퀸타페드는 사방이 뚫린 것이나 다름없는 돌고래 주점에서도 가장 구석진 곳을 골라 앉았다.
돌고래 주점은 창문을 제외하고도 계단에 엘리베이터에 사람이 드나드는 곳이 네 개나 있었으므로 어느 쪽으로 앉는다 한들 등이나 사각 중 한 곳은 드러나게 되어 있었기에 굳이 오고 싶은 곳은 아니었다.
이 곳에서 제작 의뢰나 채집 의뢰를 받던 미숙한 모험자 시절에도 의뢰만 받으면 주점을 뛰쳐나가 어디든 구석진 곳에 쭈그려 앉아 제작을 했었지.
새삼스럽게 옛 생각을 하며 퀸타페드는 음식 몇 가지를 시켰다.
라노시아 특산품인 시트러스 류 과일이 듬뿍 들어간 과일 샐러드, 달걀이 올라간 피자, 그리고 품종 좋은 포도로 만들어진 포도주.
햇볕을 듬뿍 받고 자란 오렌지는 갓 껍질을 깐 것인지 온 샐러드 위에 단 향기를 뿌렸다.
레몬조차도 상큼하고 새큼한 향이 나기는 했지만 이걸 베어물면 단 맛이 날 테고.
씨만 솜씨 좋게 빼낸 올리브는 과즙이 들어차서 반질반질하게 빛났고 새까맣게 잘 익었다.
거기 섞인 포도는 까맣게 익어서 올리브와 헷갈릴 정도였는데 조금도 물러진 곳 없이 향긋하다.
퀸타페드는 준비된 식기를 밀어내고 손만 가볍게 씻은 뒤 냅킨으로 물기를 닦아냈다.
외지인을 위해 포크가 준비되긴 했지만 깨무는 순간 얇은 껍질이 툭 터지면서 과즙이 온통 줄줄 샐 테니 라노시아가 익숙한 모험가들은-혹은 현지인들이 선호하는 방식은 하나씩 손으로 집어먹는 것이니까.
하나씩 집어 입에 넣고 살짝 깨물면 얼핏 질긴 듯한 껍질이 갈라지고 혀 위로 새콤하고 단 즙이 주르르 흘러서 입 앞을 손으로 가린 뒤에 씹어 삼켜야 했다.
다음은 술.
한 잔을 주문했더니 이 해적 가득한 도시의 점원은 ‘한 잔만요?’라는 눈빛을 하고는 유리잔 가득히 짙은 색 포도주를 따랐다.
퀸타페드는 배운대로 조심스럽게 림을 잡고 빙글빙글 돌리고는 향을 한 번 맡았다.
다음으로는 혀 끝만 적실 정도로 조금 물고, 굴려야 했지.
하지만 역시 탄닌 향이 나고, 그 달고 맛있는 과일로 만들었다고는 생각도 못 할 만큼 쓰고... 이게 대체 무슨 맛이람.
이슈가르드에 처음 입성했을 때나 커르다스에서 헤매야 했을 때 감각을 둔하게 할 목적으로 술을 몇 번 마시기는 했지만 그 역시 필요에 의해 마셨을 뿐이라 역시 즐길 수 없었다.
라레타가 이런 걸 좋아하니 어떻게 취미라도 붙여보려고 했지만 수십여가지의 술을 마셔 보고도 자신이 구분할 줄 아는 것은 쓴 맛, 신 맛, 바각바각 맛 정도일까.
몇 달에 걸친 대장정이 끝난 뒤 라레타가 낸 술 알아맞히기 퀴즈에서 점수판을 받아든 퀸타페드는 대단하게 절망한 적도 있었다.
...이것도 맛은... 신 맛인가...? 거기에 쓴 맛이 있는...
일단 라레타가 좋아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지만 확신은 없었다.
저번에도 비슷한 맛이 나는 술을 한 병 가져갔는데 ‘이게 아냐!’를 듣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 전번에 마신 거랑 비슷하지 않나...?
끙끙거리던 퀸타페드는 어차피 자신의 감각으로 고민해봤자 소용이 없다는 판단을 하고는 다시 점원을 불러 건포도가 있는지 물어보고 치즈와 같이 한움큼 내어 달라고 부탁했다.
라레타가 좋아할만한 것을 찾으러 온 것이니 역시 제 혀는 믿지 말아야 겠습니다.
아무래도 전문가일테니 점원에게 추천 레시피가 있냐고 물어보는 수밖에.
그렇게 먹다 보면 비스마르크 레스토랑의 특기인 비스마르크 피자가 배달되었고 퀸타페드는 나이프를 들고 반숙 상태인 계란을 노려보았다.
이걸... 터뜨리지 않고 먹어야 할 텐데.
피자 조각을 사다리꼴로 자르면서 먹다 보면 가운데에 노른자만 남으려나.
여태껏 미동도 없던 꼬리가 스르륵, 뱀처럼 좌우로 한 번 물결쳤다.
뿔과 같은 재질의 뾰족한 비늘 끝이 나무로 된 주점 벽을 긁었다.
드득, 득, 단단한 케라틴이 몇 번이고 스치는데 근처에서 나무굽이 바닥 스치는 소리가 났다.
비늘 끝이 미세하게 일어서면서 움직임이 느려지고, 퀸타페드는 조용히 나이프를 들어 피자에 대었다.
반질반질하게 닦인 면으로 근처의 사람이 한 번씩 비추어지고 은색 날은 덜 익어 흐물거리는 흰자 속으로 파묻힌다.
걸음소리가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가까워지면 그제야 퀸타페드는 꼬리 움직이는 것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
상대는 미코테 둘이었다.
하나는 라랑 헤어스타일이 닮았고, 하나는 머리카락 색이 비슷하네.
의도하지 않았지만 페드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저기요~”
“우리 저기서 마시고 있는데, 같이 마실래요?”
...?
“...저 말입니까?”
“냐!”
헉, 라 같은 소리 냈어.
“혼자인 것 같아서요. 그 비술서를 보니 비술사 길드 사람이죠? 카벙클 부를 수 있어요?”
그제야 시선을 내리니 한 사람은 낚싯대를 허벅지에 매어 두었고 한 사람은 쌍검을 달아 놓았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림사 로민사를 모체로 둔 길드끼리 친목이나 다져보자는 건 아닌 것 같은데?
여전히 멍청한 표정을 지은 채 한 손으로는 비술서를 펴고 다른 손으로 보지도 않고 수식을 적어내려가는 한편으로는 전혀 다른 생각이 굴러갔다.
마지막 등호를 적어 답을 연산해내면 허공에서 빛이 갈라지며 노란색 카벙클이 데굴데굴 굴러나왔다.
헉, 파란색이 아니잖아? 노란색은 처음 봐. 진짜 불러줄 줄은 몰랐다-는 이야기를 듣던 어느 때에, 비상한 퀸타페드의 두뇌가 한 가지 가설을 꺼냈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입니다만.”
까딱?
그들이 의문스럽다는 듯 귀를 까딱 움직였다.
라 닮았어.
라 보고싶다.
“저는 결혼을 이미 했습니다.”
“냐!?”
“먀! 그렇게 안보인다냐!”
제법 공용어를 쓰던 쪽 역시 놀랐는지 냐투리가 튀어나왔다.
라는 냐투리 안 쓰지.
얼굴도 몸도 말투도 잘 삶은 달걀처럼 매끈매끈...
“이미 애도 둘 있습니다.”
“뭐다냐!”
“아, 조용히 해라냐... ...실례했습니다, 좋은 시간 되세요.”
그렇지만 냐투리를 쓰면 그건 그것대로 귀여울 것 같... 아니, 틀림없이 귀여워.
보통은 놀라거나 해야 냐 소리를 내는 것 같은데 라는 어지간해서는 놀라지 않으니까.
그리고 굳이 놀래키고 싶지도 않아.
볼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거나 하면 날 볼 때마다 긴장할 거잖아? 안 되지.
하지만 라가 침대 위에 동그랗게 몸을 말고 있다던가... 그런데 보들보들한 꼬리를 살랑거린다던가... 그런데 졸린 듯이 눈을 깜박깜박 한다던가... 그러다가 눈이 마주친다던가... 하품을 한다던가, 고롱거리면서 배를 위로 하고 눕는다던가... 그러다가 냐- 한다던가...
어느샌가 미코테 둘은 떠나고 없었지만 퀸타페드는 그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꼬리가 무의식의 발로처럼 물결쳤다.
그 무의식은 꼬리와 뾰족한 끝을 무디게 할 생각도 않고 마룻바닥을 탕, 내리치기까지 했다.
저 사람 한 잔도 다 안 마시고 취했네!라며 점원이 뛰어올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