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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릭마] 연인의 심장 소리

2015. 5. 8. 19:31 | Posted by 호랑이!!!

째 깍 째 깍

 

마틴의 회중시계는 9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사람의 심장이 분당 몇 번을 뛰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시계랑 비슷하지 않을까?

 

아마 그럴 것이다.

 

적어도 릭에게는 그럴 것이다.

 

사람에게 어떠한 소리가 있다면 릭에게서 나는 소리는 갓 베어낸 풀향기를 실은 남풍이 부는 소리와 바로 이, 시곗바늘이 움직이는 소리일 테니.

 

그렇지 않고서야 그에게 안겼을 때 들리는 시곗소리에 그렇게 마음이 편해질 리 없으니까.

 

마틴은 릭에게 안길때면 귓가에서 들렸던 톱니바퀴가 맞물려 나는 시계의 합창을 기억했다.

 

빨리 업무가 끝났으면 좋겠다.

 

“지금 몇 시예요?”

 

“형씨 시계 있잖아?”

 

마틴은 그 물음에 웃음으로 답한다.

 

 

 

 

릭은 트와일라잇에 있을 때와는 달리 와이셔츠의 소매를 내렸다.

 

소매 너머로 찬 손목시계들이 울퉁불퉁하게 보였지만 얼핏 옷 주름으로 보이기도 했기에 누구도 릭에게 왜 그렇게 많은 시계를 차고 다니느냐 묻지 않는다.

 

릭은 그 중 소매 밖으로 나온 하나의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6시.

 

빨리 점심시간이 되어서 커피라도 같이 마시고 싶네.

 

이미 하얀 머그컵에는 포트로 끓여낸 향 좋은 커피가 가득 담겨 있었지만 릭은 마틴이 타주는 맛없는 커피를 생각했다.

 

“데이트라도 있어?”

 

“티 납니까?”

 

“계속 시계만 들여다보니까 그렇지, 그런다고 시간이 빨리 가지는 않아~”

 

릭의 회사 동료인 그는 몸을 기울여서 데이트 시간이 시계에 표시되기라도 한 것 마냥 릭의 손목시계를 내려다보았다.

 

“...어라? 시계가 고장났나? 시간이 안 맞잖아, 시계 고치는 곳에 가 봐.”

 

“고장났을 리가 없는데.”

 

“봐, 지금은 6시가 아니라 10시라고.”

 

릭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가 떠나고, 릭은 마틴이 있는 런던의 시간으로 맞춰진 시계를 손목에서 풀어내었다.

 

시계를 귓가에 가져다대면 째깍째깍 초침 돌아가는 소리가 난다.

 

귀에 댄 것은 아까까지 손목에 차고 있던 손목시계지만 릭이 떠올리는 것은 놋쇠 빛깔의 둥근 회중시계다.

 

마틴의 심장 가까이 매달린 그것은 어쩌면 마틴을 닮았을 것이다.

 

째깍 째깍.

 

마치 연인의 심장소리를 듣는 기분.

 

릭은 웃음을 참으려는 듯,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아 점심시간까지 못 참겠네, 커피 마시러 간다고 하고 몰래 찾아갈까.

 

이 시간에 찾아가면 놀라겠지?

 

릭은 눈을 감고 미소를 지었다.

 

연인의 푸른 눈이 놀라 동그랗게 커진 것이 눈 앞에 보이는 듯 했다.

 



[To.XJ] 아무 날도 아닌 날

2015. 4. 12. 03:06 | Posted by 호랑이!!!




아무 날도 아닌 날이었다.

 

휴일도 생일도 기념일도 아닌 그런 날.

 

간만에 날씨는 좋고 따뜻해서 웨슬리는 외출할 때 으레 쓰곤 했던 중절모를 벗어 옆에 끼고 걸었다.

 

어제 침대 옆에 아무렇게나 던져둬서인지 겉옷의 소매가 조금 구겨져 있었다.

 

그걸 매만져 펴면서 웨슬리는 어젯밤의 생각을 했다.

 

따뜻하게 데워진 방안의 공기와 음란하게 흔들리는 연인의 몸.

 

어쩌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자신만인지도 모르겠다.

 

침대 옆에는 협탁이 하나 있는데, 그 위에는 액자에조차 들어있지 않은 사진이 있었다.

 

앨범이라면 집의 책장에 꽂혀 있는데.

 

벌써 몇 년 전에 샀지만 아직 절반도 채우지 못한 앨범은 위에 먼지가 쌓일 정도였는데도.

 

그런데 청소도 하지 않는 협탁 위의 사진은 먼지가 쌓이기는커녕 가장자리가 닳아 있었다.

 

젊은 날의 카인과 레나.

 

그리고 때마침 잡화점이 웨슬리의 눈에 띄었다.

 

...그래, 여태까지는 카인이 레나를 잊을 수 있게 노력했지.

 

그게 잘못이었을지도 모른다.

 

카인이 레나를 잊지 못하고 사랑한다고 해도 웨슬리는 그런 카인도 사랑할 수 있었다.

 

웨슬리는 잡화점으로 갔다.

 

 

 

 

 

간만에 날씨는 좋고 따뜻하니 창문을 열고 거리를 내려다볼 수 있는, 그런 날.

 

카인은 저녁부터 밤까지 웨슬리와 뒹굴었던 침대에 앉아 있었다.

 

으레 쓰던 도구가 든 협탁 위에는 흑백의 사진이 한 장, 액자도 없이 놓여 있었다.

 

카인은 그것을 쥐고 침대로 누웠다.

 

, 레나.

 

그대의 사진을 보며 웨슬리의 침대 위에 있어도, 이제 미안한 마음은 들지 않아.

 

어쩌면 지금껏 슬로언이 노력했던 것이 결실을 맺는지도 모르지.

 

슬로언은 벌써 몇 년이나 노력했으니까, 남자의 마음은 갈대라 이 말이야.

 

카인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책장 아래를 뒤져 벌써 옅게 먼지가 쌓인 앨범을 꺼내 먼지를 털어내고는 앨범을 활짝 펼쳤다.

 

앨범에는 웨슬리와 자신과, 가끔은 다른 사람들이 함께 찍은 사진이 가득했다.

 

새삼 한 장씩 페이지를 넘겨가며 사진과 거기 붙은 두줄짜리 메모를 보며 추억에 젖던 카인은 그 중에서 한 장을 꺼내들었다.

 

웨슬리와 함께 살기 시작한 날 집 앞에서 찍은 것.

 

그리고 그 자리에는 레나의 사진을 내려놓고 다시 얇은 비닐을 덮었다.

 

다시 앨범을 꽂아놓는데 열쇠 돌아가는 소리가 나고 웨슬리가 들어왔다.

 

다녀왔네.”

 

웨슬리는 들어오자마자 카인의 손에 납작하게 포장된 상자를 내밀었다.

 

어서오게.”

 

자신의 마음에 웨슬리가 들어왔다.

 

자신의 예상보다 크게.

 

그 사실을 인정해서인지 카인의 마음은 꽤나 들떠있었다.

 

그래서 자신이 꺼내든 사진을 웨슬리 앞에 내밀었다.

 

슬로언, 앞으로 침대 옆의 테이블에 놓을 사진은 이걸세.”

 

그러자 웨슬리는 조금 당황한 듯 보였다.

 

카인은 테이블에 사진을 올려두고는 웨슬리가 준 선물의 포장지를 풀어보았다.

 

웬 건가? 오늘은 내 생일이 아니네만.”

 

“...그냥 자네 생각이 나서 사 봤네.”

 

레나의 머리카락을 연상시키는 테의 액자.

 

카인은 그것을 들고 잠시 내려다보았다.

 

아무래도... 내가 좋지 않은 때 사온 모양이지?”

 

“...전혀, 그렇지 않네.”

 

카인은 그 뚜껑을 열어서는 그 안에 자신이 빼 두었던 사진을 집어넣었다.

 

사진이 조금 더 컸지만 끝을 조금 접으니 무리 없이 들어간다.

 

팔을 쭉 뻗어 보고는,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기다리겠지만 그대 이상으로 그를 사랑하고 있을 거야.

 

나의 밤은 뜨겁지 않지만 따뜻하고 온화해.

 

그대와 하던 식사만큼 재미있지는 않지만 나는 즐거워.

 

그대와 있던 날은 아름다웠고 지금의 나는 행복해.

 

카인은 지그시 눈을 감고는 작게 웃음지었다.

 

“Auch er tief in mir einfiel.”

 

그는 내 마음 속에 너무나도 깊이 들어와 버렸네.




[티엔하랑] 조각 케이크

2015. 3. 9. 00:13 | Posted by 호랑이!!!

시작은 늘 그렇듯, 자그마한 것이다.

 

하랑이 건네는 것을 받다가 손가락이 스쳤다.

 

어쩌면 다른 것이 시작일 수도 있겠지.

 

시선이 스쳤다던가, 말을 하는데 목소리가 섞였다던가.

 

하지만 티엔이 유달리 반응한 시작은 손가락이었다.

 

손가락이 스쳤다.

 

그것뿐이었는데 하루 종일 그 손가락에 신경이 쓰였다.

 

아직도 하랑의 손가락이 닿아 있는 것 같고 쥐여 있는 것 같아 종이 하나도 그 손으로 들 수 없었다.

 

두 번째는 머리카락.

 

연합의 홀든이 하는 머리를 보더니 저도 해보겠노라고 머리를 풀었는데 그런 모양으로 묶어본 적이 없다고, 티엔 그더러 묶어달라 댕기를 내밀었다.

 

티엔은 내 머리도 묶지 않는데 네 머리를 묶을 수 있겠느냐며 타박하면서도 하랑이 내민 댕기 대신 주려고 마련해두었던 리본을 꺼내들었다.

 

하랑이 내민 참빗을 받아들고 앞에 앉혀 머리카락을 쥐었는데, 머리카락이 손 안에서 미끄러졌다.

 

사라락 하는 소리가 들렸고, 그 소리는 밖에서 내리는 빗소리마냥 하루 종일 귓가에서 맴돌았다.

 

겨우 손가락일 뿐이었는데.

 

겨우 머리카락 흘러내리는 소리였는데.

 

거울을 보고 익숙하지 않은 모양새에 쑥스러워하다 이내 풀어내리는 모습이.

 

손가락에 닿은 온기가.

 

머리카락이 손 안에서 미끄러지던 촉감이.

 

그것들이 하나하나 너무 달콤해서, 마치 시럽에 담가 재운 케이크 같았다.

 

손가락과 한 줌의 머리카락.

 

작은 케이크.

 

케이크에서 잘라낸 작은 조각.

 

입에 댈수록 더 당겨오는 향기로운.

 

티엔은 앞서 걸어가는 하랑을 보았다.

 

머리채 끝에는 하던 댕기 대신에 자신이 선물한 리본이 감겨 있었다.

 

양과의 조각이 맛 좋았으니, 다음은 커다란 것을 손에 넣을 것이다.

 

티엔은 생각을 갈무리하며 그 뒤를 조용히 걸었다.

 

 

어느 날 티엔은 제 몸이 묶인 것을 알아차렸다.

 

침상이 아닌 푹신한 침대에 몸이 묶이고 몸 위로 누가 올라타 있었다.

 

그 사람은 팔을 뻗어 바로 옆에 있는 창문을 활짝 열었고, 그제서야 하얗게 달빛이 쏟아들어왔다.

 

따뜻한 바람에 하얀 레이스 커튼이 나부끼고 티엔은 제 위에 누가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루시.

 

인생의 오점이라고 할 수 있는 그녀는 너머가 훤히 비치는 하얀 레이스로 된 원피스 같은 속옷을 입고 있었고 손에는 같은 색의 레이스로 만든 부채를 들고 웃고 있었다.

 

아 저 웃음.

 

아 저 야살스러운 웃음.

 

티엔은 미간을 찌푸렸다.

 

루시는 더 진하게 웃음을 피우며 펼쳐들고 가만히 부치던 부채를 접었다.

 

차르륵 하는 익숙한 소리가 들렸다.

 

루시는 그 위에서 몸을 앞으로 굽혔다.

 

몸을 앞으로 굽히자 가뜩이나 눈 둘 곳이 없어 곤란해하던 티엔은 고개를 돌렸지만 이내 원래대로 돌아왔다.

 

반대로 돌렸지만 다시, 루시를 보게 된다.

 

하얀 레이스 부채가 턱을 간질이고 있었다.

 

고개를 이리 돌리면 부채는 제 뺨을 눌러 고개를 다시 저쪽으로 향하게 하고, 저리 돌리면 다시 루시를 보게 하고.

 

루시가 제아무리 능력자라지만 결국은 한낱 연약한 계집아이.

 

그런 계집아이가 부채로 농락하는 것에 제가 놀아나는 것인가.

 

고개를 돌리지 못하게 턱 아래에 부채를 대는 것에 아예 눈을 감았더니 루시는 부채를 꽉 쥐었다가 제 뺨을 후려갈긴다.

 

, , , 부채가 제 얼굴을 때리는 소리가 연달아 들리고.

 

결국 눈을 떴더니 루시는 부채를 활짝 펼쳐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반투명하고 하얗게 반짝이는 부채 너머로는 빨간 입술이 어두운 방에 달빛만으로도 요염하게 빛나고 있었다.

 

티엔.”

 

꿈에도 잊은 적 없는 목소리는 제 이름을 부르고 루시는 제 뺨을 쓰다듬었다.

 

맞아서 트고 부은 뺨은 부드럽지 않은 손에 열을 식히고.

 

티엔은 눈을 느리게 깜박였다가 문득 무언가를 깨달았다.

 

..., 그렇구나.

 

이 곳은 루시의 방이다.

 

티엔은 묶인 손과 발을 조금씩 당겨 보았다.

 

가위일까?

 

루시는 여전히 그 위에 올라앉아 이 모든 것이 재미있다는 듯 여전히 웃고 있었다.

 

티엔은 눈을 감았다.

 

이번에는 루시도 제 뺨을 내리치지 않았다.

 

어쩌면 그 이름을 부르면 깰지도 모른다.

 

손가락을 한 번 까딱하면 깰지도 모르고.

 

이대로 침대를 박차고 일어나면, 다시 눈을 뜨면, 목소리를 내면, 깰지도 모른다.

 

하지만 티엔은 그 중 무엇도 하지 않았다.

 



[윌라드렉] 기분을 알아차리는 것

2015. 3. 1. 03:34 | Posted by 호랑이!!!

런던 거리, 잘 닦인 도로 가장자리로는 가스등이 죽 늘어서있고 녹지 않은 눈은 도로 사이사이로 눌려 얼어붙어 있다.

 

메마른 눈이 광장 가득 떨어지고 있지만 눈을 뭉쳐 노는 어린아이들이나 뛰어다니는 귀여운 강아지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 중절모를 쓰고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마차를 타거나 서로 지나칠 뿐.

 

얘깃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고 웃음소리 역시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윌라드와 드렉슬러도 마찬가지였다.

 

둘은 기차역에서 내려 마차에 올랐고 내리는 눈만큼이나 조용한 목소리로 윌라드가 목적지를 말한 이후로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드렉슬러는 코트의 깃을 세우고 마차에 앉았다.

 

뚜껑이 없는 마차라 어깨며 모자 위로 눈이 떨어졌다.

 

우중충하고 칙칙한 런던.

 

눈조차도 보기 좋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군.

 

심지어 어느 곳에선가는 조금 녹은 눈이 질척한 웅덩이를 만들어 거리의 미관을 더욱 해쳤다.

 

드렉슬러는 힐끗 옆을 보았다.

 

원래도 잡담을 좋아하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오늘은 유달리 말이 없다.

 

아까 기차 안에 나오던 히터 온도가 좀 높긴 했지, 겉옷을 벗었는데도 더워서 차장을 불러다 물어보니 고장났다고 했었고.

 

가다가 배가 고파져서 식당칸에서 식사를 주문했는데 시킨 샌드위치에선 벌레도 나왔고, 주문했던 음식이 전부 맛이 없어서 반도 안 먹고 나왔다.

 

결국 홍차와 커피를 마시고 고픈 배를 안고 자리로 돌아와 더운 바람이나 맞으며 왔는데... 원래가 금세 기분이 나빠지는 양반이니 뭐.

 

윌라드가 들었다면 남말하지 마십시오라고 할 만한 생각을 하며 드렉슬러는 묵묵히 앞만 보았다.

 

마차는 도착했습니다, 라는 말도 없이 목적지에 매끄럽게 멈춰 섰다.

 

삯을 지불하고 둘은 백화점 안으로 들어갔다.

 

드렉슬러는 품에서 물건의 이름을 적어둔 종이를 꺼내 점원에게 읽어주었다.

 

오늘 받기로 예약해둔 크루그먼입니다.”

 

하지만 크루그먼이라는 이름은 다음 주로 적혀 있는데요, 뭔가 실수가...”

 

드렉슬러는 뒤에서 윌라드 크루그먼 이사의 기분이 나빠지는 것을 느꼈다.

 

아아, 보지 않아도 느껴진다.

 

대신에 이 술은 어떨까요? 예약하신 물건 못지않게 좋은 건데-”

 

드렉슬러는 되었다고 말하려고 했지만 뒤에서 윌라드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거라도 주십시오.”

 

점원은 활짝 핀 얼굴로 이건 어떻고 저건 어떻고 하면서 설명을 늘어놓았으나 윌라드는 시큰둥한 얼굴로 고개나 몇 번 끄덕일 뿐이었다.

 

딴 생각 하고 있구만, 저거저거.

 

드렉슬러는 또 저걸 어떻게 기분을 풀어주나, 했다가 뭔가를 깨달았다.

 

내가 왜 기분을 풀어줘야 해?

 

생각해보니 이거 또 화가 나네.

 

윌라드 저건 내 기분 따위 하나도 관심이 없을 텐데 난 뭐하러 삐지면 달래주고 비위 맞춰주고 있는 거지? 내가 언제부터 남의 기분을 신경썼다고!

 

드렉슬러는 뒤에 가만히 서 있다가 윌라드가 내미는 술 상자를 받아들고 다시 밖으로 나가 마차에 올랐다.

 

마차를 타고 협력 관계에 있는 회사로 가 안으로 들어가자 안으로 들어오라는 안내를 받았다.

 

런던에 오는 것은 또 오랜만이군요, 오는 길에 생각이 나 술을 한 병 샀는데 마음에 드실지 모르겠습니다.”

 

드렉슬러는 술 상자를 넘겼다.

 

나무 상자가 열리고 두터우며 고급스러운 보라색 천이 벗겨지자 안에서 호박색 빛을 내는 술이 든 병이 나왔다.

 

유리잔에 얼음이 딸그랑 소리를 내며 떨어졌고 호박색 액체가 부어졌다.

 

건배.

 

드렉슬러는 한 모금 마시고 작게 미간을 찌푸렸다.

 

상대는 이 술이 마음에 든 모양이지만 제 입맛에 맞는 술은 아니었다.

 

딸그락.

 

평소보다 센 소리로 유리잔이 내려지길래 옆을 힐끗 보았더니 또 기분이 나쁘다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

 

어차피 자신밖에 못 알아보는 것 같긴 하지만.

 

드렉슬러는 얼음이 녹기를 기다렸다가 잔을 기울여 마저 비워냈다.

 

일을 끝내고 머물기로 한 호텔에 돌아와 잘 준비를 하는데 윌라드는 문득 적포도주 한 병을 꺼냈다.

 

한 잔 하시죠.”

 

됐어, 너나 마셔.”

 

“...안 마실 겁니까?”

 

드렉슬러는 잠깐 윌라드를 쳐다보았다가 빼앗듯이 잔을 낚아챘다.

 

일부러 취할 때까지 마시고 침대에 풀썩 드러누우니 그 위로 체중이 실리는 것이 느껴졌다.

 

다리오.”

 

술 때문에 기분 좋은 열이 났고 차가운 시트가 닿는 것도, 스치면서 간질거리는 것도 전부 기분이 좋았다.

 

지그시 눈을 감는데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났다.

 

어차피 자는 것은 아니라는 건 알고 있어서인지 말소리가 들렸다.

 

오늘, 계속 기분이 좋지 않아 보이더군요.”

 

“...내가?”

 

그러자 익숙한 손이 닿아 왔다.

 

어차피 저밖에 알아차리지 못하는 일이긴 합니다만.”

 

드렉슬러는 잠시 눈을 떴다가, 다시 감았다.

 

지나치게 기분이 좋았다.

 

 

 

어둠의 마법 방어술 교수인 카인 스타이거의 사무실은 3.

 

허나 스타이거 교수가 수업을 위해 고른 교실은 1층이다.

 

점심시간이면 늘 오전 수업동안 배고파했던 학생들은 교수가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를 말하는 순간 연회장으로 달려간다.

 

그러면 스타이거 교수는 학생들이 달려나간 직후의 고요한 복도를 걸어 계단 앞까지 가고, 그러면 아래층에서 마악 걸어 올라온 마법의 약 교수 웨슬리 슬로언과 마주칠 수 있다.

 

오늘도 수고했네, 슬로언.”

 

자네도, 스타이거.”

 

한쪽 팔에는 오늘 사용했던 책을 끼고 나란히 걷지만, 연회장으로 바로 가지 않고 넓은 1층을 한 바퀴 돌다시피 한다.

 

오늘도 복도에는 사람이 없구먼, 다들 배가 고팠나 보지.”

 

“...그러니까 젊은 애들한테 아침마다 죽 따윌 먹이니까 저렇게 굶주려 있는 거야."

 

내가 젊을 땐-하고 운을 떼는 것을, 슬로언 교수가 막았다.

 

덕분에 우리는 좋지 않나.”

 

그도 그렇군.”

 

식전 산책은 홀과 연결되는 계단부터 시작해서 안뜰이 보이는 복도를 걸어 한 바퀴 도는 것을 말한다.

 

원래라면 유령들이 돌아다니곤 하지만 스타이거 교수와 얘기한 덕분에 이 시간만은 1층에 오지 않는다.

 

한 번 정도는 괜찮지 않나.”

 

질리지도 않는군.”

 

언젠가 그들이 학생이었던 때처럼 웃음섞인 목소리로 키득거리면서 결과를 아는 시답잖은 수작을 걸었다.

 

저쪽에서 다 보이네.”

 

어차피 아무도 없지 않나.”

 

그래도, 그럼 춥기도 하니 이쪽으로 돌아서서-”

 

날씨는 평소처럼 흐리다.

 

그런 평소의 나른하고, 조금은 야릇한 분위기를 내려는 찰나.

 

안뜰 쪽에서 외침 소리가 들렸다.

 

피터!!!”

 

마악 빈 교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려던 스타이거는 손을 멈춰버렸다.

 

“...래번클로의... 토마스 스티븐슨이군.”

 

“...성실한 학생이지.”

 

자네한테서 성실하다는 얘기를 듣다니, 역시 기대되는 학생이야.”

 

평소와 달리 다급해 보이는 모습에 그들은 빈 교실에서의 밀회 대신 안뜰을 지켜보기로 하고 난간에 다가서서 기댔다.

 

안뜰, 아직 겨울이라 분명히 나무와 덩굴이 있음에도 초록색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회색에 가까운 정원 속에서 서로 다른 두 가지의 푸른 머리색은 확실히 눈에 띄었다.

 

“...뭐라는지 들리지는 않는군.”

 

학생의 프라이버시는 지켜주는 게 어떤가, 슬로언.”

 

버릇처럼 기둥의 그늘 뒤에 숨어 지켜보던 그들은 마침내 푸른 머리 중에서 작은 쪽이 큰 쪽에게 안기는 것을 보았다.

 

그러고보니 저 학생이지? 자네 수업 중에 무작정 들어왔다던.”

 

스타이거 교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피터 모나헌은... 듣자하니 1학년 중에서도 유독 두각을 드러낸다고 하더군.”

 

내 수업시간에도 가장 뛰어나긴 하네만.”

 

슬로언 교수는 몸을 구부려 기둥 바깥쪽으로 고개를 내밀고 의뭉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스타이거 교수를 올려다보았다.

 

옛날의 자네를 닮았네.”

 

나는 재능이라곤 없었지만.”

 

스타이거 교수는 작게 대꾸하고 여느 때라면 슬슬 연회장에 도착할 시간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오늘은 이만 가지.”

 

그럴까, 점심 메뉴가 기대되는군.”

 

스타이거 교수는 벽을 짚고 몸을 일으키는 슬로언 교수에게 짧게 입술을 대었다.

 

“...그래도 작은 모나헌에게 스티븐슨 학생이 있어서 다행이네.”

 

내가 그러했고, 그러한 것처럼.

 

그들은 복도를 마저 돌아 홀로 가는 계단을 내려갔다.

 



 

그리핀도르의 루이스와 슬리데린의 벨져의 관계는 그거다.

 

친구보다 먼, 라이벌보다는 가까운.

 

아무리 학생수가 적다지만 루이스와 벨져는 사실 3학년까지 서로가 존재한다는 사실도 몰랐다.

 

한두번 본 적은 있다지만 서로 예쁘네라는 감상 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고.

 

그런 그들이 제대로 얼굴을 마주본 것은 벨져와 루이스가 3학년이 되어 각기 추격꾼과 수색꾼으로 퀴디치 팀 멤버가 되었을 때였다.

 

결승전에는 그리핀도르와 슬리데린이 맞붙게 되었고 후반 3분을 남겼을 때 스코어는 20:130이었고 루이스는 벨져에게 제안했다.

 

앞으로 3분 동안, 너 혼자서만 골을 넣는 거 어때?’

 

그 정도 핸디캡을 달더라도 내가 이긴다는 것을 보여주지

 

그러나 그 이후 벨져는 다섯 번의 시도에서 한 골밖에 넣지 못했고, 그동안 그리핀도르는 두 골을 더 넣고 스니치까지 잡아 역전했다.

 

이러한 역전승에 그리핀도르를 응원하던 학생들은 전부 일어나 환호했고 벨져는 그 일 때문에 충격을 받아 한동안 퀴디치 연습까지 빠질 정도였다나.

 

어쨌거나 지금은 다 지난 이야기다.

 

벨져, 이거 뭐야?”

 

이건 수업시간에 교수님이 설명해준 것 아닌가.”

 

방해받아서 짜증난다는 듯, 벨져는 가볍게 혀를 찼다.

 

여기서 만드라고라는...(중략)...이다. 그리고 거기, 오소리 가죽은 잘게 썰어서 넣어야 한다고 기술해야지.”

 

, .”

 

성의없이 대꾸하지 마라. 이따 읽어봐줄테니 다 쓰고 내놔.”

 

한창 소리죽여서 말을 하는데 저만치 토마스가 책장 사이로 사라지는 것이 보였다.

 

저쪽은 1학년들 추천도서가 있는 곳인데.

 

그러고보니 그거 들었어?”

 

뭐 말인가.”

 

피터 모나헌이라고, 래번클로 1학년. 걔가 스타이거 교수님 수업에 토마스 하나 보러 무작정 찾아갔다가 쫓겨났다더라.”

 

, 소문의 30.”

 

그 뒤로 피터가 보이지 않는다더니, 찾으러 다니나 보네.”

 

벨져는 잉크에 깃펜을 푹 담갔다가 꺼내 양피지에 글을 적으며 대꾸했다.

 

어떤 상황인지 알겠군, 예전에 이글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결국 정원 구석에서 덜덜 떠는 것을 찾긴 했지만.”

 

그건 좀 귀엽게 들리는데?”

 

실제로 귀여웠었다. 달래기 위해서 따뜻한 코코아와 마시멜로를 유모 몰래 가져다주려고 고생하긴 했었지만.”

 

아무래도 형이면 어쩔 수 없이 해주게 된다니까.”

 

그러고보니, 넌 형제가 있나?”

 

있긴 있어.”

 

거기서 루이스가 무어라 덧붙이려는 순간, 사서가 무시무시한 표정으로 그들의 옆에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둘 다, 잡담은 나가서 하도록!”

 

결국 쫓겨나, 그들은 양피지 다발과 잉크병을 손에 들고 복도에 섰다.

 

아 곤란하네, 도서실 다음으로 공부하기 좋은 곳은 휴게실인데 우린 기숙사가 다르고, 밖은 추운데.”

 

빈 교실이라도 찾아보지. 어지럽히지만 않는다면 교수님들도 신경 쓰지 않을 거다.”

 

복도를 따라 걸으며 루이스는 옷깃을 여몄다.

 

아 춥다-.”

 

벨져는 루이스의 망토를 힐끗 보았다.

 

이 날씨에 입기에는 지나치게 얇은데? 그리고 안에 한 목도리는 어울리지 않게 고급품이고.

 

루이스.”

 

벨져가 부르기 전에, 복도의 모퉁이에서 누군가 먼저 루이스를 불렀다.

 

트리비아.. 교수님.”

 

카리나 교수님, 안녕하세요.”

 

안녕, 홀든.”

 

박쥐 애니마구스이고 변신술 교수인 트리비아 카리나는 뱀파이어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우아하고 뇌쇄적으로 아름다웠다.

 

들리는 말로는 팬클럽까지 있다지.

 

둘이 여기서 뭐하고 있어?”

 

공부할 교실을 찾는 중이예요, 교수님.”

 

그러자 트리비아 교수는 뭔가를 생각하는 듯, 입술 위로 손가락을 올리며 눈을 내리깔았다.

 

단지 그뿐이었는데도 저절로 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5층에 있는 내 교실이라면 써도 좋지만, 다 쓰고 정리하는 거 기억하렴.”

 

고맙습니다.”

 

다시 복도를 돌아가 계단을 올라갔다.

 

넓고 좁은 계단을 오르고 사라지는 발판을 뛰어넘어 5층까지 올라갔다.

 

루이스는 변신술 교실을 열었다.

 

변신술 수업 외에는 쓰이지 않는 곳이라 그런지 교실 구석에는 달팽이가 가득한 수조가 몇 개나 놓여 있었다.

 

리포트 다 쓰고 주방에 간식 먹으러 갈 건데, 같이 갈래?”

 

싫다. 내가 왜 너랑 간식이나 먹으면서 한가하게 굴어야 하나.”

 

그럼 빗자루 타러 갈래?”

 

루이스, 리포트에 집중해라.”

 

차갑게 거절하고, 한동안은 책장 넘어가는 소리와 종이에 글자를 적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정적은 이내 깨졌는데, 벨져는 다 쓴 리포트를 다시 점검하며 루이스에게 물었다.

 

“...이번 크리스마스 선물 말인데. 장갑으로 할까?”

 

장갑은 받을 사람이 있으니까 다른 걸로.”

 

모자가 좋겠군.”

 



[쌍총/19금] 딥 쓰로트

2015. 1. 9. 0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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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릭마틴] When can I see you again?

2014. 12. 29. 03:15 | Posted by 호랑이!!!

(*같은 제목의 노래에서 아이디어를 받았습니다)






⌜이 편지는 미국에서 최초로 시작되어 일년에 한바퀴 돌면서 받는 사람에게 행운을 주었고....⌟

 

마틴 챌피는 한숨을 쉬며 편지를 접었다.

 

편지는 봉투째로 벽난로 속으로 들어갔다.

 

“유치하기 짝이 없는 편지네요.”

 

저게 설령 사이퍼가 만든 일종의 사이킥 페이퍼라서 진짜로 행운을 가져다준다고 해도 지금 자신에게 필요한 건 아니었다.

 

‘지금 제게는 행복이 필요한 거지 행운이 필요한 게 아니니까요’

 

하지만 하얀색 종이봉투에 담긴 행운의 편지는 다음날, 그 다음날에도 찾아왔다.

 

세 번째로 받은 날, 마틴은 다시 봉투를 열고 안의 내용을 읽었다.

 

어라? 뭔가 이상하다.

 

⌜이 편지는 미국에서 최초로 시작되어 일년에 한바퀴 돌면서 받는 사람에게 행운을 주었고 지금은 당신에게로 옮겨진 이 편지는 3일 안에 당신 곁을 떠나야 합니다. 행운이 당신에게 깃들 것입니다⌟

 

이런 편지에 으레 있어야 하는 ‘7통을 다른 사람에게 보내시오’하는 문구가 없다.

 

마틴은 그 편지의 뒷면과 봉투까지 꼼꼼하게 살펴보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옆에 놓아두었던 시계가 땡땡땡 하는 소리를 내었다.

 

벌써 잘 시간이군요.

 

커튼을 걷어 바깥을 살폈더니 창밖은 어둑했고 지나다니는 사람조차 없었다.

 

편지는 원래대로 접어 책상에 올려두고 마틴은 방의 불을 껐다.

 

 

 

 

 

마틴은 기분 좋은 바람이 뺨을 스치는 것을 느끼며 눈을 떴다.

 

바다 냄새가 났다.

 

그리고 자신은 바닥에 누워 있었다.

 

하늘에는 달이 크고 밝게 빛나고 있었고 별은 쏟아질 듯, 손을 뻗기만 하면 잡을 수 있을 것처럼 가득 매달려 있다.

 

“일어나 보시오.”

 

다정스런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일어나자 갈색 머리의 남자가 앞에 서 있었다.

 

“...꿈에는 자신이 본 사람의 얼굴만 나온다고 하던데, 제가 언제 당신을 만난 적 있었나요?”

 

그러자 그는 입꼬리를 올리더니, 그야말로 시원스레 소리내어 웃었다.

 

“내가 그대의 꿈에 나타난다면, 그것은 내가 그대를 그리워하기 때문이라 생각하시오.”

 

마틴은 자신이 서 있는 곳을 둘러보았다.

 

불 꺼진 등대에 바로 앞엔 바다가 파도치고 불빛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별이 반짝였다.

 

열기를 머금은 바닷바람이 머리카락을 기분좋게 헤집고 앞에 서 있는 남자의 머릿속조차 들리지 않는 고요한 밤.

 

너무나도 오랜만에 느끼는 평화로운 기분이었다.

 

그는 마틴을 이끌어 유리 테이블 앞에 앉혔다.

 

유리 테이블 위에는 유리그릇이 놓여 있었고 그 안에는 작은 유리 구슬이 가득하게 들어 달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블론디, 그거 아시오?”

 

이것은 별이라오.

 

이게 별이라고요?

 

마틴이 반문하자 그는 어디서 났는지 모를 작고 하얀 초에 불을 붙였다.

 

초를 옆에 내리자 유리그릇 속의 수많은 유리알이 반짝거리며 빛을 내었다.

 

“그대를 위해 빛나는 별이라오.”

 

 

 

 

 

자명종이 금속 부딪히는 소리를 내며 마틴을 깨웠다.

 

마틴은 하품을 하며 일어났다.

 

정말 멋진 꿈이었는데.

 

오늘도 하루종일 사람들 사이에서 일해야 한다.

 

어제만 해도 이 생각만 하면 쉬고 싶다, 아프다고 할까, 감기에 걸렸다고 할까 생각했지만 왠지 오늘은 그조차 웃어넘길 수 있을 것 같았다.

 

문득 마틴의 시야에 책상에 두고 잔 편지가 보였다.

 

행운이라.

 

꿈 속에서 보았던 그 사람이 떠올랐다.

 

“...하하.”

 

그처럼 시원스레 웃어보려 했지만 큰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거울에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찌푸리고, 맥없는 모습.

 

양 손바닥으로 뺨을 꾹 눌렀다.

 

거울을 보고 활짝 웃었다.

 

 

 

 

 

오늘의 꿈 속은 몹시 추웠다.

 

이게 정말 살을 엔다는 거구나.

 

“춥지 않소?”

 

어제의 꿈 속에 나왔던 그 사람이었다.

 

그는 두터운 겉옷을 입혀 주었고 털신을 신겨 주었다.

 

오늘의 꿈속은 소파 위였는데 그 앞엔 모닥불이 타오르고 둥글게 주변이 정돈되어 있었다.

 

모닥불의 위에는 작은 주전자가 걸려 있었고 그는 마틴이 일어나 앉자 커다란 담요를 꺼내 함께 덮었다.

 

바닥이 얼음인데 불을 피워도 되는 걸까? 묻고 싶었지만 이내 머릿속에 답이 떠올랐다.

 

“여기는 제 꿈속이니까요.”

 

“스모어 먹겠소?”

 

“스모어?”

 

“내가 아주 좋아하는 거지, 밖에서 캠핑을 할 때마다 만든다오.”

 

아주 쉬워, 자 이걸 받아.

 

마틴은 쇠꼬챙이를 받았다.

 

끝이 뾰족한 쇠꼬챙이에 마시멜로를 끼우고 불 쪽으로 내밀자 곧 달콤한 향이 났다.

 

“챌피, 그렇게 가까이 놓으면 타 버린다오.”

 

하지만 이미 늦었다.

 

하얀 마시멜로의 겉에는 갈색 기포가 생기더니 이내 불에 휩싸여 버렸다.

 

그가 후 불자 불이 꺼졌지만 하얀 마시멜로는 까맣게 타 버렸다.

 

“하는 수 없지. 자, 내 것으로 만드시오.”

 

겉이 살짝 갈색으로 변해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마시멜로를 크래커에 올리고 그 위에 초콜릿 조각을 얹은 뒤 그 위에 크래커를 하나 더 얹자 보기 좋은 샌드가 되었다.

 

그는 그걸 익숙한 솜씨로 하더니 다 된 것을 마틴에게 내밀었다.

 

“자, 맛을 봐.”

 

마틴은 그것을 받아 한 입 깨물려다 그가 태운 마시멜로로 만든 스모어를 먹으려는 것을 보고 소매를 잡아당겼다.

 

“태운 것은 저니까, 그걸 저한테 주세요.”

 

그러자 그는 씩 웃더니 스모어를 입에 쏙 넣었다.

 

“아, 앗 뜨거! 뜨거....!”

 

“당신?!”

 

“이거 막 구운거라 뜨거우니 조심하시오. 아.. 후... 하후...”

 

마틴은 그 모습을 보고 웃음이 나왔다.

 

혀를 내밀고 뜨거워하는 모습에 몸을 그 쪽으로 기울이곤 후- 입김을 불었다.

 

“좋아, 이 꿈의 주인인 제가 후-후- 했으니까 이제 괜찮을 거예요.”

 

릭은 하하, 웃고는 사랑스럽다는 눈길로 보았다.

 

“그래, 이제는 하나도 안 아파.”

 

문득, 마틴은 하늘이 몹시 밝다는 생각을 했다.

 

마치 그 생각을 읽은 것처럼 그는 하늘을 가리켰다.

 

하늘 가득 빛의 장막이 펼쳐져 있었다.

 

황록색, 백색, 보라색, 푸른색이 어두운 밤에게서 그들을 감싸듯 하늘 끝까지 펼쳐진 것 같았다.

 

“정말... 아름다워요.”

 

그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발견했다고 했다.

 

마틴은 그가 만들어준 스모어를 한 입 베어물었다.

 

세상에 다시없을 달콤한 맛이었다.

 

“어떻소, 맘에 드오?”

 

“정말로... 멋져요.”

 

그는 마틴의 뺨에 입술을 대었다.

 

 

 

 

 

 

 

어김없이 자명종이 마틴을 깨웠다.

 

마틴은 입술이 닿았던 뺨을 만져보았다.

 

정말이지 생생한 꿈이다.

 

반할 것 같아.

 

책상 위에 올려두었던 행운의 편지를 들어 한가운데에 몇 번이고 입맞추었다.

 

자명종을 끄고 언제부터인지 거의 걷은 적 없던 커튼을 활짝 열었다.

 

아침햇살이 이렇게나 밝았던가? 아침의 공기가 이렇게 상쾌했던가?

 

뼛속까지 파고드는 찬 바람조차 기분 좋았다.

 

큰 소리로 웃고 싶었다.

 

일터에서 하루종일 그 꿈 생각이 났고, 꿈을 생각할 때면 손이 뺨을 만지고 있었다.

 

오늘도 만약 그 꿈을 꾼다면, 그 사람의 이름을 물어볼 것이다.

 

평소 외출이라고는 거의 하지 않았지만 오늘은 점심시간에 재단 밖으로 나갔다.

 

재단 근처의 작은 가게로 들어가 크래커 한 봉지와 마시멜로, 초콜릿을 샀다.

 

돌아오는 길에, 어느 가게의 쇼윈도에 전시되어 있는 상품이 눈에 띄었다.

 

가격표를 보니 제법 비싼데...

 

하지만 저걸 보니 꿈 속의 그 사람이 떠오른다.

 

저걸 선물해 주면 좋아할...

 

...아니, 정신 차려, 그 사람은 꿈 속의 사람이라고.

 

요 며칠의 꿈은 그냥... 꿈이야.

 

저걸 봐, 넌 평생가도 쓰고 싶지 않을 텐데 저만큼이나 비싼것에 돈을 쓸 여유가 있어?

 

하지만 결국 마틴은 사고 말았다.

 

심지어 점원에게 선물로 줄 거니 잘 포장해달라는 말까지 해서.

 

손바닥만한 상자를 벨벳 천으로 감싸고 비단끈으로 장식하듯 묶은 것을 주머니에도 넣지 않고, 마틴은 그대로 들고 재단으로 돌아왔다.

 

자신의 방에 들어와서, 편지를 다시 읽었다.

 

⌜이 편지는 미국에서 최초로 시작되어 일년에 한바퀴 돌면서 받는 사람에게 행운을 주었고 지금은 당신에게로 옮겨진 이 편지는 3일 안에 당신 곁을 떠나야 합니다. 행운이 당신에게 깃들 것입니다⌟

 

3일?

 

오늘이 3일째였다.

 

마틴은 소용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잘 포장된 선물을 손에 쥐고 잠이 들었다.

 

 

 

 

 

“눈 떴소?”

 

밤이다.

 

꿈은 밤에 꾸는 거니까.

 

하지만.....

 

마틴은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보았다.

 

“여긴 내 꿈이예요, 그렇죠?”

 

“그렇소.”

 

“그럼 꿈의 배경도 바꿀 수 있지 않을까요?”

 

“그대가 원한다면.”

 

이걸 보시오, 라며 그는 긴 종이를 펼쳐 보였다.

 

“그대가 무엇을 하고 싶어하던지, 뭐든 가능하오.”

 

그리스의 건축물을 볼 수도 있고, 그 어떤 누구도 발견하지 못한 고대 신전을 탐험할 수도 있소.

 

히말라야의 산봉우리, 브라질 밀림의 흑표범을 만져볼 수도 있고 따뜻한 남쪽 바다에서 거대한 고래와 함께 헤엄칠 수도 있소.

 

“따뜻한 곳으로 가고 싶어요.”

 

그는 마틴의 손을 잡았다.

 

다음 순간, 그들은 거대한 축제의 한복판에 와 있었다.

 

“주위를 보시오.”

 

신문에서 본 적 있다.

 

저것은 피라미드, 저것은 스핑크스.

 

“챌피, 아침에는 네 발, 점심에는 두 발, 저녁에는 세 발로 걷는 것이 무엇인지 아시오?”

 

“전혀. 동물인가요?”

 

“그대는 방금 스핑크스에게 잡아먹혔소. 답은 사람이오.”

 

축제를 하는 사람들은 외국의 이방인들이 나타났는데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북을 두드리는 소리와 음악 소리는 끊이지 않고 흘러나왔고 사람들은 거기 맞추어 춤을 추었다.

 

여기저기 불이 밝았고 사람들은 신처럼 웅장한 건축물 앞에서 춤을 주고 있었다.

 

“밤에? 춤을 춘다고요?”

 

“바로 그렇소!”

 

걱정 말아, 어두워도 남의 발에 발을 밟히는 일은 없을 테니까.

 

릭은 마틴의 손을 잡아당겼다.

 

그들은 순식간에 춤추는 사람들 사이에 휘말렸다.

 

“한밤의 축제 속에 빠진 것을 환영하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이내 익숙해져서 지칠 때 까지 춤을 출 수 있었다.

 

춤을 추고, 추고, 추고, 음악은 뼛속까지 파고들어 뛰고, 손을 들고, 빙글빙글 돌게 한다.

 

마침내는 지쳐, 마틴은 한쪽으로 나가 주저앉았다.

 

“지쳤소?”

 

“너무 재미있어요!”

 

그러자 그는 이가 드러나도록 활짝 웃었다.

 

“나는 그대의 꿈이니까.”

 

그대가 거부할 수 없는 것을 가지고 꿈 속으로 유혹하지.

 

거부할 수 없는 것, 이라는 말에 문득 떠올라서 마틴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왜 그러오?”

 

“분명... 아까 쥐고 잠들었는데, 없어요.”

 

선물과 더불어 잊고 있던 사실이 떠올랐다.

 

마틴이 기운이 없어 보여, 그는 마틴의 옆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당신이 행운의 편지를 보냈어요, 그렇죠?”

 

“그렇소.”

 

“그럼 오늘밤이 마지막 꿈이예요?”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틴은 그를 올려다보았다.

 

저만치, 한쪽 하늘이 밝아오는 것이 보였다.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꿈이고, 헛된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마틴은 그렇게 물었다.

 

“챌피, 이제 가야 하오.”

 

가기 전에 말해 주세요.

 

“우린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그는 마틴의 머리를 쓰다듬었고, 마틴은 어느새 침대에 누워 있었다.

 

잠이 몰려왔다.

 

이름을 물어보려 했는데, 정말 재미있었다고, 멋진 꿈이라고 말해야 하는데.

 

마틴은 ‘마지막’이라고 생각해 팔을 뻗었다.

 

그의 목에 팔을 감고, 귓가에 한마디를 속삭였다.

 

“사랑해요.”

 

세상은 검게 변했다.

 

 

 

 

 

 

네 번째, 다섯 번째 밤.

 

꿈은 꾸지 않았다.

 

선물로 주려고 했던 것은 침대 아래에 떨어져 있었다.

 

여섯 번째의 밤을 보내고 일어난 마틴은 책상 위의 행운의 편지를 집어들었다.

 

봉투 위로 가볍게 입을 맞추고 꿈속의 그를 떠올렸다.

 

재단에서 일을 하고, 입이 심심할 때는 크래커에 초콜릿과 굽지 않은 마시멜로를 얹어 베어 물었다.

 

그리고 지금은.

 

서류를 브루스씨한테 전달해야 했다.

 

다시 한숨이 나왔다.

 

서류뭉치를 들고 그의 사무실로 가, 문을 똑똑 두드렸다.

 

지나가던 누군가가 브루스씨는 지금 응접실에 있다고 했다.

 

급한 서류는 아니었지만 전달하기 위해 응접실로 걸음을 옮겼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길쭉한 의자와 테이블이 있고, 한쪽에 브루스가 앉은 것이 보였다.

 

“브루스씨, 이거...”

 

‘챌피’

 

손에서 서류가 우수수 떨어졌다.

 

“챌피.”

 

‘너무나도 보고 싶었던’

 

“보고싶었소.”

 

생각과 같은 말, 생각과 같은 느낌.

 

마틴은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재단의 ‘침착’하고 ‘차분’한 인재, 마틴 챌피는 자신의 방으로 전력질주를 했고, 다시 응접실까지 전력으로 뛰어 돌아왔다.

 

헉헉거리고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면서, 마틴은 손에 든 벨벳 상자를 그에게 있는 힘껏 던진 뒤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나의 행복한 행운








 

피터의 첫 실기 수업은 타라 조노비치 교수님의 마법 수업이었다.

 

길고도 지루하게 각종 잔소리(라고 받아들여진 설명과 이론)를 마친 다음에 아이들 앞에는 깃털 하나씩이 놓였다.

 

그러고보니 누가 옛날에 이 마법으로 트롤을 쓰러뜨렸다고 하긴 하던데.

 

요즘 세상에 트롤이 어딨어.

 

피터는 자신의 마법 지팡이를 들고 깃털을 겨냥해 공중으로 휙 들어올렸다.

 

자신의 첫 마법 발현이 폴터가이스트인 만큼 이런 것은 쉬웠으니까.

 

그렇게 래번클로에 5점을 받은 피터는 의기양양해졌다.

 

이글 홀든 그건 5학년인 지금까지 점수 깎아먹었다는 얘기밖에 못 들었지만 자신은 고작 첫날에 5점씩이나 받았다구!

 

이걸 토마스 형한테 얘기해주면 기뻐할테지, 빨리 얘기해주고 싶다.

 

그렇게 생각한 피터는 화장실에 간다는 핑계로 몰래 빠져나와 복도를 걸었다.

 

형은 이 시간에 어둠의 마법 방어술 수업을 받는다고 했다.

 

어둠의 마법 방어술은... 그러니까... 1층이지.

 

어둠의 마법 방어술 교수의 사무실은 3층인데 수업이 1층이라니, 진짜 귀찮게 한다.

 

수업도 3층이면 적어도 이 시간만큼은 자신도 같은 층에서 수업을 들을 수 있을 텐데.

 

피터는 대리석 계단을 단숨에 내려갔다.

 

특별히 폭이 넓은 계단이거나 사라지는 계단 따위는 휙휙 뛰어넘으며 단숨에 1층으로 내려와 어둠의 마법 방어술 교실의 문을 활짝 열었더니 수십개의 눈동자가 피터 쪽을 바라보았다.

 

방어술 수업을 맡은 카인 스타이거는 한쪽 손으로는 책을 받쳐 들고 다른 쪽 손으로 지팡이(켈피의 갈기, 마호가니)를 들고 있었다.

 

무슨 일이지?”

 

, 동생 모나헌이다

 

쟤 걔지? ... 래번클로의...’

 

피터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자신을 바라보는 토마스를 찾아 그 쪽으로 갔다.

 

토마스 형, 이것 봐.”

 

피터는 토마스 앞으로 가더니 토마스의 깃펜을 놓고 지팡이(용의 심장, 호랑가시나무)를 휙 휘둘렀다.

 

깃펜은 가볍게 위로 떠올랐고, 피터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이글 쪽을 보았다가 토마스에게 가슴을 펴 보였다.

 

“5점 받았어.”

 

토마스는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몰라 그저 피터를 내려다보는 수밖에 방법이 없었다.

 

피터...”

 

그 때, 아이들을 헤치고 스타이거 교수가 다가왔다.

 

교수는 피터를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래번클로에 30점 감점.”

 

스타이거 교수는 지팡이를 한 번 휘둘러 허공에 있던 깃펜을 떨어뜨렸다.

 

“1학년이니 징계는 주지 않겠다, 피터 모나헌. 네 교실로 가라.”

 

대단하다- 스타이거 교수님 수업을 방해하고

 

이글 홀든에 피터 모나헌에... 래번클로 되게 웃긴다

 

스티븐슨 진짜 고생하겠다

 

아이들이 자기네들끼리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럼 다시 수업으로 돌아가도록 하지. 토마스 스티븐슨, 일어서서 그 다음을 읽어라.”

 

. -그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볼드모트가 부리는 마법 군단에...”

 

피터는 떨어진 깃펜을 보았다.

 

그냥 형이 대단하네, 첫 수업인데 이만큼이나 하고!’라고 해 주었으면 했을 뿐인데.

 

사람들은 수군거리고 비웃고 형은 이쪽을 돌아봐주지도 않는다.

 

토마스 형아.”

 

“...대한 방어책으로는 가장 믿을 사람을 골라 암호를 주고받는 것을 권고했고...”

 

토마스 형.”

 

“...기본적으로는 외형을 본떠 마법을 거는 것이니 암시를 걸거나...”

 

토마스!”

 

토마스의 읽기가 멈췄다.

 

피터.”

 

토마스가 돌아봐 주자 피터가 눈을 반짝였다.

 

, 어서 웃으면서 대단하다고 말해.

 

형 보여주려고 여기까지 왔다고.

 

하지만 토마스는 어쩔 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고, 고개를 저었다.

 

지금 여기는 형이 수업하는 곳이야. 어서 피터 교실로 가.”

 

피터는 잠시간 토마스를 올려다보다가, 몸을 돌려 교실에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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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쌍총/쌍총Ts] 다른 옷

2014. 12. 9. 16:10 | Posted by 호랑이!!!

스타이~~”

 

웨슬리는 카인을 뒤에서 꽉 안았다.

 

근육이 섞였지만 말랑말랑한 몸이 폭 안겼다.

 

“...무슨 일이야.”

 

휴일, 한가로운 날임에도 카인의 의상은 세미정장의 블라우스와 스커트다.

 

너 그 무늬 안 어울려.”

 

링 패턴인가 뭔가라는 기하학 무늬가 빼곡하니 들어선 블라우스는 분명 이번 유행이라고 했지만.

 

-, 어린애가 어른 옷을 입은 것 같달까.

 

순하고 작은 강아지 같은 얼굴인데 이런 딱딱한 옷이라니 아깝잖아.

 

좀 더, 좀 더, 좀 더...

 

그래, 예를 들면 커다란 꽃무늬가 프린팅된 분홍색 티셔츠라던가.

 

O쿠마나 키O같은 캐릭터가 들어간 것도 괜찮을 것 같고...!

 

하지만 카인은 고개를 팩 돌려 아까까지 읽던 책을 다시 펼쳐들었다.

 

웨슬리는 카인의 어깨를 꽉 잡은 뒤 시선을 책에 뺏기지 않게 고개를 바짝 들이밀었다.

 

쇼핑하러 가자!”

 

“Nein.”

 

“...그럴 줄 알고 이미 해 왔지!”

 

“...그런 준비성은 다른 곳에 좀 써.”

 

회색이 섞인 연한 분홍색에 색색가지 꽃잎이 달린 커다란 꽃이 프린트된 티셔츠가 카인 앞으로 내밀어졌다.

 

“...”

 

왜 그런 눈으로 봐?”

 

이런 건 갈색이나 검은색 머리를 길게 기른 애들한테나 어울리는 거야.”

 

카인은 소년들만큼 짧게 자른 자신의 회색 머리카락을 만졌다.

 

“...그리고 기껏해야 고등학생이나 중학생이나... 아무튼 나는 아냐.”

 

내 눈을 믿어!”

 

웨슬리는 연이어 까만색 짧은 바지와 스타킹을 던져 주었다.

 

바지 너무 짧...”

 

빨리 입으라고!”

 

웨슬리가 카인이 입은 블라우스 단추에 손을 대자 카인은 기겁하며 자신의 손을 가슴 앞으로 모아 가렸다.

 

“...볼 것도 없는 게.”

 

웨슬리 슬로언!”

 

 

 



 

카인은 결국 웨슬리가 준 검은 반바지(빌려준 것)와 꽃이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밖으로 나왔다.

 

웨슬리는 아예 바지에 멜빵도 달아주고 싶어 했지만 그건 절대 안 된다고 카인이 기를 쓰고 반대했기에 포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상해...”

 

카인은 가게의 유리나 거울 같이 몸을 비출 수 있는 게 있을 때마다 살짝살짝 자신을 비춰 보며 어색해 했다.

 

하나도 안 이상해, 너 진짜 귀여워.”

 

좋겠다~ 나도 이런 얼굴로 태어났으면 아직도 커다란 리본 달린 머리띠랑~ 레이스 프릴 달린 원피스~ 입었을 텐데~

 

웨슬리는 키득거리면서 카인의 팔짱을 끼고 끌어당겼다.

 

카인은 짧은 바짓단을 잡고 한 번 끌어내리면서 걷더니 다른 쪽 손에 들린 음료수 컵의 빨대를 물고 한 모금 마셨다.

 

나는 너처럼 되고 싶다고...’

[다톰] 커피 마시고 갈래

2014. 12. 4. 01:16 | Posted by 호랑이!!!

눈 내리는 밤.

 

홀든의 장남 다이무스 홀든은 막냇동생이 부탁한 물건을 사기 위해 편의점으로 걸었다.

 

도대체가, 집에서 노는 대학생 주제에, 그냥 자기가 가서 사면 될 것이지 왜 야근하고 피곤에 절은 큰형에게 이런 걸 시키고 그러는지.

 

아니, 그 이전에, 왜 편의점에서 파는 몸에 나쁜 음식을 사서 먹으려는가 이 말이다.

 

집에 있으면 요리사들이 애피타이저의 샐러드부터 디저트 아이스크림까지 만들어 줄 텐데.

 

하기사 그 녀석은 어릴 적부터 속을 이해할 수 없긴 했지.

 

어서오세요~”

 

편의점 유리문을 밀고 들어가니 이글보다 몇 살 어려 보이는 사람이 카운터 너머에 서 있었다.

 

다이무스는 속으로 하던 투덜거림에 한 가지를 더 추가했다.

 

이글 그 녀석은 좀 반성해야 한다.

 

이글보다 어린 사람도 저렇게 열심히 사는데 그 녀석은 형을 부려먹기나 하고...

 

그는 편의점 안을 휘 둘러보았다.

 

주먹밥은 어디 있지?”

 

저 끝 오른쪽에 있어요.”

 

아르바이트생은 손으로 저쪽이라고 가리켰고, 다이무스는 고맙다고 한 뒤 그쪽으로 가 보았다.

 

보자, 그 녀석이 뭘 사달라고 했더라...

 

참치? 베이컨? ?

 

...주면 다 먹겠지.

 

종류별로 하나씩 집고는 카운터로 가져갔다.

 

-’

 

이글한테서 온 문자다.

 

다이무스는 핸드폰을 꺼내 들고 한 손으로는 지갑을 꺼내며 눈은 핸드폰의 액정에 두었다.

 

형 나 배고파~ 언제 오는데~

 

-’

 

계산해드릴게요~”

 

형아아~ 이렇게나 귀여운 막내가 배고프다구!

 

- -

 

[할인이나 적립 카드 가지고 있으신가요?]

 

발랄한 여자의 녹음 음성이 흘러나왔다.

 

-’

 

아 진짜! 다이무스 형! 동생이 배고프다는데 빨리 와서 줘야겠다, 그런 마음 안 생겨?

 

없다.”

 

[현금 영수증 발급받으세요~]

 

-’

 

! 읽는거 다 보이거든! 근데 왜 답장이 없어!

 

귀찮다.”

 

... , 죄송해요. 이 음성에 그렇게 진지하게 답하는 사람은 잘 없어서요.”


웃음을 터뜨리더니 그 사람은 미안하다는 듯 서둘러 사과했다.


봉지에 먹을 것을 담고 계산을 해주더니 그는 카운터 너머로 와 캔커피 두 개를 꺼냈다.

 

여기, 제 건데 하나 드릴게요. 오늘은 눈도 오고, 좀 춥잖아요.”

 

다이무스는 커피를 받기 위해 핸드폰을 내렸고, 그제야 아르바이트생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이름.”

 

토마스 스티븐슨이예요.”

 

토마스는 제 가슴팍에 달린 반짝이는 플라스틱 명찰을 가리켜 보였다.

 

다이무스 홀든이다.”

 

다이무스는 커피를 받아들었다.

 

따뜻했다.

 

“...야간에 일하나? 손님도 없어 보이는데 지루하지 않나?”

 

뭐어... 조금요? 그래도 책도 읽고 공부도 틈틈이 하니까 시간은 잘 보내고 있어요.”

 

하지만 토마스가 보여준 책은 여기까지 읽었다고 표시한 책갈피가 거의 끝에 가 있었다.

 

길어봐야 앞으로 30분만에 다 읽겠지.

 

다이무스는 카운터에 기댔다.

 

같이 커피 마시지 않겠나?”

 

-’

 

~ 언제 와~~~ 다이무스 형아아아아~~~~~~~

 

다이무스는 잠시 핸드폰을 내려다보다가, 꺼 버렸다.

 

 

[쌍총] 향수

2014. 11. 17. 21:18 | Posted by 호랑이!!!

카인과 웨슬리는 번화가의 카페에 앉아있었다.

 

해는 졌지만 온갖 전구로 거리가 환하게 밝았고 음악소리는 어디에서든 흘러나왔다.

 

마치- 그때 같군.

 

세계 대전이 끝난 뒤에... 한창 미국이 승리의 달콤함에 젖어있는 그때.

 

매일밤이 환하게 밝혀졌고 어디에서든 박람회가 열렸으며 젊은 남녀가 길거리에서 무도회를 갖던 때.

 

물론 웨슬리가 거기 끼어본 적은 없었다.

 

박람회에서 사람들이 놀이기구를 탈 때 신형 잠수정에 올랐고, 댄서들의 쇼를 보기보다는 회의에 참석해야 했으며 길에서 솜사탕이나 팝콘을 먹으며 춤을 추기보다는 와인과 스파클링에 카나페를 맛보며 진짜 무도회장에서 여러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었어야 했으니까.

 

하지만 길에서 춤을 추는 사람들이나 박람회를 유리창 너머로 눈에 박히도록 보았기 때문인지, 밝은 거리를 내다보고 있자니 고향 생각이 났다.

 

뭘 그리 보나?”

 

“...밝은 거리를 보니 미국 생각이 좀 났네.”

 

아아, 쇼 따위가 연일 열린다지. 재밌었나보군.”

 

그 반대야, 한 번도 가본 적 없다네.”

 

자네가? ?”

 

웨슬리는 대답 대신 카인의 커피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자네는 왜 게르만이 아메리칸을 마시고 있나?”

 

게르만(Germane)이 아니라 져먼(German)일세, 자네는 미국인이면서 그렇게 영어를 못해서 어쩌면 좋나.”

 

카인은 컵 안의 커피를 마저 마시고 웨슬리의 잔을 보았다.

 

커피에 설탕 두 조각을 넣더니 마냥 창밖을 보면서 스푼으로 휘적휘적 젓고만 있다.

 

입도 대지 않은 저 커피는 이미 차갑게 식었겠지.

 

카인이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스푼을 내려놓자 웨슬리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숟가락을 빼냈다.

 

한 번 옛날 생각을 했더니 주체할 수 없었다.

 

오렌지색과 하얀색의 꼬마전구는 휘감을 수 있는 것이라면 가로등이건 나무건 무엇이든 감고 빛났고 볼거리와 놀 거리가 들어있는 노란색 천막도 여기저기에 쳐져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사람들이 있었다.

 

남자, 여자, 어린이, 나이 든 사람, 연인과 부부.

 

그 넓은 광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은 모두 웃고 있었고, 손에는 제각기 술병과 과자가 들려 있었다.

 

그리고 그 때, 자신은 자동차 안에서 밖의 불빛에 비추어 서류를 보고 있었다.

 

자동차로 거리를 지나며 스치듯이 본 것이었지만 기억에 와 박히기에는 충분했다.

 

웨슬리는 다 식은 커피를 들이키고는 컵을 내려놓았다.

 

지갑에서 팁을 꺼내 찻잔 받침 아래에 두고, 둘은 일어났다.

 

추운 거리를 지나며, 웨슬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곳의 거리는 춥다.

 

사람도 없고, 그나마 저 멀리에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음악도 달랐으며 공기 중에 퍼진 달콤한 향내조차 없다.

 

웨슬리는 한숨을 쉬었다.

 

그 때, 카인은 웨슬리의 허리에 손을 얹었다.

 

다른 손으로는 손을 맞잡고, 한 바퀴를 돌았다.

 

카인?”

 

내가 아는 춤이 하나밖에 없으니 양해하게.”

 

카인은 웨슬리의 손을 잡고 움직였다.

 

거리, 가로등, 반짝이는 전구.

 

그 순간 웨슬리의 눈에 옛날에 보았던 전구가 보였다.

 

설탕이 녹는 달콤한 향기와 녹아내리는 버터의 향, 터지는 옥수수에서 나는 고소한 냄새가 코 끝에 모여 솜사탕과 팝콘의 냄새가 되었다.

 

하나, , 트럼펫과 드럼 소리가 귓가에 떠오르더니 사람들이 모여 춤추던 노래가 되었다.

 

그는 눈을 감고, 몇 분을 더 춤추었다.

 

카인은 그동안 몇 번 웨슬리의 발을 밟았고 웨슬리는 타박을 주며 낮게 킬킬거렸다.

 

거리에서 춤추는 게 이렇게나 즐거울 줄 몰랐어.”

 

웨슬리는 눈을 뜨고 카인의 목에 팔을 감았다.

 

들뜨고 즐거워, 술이라고는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았지만 취한 것 같다.

 

사랑하네, 스타이거.”

 

카인은 그런 그를 내려다보다 다른 팔도 웨슬리의 등 뒤로 돌려 그를 꽉 끌어안았다.



[마틴X이글] 도서관

2014. 11. 11. 00:57 | Posted by 호랑이!!!

마틴은 도서관에서 이글 홀든과 마주쳤다.

 

그의 팔에 들린 것은 꽤 두꺼운 책들.

 

의외로군, 책을 많이 읽는다는 느낌은 받지 않았는데.

 

마틴의 능력이 사람들의 마음속을 읽는 것이니만큼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멍청한 일인지는 안다.

 

하지만 책을 읽는 사람에게서 으레 배어나오곤 하는 깊이나 매력 따위는 여지껏 이글에게서 본 적 없었다.

 

여어, 챌피. 너도 책 빌리러 왔어?”

 

안녕하세요 홀든.”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건네자 이곳이 도서관이라는 점을 감안해 작아진 목소리가 귓가를 간질였다.

 

여기, 도서관이 생각보다 잘 되어있지 뭐야. 나도 모르게 이것저것 빌려 버렸어.”

 

그러면서 짓궂은 웃음을 짓는다.

 

자신과는 동갑이라고 생각하지 못 할 정도로 가볍고 장난스러워 얼핏 귀엽다고 생각해버렸다.

 

그때 연합의 나이오비가 양팔에 책을 안고 다가왔다.

 

이글, 여기 좀 봐.”

 

나이오비가 가져온 책은 전부 동화책이었는데 이글은 그 책들을 두 가지로 나누었다.

 

여기, 이쪽에 있는 건 애들 읽기 힘들 테고... ...이쪽에 있는 게 내가 추천하는 쪽.”

 

이거 재미있네.

 

나이오비는 책에 시선을 두느라 몰랐겠지만 마틴은 보았다.

 

책을 분류하느라 집중하는 동안 이글의 얼굴에서 뭔가가 한 겹 떨어지는 것 같더니 책을 많이 읽는 사람들이 책을 대할 때 짓는 표정이 보였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무언가의 분위기가 흘러나왔다.

 

그 머릿속에 나타난 것은 이글이 기억하는 어린 시절.

 

아마도 행복했을 한 때.

 

이글이 생각하는 속에는 고풍스러운 방 안과 커다랗고 밝은 난롯가가 있었고, 푹신하고 멋진 안락의자와 유모와 형들이 있었다.

 

거기 비치는 감정까지 읽으려 했는데 이글은 이미 마지막 책까지 분류해버렸다.

 

그리고 그 기억들과 분위기와 표정은 이글이 가진 까맣고 차가운 상자 속에 빨려들어가더니 이내 그 상자마저 사라졌다.

 

마틴은 고개를 들었다.

 

평소의 이글이다.

 

겉도, 속도, 표정도, 분위기도, 생각하는 방식까지도.

 

마틴은 이글이 분류한 책 한 권을 들었다.

 

이 책들을 전부 읽어봤나요?”

 

아아, 집에 서재가 있어서. 책만큼은 아쉽지 않게 읽으며 자랐어.”

 

마틴은 이글과 잘 가라는 인사를 나눈 뒤 집었던 동화책을 펼쳤다.

 

이글의 머릿속에서 보았던 것과 토씨 하나 다르지 않은 내용이었다.

 

마틴은 책의 덮개를 입술에 가져다 대고 미소를 지었다.

 

아주 재미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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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X트리비아] 달빛을 받으며

2014. 11. 7. 04:21 | Posted by 호랑이!!!

그것은 아주 차가운 겨울의 달밤이었다.

 

나뭇가지마다 쌓인 눈은 달빛을 받아 반짝였고 좁은 거리마다 휘몰아치는 바람 소리는 사람을 추운 거리에서 따뜻한 집, 지붕과 벽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몰아넣기 충분했다.

 

사람들은 커튼을 치거나, 커튼이 없어도 창문 쪽으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그런 겨울밤에 트리비아와 루이스는 밖으로 나왔다.

 

호수는 스케이트 타기 좋을 정도로 두텁게 얼음이 얼어붙었고 낙엽은 이미 다 져버려 오랫동안 거리를 걷는다고 해도 낙엽이 얼굴에 불쾌하게 달라붙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루이스는 수 백년쯤 전에 기사들이 머리에 꽃을 꽂은 아가씨들에게 그러했듯 허리를 숙이고 팔을 뻗어 트리비아의 손을 청했다.

 

우아하게 그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얹은 트리비아는 루이스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얼음판 위로 한 걸음을 내딛었다.

 

나뭇가지, , 벤치와 가로등 위로 내려앉은 눈은 아름답게 반짝였고 차가운 바람은 베일처럼 그들을 감쌌다.

 

눈이 반사하는 빛을 받으며 그들은 얼어버린 호수 가운데로 천천히 미끄러졌다.

 

호수 가운데, 트리비아와 루이스는 손을 잡고 한 바퀴를 돌았고 문득 좁은 골목을 빠져나온 돌풍을 받아 트리비아의 날개가 펼쳐졌다.

 

왈츠를 추듯 잡은 손을 뻗고 다른 손은 서로의 허리에 감긴다.

 

트리비아의 발끝이 얼음을 스치며 그들은 얼마 전 눈이 와 구름이 적은 하늘로 떠올랐다.

 

달은 하얗고, 차갑지만 밝게 빛나고 있었다.

 

엷은 구름이 마치 무도회의 무대처럼 퍼져 있었다.

 

진주와 장미로 장식한 드레스도 아니었고 여러 겹 격식을 갖춘 예복도 아니었지만 그런 것은 상관없었다.

 

구름이 퍼진 그 가운데에서 그들은 날이 밝을 때까지, 샹들리에와 벽의 촛불 대신 걸린 수많은 별빛을 받으며 들리지 않는 노래에 맞춰 춤을 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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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무스X이글] '지나치게' 감상적인

2014. 11. 2. 20:53 | Posted by 호랑이!!!

주위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건 간에, 다이무스 홀든은 스스로를 지나치게 감상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꽃잎이 떨어지는 광경이나 구름이 하늘에 흘러가는 모양을 하염없이 바라보거나 시 쓰는 일을 좋아하니까.

 

자신은 감상적이다.

 

가주는 감상적이어서는 안 된다.

 

자신은 가주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다.

 

그래서 때로 그는 생각했다.

 

차라리 벨져가 첫째로 태어났더라면 좋았을 것을.

 

분명 좋은 가주는 되지 못하더라도 스스로가 그 위치에 만족할 테니까.

 

다이무스는 창밖을 보다가 책상 위의 쌓인 서류로 시선을 돌렸다.

 

자신은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기억을 더듬어 보면 이글과 책을 읽던 일이 떠오른다.

 

그 책에서는 현학적이고 감상적인 현자가 나왔었고, 같이 책을 읽던 이글은 그 현자가 멋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어렸던 자신은 그 말이 뇌리에 박혔다.

 

현학적이고 감상적인 시라도 써 보려고 했다가 너무 형편없어서 물에 씻어버린 양피지도 여럿 되었었지.

 

그 생각에 이르자 굳어있던 눈가가 부드럽게 풀렸다.

 

"형아, 술 마시자."

 

갑자기 노크도 없이 불쑥 들어와 이글이 말했다.

 

'같이 마실래?'가 아니라 '마시자'인 만큼 이글의 손에는 글라스 두 개와 포도주 병도 들려 있었다.

 

뭔가 중대한 결심이라도 한 걸까, 안색은 굳었고 불안해 보였다.

 

매일 실없이 웃는 얼굴을 하던 이글이 저런 표정이라니.

 

아무래도 이상해서 서류를 하는 대신 같이 술을 마셔주기로 하고 다이무스는 책상에서 서류를 정리해 한쪽에 쌓아두었다.

 

이글은 의자를 가져와 털석 앉더니 글라스에다 와인을 콸콸콸 따랐다.

 

"무슨 일 있더냐?"

 

", 나 말이야-"

 

이글은 연거푸 몇 잔을 들이켰다.

 

저만한 양을 저렇게 들이킨다면 한잔으로도 취할 텐데.

 

"난 형이 좋아. 형이 날 좋아하듯 형이 좋다는 게 아니야. 사랑해."

 

젊은 남자가 연인에게 할 법한 사랑한다는 고백을 듣고 다이무스는 눈을 내리깔고 천천히 글라스에 술을 따랐다.

 

자신은 지나치게 감상적인 인간이다.

 

방금도 이글의 고백을 듣고 하마터면 흔들릴 뻔 했으니.

 

자신은 가주가 되어야 한다.

 

감상적인 부분은 잘라내야 한다.

 

절대로, 흔들리면 안 된다.

 

다이무스는 와인잔을 내려놓고 서랍에서 뭔가를 꺼냈다.

 

형의 반응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던 이글은 자신의 손 옆에 칼이 내려꽂히자 섬뜩함을 느꼈다.

 

아름답게 세공된 편지칼이 손목 옆에 꽂혀 있다.

 

아주 조금이라도 옆으로 움직였다간 오랫동안 검을 잡지 못할 위치였다.

 

"... 다이무스 형...?"

 

"기분 나쁘다."

 

다이무스는 아까와 다를 바 없는 표정과 목소리로 지극히 당연한 것을 말한다는 듯 천천히 손을 떼었다.

 

"네가 제정신이라면 그런 말을 하지 못할 것이다."

 

다이무스는 자칫 흔들릴 뻔한 자신을 다잡듯 말했다.

 

"설마 내가 네 말을 듣고 기뻐하기라도 할 줄 알았나."

 

몸을 숙이자 자신의 눈 앞에 불안하게 떨리는 이글의 눈이 있었다.

 

"두 번 다시는, 내게 가까이 오지 마라."

 

이글은 도망치듯 방을 빠져나갔고 다이무스는 열린 문을 보다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쓰러지듯 자리에 털석 주저앉았다.

 

팔을 앞으로 쭉 뻗더니 정갈하게 쌓여있던 서류를 옆으로 떨어뜨려버렸다.

 

종이는 팔락거리는 소리를 내며 땅으로 떨어졌고 다이무스는 책상에 이마를 대고 있다가 머리를 들고 엎질러진 잔에 와인을 다시 가득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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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의 보물상자

2014. 11. 2. 20:35 | Posted by 호랑이!!!

피터는 서랍을 열었다.

 

서랍의 가장 아래쪽에는 노랗게 바랜 구두상자가 하나 있었다.

 

아이들이 으레 하나씩 가지고 있다는 '보물상자'에는 조개껍데기나 오랜 편지 따위가 자질구레하게 들어있기 마련이었으나 피터의 상자에는 낡은 옷 한벌 뿐이었다.

 

몸이 자라서 옷을 입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에 옷을 넣어둔 것은 아니다.

 

이제는 낡아 색이 조금 바래긴 했지만 솔기 하나 뜯어지지 않고 고이 모셔진 옷은 가슴팍의 검은 얼룩 외에는 아무 흠도 없었다.

 

검은 얼룩.

 

얼핏 잉크처럼 보이는 그것은 사실은 피로.

 

그 주인은... 이제 이름이 기억나지 않았다.

 

이제 생김새나 목소리도 가물가물해지기 시작했지만 안겼을 때 포근했던 품이나 다정하던 말투, 자신을 끊임없이 보살펴주던...

 

파란 머리였다.

 

, 이건 확실해.

 

눈도 파란색... 이었나? 그랬겠지.

 

그리고 하얀색 넥워머...가 있었다.

 

얼음벽이 둘 사이에 서 있었고... 그 얼음벽 너머로 형이 있었고.

 

그리고 정말 투명하던 벽에 극장의 커튼이 막이 내리듯 피가 흘러내렸다.

 

피터는 옷을 집어들었다.

 

이제는 옷이 마치 인형의 옷처럼 작게 보였다.

 

옷에다 코를 묻고 한 번 숨을 들이쉰 뒤 다시 차곡차곡 개어 상자에 넣었다.

 

-보고싶다

 

“...그러니까, 이제 저한테도 평화로운 아침 시간을 달라구요!”

 

뭘 그 정도로 그래~ 오늘은 별일 없었잖아?”

 

-- 없었다구요? 우편물을 전부 다시 분리해서 하나하나 전교생에게 가져다 준 데다 부엉이들이 다친게 별일이 아니예요? 후플푸프 애들도 여럿 다쳤다구요!”

 

부엉이 발톱에 좀 긁힌 거 가지고 호들갑 떨긴.”

 

후플푸프 애들은 이제 래번클로의 이글 홀든하면 치를 떤다구요! 아무리 착한 애들이지만 이대로 가면 그리핀도르와 슬리데린처럼 사이가 나빠질 것...

 

이글은 이어지는 잔소리에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후비적거리는데 지나가던 루이스와 마주쳤다.

 

안녕, 오늘도 수고하네 반장.”

 

수고라뇨, 뭐 수고랄 것 까지는... 루이스 선배도 작년에 반장이셨잖아요.”

 

허어.

 

이글은 순식간에 변신해 수줍어하는 토마스를 보았다.

 

하기사, 이글은 알고 있었다.

 

작년에 루이스가 그리핀도르의 반장을 지낸 이후 토마스가 얼마나 반장을 하고 싶어 했는지.

 

그리고 올해 은색의 P배지가 반장 임명장과 함께 도착하였을 때 얼마나 기뻐하였는지도.

 

그래도 이거 너무하네, 아까까지 자신한테 딱 붙어 잔소리를 퍼붓던 토마스는 어디로 가고 이렇게 수줍어하는 새댁같은 녀석이 왔냐.

 

토마스, 얼굴 빨개졌다.”

 

, 아니, 이건... 그냥 더워서...”

 

이제 11월인데?”

 

손부채질을 하는 토마스를 삐딱하게 놀려대자 루이스는 둘의 어깨를 툭툭 쳤다.

 

수고해, 토마스 반장. 이글 너도 토마스 그만 고생시키고.”

 

루이스가 떠나자 이글 홀든은 입술을 삐죽 거렸다.

 

수고해 토마스 반장~?”

 

이글은 멀어져가는 루이스 쪽으로 혀를 내밀었다.

 

들었죠? 저 좀 그만 고생시키라고 하잖아요.”

 

, 꼭 갓 결혼한 새신랑한테 하는 말 같네.”

 

전 이글 형 아니어도 할 일이 많다구요.”

 

토마스는 이글의 말을 못들은체 하며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토마스 형.”

 

그때 저쪽에서 걸어오는 1학년 꼬마가 보였다.

 

초록색 머리에 하얗게 타들어간 눈.

 

미쉘 모나헌의 동생으로 홀해 입학한 1학년생이었다.

 

반장에, 퀴디치 선수에, 보모라니 거 바쁘겠네.”

 

형이 사고만 안 치면 토마스 형 일도 반으로 줄어들 거야. 망나니 형.”

 

그러더니 토마스의 다리 뒤에 숨어서 보란 듯 토마스를 끌어안는다.

 

그건 네 얘기겠지, 하루종일 토마스한테 찰싹 붙어선.”

 

내가 그런다고 기숙사 점수가 깎이거나 징계를 받지는 않아. 오늘 소동으로는 몇 점 깎았어? 5? 10?”

 

20점이었다.

 

토마스는 그만 하라는 듯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 거기까지. 피터, 수업 들어갈 준비 다 했어?”

 

.”

 

교과서?”

 

넣었어.”

 

양피지 두루말이.”

 

있어.”

 

잉크병, 깃펜은?”

 

피터는 대답 대신 가방을 열어 보여주었다.

 

잘했어, 그럼 수업 잘 다녀와.”

 

, 형아도 잘 다녀와.”

 

얼씨구, 아주 훈훈하시다.

 

겉보기만으로는 우리 형제보다도 더 형제같으니 이게 바로 물이 피보다 진하다는 경우로구나.

 

이글은 피터와 눈이 마주치자 눈꺼풀을 까뒤집었다.

 

그리고 지나가는 피터한테 있는 힘껏 발을 밟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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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의 첫 연습

2014. 11. 1. 18:20 | Posted by 호랑이!!!

당신 있잖아요-”

 

길거리에서 바이올린을 켜던 사람은 상냥한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오케스트라 해 보지 않을래요?”

 

오케스트라...?”

 

파란 머리에 다정한 표정의 청년은 눈이 마주치자 빙그레 웃어보였다.

 

왜인지, 이 일을 받아들이게 된다면 자신의 인생이 바뀔 수도 있으리라는 희망이 생겼다.

 

, 지금 오케스트라7의 바이올린 한 자리가 비었거든요.”

 

스스로를 토마스 스티븐슨이라고 소개한 그는 이번 일요일에 전체 연습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곡은 비발디였고 자신도 몇 번이나 연습한 적 있는 것이었다.

 

일요일에, 주소가 적힌 쪽지를 보고 찾아간 곳은 어느 지하 연습실이었다.

 

지하라서 그런가 좀 춥네.

 

안으로 들어갔더니 제각기 악기를 든 사람들이 이미 자리에 앉아있었다.

 

어서오세요.”

 

토마스다.

 

토마스가 자신의 자리는 저쪽이라고, 손수 이끌어 주었다.

 

그런데 그는 연미복을 입고 있어서 의아했다.

 

연습... 이라고 들은 것 같은데 연미복을 입고 있어요?”

 

저한테는 엄청 중요한 연습이라서요.”

 

수줍게 웃은 토마스는 지휘봉으로 악보 거치대를 톡톡 두드렸다.

 

자 그럼, 7번째 오케스트라의 첫 연습을 시작하겠습니다-”

 

첫 연습이라 중요하다고 한 걸까? 하는데 가슴을 뚫고 얼음조각이 튀어나왔다.

 

한곡의 지휘를 마친 토마스는 기분 좋다는 듯 신음 섞인 한숨을 나른하게 뱉었다.

 

아아... 언젠가는 콘서트를 열고 싶다...”

 

연습실의 문이 닫혔다.



[이글X빅터] 고양이 -03

2014. 11. 1. 18:03 | Posted by 호랑이!!!

 

이글이 자고 가라고 했음에도, 빅터는 저녁을 먹고 한두시간 고양이를 돌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애 이름은 지어주고 가.”

 

고양이의 화장실 설치나 스크래처가 딸린 캣타워를 만드느라 시간을 한참이나 써버렸다.

 

피곤한 표정으로 일어나는 빅터에게, 이글이 툭 던졌다.

 

말하고 보니 그럴싸한 이유다.

 

빅터를 그냥 보내기에 아쉬워 아무거나 집히는대로 던졌건만.

 

이름...”

 

나비? 야옹이? 복실이?”

 

농담삼아 몇 가지 얘기했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래, 농담이야.

 

체르니... 바흐... 베토벤...”

 

“...너 음악가한테 무슨 감정이라도?”

 

당장 떠오르는 이름이 그것밖에 없어서.”

 

또 뭐가 있지, 오페라?

 

그러다 시계를 힐끔힐끔 본다.

 

벌써 열시였다.

 

그러고보니 저 어린이의 눈에 졸음이 매달린 것이 보이는 것 같다.

 

착한 어린이는 침대로 갈 시간이긴 하지.

 

자고 가라니까.”

 

그건 싫어.”

 

고양이 이름이라도 빨리 결정할 셈인지 이름을 툭툭툭툭 내뱉는다.

 

에밀리? 엘리자베스? 샤를로트?”

 

“...그 전에, 쟤는 암컷이야 수컷이야?”

 

그러자 너무나도 당당하게 대답한다.

 

나야 모르지.”

 

그리고 자신도 고양이 성별에 신경써본 적이 없다.

 

앞으로도 신경쓰지 않을 예정인 이글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럼 수컷이든 암컷이든 상관없는 이름으로 지어줘.”

 

에클레어.”

 

그건 음식 이름이잖아.”

 

빅터는 다시 한 번 시계를 보더니 걸어가 문을 열었다.

 

내일 정할래.”

 

그리고 한 발을 문 밖으로 뺐다.

 

이글 형도 생각해봐.”

 

다른 한 발도 빠지고, 몸이 거의 사라지려는 찰나 머리가 쏙 안쪽으로 들어온다.

 

형이 지어줘도 상관없어.”

 

그리고 머리는 다시 문 밖으로 나가고, 문도 탕 닫혔다.

 

이글은 소파로 가 당당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있는 새끼고양이의 목덜미를 들어올리더니 자리에 털석 앉아 다리를 꼬았다.

 

빅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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