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는 시간, 수업 시간, 언제든 할 것 없이 덥다는 말이 들리고 종이로 부채질하는 소리나 간혹 조그만 선풍기 모터소리가 들리는 여름방학 직전, 기말고사가 끝난 어느 날.
신입 교사 A는 방학 숙제라며 종이를 한 뭉치 안고 들어왔고 학생들 사이에서는 우우- 하는 야유가 터져나왔다.
“쌤- 숙제 싫어요!”
“좀 진정해라, 다들.”
선생님은 프린트물로 책상을 탁탁 내리치고 잘 보이게 들어올렸다.
“이제부터 너희는 짝을 지어서 서로 대화를 해 보고, 서로에게 필요할 것 같은 일을 방학숙제로 내주는 거야, 알겠지?”
앞에서 넘겨지는 종이를 받고 B는 체크리스트를 읽어 보았다.
어느 정도의 기준이 있는지 질문은 꼼꼼하게 작성되어 있다.
“우리 다 같이 놀러가기 같은 거 적을래?”
“C한테 숙제 주면-”
C 주위는 너무 요란하다.
B는 서랍에 손을 넣어 아까까지 읽던 책을 꺼냈다.
몇 명씩 불려가서 몇 분 내로 돌아오다가 마침내 B의 이름이 불렸다.
예상과는 달리 빈 교사 휴게실로 갔고 B는 C와 한 조인 것 같았다.
“안녕!”
“안녕.”
난처하네.
B는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C에 대해서는 이제 겨우 이름과 얼굴의 매치하는 정도인데 갑자기 대화라니 허들이 높다.
“아까 뭐 읽고 있었어?”
“...중국 소설, 부채와 이야기.”
“재미있어?”
고개를 끄덕인다.
C는 다른 친구에게 빌려온 노란색 볼펜으로 체크리스트를 긁었다.
이제 한 학기가 다 지나가는데 B랑 이야기하는 건 이제 두 번째, 어쩌면 세 번째인 것 같다.
이런 적이 없는데 참.
“방학 때 뭐하고 싶어?”
빨리 끝내고 돌아가서 책이나 읽고 싶다는 말이 B의 얼굴에 적혀있는 것 같다.
“친구랑 놀기?”
“그럼 그거 적는다.”
“아냐, 다른 걸로 할래.”
“뭐가 좋아?”
“음.... 책?”
책이라는 말에 B의 시선이 종이에서 떨어져 C를 향한다.
얼굴 반 이상이 종이로 가려져 있지만 이것만으로도 퍽 만족스러워서 C는 헤실 웃었다.
“읽을 만한 거 추천해줄 수 있어?”
“...부채와 이야기 재미있으니까, 나중에 읽어봐.”
“다 읽고 보여줘.”
“도서관에 한 권 더 있어.”
그리고 이 책이랑, 이 책이랑, 하면서 다섯 권 정도 추천해주느라 시간은 금방 10분을 넘겼다.
“너희 다 해가니?”
A 선생님이 문을 노크했다.
“네-.”
“쪼끔만 기다려 주세요, 쌤!”
B는 ‘ㅇㅇ에게 주고 싶은 나의 방학숙제는?’이라는 질문 옆에 검은 색 볼펜을 댔다.
책 다섯 권 읽기.
가급적이면 추천해준 책으로, 라고 적었다가 위에 두 줄을 긋는다.
방학식.
A 선생님은 학생들 개개인을 위한 프린트를 나누어주었다.
누군가는 영어공부를 할 것이 있고 누군가는 여행을 가서 사진을 찍어오는 일이 있다.
그러고 보니 C가 뭘 줄지는 안 물어봤었지.
B는 프린트를 받자마자 숙제 부분을 찾았다.
[C와 함께 이틀 동안 놀 것]
“.........?”
B는 뒤쪽을 돌아보았다.
저만치에서 C가 이 쪽을 바라보다가 눈을 마주치곤 손을 흔들었다.