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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사/트로이 아비수스] 여행이 끝났다

2016. 3. 5. 17:02 | Posted by 호랑이!!!

트로이 F. 아비수스의 방은 어둡다.

 

환기할 때가 아니라면 대낮이라도 보라색 두꺼운 커튼을 쳐서 방 안의 빛이라고는 수제 인형이 들고 있는 양초 등불에서 나오는 희미한 빛이 전부일 때도 있다.

 

트로이의 방에는 다른것도 많았지만, 사람 크기의 인형이 다섯 체 있었는데 이것들은 희무끄레한 빛 아래에서는 더욱 진짜처럼 보였다.

 

심지어 그 인형들은 누군가를 닮았다.

 

어지간한 사용인조차도 트로이의 방은 청소하러 오는 것도 꺼릴 만큼.

 

“나 왔어.”

 

형, 형들, 그리고 누나.

 

그리고 어머니.

 

하얗게 반짝이는 머리카락을 가진 인형은 빛에 바래 살짝 옅어진 드레스를 입었지만 마치 살아있는 사람 같았고, 우아하게 두 손을 모은 채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 주위로는 마치 사용인처럼 다른 인형들이 공손하게 앉아 있었고.

 

트로이는 어머니가 돌아가실 적, 암살자가 들어왔다고 들었다.

 

어째서 내가 아니라 어머니부터 암살당하였나.

 

분명 나를 지키려다 그리 된 것이었겠지.

 

그 하얀 머리는 한때 뻑뻑하게 피가 배어 있었지만 서투른 솜씨로나마 탈색하고 손을 보니 제법 핏자국이 흐릿해져서 헌 가발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하기사 누군가의 진짜 머리카락을 가져다가 인형을 만들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겠지.

 

심지어 이십년도 넘게 지난 일인걸.

 

트로이는 여행가방을 정리했다.

 

“들어봐요 어머니, 저 여행 다녀왔어요.”

 

그것도 그 건방진 집사녀석하고요.

 

어머니가 아직 옆에 계셨다면 그 집사가 제 전속으로 배치받을 일은 없었을 텐데.

 

하필 그 자리에서 저를 구한 것이 그 인상 더러운 집사놈이라니.

 

트로이는 가방에서 그동안 깎은 나무조각들을 꺼내어 선반에 늘어놓았다.

 

“많은 일들이 있었... 아, 그만하자.”

 

새삼 어머니를 사랑하는 젊은 청년 흉내라니 우습지도 않아서.

 

트로이는 킥킥 웃으면서 사포를 꺼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부분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나를 감싸고 돌아가셨다고 생각해도 기억도 나지 않는 옛날 일이라 그다지 신경쓰이지 않는걸.

 

어째서 수많은 이야기에서는 그런 일에 그렇게나 마음을 쓰는 것인지.

 

R도 트로이도 모르는 옛날에.

 

암살자는 트로이의 어머니에게 선택의 기회를 주었다.

 

누구를 먼저 죽여 줄까.

 

암살자는 고용주에게 명령을 받았었다.

 

그 어머니가 선택한 것의 반대로 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