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봐? 저리 가서 너 같은 녀석들이랑 놀지 그래!”
날카로운 소리가 안온한 분위기를 찢었다.
괴물이라도 가까이 있는 것처럼 세리나의 주위를 감싼 우아한 레이디들이 세리나의 손을 잡고 이네스에게서 떨어지도록 이끌었다.
마치 한 무리의 새가 어린 새를 돌보듯이, 그들의 움직임은 일사불란한 데가 있었다.
그들은 세리나를 위해 긴 의자를 내오도록 하인들을 닦달했으며 가장 푹신하고 편안한 자리에 그를 앉혀 시원한 마실 거리를 손수 가져온다, 단 것을 가져온다며 종종거렸다.
“다들... 정말 좋은 분이세요. 어쩜 이렇게 다정하신지...”
그들 사이에서 세리나가 자수정 같은 그 보랏빛 눈동자를 난처한 듯 찡그리며 앉아 수줍게 감사하다는 말을 건네면 그들은 마치 이 일이 그들의 천명이라도 되는 것처럼 손을 내젓는다.
그들 사이에서 녹색 줄기가 달린 흰 꽃으로 머리를 장식한 세리나는 그 하얀 드레스까지 가냘파서 마치 물에 젖은 꽃잎처럼 투명하게 보였다.
“이봐요 영애, 너무한 것 아닙니까? 당신 때문에 다들 힘들어해요! 거기에, 레이디 세리나가 쓰러지기라도 하면 그 책임을 어떻게 질 겁니까?”
“어머나, 저 남작 영식이 나서고 있네요.”
“레이디에게 얼마 전부터 관심을 열렬하게 보냈었죠.”
그러자 얼굴이 붉어진 세리나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그 소란스러운 쪽을 보았다.
“뭐라는 거야? 웃기는군. 책을 드는 것도 아니고 검을 드는 것도 아닌 주제에 기사 흉내라도 내는 건가? 어줍잖게 가슴이나 부풀려 봤자 그 이쑤시개 같은 팔다리로는 우스꽝스러울 뿐인데!”
그러자 남작 영식은 급히 자신이 언제 그랬냐는 듯 한계까지 뒤로 젖혔던 어깨를 내려놓았다.
“세리나- 세리나, 그 핑계나 대면서 이번 연회에 이름이나 알려 보겠다는 수작질이군. 정말로 걱정이 된다면 저기 달라붙어서 시중이나 들지 그래. 한두 세대만 지나도 평민 유지로나 남을 자가 정말로 남을 걱정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연회장의 대리석 위를 굴렀다.
“레이디 이네스는 오늘도 여전하네요.”
세리나 곁의 사람들이 부채를 들었다.
그들은 조금 더 세리나 곁에 붙어 앉으며 잔에 차를 채우고 아가씨를 돌보는 시녀처럼 단 과자를 집어 먹여 주었다.
“연회장이 다 울리는 것 봐요. 상식이 없다니까.”
“다들 싫어하는데도 꼭 참석하는 것 봐요. 뻔뻔하기도 하지.”
“와 봤자 싸움밖에 하지 않는데도 말이에요.”
그들 중 가장 어린 아가씨가 흥, 소리를 내며 주먹을 꽉 쥐었다.
“저런 사람이 세리나 님이랑 비슷한 색 눈을 가진 것도 별로예요. 그래봤자 가장 아름답고 현명하게 빛나는 건 세리나 님의 눈인데도요.”
“어머나 어머나, 그래도 그렇게 말하면 안 돼요.”
“썩 틀린 말은 아니지만요.”
그렇게 수다를 떠는데 짝 소리가 났다.
리본을 장식한 화려한 금발이 출렁였다.
아닌 척 그 소란을 즐거워하던 사람들 사이로 작게 숨 들이키는 소리가 일제히 들렸다.
흰 얼굴 위로 새빨간 손자국이 떠오른다.
사람들의 시선이, 흥미가, 속삭임이 그들에게 진득하게 달라붙었다.
“기사 흉내는 끝냈나? 하긴, 미리 평민 시늉을 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송곳처럼 날카로운 굽이 가차없이 상대를 짓밟았다.
“꿇어라, 이 볼품없는 것! 귀족 나으리들이 있는 곳에서 머리가 높다!”
결국 다른 이들의 도움을 받아 남작 영식은 자리에서 도망쳤다.
그러다 세리나와 이네스의 눈이 마주쳤다.
이네스가 눈을 한 번 찡그리자, 사람들은 이네스의 눈길에라도 닿지 않게 할 것처럼 세리나의 곁을 둘러쌌다.
심지어는 세리나의 곁에 있던 레이디들 외의 신사들도, 나이 지긋한 사람들까지도 곁에 붙어 서려 했다.
이네스는 그것을 보란 듯이 비웃고는 술을 한 잔 들어올린 뒤 적당한 의자를 찾아 걸터앉았다.
“세리나 님께 불경한 눈빛이에요, 겨우 백작가 여식인 주제에!”
“그래봐야 제깟 게 세리나 님께 뭘 어쩌겠어요.”
“레이디, 언제든 제가 힘이 되어드릴 테니...”
“이 다음에 작은 규모의 사람들 끼리 뱃놀이라도...”
“레이디 세리나.”
“우아한 세리나.”
연약한 세리나.
세리나가 몰려든 사람 때문에 덥다는 시늉을 하자 사람들은 조금 거리를 벌려 주었다.
기침이라도 한다면 다들 한마음으로 걱정하며 따뜻한 차와 겉옷을 건네고 찬바람을 막도록 테라스를 닫고 두꺼운 커튼을 쳐 줄 것이다.
그야.
대공가의 금지옥엽에게는 불치병이 있었으니까.
앞으로 며칠일지, 몇 주일지, 달일지, 해일지는 모르지만 많은 의사며 신관들이 성인을 넘기지 못 할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세리나는 잘 웃었고, 많은 것에 놀라워했고, 다정하고 상냥하고 여렸다.
모든 이들에게 세리나는 녹아 사라질 첫눈이었고 깨어나지 못할 알이었으며 피지 못할 꽃봉오리였다.
모두가 그를 아까워했고, 드러내는 재능이 만개하지 못할 것을 안타까워했으며, 거칠은 천에 손가락을 대는 것조차 아쉬워했다.
연회가 파했다.
세리나는 사람들의 무수한 인사를 받으며 마차에 올랐다.
“조용히 한 바퀴 돌아줘.”
“예, 아가씨.”
마부가 세리나의 말에 조용히 대꾸한 후 왕성 밖으로 나가 천천히 한 바퀴를 돌았다.
대부분의 마차가 빠져나가고, 한쪽 얼굴에 불그스름한 상처를 단 채 이네스가 나오자 세리나의 마차가 그 앞에 섰다.
“어쩜좋아, 얼굴에 상처가 났어.”
“괜찮아, 이런 거.”
이네스가 들어오고 문이 닫히자 세리나는 이네스의 뺨에 손을 대려다 차마 얹지 못하고 내렸다.
“이제 이런 거 하지 말자, 응? 나 정말 괜찮을 것 같아.”
장미가 수놓인 검은 드레스 위로 하얀 드레스 자락이 덮였다.
“제발.”
세리나의 손이 이네스는 검은 레이스 장갑을 감쌌다.
“너 죽을 때까지만 하기로 한 거니까. 얼마 안 남았을지도 모르잖아.”
이네스가 쾌활하게 웃었다.
세리나의 눈꼬리가 처졌다.
“하지만 봐, 이렇게 빨갛게 되어서... 이거 멍들지도 몰라...”
“그렇지만, 들었잖아. 네가 그런 소리를 계속 들으면 정말로 건강이 나빠질 거라고.”
세리나의 마부가 이네스의 집 앞에 왔음을 알렸다.
이네스는 검은 리본으로 맨 머리를 잘 정돈하고는 문을 열었다.
“그래도 이렇게 네가 수모를 겪으면 안 돼.”
“세리나. 있지, 다른 사람들이 날 무서워하는 거 알아?”
나 이거 적성에 잘 맞는 것 같아! 그렇게 말하고 이네스는 마차에서 뛰어내렸다.
세리나는 잠깐 열린 문으로 들어온 찬공기에 몇 번 기침을 했다.
불치병이 있는 대공가의 금지옥엽.
세리나도 이네스도 처음 연회장에 발을 들였던 날을 기억했다.
세리나의 건강을 염려하는 것처럼 조롱하던 말들.
세리나의 외모며 말투며 목소리까지 깎아내리던 이들.
하필 같은 날 데뷔한 같은 색 눈을 가진 이네스와 사사건건이 비교하며 ‘좋은 신붓감’으로서의 가치만 따지던 빌어먹을 작자들.
“...그렇지만... 사람들이, 내 앞에서 너를 욕한단 말이야...”
그러나 그 때에도, 누군가는 세리나를 진정으로 염려했다.
누군가는 세리나를 지켜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사람들이 자신들을 비교해야겠다면, 굳이 그들을 같은 저울에 올려두어야겠다면, 자신은 한없이 한없이 가라앉아야겠다고.
이네스는 단출하게 묶었을 뿐인 검은 리본을 끌러냈다.
그가 나빠질수록, 세리나를 박대할수록 모든 사람들이 세리나에게 상냥해졌다.
어느샌가 세리나는 모든 이의 꽃이 되었다.
가련한 아름다움을 지닌 덧없는 소녀가 되었다.
오지 않을 미래의 여인은 나라도 기울일 절세미인이 되었다.
모든 사람들이 세리나의 손짓, 눈짓에 온 마음을 기울여 응했고 세상의 더러움도 거칠음도 느끼지 못하게 하겠다는 듯이 보호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세리나의 죽음이 있어 이루어지는 일이다.
사람들은 예정된 죽음을 기다리며 세리나를 돌보았다.
그렇지만 저들 중 누가 정말로 그 죽음을 슬퍼할 것인가?
낮에는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검은 옷을 입더라도 저녁이면 만찬을 위해 진홍색 비단을 두르겠지.
하지만 누군가는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영원히 세리나를 애도할 준비를 했다.
몸에 걸치는 모든 것을 검게 물들여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세리나가 떠나도, 몇 년이 흐르더라도 자신이 검은 옷을 입는 것이 어색하지 않도록.
이네스는 새까만 드레스를 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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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리나의 이름은 카나리아에서, 이네스의 이름은 장미와 나이팅게일에서 착안하여 나이팅게일에서 따왔습니다.
원 트윗: https://twitter.com/fifi_089/status/1598315793552674817?s=20
착안: https://twitter.com/yea_aay12/status/1598719755204042753?s=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