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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키릭벨져] 릭 생일 축하해!

2016. 12. 13. 21:10 | Posted by 호랑이!!!

늘상 이 곳은 공기가 무겁고 눅눅했다.

 

알지 못했지만.

 

빛은 어렴풋하고, 때문에 차가웠다.

 

알지 못하지만.

 

그나마 빛이 드는 곳.

 

공간의 가운데.

 

그 곳에 한 사람이 앉아 있다.

 

한때 우주의 별을 바라보던 눈은 빛조차 알지 못하게 되고.

 

한때 어디든지 걷던 발은 이 곳에 못 박힌 채로.

 

이 곳은 그럭저럭 넓다고 할만 했지만 어째서인지 그에게는 갇힌 것처럼 좁게만 느껴졌다.

 

왜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렇게 느낀다는 사실조차 알 수 없었지만.

 

신도여.”

 

그 좁은 공간에 다른 사람이 들어왔다.

 

그렇게 부르지 마라!”

 

이어 다른 사람 또한 들어왔다.

 

뒤이어 들리는 것은 또 다른 수많은 사람들의 발소리였고.

 

공간 안으로 두 검을 사용하는 사람이 뛰쳐들어왔다.

 

뒤로는 수많은 사람들이, 적어도 침입자에게 호의적으로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들어왔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는 것처럼 그에게 다가왔다.

 

일어나라, 나가야 한다!”

 

어딜 간단 말이냐.”

 

가느다란 줄기의 빛으로도 그 사람은 반짝였다.

 

머리카락도, 그리고 파랗게 타오르는 안광도.

 

침입자를 바라보며 아직도 앉아있는 그는, 문득 들짐승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그 단어조차 인식의 검은 물 아래로 끌려들어가 사라질 즈음 그가 교주라고 부르는 사람이 입을 열었다.

 

신도여.”

 

그는 교주가 자신을 부르고 있음을 알았다.

 

고개를 들어 반응을 하자, 그는 팔을 들어 침입자를 가리켰다.

 

이제 그 침입자는 그를 따라들어온 수많은 사람들에게 잡혀 있었다.

 

아마도 그 침입자가 자신을 잡아들려고 하지 않았더라면 진작 도망쳤겠지.

 

그러나 어째서일까, 침입자는 여전히 헛된 시도를 하고 있었다.

 

그는 교주의 손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없애라, 나를 위해.”

 

교주님을 기쁘게 해야 돼.

 

우주와 이 곳을 연결하면, 불이 끓는 화산과 이 곳을 연결하면, 저 차가운 심해 어딘가와 이 곳을 연결하면 사람 하나는 손쉽게 죽일 수 있다.

 

그는 팔을 들었다.

 

어째서인지 지나치게 가벼운 팔을.

 

, 톰슨!”

 

침입자는 사람의 이름 같은 비명을 질렀고, 때문인지 교주가 웃었다.

 

그렇게 부르지 마라.”

 

그는 자신이 교주를 기쁘게 했음을 알았다.

 

 

생일 축하한다 어린 신도여.”

 

어둑하게 빛이 새어들어오는 공간에서 낮은 목소리가 울렸다.

 

웃음을 참는 것 같은, 어린아이를 어르는 것 같은.

 

희뿌옇게 안이 비치는 곳은 푸르스름한 색을 띄고 있었다.

 

첫 번째 사람은 마악 방으로 들어선 사람으로 검은 후드 아래로 보이는 입술은 머리카락과 같은 색, 얼핏 푸른색으로도 보이는 녹색이었다.

 

그는 한 손에 작은 케이크를 들고 있었고 다른 손은 뒤로 빼어 무언가 큰 것을 질질 끌고 오고 있었다.

 

그의 말에도 대답 없이 바닥에 앉아있던 사람은 어딘가 눈에 초점이 없어 보였다.

 

연한 빛 아래에서도 결 좋은 머리카락은 후드 아래에서도 흰 색으로 빛을 반사하고 그의 입술에는 머리카락과 같은 색의 흰 색이 어딘가 금속빛을 내며 칠해져 있었다.

 

자아, 선물이다 벨져 홀든. 이 내가 손수 축하하는 것이니 감격해도 좋다!”

 

케이크가 그의 앞에 놓였으나 표정의 변화는 없었다.

 

“...할 수 없겠지만! 크크크크큭.”

 

첫 번째 남자, 제키엘은 뒤로 빼었던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몸 여기저기에 구멍이 뚫리고 상처가 난 사람이 발목이 잡혀 거꾸로 들려 내밀어졌다.

 

어때, 이건 기억나나?”

 

“...나지 않는다.”

 

갈색 머리카락에 한쪽 팔을 덮을 정도로 가득한 손목시계.

 

코트와 청바지와 하얀 티셔츠.

 

아마도 아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억은 덧칠되기라도 한 듯 떠올리려고 애써도 검은 물 같은 아래로 가라앉는다.

 

더 애써봐라.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가? 가령 어떤 말을 자주 했다던가, 표정이라던가, 특정 행동을 많이 했다던가 하는 것 말이다!”

 

웃음을 참는 것이 힘들어졌는지 말 중간중간에 웃음을 참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때로는 웃음 약간이 섞여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것에조차 아무런 감정의 표현을 보이지 않는 채, 벨져는 제 눈 앞에 거꾸로 매달려 흔들리는 사람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갈색 머리, 흔히 말하는 순해 보인다는 인상일 것 같음.

 

만져 보려 손을 뻗었지만 제지당했다.

 

얻을 수 있는 정보는 그뿐이라 고개를 저었다.

 

...잠깐, 순간 검은 물 위로 기억 덩어리가 얼핏 올라왔다가 가라앉았다.

 

어쩌면 초록색 눈일지도 모르겠다.

 

흔히 말하는 초록색이란 차가운 색 계열이지만 어쩌면 이 사람의 눈은 따뜻한 초록색일지도.

 

“...초록색.”

 

제키엘은 제 아래 앉은 그를 내려다보다가 쥐어든 발목을 놓았다.

 

철벅 소리를 내며 사람의 형상은 무너졌고 하얀색 크림으로 덮인 케이크 위로 체액이 튀어 자국을 남겼다.

 

아직 갈 길이 남았구나. 그러나 걱정마라, 그리 길지는 않을 테니.”

 

웃음기가 사라진 목소리는 오싹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생일 축하한다. 네가 완전히 다시 태어날 날도 멀지 않았을 터이니.”

 

 

[제키벨져] 립스틱

2015. 11. 11. 23:09 | Posted by 호랑이!!!

귀찮은 놈.”

 

벨져는 드물게 입술을 말아 이를 드러냈다.

 

사려문 이가 창백하고 어둑한 달 아래에서 번뜩 빛을 반사했다.

 

그의 몸 여기저기에는 핏자국도 상처도 보였고 옷도 찢어져 있었는데, 그가 벽에 기댄 앞에는 비교적 최근에 참전하기 시작한 안타리우스의 젊은 교주가 있었다.

 

손이 많이 가기도 하지!”

 

경박한 목소리, 벨져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가뜩이나 들어올린 고개건만 턱이 잡혀 젖혀졌다.

 

제키엘은 씩 웃으며 입을 벌렸다가 손에 힘을 주어 억지로 벨져를 일으키다시피 해서 입을 맞췄다.

 

, -

 

억눌린 소리와 밀어내는 손의 움직임이 보였고 마침내는 무언가에 놀란 듯 제키엘이 입을 떼었다.

 

꽤나 앙칼지게 물린 듯 피가 배어나오는 입가를 손등으로 밀어 닦는 중 벨져가 몸을 일으키려는 듯한 움직임을 보이자, 그는 팔을 벌렸고 동시에 등에서 금속 가시가 뻗어나왔다.

 

그 가시에 몸이 걸린 벨져를 잡아 땅으로 누르며 제키엘은 이쪽을 죽일 듯 노려보는 그를 내려다보았다.

 

크크크큭, 그렇게 움직여대니 삐뚤게 묻지 않았나.”

 

미친놈.”

 

입가에 묻은 연한 청록색 도료를 손가락으로 문질러 모양을 내다가 제키엘은 벨져의 목에 매달린 크라바트를 뜯어냈다.

 

평소에까지 입던 재킷 모양 경갑은 어디 가고, 흰 셔츠 차림인 것을 자락을 들자 못잖게 하얀 피부가 드러났다.

 

수치심에 몸이 작게 경련하고 움츠러드는 것을 제키엘은 그의 양 팔을 잡고 눌러 막았다.

 

겉모양은 유약해도 속은 그 눈빛만큼이나 강하지, 마음에 드는구나.”

 

어디, 처녀애처럼 구는 이 몸뚱아리를 물어뜯어도 똑같이 구는가 보자꾸나.

 

소름끼치는 소리를 내며 가시가 뻗어 벨져의 몸을 억눌렀다.

 

한 번 입술을 대고 느릿하게 색을 입술에 칠하고 다시 입술을 대고.

 

그 일련의 행동은 지나치게 느릿느릿해서 벨져의 정신이 긴장으로 아득해지는 것에 충분했다.

 

달 뜬 밤에 시작했던 것을 희부옇게 안개가 피어오르는 새벽에 끝내고 제키엘이 떠나도 벨져가 일어나지 못하도록.

 

그가 정신을 차리고 향한 곳은 기사단 거처가 아닌 다이무스가 쓰는 집이었다.

 

이 시간이면 없겠거니 하고 갔건만 예상 외로 다이무스는 신문을 읽을 때 사용하는 안경을 쓰고 집에서 서류를 처리하는 중이었고.

 

벨져는 이렇다 저렇다 인사를 건넬 생각도 않고 욕실로 걸어 들어갔다.

 

다이무스는 서류를 테이블에 내려놓고 안경을 벗으며 욕실 앞으로 갔다.

 

따듯한 물이 나오려면 좀 기다려야 할 거다.”

 

, 형아.”

 

저것도 부탁이라고.

 

다이무스는 제가 입는 옷 중에서 하얀 와이셔츠와 바지 하나를 꺼내들었다.

 

이것도 꽤나 클 텐데 아예 새로 사는 편이 낫지 않으려나.

 

그런 생각을 하는데 욕실 문이 열리는가 싶더니 펄럭 펄럭 옷이 떨어졌다.

 

쯔쯔, 아주 구르고 뛰고... 기사단이 벨져를 험하게 굴리는군.

 

안에서는 샤워기에서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다이무스는 페인트에라도 담갔던 건지 초록색과 파란색 사이의 서늘한 색으로 물든 와이셔츠를 들었다가 고개를 저으며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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