌었다.

 

여기 아래쪽에 손님방이 있어요. 저택이 작다고 생각했는데 손님방이 네 개나 있더라구요.”

 

네 개나?”

 

슈체른이 손을 잡고 내려왔다.

 

잠깐, 저런 옷 괜찮은가?

 

현재 주로 입는 옷들은 풍성하거나 살갗을 최대한 많이 가리는 종류의 옷들이다.

 

그러나 슈체른의 옷은 팔다리가 거의 그대로 드러났고 색도 하얀색 한 가지 뿐인데다 헐렁하고 현재 기준으로는 수수하다고 봐도 무방하다.

 

게다가 슈체른을 마당에서 데려오는 것도 아니고 널찍한 옥상에서 데려가는 건데 누구라고 말하지? 사용인들에게 뭐라고 말해야 하지? 내 손님이라고 해야 하나?

 

아라벨라는 마르틴을 툭툭 쳤다.

 

누가 물어보면 뭐라고 할까?”

 

... 으으음... 그냥... 할머니 찾는데 도움을 준 손님이라고 하면...”

 

용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귀한 몸이기는 하니까 귀족이라고 말해야 하나?

 

아 그런데 마차도 없고 어떻게 왔다고 하지? 순간이동? 시종도 없이?

 

복잡해지는 머리에 아라벨라는 이마를 짚고 슈체른에게도 지혜를 좀 빌려달라고 말할 참이었는데, 마르틴이 벌컥 문을 열더니 계단을 내려갔다.

 

!? 잠까-”

 

옥상 아래는 3층이고, 바실리의 방과 가까웠는데 평소라면 아무도 없었던 그 복도에 지금은 사람이 가득하다.

 

누군가는 뜨거운 물을 들고 뛰어다니고 누군가는 깨끗한 수건을 몇 개나 쌓아서 전달하고 말을 전하러 뛰어내려가는 사람이나 약, , 꽃 같은 것들이 쉴새없이 날라졌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다 이 쪽을 한 번씩 보고 지나갔다.

 

아라벨라는 등을 타고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그게...”

 

다녀오셨어요 아라벨라 아가씨!”

 

“-마르틴 도련님!”

 

지금은 여기 들어오시면 안 돼요.”

 

주인님께 약과 여러 처치를 한 후-”

 

오랜만입니다 슈체른님.”

 

“-사람을 보내겠습니다.”

 

죄송한데 급해서요-”

 

차와 과자를-”

 

“-준비해 드릴까요?”

 

사람들이 기차놀이라도 하는 것처럼 줄줄이 들어갔다 줄줄이 나오면서 한 마디씩을 한다.

 

마르틴은 그 사람들에게 방해되지 않게 복도 가장자리로 걸어서 2층으로 빠져나갔다.

 

그 다음은 슈체른과 삐, 다음은 아라벨라.

 

겨우 한 층 차이인데 2층은 퍽 조용하다.

 

아라벨라는 자신의 방으로 슈체른을 질질 끌고 갔다.

 

이 집 사람들이랑 아는 사이였어?!”

 

가끔 바실리를 데려다줄 때 오곤 했습니다. 예를 들어 술에 취할대로 취해 걸음을 걷지 못한다던가.”

 

할머니가?”

 

5-60년 쯤 전에? 이후로도 자주 왔고...”

 

얼마 전 일처럼 이야기하더니 오륙십년 전이란다.

 

저 자주는 얼마나 자주일까, 아마 자신이 생각하는 자주는 아닐 것이다.

 

얼마나요?”

 

슈체른의 어깨에서 마르틴의 머리 위로 삐가 퍼덕퍼덕 내려앉았다.

 

열흘에 한 번?”

 

자주 왔네.”

 

셋은 아라벨라의 방 옆의 빈 방 문을 열었다.

 

이 방을 쓰면 되겠네. 빈 거니까.”

 

비었군요.”

 

슈체른은 방 문을 열더니 무언가 귀한 것을 본다는 듯 한 걸음 물러나 방안을 훑어보았다.

 

그래, 이젠 비었군요...”

 

슈체른은 마르틴의 손을 잡더니 방 안으로 이끌었다.

 

춤은 출 줄 압니까?”

 

, 니요!?”

 

잠깐 번쩍하는가 싶더니 슈체른은 마르틴과 비슷한 나잇대의 아이로 변했다.

 

마르틴의 발을 제 발 위에 얹고 한 바퀴 빙그르르 도는 것은 자세가 완벽한 왈츠다.

 

그 귀에 익은 음악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은 착각에 아라벨라는 문에 등을 기댔다.

 

예전에, 바실리가 마르틴과 비슷한 키였을 때 자주 추고는 했었습니다. 아바트는 언제나 춤을 약속한 상대가 있었고 그게 나는 아니었으니... 대신 아바트의 아이나 손주들과는 자주 추었습니다.”

 

한 명이 지치면 다음 아이가 오고, 그 아이가 지치면 다시 다음 아이가 오고.

 

끝없이 춤을 추다 보면 마침내 아바트가 와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그리고 슈체른의 입이 다물렸다.

 

천천히 춤이 멈추자 마르틴이 뒷걸음질로 슈체른의 발 위에서 내려왔다.

 

“...역시 머물지는 못하겠습니다. 바실리가 깨어나는 모습을 보면 돌아가지요.”

 

슈체른은 몇 번이나 방 안을 돌아보면서도 결국 밖으로 발을 옮겼다.

 

마르틴이 그녀의 손을 살짝 잡았다.

 

차 드실래요? 삐는 뭘 먹이면 돼요? 그동안은 있지요, 소시지나 햄이나 달걀 같은 거 먹였는데 그러면 돼요?”

 

슈체른은 마르틴을 내려다보았다.

 

무언가를 걷어낸 듯 보다 밝아진 표정으로 과장스럽게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뭐라고요? 낙트가 그런 걸 먹었다고? 그런 걸 먹이다니, 이제 큰일이 났습니다!”

 

네에!? 큰일?!”

 

슈체른의 행동이나 목소리는 평소보다 과장된 면이 있었지만 마르틴은 조금도 눈치채지 못하고 울상을 지었다.

 

채소도 먹이고 과일도 가끔 먹였어요! 그리고... 그리고 사탕도 조금-”

 

뭐어어? 그거 정말 큰일입니다. 더 큰일이 났어요!”

 

어린 용들은 대개 신선한 날고기와 우유를 먹고 자란다.

 

요리가 아닌 그런 식재료를 먹이는 것은 어린 용들의 건강을 위한 것도 아니고 음식을 구하기 어려워서도 아니다.

 

용들이 탐내는 유일한 사치품인(물론 금과 보석류나 기타 귀한 것들은 제외하고) 음식에 맛을 들이기 시작하면 앞뒤 가리지 않고 여기저기 달려들어 돌이킬 수 없는 일들을 저지르기 때문이다.

 

이 농담같은 일의 선례를 계속 들어왔던 터라 아라벨라는 그들의 뒤에서 슈체른이 마르틴에게 겁을 주는 모습을 구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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