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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기랄, 죽겠네 정말!”

 

라는 용기사의 외침이 복도에 쩌렁쩌렁 울려퍼졌다.

 

그 이름은 사마낙.

 

신의 부름을 받고 스키르헤임에서의 생활 후 용의 기사로서 미드가르드에 강림한 자다.

 

혼란과 질병, 죽음이 가득한 세계를 용과 함께 도끼날로 정복하여 제국을 세우고 나라를 정비하여 인간의 생활을 한 단계 위로 끌어올린 공신으로서 최대 천 년의 수명을 약속받은 자.

 

그는 성격에 걸맞지 않게도 고민을 삼십 분이나 하고 있었다.

 

장군님, 역시 저희가 하는 것이...”

 

안 한다니까, 저리 나가!”

 

말 한마디면 안고 안길 미인이 네다섯이나 되고 곤란한 일이라도 떠맡길 시종은 십수명이나 되며 착하고 성실하게 자란 아들이 둘이나 있는데다 일 년에 몇 번이고 내려오는 각종 비단, 귀한 물건들이 있고 어떤 것도 부족함이 없이 사는 그는.

 

현재 금욕 중이다.

 

 

 

 

 

 

 

 

바야흐로 일의 시작은 아이들이 슬슬 저희끼리 놀러다니고 사마낙은 슬슬 황제의 서류까지 본격적으로 손을 대던 일주일 전.

 

오늘은 누굴 불러서 무슨 짓을 할까 하던 나른한 오후다.

 

서류를 서른 장 째 결재를 내리고 쓸데없는 말을 하던 상소문들은 물항아리에 잘 담가 깨끗하게 씻고 나니 참 그에게 보람찬 하루였다.

 

그러다가 아주 잠깐.

 

서류를 삼백 장 째 결재를 내린 에셀리온, 다시 말해 사마낙이 없는 충심으로 모시는 황제가 이걸 좀 보라며 사마낙에게 건넸다.

 

그 쪽을 보지도 않고 건방지게 한 손으로 받던 것이 잘못이었을까.

 

허공에서 허우적거리던 손은 서류를 건네는데 성공하였지만.

 

사마낙은 서류를 받은 다음에야 화들짝 놀라 에셀리온을 쳐다보았다.

 

떨어뜨렸어?’

 

‘...아무것도, 아닙니다. 폐하.’

 

하지만 사마낙은 서류를 펼치고 나서 손목을 내려다보았다.

 

뭐가 스쳤는지도 모를 만큼 아주 잠깐이었고, 아주 가벼운 접촉이었는데.

 

그 별 것 아닌 것이 저를 깜짝 놀라게 했다.

 

이상하게도 그것이 계속 생각이 나 손목 안쪽을 손톱으로 긁어 보다가 문득 희안한 것을 보는 듯한 에셀리온과 눈이 마주쳐서 일은 여기까지 하겠다며 뒤도 안 보고 화장실로 도망을 쳤었다.

 

그리고 비슷한 일이 며칠 있었으니.

 

하루에 다섯 명과도 몸을 섞는 사람이 겨우 손목이 스치거나 목덜미를 간지럽히거나 귓가를 건드리는 정도로 수음을 하면 아무래도 이상함을 느끼기 마련이다.

 

대 제국의 노련한 용기사로서 사마낙은 며칠이나 깊은 고민을 하다 훌륭히 결론을 내렸다.

 

이것은 너무 자신이 방탕하게 산 결과라고.

 

그러나 아침부터 저녁까지도 이어진 기름진 음식과 향기로운 술, 나체의 미인들을 일시에 끊는 것은 쉽지 않았고 그러기에 겨우 일주일 된 오늘 이렇게 고민을 하게 되었다.

 

너무 많이 해서 죽으면 복상사랬는데 너무 안해서 죽으면 뭐라고 부를까, 까지도.

 

지금 딱 한 번이라도 하고 싶어 입 안이 바짝 말랐지만 여기까지 왔는데 그 노력을 수포로 돌릴 수는 없었다.

 

자고로 해가 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고 하지 않던가.

 

지금 이렇게 괴로운 것은 다 미래의 자신을 위한 것이니!

 

으아아!”

 

문을 거칠게 닫고 나무로 깎은 각좆을 상자 안으로 던지면 잘 깎여서 진주까지 우둘투둘하게 박힌 것은 시야에서 사라진다.

 

날은 아직 밝았으나 잠이나 든다면 이 무료한 시간을 보내기 좋을 터.

 

사마낙은 머리를 틀어올린 비녀와 묶은 천을 뽑아 아무렇게나 탁자에 내려놓고 침대에 뛰어들었다.

 

그러고 나서 얼마 후.

 

끼이익, 소리를 내며 문이 열리고 발소리도 없이 그림자가 숨어들었다.

 

그림자는 기척도 없이 가만히 침대 곁으로 다가왔고, 흉터 가득한 손을 쥐어 손목 안쪽을 간질이듯이 쓰다듬었다.

 

창을 통해 희미하게 들어온 빛이 그 얼굴을 밝혔다.

 

녹색 머리카락에 노란 눈.

 

에셀리온이었다.

 

 

 

[Born to B] 아란체 주변인물

2018. 3. 18. 05:21 | Posted by 호랑이!!!

산 중턱에 작은 절이 있었다.

 

겨울이면 산과 바위가 찬바람을 막아주고 여름이면 대숲이 바람을 식혀주는 절.

 

문간의 붉은 칠은 바람과 흙에 벗겨지고 나무로 만든 마루는 많았던 방문객이 밟아 반들반들해진 곳.

 

안개가 자욱해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던 어느 날의 아침에 그 고요함을 깨뜨린 것은 아이 울음소리였다.

 

처음에는 마당 쓸던 어린 스님 하나가, 그 다음에는 부엌에서 일하던 스님 하나가, 그 다음, 그 다음에는 다른 스님까지 우르르 문간으로 왔다.

 

마당에 있는 것은 예닐곱살 된 것 같은 어린아이 하나.

 

손에 든 것은 편지 한 통과 나무를 깎아 만든 팔찌 하나다.

 

무엇을 묻더라도 아이는 울기만 할 뿐 아무런 말도 못 하고 사람들은 아이 손에 들린 서신을 펼쳤다.

 

흥분한 듯 괴로운 듯 써갈긴 그 글씨는 읽기 힘들었지만 사람들은 머리를 맞대고 읽고 짜맞추어 내용을 알아냈다.

 

그 안에는 많은 이야기가 있었지만 요약하자면 이랬다.

 

이 아이는 마물의 아이로 태어난 지 고작 몇 달 만에 이만큼이나 자랐습니다.

 

서류상으로는 없는 아이이니 부디 마음대로 처분해 주십시오.

 

 

 

 

 

 

 

 

 

먼 이국, 밀라비는 누이에게서 받은 편지를 읽고 있었다.

 

「…부탁이야 밀라, 그 사람에게는 아무런 설명을 못 했어. 그 아이를 찾아서 자립할 때까지 보호해줘. 오십년만이라도 좋아, 아니면 삼십년. 십년이라도 좋으니 제발

-사랑하는 누나가

 

편지는 급하게 쓴 것인지 마구 휘갈겨져 있었고 주소도 간신히 알아볼 정도였다.

 

상대가 인간인 것은 둘째 치고 외국인과 결혼까지 하겠다고 그 난리를 치더니 자신이 누구인지 밝히지도 못하고 어린 핏덩이를 남겨둬? 그걸 또 저한테 맡아달라고?

 

하여간 이 누나는 예전하고 달라진 게 없다.

 

경계심이 없어 아무한테나 가는 것도 그렇고, 대책 없이 인간하고 사랑에 빠졌나 싶더니, 겁조차 많아서 정체도 밝히지 못하고, 꼼꼼하지도 못해서 아무데나 흔적을 남겨버리고, 그렇게 헌터한테 잡히고, 결혼한 그 인간놈을 물어 변환시키던가, 도망을 했어야지. 그리고 무엇보다!

 

“...거진 삼십년만에 한 편지가 겨우 이거야?”

 

헌터가 있다는 걸 알았을 때 자신에게 도움을 청했더라면.

 

일이 너무 늦기 전에 자신에게 도와달라고 딱 한 줄만 전했어도.

 

한 마디만 전보로 보냈어도.

 

그러기만 했다면.

 

밀라비는 커다란 가방을 꺼냈다.

 

누나가 전해준 주소는 비행기를 타고도 또 버스를 타고 차를 타고 걸어서 한참이나 걸리는 곳이었다.

 

그리고 밀라비가 아이를 찾아냈을 때, 아이는 이미 성인의 모습이었다.

 

 

크나트는 새하얀 카운터 앞에 섰다.
 
"자 그럼 오늘의 요리를 시작해 볼까!"
 
"..."
 
블랑쉐는 연갈색 튼튼한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는데 앞치마가 어색한지 연신 끈을 잡아 당기고 아랫자락을 매만졌다.
 
"누드 에이프런이 좋았어?"
 
"부정하지는 않겠습니다."
 
귀엽긴.
 
크나트는 손을 펴서 블랑쉐의 엉덩이를 팡 치고는 커다란 식칼을 들었다.
 
"칼 들고 있다고 해서 제가 복수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은-"
 
"안 해. 안 해."
 
크나트는 허허 웃으면서 블랑쉐의 쪽으로 채소를 밀어주었다. 
 
"그것 좀 깍둑썰기 해줘."
 
"그게 뭔데요?"
 
깍둑썰기 몰라? 이렇게, 이렇게. 
 
...라면서 당근 하나를 깍둑깍둑 썰어버린 크나트를 보다 블랑쉐는 다시 크나트에게 감자를 내밀었다. 
 
"제 것도 부탁합니다."
 
"아니지, 아니야."
 
뭘 기대하는 겁니까? 라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어쩐지 표정에서부터 알 것 같다. 
 
"...그럼 계속해볼까? 나는 야채를 썰 테니까 블랑 달링은 계란을 깨서 그릇에다 풀어줄래?"
 
"몇 개나요?"
 
"세 개. 아니, 네 개."
 
뒤에서 들리는 달그락 소리를 들으며 크나트는 마저 야채를 썰었다. 
 
예쁘고 고르게 썰린 것들을 한쪽에다 밀어놓고 돌아보자 블랑쉐는 잠깐만 기다리십시오!를 외친다. 
 
잠깐이고 뭐고 무슨 일이냐고 봤더니 그 앞에 놓인 그릇이 네 개. 
 
그리고 각기 들어있는 삶은 달걀들. 
 
"그걸 깼어?"
 
"달걀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건 내 간식인데. 
 
크나트는 여기저기가 움푹 패이거나 손톱자국이 남았거나 계란 껍데기가 아직 묻어있는 계란을 보다가 냉장고에서 다른 계란을 꺼내왔다.
 
"날계란을 까줘."
 
삶은 달걀이라니 예상 외다. 
 
심지어 뭐가 잘못되었는지도 모르는 눈치야. 
 
블랑쉐가 깐 달걀을 물에 씻어서 한입에 넣고 블랑쉐의 입에도 하나 물려주자 계속 물고 있었는지 몇 초 안 있어서 툭 하고 뭔가가 떨어지는 소리와 더불어.
 
와장창
 
쨍그랑
 
철벅
 
뒤를 돌아보니 예상대로의 광경이 펼쳐져 있다. 
 
"뭘 봅니까."
 
"...내가 치울게. 가만 둬."
 
"청소기랑 걸레 어딨습니까."
 
"아니 저기."
 
"손으로 치워야 하나..."
 
"내가 치울게. 치운다니까? 치우게 해주십시오."
 
결국 블랑쉐는 식탁을 닦고 숟가락과 포크를 놓는 일을 했다.
 
그동안 크나트는 커다란 접시에 야채와 쌀을 볶아 동그랗게 얹고 계란을 부쳐 얹었다. 
 
마지막으로 작은 냄비에서 부글부글 끓은 소스를 식혔다가 짤주머니에 부어 내밀자 블랑쉐는 흘리지 않게 조심조심 들어올렸다.
 
"초콜릿 정도는 만들어 봤지? 여기 끝을 잘라서 이렇게- 글을 쓰는 거야."
 
해 본 적은 없지만 그림그리기 정도는 할 수 있지. 
 
블랑쉐는 하트 모양을 몇 개나 그린 크나트의 접시를 보다가 짤주머니의 끝을 덜걱 잘라서 슥슥 그림을 그렸다.
 
멋지게 하트 모양과 이름을 쓴 블랑쉐는 뿌듯하게 짤주머니를 내려놓았고 크나트는 박수를 치고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잘 했으니 상을 줘야지요."
 
"방금 머리 쓰다듬어 줬잖아?"
 
"어린애도 아니고, 그런 걸 상이라고 하는 겁니까."
 
크나트는 한 번 웃고는 한쪽 눈을 찡긋했다. 
 
"가슴 만질래?"
 
"누드 에이프런 차림으로요."
 
 

 

[데빌버니/레더리]불지옥 냄비

2018. 1. 7. 18:40 | Posted by 호랑이!!!

레더리는 냄비를 들고 돌아왔다.

 

굳이 먹을 필요는 없다지만 이상한 곳에서 사치하는 걸 좋아하는 몽마가 좋아할지도 모른다고 추천해준 일이었다.

 

동양식 수프라고 했던가.

 

안에 들어간 재료는 일단 마늘이랑, 콩 소스라고 부르는 것이랑, , 먹을 수 있는 종류의 풀 한움큼 정도랑 생선.

 

생선 머리가 그대로 남아있는데 이걸 정말 끓여도 되는 것일까?

 

불신 가득한 눈으로 레더리는 가스레인지에 불을 켜고 그 위에 둔탁한 소리를 내며 냄비를 얹었다.

 

이 냄비가 무거운 것은 가게 주인이 레더리의 걸음을 보더니 갑자기 커다란 생선 토막을 하나 더 넣어준데다 사람을 불러 집 앞까지 들어준 덕분이겠지.

 

친절한 인간이로군, 상을 줘야겠어.

 

레더리는 냄비 안을 들여다보았다.

 

아까까지는 그냥 차갑던 빨간 수프가 부글부글 끓어서 눈을 감고 귀를 기울이고 있자면 소리가

 

치익-’

 

소리가 난다.

 

보글보글, 치이익, 보글보글, 치이익, 부글부글부글부글.

 

소리가 달라졌는데?

 

눈을 떠 보니 거품이 뚜껑을 밀어낼 정도로 흘러넘치고 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숟가락을 가져와 거품을 떠냈지만 작은 찻숟가락으로는 역부족!

 

조금 더 큰 거... 조금 더 큰 게 필요해!

 

레더리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찻숟가락보다는 커다랗고 거품도 떠낼 만한 도구를 찾아냈다.

 

그것을 들고 뒤를 돌아본 순간 레더리는 누군가와 마주쳤다.

 

넓적하고 얇은 얼굴에 눈은 비뚤게 달려서 그 위에 쓴 16세기 즈음의 가발도 떨어질 듯 걸려있는 광어.

 

얼룩덜룩한 껍질에 휘둥그런 눈, 커다란 입을 가진 우럭.

 

“...?”

 

베르데님!!!”

 

아무래도 저 냄비가 지옥 불구덩이랑 연결이 되어버렸나보다.

 

레더리는 손에 들린 구두 주걱을 내려다보다가 패들 스틱처럼 손바닥에 내리쳤다.

 

 

[크더건/미론] 납치

2017. 12. 11. 22:19 | Posted by 호랑이!!!

미론은 널찍하고 푹신한 침대에서 눈을 떴다.

 

이렇게 푹신한 침대는 집 뛰쳐나오고는 누워보지 못했는데, 여기가 어디야?

 

어슴푸레하게 들어오는 빛은 희미한 윤곽만 보여줄 뿐이라 미론은 우선 방안을 살펴보기로 했다.

 

침대 옆에는 달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작은 창문이 하나고.

 

전방 3미터 좌측에 문이 하나.

 

우측에 벽이 있기는 하지만... 진짜 벽은 아니고 칸막이인 것 같군.

 

조심스럽게 다가가서 만져보자 바닥에 단단히 고정되어는 있지만 부수려고 하면 부술 수 있을 것 같았다.

 

칸막이에 등을 붙이고 천천히 앞으로 가자 정면 벽에 붙은 커다랗고 반들반들한 것이 점점 가까워진다.

 

손으로 더듬어보자 널찍하고, 판판하고, 익숙하게 매끈매끈하다.

 

“TV...?”

 

그 오른쪽 아래, 벽에는 스위치가 두 개 붙어있다.

 

이게 무슨 스위치인지, 왜 여기 달려있는지 아직 알아내지 못했지만 당장은 눌러도 괜찮으리라 판단하고 위의 것을 누르자 침대가 있는 쪽 불이 켜졌다.

 

딸깍, 아래쪽 스위치를 누르자 칸막이 너머에 불이 켜진다.

 

칸막이 너머에는 커다란 문이 하나 있었고 벽에는 작은... 우편물을 넣는 문 같은 것이 허리쯤 되는 위치에 뚫려 있다.

 

그 외에는 두세사람이 앉기 좋아 보이는 둥그런 식탁이 하나.

 

그리고 식탁의 크기에 비해 턱없이 적어보이는 의자가 하나.

 

미론은 커다란 문으로 다가갔다.

 

나무로 파도같은 무늬가 있는 틀을 만들기는 했지만 주 재료는 유리.

 

바짝 붙어 건너편을 보려고 애를 쓰니 무언가 반짝거리는 너른 것이 간신히 감지되었다.

 

저 반짝임은 물인데.

 

바다위에 있는 수상 가옥인지 뭔지인가.

 

설마 전 주교가 자신을 예뻐했다는 이유로 마약이나 주교에 대해 묻기 위해 납치했나?

 

미론은 품을 더듬었다.

 

가지고 다니던 핸드폰도 가져가다니, 제법 철저하군!

 

다시 침대가 있는 곳으로 돌아오니 아까는 보지 못했던 작은 탁자가 침대 옆에 있었다.

 

그 위에는 검고 둥근 기계가 하나, 또 리모컨이 하나.

 

미론은 리모컨을 들어 TV를 켰다.

 

누군가 녹화한 것 같은 영상이 준비되어 있었고 순간적으로 미론의 머릿속에 무언가가 스쳐지나갔다.

 

X에 나오는 것 같아

 

역시 인형탈인가. 그것밖에 없겠지.

 

무슨 잔인한 선택지가 나오려나.

 

침을 꿀꺽 삼키고, 미론은 재생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소리를 질렀다.

 

크나트씨!?”

 

[잘잤니, 로니?]

 

크나트씨가 저 납치한거예요!?”

 

[내가 널 납치했단다]

 

납치했다고 말하지마! 납치했지만!

 

또 무슨 이상한 짓을 하는 겁니까?’

 

그렇게 산뜻한 표정이라니!

 

내가 나오는 섹시한 비디오 촬영. 같이 할래, 율리안?’

 

...아니 지금 이게 중요한 게 아니지.

 

됐습니다

 

[...지금 이게 중요한 건 아니고]

 

왜 납치한 건데요!?”

 

[내가 널 납치한 이유는]

 

미리 녹화했을 것이 분명한 영상이건만 묘하게 대화가 된다.

 

역시 약인가? 카포의 명령?

 

어쩌면 크나트씨니까,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빼돌렸을지도 모르지.

 

진지하게 생각하는 중, 영상 속 크나트가 입을 열었다.

 

[밥을 좀 먹이려고란다]

 

미쳤어요 아저씨!!??”

 

 

[Just a Pet?] 케니스에게 주는 통장

2017. 7. 1. 16:53 | Posted by 호랑이!!!

렉터는 통장 페이지를 팔락팔락 넘겼다.

 

매달 꼬박꼬박, 5년 동안, 보너스와 명절 상여금 등등을 합하여 꽤나 높은 금액이 적혀있는 통장은 자신의 것이 아님에도 자신을 뿌듯하게 만들었다.

 

명의 자리에 적힌 이름은 케니스(드라보프).

 

케니스, 케니스, 케니스.

 

처음 보았을 때부터 눈에 확 띄던 작은 강아지.

 

스스로 낸 상처투성이에 불안을 끌어안은 주제에 남을 더 챙기려고 했던.

 

케니스는 첫 번째 행사가 끝나고 죽으려고 했지만 자신은 그렇게 두지 않았다.

 

괴로워하는 다른 실험체들을 네가 케어해주라고 특별히 직책을 주고, 실험체보다 더 많은 권한을 주고, 더 오래 살려두고.

 

자신의 독단으로 케니스가 할 수 없는 일을 주었거나, 혹은 저 아이가 도망치지나 않을지 오래 지켜봐왔지만 자신은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작은 강아지는 자신의 기대 이상으로 아이들을 안정시켰고 도망을 치기는커녕 제법 헌신적인 태도로 일했으니까.

 

렉터는 통장을 다시 비닐 케이스에 밀어 넣었다.

 

본디 머리가 좋고 성격이 상냥한데다 연구원들과도 두루 좋은 관계를 쌓았고, 일을 잘 한다고 보고서에 적기도 하였고, 거기에 이만한 금액이라면 아무리 돈의 가치가 전쟁 전보다 떨어진 요즈음이라도 불편하게 살지는 않을 것이다.

 

아주 만약의 한 가지에 미리 대비하는 것뿐이지만.

 

굳이 이래라 저래라 케니스에게 자신이 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영리한 아이라니까? 자신이 기대했던 이상으로.

 

아마 모든 일이 끝나고 실험체 중에서는 가장 번듯한 길을 걷게 될 것이다.

 

통장 하나는 렉터의 마음에 제법 안정감을 주었다.

 

나의 일이 아니고, 심지어 에디의 일도 아닌데.

 

겨우 이 얄팍한 통장 하나가 골든 티켓이라도 된 마냥 기뻐하게 되다니.

 

렉터는 웃었다.

 

 

[스윗X양슈]To.계단에서 넘어짐(님의 자캐커플)

2017. 4. 3. 03:22 | Posted by 호랑이!!!

그래, 그렇게. 잘하고 있어.”

 

생각보다 힘이 더 드니? 그럼 천천히... 괜찮아.”

 

힘이 들 때는 천천히.

 

상냥하게 속삭이는 소리는 오히려 그를 실망하게 하지 않으려는 마음이 들게 한다.

 

비록 낄낄거리는 웃음소리가 간간히 들렸지만 거기 신경이 미치기 전에 들리는 속삭임에, 양슈는 실톱을 잡은 손에 힘을 더 주었다.

 

얇은 막 같은 피부에 톱날을 대고 부드럽게 쓱 밀면 마치 갓 만든 푸딩을 자르듯 약간의 저항감이 느껴졌다가 녹아내리듯 살이 갈라진다.

 

...사실 그보다는 조금 더 저항감이 느껴지지만, 그래도 잘 잘린다는 것에는 변함없지.

 

이것이 이라는 것에 생각이 미치면 역시 어딘가 군침이 돈다.

 

따뜻하고, 육즙이 있고, 피 때문에 짭짤할 것 같고.

 

잘라지는 날 아래의 감각으로 미루어 짐작하자면 부드럽고 연하겠지.

 

그러다 날은 석회석 덩어리 같은 뼈에 닿는다.

 

잠깐 자르기 전에, 양슈는 고개를 들었다.

 

, 떻게... 해야 해?”

 

, 다리, 머리, 몸통?

 

아니면 뼈, , , 내장?

 

, 다리, 몸통으로. 팔다리를 분리할 때 내가 주의하라고 말했던 게 있는 것 같은데?”

 

그러자 양슈는 손에 든 실톱을 내려다보았다.

 

“...관절에 날을 넣어서...”

 

그래, 보기보다 똑똑하구나.”

 

늘어진 손을 잡아당기자 테이블 위의 몸뚱어리가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그 위에 새로 사람을 올리고, 스윗은 양슈의 손을 잡았다.

 

이어질 아픔을 상상하듯 움찔하자 그는 귓가에 조곤조곤하게 속삭여주었다.

 

괜찮아, 다시 하면 되지. 그렇지?”

 

대답 대신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열심히 했던 탓에 턱 아래로 땀이 맺혀 손으로 문질렀다.

 

셔터를 내린 어두운 꽃집 안에서 빛이 나는 것은 꽃의 시체가 상하지 않게 차가운 김을 내뿜는 냉동고뿐.

 

그 희미한 빛에 비추어 안을 보자면 바닥에 생긴 웅덩이는 페인트처럼 짙은 붉은 색이고 엉망으로 흩어진 꽃은 하얗다.

 

양슈가 실톱을 대고 긋자 피가 튀었다.

 

, 살아있었나 보네.”

 

그럼 아팠을... ?”

 

괜찮을 거야. 어쨌든 이젠 아무것도 모를 테니까.”

 

하얀 꽃 위로 붉은 피가 번졌다.

 

양슈는 갓 잘라낸 머리를 들어 꽃 위로 가져갔다.

 

머리에서 떨어지는 피가 꽃을 덮었다.

 

빨갛게, 빨갛게.

 

하얀 것은 더러우니까, 다른 색으로 씻어야지.

 

피가 양슈의 몸을 타고 흘렀다.

 

 

마틴은 아주 간만에, 다른 곳에 파 둔 함정에서 사냥감을 찾았다.

 

어린, 아니, 젊은 인간.

 

손에는 총이 있고 허리춤에는 덫이 있다.

 

사냥꾼이구나.

 

그 사람은 마틴을 보자 도와달라는 듯 손을 내밀었다.

 

, 그리고 덫 버려요.”

 

철컥, 철컥, 묵직한 것이 떨어졌다.

 

그 사람은 물건을 땅에 버리면서도 끊임없이 중얼거렸다.

 

늑대! 이 숲에 늑대가 있었어! 아주 커다란, 한 마리에 족히 수백 파운드는 나갈 거야!”

 

달빛이 비치면 음영이 더욱 뚜렷해진다.

 

인간의 눈에도, 그리고 뱀파이어의 눈에도.

 

마틴은 그 사람을 끌어올려서 진정하라는 듯 등을 토닥거렸다.

 

그 사람의 심장 소리가 마틴의 몸을 타고 흘러 마치 자신의 심장이 뛰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마틴은 등을 토닥이다가, 입을 벌려 그의 목덜미를 물어뜯었다.

 

두근, 두근, 두근, 두근두근.

 

갑작스럽게 빨라졌다가 천천히, 천천히, 소리가 느려지고 천천히 천천하게 소리가 작아져 마침내는 멎는다.

 

마틴은 심장이 이렇게 뛰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평온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마치.

 

강가의 나룻배에 누워 손끝을 강물에 담근 채, 시체처럼 시간을 보내고 싶은, 그런.

 

한없이 죽음에 가까운...

 

한참이나 눈을 감고 있자 옆에서 늑대 한 마리가 정신을 차리라는 듯 손을 물었다.

 

.”

 

피를 빨아낸 시체의 옷과 물건을 분리하고 몸을 던져 주었다.

 

먹어.”

 

귀중품, 이건 팔고, 저것도 팔고.

 

그 가운데 탄피에 끈을 꿴 목걸이를 발견했다.

 

이리저리 돌려 보자 달빛에 탁한 색을 내비친다.

 

마음에 들어.

 

방 하나의 진열장에 던져둘 것이 생겼다.

 

마틴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한 떼의 늑대들은 뼈도 남기지 않고 사람을 먹어치우고 있었다.

 

먼저 갈게, 얘들아.”

 

 

[Project. Dolly] 아침식사

2016. 4. 21. 03:29 | Posted by 호랑이!!!

 

아침은 사이먼이 가장 기대하는 때이다.

 

원래는, 그러니까 실험실까지만 하여도 사이먼의 생활은 해가 뜨는 새벽에 자고 오후가 되어서야 일어나는 것이었지만 요 며칠 동안은 누가 보아도 명백한 바른 생활을 계속 이어오고 있었다.

 

우선, 7시가 되면 하얀 시트를 걷고 일어나서 창가의 커튼을 확 열어젖힌 후 주방으로 뛰어간다.

 

잘 잤어요?”

 

, 좋으... 으은... 아침... 이예요.. 라파, 에엘...”

 

토스트, 달걀과 베이컨, , 아침식사의 가짓수는 굉장히 많지만.

 

며칠간의 아침식사는 언제나 한 가지였다.

 

오늘은 뭐랑 뭐 얹을 거예요?”

 

동거인은 상냥한 간호사이고 언제나 사이먼을 기다려 주었다.

 

냉장고에 있을 여러 가지 과일을 생각하며 사이먼은 결정하는 동안 하얗고 커다란 그릇에 시리얼을 잔뜩 붓고 설탕을 한 스푼 가득 떠서 뿌렸다.

 

라파엘레는 그 동안 언제든 먹을 수 있게 준비해둔 과일 담긴 그릇을 꺼내 왔다.

 

... 늘은 딸기... 하고오... 사과... 하고오... 그리고... 바나나랑.... 으응, , , ... 어요.”

 

칸칸이 나누어진 그릇 안에서 가장 자주 선택되는 딸기는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다.

 

사이먼은 잘라둔 딸기와 사과를 잔뜩 떠서 시리얼 위에 얹고 우유를 부었다.

 

자알, 먹겠... 먹겠습니...”

 

착하네요, 매일 잘 먹겠습니다 인사도 하고.”

 

라파엘레는 사이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내려와 얼굴 절반을 가리는 너머로 사이먼은 눈을 굴려 쳐다보았다가, 눈을 질끈 감고 쓰다듬는 손에 머리를 푹 기댔다.

 

아침... 아침, 고마.. 워요, 라파...”

 

 

[그저사/트로이 아비수스] 여행이 끝났다

2016. 3. 5. 17:02 | Posted by 호랑이!!!

트로이 F. 아비수스의 방은 어둡다.

 

환기할 때가 아니라면 대낮이라도 보라색 두꺼운 커튼을 쳐서 방 안의 빛이라고는 수제 인형이 들고 있는 양초 등불에서 나오는 희미한 빛이 전부일 때도 있다.

 

트로이의 방에는 다른것도 많았지만, 사람 크기의 인형이 다섯 체 있었는데 이것들은 희무끄레한 빛 아래에서는 더욱 진짜처럼 보였다.

 

심지어 그 인형들은 누군가를 닮았다.

 

어지간한 사용인조차도 트로이의 방은 청소하러 오는 것도 꺼릴 만큼.

 

“나 왔어.”

 

형, 형들, 그리고 누나.

 

그리고 어머니.

 

하얗게 반짝이는 머리카락을 가진 인형은 빛에 바래 살짝 옅어진 드레스를 입었지만 마치 살아있는 사람 같았고, 우아하게 두 손을 모은 채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 주위로는 마치 사용인처럼 다른 인형들이 공손하게 앉아 있었고.

 

트로이는 어머니가 돌아가실 적, 암살자가 들어왔다고 들었다.

 

어째서 내가 아니라 어머니부터 암살당하였나.

 

분명 나를 지키려다 그리 된 것이었겠지.

 

그 하얀 머리는 한때 뻑뻑하게 피가 배어 있었지만 서투른 솜씨로나마 탈색하고 손을 보니 제법 핏자국이 흐릿해져서 헌 가발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하기사 누군가의 진짜 머리카락을 가져다가 인형을 만들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겠지.

 

심지어 이십년도 넘게 지난 일인걸.

 

트로이는 여행가방을 정리했다.

 

“들어봐요 어머니, 저 여행 다녀왔어요.”

 

그것도 그 건방진 집사녀석하고요.

 

어머니가 아직 옆에 계셨다면 그 집사가 제 전속으로 배치받을 일은 없었을 텐데.

 

하필 그 자리에서 저를 구한 것이 그 인상 더러운 집사놈이라니.

 

트로이는 가방에서 그동안 깎은 나무조각들을 꺼내어 선반에 늘어놓았다.

 

“많은 일들이 있었... 아, 그만하자.”

 

새삼 어머니를 사랑하는 젊은 청년 흉내라니 우습지도 않아서.

 

트로이는 킥킥 웃으면서 사포를 꺼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부분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나를 감싸고 돌아가셨다고 생각해도 기억도 나지 않는 옛날 일이라 그다지 신경쓰이지 않는걸.

 

어째서 수많은 이야기에서는 그런 일에 그렇게나 마음을 쓰는 것인지.

 

R도 트로이도 모르는 옛날에.

 

암살자는 트로이의 어머니에게 선택의 기회를 주었다.

 

누구를 먼저 죽여 줄까.

 

암살자는 고용주에게 명령을 받았었다.

 

그 어머니가 선택한 것의 반대로 하라고.

 

 

[여우산] To. 뉸님 : 지감이 어릴 적에

2016. 2. 23. 23:36 | Posted by 호랑이!!!

여우가 있다 하여 여우산.

 

산 속 어느 작은 계곡에.

 

이팔청춘이 조금 못 되는 나이의 지감이 있었다.

 

짙은 자색 저고리에 같은 색 댕기를 빈틈없이 드리우고서.

 

장정도 밤에는 고개를 넘지 못 하고 사람이 열둘이나 되어도 깊은 곳으로는 가지 못한다는 이 산 속은 기껏해야 나무하는 아이들이 사람 다니는 길 근처에나 다니지만 지감은 이 사람 다니지 않는 산을 누볐다.

 

용감하게 다니다가 우연히 알게 된 계곡은 맑은 물도 흐르겠다, 저 놀기 딱이라.

 

오늘도 글공부하다 빠져나와 멱 감고 널찍한 바위에서 몸을 말리는데 인기척이 났다.

 

여우냐?”

 

그렇게 말하는 상대는 사람이었다.

 

나이는 저보다 한두어살 많을 것 같지만 키는 저보다 조금 더 작은.

 

얼마 전 수도에서 요양차 왔다는 그 도령이었다.

 

서울 도령이군요. 안녕하십니까.”

 

어린애가 여길 돌아다니는 줄은 몰랐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저랑 나이 차도 나지 않으면서.

 

그러는 도령도 어린애잖습니까.”

 

그러자 대답 대신 웃어 보인다.

 

사냥꾼들이랑 같이 왔었거든요.”

 

하면서 겉에 입은 옷자락을 들추니 사냥꾼들이 산에 다닐 때 쓰는 단도 한 자루와 던지는 용도로 사용한다는 짧은 칼이 몇 자루 보였다.

 

이것 보시지요.”

 

손목을 까딱, 하자 저만치의 나무에 짧은 칼이 박혀 있었다.

 

해보시겠습니까?”

 

그에 혹하여 받아서 던지다 보니 시간은 훅 갔다.

 

가뜩이나 산 속이라 더 일찍 지는 해가 하늘을 발갛게 물들이고, 둘은 던졌던 칼을 주워 모았다.

 

지감은 바로 집으로, 서울 도령은 사냥꾼들과 같이 간다고 하여서 길의 중간까지만 같이 가기로 했다.

 

아까, 여우냐, 라고 했잖아요? 진짜 여우면 어쩌려고 그랬습니까?”

 

어쩌긴 뭘 어쩝니까. 잡아야죠.”

 

그 말에 지감이 웃었다.

 

이 도령은 생긴 것은 무뚝뚝한 장군감인데 참 다정하신 분입니다.”

 

그러는 서울 도령도 생긴 것과 따로 놀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러자 서울 도령이 웃었다.

 

갈림길에 서서, 서울 도령이 손을 흔들었다.

 

다음에 또 봅시다.”

 

땅거미 내리는 산길에서 도령이 사라지고, 지감은 불 켜지는 마을 쪽으로 걸어갔다.

 

 

[B-hunt 엔리코 다 라벨] 새 애완 인간

2016. 1. 24. 01:07 | Posted by 호랑이!!!

옴브레.”

 

엔리코는 제가 손수 만든 침대 위에 앉아있는 사람을 내려다보았다.

 

침대는 다리를 반틈 잘라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것보다 낮아서 무릎을 꿇어 앉으면 그와 눈이 마주쳤다.

 

이번에 새로 잡아온 사람.

 

짧고 산뜻하게 자른 빨간 머리카락에 끝이 고양이의 것처럼 올라간 검은색 눈을 가지고 있었다.

 

보기에 따라 사납게 보이기까지 하는 그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엔리코의 금갈색 머리카락은 태양 같고 파란색이 섞인 진한 초록색 눈은 끄트머리가 처져 순수하고 순한 모습처럼 보였다.

 

긴 머리를 묶어낸 엔리코는 그의 뺨을 만지다가 손톱을 세워 긁었다.

 

옴브레, 대답.”

 

“...”

 

이 인간을 잡아온 것은 벌써 한 달쯤 지났다.

 

지하실에 인간을 잡아와 기르는 것은 수십년째 반복되는 일이지만 최소한의 생필품 외에 물건이 더 들어온 것은 처음이다.

 

원래 있던 물건들은 옷, 신발, 책상 위에 놓인 동화책 몇 권, 한구석에 둔 게임기와 물주전자 정도였는데 어느샌가 이 지하실에 물건이 늘어나고 있었다.

 

저 방의 구석자리에는 목검이 생겼고 요리와 책만 놔두기에는 너무 넓었던 수제 식탁에는 체스판이 놓였다.

 

“...뭐 어때, 그보다 이것 봐. 오늘 널 위해 가져온 거야.”

 

엔리코가 꺼내든 것은 가장자리가 닳아 낡은 감이 있었지만 꽤나 소중하게 보관을 잘 한 검은 가죽 목걸이였다.

 

목걸이는 목에 딱 달라붙는 쵸커였는데 그 가운데에는 작은 십자 오팔이 박혀 있었다.

 

걸어 줄게.”

 

그 사람은 슬슬 반항을 포기하게 되었고 엔리코는 뒤로 돌아가 다정스러운 손짓으로 그의 목에 목걸이를 걸어 조였다.

 

너무 조이지 않는 적당한 길이로 조이고는 앞으로 돌아와 감상이라도 하듯 위 아래로 훑어보고는 정말 기쁘다는 듯 활짝 웃었다.

 

좋아, 마음에 드네.”

 

 

[홀인/엘리X미셸] 눈오는 날

2015. 12. 15. 22:47 | Posted by 호랑이!!!

파티 이후, 미셸은 엘리와 함께 지내고 있었다.

 

비록 엘리가 사는 곳은 따뜻한 지역이었지만 미셸이 더운 기후에 적응할 짬도 없이 이 나라 저 나라로 날아다녔다.

 

한달째 다니는 여행의 목적은 일이 절반, 그리고 신혼이 절반이다.

 

남들은 따뜻한 해변가로 신혼여행을 간다지만 엘리와 미셸의 이번 목적지는 눈 내리는 프랑스 시골이었다.

 

눈 내리니까 인터넷이 안 잡히네요.”

 

일부러 안 잡히는 곳으로 왔는걸요, 미시엘.”

 

빌린 숙소는 책에 나올 것 같은 한적한 통나무집이었다.

 

안락의자 옆에 따뜻하고 환한 난롯불이 타오르고 은은하게 말린 꽃향기가 나는.

 

엘리는 보란 듯이 권외지역이라고 뜨는 핸드폰을 들어 보였다.

 

21세기에 터지지 않는 핸드폰이라니.

 

신선해하며 미셸은 핸드폰을 침대 위로 던져놓았다.

 

왜요? , 바쁜거 아니었어요?”

 

그래도 신혼이니까요.”

 

눈이 사박사박 내리고 있었다.

 

이미 바깥은 무릎까지 올 정도로 눈이 쌓여 있었는데도 계속해서 내리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눈 터널도 만들 수 있을 것 같네요."

 

엘리는 배시시 웃으면서 여행가방을 열었다.

 

올 때는 답답하다고 쓰지 않았던 모자나 목도리같은 것이 안에 들어있었다.

 

방울 달린 털모자, 복슬복슬한 목도리, 벙어리 장갑까지.

 

"이게 다 뭐예요."

 

벙어리 장갑이라니 애도 아니고.

 

미셸은 웃으면서 벙어리 장갑을 들었다.

 

"이제부터 나갈 거라서."

 

눈내린 바닥에 누워 천사 자국을 남기고 커다란 눈사람을 만들어 목도리를 둘러 주고 뒤에 숨어서 눈뭉치를 던지거나 눈토끼를 만들거나.

 

해가 져서 더는 놀지 못할 때까지 놀고 나니 온몸이 눈에 흠뻑 젖어 있었다.

 

모닥불 앞에서 눈에 젖고 얼어서 뻣뻣해진 목도리를 벗어 탁탁 털다가 미셸은 핸드폰의 사진을 넘기는 엘리를 돌아보았다.

 

"실컷 놀았네요. 눈 처음 봐요?"

 

코끝이 빨갛게 얼어서 엘리는 잘 나온 사진을 발견했는지 씩 웃으며 핸드폰을 들어보였다.

 

"미시엘이랑 보는 눈이 처음이예요."

 

 

사이먼은 그 실험실 이후 꽤나 여유로운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그동안의 삶에 비해서도, 객관적으로도.

 

늘어지게 잤다가 일어나서는 책(대개 동화책)을 읽거나 산책을 하거나, 이도저도 아니면 다시 누워서 잠들기도 했다.

 

밀러의 별장에서.

 

오늘도 느지막지 일어나서는 푹신한 베개에 얼굴을 부비다 눈을 떠 보니 시곗바늘은 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문을 열고 나가서 웅얼웅얼 말하지만 평소의 잘 잤나내지는 지금은 아침이 아니다같은 인사는 들려오지 않는다.

 

뭐지? 이 아저씨 또 납치당했나?

 

눈이 번쩍 뜨여서 테이블이며 서재를 우다닥 뛰어서 살펴봤지만 역시 없다.

 

대신 냉장고 앞에 작은 쪽지가 붙어 있었다.

 

6시 전까지 돌아오지 -M-

 

사이먼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기울이며 그 쪽지를 들어 읽다가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그 뒤로 두 시간은 베개를 끌어안고 뒹굴면서 보냈다.

 

그 뒤로 한 시간은 베개를 끌어안은 채 텔레비전을 보다 만화영화가 끝나서 아예 꺼 버렸고.

 

이제 뭐 하지.

 

그렇게 뒹굴거리다가 뭔가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사이먼은 벌떡 몸을 일으켰다.

 

아까까지 끌어안고 있던 베개는 소파에다 아무렇게나 던져놓고 부엌으로 후닥닥 달려가서 놓여있는 요리책을 펼쳤다.

 

이건 어려우니 패스, 이건 내가 싫어하니 패스, 으웩 이거 재료 손질 어려워 보인다.

 

그렇게 팔랑팔랑 넘기다가 이 정도면 괜찮겠다 하는 부분을 발견했다.

 

, 이거라면... 할 수, 할 수 있...있어.”

 

버섯과 가지와 마늘 등을 다지고 썰고, 만들고 난 곳을 치우다보니 시간이 훌쩍 사라졌다.

 

이제 맛있는 냄새를 풍기는 냄비 안을 들여다보았는데 시계를 보니 아직 6시까지는 30분이나 남았고.

 

아저씨가 집 안에 담배 냄새가 배는 걸 싫어할 거 같으니, 사이먼은 테라스로 나갔다.

 

담배를 꺼내물고 불을 붙인 뒤 한 모금 빨아들이니 마음이 편해졌다.

 

그 때 받았던 것을 꺼내보려고 습관적으로 주머니를 뒤적이니 바스락 소리가 났다.

 

비닐 끄트머리를 손가락으로 집어 꺼내는데 뭔가 이상하다?

 

비닐 안에 있어야 할 것이 없다!!!

 

이제 막 꺼내문 장초지만 주저없이 재떨이에 비벼 끄고 사이먼은 방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자다가 침대에라도 떨어뜨렸나?

 

씻다가 떨어뜨렸나?

 

설마 변기 안에 떨어진 건 아니겠지!

 

허둥지둥 방 안을 뒤지는데 저 멀리에서 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삑 삑삑 삐리릭.

 

사이먼은 잘 때 덮었던 이불을 확 펼쳐들었다가 그 아래 아무것도 없자 후다닥 뛰어나갔다.

 

아저, 아저, 아저씨.”

 

다녀왔다.”

 

, . 다녀오, 다녀오셨어요. 그런, 그런데... 없어, , ! 어요...!”

 

당황했는지 말이 마구 엉키기 시작했다.

 

사이먼은 말하는 대신 주머니에서 경찰들이 증거품을 보관할 때 쓰는 것과 비슷한 지퍼가 달린 비닐을 꺼내들었다.

 

경찰이 쓰는 것과는 달리, 매일 주머니에 넣고 다니느라 구깃구깃하고 하얗게 자국이 남았지만.

 

이거 찾나?”

 

밀러는 주머니에서 상자를 꺼냈다.

 

작은 상자였고, 그걸 열자 가느다란 끈이 달린 총알이 굴러나왔다.

 

“....”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는 것 같길래, 끈을 달아놓았네.”

 

사이먼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그걸 받아 목에 걸었고 맥이 풀린다는 듯 그의 몸에 푹 기댔다.

 

“...말하는 걸 깜박했군.”

 

사이먼은 다시금 한숨을 내쉬고는 그의 코트와 가방을 받아들었다.

 

“...이거, 케이, ?”

 

첫눈에 보아도 제과점 상자같은 것을 보고 사이먼은 작은 비닐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전에 자네가 케이크 좋아하는 것 같길래. 겸사겸사 사 왔네.”

 

사이먼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의 어깨 즈음에 머리를 힘주어 부볐다.

 

머리로 밀어내듯 부비고는 케이크를 거실의 커피 테이블에 놓고 포크를 꺼냈다.

 

시럽에 재운 블루베리와 과일들이 듬뿍 올라간 치즈 케이크.

 

커다란 걸로.

 

“......”

 

많이 들게.”

 

사이먼은 커다란 컵에 우유를 잔뜩 부어 왔다.

 

아저- 아저씨, -”

 

한쪽 손으로는 총알에 걸린 끈을 만지작거리고 꼬면서 다른 손으로는 케이크를 푹 떠서 내민다.

 

밀러가 입을 딱 닫자 사이먼은 배실배실 웃으면서 다시 입가로 케이크를 디밀었다.

 

, -”

 

“....”

 

입을 벌리자 케이크가 닿을 듯- 하다가 쏙 사이먼 쪽으로 돌아간다.

 

한입 가득하게 물고 우물거리다가 사이먼은 이번에는 진짜라며 다시 포크를 내밀었고 밀러가 입을 벌리자 다시 쏙 사이먼의 입으로 들어갔다.

 

밀러는 삐딱한 표정을 짓더니 냉큼 그의 손에 들린 포크를 뺏어다 퍽퍽 케이크를 잘라 입에 넣었다.

 

그렇게 커다란 케이크를 반 넘게 먹고, 입이 달아 우유를 마시다가 밀러는 저 주방 안이 보였다.

 

아침에 나갈 때는 없었던 냄비가 가스레인지 위에 놓여 있었다.

 

저 냄비는 뭔가?”

 

, . ... 만들었, 어요.”

 

밀러는 포크를 내려놓았다.

 

그럼 밥부터 먹었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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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캠/파] 어린 파의 하루

2015. 9. 18. 20:01 | Posted by 호랑이!!!

어느 뱀 가는 아예 사시사철 따뜻한 대륙에서 산다고들 한다.

 

그러나 교사 가(蛟蛇 家)는 그 몸이 튼튼하고 강인한 것을 자랑으로 하였기에, 부러 혹독한 겨울이 존재하는 곳에 그대로 남았다.

 

구렁이라고는 하나 용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자들도 아니고, 본성이 음습하고 뒤틀린 자들이 다수였다.

 

그래서 교사 파, 아명 은 살아남을 수 있었다.

 

==

 

가문의 아이는 사촌이 아닌 형제로서 공동으로 길러진다.

 

실제로는 삼촌의 아이, 고모의 아이인 사촌으로서 인식하면서도 누이, 형제로 부르며 함께 숙식하고 한데 뒤엉켜 자란다.

 

악만은 예외로.

 

누이 무엇하오?”

 

현을 탄다.”

 

아이들 중 가장 윗사람인 영은 윤기가 흐르는 검은 머리에 새까만 눈을 가지고 있었다.

 

언제나 비녀나 구슬끈으로 틀어올려 묶지만 겨울에 풀어내린 모습을 보면 그 머리는 찬란하게 흘러내리는 폭포수 같았다.

 

그 머리를 볼 때면 파는 하얗고 부슬거리는 제 짧은 머리를 만져보곤 했다.

 

고양이같은 눈으로 악기를 연주하다 그녀는 악이 들어오자 손을 멈추었다.

 

저도 악기를-”

 

그러다 손 다치면 안되잖니? 너는 우리보다 몸이 약하니까.”

 

저 말은 선의에서 나오지 않는다.

 

악은 영이 악기를 연주하는 모양을 한참이나 빤히 바라보다가 나갈까 하여 자리에서 일어났다.

 

, 악아.”

 

영은 연주를 멈추고 악을 불렀다.

 

이것 먹으렴.”

 

손에 들린 것은 악이 싫어하는 향이 나는 사탕이다.

 

그것을 입에 넣으니 뻔히 그것을 싫어하는 줄 아는 영의 입매가 보기 좋게 일그러진다.

 

정원으로 나서면, 저 멀리 마당에서 형제들이 공을 가지고 노는 것이 보인다.

 

형제라고는 하나 악보다 한두 자는 더 큰 사람이 대다수에 노는 것은 거칠어서 낄 수도 없지만 꼭 자기가 근처에 있으면 부러 평소보다 더 험하게 몸을 움직인다.

 

저번에는 그래서 한참이나 가만히 보고 있었더니 자기들끼리 더 열이 올라 누군가의 다리가 부러졌다던가.

 

그러고는 한 자리가 비었으니 보고 있던 네가 들어와라 하면서 반시진이나 뛰게 했다.

 

그땐 정말 죽을 뻔 했지.

 

악은 계속 걸음을 옮겨서 아기들 방으로 갔다.

 

교사의 아이들은 하루에 한 뼘씩 자란다고 하지만(헛소문이다) 걸음마를 하고 혼인 전의 누이들이 돌보게 되기까지는 한두해가 걸린다.

 

식사 시간이 끝나고 낮잠 시간인지 벌써 많이 자란 아이들은 해 아래에서 뒹굴거리며 자고 있었다.

 

아기 냄새나.

 

아이가 울 것 같으면 얼러서 달래고, 기저귀 때문에 울 것 같으면 잽싸게 갈아 주고.

 

악은 주위에 사람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 해가 반쯤 드는 구석에 누웠다.

 

이따끔 아이 칭얼거리는 소리가 나고, 종이 바른 문 너머로 들어오는 해는 따뜻하고.

 

꼬박꼬박 졸다가 저만치서 전해지는 발걸음의 진동에 고개를 들고 서둘러 방을 빠져나갔다.

 

이미 해는 산 너머로 많이 넘어갔고 마당에 가득하던 아이들 기척도 사라져 있었다.

 

다시 정원 쪽으로 발걸음을 하다 보면, 아이들이 사는 별채의 창호지 너머로 아이들 노는 것이 보인다.

 

그림자놀이, 술래잡기, 나무인형 가지고 노는 모습, 그림 그리는 모습.

 

이야기책 읽는 소리, 잡담하는 소리, 말놀이 하는 소리, 그리고 타닥타닥 난로에서 나무 타는 소리.

 

악은 정원 사이로 계속 걸었다.

 

하얀 돌로 만든 길 위로 계속 걷다 보면 작은 별당이 보인다.

 

작고 깔끔하고 춥지는 않은.

 

그리고 따뜻하지 않은.

 

신을 벗고 들어서면 나무 담긴 항아리의 불부터 확인한다.

 

다 젖었다.

 

또 아이들이 와서 장난질을 치는 모양이다.

 

담긴 재와 남은 나무토막을 버리고 새로 흙을 담고 그 위에 장작 남은 것을 구해와 넣은 뒤 불쏘시개를 담는다.

 

아기들 방에 가면 누군가 있을테니 불 좀 빌려달라고 해야겠다.

 

그리고 오늘 밤도 책과 신문으로 지새야지.

 

악은 이불 가득한 위에 책상을 꺼내놓고 그 위에 어른들이 보고 던져놓은 신문과 실로 엮은 책을 꺼내 올려두었다.

 

매일같이 사용하느라 먼지 앉을 틈도 없는 작은 단지를 들고 온 길을 되돌아가니 셋째 고모가 아이들을 보고 있었다.

 

회요요 고모님.”

 

불이 없나 보구나.”

 

쌀쌀맞은 목소리였다.

 

뱀이 불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것은 목숨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것과 같다, 너는 한여름에 자다가 동사할지도 모른다는 잔소리를 한바탕 듣고 나서야 마침내 작은 불을 담을 수 있었다.

 

악은 그것을 들고 다시 방으로 돌아갔다.

 

이미 밖은 어두워져서 하늘에는 별과 달이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저 달이 해처럼 따뜻하면 밤에도 춥지 않을 텐데.

 

서둘러 방으로 돌아가 항아리에 불을 담자 얼마 안 있어 따뜻하게 타올랐다.

 

악은 기름등잔에 불을 붙이고 신문을 펼쳤다.

 

세상 어딘가에는 피가 해를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세상 어딘가에는 동물로 변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고.

 

세상 어딘가에는 소매가 좁은 옷을 입는 사람들이 있고.

 

세상 어딘가에는 하루 세 끼를 먹는 사람들이 있고.

 

세상 어딘가에는 꼬리달린 사람들이 있고.

 

세상 어딘가에는.

 

세상 어딘가에는.

 

그리고 언젠가는,


세상 어딘가에서 나도 부부의 연을 맺어 내 아이를 품에 안아보겠지.

 

 


[Jail] 니키타/이화 - 형제라면

2015. 7. 16. 15:54 | Posted by 호랑이!!!

교도소에서 보내는 편지는 보내는데 생각보다 오래 걸린다.

 

니키타 네를린, 현재 복역 중인 죄수는 아주 오래 전에 알게 된 동생뻘 친구에게 하나, , 도합 여섯장의 편지를 적어 부쳤다.

 

그리고 그것이 장장 삼 개월 지나서.

 

이화는 편지를 받았다.

 

기억이 사라졌는데.

 

교도소에서 편지가 온다.

 

이 사람은 누굴까, 예전의 는 조직폭력단에라도 들어있었던 걸까.

 

니키타는 무슨 드라마 이름 같은 이름인데, 여자인가? 글씨체가 부드러운걸 봐서는 여자야.

 

이화는 편지 마지막 줄을 손가락으로 밑줄까지 그어가며 읽었다.

 

아주 재미있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 한 번 놀러와

 

놀러오라니, 교도소로?

 

뭘 가져가지? 뭘 입어야 하지? 기억 잃었다고 얘기를 해야 할까?

 

여러 가지 고민을 하다가, 마침내 이화는 한 손에 초콜릿이라던가, 여성들에게 인기 있다는 로맨스 소설까지 한 권 사서 들고 왔다.

 

저기... 오늘 면회 오겠다고 했던 이화인데요.”

 

그러자 무뚝뚝해 보이는 간수가 이쪽이라며 안내해주었다.

 

면회는 투명한 부스 안에서 이루어졌는데 감시를 위해서라며 그 간수는 안으로 들어와 구석의 의자에 앉았다.

 

편지를 교환했던 그 사람이 곧 온다니.

 

내용이랑 말투만 봐서는 키 크고 파마한 금발에 예쁜 누나일까.

 

두근거리는 가슴에 손을 얹고 심호흡을 하는데 문이 열렸다.

 

들어온 것은 까만색에 가까운 갈색 머리 남자.

 

오오, 키 크다.

 

곱슬 머리? 파마 머리인가? 이제 거의 다 풀렸네.

 

밤색 머리고, 여기서 간수 하기에는 엄청 부드러워 보이는 인상인데-

 

키는 크지만, 하고 덧붙이는데 뭔가 이상하다.

 

옷이, 옷이 주황색 죄수복이야.

 

이화!”

 

꽤 반가워 보이는 표정으로 자신의 이름을 부른다.

 

금발 파란눈 170cm의 누나의 환상이 쨍그랑 쨍그랑 깨진다.

 

니키타... 네를린씨?”

 

왜 그렇게 어색해. 하하, 오랜만이야.”

 

니키타는 팔을 활짝 벌려 와락 끌어안았다.

 

잘 지냈어? 어때, 뭐하고 지냈어? 감옥 밖 얘기 좀 해줘.”

 

다행히도, 서로 좋지 못한 사이는 아닌 것 같다.

 

앉지도 않고 선 채로 밖에서는 지내기가 이렇고, 저렇고, 얘기하다가 니키타가 예전 얘기를 할 것 같아, 이화는 먼저 입을 열었다.

 

제가 약을 잘못 먹어서 예전 기억이 없어요.”

 

니키타의 얼굴이 웃는 그대로 굳었다. 일순이지만.

 

그리고 의자를 뒤로 당기더니 털석 주저앉았다.

 

“...교도소에서 오라는 편지가 왔다고 냉큼 오면 어떡해.”

 

내가 마약왕이고 연쇄살인범이고... 연쇄살인범은 맞지만, 아무튼 그래서 너한테 몹쓸 짓을 시키거나 하려고 하면 어쩌려고 이렇게 온 거야? 어디 중국이라던가 러시아에서 편지가 와도 무시하기 어렵지 않은데, 다른 곳도 아니고 교도소라고 교도소! 내가 뭐하는 사람일 줄 알고? 그냥 그대로 눈 딱 감고 편지를 태워버리고 그런 일 없다는 듯이 모른체하면 되었을 거 아냐? 예전부터 스스로를 좀 아끼라고 했더니 이거 하나도 안 변했어 아주.

 

니키타가 다다다 잔소리를 하자 이화는 양 손을 들어 귀를 막았다.

 

하하.

 

니키타는 어이없다는 듯 웃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억 돌아오면 찾아와, 아마 그때까지도 있을 것 같으니까.”

 

재미있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면서요?”

 

이화를 한 번 보고, 니키타는 여느 때처럼의 웃는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교도소도 국가 시스템이라고, 내가 모르는 내 이야기도 있더라고.”

 

너랑 나, 라고 하는 듯이 손가락으로 이화 쪽을 가리켰다가 자신 쪽을 가리킨다.

 

형제.”

 

, 눈 동그랗게 변했다.

 

니키타는 조심조심 손으로 이화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저씨... 아니, ...?”

 

아저씨.”

 

아저씨, 덧붙이고 니키타는 다시 이화의 머리를 헝클어뜨려 놓았다.

 

 

[Ss어필] 엘커, 사망

2015. 6. 29. 01:17 | Posted by 호랑이!!!

안녕하세요!”

 

발레리안은 꽃집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여기 꽃다발을 어머니께서 참 좋아하시더라.

 

오늘은 뭐가 좋을까- 백합? 장미?

 

섞어달라고 해야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면서 안면을 익혀둔 꽃집 주인을 찾는데 꽃집 주인이 안 보인다.

 

오늘은 과자도 구워 왔는데.

 

엘커~ 엘커~? 어디 있어요?”

 

꽃을 다듬는 테이블 너머, 새 의자가 놓인 것이 보였다.

 

등받이가 넓적하고 커다란 거.

 

버드나무로 짠 건가? 예쁘다!

 

거기 다가갔더니 익숙한 사람이 누워 있는 게 보였다.

 

“...엘커, 자요...?”

 

작게 속삭였는데 조금도 반응하지 않는다.

 

“...엘커어-”

 

조금 목소리를 높여서.

 

그러나 일어나지는 않는다.

 

“...자나보네...”

 

꼬리를 늘어뜨리고 느릿하게 흔들었다.

 

더운 여름날에, 문을 열어둔 덕인지 살랑살랑 시원한 바람이 불고.

 

무당벌레 한 마리가 위이잉 날아 들어오더니 엘커의 콧잔등에 앉았다.

 

, 벌레...”

 

발레리안은 손가락으로 조심스럽게 벌레를 털어내다가 예상보다 세게 엘커의 코를 쳐 버렸다.

 

, , 죄송해요 엘커...!”

 

그러나 엘커는 미동도 않는다.

 

발레리안은 그것을 내려다보다, 안색이 창백해졌다.

 

엘커! 엘커!!! 엘커어어어어어어!!!!!!!!”

 

꿈쩍도 안 한다.

 

안돼, 엘커! 왜죠! 왜예요!!!”

 

갱 일 때려쳐서? 그래서 암살이라도 당한 거예요!?!?!???

 

발레리안은 열심히 엘커를 흔들었다.

 

 

 

 

 

 

엘커는 눈을 떴다.

 

감기약 때문인지 정말 너무 푹 잤다.

 

어두운데, 밤인가?

 

... 가게 문 열어놓고 자 버렸는데... 도둑 들지는 않았겠지.

 

눈을 뜨고, 몸을 일으켰다.

 

코 끝에 백묵 냄새가 스쳤다.

 

... 뻐근하다...”

 

우당탕.

 

뭔가 넘어지고 어질러지는 소리가 났다.

 

뭐지?! 도둑인가?!

 

주위를 둘러봤더니, 제 실루엣을 따라 분필이 그어져 있고, 주위에는 노란색 접근금지 테이프가 둘러쳐져 있었다.

 

“...발레리안...?”

 

, 엘커?!”

 

눈가가 빨갛게 되어서, 운 것이 분명해 보이는 발레리안이 다른 가게 리본이 달린 국화 화분을 들고 있었다.

 

그건 뭐예요?”

 

, 선물...?”

 

“...여기 꽃집이예요, 발레리안.”

 

 

[럽토] 지아코베, 사망

2015. 6. 28. 23:31 | Posted by 호랑이!!!

회사.

 

아델리 펭귄, 딘 델리는 커피를 타다가 저 멀리 비품실에서 누군가의 발이 비쭉 튀어나온 것을 발견했다.

 

사람 발? 아니면 마네킹? 아니면 또 무언가의 소품?

 

타다 만 커피를 내려놓고는 그 쪽으로 쪼르르 가 보았다.

 

이 구두,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해서 문을 열고 들어가 봤더니 상자 위에 지아코베가 널부러져 있었다.

 

농땡이 동지~ 여기서 자면 안돼요~”

 

여기 있다가 사장님한테 걸리면 감봉 당한다구요~ 아니면 야한 벌을 받거나~

 

몸을 잡고 슬슬 흔드는데도 일어나지 않는다.

 

숨은 쉬나? 하면서 손가락으로 코를 한참이나 집어 보았지만 아무 반응이 없다.

 

죽었나?!”

 

딘은 놀라 지아코베를 마구 흔들어댔다.

 

안돼요, 안돼요! 죽으면 안 돼요!!! 다른 것도 아니고 복상사라니, 이것도 산재 처리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구요!!!”

 

한참 흔들었지만 미동도 없다.

 

이거 어쩌지? 119를 불러야 하나?!

 

“119가 몇번이더라!!!”

 

딘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1...1....

 

그리고 덥썩, 지아코베의 손이 딘의 팔을 잡았다.

 

꺄아아아!!!!”



[에러에게] 한가란과 트리거

2015. 6. 9. 02:48 | Posted by 호랑이!!!

한가란.”

 

보스?”

 

꽃이야? 예쁘네~”

 

그 말에 한가란은 몸에서 자란 꽃 몇 송이를 꺾어다가 내밀었다.

 

그것을 받아들고, 트리거는 짐짓 관심이 있는 양 향기를 맡아 보았다.

 

그래서, 네가 죽이고 싶다고 했던 사람은 누구야? 도와줄까?”

 

뭐가 필요해? ? 도구?

 

, 비밀(하트)입니다.”

 

한가란은 무표정으로 말 끝에 하트를 붙였다.

 

입술 앞에는 손가락까지 하나 대고.

 

뭐든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해, 도와줄게.”

 

그 말에 한가란은 무표정인 상태였지만 분위기만은 즐겁게 웃는모습으로 비쳤다.

 

그것도 트리거만 알아볼 수 있었겠지만.

 

정말?”

 

정말.”

 

재확인하듯 묻고, 마침내 한가란의 입꼬리는 트리거에게서 배운 것처럼 슬쩍 올라갔다.

 

저 웃었습니다.”

 

잘했어.”

 

칭찬, 머리를 쓰다듬고.

 

한가란은 자신의 몸에서 자라난 꽃송이를 슬쩍 쓰다듬었다.

 

==

보스, 저건 뭐예요?”

 

“‘저거라고 하면 안되지, 사람인데.”

 

근데 저거’, 말도 잘 안하고, 보스만 노려보고 있는데?”

 

연구소가 폭파되고 얼마 되지 않아, 딕토에는 멤버 하나가 더 늘었다.

 

그들의 보스가 손수 주워온 가운데가 검은 흰 머리에 자주색 눈의 남자.

 

고양이마냥 소파나 어딘가 푹신하고 따뜻하고 양지바른 곳에서 쪼그리거나 웅크린 자세로 이 쪽을 바라보는데.

 

진짜 고양이라면 귀엽기라도 하지, 다 큰 남자가 이쪽을 관찰하는 게 달가울 리 없다.

 

보스, 저 팬더 엄청 거슬린다고요!”

 

팬더 아냐, 인간이야.”

 

이거든 저거든! 하얗고 까만데!”

 

하얗고 까맣고 동양인이라고 팬더라고 하면 그거 인종차별 아냐?

 

트리거가 소심하게 태클을 걸었지만 상대는 아무렴 어때!하고 말았다.

 

그래도 보스인데, .

 

그럼 말이라도 하게 하면 되지!”

 

트리거는 한가란에게 척척 다가갔다.

 

해 드는 구석에 쌓아둔 쿠션에 몸을 기대고 이쪽을 바라보던 한가란은 시선을 올려서 반쯤 누운 그 자세 그대로 눈을 마주보았다.

 

안녕!”

 

“...”

 

“...안녕~”

 

“...”

 

트리거는 잠시 허리를 숙였던 것을 펴고, 양 허리에 손을 얹으며 설교라도 하듯 입을 열었다.

 

사람이 안녕, 하면 너도 안녕, 해야지!”

 

마지막에 소리가 조금 커졌더니, 한가란은 몸을 조금 뒤로 빼었다.

 

그에 트리거가 몸을 숙여서 조금 더 다가갔더니, 한가란은 조금 더 뒤로 몸을 뺀다.

 

한가란!”

 

그러자 몸을 기대던 베개까지 밀어내고 뒤로 파사사삭 물러난다.

 

, 구석이다.

 

트리거가 다가가서 다시 몸을 숙이자, 한가란은 뒤로 물러나려다 뒤가 막혔다는 것을 깨닫고.

 

너도 안녕~ 해주면 좋잖아? , 따라해봐. 안녕~”

 

한가란은 고개를 들고, 뒤로 빼었던 손을 앞으로 내었다.

 

악수라도 하려나, 트리거가 손을 내미는 순간 한가란은 주먹을 휘둘렀다.

 

, 보스! 맞을 뻔 했잖아요! 그 팬더, 역시 내다버리라니까!”

 

아 쫌! 냅둬!”

 

그 부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방을 나가버렸고, 트리거는 주머니를 뒤져 작은 막대사탕을 꺼냈다.

 

소리질러서 놀랐지? 애도 아니고, 이걸 보상으로 주는 건 좀 그렇지만.”

 

싫으려나, 하고 다시 주머니에 넣으려는 순간 손이 트리거의 손목을 잡았다.

 

“...안녕.”

 

?

 

트리거가 놀랄 짬도 없이, 한가란의 손은 그의 손에서 사탕을 가져갔다.

 

 

 

 

 

안녕~”

 

안녕하십니까.”

 

, 뭐야.”

 

트리거와 한가란이 자연스럽게 인사를 주고받자, 일전의 부하는 고개를 갸웃했다.

 

말 할 줄 알았네요? 저 팬더.”

 

안녕.”

 

, 쟤 방금 나한테는 반말했어!

 

그렇게 입을 열려고 하는데, 한가란은 불쑥 그의 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팬더 아니고, 사람. 입니다.”

 

워 워.

 

부하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가, 그들을 한 번 훑어보더니 자리를 떴다.

 

빨리도 길들였네, 보스.

 

 

[Ss어필] 엘커와 발레리안의 놀이동산 간 이야기

2015. 5. 26. 19:29 | Posted by 호랑이!!!

“엘커! 놀이동산이예요!”

 

쨍쨍한 태양, 후끈한 열기.

 

그리고, 넘치는 사람들.

 

그 사람들 사이에서 엘커는 챙이 넓은 밀짚모자를 쓰고 꽃집에서 입곤 했던 검은 티셔츠를 입고 서 있었다.

 

발레리안은 넓은 지도를 펼쳐들고는 꼬리를 마구 휘두르며 볼펜으로 놀이기구 그림에 체크를 해 댔다.

 

“일단 시작은 바이킹- 그리고 그 다음은 롤러코스터랑-”

 

엘커는 왠지 발레리안이 좋아할 것 같은 음료수와 솜사탕을 파는 가판대를 힐끗 보고는 뭔가를 중얼거리는 발레리안에게 다가갔다.

 

“그럼, 타러 갈까요?”

 

“넵!”

 

사람은 많았다.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사람은 많았다.

 

덕분에 장장 30분을 기다리고 바이킹에 오를 수 있었다.

 

올랐는데, 엘커는 맨 끝자리로 가려는 발레리안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엘커, 저기 두 자리가 비었...”

 

그러나 엘커가 발레리안을 잡아당기는 동안 그 자리에는 다른 사람들이 앉아 버렸다.

 

끝의 자리는 거의 다 찼는데 다만 가장 가운데에는 몇 자리가 비어 있어서 발레리안과 엘커는 결국 그 자리에 앉았다.

 

안전바가 내려오고 바이킹은 위 아래 위위 아래로 흔들려서 마칠 즈음에는 끝에 앉기를 기대했던 발레리안도 축 쳐진 꼬리를 다시 힘차게 흔들었다.

 

여기까진 좋았다.

 

높이높이 올라갈 때마다 손도 번쩍번쩍 들었고, 재미있었고.

 

그래, 여기까지는.

 

그러나 바이킹에서 내려오고서는.

 

“엘커! 저기 봐요, 헬륨 풍선! 풍선 망치랑 철퇴예요!”

 

“그거 지금 들고다니면 다 짐이예요 짐.”

 

이라던가.

 

“...발레리안, 저 사실 저렇게 흉악한 건 못 타요.”

 

“저거 그냥 평범한 공중그네인데요!”

 

“안돼 안돼, 그거 재미없고 흉악해요.”

 

라는 상황이 이어졌다.

 

결국 발레리안은 잔뜩 동그라미를 치고 계획했던 동선을 전면 취소했고, 겨우 롤러코스터 하나를 더 타고 나서는 둘 다 땡볕에 지쳐 놀이공원 내의 식당으로 갔다.

 

식당은 주로 아이들이 좋아할 것 같은 메뉴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도시락을 싸온다는 선택지는 생각하지 못했던 둘은 결국 피자를 선택했다.

 

작은 피자 하나와 탄산음료를 주문해서 앉아있자 열린 창문으로 살랑살랑 바람이 불어와 땀으로 젖은 머리카락을 식혀 주었고 옆의 의자에 가방을 내려놓자 별로 든 것도 없음에도 어깨가 시원해진다.

 

“후우...”

 

“저 이거 뭔지 알아요, 소박함에서 오는 행복이예요.”

 

맛있는 피자와 시원한 음료수와 그늘과... 아아, 다시 한숨이 나온다.

 

기가 죽어있던 발레리안은 다시 지도를 펼쳐들었다.

 

“엘커, 어떤 놀이기구는 탈 수 있어요?”

 

“그럼 이것부터...”

 

회전목마 세 번, 바이킹은 중간자리로 한번 더.

 

범퍼카는 탔지만 벽을 들이받고 더는 움직이지 못했고.

 

가판대에서 구입한 츄러스와, 슬러쉬 두 개와 음료수와 물과 솜사탕과- 여러 가지들.

 

끈적해진 손을 화장실에서 씻고 나오니 밖은 이제 뉘엿뉘엿 노을이 지고 있었다.

 

“엘커, 마지막으로 관람차 타러 갈래요?”

 

“좋아요!”

 

관람차에 올라서, 천천히 노을이 지는 밖의 경치가 예쁘니 어쩌니 얘기하고.

 

나중에 나가서 밥을 먹고 오락실에라도 가자는 얘기를 하다가, 발레리안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거 되게 데이트 코스 같네요, 이상한 기분이야.”

 

그러자 엘커는 어깨를 으쓱했다.

 

“보통은 남자 둘이서 놀이공원에 오려고 하지도 않을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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