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이렇게 되었지.
매그너스 베인은 웃는 얼굴 그대로 딱딱하게 굳었다.
그 딱딱한 손은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지만 그 손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매그너스가 아닌 다른 사람이다.
“이렇게 힘을 줄 필요는 없어.”
자, 가볍게, 가볍게, 라고 속삭이는 입가가 웃고 있다.
귓가에만 속삭이지 않아도 좀 더 나을 텐데.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더라.
거기에 대해서는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매그너스가 생각하기에 그건 정말로 어쩌다가, 라는 말이 꼭 들어맞았다.
어쩌다 보니 저 사람이랑 연락처를 주고받았고, 어쩌다 보니 저 사람이 집에 놀러오는 일이 생겼다.
어쩌다 보니 식사 이야기가 나왔고, 어쩌다 보니까.
정말로 어쩌다 보니 이 사람과 함께 요리를 하게 되었다.
알렉산더랑 자주 만나고 싶다고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까지 빨리 무언가가 진전되기를 바란 것은 아니었는데!
...그렇다고 이게 싫다는 건 아니고.
매그너스는 칼을 쥔 손을 내려다보았다.
가늘고 길게 잘린 당근이 일정한 크기로 다시 잘리는 모양은 자기 손으로 하는 것 치고는 예쁘게 잘 되고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데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정말이지 이런 건 언제 얼마나 겪던 적응이 안 된다니까.
이 소리를 래그노어가 들었다간 ‘겪어봤자 얼마나 겪었다고?’라는 소리를 호탕한 웃음과 함께 들려주었겠지만.
“매그너스.”
이런 일을 사귀지 않는 사람하고는 안 해서 잘 모르겠는데.
그냥 요리 가르쳐 주는 사람들도 이런 자세로 가르쳐 주나?
양 손목을 잡고, 귓가에 속삭이는 것도 하고.
‘방금 손목 안쪽을 만진 거야!? 착각인가!?’
이제는 잘게 썰린 야채 조각을 섞기 시작했지만 매그너스는 그런 세심한 작업보다 등 뒤에 신경이 잔뜩 쏠려 있었는데, 그러다 후욱, 입김이 목덜미에 닿자 몸을 홱 틀었다.
“알렉, 산더!”
“왜?”
“그게, 그러니까...”
알렉산더는 움찔하고 돌아선 매그너스를 내려다보았다.
휴일이라고 집에서 쉬는 중이었다는 이 사람은 자신의 방문에 머리를 손으로라도 쓱쓱 빗은 티가 났지만 뒤에서 보는 머리는 잔뜩 헝클어져 있었다.
고양이털이 붙은 하얀 티셔츠는 구겨졌고, 지문 자국이 남은 까만 뿔테안경은 커다래서.
그 너머에서 당황해 이리저리 굴러가는 눈동자도 볼 수 있다.
으음... 그게, 그러니까요, 말이지요, 하고 이어지는 것을 들어 주던 알렉산더는 웃음기 어린 눈으로 매그너스를 돌려세웠다.
“그래요, 이제 덜 할게요.”
그러자 가만히 있더니, 시간차를 두고 알렉산더의 손 안에서 어깨가 움찔한다.
안 하는 게 아니고 덜 한다고!? 라고 생각하는 것이 표정을 보지 않아도 읽혔다.
달걀 껍데기가 들어간 것 같다며 고개를 숙이자 목덜미가 드러났다.
알렉산더는 고개를 숙여 그 목덜미에 입을 맞추려다가, 고개를 들었다.
“아직은 안 할 테니까 그렇게 겁먹지 않아도 돼요.”
“겁, 안 먹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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