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호랑이!!!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글 보관함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1차 비엘/판타지] 반짝이는 사람 프롤+1화

2017. 4. 8. 11:15 | Posted by 호랑이!!!

대부분의 유행은 권력에서 나온다. 현재 인간계를 통틀어 가장 강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하이어스 왕국이 만든 유행은 긴 머리가 고귀하다이다. 높은 계급의 사람들은 긴 머리를 결 좋게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고 아무리 낮은 계급이더라도 머리를 기르는 것이 당연, 머리로 보일 수 있는 가장 반항적인 모습은 열을 가해 굽슬거리게 만들거나 약품을 써서 염색을 하는 일이다.

하이어스 왕국이 강한 영향력을 끼치게 된 이유는 첫 번째로 모든 왕국이 가담한 대전 때 평화 조약을 맺게 하였기 때문이고, 두 번째로는 모든 나라의 학생들을 받는 평화의 탑이라는 학교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영 교수가 사는 곳은 교실과 연결된 작은 탑이다. 생활하는 공간은 그 탑에서 교실 앞 연단까지. 낡은 나무 의자를 끌어다가 바깥을 내다보면 학교에서 봄을 맞는 학생들이 삼삼오오 다니고 있다. 어쨌거나 봄과 가을은 농번기이기 때문에 학생들을 돌려보내고는 있지만 다른 나라에서 온 학생이나 농사를 짓지 않는 집의 학생들은 학교에서 방학을 맞고는 했는데, 영 교수가 바깥을 내다보면 키가 큰 수렵민족인 소위 엘프나 등에 날개가 달린 세인트 사람 등이 활짝 핀 꽃나무 가지 위에서 놀고 있었다.

좋을 때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창틀을 툭 툭 치자 달각달각 소리가 났다. 그 학생들과 몇 살 차이나지 않으면서도 영 교수는 마치 한참이나 젊은 사람들을 대하듯 생각했다. 그를 상념에서 끌어낸 것은 밝은 목소리였다.

 

교수님! 저 왔어요!”

 

어서와요 페드.”

 

라이비 출신 유밀(세인트 외의 수인을 총칭)인 페드는 영 교수 아래에서 연구하는 학생으로, 노란 눈에 갈색 털과 부엉이의 깃털을 가지고 있다. 오늘도 다량의 연구자료와 간식인 사탕을 한 병... 영 교수의 눈이 페드를 이어 들어오는 검은 머리 유밀에게 멎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처음 보는 학생인데 이제 2학년인가요?”

 

자료와 간식을 다 정리한 페드가 폴짝 앞으로 뛰어나왔다.

 

소개합니다! 녹스 학생, 이 쪽은 역사학의 권위자인 영 필로이픈 교수님. 교수님, 이 쪽은 라이비의 왕자인 녹스 라이비님이예요. 중간성은 생략! 오는 길에 자료 들어줬어요.”

 

유밀은 많이 봤지만, 이렇게까지 악마 이미지에 들어맞는 사람은 또 처음 보았다. 머리는 검고 눈은 노랗고, 머리에는 염소의 뿔, 등에는 검은 박쥐 날개에... 혹시 저 뒤에 있는 건 꼬리인가? 영 교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살짝 무릎을 굽혀 인사했다. 녹스 역시 가슴에 손을 얹는 것으로 인사했지만, 그의 시선은 영 교수의 머리에 있었다.

 

손이, 참 크네.

 

갑작스레 다가오는 손에, 그렇게 생각했다가, 그의 손이 모자에 닿자 영 교수는 뒤로 확 물러났다. 손가락에 걸린 것인지 모자가 바닥으로 떨어졌고 석영 조각이 우수수 흩어졌다, 영 교수는 선뜻해진 목덜미에 잠시 부르르 머리를 털었다.

 

무슨 짓이예요.”

 

죄송합니다. 모자에 벌이 붙어 있어서.”

 

영 교수는 바닥에 떨어진 모자를 주워서는 석영 조각을 털지도 않고 머리에 푹 눌러 썼다. 손가락을 들어 원래는 짙은 밀 색이었지만 어느샌가 끄트머리가 투명해진 머리카락에 대롱거리는 석영 조각을 툭 쳐서 떨어뜨렸다.

 

다음부터는 미리 말을 하세요. 벌 정도는 제가 떼어낼 수 있으니까.”

 

영 교수는 펜을 들어 양피지에 작은 진을 그렸고 진에서 튀어나온 마법이 바닥에 흩어진 석영을 한데 쓸어모아서 난로 속에 던졌다. 녹스는 다 쓴 진을 지우는 교수를 내려다보다가 그가 사용하는 책상에 한쪽 팔을 얹었다.

 

요정 같았어요. 교수님이.”

 

요정이요?”

 

반짝이는 가루가 떨어지고, 머리도 반짝이고, 피부도 반짝여서 날개만 달아주면 날 것 같았어요.”

 

그의 말에 교수는 아, 하더니 웃었다. 얇은 장갑을 벗자 손이 드러났는데, 손가락 끝부터 한 마디 반, 혹은 두 마디 정도가 투명한 수정으로 변해 있었다.

 

저는 결정병을 앓고 있거든요.”

 

몸의 끝부터 천천히 광물로 변하는 희귀병. 머리카락이나 작은 피부 조각 등은 몸을 움직일 때마다 바스러져 떨어진다. 간단한 설명을 듣고서야 녹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이 교수는 목에 천으로 만든 보호대를 차고 있었구나. 목이 결정화되면 떨어질 테니까.

 

요정 같다는 말은 처음 들어봐요. 머리가 짧아서 안됐다는 말은 들어 봤지만.”

 

짧은 머리가 잘 어울려요. 교수님은.”

 

 

 

=====

 

 

 

참 별스런 아이라곤 생각했는데, 그 다음날도, 다음날도, 녹스는 페드와 함께 교수실을 찾았다.

 

또 왔네요.”

 

방학이라 할 게 없거든요.”

 

예습이라도 할래요?”

 

아뇨, 그건 됐고...”

 

뒤에서 풉, 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러고 보니 페드가 있었지. 영 교수는 목을 가다듬었다.

 

페드, 잘 되어 가나요?”

 

네 교수님! 무지무지 잘 되고 있습니다!”

 

방해하면 안 되겠네, 영 교수가 웃었다. 그러고는 목소리를 낮춰 녹스에게 속삭였다.

 

차 한 잔 마실래요? 내 방에 맛있는 차가 있는데.”

 

영 교수의 작은 방에는 정말로 작은 난로와 1인용 테이블, 의자 하나, 또 흔들의자가 하나 있었다. 녹스는 난로에 불을 지피고 영 교수는 찬장에서 색이 다른 잔 두 개와 찻주전자를 꺼냈다. 찻잎 병을 꺼내고 영은 고개를 젓더니 옆에 놓인 종이에 찻잎, 을 썼다.

 

찻잎이 다 떨어졌네요. 코코아도 괜찮나요?”

 

녹스는 일어나 찬장 옆에 붙어있는 메모지를 보았다. 잉크가 바랜 것, 종이가 바래고 납작해진 더미 맨 위에 찻잎, 이라고 적혀있는 메모지가 붙어 있었다.

 

이건 다 뭐예요? 새 깔개, 찻잔 세트, 설탕, 소금, 새 옷, 카페 아르시호의 스콘, 면 요리...”

 

물건이 떨어지거나 할 때마다 적어 놓는 거예요. 시간이 좀 나면 나가서 사 오려고 했는데 어쩌다보니 전부 미뤄지고 있네요. 매번 페드에게 시킬 수도 없으니까요.”

 

교수님 한가하잖아요.”

 

한가하지는 않아요.”

 

매일 책도 읽고, 커리큘럼도 짜고, 페드 연구도 봐 주고, 논문도 쓰고, 해석이랑 연구도 하고... 녹스는 하나씩 손가락을 꼽으며 말하는 것을 잘랐다.

 

제가 올 때마다 창 밖 구경만 하고, 저한테 시간도 매일 내 주시잖아요.”

 

하루에 다섯, 여섯 시간 정도. 회중시계로 시간을 가늠해보는 모습에 영의 시선이 변명할 거리가 어디 방 안에 쓰여 있기라도 한 듯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 건 그렇지만.”

 

그럼.”

 

결론은 났다는 듯 녹스가 목소리를 높였다.

 

사러 갈까요!”

 

사다 주겠다고요?”

 

아뇨, 학생이 돈이 어디있어요?”

 

너 왕자라며!

 

녹스는 영의 모자를 고쳐 씌워주더니 은으로 도금한 지팡이를 까딱해서 탑의 문을 열었다.

 

, 나갈까요.”

 

아니, 무리야.

 

영은 의자 깊숙이 몸을 파묻었다.

 

제가 오늘 몸이 좀 안 좋네요, 마치 2년 내에 죽을 것 같은 기분이예요.”

 

불치병을 앓고 있으니까 그렇죠. 걷는 게 힘드시다면 업어드릴 테니까 나갑시다 교수님.”

 

, 나가려면...!”

 

이것만은 정말 말하기 싫었는데, 라는 표정으로 영이 입을 열었다.

 

씻어야 한다구요!”

 

전혀 예상외의 말이라, 충격 받은 표정으로 녹스는 입을 닫았다.

 

“...교수님.”

 

!”

 

사람을 만날 때도 씻어야 하거든요!!!”

 

'오리지널'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어 소재 있음] 사람 먹는 괴물  (0) 2017.05.07
[1차 비엘/판타지] 반짝이는 사람 2화  (0) 2017.04.15
[1차 bl] 오빠랑 친구랑  (0) 2017.03.24
달밤의 붉은 꽃 02  (0) 2017.01.24
달밤의 붉은 꽃  (0) 2017.0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