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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갈리엔/데임] 오지 마!

2024. 2. 17. 20:22 | Posted by 호랑이!!!

 

아니, 우린 왜 여기로 갑니까? , 목적지는 저 쪽이라면서요? 그런데, , 굳이 둘러서 갈 이유우와아아악!”

 

비명과 함께 청년은 나무뿌리에 발이 걸려 넘어졌다.

 

낙엽도 눈도 없는 흙바닥에 경갑까지 착용한 몸은 우당탕 소리까지 요란해서 숲 안쪽의 무수한 생물들까지 다 깨울 것 같았다.

 

어디에선가는 눈이 녹아 개울이 졸졸 흐르고 여기저기에서 작은 싹이 터 녹색이 점점이 찍힌 땅의 평화로운 한때를 깨뜨리며 식식거리는 청년 곁으로 회색 털에 쫑긋한 귀를 가진 청년 둘이 와 섰다.

 

넘어지더라도 조용히 넘어져야 한다니까-?”

 

입을 막고 넘어져, 입을~”

 

갑옷 소리도 안 나게 말이야!”

 

, 그런... , 허어... 가능, 하겠! 습니까!”

 

넘어진 청년, 웨일런의 주위를 맴돌던 두 마리 청년은 그의 항의에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다 둘은 어딘가에서 무슨 소리라도 들렸는지 동시에 귀를 까딱 움직이더니 그를 놀리던 것을 멈추고 물을 뜨러 간다, 나뭇가지를 줍는다더니 분주한 꿀벌처럼 윙윙거리며 떠나갔다.

 

, 드디어 혼자다!

 

순식간에 조용해진 주위에 웨일런은 길게 한숨을 쉬고는 불을 피울 자리를 잘 고르고 낙엽이며 이것저것을 긁어모아 쌓았다.

 

고요하다.

 

명예로운 일인데다 변방에서의 생활을 동경해 스콜드로 지원을 했고 적성에도 맞는 것 같았지만... 창문조차 작은 좁은 건물 안에서 복닥복닥하게 여럿이서 생활하는 일은 영 좋지 못했다.

 

혼자만의 시간이란 정말로 좋은 거였구나.

 

부싯돌을 딱 딱 맞부딪치면 자그마한 불꽃이 튀고 그게 지푸라기에 옮겨붙기를 기다리는 작업은 단순해서 금세 빠져든다.

 

불꽃이 쏟아지는 것을 멍하니 보는데 문득, 시야 가장자리에 무언가 어른거렸다.

 

적인가?

 

아니면 식인을 하는 동물?

 

제길, 비스와 틸은 어디까지 간 거지?

 

불을 피우느라 숙인 시선 가로 다시금 흰 것이 스쳐지나갔다.

 

이번에는 분명히 보였다.

 

뻣뻣한 털로 뒤덮인 흰 꼬리다.

 

비스나 틸, 부대 사람들은 회색 털인데.

 

녹색이끼나 검은 흙에서는 지나치게 눈에 띌 법한 색이었다.

 

웨일런은 나뭇가지와 반쯤 썩은 잎을 그러모아 불을 키워보려고 했지만 큰 육식동물이 제 주위를 맴돌 때는 갑작스럽게 움직이거나 큰 소리를 내면 안된다는 것도 알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는 사이, 다시금 시야 끝에 흰 털이 스르륵 움직여 사라진다.

 

이 마물은 자신이 혼자라는 것을 알고 본격적으로 피를 빨기 전에 가지고 노는 것인가.

 

틀림없어!

 

그러나 이 몸은 스콜드라고! 그렇게 쉽게 당할 것 같으냐!

 

땅에 내려놓았던 창으로 조심스럽게 손을 뻗고, 허리춤에 찬 검을 확인한다.

 

조금씩, 조금씩.

 

제기랄, 기척이 느껴지지 않으니 나를 보는지 아닌지도 모르겠군.

 

조금만 더-

 

그리고 마침내 손가락 끝이 창대에 닿은 순간 그는 이대로 손이 붙어버려도 좋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고는 창을 바투 쥐고 등 뒤의 적을 향해 홱 돌아선다.

 

으이야아아악!”

 

그 순간, 손이 창대를 쳐서 그렇게 강한 힘이 아닌데도 그만 놓쳐버리고 말았다.

 

거대한 마물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놀랍게도 사람이었다.

 

그가 창대를 가볍게 밀어내고 떨어뜨릴 때에서야 웨일런은 그를 제대로 볼 수 있었는데 머리부터 꼬리 끝까지 희어서 겨울이라면 그가 제 앞으로 똑바로 걸어온다고 해도 눈치채지 못할 것 같았다.

 

녹지 못한 눈처럼 생긴 중년의 이는 다시금 그와 눈이 마주치자 싱긋 웃더니 친근함을 표시하듯 웨일런의 어깨에 이마를 기대고는 꾸욱 눌렀다.

 

아저씨!” “삼촌!”

 

때마침 비스와 틸이 쏘아지듯 날아와 그의 품에 안겼다.

 

풍성한 꼬리가 살랑거리며 기분 좋은 바람을 만들었다.

 

그는 방금 웨일런에게 한 것처럼 이마를 두 젊은이에게 번갈아 기대고 놓아주었고 두 사람은 신이 나서 어린 새끼들처럼 그 곁에서 장난을 치고 폴짝거렸다.

 

저기, 처음 뵙겠습니다...? 얼마전에 부대에 합류하게 된 웨일런입니다.”

 

남부 억양인데. 거기 출신?”

 

, . 항구 쪽이요.”

 

흉터가 남은 얼굴이 제법 매끈한 것과는 달리 목소리는 대화할 일이 없었던 것처럼 거칠었다.

 

그의 목이 쇠로 줄을 한 현악기였다면, 한 번 켤 때마다 쇳가루가 부슬거리겠지.

 

삼촌, 그게 아니지-.”

 

아니지~!”

 

그러자 그는 비스와 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것만으로도 무슨 의도인지 짚어낸 둘은 스스로를 가리키는 시늉을 했다.

 

이름!” “이름-.”

 

“....”

 

이해해줘, 삼촌이 새로운 사람이랑 만나는 일이 없거든.”

 

“...‘별로없는 거지.”

 

옛날에 황궁에 간 적이 있다는데 그 때 너무 새로운 사람을 많이 만난 부작용일 거야.”

 

맨날 이런 데 틀어박혀 있어서 그런 거야, .”

 

그는 신나서 까불어대는 두 청년을 못마땅하게 쳐다보다가 꼬리로 그들의 종아리를 철썩 쳤다.

 

이히히히.”

 

아야야야-”

 

두 마리가 만족스러운 얼굴로 나무 둥치에 걸터앉자 그는 웨일런이 넘어지며 부딪친 다리를 잡아들었다.

 

부츠를 벗기고, 발과 다리를 살피는 중 나오는 말은 한 마디도 없었다.

 

아저씨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아?”

 

혼자 따로 나와 산다? 그래서 이 쪽으로 온 거야.”

 

여기 혼자 산다구요?”

 

응 응, 마수도 혼자 잡고-”

 

마수우? 이제는 없지 않습니까? 없다고 들었는데!?”

 

대답을 요구하듯이 그 쪽으로 보았지만 그는 귀만 한 번 까딱할 뿐 이 쪽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답은 두 명에게서 나왔다.

 

요즘 줄어든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어릴 때 본 적 있거든- 그냥 덩치 큰 동물 같은 걸 생각하면 안돼.”

 

물론 덩치도 크지만!”

 

이만한 거- 이만큼- 하면서 팔을 벌려보이는 둘에 웨일런은 조금 질린 표정을 지었다가 봄임에도 여전히 낡고 부드러운 가죽옷을 입은 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혼자요?”

 

그는 웨일런과는 처음 만나는 것인데도 이미 오래 전부터 알던 사람처럼 다정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젠 나도 가능하지.”

 

나도라니? 또 누가 있단 말인가.

 

그가 가까이에서 고개를 돌리자 웨일런은 또 한가지 차이점을 발견했다.

 

스콜드 부대원은 이제 봄이라며 머리를 잘랐고, 여름에는 깎는다고 들었는데 이 사람은 머리카락이 길게 내려와 아직도 겨울의 한복판에 서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웨일런의 다리가 괜찮으니 이제 다시 이동하라고 이야기하였지만 아직 해가 빨리 지는 데다 배가 고픈데다 삼촌 집에 가고 싶은데다 부상자가(아닙니다!) 있다며 조르는 두 청년에게 격침당하고 작은 오두막으로 그들을 안내했다.

 

흙과 나무로 지은 집의 겉에는 이끼가 앉고 작은 새가 둥지를 튼 흔적도 보인다.

 

문을 열자 향긋하게 마른 풀 냄새가 훅 끼쳐왔고, 아담하고 정갈한 첫인상과는 달리 약초며 건조식량이며 털가죽 같은 것이 잡다한 물건과 뒤섞여 영 엉망진창이었다.

 

웨일런은 손으로 깎은 듯한 장식적인 창틀을 구경하려다 천장에 덩굴같이 매달린 돌멩이에 이마를 부딪쳤다.

 

으악!”

 

조심해! 여긴 완전-”

 

전쟁터 같다니까?”

 

그의 손가락이 벽을 툭툭 두드렸다.

 

그들이 사용하는 모종의 신호인 듯했으나 두 청년은 못 본 체, 못 들은 체를 하며 이 어지러운 방안에 대해 곰팡이가 핀다니, 딱정벌레도 도망간다니 찧고 까불다가 그가 팔을 들어올리고 덤비자 엉망인 방 안에서 도망을 다니며 더욱 엉망으로 만들었다.

 

깔깔거리며 웃고 털이 흩날리는 한 켠에서 웨일런은 다시 방안을 찬찬히 구경했다.

 

잘 말린 나무로 창틀을 만들고, 탁자와 침상을 만들고, 선반을 깎은 것들은 오래 손을 탔는지 반질반질했고 오래 공을 들였는지 곰, 늑대, , 왕관, 전설 속의 거인 같은 문양이 다채롭게 아로새겨져서 실내의 불에 음영을 드리운다.

 

비스의 꼬리를 밟지 않게 조심하고, 틸의 다리를 걸지 않게 조심하면서-그는 발을 걸라고 소리쳤지만 차마 그럴 수 없었다-움직이다 무언가가 웨일런의 시선을 끌었다.

 

이 집안에서도 화려하게 조각되고 채색된 나무 상자.

 

비스듬하게 열린 안에서는 가장 낡은 천으로 감싼 것이.

 

웨일런은 머뭇거리다가 녹은 촛대와 깃펜 덩어리를 살짝 밀어내고 손가락 끝으로 뚜껑을 들어올렸다.

 

내용물은 병 몇 개... 정도였다.

 

안에 든 것은 금 같았지만 상자가 움직이자 마치 액체처럼 기이하게 흔들렸는데-

 

달칵.

 

장갑을 낀 손이 뚜껑을 눌렀다.

 

주인의 물건을 허가도 없이 들여다본 셈이므로 웨일런의 뺨이 달아올랐다.

 

그러나 그는 호기심을 주체하지 못하고 스튜 그릇을 받아 들 때엔 결국 물어보고야 말았다.

 

연금술사인가요?”

 

, 연금술사?” “그게 뭐야?”

 

제가 스콜드에 합류하기 전에 연금술이 유행했었거든요. 돌을 무슨 금으로 바꾸는 거라던데-”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두 젊은이들이 그릇이나 솥을 씻는다, 자리를 정돈한다며 돌아다니자 그럴 필요 없으니 잠이나 자라고 핀잔을 했다.

 

아무튼 그런 것과는 상관 없어. 나는 날 때부터 스콜드였으니까. 조만간 사용해야 하는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면 안 되거든.”

 

그런 것치고는 너무 허술하게 둔 것이 아닌가.

 

솥에는 물을 담아 불 위에 걸고 벽난로 안에는 장작 몇 개비를 더해 잘 준비를 마치면 그가 나눠주는 모포와 가죽을 덮고 그들은 제각기 자리를 잡고 웅크렸다.

 

웨일런은 창 너머로 쏟아져 들어올 듯 반짝이는 무수한 별과 손에 잡힐 것처럼 뚜렷한 흰 달빛을 한동안 올려다보았다.

 

그러다 문득 저 병에 담긴 것들은 어디에 쓰는 것인지 하는 궁금증이 들었으나 이미 주위 사람들은 잠이 든 뒤였다.

 

장작이 거의 다 타고 불빛이 사그라들던 어느 때에, 웨일런도 잠들었다.

 

 

 

 

 

 

 

잘 자네.”

 

이봐, 일어나. 이제.”

 

흐으어...?”

 

웨일런은 눈을 떴다.

 

어제의 지저분한 집안은 비스와 틸이 청소를 해 놓은 것인지 제법 정돈되고 비질되어 깨끗해져 있었다.

 

내 책상 건드리지 말라니까!”

 

아저씨 그 상자는 안 건드렸어!”

 

걱정 말아요~ 우리가 한두 번 온 줄 알구.”

 

이 망나니 녀석들!”

 

나 배고픈데. 밥 주세요!”

 

고맙다고? 별 말씀을~”

 

그는 두 젊은이를 향해 으르릉거리긴 했지만 결국은 부엌 비슷한 곳으로 향했다.

 

이 나이가 되니 온몸이 삐걱거린다며 팔다리를 쭉쭉 뻗고, 신선한 새 알과 비스킷과 과일 같은 것을 잔뜩 내 왔다.

 

이거 먹고 가고, 다음부터는 오지 마. 와도 내가 없을 거야.”

 

? 어디서 지원 요청 들어왔어?” “?”

 

너흰 몰라도 돼. 어른들하고는 얘기 다 해놨으니까 그렇게 알고.”

 

그런 게 어딨어!”

 

우리도 인젠 어른인데!”

 

그는 코웃음으로 그들의 항의를 일축했다.

 

“...그건 그렇고, 이젠 좀 살만하다지만 스콜드에 자원하다니 특이한 녀석이야.”

 

꼬리가 등을 툭 치는 바람에 웨일런은 마악 입에 넣으려던 딸기 비슷한 과일을 떨어뜨릴 뻔 했다.

 

스콜드, 멋지잖아요.”

 

“...우리 때는 그런 취급이 아니었는데.”

 

그는 비스가 마악 베어물려던 과일을 빼앗아 크게 한 입 깨물었다.

 

와사삭 하는 시원스러운 소리가 나고 으적으적 씹히는 소리가 이어진다.

 

나중에 혹시 오거든, 기억해. 저 쪽에 약이 있고 저 쪽에는 건조 식량, 뒤편으로 나가면 샘이 있어.”

 

아저씨 보물은 더 없어?”

 

“...마쟈, 부대, 에 있는 그 엄청 화려한 공... 같은 거.”

 

어이구, 하고 그가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다음에 가면 가구 장식 좀 뜯어 올게.”

 

에이!” “에이이-”

 

짜식들이, 라며 그는 틸이 집던 비스킷을 낚아챘다.

 

그 투닥거림은 그들이 뒷정리를 하고 짐을 싸서 나설 때까지 이어졌다.

 

이제 우리 갈게!”

 

오지 마, 이젠!”

 

우리 보고 싶을 텐데!”

 

안 보고 싶어-?”

 

그 말에 그는 그 둘을 쳐다보다가, 양 손을 주머니에 꾹 찔러 넣었다.

 

빨리 가기나 해!”

 

에이이-” “-”

 

웨일런은 묵직한 짐을 어깨에 고쳐 지고는 끈으로 한 번 더 고정했다.

 

저 녀석들이 자기중심적이고 생각 없고 말보다 몸이 먼저 나가고 단순하고 멍청하지만...”

 

다 들려!” “코앞에서 뒷말하다니!”

 

“.........아마도, 착한 애들이니까...”

 

아마도라니! 하고 항의가 이어진다.

 

웨일런은 웃었다.

 

잘 지내십시오. ....”

 

데임.”

 

잘 지내세요, 데임 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