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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06.15 푸른 아이들 #9
  2. 2018.05.19 푸른 아이들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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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18.03.26 푸른 아이들 #5

푸른 아이들 #9

2018. 6. 15. 01:29 | Posted by 호랑이!!!

 

플로라는 비명이 들리자 달려서 가까이 오는 사슴의 목을 잡고 올라탔다. 사슴은 조금도 속도를 줄이지 않고, 오히려 더 빠른 속도로 달렸는데 그 뒤로도 사슴 두 마리가 뛰어와 각자 헨리와 다니엘을 태워서 숲의 가장자리로 달려갔다.

로즈, , 괜찮나!”

로잘린과 판달루치아의 옆에는 대리석 같은 팔을 가진 기사와 마력으로 만들어낸 거대한 사냥개가 있다. 이름을 불렀지만 그들은 돌아보지 않고, 오히려 둘이 대치하는 것이 플로라의 쪽을 보았다. 거미와 개, 코끼리를 뒤섞어 놓은 듯한 거대한 마물은 그들의 목소리가 들리자 괴성을 질렀고 단은 검을 뽑았다.

헨리, 위험하니까 내 뒤에 있어!”

어째서 이 정도의 마물이 여기에!?”

헨리의 비명소리와 함께 플로라는 손을 들었고 동시에 나무뿌리와 덩굴 같은 것이 땅에서 솟아났다.

당황하지 말아라.”

그들을 태우고 온 사슴들은 들이받을 것처럼 머리를 낮추고 앞을 노려보았고 땅에서는 뿌리가 돋아났지만 어느 쪽도 움직이지 않았고 마물도 움직이지 않으면서 서로를 재어 보고 있는데, 갑자기 얀이 뛰었다. 동시에 마물은 날이 달린 것처럼 날카로운 앞발을 들었으나 땅에서 솟아난 것은 마물이 움직이지 못하도록 단단히 묶었고, 그 사이에 단은 로즈와 판을 안전한 곳으로 데려올 수 있었다. 기사와 사냥개는 거대한 마물을 처리했고 마물은 단단한 뼈와 약간의 가죽만을 남기고 자연의 마력으로 변해 흩어졌다. 그 사이에 얀은 숲의 가장자리, 가장 끝에 도달했다.

해조차 들기 어려울 정도로 울창한 플로라의 숲. 풀은 무성하게 자라나고 인간에게 호의적인 그 숲. 그 너머.

“....사막....?”

황야, 쪽이 맞겠군.”

아직 모래로 변하지 않은 붉은 빛 바위가 어디까지나 깔려 있었고 한때는 자랐던 것 같은 나무가 검고 마르게 돋아 있었으나 바람이 불 때마다 먼지처럼 변해 깎여나갔다. 흙먼지 바람이 불었지만 땅은 뜨거워 보였고 내리쬐는 해에 일렁이는 아지랑이 사이사이에 검은 그림자가 나타났다가 사라졌는데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는 화산이 솟아 먼 곳에서도 무언가가 끓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얀은 귀에 손을 대고 자세한 소리를 듣는 듯했다가 뒤로 돌았다.

“...공주님이 저를 부르셨군요.”

알아차렸구나, 장하다.”

금방이라도 꺼질 것 같은 목소리로 말하며, 플로라가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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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아이들 #8

2018. 5. 19. 00:20 | Posted by 호랑이!!!

 

헨리 제임스 헤일로, 통칭 얀은 서재로 돌아와 가장자리에 금박이 들어가 화려한 편지지를 찾았다. 옆에는 짙푸른 봉투를 하나 놓고 황금색 초와 용이 새겨진 도장을 꺼내놓고 펜을 들었는데 다니엘이 잠시 짐을 챙기러 간 잠깐 사이에 쓰려는 기색이 만연했다.

“...그래서 저희는 세이렌의 설득을 실패했습니다. 이 일은 여기서 그만...”

오빠!”

문이 쾅 열렸다. 그 너머에 있던 것은 로잘린 레이첼 헤일로, 자신이 만들어낸 듯한 켄타우로스의 등에 타고 있었다.

로즈, 집 안에서는...”

켄타우로스를 만들지 않는다, 알지만!”

그리고 숙녀는...”

오빠 또 나만 두고 가려고!”

얀은 방금까지 쓰던 편지를 손으로 덮었다. 켄타우로스는 로즈를 조심스럽게 내려주었고 로즈는 얀에게 손가락을 들어올렸다.

다니엘 오빠가 말해줘쪄! 플로라 공주님한테 갈 거라고!”

만약 안 간다고 하면 어떻게 될까. 일단 귀찮음에서 해방되고, 로즈한테도 널 놓고 가려는 게 아니고 그냥 안 가는 거라고 말할 수 있겠지. 여행 안 가도 되고, 그 끔찍한 마차도 안 타도 되고. 그렇지만 나중에 또 여왕님이 어떻게든 가라고 보낼 수도 있고, 공주님도 점검차 한 번은 보러 가야 하기는 하고. ... 하면서 머리를 굴리는데 듀크 단이 돌아왔다.

준비 다 됐다.”

아니, 그게.”

!”

로즈의 손에 분필이 들려 있다.

“...다 같이 가자.”

켄타우로스는 희미한 유황 냄새를 내더니 익숙한 얼굴로 돌아왔다. 판달루치아를 보던 얀은 입꼬리를 쓱 올렸다.

둘이 친해졌군.”

아니야!”

그렇지?”

헬렌은 갔나?”

그 인간은 몇 시간 전에 갔다.”

크게 한숨을 쉬더니 얀은 금박이 있는 편지지를 물에 담갔다. 책상 서랍을 열어 꺼내놓았던 짙푸른 편지봉투를 정리하고 새로 골라서 꺼내면 아까 꺼내두었던 것 못잖게 진한 청록색 봉투와 은박이 들어간 편지지가 책상 위에 오른다. 시험 삼아 펜을 몇 번 긋고 얀은 글을 써내려갔다.

플로라 폰 우드 공주님께. 헨리 제임스 헤일로 자작이 인사드립니다. 연락을 몇 주 전에 드리는 것이 예의임을 알고 있지만 부득이한 사정으로 급박하게 서신을 보내오니 내일 뵙도록 하겠습니다

그 뒤로 몇 가지 인삿말을 더하고 잘 접어 봉투에 넣은 뒤 인장을 눌러 찍은 뒤 고개를 들자 얀은 방 안 다른 사람들과 눈이 마주쳤다.

“...뭘 봐?”

야호! 플로라 공주님한테 간다!”

드디어 할 마음이 들었나보군!”

또 무언가 기뻐하려는 판달루치아를 툭툭 건드리고 얀은 편지를 내밀었다.

뭐야?”

이걸 플로라 공주님한테 배달. 위치는 그린 영지. 까만 눈에 녹색 머리카락인 사람이니 찾기는 쉬울 거다.”

귀찮은 녀석. 판달루치아는 입모양으로 투덜거리더니 편지를 쥐었다. 문을 열고, 나가서 닫았는데 발소리가 들리지 않아 문을 다시 열어보았더니 거기에는 유황 조각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그로부터 다들 분주하게 짐을 싼다 어쩐다 해서 다음날 아침 로즈는 잠을 못 잔 티가 나는 얼굴로 눈을 비비며 마차 앞에 섰다. 그리고 또 날아다니는 마차를 타는 끔찍한 시간을 보냈고 정오가 다 되어서야 자그마한 궁의 앞에 내리게 되었다.

여기에 공주님이 계신다고?”

단이 궁을 보자마자 한 첫 번째 말이다. 벽은 크림 같은 하얀색이고 물감이며 은을 녹인 것으로 기둥에 무늬도 넣은 데다 둥그스름한 지붕에도 장식을 한 것인지 가장 높을 때의 태양빛에 환하게 빛나고 있다. 온 벽과 물건에 새며 나무, 사슴들이 우아하게 양각되어 있고 사용한 재료도 전부 내외국을 따지지 않은 고급품들. 이 정도의 건물은 과연 공주라는 사람이 가질 만한 물건이기는 한데. 너무 작지 않나.

잘 왔다, 오랜만이구나 모두들.”

가냘픈 목소리가 들려왔다. 얀은 가슴에 손을 얹고 허리를 숙였고 단도 후다닥 허리를 숙였다.

고개를 들라.”

고개를 들면 그 곳에 있는 사람은 짙은 녹색 머리카락이 물결치는 듯 흘러내린 순한 인상의 사람이다. 놀랍게도 장식은커녕 레이스 한 자락도 달리지 않은 간소한 옷차림인데다 발은 맨발이었지만 가장 눈을 끄는 것은 플로라를 태운 커다란 사슴이다. 사슴이 무릎을 굽히자 플로라는 미끄러지듯 땅에 내려섰고 몇 번 박수를 치자 너구리가 바구니를 들고 뒤뚱뒤뚱 걸어왔다.

원래라면 테이블에서 차를 마셔야겠으나 이 집에는 부릴 사람이 없으니 부디 이것으로 만족해다오.”

바구니 안에서 나온 것은 널찍한 천이었는데 새들이 귀퉁이를 물어 풀밭에 넓게 펼쳤고 깨끗해 보이는 접시와 찻잔이 그 위에 놓였다. 플로라는 손수 찻주전자를 잡았다가 파득 놀라며 손가락을 움켜쥐었다.

, 뜨거워!”

괜찮아요?”

로즈가 펜으로 동그라미를 그리자 그 안에서는 녹색 동그라미가 있는 간호모를 쓴 간호사가 솟아났다. 간호사가 플로라의 손을 찬물로 식혀주는 동안 로즈의 메이드가 사람들에게 차를 따르고 간식을 꺼냈다. 얀은 플로라를 빤히 쳐다보다가 플로라의 곁에서 안절부절 못 하는 너구리며 저만치 떨어져서 지켜보는 대형 동물로 시선을 옮겼다가 생긋 웃었다.

좋아 보이는군요, 공주님.”

얀 오빠, 공주님은 지금 손가락을 다쳐, , 다구요!”

그 말에 플로라는 하얀 찻잔을 잡은 로즈를 내려다보았다.

로즈는 내 모습이 이상하지 않으냐?”

이상하다니, 어디가요?”

플로라가 얀에게로 시선을 보내자 얀은 미소띈 얼굴을 한 번 기울였다.

로즈는 어렸으니까요.”

로즈도 잘 컸군.”

자상한 미소를 지으며 성공을 축하하는 말과 격려를 건네려는 찰나에 문이 거칠게 열렸다. 숨기려들지 않는 가죽 날개와 한 쌍의 뿔이 돋은 잘생긴 얼굴은 낯익은 것. 언제나 겉으로 보이는 나이와 걸맞지 않는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곤 하는 그 얼굴은, 로즈를 보자마자 활짝 밝아졌다. 아이답게.

어서와, 로즈!”

여긴 판의 집이 아니에요.”

로즈는 미간을 찡그리며 자신의 옆자리를 탁탁 쳤다. 플로라의 옆에 있던 너구리는 로즈가 내미는 비스킷을 찻물에 담가 씻고, 또 받아 씻고, 씻고 있었는데 플로라가 헛기침을 하자 고개를 번쩍 들었다.

로즈, .”

?”

숲에 가면 꽃이랑 딸기가 많이 있으니까 가서 놀다가 오렴.”

플로라는 작은 바구니를 가지고 오라고 지시했다. 메이드가 가지고 온 작은 바구니에 과자와 차 한 병을 담은 것을 내밀자 로즈와 판은 바구니를 들고 숲으로 갔다.

저 둘만 가기에는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아이들이 사라진 쪽을 보던 단이 묻자 마악 차 한 모금을 마신 플로라는 잔을 내렸다.

이 숲에 있는 한 괜찮아.”

나는 이 숲에 일어나는 일을 모두 알 수 있느니라, 하고 말하는데 얀이 손을 들었다.

그럼 이제 온 이유를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말하라.”

얀과 단은 설명했다. 세이렌의 부탁, 푸른 아이들, 여왕님의 명령이며 모든 것을. 그 이야기를 들은 플로라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싫다.”

플로라 공주님.”

가기 싫다.”

왕족의 반열에 오르셨는데 한 번은 가셔야지요.”

사람은 싫다, 귀족은 더더욱 싫어.”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단은 그들의 주위에 기척이 늘어난 것을 알아차렸다. 유감스럽게도 그 기척은 호의적이지 않는데다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 같아서 습관적으로 허리춤으로 손을 가져가려 하자 얀이 그 손을 눌렀다.

우드는 이미 나를 버렸다. 나는 이 곳에서 죽을 때까지만 사는 것이 소원일 뿐, 밖으로는 한 걸음도 나가고 싶지 아니하다.”

우드의 사람들을 나쁘게 보는 것은 이해하지만 세이렌과 여왕님을 생각해주십사 합니다.”

나는 우드를 공작까지 끌어올린 것으로 모든 것에 대한 대가를 지불했으니. 더는 할 말 없다.”

원하신다면 그들이 가까이 오지 못하게 조치를 하겠습니다.”

너는 이해하지 못한다. 애당초 가족 때문에 괴로워본 적 없는 자가 가족 때문에 괴로워지는 마음을 어떻게 안다는 말이냐.”

다니엘은 공주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지는 것을 보았다. 그렇지만 이 옆의 헨리는 케이크에 포크를 꽂아 넣을 뿐 조금도 긴장하거나 당황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그렇기에 긴장하는 것은 오히려 다니엘 자신뿐인 것 같다.

우드 공작, 공작의 남편, 그들의 아들과 딸을 모두 치우면 됩니까?”

헨리, 그런 소리를 함부로 하면 안 돼.”

나는 진지하다니까. 공주님의 문제가 그걸로 해결된다면 나쁘지 않잖은가?”

안돼와 돼 뿐인 말을 하는데 플로라가 손을 저었다.

조용히 좀 해 보아라. 누구 하나는 살려두어야 하지 않겠나.”

어째서 살려두려고 하시는 겁니까?”

공작의 다른 귀찮은 일을 떠맡아야 하지 않으냐.”

그렇게 말하는 플로라의 얼굴은 좋지 않았다. 때문에 얼마 안 있어 숲에서 비명소리가 들리자 플로라는 오히려 안도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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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아이들 #7

2018. 3. 29. 16:23 | Posted by 호랑이!!!

저보고 붉은 여왕님의 초대를 거절하라구요...? 제가요...?”

레이디 세이렌은 그들을 안으로 들였다.

까만색 나무와 하얀 천으로 만들어진 칸막이 뒤에는 하얀 천을 씌운 소파와 낮은 테이블이 있었고 안으로 들어오면서 흘긋 본 다른 칸막이 뒤에는 1인용 침대도 하나 있었다.

극장이 그녀의 대기실이 아니라 사는 집이라는 말은 정말인가, 세이렌은 다른 칸막이 뒤에서 차를 타오고 과자를 내 왔다.

어려운 이야기라는 건 아네.”

방금 전까지 얀에게 사랑스럽다는 시선을 보내며 재잘거리던 세이렌은 단호하게 찻잔을 내려놓았다.

헨리, 추수제에 제가 서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나요?”

삼백년이나 마물도 외적도 침입하지 않게 된 이 나라는 부유하고 풍요로워서 문화며 건축 등을 발달시켰다.

오로지 유흥을 위해서 극장이라는 건물을 짓고 난 후에는 무대 위에서 상연되는 것을 전제로 하는 오페라며 연극, 무용 등이 본격적으로 꽃피었고 거기에 귀족이 참가하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이제 와서는 악기나 노래나 무용을 뽐내는 사람 중에 귀족이 적지 않게 되었다.

덧붙여 농민이 중심이어야 할 추수제의 무대에서도 귀족이 아니면 서지 않게 되었고.

처음에는 수도 근처의 농지에서 가장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이 부르는 것이 원칙이었지만 여러 문제가 있기도 해서 현대에는 완전히 귀족이 무대에 선다.

“...그 자리를 다시 평민 신분인 저에게 주신 거예요. 붉은 여왕님은 이번 추수제를 빌어 평민과 귀족 간의 거리를 다시 좁히려고 하고 계세요.”

내가 알바는 아니지.”

얀이 투덜거리듯 내뱉자 세이렌은 쓴웃음을 지었다.

헨리, 당신에게 우리 외에 다른 것을 생각할 여유가 없다는 것은 알고 있어요. 하지만 제가 이런 일까지 양보할 수는 없답니다.”

여왕님의 명령을 거부하겠다는 건가?”

그러자 세이렌은 입을 다물었다. 긍정이라고도, 부정이라고도 하지 않은 채. 방은 조용해졌고 단의 과자 깨무는 소리만 들렸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세이렌이었다.

당신은 나빠요.”

결국에는 다 너희를 위한 일이야... 라고 하면 좀 위로가 될까?”

안돼요.”

세이렌은 삐죽 입술을 내밀었다가 좋은 것이 생각났다는 듯 손바닥을 맞대었다.

하지만 헨리가 제가 바라는 말을 해 준다면 위로가 안 될 것도 없어요.”

그건 안된다는 걸 알지 않나.”

다시 세이렌의 얼굴에는 미소가 돌아와서, 마치 갓 이슬을 맞은 꽃처럼 생기가 넘쳤다.

헨리, 우리 앞에는 지금 두 가지 길이 있어요. 하나는 쉬운 길이고, 하나는 어려운 길이예요. 길을 선택하는 것은 헨리랍니다.”

어려운 길, 어려운 길로 할거네.”

이거 안 먹히네, 라고 투정부리는 소리를 내면서도 세이렌은 웃었다.

그럼 그 어려운 길이 뭔데?”

플로라 공주님께 가 주세요.”

그 아가- ...플로라 공주님이 왜?”

습관적으로 아가씨, 라고 하려던 얀은 세이렌의 눈빛이 바뀌려고 하자 급히 말을 바꾸었다. 세이렌은 마치 네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다 알고 있다라고 하는 듯한 표정으로 웃었다.

공주님이 무서워하고 있으니까요.”

그 아가씨... 아니, 공주님은 항상 무엇이든 무서워하지 않나.”

헨리,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에요. 만약 공주님의 일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저도 당신의 부탁을 들어줄 수 없어요.”

세이렌은 찻주전자를 기울여 자신의 잔을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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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아이들 #6

2018. 3. 27. 05:01 | Posted by 호랑이!!!

헬렌 카투스는 여느 주말처럼 편지를 배달해왔다.

안녕 얀! 다니엘! 왜 둘 다 죽을 상이야?”

“...다니엘이 괴롭혔네.”

“...얀이 나빠.”

오늘의 간식은 연어알을 넣은 카나페였다.

편지가 가득 든 가방을 뒤집어 털어낸 헬렌은 여느 날과 달리 다니엘 폰 카이트(듀크 단)와 헨리 제임스 헤일로()가 축 처져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싸우기라도 했어?”

얀이 여왕님에게서 명령을 받았는데 지나치게 느긋합니다.”

... 헬렌은 단박에 이해했다.

저 뼛속까지 충성심 넘치는 미래의 기사 나리는 여왕님의 명령이 최우선이니 그것부터 하라고 했을 것이고 우리들의 관리자는 무슨 꿍꿍이에서든 이때껏 미뤘겠지.

뭐야, 무슨 일인데?”

“...무도회의 가수로 레이디 세이렌을 데려오라는데.”

뭐어? 그게 무슨 어려운 일이라고 질질 끌고 있어?”

하필이면 그 날이 추수제일세.”

그게 뭐 어때서?하는 친우를 보고 얀은 한숨을 쉬었다.

푸른 여왕님은 뭘 맡고 계시지?”

군권.”

추수제는 누가 주도하지?”

붉은 여왕님?”

끝이 왜 온점(.)이 아니라 물음표인데?

얀은 다시금 한숨을 쉬었다.

행사나 축제는 붉은 여왕님이 주도하시는 일일세, 레이디 세이렌은 지금 최고의 가수이고.”

당연히 붉은 여왕님이 초대하셨겠지.

그런데 지금 푸른 여왕님이 자신의 손님으로 초대해 달라고 하는 것일세.

다니엘 자네는 정치를 몰라도 너무 몰라.”

그 말에 단은 아, 하고 깨달았다.

붉은 여왕님이 하시는 일이면 붉은 여왕님이 하게 하면 되지, 왜 푸른 여왕님이 초대하시는 건가? 푸른 여왕님이 초대한다면 붉은 여왕님의 일을 뺏는 것처럼 보일 텐데.”

한 절반 정도.

자매끼리는 꽤나 다툴 거라 생각하네.”

그 말로 일축한 얀은 그대로 자리에 누워버렸다.

하하, 그래도 여왕님의 명령인데 따라야지.”

헬렌은 소파에 누워서 뒹굴거리는 그들의 관리자 주위를 맴돌았다.

“...정신 사납대도.”

신경쓰지 마.”

헬렌은 폴짝 뛰어 날아서 소파를 넘어가더니 바닥의 쟁반에 놓인 카나페를 가져다 입에 넣었다.

바작바작 톡톡 튀는 식감을 만끽하며 행복한 미소를 짓는데 단이 찡그리는 것이 보인다.

“...있지, ?”

“...”

듀크 단의 표정이 그닥 좋지가 않은데~”

공중에 둥둥 떠서는 귓가에 머리만 내밀어 속닥거리고 있지만 다 들린다.

단은 읽던 책마저 옆에다 내려놓고 얀을 노려보고 있었다.

헬렌, 자네까지 나한테 재촉하는 것인가.”

그렇다고 하지 말라고 할 수는 없잖아~?”

이 사람이나 저 사람이나, 귀찮아서 원.”

방금 그 말은 그래도 헬렌한테 너무한 게 아닌가 하여 단이 한 마디 하려는데, 헬렌은 화내는 대신 방긋 웃었다.

그러나 헬렌은 소파에 늘어진 얀의 양 다리를 잡더니, 그대로 날아서 열린 테라스 밖으로 던져 버렸다!

헬렌!!! 카투스!!!”

난 로즈랑 놀거니까, 썩 가시지!”

단은 화닥닥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겉옷인 망토만 손에 들고 얀을 따라 테라스 밖으로 뛰어내렸다.

, 무사하냐!”

잘 다녀와~”

 

하여간 우리 애들은 너무 난폭해.”

얀은 다행스럽게도 푹신한 잔디 위에 떨어졌는데 그럼에도 아프다며 단이 뛰어내리는 그 때까지도 누워 있었다.

아주 깔끔한 자세로 잔디에 착지한 단은 얀에게 손을 내밀었다.

일어나.”

일으켜 주게.”

잡고 일어나.”

나는 청순가련하고 연약하네.”

헛소리, 라는 단호한 눈빛으로 그를 내려다보았음에도 얀은 그대로였고 단은 결국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손수 등을 받쳐 일으켜 주었다.

고맙네.”

두 번은 없어.”

단은 너무 나한테만 차가워.”

얀은 망토 자락을 들고 눈가를 닦는 시늉을 했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닐 텐데.”

차갑게 말하고 돌아섰지만 얀이 쫓아나가면 단은 마차를 잡고 문을 열어둔 채 기다리고 있다.

얀은 그 마차에 냉큼 올라탔다.

 

골든 공연장까지 부탁하네.”

마차 바퀴가 굴렀다.

문을 닫고, 얀은 쿠션에 몸을 기댔다.

혹시나 해서 덧붙이는 거네만, 레이디 세이렌은 현재 최고의 가수라고 불리며 그녀의 노래를 들은 사람은 천국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고 하지.”

나도 레이디 세이렌이 누구인지는 알아. 몇 년 전에 아버지와 함께 공연을 본 적 있거든. 본 적은 그 때 한 번 뿐이지만 과연 아름답더라.”

얼굴이, 아니면 노래가?”

얀이 짓궂게 물었다.

가수가 여자라는 이유로 목소리 외의 것을 평가할 만큼 속물적이지 않아.”

단은 고개를 저었다.

자네 혹시 세이렌에 대해서는 알고 있나?”

가수?”

아니. 신화 속의 세이렌.”

모르는데.”

얀은 그럴 줄 알았다, 면서 설명했다.

세이렌은 용이 살아있을 때 멸종당한 유일한 마법 생물이네. 여자의 얼굴에 몸은 새고 바다의 돌섬에 사는데 목소리로 뱃사람을 유혹해서 배가 바위에 부딪혀 난파되도록 만들지.”

상체가 여자, 하체가 새라는 하르퓌아랑 비슷하네. 뱃사람들이 죽지 않기 위해 세이렌을 전부 죽여버린 건가?”

내가 직접 본 것은 아니지만, 귀족들이 호사한 취미를 누리기 위해 세이렌을 잡았다고 하더군. 목소리는 노래를 부르게 하고 날개의 깃털은 뽑아다 장식에 쓰고, 특별히 노랫소리가 아름다운 새가 낳은 알은 비싼 값에 매매되기도 했네.”

이게 역사든, 아니면 무슨 생물 수업이든 단에게 특별히 흥미진진한 수업은 아니었다.

사람이 멸종시켰나?”

그렇다고 해야 할까.”

얀은 잠시 말을 멈추어 단의 시선을 끌었다.

기록된 문서에 따르자면 어느 날 세이렌들이 특별한 노래를 불렀다고 하더군. 대개 노래를 부르는 것은 짝짓기를 하고 싶다, 식사를 하고 싶다, 밖으로 나가고 싶다는 등의 막연한 이미지를 담은 것이었는데 이 날은 전부 강렬한 이미지를 가지고 사람에게 다가갔다고 하네.”

어떤 이미지?”

고향에 가고 싶다.”

서서히 단의 눈에 흥미로움이 차는 것이 보였다.

같이 지낸지가 거진 십 년이다.

어떤 말을 어떻게 하면 궁금해 할 지 정도는 손바닥 보듯이 꿰고 있지.

얀은 소리 없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세이렌을 기르는 사람들도, 사람들의 하인들도, 전부 고향으로 가버렸다네. 고향에 닿자마자 왜 여기 있는지 깨닫고 서둘러 세이렌에게 돌아갔지만 그 때는 이미 세이렌들이 굶어죽은 뒤였지. 낭만주의자들은 이 일에 대고 스스로 멸종한 생물이라고 부르고 있다네.”

알이 남아있을 거 아니야?”

당시 사람들은 세이렌에 대해 공부하기도 전에 무작정 잡아들였네. 알은 모종의 이유로 깨어나지 않았고 결국 남은 것은 알 껍데기 뿐이었지.”

재미있네...”

마차가 멈추어 서고 마부가 창문을 가볍게 두드렸다.

도착했습니다!”

얀은 마차 문을 열고 훌쩍 뛰어내렸다.

폼만은 좋았으나 착지에서 비틀거린 그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마차 문을 열어 주었다.

내가 왜 오면서 세이렌 이야기를 했는지 알겠나?”

가수 세이렌을 만나러 가니까.”

자네가 세이렌에게 관심을 좀 더 가졌으면 해서네.”

얀은 옷매무새를 고치고 극장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 아가씨 역시 우리 중 하나거든.”

세이렌이 얀의... 뭐라고 할까, 얀의 관리인? 관리 받는? 관리당하는? 일컬어 푸른 아이들 중의 하나라는 이야기에 단은 로즈와 헬렌을 떠올렸다.

역시 그 실험인가 뭔가를 견뎌내고 계획적으로 길러진 아이들이라 그런지 어리건 여리건 당차고 강하고 그렇다.

그러면 세이렌도 그렇겠지?

세이렌은 멀리서 한 번 본 것이 전부였지만 몸에 주렁주렁 단 화려한 장신구며 그렇게 특색있는 오만한 목소리 하며.

개인적으로 만난 세이렌도 ‘~했냐?’같은 말투일지도 모른다.

바지를 입거나 푹신하다면 소파에라도 드러눕는 사람일지도 모르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단은 뭔가 빠뜨린 것 같다는 생각에 발을 멈추었다.

왜 그러나?”

뭔가 빠뜨린 것 같은... 느낌이... !”

단은 입구 쪽으로 서둘러 걸어가서는 바로 옆의 꽃집에서 커다란 꽃다발을 살폈다.

... 걸음이 빠른, 하아.. 빠르네, !”

헨리, 종종 하는 말이지만 너도 역시 운동을 좀 해야 해.”

칼 들고 뜀박질하고 그런 건 내 적성과 안 맞아. 후우... 그리고, 얀이라니까...”

얼마 안 되는 짧은 거리였음에도 얀은 헉헉거리며 숨을 골랐다.

뭘 사가나? 웬 꽃? 설마 세이렌에게 주려고?”

그래야지.”

? 세이렌은 그냥 가수일 뿐인데. 자네한테는 평민이기도 하고.”

네가 더 이해가 안 가는데. 레이디를 만나러 가는데 선물 없이 어떻게 만나?”

얀은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단을 쳐다보았다.

단은 튤립과 장미가 섞인 꽃다발을 집어서 주인에게 값을 치렀다.

지위가 남작이라 하더라도 교육을 받은 것도 아니고 푸른 여왕이 직속으로 그를 부리기 위해 명목상 부여한 것에 불과하니 예의가 어떻고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하는 것은 책을 통해 배운다고 그랬던가.

넌 세이렌이나 악마나 좀브 같은 건 잘 알면서 이런 걸 잘 모르더라.”

왜 모르는지 이젠 알지 않나. 그리고 그거 좀비네.”

얀은 단이 든 꽃다발을 빤히 쳐다보았다.

이제 여자를 만나러 갈 때는 꽃을 사서 들고 가는 것이라고 머릿속에 입력하는 중일 것이다.

극장 안, 붉은 벽지에 호화로운 그림이나 조각을 군데군데 두어 꾸민 복도를 따라 걸으니 이 앞이 대기실이라며 지키고 선 사람이 보였다.

얀이 손을 까딱하자 그 사람은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보냈고 단도 가볍게 인사를 보내고 서둘러 얀을 따라 걸었다.

복도를 따라 걷자 안에서부터 은은하게 노랫소리가 들렸다.

노래 좋다.”

몇 걸음 더 걷자 노랫소리가 더 커졌다.

어린 공주의 책임과 소녀로서의 마음을 노래한 것이 어딘가 찡하게 했다.

코 끝이 매워 오는 것을 손가락으로 문지르는데 얀이 눈물을 주르륵 흘리며 말했다.

가시밭길의 소녀로군.”

어찌나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와 표정이었는지, 눈물이 주륵 흘러내리는 것을 보면서도 믿지 못할 뻔 했다.

고전소설 어느 왕자에 대하여를 각색한 여왕의 길이라는 극의 아리아지.”

멋진 노래야... 조금 들었을 뿐인데도 울 것 같네.”

멋진 노래지. 부른 사람은 더 멋지고 말이네.”

노랫소리는 가장 안쪽 방에서 울리고 있었다.

얀과 단이 다가갈수록 노래는 조금씩 바뀌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아예 다른 곡을 불렀다.

밝고... 신나는 노래군. 뛰고 싶어지는데?”

이번에는 뱃사람들 노래군. 세이렌이 가장 즐겨 부르는 것일세.”

세이렌이 뱃노래를 안다고?”

아리아만 부를 것 같은 가수가 남자들이나 부르는 뱃노래를 부른다니, 하지만 마물 세이렌을 생각하면 알아도 이상하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기묘한 느낌에 고개를 갸웃하며 단은 앞장서 노크를 두어 번 했다.

세이렌 양, 계십니까?”

어머?”

나온 사람은 그야말로 놀라웠다.

길게 길러 진주장식 끈으로 정리한 하얀 머리카락은 끝으로 갈수록 점점 붉어져 머리카락에 색을 입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 그러면 대개 머릿결이 상함에도 어지간히 공을 들였는지 윤기나게 찰랑거렸다. 키는 가장 보기 좋다는 키에 몸은 늘씬하고 가벼운 레이스가 달린 실내복 한 장으로 감쌌을 뿐인데도 사랑스럽게 어여뻤다. 그리고 온순하게 아래로 끝이 내려간 눈은 속눈썹이 풍성하고...

이런 묘사를 구구절절 왜 하고 있느냐면.

세이렌의 목소리가 달콤했기 때문이다.

남녀상열지사를 다룬 책을 읽으며 모든 남자들이 상상했을 맑고 부드러운, 마치 꽃잎이 다가와 사뿐히 피부에 닿는 듯 가녀린 목소리가 목소리와 어울리는 그 입에서 흘러나왔다.

저는 헨리가 온 줄... 헨리! 어서와요! 아아, 날 만나러 올 줄 알았어!”

세이렌임이 분명한 그 아가씨는 단을 쳐다보았다가 얀으로 시선이 가 멎자 활짝 웃으며 얀의 품에 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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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아이들 #5

2018. 3. 26. 15:49 | Posted by 호랑이!!!

밤을 샌 탓인지 다니엘은 여느 때보다 일찍 잠이 들었다.

로즈는 자신의 방에서 자수를 놓거나 그림을 그리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서재에서 헨리는 아직도 가득하게 쌓인 편지를 읽고, 태우고, 버렸다.

어제 잠을 자지 못 했으니 평소보다 일찍 자도 괜찮겠지만 할 일이 아직 한참이나 남아 있어서.

이 지방 아이들은 공통적으로 요정 이야기를 많이 해. 단순히 요정 이야기가 유행하는 걸까? 요정이 깨어났다면... 요정은 종에 따라서는 거의 해를 끼치지 않는 생물이니까 나와도 괜찮겠지만. 만약 요정이 아니라 우리 중 하나가 만들어낸 것이라면?’

만들어내는 능력은 로즈 계통이지.

로즈를 필두로 한 서너명 더 있었던 것 같은데, 그 중에서 둘은 죽었고...

요정은 약한 생물이니 아직 용이 깨어나기까지는 여유가 있나.

그런 생각을 하는데 테라스로 통하는 문이 활짝 열렸다.

안녕, .”

얀과 비슷한 나잇대의 사람이 서 있었다.

오랜만이지?”

얀은 그를 보자마자 읽던 편지를 불 속에 던져넣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오랜만에 보는군.”

멋진 집이네. 우리가 살던 곳이랑은 완전히 다른 분위기야.”

그 사람은 안으로 훌쩍 뛰어들어와서는 우아하게 양각된 벽을 쓰다듬었다.

따뜻한 난롯불이 있고, 누구나 좋아할 디저트도 있고, 차도 있고, 책도 가득하군.”

그는 벽을 메운 책꽂이에서 하드커버 책 한 권을 뽑아들었다.

덕분에 아주 푹 잤어. 지겨울 정도로.”

페이지를 팔랑팔랑 넘기다가 탁, 덮으니 책은 검게 물들어갔다.

얀은 책을 잡은 그 손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벌써 일어나서, 뭘 하려고?”

검게 물든 책이 손 안에서 흐늘거렸다.

내가 할 일이 있을 거 아냐. 전쟁... 파괴... 누군가를 없애는 일이라던가.”

그 사람의 시선이 얀에서 책상에 가득하게 쌓인 천과 종이조각으로 가 멎었다.

저건가.”

아니네.”

그 사람은 천천히 걸어 얀의 앞에 와 섰다.

얀은 평소와는 달리 딱딱하게 굳어서, 느긋해 보이는 그와는 대조적이었다.

정말 아니라면, 그렇게 긴장하면 안 되지.”

그 사람이 잽싸게 손을 뻗어 편지를 잡아챈 동시에 얀은 그 사람의 어깨를 잡았다.

!”

얀은 아예 그를 꽉 끌어안았다.

끌어안긴 쪽은 얀을 밀어내려는 듯 버둥거렸으나 서서히 움직임에서 힘이 빠졌고, 결국에는 얀에게 기대 정신을 잃었다.

철퍽 소리를 내며 검게 물든 책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제서야 얀은 그를 안은 팔에서 힘을 빼었다.

조금만 더 자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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