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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쉘 모나헌이 죽었다.

 

능력자 전쟁이나 사고 따위가 아니라 자살.

 

그것도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서.

 

첫 번째 발견자는 까미유 데샹이었다.

 

미쉘이 앞이 안 보인다고 우는 것을 달래다가 일단 따뜻한 코코아를 가져오겠다며 잠시 방을 떠난 사이 일어난 일이었다.

 

둘이서 사는 것이 편하다며 이층집을 사 신혼마냥 보내던 나날이었는데.

 

미아부터 주위 사람들은 모두 까미유를 위로했다.

 

그리고 첫 번째 발견자는 미쉘에게 주려던 코코아 잔을 꼭 쥐고 생각에 잠겨 있었다.

 

뭐가 문제였을까.

 

미쉘은 눈이 보이지 않는다며, 능력 때문에 눈이 타들어가서일 것이라며 두려워했다.

 

그리고 피터를 걱정했고, 피터를 돌봐 달라는 말을 들었다.

 

왜 마지막까지 피터였지? 자신이 아니라.

 

어쩌면... 하고 까미유가 생각했다.

 

미쉘이 알고 있었을까?’

 

자신이 조금씩 약을 먹였다는 것을.

 

앞이 보이지 않는 염동력자는 쓸모없다.

 

하지만 사용 여부에 관계없이 자신의 곁에 두고 싶었던 사람인데.

 

앞이 보이지 않는다면 자신에게 하루 종일 의지하리라는 생각에서 벌인 일인데...

 

까미유는 검은 정장을 입은 꼬마를 내려다보았다.

 

앞으로 나랑 살까?”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부터 여기가 네 집이야.”

 

진부한 대사를 하며 까미유는 피터를 안으로 들였다.

 

어두운 밖은 밤비가 내리고 있었다.

 

몇 번 와본 적 있지?”

 

매우 소박하고 작은 집이었다.

 

스위치를 올리면 안이 보였는데 애초에 둘만 살 생각이었던지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계단이, 왼쪽으로는 안쪽에 부엌이 보였고.

 

계단은 정성껏 사포질해 부드럽게 잡히는 난간이 양쪽으로 있었고 벽은 연한 분홍색과 노란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작은 화분이 놓인 창틀에는 하얀 레이스 커튼이 모양 좋게 리본으로 묶여 있었고.

 

하나하나 살펴보던 피터는 계단을 올라가다 부드러운 벽을 만져 보았다.

 

직접 칠한 거다.

 

계단을 올라가면 왼쪽과 오른쪽으로 방이 나뉘어 있었는데 까미유는 피터에게 오른쪽 방을 쓰라고 했다.

 

조만간 미쉘 물건은 정리할거야.”

 

“...누나가.”

 

피터는 입을 뗐다.

 

“...까미유를 잘 부탁한다고 했어.”

 

언제?”

 

꿈 속에서.”

 

“...그런 꿈에 휘둘리지 않을 정도로 큰 아이지, ?”

 

피터는 까만색의 네모난 바탕에 여러 스티커가 가득 붙어있는 작은 짐가방을 들고 방으로 들어섰다.

 

침대에 가방을 던지고 불을 켜보니 새하얗다.

 

네모난 옷장이 있고 침대 옆에는 전등이 올려진 서랍장이 있고 저만치에 작은 책장에 책이 가득 꽂혀있었다.

 

그 옆에는 커다란 원목 책상과 쿠션이 대인 의자까지.

 

늦었으니 얼른 자렴.”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피터는 방을 한바퀴 돌아보았다.

 

침대에 하얀 시트가 깔려 있었는데...

 

누나 냄새가 안 나.

 

침대 옆 전등이 올려진 서랍장 위에는 액자가 하나 있었는데 그 액자 속에 든 것은 미쉘과 피터가 함께 찍힌 사진이 아니라 미쉘과 까미유가 함께 찍힌 사진이었다.

 

젖은 겉옷을 벗고 의자에 걸던 피터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문을 열고 나가 까미유가 들어간 방 문을 확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불은 꺼져 있었고 창 앞에 서 있던 까미유는 이제 자려던 참이었는지 파자마 단추를 잠그고 있었다.

 

무슨 일이지?”

 

피터는 대답하기 전에 눈을 감았다.

 

, 누나 향기다.

 

이 방이 누나 방이지?”

 

“...”

 

알아차렸구나.

 

피터는 까미유를 염동력으로 침대에 옮겼다.

 

아니, 굳이 네가 이러지 않아도-”

 

시끄러워.”

 

피터는 신발을 아무렇게나 벗어던지고 침대 속으로 파고들었다.

 

까미유가 일어나려고 하니 피터의 하얗게 타들어간 눈이 번쩍 뜨였다.

 

“...알았어, 알았어.”

 

불편하나마 누우니 다시 눈이 감긴다.

 

피터가 잠들면 일어나려 했건만, 이 야생동물에 가까운 꼬마는 자신이 조금 움직이려는 기색만 있어도 벌떡벌떡 일어나 자신을 가만히 내려다본다.

 

꼭 경계하는 고양이 새끼 같네...

 

그러고 보니 미쉘도 처음에 이랬었지, 자신을 경계한다고.

 

“...손 잡아줄까?”

 

됐어.”

 

...거봐, 미쉘을 닮았어.

 

까미유는 나지막히 한숨을 쉬고 눈을 감았다.

 

[데샹바레] 히카르도 안나오는 쌍충

2016. 1. 29. 02:20 | Posted by 호랑이!!!

미아, 뭐 해?”

 

오빠한테 보내는 편지 쓰고 있어! 마침 잘 왔다, 나 제대로 썼는지 봐줄래?”

 

, 나도 철자법은 잘... , 데샹! 이것 좀 봐줄 수 있어?”

 

미쉘은 지나치려던 데샹의 가운을 잡았다.

 

나 바빠.”

 

잠깐이면 돼.”

 

까미유는 미쉘을 내려다보다가 미아가 쓰는 편지를 받아 철자를 고쳐 주었다.

 

여기서 ai가 아니고 y, 여기도... 여기는...”

 

그 때 문가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나 바빠, 너 바빠, 서로 바쁜 사람인데 불러놓고 한가하게 굴기는.”

 

잠깐이면 돼.”

 

내가 너한테 내줄 수 있는 시간은 30분까지야.”

 

문가 그늘에 몸을 숨긴 채 탄야는 마치 유치원 선생님 같다고 킥킥 웃었다.

 

낮고 신경질적인 웃음소리가 분명 기분이 좋아서 내는 소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으므로 까미유는 마저 여기, 여기라고 급하게 짚어준 뒤 저만치에 딸린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웃기지, 그 애는 더 이상 편지를 받아 볼 상태가 아닌데 여동생이 열심히 편지를 쓰고 있다니까.”

 

까미유는 책상 너머에서 서랍을 열어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일 얘기나 할까?”

 

만인의 자상한 의사 선생님, 까미유 데샹이 감동받아 손수 편지를 봐줄 만큼.”

 

네가 의뢰한 건 이미 했어. 그 애 오빠를 죽지 못하게, 그러나 살지도 않게. 그러니까 네가 맡은 일을 할 차례잖아?”

 

까미유가 아무렇지 않게 평소의 매끄러운 목소리로 점잔을 빼며 탄야 앞으로 종이를 내밀자 탄야는 후후 웃더니 갑자기 힘을 주어 책상을 쾅 내리쳤다.

 

책상이 덜컹였고 탄야의 주위에서는 눈에 보일 정도의 어두운 보라색 독기가 물결을 이루어 위협적으로 물씬 피어올랐다가 스르르 가라앉았다.

 

까불지 마, 긴 경고는 필요없겠지.”

 

흐름을 바꿀 힘을 찾는 건 얼마든지 할 수 있어. 비용에 대비해서 결과 산출이 나쁠까봐 쓰지 않는 방법일 뿐이지.”

 

그래, 네가 너의 그 작은 친구를 사용하지 않는 것처럼.”

 

까미유의 입매가 불쾌하다는 듯 끝이 내려갔다.

 

네 충직한 친구가 날 찾아왔었지, 불과 며칠 전에 말이야.”

 

그건 그냥 내 불량품 중 하나에 불과해.”

 

나한테 딱 한 마디 하더군. ‘물러서라고.”

 

내 알 바 아냐.”

 

탄야의 눈이 가늘어졌다.

 

“...마치 내가 기른 어둠의 능력자 군대를 써서 널 괴롭히기라도 할 것처럼 말이야.”

 

저 말은 협박도 아니고 농담도 아니었다.

 

그것은 까미유의 눈에 꽤나 명백했다.

 

그리고 능력자들이 괴롭힐 대상이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도.

 

탄야는 까미유가 내민 종이를 받아서는 부채라도 되는 것처럼 제 입가에 대고 웃었다.

 

난 항상 그렇게 충직한 도베르만이 갖고 싶었어. 어린것들보다야 물들이는 것이 힘들겠지만... 여유를 갖고 천천히, 느긋하게 한다면... 후후후.”

 

“...할 일부터 빨리 하는게 어떨까, 시뇨라?”

 

그래, 이만 가볼게.”

 

탄야는 소리없이 문을 열고는 한 발을 밖으로 뺐다.

 

내가 없는 동안, 그 애를 잘 보살펴 두라고. 이래봬도 꽤나 아끼고 있거든.”

 

흘끗, 시선이 밖에서 편지에 꽃이며 나비를 그려넣는 소녀에게 닿았다.

 

그리고 네 강아지 말인데, 교육을 좀 시켜놓는게 쓰기 편할거야.”

 

히카르도를 사용할 일은 없어.”

 

어떨까.”

 

디딘 곳마다 검게 반짝이는 보라색 액체가 머물렀다가 이내 수증기로 변하여 사라졌다.

 

까미유는 눈가에 걸친 색유리 너머로 여유롭게 걸어가는 뒷모습을 노려보았다.

 

 

[데샹바레] 안녕

2015. 10. 26. 02:55 | Posted by 호랑이!!!

히카르도는 좁고 지저분한 골목을 지나 거처로 향하다가 익숙한 사람과 마주쳤다.

 

새하얀 가운에 하얀 양 같은 곱슬머리.

 

, 혀를 차고 지나치는데 그 쪽에서 히카르도의 손목을 잡아챘다.

 

리키.”

 

이제는 차라리 천국처럼 느껴지는 어릴적부터 귓가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목소리가 달콤하게 울렸다.

 

나 봤잖아, 그런데 그렇게 지나가기야?”

 

“...여기엔 웬일이지?”

 

남들 눈이 미치지 않는 곳인데도 잘도 믿음직한 의사같은 미소를 짓는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인사는 했어야지.”

 

좁은 골목.

 

힘 없는 의사라지만 마음먹고 한 번 밀자 히카르도의 등이 벽에 부딪혔다.

 

너랑 내가 이제 인사나 주고받을 사이는 아닐텐데.”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래도 했어야 했어.”

 

왜냐하면 너는 내 리키고, 나는 네 데샹이니까.

 

빙그레 웃는 입매가 선량해 보였다.

 

히카르도는 손목을 탁 털어 까미유의 손아귀에서 빼내었다.

 

하지만 그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까미유는 그 좁은 골목에서 다시 또 한 걸음 다가와 고개를 바싹 들이민다.

 

안녕, 리키.”

 

갈색 눈동자 위로 녹색빛이 일렁여서 일견 초록색 눈동자를 마주하는 착각이 들었다.

 

이 눈에 홀리면 안 돼.

 

히카르도는 입술을 꽉 물었다.

 

일렁일렁 물들어가는 눈동자를 노려보다가, 그를 밀쳐내는 대신 옆으로 몸을 빼었다.

 

으르릉 목 울리는 소리를 내며.

 

까미유는 순순히 비켜주었고 이내 발걸음은 탁탁탁 빠른 소리를 내며 사라졌다.

 

“...잘 가, 리키.”

 

내 손에 잡힌, 네 목에 감긴 이 빨간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아.

 

제아무리 네가 몸부림친다 하더라도, 이렇게 내가 다가와서 줄을 당기면 끊어질 듯 하다가도 다시 이어지지.

 

-, 이런 더러운 골목에 있으려니 하얀 옷이 더러워지겠어.

 

빨리 나가야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까미유는 히카르도가 뛰어간 방향과는 반대로 걸어갔다.

 

느긋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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