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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엔하랑마틴] 어느 날의 꿈?

2015. 7. 15. 02:44 | Posted by 호랑이!!!

이것은 아주 어릴 적, 이하랑이 산신을 만나기 전에 있었던 이야기다.

 

어린 하랑은 그날도 아이들과 진탕 싸우고 돌아왔고 고단하여 일찍 잠이 들었더란다.

 

꿈속에서 온갖 개를 보는데 그 개들은 눈빛이 형형하고 살갗이 벗겨지거나 다리가 없거나 한 일도 왕왕 있어 안타까운 마음이 들긴 했었다.

 

개들은 그를 보니 반갑다며 꼬리를 치고 혹여 놀랄까 달려들지도 않고 의젓하게 옆에 서 만져달라며 가만 기다렸다.

 

영특하고 안타까우니 쓰다듬을 만도 하건만 하랑은 선뜻 그러질 못했다.

 

그 개들에게서는 이세상의 것이 아닌 기운이 풍겨 본능적인 거부감에 다가갈 수 없게 했으니.

 

앞에 서서 마침내 그 거부감을 누르고 머리며 귀를 만져주니 개들은 좋다고 다시 꼬리를 친다.

 

하지만 그뿐이라, 개들은 하랑이 몸이라도 더 쓰다듬거나 안아주기 위해 가까이 가려 할 때마다 몸을 뒤로 물려버리고.

 

그에 하랑이 가까이 가려 했더니 뒤에서 누군가 걸어오는 것이 느껴졌더란다.

 

고개를 돌렸더니 글쎄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상냥한 목소리의 사람이 여기까지 오는 게 아니라고 달랬고.

 

여기는 죽은 이들이 오는 곳이지요?”

 

그렇단다.”

 

왜 난 여기가 무서운 것이오?”

 

그러니 그 이가 말했다.

 

친구가 없어서 그렇지.”

 

어린 하랑은 양 팔을 벌렸다.

 

무서우니 안아주시오.”

 

그 이는 하랑이 안겨오자 당황한 듯 했지만 이내 등을 토닥이었다.

 

갈 때는 조심하거라, 누군가 맛난 것을 주어도 먹으면 아플 테니 입에 대지 말고, 누군가 이리 오라 손짓해도 믿지 말고.”

 

길을 따라 쭉 걸어가면 될 것이라.

 

그가 등을 떠미니 아까까지 없던 곳에 문이 생겼다.

 

“...나랑...”

 

나랑 친구가 되어주지 않겠소? 하고 묻고 싶었는데.

 

그 사람은 답 없이 문을 열어 그를 쫓아냈다.

 

길은 고르고 알록달록한 돌로 꾸민 예쁜 곳이었다.

 

길이 꼭 사탕과자 같고나 생각하는데 누군가 제 손에 아가 이거 먹어보렴 하고 하얀 것을 준다.

 

나중에서 안 거지만 그것은 과자에 얹은 아이스크림으로 보기에도 퍽 맛나 보여 한 입 물었더니 대번에 숨이 막히고 가슴이 아팠다.

 

문득 먹지 말랬지!’하는 소리가 들리고 손을 찰싹 맞아 아이스크림을 떨어뜨렸다.

 

그제야 아까 일이 생각나서 화닥닥 길을 뛰었다.

 

뛰고, 뛰고, 뛰었고 한숨을 슥 돌리려는데 눈이 확 뜨였다.

 

꿈은 거기서 끝.

 

하랑은 개꿈이려니 생각하고 일어나 머리를 털었다.

 

단 하나 아쉬운 건 친구가 되어달라고 말할 것을, .

 

그리고 그 아쉬움도 령을 부리기 시작하며 사라졌다.

 

 

 

 

 

 

하랑, 얌전히 굴어야 한다.”

 

사부도 참, 한두살 먹은 애도 아니고 걱정도 많소.”

 

처음 재단에 오는 날, 이색적인 능력이라 보고 싶어하는 이가 많다고 티엔은 그를 사람들 앞에 세웠었다.

 

이거 꼭 서당에 처음 간 날 같구만.

 

단상에서 주위를 둘러보는데 문득 하랑의 눈을 잡아끄는 사람이 있었다.

 

가로세로 하얗게 줄무늬가 들어간 모자를 푹 눌러쓰고, 그 아래는 금색 머리카락.

 

오라 저게 금발이라는 거구만?

 

하는데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하랑은 지독한 기시감에 몸을 멈췄다.

 

? 예지몽 따위에서 본 사람인가?

 

아니, 최근에 꾼 예지몽에서는 저런 사람이 나오질 않았었는데.

 

소개가 끝나고 질문을 받는 도중에도 눈은 그 사람에게서 떨어지질 않았다.

 

마침내 서커스단 원숭이마냥 앞에 두는 일은 끝났고 티엔은 계속 집중하지 않는 하랑이 어딜 보는가 하여 그쪽을 보았다가 어깨를 잡아 시선을 돌리게 했다.

 

이하랑, 그 사람은 가까이하지 않는 게 좋다.”

 

실례네요 티엔 정, 이제 한 식구잖아요?”

 

아까까지 저 멀리 있던 이는 고개를 돌리니 바로 앞에 있었다.

 

부드러운 표정과 선량한 인상에 목소리는 유난히 상냥하다.

 

저 목소리, 저 목소리를 분명 들은 적 있었는데!

 

목소리를 들으니 마치 벼락이라도 맞은 마냥 몸이 부르르 떨리고 온몸의 털이 바짝 섰다.

 

마틴 챌피예요, 이름이 마틴이고 패밀리 네임이 챌피, 이해했나요?”

 

대답도 못 하고 얼떨떨히 고개를 끄덕이는데 티엔이 그들 사이를 막아섰다.

 

무슨 수작이냐.”

 

수작이라니 너무하시네요, 그저 인사를 하려는 것뿐이랍니다.”

 

그 잔재주로 내 제자를 꼬드기기라도 했다간 끝이 좋지 못할 거다.”

 

그럴 생각은 없으니 비켜 주시죠, 오랜만에 인사를 하고 싶으니까.”

 

마틴은 티엔을 비켜나게 한 뒤 하랑을 꼭 껴안았다.

 

색목인들은 이게 인사야?”

 

그렇답니다, 반가워요 하랑 이.”

 

옆에서 지켜보던 티엔은 마틴의 입에서 이어 흘러나온 답잖은 말에 놀랐다.

 

저와 친구가 되지 않겠어요?”

 

 

 

 

 

 

 

 

 

친구가 되겠다니 정말 어울리지 않는 말이로군.”

 

실례라니까요.”

 

하랑의 조선 신분은 박수라 높지도 않고, 능력이야 앞으로 자라겠지만 당장은 쓸 곳이 없는데 뭣 때문이냐?”

 

부드러운 빛의 스탠드 조명에 의지해 책을 읽던 마틴 챌피는 책을 탁 덮어버렸다.

 

그런 것 때문에 사람을 사귀지는 않는답니다. 웬일로 제 방에 온다 싶더니 시비를 걸러 온 건가요?”

 

경고다.”

 

하랑은 내 제자다.

 

그렇게 말하고 사라지는 뒤에 대고 마틴이 웃었다.

 

하랑은 제 것이 될 거예요.”

 

 



[티엔하랑] 조각 케이크

2015. 3. 9. 00:13 | Posted by 호랑이!!!

시작은 늘 그렇듯, 자그마한 것이다.

 

하랑이 건네는 것을 받다가 손가락이 스쳤다.

 

어쩌면 다른 것이 시작일 수도 있겠지.

 

시선이 스쳤다던가, 말을 하는데 목소리가 섞였다던가.

 

하지만 티엔이 유달리 반응한 시작은 손가락이었다.

 

손가락이 스쳤다.

 

그것뿐이었는데 하루 종일 그 손가락에 신경이 쓰였다.

 

아직도 하랑의 손가락이 닿아 있는 것 같고 쥐여 있는 것 같아 종이 하나도 그 손으로 들 수 없었다.

 

두 번째는 머리카락.

 

연합의 홀든이 하는 머리를 보더니 저도 해보겠노라고 머리를 풀었는데 그런 모양으로 묶어본 적이 없다고, 티엔 그더러 묶어달라 댕기를 내밀었다.

 

티엔은 내 머리도 묶지 않는데 네 머리를 묶을 수 있겠느냐며 타박하면서도 하랑이 내민 댕기 대신 주려고 마련해두었던 리본을 꺼내들었다.

 

하랑이 내민 참빗을 받아들고 앞에 앉혀 머리카락을 쥐었는데, 머리카락이 손 안에서 미끄러졌다.

 

사라락 하는 소리가 들렸고, 그 소리는 밖에서 내리는 빗소리마냥 하루 종일 귓가에서 맴돌았다.

 

겨우 손가락일 뿐이었는데.

 

겨우 머리카락 흘러내리는 소리였는데.

 

거울을 보고 익숙하지 않은 모양새에 쑥스러워하다 이내 풀어내리는 모습이.

 

손가락에 닿은 온기가.

 

머리카락이 손 안에서 미끄러지던 촉감이.

 

그것들이 하나하나 너무 달콤해서, 마치 시럽에 담가 재운 케이크 같았다.

 

손가락과 한 줌의 머리카락.

 

작은 케이크.

 

케이크에서 잘라낸 작은 조각.

 

입에 댈수록 더 당겨오는 향기로운.

 

티엔은 앞서 걸어가는 하랑을 보았다.

 

머리채 끝에는 하던 댕기 대신에 자신이 선물한 리본이 감겨 있었다.

 

양과의 조각이 맛 좋았으니, 다음은 커다란 것을 손에 넣을 것이다.

 

티엔은 생각을 갈무리하며 그 뒤를 조용히 걸었다.

 

 

어느 날 티엔은 제 몸이 묶인 것을 알아차렸다.

 

침상이 아닌 푹신한 침대에 몸이 묶이고 몸 위로 누가 올라타 있었다.

 

그 사람은 팔을 뻗어 바로 옆에 있는 창문을 활짝 열었고, 그제서야 하얗게 달빛이 쏟아들어왔다.

 

따뜻한 바람에 하얀 레이스 커튼이 나부끼고 티엔은 제 위에 누가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루시.

 

인생의 오점이라고 할 수 있는 그녀는 너머가 훤히 비치는 하얀 레이스로 된 원피스 같은 속옷을 입고 있었고 손에는 같은 색의 레이스로 만든 부채를 들고 웃고 있었다.

 

아 저 웃음.

 

아 저 야살스러운 웃음.

 

티엔은 미간을 찌푸렸다.

 

루시는 더 진하게 웃음을 피우며 펼쳐들고 가만히 부치던 부채를 접었다.

 

차르륵 하는 익숙한 소리가 들렸다.

 

루시는 그 위에서 몸을 앞으로 굽혔다.

 

몸을 앞으로 굽히자 가뜩이나 눈 둘 곳이 없어 곤란해하던 티엔은 고개를 돌렸지만 이내 원래대로 돌아왔다.

 

반대로 돌렸지만 다시, 루시를 보게 된다.

 

하얀 레이스 부채가 턱을 간질이고 있었다.

 

고개를 이리 돌리면 부채는 제 뺨을 눌러 고개를 다시 저쪽으로 향하게 하고, 저리 돌리면 다시 루시를 보게 하고.

 

루시가 제아무리 능력자라지만 결국은 한낱 연약한 계집아이.

 

그런 계집아이가 부채로 농락하는 것에 제가 놀아나는 것인가.

 

고개를 돌리지 못하게 턱 아래에 부채를 대는 것에 아예 눈을 감았더니 루시는 부채를 꽉 쥐었다가 제 뺨을 후려갈긴다.

 

, , , 부채가 제 얼굴을 때리는 소리가 연달아 들리고.

 

결국 눈을 떴더니 루시는 부채를 활짝 펼쳐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반투명하고 하얗게 반짝이는 부채 너머로는 빨간 입술이 어두운 방에 달빛만으로도 요염하게 빛나고 있었다.

 

티엔.”

 

꿈에도 잊은 적 없는 목소리는 제 이름을 부르고 루시는 제 뺨을 쓰다듬었다.

 

맞아서 트고 부은 뺨은 부드럽지 않은 손에 열을 식히고.

 

티엔은 눈을 느리게 깜박였다가 문득 무언가를 깨달았다.

 

..., 그렇구나.

 

이 곳은 루시의 방이다.

 

티엔은 묶인 손과 발을 조금씩 당겨 보았다.

 

가위일까?

 

루시는 여전히 그 위에 올라앉아 이 모든 것이 재미있다는 듯 여전히 웃고 있었다.

 

티엔은 눈을 감았다.

 

이번에는 루시도 제 뺨을 내리치지 않았다.

 

어쩌면 그 이름을 부르면 깰지도 모른다.

 

손가락을 한 번 까딱하면 깰지도 모르고.

 

이대로 침대를 박차고 일어나면, 다시 눈을 뜨면, 목소리를 내면, 깰지도 모른다.

 

하지만 티엔은 그 중 무엇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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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엔X하랑] 생일 축하

2014. 10. 23. 00:53 | Posted by 호랑이!!!

하랑은 아버지가 이국으로 가는 날 주었던 주역을 펼쳐들었다.

 

전기가 들어오는 곳이었으나 부러 전등 대신 기름등잔을 꺼내었다.

 

바지직 바지직 기름 타들어가는 내음은 향긋하고 소리가 나직하니 마치 이 순간만이라도 고향으로 간 것 같다.

 

주역은 아직 어렵고, 어쩌면 아버지에게까지도 어려웠겠지만 이 책을 자신에게 준 것은 이국 땅을 밟을 자신에게 흉운이 멀어지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기원이렷다.

 

음기가 어쩌고, 양기가 어쩌고.

 

몇 장쯤 읽다 하랑은 공기가 더워 창을 열었다.

 

“거 달도 밝다.”

 

보름달도 아닌 것이 자그마해서 이곳의 가스등 따위에 빛이 위축될 만도 하건만 그러한 기색도 없이 깊고 어두운 밤하늘에 떠 밝게 비치니 감탄이 절로 나왔다.

 

달 좋고, 주위도 모처럼 고요하니 좋고.

 

여기 향긋한 술이나 한 잔 있으면 좋으련만.

 

하랑은 아버지 몰래 한잔 두잔 빼어먹던 것을 생각하며 입맛을 다셨다.

 

“...향긋하지 않아도 되니까 마시고 취할 곡차 한 잔만 있으면 좋으련만.”

 

하랑은 팔을 뒤로 돌려 머리에 대면서 휙 누웠다.

 

“어린놈이 술타령이라니 퍽이나 보기 좋은 모양새다.”

 

그런데 눕는 순간 들어오는 것이 사부의 얼굴이라니.

 

“거 인기척 좀 내고 다니쇼.”

 

하랑은 방금 누웠지만 몸을 일으켜 앉았다.

 

“호오, 주역?”

 

티엔은 책상 위에 놓인 책을 집어들었다.

 

“아버지가 주신 거요.”

 

티엔은 하랑의 옆에 앉더니 가지고 온 것들을 주섬주섬 풀어놓았다.

 

“떡, 전, 생선에 술? 이게 다 뭐야?”

 

이걸 여기서 볼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데.

 

먹기 좋게 잘린 과일이 담긴 접시까지 나오자 하랑은 얼떨떨하면서도 기뻐 배 조각을 집었다.

 

조선 것보다야 무르지만 맛만은 같으니 입에다 톡 던져넣고 우물우물 먹는다.

 

티엔은 작은 잔 두 개를 꺼내더니 그 잔에다 술을 따랐다.

 

아까는 어린놈이 술타령이다 뭐다 하더니.

 

하랑은 이게 무슨 일이냐는 듯 티엔을 빤히 쳐다보았다.

 

마지막으로 양과가 든 분홍색 상자를 주더니, 티엔이 입을 열었다.

 

“네놈 생일상이다.”

 

“...이 야밤에?”

 

“그래야 내가 네 생일을 제일 처음으로 축하해 준 사람이 되지 않나.”

 

뭘 그런 걸 신경쓰고 그러시나.

 

그러면서도 하랑은 양과자를 집어 티엔의 입에다 물려주었다.

 

“그래도 난 사부가 제일 먼저 축하해 주어서 기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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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엔하랑] 노래

2014. 9. 1. 20:57 | Posted by 호랑이!!!

“달빛 어스름 한밤중에-, 깊은 산-길 걸어가다...”

 

그랑플람 재단의 숙소는 크게 동양식과 서양식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그 동양식이라는 것도 꽤 그럴싸하여 하랑은 마루에 앉아 발을 까딱이며 노래를 부를 수 있었다.

 

달도 더덩실 떴겠다 고향 생각도 났으니 한 곡 구성지게 뽑기엔 아주 그만인 밤 아니더냐.

 

“머리에 뿔 달린 도깨비가 방망이 들고서 에헤야 둥둥-.”

 

“잘도 부르는구나.”

 

아 깜짝이야.

 

“사부가 무슨 돗가비요? 소리도 없이 불쑥 튀어나오게?”

 

“그런 셈 치던가.”

 

“헤엥, 사부는 방망이도 없잖소.”

 

없긴 왜 없어.

 

그럼, 있우?

 

“육방망이가 있잖느냐.”

 

“이런 미친, 자기가 무슨 이몽룡인 줄 알아.”

 

모처럼 감상에 푹 젖어 있으려는데 파토가 났다.

 

하랑은 머리를 긁적이며 옆에 와 앉는 티엔에게 폭 기댔다.

 

“계속 불러 보거라, 그래서 도깨비를 만난 이는 어찌 되었나.”

 

“어쩌긴 뭘 어째,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도망쳤지.”

 

부러 몸을 치대며 하랑은 팔을 쭉쭉 뻗어 기지개를 켜는 척 티엔의 머리를 밀어내곤 그 다리를 베고 누웠다.

 

“흥이 다 깨졌수다.”

 

“...잘 부르더만.”

 

“옛부터 신한테 바치는 공물 중에 제일은 춤하고 술하고 노래라지.”

 

그래도 칭찬이라고 불콰하지 않아 하랑이 어깨를 으쓱 한다.

 

티엔은 무릎을 베고 누운 하랑의 머리를 쓰다듬는 체 하여 앞머리를 넘긴 뒤 허리를 숙여 이마에다 입술을 대었다.

 

“분위기 없는 소리를 하여 네 속이 또 삐딱해진 것인가.”

 

“‘또’는 빼시지, ‘또’는.”

 

옳다는 대답이라, 티엔은 속을 풀라며 몇 번이고, 하랑이 귀찮다며 일어나 앉을 때까지 입술을 대었다.

 

하랑아 삐졌느냐, 속 풀거라, 응? 하는 것이 그리 귀여워 보일 수 없어 하랑은 마침내 웃으며 앉았다.

 

“좀 풀렸느냐.”

 

“좀 풀리었소.”

 

“그럼 아까 그거나 다시 불러 보거라.”

 

“결국 제 원하는 것을 채우려는 속셈이었구만?”

 

키들거리는 웃음을 흘리는 그 눈매가 곱기도 곱게 휘어진다.

 

달도 훤하고 바람도 선선하고, 툇마루에 둘이서만 앉아 그리 좋을 수 없더라니.

 

하랑은 결국 그 사부를 위해 다시 입을 열었다.

 

 

[티엔하랑/연령반전] 잠꼬대

2014. 8. 30. 19:46 | Posted by 호랑이!!!

좋은 사람.

 

정 티엔, 올해 열일곱이 되는 그가 그의 스승에 대해 가진 첫 번째 감상이었다.

 

양 팔에 희고 검은 반점을 가지고 태어나 다들 불길하다며 자신을 피할 때 홀연히 나타나 자신을 거두어 주었다.

 

음양의 균형에 대해 어린 자신도 알 수 있도록 설명도 해 준데다 무술이며 몸의 균형을 위한 수련법도 가르쳐 주었다.

 

이름이 티엔이라 성은 무엇이냐고 묻기에 부모를 몰라 알 수 없다고 하였더니 ‘정’ 자를 주었고.

 

겨울이면 옛날 이야기, 여름이면 귀신 이야기, 재미난 이야기들로 밤을 보내었고 더운 날이면 글공부를 하다가도 천렵을 가자 이끌어서.

 

그래서 그가 스승으로, 형으로, 때로는 친우로까지 느껴지기도 했었다.

 

아아, 그것도 자신이 아무것도 모르던 아이 때까지로.

 

마냥 행복했던 시절은 어느 유달리 잠이 오지 않던 밤 스승의 잠꼬대를 들으며 끝났다.

 

무슨 이유엔지 항상 옆에 붙어있던 스승은 잠잘 때만은 어떤 일이 있어도 다른 방에 있었고 자신은 그 말을 잘 들었지만...

 

어느 유달리 잠이 오지 않던 날, 몇 시간 자지도 않고 일어났었다.

 

밤은 고요했고 자신도 눈만 떠 어두운 천장을 보았다.

 

늘 시끄럽던 풀벌레 소리조차 들리지 않아 기이하다고 여기는데 흙벽 너머로 사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를 애타게 부르는 잠꼬대.

 

항상 웃었고, 의기양양했던 목소리는 간 데 없이 울음과 처절함이 배어 있었다.

 

그리고 티엔은 깨달았다.

 

조선 사람이라는 그가 왜 중국 구석까지 왔는지.

 

수련하는 것은 자신인데 왜 사부가 수련이 싫다고 칭얼대듯 말하였는지.

 

왜 자신을 보는 눈에 때로 아픔이 깃들어 있었는지.

 

그리고 그 어느 어렸던 밤부터 자신의 가슴에는 응어리가 생겼다.

 

“아-, 비오네.”

 

사부는 이제 저보다 작았다.

 

낼모레 서른이라고 하지만 장난기 넘치는 표정이나 놀자 하는 그 표정은 본 나이보다 훨씬 어려보이게 했다.

 

궂은비가 내리는 마당을 바라보던 그는 땋은 머리의 끝을 끌어당겨 비비 꼬다가 역시나 ‘오늘은 놀자’며 샐쭉 웃어보였다.

 

“전이라도 부쳐 올까요?”

 

“술도 한 병, 너는 차 마시고.”

 

“알겠습니다.”

 

순순히 부엌에서 밀가루며 계란을 꺼내는데 밖에서 매캐한 냄새가 난다.

 

무슨 일인가 하여 밖을 보았더니 사부, 이 하랑이 긴 담뱃대를 물고 있었다.

 

끝을 마루에 대고, 손으로 대를 잡아 입술을 둥글게 내미니 희뿌연 담배 연기가 흘러나와.

 

연기로 장막을 쳐 세상과 저 사이를 가르기라도 할 것처럼 넓게 뱉지만 바람에 연기는 흩어진다.

 

“사부님.”

 

“어엉? 기름이라도 떨어졌어?”

 

“담배 피셨습니까?”

 

“어어... 원래 피다가 잠깐 끊었었지.”

 

못된 장난질이라도 한 아이마냥 씨익 웃고 고개를 홱 돌려 다시 마당 구석께로 시선을 던진다.

 

"잔소리 할 사람이 없어졌거든."

 

앞으로 내려온 머리 때문에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여태까지 그러했듯 웃는 것은 올라간 그 입꼬리 뿐일 것이었다.

 

"...연초는 몸에 나쁘니 적당히 태우십시오."

 

"..."

 

다시 담배 연기가 장막처럼 그를 둘러싸지만 비 섞인 습한 바람에 만들어지기 바쁘게 사라져버린다.

 

그리고 사부는 그 사라지는 것이 아쉬워 잡으려는 듯 다시 연기를 피워내고.

 

전을 접시에 담고 술병과 잔, 차 담은 주전자를 가지고 마루에 돌아와 앉았더니 냉큼 타박이 들어왔다.

 

"한 병 달랬다고 정말 한 병 가져오다니 정이 없다 티엔아."

 

"약주는 한 병으로 족합니다, 사부님."

 

"한 병... 아니 두 병 더 가져다 주렴."

 

"안됩니다."

 

"매정한 놈."

 

하지만 사부가 말과는 달리 속으로는 자신이 막는 걸 기꺼워 한다는 것은 알고 있다.

 

티엔은 그 점이 못내 못마땅하여 아예 술병도 빼앗았다.

 

이러면 사부가 화를 내지 않으려나.

 

그러나 사부는 그 모습을 가만히 보더니 수줍게 고개 돌려버린다.

 

살짝 벌어진 입새로는 옅게 연기를 흘리면서.

 

"화나지 않으십니까?"

 

"제자가 사부를 걱정해주는데 들어야지 어쩌겠어."

 

이번에는 티엔이 화낼 차례다.

 

차마 어깨조차 잡지 못하고.

 

바닥을 손으로 탕 쳐놓고도 사부에게 대든다는 사실에 외려 자신이 깜짝 놀랐다.

 

"사부님! 저를 누구랑 겹쳐 보시는 겁니까!"

 

"...무슨 소리인지. 손에 쥔 술병의 향에 취하기라도 한 거냐?"

 

"거짓말 마십시오, 매번, 매일, 매 시각을 사부님의 사부였다던 그 분과 겹쳐서 보지 않으십니까!"

 

정이라는 성도 그 분 때문에 정해주신 것 아닙니까!

 

티엔은 화마를 억누르고 손을 하랑이 기댄 기둥에 대었다.

 

이제 한참이나 커진 덩치라 압도당한 하랑은 저도 모르게 뒤로 몸을 물렸다.

 

"저를 저로서만 보아 주십시오. 저는 사부님의 그 분이 아닙니다...!"

 

젠장, 하랑의 입이 움직였다.

 

"이러지 마..."

 

"저는 사부님의 사부가 아닙니다! 티엔이라는 제자입니다!"

 

"나도 알아, 넌 그냥 닮은 다른 사람인 걸!"

 

그러나 그 닮았다는 것은 단정하고 멀끔한 외향은 물론이고 완벽주의적인 성격이며 사소한 습관-

 

그래, 예를 들면 일을 하는 순서라던가, 문득 눈이 마주치면 짓는 부드러운 눈웃음이라던가.

 

슬금슬금 옆에 다가앉아 찌르면 손을 덮는 커다란 손이라던가.

 

그런 말을 토하며 이마에 손을 얹는 것을 보고 티엔은 깨달았다.

 

그 분은 사부님과 정을, 그것도 연정을 통하던 사이였구나.

 

그것을 깨닫는 순간 티엔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죄송합니다 사부님."

 

한동안은 추적추적 비 내리는 소리만이 들렸다.

 

희뿌연 담바고 연기만이 둘 사이에 흐르고 얼마나 지났을까 문득 하랑의 입에서 작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미안해."

 

담배 연기보다 옅게 흘러나와 바람 소리에 묻히는 말.

 

그리고 그 말이 무슨 뜻이냐 묻기도 전에 하랑은 생긋 웃으며 젓가락을 들었다.

 

"그럼 우리 티엔이 부친 전 맛 좀 볼까! 식으면 맛 없는데 벌써 식진 않았겠지- 야 티엔아 뭐하냐, 사부 술 좀 따르지 않고."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어쩌면 평소 이상으로 밝은 목소리로 주저리 주저리 말하며 하랑은 젓가락으로 전을 쭉쭉 찢어 입에다 넣는다.

 

"하아 맛있구만! 역시 비 오는 날에는 전하고 막걸리지! 너 뭐하냐, 사부가 따라보라고 했는데."

 

"사부님은- 아니, 아닙니다."

 

혹시 제가 그 분과 닮아서 저를 거두신 겁니까.

 

제게서 그 분의 그림자를 보았기에 혹시라도, 저를 조금이나마 마음에라도 두시고 계십니까.

 

묻고 싶었지만 어떤 대답이 돌아올 지 무서워 잔에 묵묵히 술을 따른다.

 

"티엔, 너도 한 잔 받을테냐?"

 

"사양하겠습... 아니, 기꺼이 받겠습니다."

 

잔을 내미니 놀란 듯 하다가도 농담이었다며 야살스레 웃고 병을 채어 간다.

 

말없이 저분질만 바쁜데.

 

그 와중에 역시나 병은 하나에서 둘이 되고 둘에서 셋이 되고, 그것이 다섯이 되어 이건 너무 많지 않나 하는데 픽- 사부가 쓰러졌다.

 

남은 것을 간단히 정리하여 두고 방으로 옮기기 위해 몸을 들어올렸더니 잠꼬대인 듯한 말이 가냘프게 흘러나왔다.

 

"미안해 사부, 미안해-"

 

누군가를 찾던 잠꼬대는 언제부터인가 사과로 바뀌어 있었다.

 

티엔은 잠든 사부의 입술에 남몰래 입술을 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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