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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릭마] 연인의 심장 소리

2015. 5. 8. 19:31 | Posted by 호랑이!!!

째 깍 째 깍

 

마틴의 회중시계는 9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사람의 심장이 분당 몇 번을 뛰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시계랑 비슷하지 않을까?

 

아마 그럴 것이다.

 

적어도 릭에게는 그럴 것이다.

 

사람에게 어떠한 소리가 있다면 릭에게서 나는 소리는 갓 베어낸 풀향기를 실은 남풍이 부는 소리와 바로 이, 시곗바늘이 움직이는 소리일 테니.

 

그렇지 않고서야 그에게 안겼을 때 들리는 시곗소리에 그렇게 마음이 편해질 리 없으니까.

 

마틴은 릭에게 안길때면 귓가에서 들렸던 톱니바퀴가 맞물려 나는 시계의 합창을 기억했다.

 

빨리 업무가 끝났으면 좋겠다.

 

“지금 몇 시예요?”

 

“형씨 시계 있잖아?”

 

마틴은 그 물음에 웃음으로 답한다.

 

 

 

 

릭은 트와일라잇에 있을 때와는 달리 와이셔츠의 소매를 내렸다.

 

소매 너머로 찬 손목시계들이 울퉁불퉁하게 보였지만 얼핏 옷 주름으로 보이기도 했기에 누구도 릭에게 왜 그렇게 많은 시계를 차고 다니느냐 묻지 않는다.

 

릭은 그 중 소매 밖으로 나온 하나의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6시.

 

빨리 점심시간이 되어서 커피라도 같이 마시고 싶네.

 

이미 하얀 머그컵에는 포트로 끓여낸 향 좋은 커피가 가득 담겨 있었지만 릭은 마틴이 타주는 맛없는 커피를 생각했다.

 

“데이트라도 있어?”

 

“티 납니까?”

 

“계속 시계만 들여다보니까 그렇지, 그런다고 시간이 빨리 가지는 않아~”

 

릭의 회사 동료인 그는 몸을 기울여서 데이트 시간이 시계에 표시되기라도 한 것 마냥 릭의 손목시계를 내려다보았다.

 

“...어라? 시계가 고장났나? 시간이 안 맞잖아, 시계 고치는 곳에 가 봐.”

 

“고장났을 리가 없는데.”

 

“봐, 지금은 6시가 아니라 10시라고.”

 

릭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가 떠나고, 릭은 마틴이 있는 런던의 시간으로 맞춰진 시계를 손목에서 풀어내었다.

 

시계를 귓가에 가져다대면 째깍째깍 초침 돌아가는 소리가 난다.

 

귀에 댄 것은 아까까지 손목에 차고 있던 손목시계지만 릭이 떠올리는 것은 놋쇠 빛깔의 둥근 회중시계다.

 

마틴의 심장 가까이 매달린 그것은 어쩌면 마틴을 닮았을 것이다.

 

째깍 째깍.

 

마치 연인의 심장소리를 듣는 기분.

 

릭은 웃음을 참으려는 듯,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아 점심시간까지 못 참겠네, 커피 마시러 간다고 하고 몰래 찾아갈까.

 

이 시간에 찾아가면 놀라겠지?

 

릭은 눈을 감고 미소를 지었다.

 

연인의 푸른 눈이 놀라 동그랗게 커진 것이 눈 앞에 보이는 듯 했다.

 



[Ss어필] 발레리안/레오의 휴가 이야기

2015. 4. 17. 05:43 | Posted by 호랑이!!!

발레리안이 휴가를 받은 어느 날.

 

레오폴드는 자신이 손으로 집어 입으로 가져가는 것이 과자라는 사실을 깨닫고 멈칫했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람 하나 살기에 충분한 크기의 원룸식 아파트.

 

현관을 들어서면 왼편으로는 부엌이 있고 오른편에는 텔레비전과 소파, 테이블이 있고 소파 뒤로는 침대가 있다.

 

그리고 그는 소파에 앉아서 그 앞 테이블에 놓인 과자 그릇에 가득 담긴 갓 구워진 쿠키를 들고 있었다.

 

‘...벌써 몇 개나 먹었더라?’

 

그릇 옆에는 먹다 남은 치킨이 든 상자와 빈 피자박스, 빈 맥주캔이 여러개나 있었다.

 

크림이 덕지덕지 묻은 게임기는 바닥에 떨어져 있었고 오랫동안 방치한 텔레비전의 모니터는 까만 바탕에 초록색 글자로 <외부입력>이라는 글자가 깜박거렸다.

 

벌써 며칠이나 이런 생활을 한 거지?!

 

레오폴드는 과자를 입술로 물고 몇 번 우물거렸지만 머릿속이 혼돈의 도가니가 된 탓에 움직일 수 없었다.

 

운동도 하지 않고 이런거나 먹고, 야채도 과일도 피자에 토핑된 것 외에는 보지도 못하고.

 

아 세상에, 이런 폐인같은 생활이라니.

 

아무리 휴가의 진정한 재미가 불규칙한 생활이라지만 이건 건강에 안 좋잖아!

 

레오? 과자, 맛없어요?”

 

레오폴드 에반스는 옆에서 들리는 소리에 그 원흉을 짐짓 노려보았다.

 

이런 설탕 중독 같으니.

 

이렇게나 야채도 과일도 섭취하지 않는데 영양 불균형으로 죽기는커녕 살도 찌지 않는다.

 

아마 이것은 자신이 열심히 잔소리를 해서겠지.

 

....아니면 신의 편애거나.

 

레오, - 해봐요.”

 

멋모르고 입을 벌렸더니 물고있던 과자가 떨어졌다.

 

그걸 집어 다시 입으로 넣는데 발레리안 헌트는 아직 따끈한 과자를 여러개나 쥐더니 전부 레오, 그의 입으로 넣어 버리는 것이다.

 

아에이아-?!”

 

손을 더듬자 주스병이 만져진다.

 

컵에 따르지도 않고 벌컥벌컥 마시는데 옆에서는 재밌다는 듯 깔깔거리고 웃는다.

 

레오폴드는 억지로 입에 든 것을 씹어 삼키더니 옆을 보고 한 마디 했다.

 

오늘 식사는 샐러드만 줄 거예요.”

 

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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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XJ] 아무 날도 아닌 날

2015. 4. 12. 03:06 | Posted by 호랑이!!!




아무 날도 아닌 날이었다.

 

휴일도 생일도 기념일도 아닌 그런 날.

 

간만에 날씨는 좋고 따뜻해서 웨슬리는 외출할 때 으레 쓰곤 했던 중절모를 벗어 옆에 끼고 걸었다.

 

어제 침대 옆에 아무렇게나 던져둬서인지 겉옷의 소매가 조금 구겨져 있었다.

 

그걸 매만져 펴면서 웨슬리는 어젯밤의 생각을 했다.

 

따뜻하게 데워진 방안의 공기와 음란하게 흔들리는 연인의 몸.

 

어쩌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자신만인지도 모르겠다.

 

침대 옆에는 협탁이 하나 있는데, 그 위에는 액자에조차 들어있지 않은 사진이 있었다.

 

앨범이라면 집의 책장에 꽂혀 있는데.

 

벌써 몇 년 전에 샀지만 아직 절반도 채우지 못한 앨범은 위에 먼지가 쌓일 정도였는데도.

 

그런데 청소도 하지 않는 협탁 위의 사진은 먼지가 쌓이기는커녕 가장자리가 닳아 있었다.

 

젊은 날의 카인과 레나.

 

그리고 때마침 잡화점이 웨슬리의 눈에 띄었다.

 

...그래, 여태까지는 카인이 레나를 잊을 수 있게 노력했지.

 

그게 잘못이었을지도 모른다.

 

카인이 레나를 잊지 못하고 사랑한다고 해도 웨슬리는 그런 카인도 사랑할 수 있었다.

 

웨슬리는 잡화점으로 갔다.

 

 

 

 

 

간만에 날씨는 좋고 따뜻하니 창문을 열고 거리를 내려다볼 수 있는, 그런 날.

 

카인은 저녁부터 밤까지 웨슬리와 뒹굴었던 침대에 앉아 있었다.

 

으레 쓰던 도구가 든 협탁 위에는 흑백의 사진이 한 장, 액자도 없이 놓여 있었다.

 

카인은 그것을 쥐고 침대로 누웠다.

 

, 레나.

 

그대의 사진을 보며 웨슬리의 침대 위에 있어도, 이제 미안한 마음은 들지 않아.

 

어쩌면 지금껏 슬로언이 노력했던 것이 결실을 맺는지도 모르지.

 

슬로언은 벌써 몇 년이나 노력했으니까, 남자의 마음은 갈대라 이 말이야.

 

카인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책장 아래를 뒤져 벌써 옅게 먼지가 쌓인 앨범을 꺼내 먼지를 털어내고는 앨범을 활짝 펼쳤다.

 

앨범에는 웨슬리와 자신과, 가끔은 다른 사람들이 함께 찍은 사진이 가득했다.

 

새삼 한 장씩 페이지를 넘겨가며 사진과 거기 붙은 두줄짜리 메모를 보며 추억에 젖던 카인은 그 중에서 한 장을 꺼내들었다.

 

웨슬리와 함께 살기 시작한 날 집 앞에서 찍은 것.

 

그리고 그 자리에는 레나의 사진을 내려놓고 다시 얇은 비닐을 덮었다.

 

다시 앨범을 꽂아놓는데 열쇠 돌아가는 소리가 나고 웨슬리가 들어왔다.

 

다녀왔네.”

 

웨슬리는 들어오자마자 카인의 손에 납작하게 포장된 상자를 내밀었다.

 

어서오게.”

 

자신의 마음에 웨슬리가 들어왔다.

 

자신의 예상보다 크게.

 

그 사실을 인정해서인지 카인의 마음은 꽤나 들떠있었다.

 

그래서 자신이 꺼내든 사진을 웨슬리 앞에 내밀었다.

 

슬로언, 앞으로 침대 옆의 테이블에 놓을 사진은 이걸세.”

 

그러자 웨슬리는 조금 당황한 듯 보였다.

 

카인은 테이블에 사진을 올려두고는 웨슬리가 준 선물의 포장지를 풀어보았다.

 

웬 건가? 오늘은 내 생일이 아니네만.”

 

“...그냥 자네 생각이 나서 사 봤네.”

 

레나의 머리카락을 연상시키는 테의 액자.

 

카인은 그것을 들고 잠시 내려다보았다.

 

아무래도... 내가 좋지 않은 때 사온 모양이지?”

 

“...전혀, 그렇지 않네.”

 

카인은 그 뚜껑을 열어서는 그 안에 자신이 빼 두었던 사진을 집어넣었다.

 

사진이 조금 더 컸지만 끝을 조금 접으니 무리 없이 들어간다.

 

팔을 쭉 뻗어 보고는,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기다리겠지만 그대 이상으로 그를 사랑하고 있을 거야.

 

나의 밤은 뜨겁지 않지만 따뜻하고 온화해.

 

그대와 하던 식사만큼 재미있지는 않지만 나는 즐거워.

 

그대와 있던 날은 아름다웠고 지금의 나는 행복해.

 

카인은 지그시 눈을 감고는 작게 웃음지었다.

 

“Auch er tief in mir einfiel.”

 

그는 내 마음 속에 너무나도 깊이 들어와 버렸네.




[티엔하랑] 조각 케이크

2015. 3. 9. 00:13 | Posted by 호랑이!!!

시작은 늘 그렇듯, 자그마한 것이다.

 

하랑이 건네는 것을 받다가 손가락이 스쳤다.

 

어쩌면 다른 것이 시작일 수도 있겠지.

 

시선이 스쳤다던가, 말을 하는데 목소리가 섞였다던가.

 

하지만 티엔이 유달리 반응한 시작은 손가락이었다.

 

손가락이 스쳤다.

 

그것뿐이었는데 하루 종일 그 손가락에 신경이 쓰였다.

 

아직도 하랑의 손가락이 닿아 있는 것 같고 쥐여 있는 것 같아 종이 하나도 그 손으로 들 수 없었다.

 

두 번째는 머리카락.

 

연합의 홀든이 하는 머리를 보더니 저도 해보겠노라고 머리를 풀었는데 그런 모양으로 묶어본 적이 없다고, 티엔 그더러 묶어달라 댕기를 내밀었다.

 

티엔은 내 머리도 묶지 않는데 네 머리를 묶을 수 있겠느냐며 타박하면서도 하랑이 내민 댕기 대신 주려고 마련해두었던 리본을 꺼내들었다.

 

하랑이 내민 참빗을 받아들고 앞에 앉혀 머리카락을 쥐었는데, 머리카락이 손 안에서 미끄러졌다.

 

사라락 하는 소리가 들렸고, 그 소리는 밖에서 내리는 빗소리마냥 하루 종일 귓가에서 맴돌았다.

 

겨우 손가락일 뿐이었는데.

 

겨우 머리카락 흘러내리는 소리였는데.

 

거울을 보고 익숙하지 않은 모양새에 쑥스러워하다 이내 풀어내리는 모습이.

 

손가락에 닿은 온기가.

 

머리카락이 손 안에서 미끄러지던 촉감이.

 

그것들이 하나하나 너무 달콤해서, 마치 시럽에 담가 재운 케이크 같았다.

 

손가락과 한 줌의 머리카락.

 

작은 케이크.

 

케이크에서 잘라낸 작은 조각.

 

입에 댈수록 더 당겨오는 향기로운.

 

티엔은 앞서 걸어가는 하랑을 보았다.

 

머리채 끝에는 하던 댕기 대신에 자신이 선물한 리본이 감겨 있었다.

 

양과의 조각이 맛 좋았으니, 다음은 커다란 것을 손에 넣을 것이다.

 

티엔은 생각을 갈무리하며 그 뒤를 조용히 걸었다.

 

 

[to.복익님] 베르베르

2015. 3. 4. 00:01 | Posted by 호랑이!!!

해가 질 시간이지긴 하지만 밖은 매우 밝았다.

 

그러나 방 안은 어두웠다.

 

커튼을 젖히면 밝은 햇살이 방 안을 가득 채울텐데도, 방의 주인은 고집스레 커튼을 닫아두었다.

 

어두운 색의 두꺼운 커튼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햇살은 방 안의 불보다 밝았다.

 

겨우 문 하나 차이인데, 만약 누군가가 복도에 서 있다 그 방으로 들어섰다면 오래간 묵은 공기에 숨이 막혔을지도 모른다.

 

베르나르, 라고 불리는 사람은 여느 때와 다름없는 어딘지 권태로운 표정으로 문을 열었다.

 

잘 맞는 정장에 바닥에 부딪혀 뚜벅뚜벅 소리를 내는 구두와 지팡이 대신 앞을 짚는 검은 우산.

 

그는 방 안으로 들어서서 문에 기대 잠시 눈을 감았다가 뜨고 장갑 낀 손을 내려다보았다.

 

, 이탈리아.”

 

히죽 웃으면서 뒤를 이탈리아어로 말한다.

 

밝고 아름다운 도시.”

 

그는 거리에서 보았던 작은 소녀를 떠올렸다.

 

하얀색 천을 덧댄 분홍색의 원피스를 입은 소녀는 볕 잘 드는 곳에 앉아 입에는 사탕을 물고 손에는 동화책을 들고 있었다.

 

위로 하나나 둘 정도 형제가 있었는지 책은 살짝 바래 있었고 몇 페이지는 끝이 접혔던 흔적이 보였다.

 

별로 예쁜 꼬마도 아니었고, 눈길을 끌 만한 무엇도 없었기에 베르나르는 이내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떠올렸다.

 

하지만 어느 페이지에 이르자 그 여자아이는 울었고, 어느 페이지에서는 웃었다.

 

여자아이가 그 짧은 책을 오래오래 읽을 동안 베르나르는 그 자리에 못박혀 그 아이만을 빤히 쳐다보았다.

 

제목도 외웠다.

 

Il Blue Bird.

 

독일어로는 ‘Der blaue Vogel’.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는 서점에 들렀었다.

 

아까 그 꼬마아이가 읽고 있던 것과 같은 책을 찾으려고 해 봤지만 똑같은 책은 없었다.

 

똑같이 바래고 똑같이 접힌 책이 갖고 싶었는데.

 

결국에는 같은 제목의 다른 책을 손에 들었다.

 

꽤나 세밀하고 멋진 삽화가 실린 책.

 

표지에 그려진 덩굴이 전부 몇 번이나 꼬였는지, 잎사귀가 몇 개나 달리고 꽃은 몇 송이나 피고 파랑새는 몇 마리나 날고 있는지 외울 정도로 보았지만, 표지조차 넘기지 못했다.

 

또 그런 것을 보고 있구나, 르미엘.’

 

환청처럼, 어릴 때 듣곤 했던 목소리가 기억 속에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목소리만 떠올렸을 뿐인데도 서늘한 눈동자가 떠올랐다.

 

이어 숨조차 조심스레 쉬어야 했던 분위기와 어머니가 즐겨 입던 드레스의 빛깔이 되살아나고 자신이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듯한 시선이 다가왔다.

 

베르나르는 결국 책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거기까지 회상했을 때 발치에서 작은 고양이 소리가 들려 현실로 깨어났다.

 

때마침 핸드폰이 울렸다.

 

어느샌가 딱딱하게 인상을 썼던 베르나르는 나쁜 꿈을 꾼 사람이 그러하듯 길게 숨을 내쉬고 눈을 깜박였다.

 

핸드폰을 보니 어느 동료가 한 전화였다.

 

, 심장이 뛴다.

 

그 박동을 새삼스럽다는 듯 느끼며 그는 전화를 받았다.

 

, 베르나르입니다~”

 

밝고, 어머니가 들었다면 경박하다고 할 만한 말투로 그는 전화를 받았다.

 

외울 정도로 보았던 동화책도, 소녀도, 서점에서 떠올렸던 그 생각들도.

 

모두, 곧 잊혀질 것이다.

 

어느샌가 그는 다시 권태롭기도 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어느 날 티엔은 제 몸이 묶인 것을 알아차렸다.

 

침상이 아닌 푹신한 침대에 몸이 묶이고 몸 위로 누가 올라타 있었다.

 

그 사람은 팔을 뻗어 바로 옆에 있는 창문을 활짝 열었고, 그제서야 하얗게 달빛이 쏟아들어왔다.

 

따뜻한 바람에 하얀 레이스 커튼이 나부끼고 티엔은 제 위에 누가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루시.

 

인생의 오점이라고 할 수 있는 그녀는 너머가 훤히 비치는 하얀 레이스로 된 원피스 같은 속옷을 입고 있었고 손에는 같은 색의 레이스로 만든 부채를 들고 웃고 있었다.

 

아 저 웃음.

 

아 저 야살스러운 웃음.

 

티엔은 미간을 찌푸렸다.

 

루시는 더 진하게 웃음을 피우며 펼쳐들고 가만히 부치던 부채를 접었다.

 

차르륵 하는 익숙한 소리가 들렸다.

 

루시는 그 위에서 몸을 앞으로 굽혔다.

 

몸을 앞으로 굽히자 가뜩이나 눈 둘 곳이 없어 곤란해하던 티엔은 고개를 돌렸지만 이내 원래대로 돌아왔다.

 

반대로 돌렸지만 다시, 루시를 보게 된다.

 

하얀 레이스 부채가 턱을 간질이고 있었다.

 

고개를 이리 돌리면 부채는 제 뺨을 눌러 고개를 다시 저쪽으로 향하게 하고, 저리 돌리면 다시 루시를 보게 하고.

 

루시가 제아무리 능력자라지만 결국은 한낱 연약한 계집아이.

 

그런 계집아이가 부채로 농락하는 것에 제가 놀아나는 것인가.

 

고개를 돌리지 못하게 턱 아래에 부채를 대는 것에 아예 눈을 감았더니 루시는 부채를 꽉 쥐었다가 제 뺨을 후려갈긴다.

 

, , , 부채가 제 얼굴을 때리는 소리가 연달아 들리고.

 

결국 눈을 떴더니 루시는 부채를 활짝 펼쳐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반투명하고 하얗게 반짝이는 부채 너머로는 빨간 입술이 어두운 방에 달빛만으로도 요염하게 빛나고 있었다.

 

티엔.”

 

꿈에도 잊은 적 없는 목소리는 제 이름을 부르고 루시는 제 뺨을 쓰다듬었다.

 

맞아서 트고 부은 뺨은 부드럽지 않은 손에 열을 식히고.

 

티엔은 눈을 느리게 깜박였다가 문득 무언가를 깨달았다.

 

..., 그렇구나.

 

이 곳은 루시의 방이다.

 

티엔은 묶인 손과 발을 조금씩 당겨 보았다.

 

가위일까?

 

루시는 여전히 그 위에 올라앉아 이 모든 것이 재미있다는 듯 여전히 웃고 있었다.

 

티엔은 눈을 감았다.

 

이번에는 루시도 제 뺨을 내리치지 않았다.

 

어쩌면 그 이름을 부르면 깰지도 모른다.

 

손가락을 한 번 까딱하면 깰지도 모르고.

 

이대로 침대를 박차고 일어나면, 다시 눈을 뜨면, 목소리를 내면, 깰지도 모른다.

 

하지만 티엔은 그 중 무엇도 하지 않았다.

 



[윌라드렉] 기분을 알아차리는 것

2015. 3. 1. 03:34 | Posted by 호랑이!!!

런던 거리, 잘 닦인 도로 가장자리로는 가스등이 죽 늘어서있고 녹지 않은 눈은 도로 사이사이로 눌려 얼어붙어 있다.

 

메마른 눈이 광장 가득 떨어지고 있지만 눈을 뭉쳐 노는 어린아이들이나 뛰어다니는 귀여운 강아지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 중절모를 쓰고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마차를 타거나 서로 지나칠 뿐.

 

얘깃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고 웃음소리 역시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윌라드와 드렉슬러도 마찬가지였다.

 

둘은 기차역에서 내려 마차에 올랐고 내리는 눈만큼이나 조용한 목소리로 윌라드가 목적지를 말한 이후로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드렉슬러는 코트의 깃을 세우고 마차에 앉았다.

 

뚜껑이 없는 마차라 어깨며 모자 위로 눈이 떨어졌다.

 

우중충하고 칙칙한 런던.

 

눈조차도 보기 좋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군.

 

심지어 어느 곳에선가는 조금 녹은 눈이 질척한 웅덩이를 만들어 거리의 미관을 더욱 해쳤다.

 

드렉슬러는 힐끗 옆을 보았다.

 

원래도 잡담을 좋아하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오늘은 유달리 말이 없다.

 

아까 기차 안에 나오던 히터 온도가 좀 높긴 했지, 겉옷을 벗었는데도 더워서 차장을 불러다 물어보니 고장났다고 했었고.

 

가다가 배가 고파져서 식당칸에서 식사를 주문했는데 시킨 샌드위치에선 벌레도 나왔고, 주문했던 음식이 전부 맛이 없어서 반도 안 먹고 나왔다.

 

결국 홍차와 커피를 마시고 고픈 배를 안고 자리로 돌아와 더운 바람이나 맞으며 왔는데... 원래가 금세 기분이 나빠지는 양반이니 뭐.

 

윌라드가 들었다면 남말하지 마십시오라고 할 만한 생각을 하며 드렉슬러는 묵묵히 앞만 보았다.

 

마차는 도착했습니다, 라는 말도 없이 목적지에 매끄럽게 멈춰 섰다.

 

삯을 지불하고 둘은 백화점 안으로 들어갔다.

 

드렉슬러는 품에서 물건의 이름을 적어둔 종이를 꺼내 점원에게 읽어주었다.

 

오늘 받기로 예약해둔 크루그먼입니다.”

 

하지만 크루그먼이라는 이름은 다음 주로 적혀 있는데요, 뭔가 실수가...”

 

드렉슬러는 뒤에서 윌라드 크루그먼 이사의 기분이 나빠지는 것을 느꼈다.

 

아아, 보지 않아도 느껴진다.

 

대신에 이 술은 어떨까요? 예약하신 물건 못지않게 좋은 건데-”

 

드렉슬러는 되었다고 말하려고 했지만 뒤에서 윌라드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거라도 주십시오.”

 

점원은 활짝 핀 얼굴로 이건 어떻고 저건 어떻고 하면서 설명을 늘어놓았으나 윌라드는 시큰둥한 얼굴로 고개나 몇 번 끄덕일 뿐이었다.

 

딴 생각 하고 있구만, 저거저거.

 

드렉슬러는 또 저걸 어떻게 기분을 풀어주나, 했다가 뭔가를 깨달았다.

 

내가 왜 기분을 풀어줘야 해?

 

생각해보니 이거 또 화가 나네.

 

윌라드 저건 내 기분 따위 하나도 관심이 없을 텐데 난 뭐하러 삐지면 달래주고 비위 맞춰주고 있는 거지? 내가 언제부터 남의 기분을 신경썼다고!

 

드렉슬러는 뒤에 가만히 서 있다가 윌라드가 내미는 술 상자를 받아들고 다시 밖으로 나가 마차에 올랐다.

 

마차를 타고 협력 관계에 있는 회사로 가 안으로 들어가자 안으로 들어오라는 안내를 받았다.

 

런던에 오는 것은 또 오랜만이군요, 오는 길에 생각이 나 술을 한 병 샀는데 마음에 드실지 모르겠습니다.”

 

드렉슬러는 술 상자를 넘겼다.

 

나무 상자가 열리고 두터우며 고급스러운 보라색 천이 벗겨지자 안에서 호박색 빛을 내는 술이 든 병이 나왔다.

 

유리잔에 얼음이 딸그랑 소리를 내며 떨어졌고 호박색 액체가 부어졌다.

 

건배.

 

드렉슬러는 한 모금 마시고 작게 미간을 찌푸렸다.

 

상대는 이 술이 마음에 든 모양이지만 제 입맛에 맞는 술은 아니었다.

 

딸그락.

 

평소보다 센 소리로 유리잔이 내려지길래 옆을 힐끗 보았더니 또 기분이 나쁘다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

 

어차피 자신밖에 못 알아보는 것 같긴 하지만.

 

드렉슬러는 얼음이 녹기를 기다렸다가 잔을 기울여 마저 비워냈다.

 

일을 끝내고 머물기로 한 호텔에 돌아와 잘 준비를 하는데 윌라드는 문득 적포도주 한 병을 꺼냈다.

 

한 잔 하시죠.”

 

됐어, 너나 마셔.”

 

“...안 마실 겁니까?”

 

드렉슬러는 잠깐 윌라드를 쳐다보았다가 빼앗듯이 잔을 낚아챘다.

 

일부러 취할 때까지 마시고 침대에 풀썩 드러누우니 그 위로 체중이 실리는 것이 느껴졌다.

 

다리오.”

 

술 때문에 기분 좋은 열이 났고 차가운 시트가 닿는 것도, 스치면서 간질거리는 것도 전부 기분이 좋았다.

 

지그시 눈을 감는데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났다.

 

어차피 자는 것은 아니라는 건 알고 있어서인지 말소리가 들렸다.

 

오늘, 계속 기분이 좋지 않아 보이더군요.”

 

“...내가?”

 

그러자 익숙한 손이 닿아 왔다.

 

어차피 저밖에 알아차리지 못하는 일이긴 합니다만.”

 

드렉슬러는 잠시 눈을 떴다가, 다시 감았다.

 

지나치게 기분이 좋았다.

 

 

 

어둠의 마법 방어술 교수인 카인 스타이거의 사무실은 3.

 

허나 스타이거 교수가 수업을 위해 고른 교실은 1층이다.

 

점심시간이면 늘 오전 수업동안 배고파했던 학생들은 교수가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를 말하는 순간 연회장으로 달려간다.

 

그러면 스타이거 교수는 학생들이 달려나간 직후의 고요한 복도를 걸어 계단 앞까지 가고, 그러면 아래층에서 마악 걸어 올라온 마법의 약 교수 웨슬리 슬로언과 마주칠 수 있다.

 

오늘도 수고했네, 슬로언.”

 

자네도, 스타이거.”

 

한쪽 팔에는 오늘 사용했던 책을 끼고 나란히 걷지만, 연회장으로 바로 가지 않고 넓은 1층을 한 바퀴 돌다시피 한다.

 

오늘도 복도에는 사람이 없구먼, 다들 배가 고팠나 보지.”

 

“...그러니까 젊은 애들한테 아침마다 죽 따윌 먹이니까 저렇게 굶주려 있는 거야."

 

내가 젊을 땐-하고 운을 떼는 것을, 슬로언 교수가 막았다.

 

덕분에 우리는 좋지 않나.”

 

그도 그렇군.”

 

식전 산책은 홀과 연결되는 계단부터 시작해서 안뜰이 보이는 복도를 걸어 한 바퀴 도는 것을 말한다.

 

원래라면 유령들이 돌아다니곤 하지만 스타이거 교수와 얘기한 덕분에 이 시간만은 1층에 오지 않는다.

 

한 번 정도는 괜찮지 않나.”

 

질리지도 않는군.”

 

언젠가 그들이 학생이었던 때처럼 웃음섞인 목소리로 키득거리면서 결과를 아는 시답잖은 수작을 걸었다.

 

저쪽에서 다 보이네.”

 

어차피 아무도 없지 않나.”

 

그래도, 그럼 춥기도 하니 이쪽으로 돌아서서-”

 

날씨는 평소처럼 흐리다.

 

그런 평소의 나른하고, 조금은 야릇한 분위기를 내려는 찰나.

 

안뜰 쪽에서 외침 소리가 들렸다.

 

피터!!!”

 

마악 빈 교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려던 스타이거는 손을 멈춰버렸다.

 

“...래번클로의... 토마스 스티븐슨이군.”

 

“...성실한 학생이지.”

 

자네한테서 성실하다는 얘기를 듣다니, 역시 기대되는 학생이야.”

 

평소와 달리 다급해 보이는 모습에 그들은 빈 교실에서의 밀회 대신 안뜰을 지켜보기로 하고 난간에 다가서서 기댔다.

 

안뜰, 아직 겨울이라 분명히 나무와 덩굴이 있음에도 초록색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회색에 가까운 정원 속에서 서로 다른 두 가지의 푸른 머리색은 확실히 눈에 띄었다.

 

“...뭐라는지 들리지는 않는군.”

 

학생의 프라이버시는 지켜주는 게 어떤가, 슬로언.”

 

버릇처럼 기둥의 그늘 뒤에 숨어 지켜보던 그들은 마침내 푸른 머리 중에서 작은 쪽이 큰 쪽에게 안기는 것을 보았다.

 

그러고보니 저 학생이지? 자네 수업 중에 무작정 들어왔다던.”

 

스타이거 교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피터 모나헌은... 듣자하니 1학년 중에서도 유독 두각을 드러낸다고 하더군.”

 

내 수업시간에도 가장 뛰어나긴 하네만.”

 

슬로언 교수는 몸을 구부려 기둥 바깥쪽으로 고개를 내밀고 의뭉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스타이거 교수를 올려다보았다.

 

옛날의 자네를 닮았네.”

 

나는 재능이라곤 없었지만.”

 

스타이거 교수는 작게 대꾸하고 여느 때라면 슬슬 연회장에 도착할 시간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오늘은 이만 가지.”

 

그럴까, 점심 메뉴가 기대되는군.”

 

스타이거 교수는 벽을 짚고 몸을 일으키는 슬로언 교수에게 짧게 입술을 대었다.

 

“...그래도 작은 모나헌에게 스티븐슨 학생이 있어서 다행이네.”

 

내가 그러했고, 그러한 것처럼.

 

그들은 복도를 마저 돌아 홀로 가는 계단을 내려갔다.

 



 

그리핀도르의 루이스와 슬리데린의 벨져의 관계는 그거다.

 

친구보다 먼, 라이벌보다는 가까운.

 

아무리 학생수가 적다지만 루이스와 벨져는 사실 3학년까지 서로가 존재한다는 사실도 몰랐다.

 

한두번 본 적은 있다지만 서로 예쁘네라는 감상 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고.

 

그런 그들이 제대로 얼굴을 마주본 것은 벨져와 루이스가 3학년이 되어 각기 추격꾼과 수색꾼으로 퀴디치 팀 멤버가 되었을 때였다.

 

결승전에는 그리핀도르와 슬리데린이 맞붙게 되었고 후반 3분을 남겼을 때 스코어는 20:130이었고 루이스는 벨져에게 제안했다.

 

앞으로 3분 동안, 너 혼자서만 골을 넣는 거 어때?’

 

그 정도 핸디캡을 달더라도 내가 이긴다는 것을 보여주지

 

그러나 그 이후 벨져는 다섯 번의 시도에서 한 골밖에 넣지 못했고, 그동안 그리핀도르는 두 골을 더 넣고 스니치까지 잡아 역전했다.

 

이러한 역전승에 그리핀도르를 응원하던 학생들은 전부 일어나 환호했고 벨져는 그 일 때문에 충격을 받아 한동안 퀴디치 연습까지 빠질 정도였다나.

 

어쨌거나 지금은 다 지난 이야기다.

 

벨져, 이거 뭐야?”

 

이건 수업시간에 교수님이 설명해준 것 아닌가.”

 

방해받아서 짜증난다는 듯, 벨져는 가볍게 혀를 찼다.

 

여기서 만드라고라는...(중략)...이다. 그리고 거기, 오소리 가죽은 잘게 썰어서 넣어야 한다고 기술해야지.”

 

, .”

 

성의없이 대꾸하지 마라. 이따 읽어봐줄테니 다 쓰고 내놔.”

 

한창 소리죽여서 말을 하는데 저만치 토마스가 책장 사이로 사라지는 것이 보였다.

 

저쪽은 1학년들 추천도서가 있는 곳인데.

 

그러고보니 그거 들었어?”

 

뭐 말인가.”

 

피터 모나헌이라고, 래번클로 1학년. 걔가 스타이거 교수님 수업에 토마스 하나 보러 무작정 찾아갔다가 쫓겨났다더라.”

 

, 소문의 30.”

 

그 뒤로 피터가 보이지 않는다더니, 찾으러 다니나 보네.”

 

벨져는 잉크에 깃펜을 푹 담갔다가 꺼내 양피지에 글을 적으며 대꾸했다.

 

어떤 상황인지 알겠군, 예전에 이글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결국 정원 구석에서 덜덜 떠는 것을 찾긴 했지만.”

 

그건 좀 귀엽게 들리는데?”

 

실제로 귀여웠었다. 달래기 위해서 따뜻한 코코아와 마시멜로를 유모 몰래 가져다주려고 고생하긴 했었지만.”

 

아무래도 형이면 어쩔 수 없이 해주게 된다니까.”

 

그러고보니, 넌 형제가 있나?”

 

있긴 있어.”

 

거기서 루이스가 무어라 덧붙이려는 순간, 사서가 무시무시한 표정으로 그들의 옆에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둘 다, 잡담은 나가서 하도록!”

 

결국 쫓겨나, 그들은 양피지 다발과 잉크병을 손에 들고 복도에 섰다.

 

아 곤란하네, 도서실 다음으로 공부하기 좋은 곳은 휴게실인데 우린 기숙사가 다르고, 밖은 추운데.”

 

빈 교실이라도 찾아보지. 어지럽히지만 않는다면 교수님들도 신경 쓰지 않을 거다.”

 

복도를 따라 걸으며 루이스는 옷깃을 여몄다.

 

아 춥다-.”

 

벨져는 루이스의 망토를 힐끗 보았다.

 

이 날씨에 입기에는 지나치게 얇은데? 그리고 안에 한 목도리는 어울리지 않게 고급품이고.

 

루이스.”

 

벨져가 부르기 전에, 복도의 모퉁이에서 누군가 먼저 루이스를 불렀다.

 

트리비아.. 교수님.”

 

카리나 교수님, 안녕하세요.”

 

안녕, 홀든.”

 

박쥐 애니마구스이고 변신술 교수인 트리비아 카리나는 뱀파이어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우아하고 뇌쇄적으로 아름다웠다.

 

들리는 말로는 팬클럽까지 있다지.

 

둘이 여기서 뭐하고 있어?”

 

공부할 교실을 찾는 중이예요, 교수님.”

 

그러자 트리비아 교수는 뭔가를 생각하는 듯, 입술 위로 손가락을 올리며 눈을 내리깔았다.

 

단지 그뿐이었는데도 저절로 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5층에 있는 내 교실이라면 써도 좋지만, 다 쓰고 정리하는 거 기억하렴.”

 

고맙습니다.”

 

다시 복도를 돌아가 계단을 올라갔다.

 

넓고 좁은 계단을 오르고 사라지는 발판을 뛰어넘어 5층까지 올라갔다.

 

루이스는 변신술 교실을 열었다.

 

변신술 수업 외에는 쓰이지 않는 곳이라 그런지 교실 구석에는 달팽이가 가득한 수조가 몇 개나 놓여 있었다.

 

리포트 다 쓰고 주방에 간식 먹으러 갈 건데, 같이 갈래?”

 

싫다. 내가 왜 너랑 간식이나 먹으면서 한가하게 굴어야 하나.”

 

그럼 빗자루 타러 갈래?”

 

루이스, 리포트에 집중해라.”

 

차갑게 거절하고, 한동안은 책장 넘어가는 소리와 종이에 글자를 적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정적은 이내 깨졌는데, 벨져는 다 쓴 리포트를 다시 점검하며 루이스에게 물었다.

 

“...이번 크리스마스 선물 말인데. 장갑으로 할까?”

 

장갑은 받을 사람이 있으니까 다른 걸로.”

 

모자가 좋겠군.”

 



[쌍총/19금] 딥 쓰로트

2015. 1. 9. 0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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